Changgo(이하 C): 반갑다. 각자의 소개 부탁드린다.
주상균(이하 주) : 안녕하세요, (기타와 보컬) 주상균입니다.
정병희(이하 정) : 안녕하세요, 블랙홀의 귀염둥이(웃음), (베이스) 정병희입니다.
이원재(이하 이) : 전 기타치는 이원재입니다.
이관욱(이하 관욱) : 드럼의 이관욱입니다.
- 레이지(Rage)의 빅토르 스몰스키가 프로듀싱한 8집 "HERO"
C : 프로듀서로 '주상균'과 '빅토르 스몰스키'의 이름이 함께 올라있다. 빅토르가 신보에 미친 영향의 정도는?
주 : 빅토르가 한 일은 이른바 '사운드 메이킹'이었다. 각 파트별 소리를 잡고, 세팅을 하고, 연주가 시작되면 직접 프로듀싱(연주자의 기량을 끌어내고 잘라주고 하는 것)까지 했다. 초반에 이러한 부분을 잡아줬다.
C : 빅토르가 녹음 전체를 함께 한 것인가?
주 : 그건 아니다. 초반에 이렇게 세팅을 한 상태로 (스몰스키가 떠난 후에도) 진행되었다.
이 : 드럼은 빅토르가 모두 녹음을 맡아서 했다.
정 : 사전에 엔지니어 방식과 분위기를 유럽 방식으로 세팅을 맞추고 그에 맞춰 진행한 것이다.
이 : 진행 중에 녹음된 것을 (유럽으로) 보내면 다시 체크를 하는 식이었다.
주 : 빅토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한 20년 뒤떨어진 것을 며칠 만에 배운 느낌이다. 자기(빅토르)도 그랬다고 하더라. 유명한 프로듀서와 작업을 할때 ‘너 내가 작업하는 거 옆에서 잘 지켜보면 확 배울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정말 그러했다. 스플릿터(spliter)의 사용 노하우 등이 그랬다. 간단한 것임에도 우리 뮤지션들이 모르는 기술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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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빅토르와 신보를 녹음하면서 베이스도 뮤트를 할 것을 주문 받았다. 특히 왼손으로 뮤트하는 것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D를 치면서 E플렛에 살짝 손가락을 걸치는 식이었다. 독일 밴드들은 피킹 베이스 연주자들에게 일반화 되어 있다고 했는데, 생소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녹음한 후 드럼의 베이스와 믹싱하면 기존의 사운드에 비해 훨씬 단단한 느낌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프로 연주자로서 ‘쪽 팔리게’ 피킹에 대해 지적 받을 때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부가 되었다. 기본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고, 오히려 잊었던 것을 다시 생각했다.
주 : 매 곡마다 (기타)줄도 새로 갈았고, 채널마다 기타도 바꿔야 했다.
정 : 지(빅토르)야 협찬 받으니까 우리는 줄 값 무지하게 들었다. (웃음)
주 : 드럼, 기타 모두 뮤트를 중시하는 녹음이었다. 뮤트를 아무리 잘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 잔향이 있기 마련인데, 빅토르는 그러한 부분을 사정없이 기계로 잘라버렸다. 결과적으로 ‘짠!’하고 끊어진다. 딱딱해진 듯 하지만 정확하다. 녹음은 작업이다.
정 : ‘녹음도 한방에 가는 거’란 사고방식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것은 앨범 녹음이다. 정말 정확하고 연주 잘해야 한다.
이 : 그들이 말하는 파워는 정확성에 있다.
주 : 유럽 스타일이 미국과 다른 것이 바로 그런 점이라고 하더라. 미국 스타일은 그루브나 필이 살아있으면 그걸 다 살리는데, 유럽 스타일은 그것을 무시한다. 유럽은 어떤 음이든지 정확하게 딱딱 맞아야 한다고 한다.
이 : 유럽 밴드들이 미국서 성공하기 어려운 것도 이러한 정서(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C : 신보의 보컬도 과거와 다르다. 비음이면서도 목에서 나오는 거친 진성이 섞여 있는데 일정부분 공연장에서의 느낌이 강하다. 덕분에 박진감은 있지만 다소 답답함도 있다. 보컬의 녹음에 있어서 중점을 뒀던 부분이라면?
주 : 보컬 녹음은 녹음이라기보다 '노가다'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 트랙을 만들기 위해 수백 번을 불렀는데 필보다는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했다. 예전엔 음의 강약을 미리 설정해서 부르곤 했는데 이번 앨범에선 어떤 음에서든지 다 ‘쎄고’ 정확하게 불렀다.
빅토르의 주문 사항이 많아서 속으로 ‘니가 불러봐라’ 싶었다. (웃음)
C : 믹싱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주 : 원래는 트랙 레코딩한 것을 빅토르에게 보내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믹싱도 유럽에서 진행해서 유럽식 (메탈)음반을 만들고자 했으나 연기된 상태다. 한국반은 한국에서 믹싱과 마스터링이 진행되었다.
C : 그렇다면 유럽반이 발매될 예정인가?
주 : 원래는 작년 11월에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스몰스키와 지금도 연락하며 (유럽 발매를) 준비 중이다. 미국 판매를 위해서는 대린(Darrin Muir, 블랙홀 2집 트랙 녹음한 드러머로 현재 미국서 Soundproof라는 헤비메탈 프로덕션을 운영중이다)이 현재 한국에 와 있다. 대린 말로는 한국보다 미국서 더 많이 팔릴 것이라고 한다.
- 국악의 수용과 녹음 장비
C : 국악기의 전면적인 배치가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록에 국악기를 사용할 때는 국악기의 그루브에 중점을 둔다. 특히 국악기의 경우 적은 수의 음을 밀고 당기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블랙홀은 직선적인 음악에 국악기를 얹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으며 국악기의 배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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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이번에 우리가 사용한 것은 아쟁과 대금이다. 이유는 개인적으로 해금보다는 아쟁 소리를 더 좋아했고 관악기 중에서는 대금 소리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두 악기는 유일무이한 느낌을 가진 세계적인 악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꼭 한번 곡 속에 응용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전까지 이러한 시도는 많이 있어왔는데 양쪽 모두를 살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린 기조는 확실한 헤비메틀이지만 거기에 '극과 극'의 관점에서 국악을 접목시킨다면 더 좋은 음악이 탄생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퓨전'식으로 양보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철저한 헤비메틀이고 또 그 쪽에서 내주는 것은 철저한 국악필로서, 둘을 섞었을 때 굉장히 좋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맞아 떨어졌다. 연주해주신 분들도 굉장히 엑설런트한 연주자들이었는데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신 분들이라 '필(Feel)'에선 더할나위 없는 명연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평소에 양악쪽과 협연을 해오신 분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겐 더 도움이 되었다.
C : 현재 어디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인가?
주 : 청주국악원에 계신 분들인데 수소문해서 소개를 받았다.
C : DMZ corea 멤버의 이름이 보이는데, 스텝이란 애매한 이름이다. 이들이 음반 녹음에서 한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주 : 빅토르가 원했던 장비가 한국엔 없었다. 기타 앰프도 3대를 썼어야 했는데 가장 적합한 장비를 구비하고 있었던 DMZ corea에서 빌려 사용하게 된 것이다. 대여뿐만이 아니라 운반도 도와줬다.(웃음)
정 : DMZ corea의 한승오는 장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노력하는 후배다.
C : 신보 녹음 때 사용한 악기는 무엇인가?
주 : 이번에 받은 500만원짜리 ESP 기타와 Ibanez 'Iceman' 모델을 사용했다. 이펙터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디스트가 전혀 없는 생소리로 앰프 세 대를 통해 만들어진 사운드다. 오버 게인이 조금 들어간 생소리로 (기타 톤을) 만들었다.
정 : Hammer 베이스를 사용하고 녹음 땐 앰프 헤드는 Hartke, 캐비넷(베이스 앰프용 스피커)은 Trace Elliot을 썼고 라이브에선 주로 Ampeg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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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욱 : 녹음 때는 Tama 클래식 더블 베이스 드럼을 썼고 평소엔 Piece 더블 베이스 드럼을 사용한다. 자기 드럼을 들고 다닐 수 없는 한국의 여건 상, 공연 땐 주최 측에서 가져다 주는 '아무'드럼을 사용한다.(웃음) 스네어는.. 녹음 땐 Sonor 하이라이트를 썼고 평소엔 Tama 스테인레스 스틸을 쓴다. 스틱은 Promark를 사용한다.
이 : 녹음엔 Fender 텔레케스터를 썼고, 백킹은 상균형과 함께 ESP를 이용했다. 공연 땐 B.C Rich를 주로 사용한다. 깁슨 플라잉 브이 모델도 10년간 꾸준히 애용해왔다.
관욱 : 원재형은 무조건 플라잉 브이만 쓴다. 브이맨이다.
- 8집 앨범 “HERO"의 주제와 내용
C : 신보에는 가족에 관한 곡이 많다. 앨범의 컨셉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정 : ‘처음 쓰는 편지’같은 경우, 상균형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만든 곡이다.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것인데 아까도 얘기한 '구분'이란 측면에서 보면 '달빛 아래 홀로 걷다', '땅과 태양의 아이'처럼 탄생 후 자라는 과정(삶)이 다뤄지는 것이다. ‘진실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부터는 사람들이 내뱉는 여러가지 거짓말과 거품들에 대한 곡이다. ‘Forever'는 더 자라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나아가는 얘기다. "나쁜 영웅"들을 다룬 'Ugly Hero'같은 곡도 있다.
이 : 태어나서 자라나 사랑하게되는 여정, 사회 생활하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가족 간의 헤어짐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소중한 것을 짓밟으려하는 ‘Ugly Hero'에 대한 얘기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C : 신보는 "진실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를 기점으로 스타일 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실험성과 대중성의 타협으로 봐도 되겠는가?
주 : 삶으로 보면 첫 곡이 탄생이며 이후로 성장해가는 과정이고 시대로 보면 이전 시대와 현재 살아가는 시대로 얘기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적은 처음이다. 우리도 생각 못했던 부분이다.
C : 'Forever'는 트로트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 곡에 대한 밴드의 입장은?
정 : 매니아들 입장에선 "헤비메틀 밴드가 이게 뭐냐"는 식으로 나올지 모르겠는데 우리 입장에선 비록 그것이 '전략곡'이든 어쨌든 간에 블랙홀이 연주한 것이다. 물론 트롯의 느낌이 난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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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보통 헤비메틀 밴드가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하면 "변질됐다"고 하고 발라드 가수가 락을 하면 "변화, 발전하고 있다"고 평들을 한다. 결국 똑같은 음악이고 양자가 같은 경우인데 그러한 평은 좀 그렇다. 'Forever'는 이번 앨범 컨셉에서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수록한 것이다.
주 : 앨범이 나오자마자 우리가 운영하는 영문사이트에 신보의 곡들을 올려놓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트롯풍이네"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 쪽 친구들은 "어, <산타나> 같다, 퓨전하다"라는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었다.
C : '달빛 아래 홀로 걷다', '땅과 태양의 아이', 'Forever'등 미들 템포의 곡이 많은데 흡사 4집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혹 제2의 [Made In Korea]를 노린 것은 아닌가?
주 : 그런건 아니다. 애초에 앨범 제작 기획 의도가 해외 동시 발매였기 때문에 1, 2, 3, 9번 같은 트랙은 애초부터 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곡들이다. 우린 유럽메틀같은 냄새를 풍겨야 되겠다는 게 아니라 연주는 훨씬 좋아야하지만 기본적인 느낌, 멜로디, 사상 같은 것은 정말 한국적인 것으로 내보내면 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거란 확신이 섰던 것이다.
C : 작곡의 과정은?
주 : 맨 먼저 드럼과 베이스 리듬을 생각한다. 그리고 멜로디, 맨 끝에 가사를 만든다.
- 대형 음반사와 해외진출
C : 이미 영어 가사가 작성된 상태인가?
주 : 그렇다. 데모 작업이 영어로 이뤄졌다. 우리의 향후 일정은 이렇다. 지금은 공연을 쉬면서 방송사, 신문사등을 통한 앨범 홍보에만 주력하는데, 이런 생활이 9월까지 갈 것 같다. 그것이 끝나면 공연을 재개하고 시간을 내서 신보의 영어로 된 뉴버전을 통째 들고 미국이나 독일로 가서 믹싱을 할 예정에 있다.
C : 과거에도 일본과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주 : 직배사의 어눌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 때가 4집 발매했을 때였는데 한 번은 국내 대표급 가수들을 아시아 지역에 홍보하는 쇼케이스 공연이 있었다.
<박진영>, <신해철>, <뱅크>와 함께 했었는데 당시에 러브콜을 가장 많이 받은 우리였지만
음반사측에서 국내 앨범 판매고를 기준으로 판단, 결국 우리 대신 <박진영> 씨를 밀어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음반사 측에서 처음부터 우리 앨범을 해외에 발매할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
C : 블랙신드롬처럼 베스트 앨범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해보는 것은 어떨른지?
주 : 일본 시장도 이번에 우리가 음반을 발매한 '메이저' 음반사인 Sony를 통해서 하는 게 제일 좋다. 마이너 레이블로는 진출을 해도 진출을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시장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진출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 : (블랙신드롬)재만씨도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 지금으로선 일본 Sony를 통해 발매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C : 블랙홀은 신보의 Sony/BMG 발매 이전에도 EMI, 웅진뮤직, BMG등 대형음반사를 통해 출반했었다. 이번 신보를 블랙홀의 독자적 음반사인 Metal K.의 이름으로 발매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주 : 한국에 인디씬이라고 말하지만 제대로 한국 인디 시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진 앨범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선 정식적인 유통망을 이용해야 되니까 크고 단단한 회사가 필요했다. '투명성' 문제도 있고.
C : 음반사가 발매/유통 비용만을 댄 것인가, 아니면 앨범 제작비까지 책임졌나?
주 : 앨범 제작비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했고 유통쪽만 음반사측에서 담당해줬다.
- 각 파트의 연주
C : 속주 기타리스트로서 주상균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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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빅토르가 내 연주를 듣고 "너는 아주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번 앨범에선 속주의 마지막에 국악의 '꺾임'과 비슷한 느낌을 내기 위해 벤딩보단 슬라이드를 많이 시도해봤다. 연주 자체는 '빡센'데 비해 부드럽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달빛 아래 홀로 걷다’의 후반부 솔로는 원재의 연주인데, 나의 것과 비교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재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블루스 필이 강렬한 연주이다.
C : 기타 솔로에서 잡음이 좀 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된 것인지?
주 : 그게 기술적인 문제인데 기타 솔로 녹음 할 때는 빅토르가 없었다. 엠프가 이펙터를 함께 쓰면 잡음을 잡아주는데 이펙터를 사용하지 않고 ‘쌩톤’을 그대로 녹음해서 잡음까지 그대로 다 녹음되어 버린 것이다. 미처 컷을 하지 못했다. 글쎄 빅토르가 있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믹싱의 한계일 것이다.
C : 영향받은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주 : 가장 처음 영향받은 밴드는 <주다스 프리스트>이고 기타리스트는 <게리 무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잉베이 맘스틴>도 좋아했고 '이런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기타리스트인 <토니 매캘파인>의 [Maximum Security]는 정말 깔끔하고 본받을만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패턴 위에 우리만의 것을 담아내고 싶었다. 말은 쉽지만 잘 안되었다. (웃음)
C : 보컬리스트로서의 주상균을 평가한다면?
주 : 항상 무한한 가능성은 갖고 있으나....(웃음) 아무래도 보컬도 악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관리를 잘 하지 못한 면이 많다. 아주 중요한 때 컨디션이 안좋아서 헤맨 때도 있었다. 이제는 블랙홀의 프론트맨으로서 관리 잘하고 책임감을 갖고 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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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병희씨는 과거 무대에서 슬랩핑을 간간이 보여주곤 했는데 요즘에는 좀 보기 힘든 것 같다. 다양한 장르를 모두 소화하는 느낌이다. 자신의 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 : 난 기본적으로 '헤비메틀 베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재즈같은 장르만 빼고나면 베이스 전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떠한 것이든 다 하고 싶다. 슬랩핑은 솔로 타임 때 계속 하고 있다. 이번 신보 투어 때도 멤버들과 합의를 봐서 같이 하느냐, 혼자 따로 하느냐를 결정해서 따로 하게 되면 내 스타일로 가면 되는 것이고 드럼과 함께 맞춰야 한다면 또 맞춰 나가면 되는 것이다.
C : 공연장에서 즉흥 연주를 들려줄 때의 원재 씨의 기타는 상균 씨와 다른 스타일이다. 블루지하면서도 담백한 하드록의 느낌.. 속주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블랙홀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었기에 적응되었겠지만 초기에 어색하지 않았을까 의심스럽다. 그리고 이원재의 가입이 블랙홀의 음악에 변화를 준 것이 있다면?
이 :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나 연주할 때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고 헤비메틀 연주 자체는 워낙에 재미가 있다. 1970년대의 음악을 좋아하고 잡식성의 취향이라 블루스, 재즈, 팝까지 여러 음악을 좋아하는 영향이다. 그러나 나의 취향이 반드시 음악적 결과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밴드의 음악에 충실한 연주를 하려고 한다.
정 : 원재의 아르페지오 주법이나 코드웍같은 것은 블랙홀의 음악적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주 : 원재같은 경우는 나와 매치가 참 잘되는 게 똑같은 속주를 하면서도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밴드 자체로 봤을 때도 굉장히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똑같으면 지루해지기 십상이지 않나.
이 : <잉베이 맘스틴> 둘이 한 밴드에 있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나? (웃음)
주 : 나와 비교가 될 뿐이지 원재도 전형적인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다. 내가 빠지고 들어봐도 역시 블랙홀의 색깔이 난다.
C : 관욱씨의 드럼 연주는 새로운 멤버이기에 전임자와 비교 당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안정감은 훨씬 강하지만 터치에 있어서 응윤 씨에 비해 다소 경직된 느낌이다. 음반 프로듀싱의 컨셉 혹은 자신의 스타일인가?
관욱 : 음악이 빨라지면 플레이도 약간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보통 드러머들은 그루브를 많이 따지곤 하는데 <헬로윈> 드러머에게 가서 그루브를 논하진 않지 않는가. 물론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그루브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앨범이 이전의 어느 앨범보다 빨라지고 복잡한 부분이 많아져서 그렇게 느끼신 것 같다.
이 : 사실 <김응윤> 씨의 작업은 양이 방대하다. 단 한 장을 녹음한 관욱이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이번 음반에서 빅토르가 원한 사운드가 단단한 리듬 파트였다.
관욱 : 레이지 음반을 들어보면 사람이 친 거 맞나 싶은, 컴퓨터 같은 느낌이다. 이번 신보에서 드럼은 기존 가요적 녹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그러한 사운드를 채용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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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관욱씨가 블랙홀에 들어오게된 과정(계기)는?
관욱 : 드럼 연습중이었는데 어느 날 (1994년) MBC 대학가요제 동기인 원재형의 연락을 받고 원재형 권유로 블랙홀 드러머 오디션을 합격해서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 MBC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음악 활동하는 사람 많지도 않은데, 멤버의 반이 대학가요제 출신인 우리를 왜 게스트로 안 부르는지 모르겠다. (웃음)
C : 영향받은 드러머가 있다면?
관욱 : 평소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정통 메틀, L.A.메틀, 스피드 메틀, 쓰래쉬 메틀, 헤비 메틀 안에서만 다양하게... (웃음) <데이브 웨클> 같은 연주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다양하게 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다. <타미 앨드릿지>같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헤비 메틀을 연주하는 정통 메틀 드러머를 좋아한다.
- 20년.....
C : 한국에서 힘들다는 헤비메틀을 20년 이상 하면서 견딜 수 있게 한 힘의 바탕이라면?
이 : 예전엔 앨범도 많이 나갔고 행사도 많았다.(웃음)
정 : 개인적으론 '초심'을 가지고 그냥 '해왔다'. 어려울 때도 어려운 대로 매일 음악을 했다.
그러다 보니 16년이 흘렀더라.
주 : 맞다. 그냥 '좋아서' 했다.
정 : ‘일’이 아니라 ‘생활’이 음악이었다. 가는 날까지 이렇게 음악을 할 것이다.
C : 밴드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주 : 2003년에서 2004년 사이가 가장 힘들었다. 그 때가 Metal K.를 시작하면서 쌓여왔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다 터졌던 시기였다. '문을 닫는다, 만다', '팀을 더 한다, 만다'라는 지경에까지 갔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이 :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떠나갔고, 우리만 남았었다.
주 : 그 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맘으로 차근차근 시작했다.
C : 블랙홀이 음악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 환경의 차이가 있다면?
주 : 우리가 시작할 때는 시장이나 매스컴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포스터같은 걸 붙여 공연을 홍보하면 사람들이 자주 접할 수 없었기에 공연장도 만원이 되고 수익도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공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볼 기회는 많아졌지만 너무 흔하기 때문에 돈 주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손수(클럽공연은 제외한) 공연을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그 때, 지금..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C : '여러가지 매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주 : 인터넷, 케이블, 길 가다 볼 수 있는 백화점 앞 무대의 '공짜' 공연들, 시에서 주최하는 공연 등이 있겠다. 솔직히 우리 땐 밴드 공연(특히 헤비메틀 밴드 공연)을 찾아서 보기도 힘들었는데 요즘엔 너무 쉽고 흔하고 값도 싸진 것 같다. 마치 오래전과 달리 (예전에 귀한 과일이었지만 지금은 흔하디 흔해져서) 바나나를 먹기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 국내 밴드 중에 공연을 열심히 하는 밴드들도 사라졌다. 평론가들이나 업계의 사람들 모두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가수들의 거품이 금방 꺼질 것이라 했지만 벌써 10년이 넘었다. 대중들이 TV나 방송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사실 지금 방송국은 서너 개 회사의 가수들을 벌어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은 힘이 없으니까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보니 당연히 안 좋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시 한국 록음악 안된다고 ‘씹히는’ 거고. 악순환이다.
C : 지난 2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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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1993년 압구정동(신나라 라이브 홀)에서 유료 관객 두 명을 두고 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그 때 그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그 공연을 했기 때문에 지금 어떤 자리에서든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풀 공연 다 하고 앵콜까지 했다. 거지가 되어서 악기도 없고 아무 것도 없더라도 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 : 나도 마찬가지로 그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명이 썰렁하지 말라고 모든 스텝이 다 같이 (객석에) 앉아서 공연을 했다.
이 : 1995년 밴드에 들어오고나서 했던 최초의 공연(청주/대전)이 기억에 남는다. 착실하게 대학교 후배들 3,40명이 표를 사들고 와서 맨 앞에서 응원했다. 스텝들이 내 후배들이 다 표를 사니까 최고라고 하더라. (웃음)
관욱 : 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했던 대규모 페스티발이었던 Gate-In Seoul Festival 이 가장 생각난다. 좋아했던 감마 레이와 한 무대에 섰던 공연이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이 섭외할 때와 다르게 연주하러 가보니까 시장에서 인도를 막고 공연했던 적이 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만 관객이었다. 왜, 어떻게 여기서 공연할까 생각했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까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헤비메틀을 즐기면서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런티 없는 공연은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게런티가 큰 공연은 대우도 잘 해주는데, 힘들지만 함께 해보자고 해서 나선 공연장에 가면 전혀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주 : 지나고 보니 블랙홀은 멤버들 모두 인간적으로 잘 맞았다.
C : 블랙홀은 공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방이나 대학가에는 앰프에서 PA에 이르기까지 열악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사운드를 뽑아내는 밴드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주 : 결국 다년간의 경험에 의한 것인데 PA소리를 무시하고 드럼에 맞게 평소 우리가 생각하는 볼륨감이 있다. 클럽이건, 연습실이건 어디라도 그것을 항상 유지하다보니 PA가 꺼져도 사운드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들도 우리와 함께 일하면 편하다고 한다.
이 : 경험에 의한 것이다. 가끔 고등학생 밴드들은 발란스나 볼륨감이 없어서 베이스 앰프가 망가지기도 한다. 사용하는 방법들이나 우리 말고도 오래 음악한 밴드들, 선배들이 안정감있는 사운드를 내는 것에는 아무래도 ‘연조’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 : 우리는 공연이 많았고 공연 세팅에 대해서 우리만의 노하우가 생긴다. 남들은 트윈 기타일 때 굉장히 (사운드 잡기) 힘들다고 한다. 소리가 더 지저분해져서 한참 진행하다보면 한 대 소리를 빼는 경우도 있더라. 그러나 우리는 트윈 기타에 대한 톤, 발란스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과 노하우가 있고, 소리도 잘 빠진다.
C : 다른 고참 밴드들과 달리 음악외의 겸업은 없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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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재주가 없다.
이 : 게을러서 그렇다. (웃음)
정 : 합주실, 엔지니어링,... 선택의 폭도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음악 연주 외의 것을 찾는 게 대부분인데, 물론 돈이 없어 힘들 때는 "뭐 다른거 좀 해볼까?"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솔직히 직업을 바꿔서 잘 된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고, 과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뮤지션들이 잘 생각해봐야 할 부분 같다.
이 : 외국에 나가봐도 밴드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가르친다는 것은 인정을 받기 힘들다.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 밴드 하기 위해서 음악을 했던 것 아니었나?
관욱 : 음악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보다 음악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한국 상황에서) 더 중요해 보인다.
정 : 밴드는 합주다.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하는 거라 사람들의 유대도 중요하다. 밴드가 오래가야 팀 사운드가 나온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기타 엄청 쌓아 놓고 혼자 하는 사람들 보면 궁금하다. 그런 쪽으로만 발달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 : 그러면 밴드를 하지, 인터넷 뮤지션인가? 현장에서 밴드를 하고 연주를 해보는 사람만이 그 고충을 알고 허황된 부분 없이 남의 연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밴드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남의 연주가 어떻고 이렇게 욕하지 않는다.
- 한국적 헤비메틀 밴드 블랙홀
C : 밴드 블랙홀이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이루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주 : 블랙홀이란 팀이 '가수' 이상의 위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린 여태껏 한번도 무엇을 바래본 적 없고 음악 자체가 너무 어려우니까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발전지향적인 태도로 살아왔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런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면 우리 나라의 풍토가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때 묻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살수 있는 세상, 사실 노래 가사도 다 그렇지 않나. 그런 세상이 오지 않으니까 가사를 통해 계속 감시하고 비판하고 건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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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보통 블랙홀의 음악을 '한국적인 헤비메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헤비메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주 : 처음 1집 발매할 땐 그런 의도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냥 외국 여느 메틀밴드에도 뒤지지 않을 앨범이란 자신감으로 낸 것인데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한국적 헤비메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가 한국어라서 그런가 생각하기도 했다. (웃음) 그러다 4집이 발매될 즈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적인 가사니까 한국적인 철학이 들어가고 몸에 밴 리듬이나 멜로디들이 자연적으로 흘러나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음악이다보니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간에 '된장 냄새'가 날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신보 같은 경우엔 의도적으로 한번 만들려고 해봤다. 예컨대 첫 곡 '삶'에서의 꺾임 부분은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는데 어렸을 때 많이 들어보았던 것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구사되어 한국적인 것이 되었다.
이 : 이런 꺾임을 종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시켜도 다 흉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 사람들은 이런 감정 만들 수가 없을 것이다. 흑인들은 소울, R&B 창법이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우리가 부르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주 : 교습을 받아서 정답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듣던 국악,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들려주는 국악, 사실 어렸을 때는 그거 안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해보니까 너무 좋은 음악임이 느껴진다.
C : 블랙홀에게서 1980년대의 정서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록음악을 전혀 듣지 않을 법한 영화계의 선배가 블랙홀의 정서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블랙홀의 팬층은 단순히 헤비메틀 팬들이 아닌 듯하다. 어떤가?
이 :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즉,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던 사람들과 블랙홀도 함께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런 팬들이 많은 것 같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이다. 1980년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블랙홀에 대해 할 말도 많은 사람들이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주 : 의식적으로는 1980년대의 학생 운동의 여파가 남아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린 1990년대에 활동한 밴드인데...
이 : 블랙홀이 한창 활동할 때 서태지가 데뷔했었다.
주 : 1980년대에 느낄 수 있었던 이상향을 떠올리게 하는 장엄하면서도 서글픈 멜로디, 가사들에 공감하는 팬들이 많이 있어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또 실제로 우리의 앨범을 구매하는 분들을 보면 헤비메틀 마니아라기보단 그냥 '블랙홀의 팬'인 경우가 많다.
정 : 음악을 좋아하는 요소에 가사가 또 중요할 것이다.
- 리메이크
C : 블랙홀은 <한대수>, <퀸> , <딥 퍼플>, <쇼킹 블루> 등의 곡을 리메이크 했다. 리메이크 곡에 대한 밴드의 생각과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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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요즘엔 저작권법이 바뀌어서 등록만 하면 어느 곡이든 리메이킹 할 수 있는데 예전엔 저작자에게 허락을 받아야지만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했던 것이 <한대수> 선배님의 '물 좀 주소'였다.
주 : 어떤 사람들은 저작권 상관없이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기도 했는데 우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선배 뮤지션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한 것인데.... 미국 EMI 본사를 통해서 당시 미국에 살고 계시던 한대수 선배님께 몇 달 만에 힘들게 연락이 닿아 저작권료를 드리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정 : 우린 정상적인 절차를 다 밟고 했다. 개인적으로 'HIghway Star'같은 곡은 학교 다닐 때에도 꼭 하고 한번 해보고 싶었던 곡이었고 우리 세대 때 'Venus' 싫어했던 사람 없었고,
<퀸>도 최고의 밴드였기 때문에 자연히 하게 된 것이다.
주 : 리메이킹은 원곡의 핵심적인 부분은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 'Highway Star'의 기타 애드립을 원곡과 다르게 친다면 어떻겠나? 그건 <딥 퍼플>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듣는 사람들로부터도 빈축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 : 지금처럼 등록제로 저작권법이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리메이크 음반들이 쏟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 멤버 개인들
C : 멤버들의 음악적 성향이 반드시 블랙홀로 모인다기보다 블랙홀을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느낌이다. 각자의 개성을 살린 프로젝트 계획이나 같이 연주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이 : 지금 연륜에선 그 정도도 할만한데.. 결정적으로 앨범을 내줄 사람이 없다.(웃음)
정 : 실력도 좋고 메틀적인 성향도 가진 <김수철> 선배와 한번 해보고 싶다. 물론 그 선배로부턴 이전에 한번 "같이 하자"고 제의가 오긴 했는데 당시 스케줄 때문에 무산되었던 적이 있다. 그 외 <김광석> 씨나 <사랑과 평화>도 좋다.
이 : 우리나라에 외국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음악인들 많지 않은가? 오래 해서가 아니라 정말 잘해서 존경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정말 잘 하는데, 젊은 애들에게 치이는 선배들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주 : <김수철> 형은 정말 그 형만 할 수 있는 음악을 너무 잘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존경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조하문> 선배가 음악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아쉽다. 카리스마도 있고 계속 했다면 한국 음악계의 풍토를 바꿔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당>도 아쉽다.
이 :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지만 더 많이 활동하길 바라는 선배로 <김도균> 형이 있다. 도균형 같은 경우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기타리스트이다. 팬도 많고. 좀 더 많은 활동을 보고 싶다.
C : 1집에서는 정식으로 멤버에 키보드가 있었고, 음반 마다 키보드 세션이 항상 들어갔다. 기억에 남은 키보디스트라면?
이 : 사실 대부분의 곡은 기타 위주이다. 그러나 느린 곡에서는 키보드가 삽입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정 : 키보드가 필요한 것은 사실 좋은 곡을 무대에서 원래대로 리메이크 하고 싶을 때다. <퀸>의 ‘Bohemian Rhapsody'는 키보드가 없다면 제대로 연주할 수 없지 않은가?
주 : 라이브에서도 세션을 많이 했던 김병곤은 사실 블랙홀 멤버나 마찬가지다.
이 : 병곤이는 정말 헤비메탈을 하는 키보디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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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3집을 제외하면 블랙홀의 전 곡은 주상균씨의 작사, 작곡이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 : 상균형이 잘 하는데, 내가 귀찮게 왜 하는가? (웃음) 우리 뿐 아니라 주변의 음악인과 얘기해보면 장단점이 있다. 멤버들 여럿이 곡을 만들면 다양성이 생기지만, 한 사람이 작곡을 하면 컨셉을 갖게 된다. 분명한 곡의 줄기가 생겨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블랙홀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정 : 상균형이 곡을 모두 만듦으로서 집중력이 생긴다.
이 : 'Forever'가 다른 멤버의 곡이었다면 음반 전체의 컨셉이 무너졌을 수도 있다.
관욱 : 다른 멤버가 곡을 쓰면 틀림없이 ‘주상균씨가 다되었다’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올거다.
- 헤비 메틀 레이블 Metal K.
C : Metal K,에 대해 소개해달라.
주 : 2000년 경 EMI에 10년 전속을 끝냈다. 직배사의 좋은 점은 투명성과 서로에 대한 간섭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밴드의 홍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계약이 종료 되자 바로 나와서 (Metal K를) 만들었다. 한번 바꿔보고 싶었다. (메틀 전문 음반사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거 차리면서 빚 무지하게 졌다.(웃음)
이 : 여기 있는 것만 해도, 지금 에어컨 돌리는 것도 기적이다. (웃음)
주 : 처음에는 공연 수입만으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대형 공연장을 대관해서 제대로 된 라이브를 누구나 느껴보게 만들고 싶어서 무료로 진행했던 ‘문화혁명’ 전국 공연을 다니는 동안 운영이 많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 : 현재도 그렇지만 우리(블랙홀) 뿐만이 아니라 밴드들이 다 힘들었던 시기다.
C : Metal K. 아래에서 활동 중인 밴드와 음반 소개를 부탁한다.
주 : <뉴크(Newk)>와 <지킬(Jekyll)>이 있다. <뉴크>같은 경우는 경력이 10년임에도 불구하고 씬이 이렇다 보니까 여태껏 빛을 보지 못한 정통 헤비메틀 밴드인데 신보 [The Greed]가 두 번째 앨범이다.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팀인데 지방 밴드(대전)라는 핸디캡이 있다.
<지킬>은 헤비메틀은 아닌데, 멜로디가 좋은 밴드다. 블랙홀을 기준으로 본다면 블랙홀의 정서와 멜로디를 극대화한 밴드다. 물론 연주도 좋고 자신들만의 테크닉과 카리스마도 있다.
이 : 우리 나라는 너무 서울 집중이다. 서울에서만 음악 듣고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먼 나라 음악도 나가서 사오는데, 지방 밴드를 무시하는 게 참을 수 없다. 지역 내에서조차 서울 밴드가 와서 연주를 해야지 ‘음악하는 사람’ 취급하고, 지방 밴드는 ‘아마추어’ 취급을 한다. 이런 것은 바뀌어야 한다. <뉴크> 같은 경우 대형 음반사에서 음반을 발매하고 오히려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함께 고생하는 지방의 밴드들에게 얘기하기 힘들다고 말 할 정도다.
정 : 상균형이 애들 좋다고 프로듀싱 해준 것은 아니다. 실력있고, 음반 낼만 한 애들이 지방이라 묻혀있던 것 뿐이다. <지킬>도 가요적인 멜로디라고 할지 몰라도 연주력과 색깔이 있는 애들이다.
- 팬과 후배들에게
C : 후배 밴드들에 대한 블랙홀의 간단한 조언을 부탁한다.
주 : 용기 잃지말고 기왕에 칼을 뺐으면 끝장을 봐라. 그리고 정말로 좋아서 시작을 했으면 '정진'했으면 한다. 유행을 쫒지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만을 보고 나가야 한다.
정 : 같은 얘기다. 딴 생각 하지 말고 연습 열심히 했음 좋겠다.
이 : 프로의 길을 걸을 것이라면 빨리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기회를 놓쳐 나중에 후회해도 늦을 뿐이니까 태도를 분명히 했으면 한다. 빨리 부딪혀야 자기 한계도 깨닫고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관욱 : 솔직히 국내에 음악 하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구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음악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돈을 벌려면 아예 음악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혹자는 "그래도 먹고 살아야지" 하는데 우린 어디 안 먹고 사는가? (웃음)
C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이 : 신보 많이 사 주세요~
관욱 : 블랙홀의 진정한 팬은 창고닷컴을 이용해서 시디를 사는 분이라고 생각한다.(웃음)
C : 좋은 시간 함께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블랙홀 2집 녹음 시 드럼을 연주했던 미국인 Darrin Muir는 현재 미국서 Soundproof Production이라는 헤비메탈 전문 프로덕션을 운영 중이다. 블랙홀 신보의 미국 판매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한국 Sony 레코드사와 협의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인터뷰 당일에 블랙홀의 합주실을 찾아 2집 수록곡인 ‘바벨탑의 전설’을 협연하기도 했다. 다음은 대린과 가진 짧은 인터뷰이다.
C : 블랙홀의 신보에 대한 미국 음악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Darrin Muir(이하 D) : 주변의 많은 친구들에게 들려줬다. 대부분 훌륭한 음악이라고 한다.
C : 주상균씨에 의하면 'Forever'에 대해 <산타나> 음악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다는데? D : 그렇다. 다들 <산타나>가 연상된다고 했다. 좋은 음악이다.
C : 블랙홀의 음반 판매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대린이 유통하는 것인가? D : 그렇다. 내가 미국에서 블랙홀을 대리한다. CDbaby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음반 판매처이다. CDbaby에서 블랙홀의 음악을 듣고 판매를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판매처를 확장할 것이다. www.amazon.com도 현재 접촉 중이다. 그들도 수입(미국 입장에서) 음반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C : 당신의 프로덕션에 대해 소개해달라. D : 우리는 헤비메틀 음악만을 다룬다. <Blind Seven>(www.blindseven.com)과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틀 밴드 등이 소속되어 있다. |
첫댓글 '작은거인' 김수철 씨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네요.맞아요. 그 분의 음악은 대단함..보컬도 상당히 '메탈'스럽고.. '조하문'님이 음악을 그만둔 데 대해 아쉬워 하는 멘트도 보이구요..암튼 여러모로 읽어 볼 만한 글입니다.길지만..^^ㅋ
길어서 앞부분 읽다 스크롤~ 또로록~^^ 블랙홀 너무 멋져요.. 덕진님이 게스트로 나올때 따라가서 봤는데... 덕진님과 블랙홀 분들이 함께부르시던 하이웨이를 잊을수가 없네요...
맞아요.대한민국에서 20년 동안 헤비메틀을 쉼없이 하고 있는 그들..................에게 경의를..ㅎ^^
좋은자료 감사합니당...잘 읽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