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평상시부터 우리 빈씨성이 족보에 의하면 중국(남)송나라때 한림학사를 하던 빈우광이라는 사람이 고려 충숙왕때 귀화하면서 수레에 귀중한 책 13000권을 싣고와 고려의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대구수성에 시을 주어 그곳에 살아 왔고 현재도 대구 도동에 시조묘가 있어 그곳에서 1년에 1번씩 제사를 지낸다. 이런 연유로 중국의 뿌리를 한번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또 족보의 진실을 알아 보기 위해 전국의 빈씨들의 자료를 모으고 서로 조상들의 내력등을 알기 위해 빈씨 홈페이지를 약 4년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데 우연히 작년 8월인가 남쪽에서 젊은 학생이 중국의 빈씨홈페이지를 발견하였다고 하면소 사이트를 알려 온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 가 보았더니 (http://www.binjiaren.com) 과연 맞다. 처음에는 빈자 한자도 간체가 되어 알아 볼수 없어 긴가 민가 하였는데 중국어 책을 보니 맞다. 그래서 홈페이지운영자와 메신저를 하여 보니 운영자는 사천의 철강회사에 다니는 32세의 젊은 사람이다. 그래서 서로 메신저를 하며 대화를 주고 받고(영어 또는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소프트웨어 돌려 가며) 또 화상채팅도 하여 서로 얼굴도 알아 보고 하였다. 중국에서도 그 무렵부터 이 사람이 혼자 힘으로 사이트를 만들어 중국전역의 빈씨들과 또 대만까지 포함하여 옛날 조상들의 사료를 모으고 해석하고 현재의 중국의 여러지역의 빈씨들의 자룔르 모으고 하여 서로의 공동발전과 친목을 목적으로 활동중이다.
그러던중 중국측도 전국대회를 한번 열려는 계획이 있고 본인도 한번 중국을 방문하여야 겠다는 생각에 대만,한국을 포함한 1회 국제종친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는데 구정연휴때 할려고 하다가 이곳사람들의 일정이라든가 맞지가 않아 5월노동절을 전후하여 5/1일부터 3일까지 행사를 치르기로 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을 모은 결과 부산,삼척,대전,여주등 약 10명과 마지막에 여자로서는 와이프 1명과 여행사 가이드 여자 1명 합계 12명이 방문하게 되었다. 준비기간중에 중국측에서는 토청하는것이니까 비행기만 끊어 오면 자기들이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하겠다는 것을 우리는 처음부터 신세를 질수가 없다고 하여 모두 우리비용으로 하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1일째 2004년 4월29일 목요일 인천공항에 10시까지 모여 인원점검하여 보니 처음 만나는 분이 2분 있다. 4박5일 1인당 비용은 75만원이다. 임시 회장으로 인천동산고등학교장을 역임한 빈무식씨를 회장으로 하고 출발. 아시아나로 4시간의 비행이다. 계림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에서 마중나오기로 하였던 계림에 사는 빈씨들은 나오지 않고 가이더가 관광버스(12-3인승, 끝까지 이것으로 움직였다)를 가지고 나왔다 . 이곳에서 도착사진을 찍고 버스에 짐을 다 싣고 바로 시내 관광길에 나섰다. 약 100미터 정도의 산에 올라 가니 계림시내가 다 보인다. 이곳에서 관광후 6시경에 계림빈씨들과 저녁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여 호텔식당에 들어 섰더니 약 10여명 정도의 30-40대 빈씨들이 들어 선다. 그중 사천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빈진송과는 이미 낮이 익은터라 금방 알아 볼수 잇었고 이 친구는 사천에서 이곳 계림까지 부인과 애를 동반하고 비디오카메라까지 준비하여 행사를 찍기 위해 왔다. 이번 대회를 모두 기획하고 주관한 인물이다. 저녁 먹으면서 각자의 소개를 하는데 이곳에서 크게 부동산회사를 운영하는 반은송(이번에 중국측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과 계림시의 공무원,세관원을 비롯하여 약 10여명이 반갑게 맞이 해준다. 같은 성으로서 같은 일족이라고 또 멀리서 왔으니 너무나 반갑게 맞이 해준다. 식사는 삼겹살종류이고 이곳에서 매우 많은 술이 오고 가고 약 2시간정도 가이더가 통역을 해 가면서 환영사, 답사등 너무나 생각지도 않을 정도롤 호의를 베푼다. 또 식사후 식사비용도 자기들이 내려고 하여 우리는 우리비용으로 모두 여행경비안에 들어 있어 어떻게 하는냐로 서로 이야기하고 여행사 직원하고 타협하여 해어졌다. 호텔에 와서는 1-2명을 빼고는 안마를 받으러 가이더와 함께 갔는데 1인당 150위엔(22500원)인데 약 1시간정도 전문 안마센터에 가 젊은 10대의 중국애들이 안마를 해준다. 돌아온후 바로 잤다.
2째날은 오전에 계림관광을 하고 오후에 계림에서 400키로 남쪽으로 고속도로로 가야 한다. 시내를 통과하여 관음동굴에 갔다. 이곳은 1995년에 개발된 동굴인데 동굴안에 보트로 저어 가고 또 동굴안에 엘리베이터가 약 50미터의 있을정도로 크고 쪼 수억년된 종유석이 있고 또 레이건이 대통령때 이곳에 와서 세미나를 할 정도로 아름답고 유명한 동굴이다. 관광후 이강의 유람선을 타고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후 계림으로 돌아와 중식을 하러 식당에 왔다. 이곳에서 상해에서 한국회사 지사장을 하는 빈철성이가 비행기로 날아 왔다. 이 친구는 70년생으로 대구가 고향이고 동국대 중문학과 나오고 중국에 산지가 어래 되었고 부인도 중국한족이다. 빈철성아바님은 대구사람으로 만나 본적이 있고 이번에 오기전에 중구구과 통화를 하는등 준비에 많은 도움을 준 사라밍고 이번에도 행사에 통역을 하게 되어 가이더와 빈철성이 있어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기로 하였다. 이곳에서 계림사람과 사천에서 온 사람 약 8명은 빈은송회사승요차 3대로 출발하고 우리는 버스로 드디어 대회장소인 옥림박백현으로 출발. 3시경에 출발하는데 가도가도 띁이 없는 넓은 초원이다. 간간이 산이 있으나 높지는 않고 차는 시속 80키로 이상을 밟지 않는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한번 들르고 계속 가는데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잘 딱아 놓았다. 4차선인데 갓길도 넓어 6차선이나 마찬가지이다. 차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고속도르는 잘 딱아 놓았고 내 생각에는 만약 월남등과 전쟁이 일어나면 이곳으로 많은 병력과 물자가 이동될 것 같다. 약 7시간을 달려 옥림시내로 가는데 이곳도 생각보다 크다. 밤 10시경인데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한다. 시내로 들어 가ㅣ는데 젊은 사람들이 뒤에는 여자를 태우고 월남처름 시네로 많이 들어오고 시내에도 북적북적하고 호텔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린다. 내 생각에는 이곳은 월남과 가까워 월남 문화가 일찍부터 많이 들어 와 있고 (그때는 월남이 중국보다 훨씬 잘 살았고 또 하노이등이 가깝다) 또 날씨도 거의 중국최남단이라 무척 더워 낮에는 활동을 별로 안 하고 밤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선선한 시내로 놀러오는 것 같았다). 호텔에 들어 서니 이곳에 사는 빈씨들이 20-30명이 도열하여 우리를 환영해 준다. 이 사람들이 이 지방에서 내일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이다. 소개를 하는데 제일 높은 사람이 옥림시 박백현의 부시장이 있고 또 농축산 국장이 있다.그래서 호텔방을 정한후 내일 행사준비를 위해 서로 이름을 기입하고 헤어 졌다. 사람고속도로 내려 갈때도 중간에 식사를 계림사람들이 낸다고 하여 5시경에 식사를 하였는데 그래서 호텔에 도착하여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몇몇은 시내 구경가고 하여 이날을 마감.
3일째 아침에 일어 나 호텔에서 보니 저 밑에 중심광장에는 여자들이 에어로빅을 열심히 하고 있고 중국도 많이 발전한 것 같았다. 이곳 옥림시는 인구 약 100만명은 되는 시 같다. 식사후 우리는 본격 대회장소인 박백현까지 1시간 정도 버스로 다가가니 박백현이 나오는데 현은 시골이라 거리도 지저분하고 우리나라 읍간은 분위기인데 여기도 사람은 많다. 날씨는 월남처름 푹푹찌고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이곳이 전형적인 중국처름 너저분하고 바글바글하다. 한참 시내를 들어 서니 호텔이라고 하여 대회장소에 올라 갔다. 이곳에 가니 액 60-70명정도의 빈씨들이 행사장에 있다. 이곳 사람들과 주변 광서성 성도인 난닝(남영) 에서 온 사람들 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흐 본격적인 대회를 시작한다. 대회장인 이곳 국장의 참석자 소개가 있고 상애에서 온 빈진송이 통역을 하고 우리측도 모두 소개를 하고 서로 축사,답사등을 하고 패난트를 교환, 선물교환,기면촬영후 만찬을 하고 이윽고 7대의 차량으로 집성촌과 종사(위패)를 모셔 놓은 곳으로 이동하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촌으로 간다. 시내를 벗어나 비포장 길을 한참가니 마을들이 나타 난다. 멀리서 보니 폭죽을 터뜨리고 사자춤을 추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와 우리 일행을 환영한다. 우리는 전혀 예상못했던 일이라 무척 신기해 하고 또 이 사람들이 우리를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 주니 정말 뜻밖이었다. 아마 이곳 부시장이 준비를 하여 그렇게 하는지 모르나 물론 우리만 온 것은 아니고 계림에서도 빈씨들이 왔으니 같이 환영하고 또 우리생각에는 이렇게 오지까지 외부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매우 드물지 않나 생각되었다. 그래서 열렬히 환영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롷게 마을을 3-4개 지나가는데 그럴때마다 동네에서 나와 폭죽과 사자춤으로 환영을 한다. 이윽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20여채정도 사는 마을이 종점. 내리니 이곳에도 폭죽과 사자춤으로 한바탕 혼을 빼 놓는다. 수시병의 사람들이 구경을 나오는데 대부분이 빈씨들이라 하는데 인종이 워낙 남쪽이라 월남이나 캄보디아와 비슷한 사람도 많이 보인다. 내려 빈씨종사에 들어서니 가장 오래된 것이 약 700년전부터 모셔 놓은 위패가 수십개가 모셔 져 있다. 이곳에서 절을 한후 다시 그곳 마을을 빠져 나온후 부시장생가에 들러 예를 한후 다시 박백현으로 들어 오면서 2군데 빈씨가 운영하는 목재공장과 제지공장을 견학하였다. 목재공장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고 평균 임금은 10-30만원정도라 한다. 이곳은 이웃 광주에서 이곳에서 나무로 만든 칼집(개당 약 700월)을 가지고 가 칼을 꽂아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하는데 년매출은 수십억이 된다고 한다. 제지공장은 시설도 오래 되고 낡았는데 터는 엄청 넓다. 나중에 땅값이 오르면 돈이 되겠다 생각이 되었다. 아마 이것도 국유공장을 불하받아 하는것이라 생각되었다. 또 시네에 와서는 젊은 빈씨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마우 크고 백화점 수준이다. 아마 이곳에서 잘 사는 사람들 위주로 보여 주눈데 물건값을 보니 싸지 않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싼 것 같다. 이런곳에서는 일반 사람들은 못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모든 공식행사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근처 호텔식당에서 실시. 호텔식당이라 해도 현이기 때문에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다. 와이프가 컨디션이 안 좋아 저녁식사도 못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하여 바같에서 대기하다가 중국측은 내일 다시 이곳에서 회의를 하자고 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일정이 촉박하고 피곤하여 내일은 계림으로 돌아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나중에 들어 보니 다음닐은 회의를 하여 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하는등 자기들끼리 미팅을 하였다고 한다). 또 1시간정도의 버스로 옥림시로 들어 왔다. 오기전에 버스에 여러가지 선물을 실어 주고 또 조그만한 빨간 봉투를 하나씩 주길래 호텔에서 열어보니 38위엔이 들어 있다. 나중에 가이더에게 물어 보니 8자가 3개라 8은 발전(돈을 많이 번다)을 의미하고 발자가 3개라 돈 많이 벌고 발전하라는 그런 의미라고 한다. 와이프는 가지고간 가스활명수를 먹고는 좀 괞찬다. 아마 체했나 보다. 돌아오는길에 버스 운전수가 옥림시내로 가는길을 잘못 들러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나도 가만 보니까 운전수가 계림사람이라 이곳 지리를 잘 몰라 고속도로를 접어 들었는데 돌아올려고 하면 몇십기코를 가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는데 약 2키로 정도 간후 잘못되었는 것을 알고 멀리서 차가 안 노는 것을 보아 차를 유턴시켰다. 그래서 달려 가는데 밤중에 4차선 고속도로를 역주행을 한다. 간간히 버스나 트럭이 오는데 모두 잘 비켜준다. 우리는 약 2키로 달리는데 불안하여 가는데 운전수는 젊은 사람이 태연하다. 이윽고 고속도로를 벗어나서는 안심이다.
4일째 이날은 옥림시를 관광할려다가 계림까지 7-8시간 걸리니 10시경에 계림을 향해 출발하였다. 갈때는 올때오하 달리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가이더한테 부탁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곳을 보고싶다고 하니 중간쯤에서 국도로 빠져 양삭으로 향한다. 양삭은 계림의 남쪽1시간정도에 있는 관광도시인데 계림의 유명한 관광지다. 계림근처로 오니 계림 특유의 산세가 나온다. 이상한것이 산들이 모두 바위산인데 여기에 나무글이 덮혀 있고 이러한 볼록볼록한 산이 높이 100-150미터 정도의 산이 10만여 개 계림주위에 있다고 한다. 계림지형이 지리시간에 배운 피요르드식이지 아마. 엤날에는 바다밑이었는데 융기하여 육지가 된 곳이다. 양삭에서 내려 관광을 하는데 여기에는 세계각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다.호주,미국등, 또 일본등 엄청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린다. 일본말로 하니 어느정도 통한다. 이곳에서 각자 선물도 사고 어두워 진후 3성호텔로 가는데 시내는 방이 없고 시내에서 약 20-30분 떨어진 한적한곳에 콘도와 같은 호텔이 나온다. 이곳은 조용하고 새내 호텔보다 좋다. 민속공연을 관람후 일부는 양삭으로 마사지 받으로 가고 일부는 그대로 취침.
이제 마지막날이다. 호텔에서 식사후 계림으로 쭉 들어 오면서 계림 산수를 구경하고 계림시에서 보석상에 가이더가 안내해 주어 보석구경도 하고 일부는 2-3만원짜리 선물도 구입하고 마지막은 여행객 전용슈퍼마켓에 데려 주는데 이곳에는 중국과자,식료품,술,공예품등 없는 것이 없다. 이곳에서 선물등을 모두 다 사고 차를 타고 이윽고 계림 빈씨들이 점심을 낸다고 하여 간곳이 이강옆에 있는 고급 중국식당이다. 이곳에서 정식광동요리를 먹었는데 우리일행과 첫날 만난 계림빈씨들 약 20여명이 2테이블에 앉아 고급요리와 또 중국 산수화 선물까지 회장인 빈은신이 준비하여 우리를 감동케 하였다. 이곳 음식값도 가이더가 그러는데 약 80만원정도 나와 엄창나게 비싸다고 한다. 가만 보니 고급 마오따이 술에 자라고기와 도마뱀꼬리인가가 나오고 동충화초 뽁은것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드디어 식사가 끝나고 폭우가 솥아지는길을 공항으로 오는 도중에 비가 먿는다. 4시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모두 다 흐뭇한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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