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와 우리의 서화환경에 대한 小考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졸업하여 사회에 발을 디딘지 올해로 딱 11년째이다.
전공을 했다는 자존심으로 의욕과 열정만 앞섰던 그때를 돌아보면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특히 경험부족에서 오는 쓰디쓴 패배도 맛보았으며, 반면 끈질긴 서예공부에서 오는 희열과 더불어 복에 겨운 상복으로 우쭐했던 적도 있었다. 서예학원 수강생들의 숫자변화에 민감해하며 일희일비했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그리 순탄한 길을 걸어 온것 만은 같진 않다. 그러나, 지금 현시점에서 서예에 대한 나의 인식과 안목은 서화용품전문점을 시작하기 전까지와는 다르게, 서화문화 제반에 걸친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우선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서화재료를 무심코 사용하던 수동적 태도에서, 각각 재료의 생성과정과 특성을 명확히 알아가며 적재적소에 맞게 재료를 골라 쓸 수 능동적인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재료적인 측면에선 붓과 종이는 단순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로 말미암아 서체 및 자체의 다양한 표현과 변화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송연묵松烟墨 이후 유연묵油烟墨의 고운 입자로의 발전은 미점米點 산수처럼 안개 낀 아련한 동양적 산수로의 표현이 가능해 졌으며, 명대부터 화유석花乳石의 석인재가 많이 채굴되면서 전각이 문인들에 의해 꽃피기 시작한 것 등등은 재료와 서화의 상호 불가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외에 필자는 그간 재료학에 대한 수강료를 혹독히 치르면서, 몰랐던 혹은 궁금했던 재료학적 기초지식을 알아가는 기쁨은 마치 서예운필에서 오는 오묘하고 깊은 선질을 순간 깨우쳐 읽어내던 느낌과도 같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 법첩과 여러 작가들의 작품집, 감히 비싸서 예전엔 직접 써보지도 못한 명연名硯, 명묵名墨, 명석인재名石印材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용품들에 둘러싸여 가슴 뿌듯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문득 적막한 주위를 둘러본 순간! 지금껏 우린 무엇을 했냐는 안타까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중국의 연습지, 석인재, 화첩, 법첩에게 점점 우리의 자리를 다 내놓고, 서화용 고급 작품지는 대만에 죄다 뺏겨버렸으며, 게다가 최고급 먹과 서적들은 일본이 휩쓸어 간지 이미 오래다.
한국 서화용품은 기껏 해봤자 싸구려 카본블랙 연습먹과 먹물, 20여년이 넘도록 변함없는 몇 권의 법첩과 번역이론서가 필방 한쪽 귀퉁이에서 숨어있을 뿐이다.
지금 주로 사용되는 화선지에 대해, 제지업자들은 중국과 대만지를 호분胡粉이 발린 꽃종이라 욕설만하고 질적 발전을 유도하는 데는 무념해 온 것이 사실이며, 천연 닥종이만 고집하다가 겨우 한지 공예로만 어렵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작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본 전시에 일괄적으로 선보인 발묵이 다소 부족한 서화용 한지는 마치 버스가 떠난 뒤에 한참동안 손을 흔드는 형국을 자초했으나, 한줄기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반가움에 희망을 엿볼 수가 있었다.
중국의 석인재와 연석硯石이 한국서화용품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현상에 대해, 중국 땅덩어리 자체가 워낙 크고 넓다보니 좋은 재료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중국의 각종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서화관련 서적들(자전에서부터 작품집, 이론서, 법첩, 화첩 등등)이 우리 서예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통탄의 가슴 앎이를 해본다.
여기에서는 국내 서예출판사들이 이뤄온 그동안의 저력(?)은 전혀 통하지가 못하고 있다.
서법을 집대성한 순화각첩의 가장 큰 폐단인 번각에 의한 진적 훼손은 첩학의 쇠퇴와 비학의 융성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실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법첩 글씨는 여의봉 다루듯 축소, 확대하면서 임의로 수정한 점과 획들로 처리하는 등등의 문제들은 양질의 고탁본이 책(?)으로 나오면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현실로 돼버렸다.
더욱이 도판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번역이론서들은 아직도 세로읽기의 혼돈 속에, 한자의 상세한 한글풀이도 없는 실정이다.
우리 서화계 출판사들은 우리 서화인들에 대해 ‘책은 사보지 않는 무식꾼’이란 오해 속에 스스로 가둬두고, 서, 화단의 보다 나은 미래의 자양분이 될 올바른 학문적 신간서적하나 만드는데 인색했다.
내용에 반해 가장 즐겨보는 서화 잡지만 보아도 그렇다.
애독자들의 구독 수익료는 서단외적인 다른 곳에 다 쏟아 붓고, 광고 및 도록제작과 자사주최 공모전에 온통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절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잡지에서 보고 읽었던 내용을 한 번 더 찾아볼라치면 몇 시간을 뒤져야 겨우 찾을 수 있는 편집의 무체계는 일본의 잡지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이처럼 우리의 서화문화 환경은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늘 변함없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서, 화단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정확한 학문적 바탕위에 장인정신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서화인들이 건전한 분위기로 서화환경을 개선시킨다면, 올바른 사유체계의 건강한 예술에 비례되는 개인작가와 단체로 거듭해서 배출될 것이다.
열악한 서화환경 속에서 항상 배고프다고 아우성만 했고, 서화집단보다 더 춥고 배고픈 음지의 불우이웃들을 안아 줄 수 있는 기금마련 전시나 강좌도 한번 기획된 적이 없었으니, 서화계의 불만과 이기적 요구사항은 항상 투정 섞인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서예 독립교과목, 서화단체 단일화, 서화 사교육 문제 등도 서화환경 안으로의 뼈를 깎는 우리의 자성 없이는, 정부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는 문제임을 빨리 인식 하는데서부터 서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롭게 시작될 것을 정해년 새해 떠오를 새날부터 기대해본다.
상해필묵 대표 연동 김태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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