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일흔 나이를 바라보는 중견 탤런트 김지영. 작년 <장밋빛 인생>에서 주연배우들의 눈물 연기가 시청자들을 울릴 때 ‘미스 봉’ 역을 맡은 그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웃음을 주며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잡아주었다.
18세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 ‘연극계 신동’이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4․19혁명을 거치며 연극계가 활동의 제약을 받게 돼 1960년대부터는 영화에만 출연했다. 그때는 기성복이 없어서 여배우는 단골 양장점을 정해 놓고 옷을 맞춰 입어야 했다. 그런데 김지영은 남편의 병수발을 하느라 화려한 옷을 맞춰 입을 돈이 없어서 좋은 배역이 들어와도 거절해야 했다. 그래서 늘 단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역할이라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50년이 넘게 드라마와 영화의 배역을 맡으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의 사투리 연기는 일품이다.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팔도 사투리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다.
드라마를 하다 보면 지방 촬영이 많았다. 그는 일이 끝나면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혼자 남았다. 촬영지 근처의 농가에 가서 여행 온 것처럼 해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집 할머니가 일찍 일을 나가면 그도 슬그머니 따라나섰다. 할머니 농사일을 거들면서 사투리를 배우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사투리도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농사일을 거들 만한 지역이 아니면 시장을 찾아가서 그 지역 사투리를 배웠다. 그렇게 지방 촬영이 있을 때마다 며칠씩 그곳 사람들과 섞여 말을 배우다 보니 사투리를 흉내 내는 다른 배우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된장 맛을 내라면 된장이 되고, 고추장 맛을 내라면 고추장이 되겠다”는 그의 말처럼 최선을 다할 때 최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