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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럴 어드벤처 -유아영-
글쓴이 위한
최근 자주 오는 듯하다. 카페 템플리시아드.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주변에서도 의외로 자신을 신경쓰지 않는다. 이곳 점장이나 직원들은 아영 자신을 알아보는 듯 하지만 최근 사건 때문에 자신을 신경 써 주는 것인지 다른 손님과 똑같이 대해주고 있다. 특히 아르바이트생이라면 우리 카페에 유아영 온다- 라며 자랑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종류의 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점장이 교육을 잘 시키는 건지, 얘들 개념이 잘 잡힌 건지.
아영은 그런 종류의 생각을 떠올리다 피식 웃었다.
"오늘은 커피가 아니시네요."
"네."
직원이 아영에게 카라멜 마키아또와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넸다. 사실 빵보다는 밥을 좋아하는 아영이었지만 요즘처럼 고민이 많을 때는 단 걸 먹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단 게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다던가? 가물가물하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직원은 웃으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쫓다가 바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한 여고생과 눈이 마주쳤다.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다. 그녀는 아영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남성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규환이었다.
'규환씨 동생인가?'
소개시켜줘도 괜찮은데. 아영이 기분 나쁠까봐 소개를 시켜주지 않는 것일까? 왠지 좀 서운한 기분이었다. 남들이 자신을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데.
'이건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것 같지만 말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투명한 시계 안으로 정밀한 무브먼트가 움직이고 있는 시계는 오전 11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그때, 카페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캐주얼 정장을 입은 호남형의 한 사내가 서류가방을 들고 카페로 들어섰다. 그는 카페 안을 둘러보다 아영을 발견하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제가 좀 늦었죠?"
"네. 조금."
남자의 얼굴에 흐르는 어색한 웃음. 이런 게 문제로구나. 아영은 표정이 바뀌는 순간 깨달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뱉어진 말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별 상관 안하기로 했다.
"얼굴이 좋아보이시네요."
"나쁘길 원하셨나요?"
역시 굳어버리는 얼굴. 아영은 분명 나름 위트있게 던진 말이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아영의 이미지에서 오는 그 미묘한 분위기와 최근의 사건 때문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예?"
아차. 또 실수했구나. 아영은 영 말이 안풀리네-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남자는 아영의 앞에 앉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소개드리겠습니다. 전 가인 기획의 천상영 대표입니다."
"유아영입니다."
대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젊은 외모였지만 연예계 쪽에는 젊은 나이에 데뷔 혹은 사업에 뛰어드는 인재가 많고, 또한 젊은 세대가 그 주축을 이루는 비율이 다른 어떤 세계보다도 높은 곳이다. 20대의 연예기획사 대표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우리 가인 기획의 뜻은 아름가운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을 동시에 이르는……."
"아, 그 부분에 관해서는 됐어요."
젊은 사람이 고리타분하긴. 아영은 터져나오려는 상영의 발언을 제지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신규 기획사라 그런가,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않은 티가 나는 듯도 싶었다.
"전에는 무슨 일 하셨어요?"
아영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상영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 후 군대를 다녀온 후에 자퇴했습니다. 그리고는 펀드 매니저로 2년 정도 일했어요. 수입은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의외였다. 생긴 건 개구지게 생겨서 공부랑은 거리가 좀 있어보였는데 자퇴했다고 해도 서울대라면 엘리트 아닌가? 사실 아영은 지방 전문대 출신이라 이런 엘리트들에게는 좀 약한 면이 있었다.
"아, 그러시구나……. 근데 왜 기획사를?"
"사실은 제가… 아니, 우리가 가수 데뷔하려구요."
말문이 막힌다. 마치 붕어처럼 입만 뻥긋뻥긋하는 아영을 외면한 채 상영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 회사 저 혼자 시작한 게 아니에요. 제 친구들이랑 함께 기획사를 차렸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몰려다니던 녀석들이었는데 밴드 동아리를 했어요. 라이트닝 썬더라고."
아, 거 참 죽이는 밴드네요. 아영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때부터 녀석들이랑 우리들은 꼭 커서 제대로 데뷔해보자, 사나이들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건 해보고 살아야지- 라며 서로 다짐하면서 꿈을 키워왔어요. 근데 사실 그런 애들끼리 모여서 데뷔한다는 거 쉽지 않잖아요. 앨범 내는 게 공짜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우리들끼리만 공유하는 앨범을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곡을 못쓰면 잘 쓸 수 있는 작곡가를 섭외해서 좋은 곡을 우리가 연주하고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들만 만족하는 앨범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무대에서 자신의 노래에 환호하는 팬들과 함께 노래하고 싶으리라.
"그래서 제대로 된 밴드를 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다 보니 졸업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고, 돈을 모으기 시작하려면 너무 시기가 늦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무작정 자퇴하고 아는 선배 연줄을 빌려 펀드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이래뵈도 꽤 괜찮은 펀드 매니저였어요. 이런 저런 큰 고객님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돈도 제법 모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돈을 모았구요."
"그래서 무작정 기획사를 차리고 법인을 냈다- 이거군요?"
"하하. 전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고객님 한 분께서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지요. 아영씨께서 우리 기획사와 계약해주시면 우리 기획사의 첫 번째 소속 연예인이 되시는 겁니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을 텐데, 열정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 열정을 현실로 이뤄낸 추진력 역시 만만치 않게 대단한 남자였다. 같이 돈을 모았다던 상영의 친구들 얼굴도 궁금했고 이 남자에게도 나름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그냥 예의상 던져 본 질문이었는데……."
비꼬는 말투로 들렸을까? 상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어대더니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일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아영은 또 왜 저러나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말하는 방법을 고쳐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
"…그래서 우리 쪽에서 제시할 수 있는 계약금은 이 정도입니다."
"신생 기획사에서 좀 무리하시는 거 아닌가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에서 받던 액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사실 아영씨에게는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닐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적을 거에요. 다른 기획사에서 접촉해온다면 많게는 저희 쪽에서 제시하는 액수의 세 배, 아니 다섯 배도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그 말에 아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영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와의 계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셨나요?"
"아, 아뇨. 그런 건……."
그녀의 말에 상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사실 우리로서는 다른 기획사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 드릴 수 있을만한 여건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아직 소속 연예인이 없는 기획사가 수입을 창출해내기란 무리니까요. 다만 우리가 다른 기획사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계약 부분입니다. 최대한 아영씨의 편의를 봐드린다고 약속드리죠."
다른 말보다 그 말이 아영의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기획사에서도 아영의 편의를 봐 줄 것이다. 이미 인지도가 오를 대로 오른 연예인의 경우 기획사와의 계약에 있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연예인으로 인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게 확실히 보장되는 만큼 그 연예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오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스타급 연예인은 계약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아영은 그걸 잘 몰랐다. 상영이 굳이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기도 했지만 만약 설명했더라도 아영은 이 남자가 싫지 않았다. 이 남자가 말하는 말에서 느껴지는 믿음과 진실됨이 느껴진다. 그녀의 절대청각이 보증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ECOS의 다른 멤버들도 함께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녀의 말에 상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그 사건 이후 에코스의 이미지는 꽤 많이 추락했다. 30만장을 넘어 40만장을 향해 달려가던 2집 앨범의 판매량이 제자리걸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도 에코스를 비난하는 의견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녀의 강간사주를 의뢰한 것은 전 매니저였던 유형택이었지만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라는 기자들의 추측성 루머 기사들로 에코스 내의 불화, 유아영을 배척하는 에코스 등의 특집기사와 프로그램이 편성되면서 또 다시 수많은 루머를 낳았다. 아영은 졸지에 홀로 앨범을 만들며 소속사에 곡을 바치며 노예계약에 이끌려 다니던 불쌍한 여인이 되었고 다른 멤버들은 매니저와 작당해 그녀를 괴롭히던 못된 인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노예계약과 비슷한 생활을 했던 건 사실이지만 멤버들과의 불화는 너무 과장된 면이 있었다. 그래도 나름 정이 든 멤버들인데 이대로 추락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지가 다운된 연예인들을 영입하는 건 한 기획사의 대표이사로서는 고민이 가는 문제일 것이다. 이걸로 인한 기획사의 이미지 역시 결코 좋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 하지만…….
"좋습니다. 최대한 편의를 봐드린다고 약속드렸는데 이런 제의 하나 받아들이지 못해서는 신뢰가 쌓일 수 없겠지요."
상영은 화끈하게 승낙해버렸다. 그로서는 기획사를 차린 이유 중에 5할 이상이 본인이 가수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곡 메이킹 능력은 모두가 다 인정하는 사실. 그런 그녀를 자신의 울타리 안에 두고 있다면 누구보다 좋은 노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로서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아영은 웃으며 상영의 손을 잡았다. 그녀 본인에게는 가수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지만 그렇다고 가수란 직업이 싫다거나 딱히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아니, 곡을 만들고 노래를 하는 작업은 좋아하는 것 이상이라고 할 만 했다. 가수란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건 유형택의 영향이 컸는데 그가 사라지고 난 후 그 거부감이 없어지자 가수란 직업이 다시 좋아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좋은 파트너로서 힘내죠."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이사님."
"그냥 오빠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아영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에 상영은 다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크르르르……."
배가 고프다. 레이언에게 당한 배의 상처도 모두 회복한 캐니비어는 광대가 알려준 먹이를 찾아 서울을 헤매고 있었다. 일반 고기들과는 다른 냄새가 난다. 굉장히 특이한 냄새다. 킁킁거리며 허공에다 냄새를 맡아보는 캐니비어.
그 순간 부시럭거리며 골목 구석에 쳐박혀 있던 쓰레기 더미에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시끄럽게. 응?"
홈리스. 밤이라고는 열대야가 가득한 여름밤. 해도 긴팔에 긴바지, 거기다가 등산용 조끼까지 입고서 머리에는 역시 등산용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옷과 피부가 매우 더러워 노숙자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직 그늘에 가려 정확한 캐니비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노숙자는 캐니비어의 그림자를 향해 눈을 찌푸렸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려는 듯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그 순간 마치 카멜레온이 파리를 잡듯 캐니비어의 긴 손이 순식간에 그 노숙자를 낚아챘다.
"으아아아악!"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노숙자의 비명과 뼈와 살이 부서지는 소리. 노숙자들이 머무는 거주지였는지 소란이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맛없어.'
괴물이 노숙자를 먹고 느낀 감정이다. 그는 입에 머금었던 노숙자의 살을 퉤- 하고 뱉어내고는 어둠에서 몸을 드러냈다. 어둠을 주목하고 있던 노숙자들 사이로 붉은 피를 뒤집어 쓴 녹색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이런 불량식품들은 관심 없어! 괴물의 시선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는다. 둘러보던 괴물의 눈에 한 꽁지머리를 한 메부리코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
저 녀석이다! 괴물이 환희의 웃음을 터트린다. 순식간에 공포로 물드는 남자. 캐니비어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인간들을 단숨에 부셔놓으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괴물의 손이 남자를 직격하려는 순간, 괴물의 팔이 허공에서 멈췄다. 밤의 어둠에서 은은하게 빛을 뿜는 한 줄기의 실선. 그 끝을 잡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
캐니비어의 표정에 분노가 깃든다. 자신에게 치욕적인 상처를 입힌 상대! 저 얼굴, 저 눈빛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검은 제복, 검은 베레모의 블러디스트 레이언이 놀랍게도 마치 줄타기를 하듯 와이어를 타고 캐니비어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머신건의 파괴력으로 캐니비어를 상대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의 손에는 45구경의 대구경 권총, 은색의 데저트 이글(Desert Eagle)이 들려있었다. 그 차가운 은색의 총구가 캐니비어를 향한다.
"도망쳐!"
괴물의 습격을 받고 있던 남자에게 외치고는 레이언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쾅! 하고 울리는 폭음! 그 순간 캐니비어는 와이어에 잡혀있던 팔을 크게 흔들었고, 그 때문에 조준이 흐트러진 탓인지 총탄의 캐니비어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쳇!"
와이어 위에서 중심을 잃어버린 레이언이 땅에 착지하려는 순간 어느새 캐니비어가 다가와 있었다.
'빨라!'
전과 다른 반응속도다. 양팔을 교차시켜 머리를 방어한다. 캐니비어는 레이언의 예상대로 머리를 향해 킥을 날렸다. 양팔 위로 마치 덤프트럭에 부딪힌 것 같은 충격이 레이언의 전신을 엄습했다.
"■■■■■■!!!"
캐니비어는 곧장 레이언에게로 달려들려 하다가 몸이 굳었는지 움직이지 않은 채 자신과 레이언의 싸움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맛있는 먹이다. 저 녀석을 먹으면 더 강해지겠지? 캐니비어는 입맛을 다셨다.
"큭, 도망쳐! 뭐하는 거야?!"
레이언의 외침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캐니비어는 저 녀석이 훼방놓기 전에 남자를 먹어치울 생각으로 단숨에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남자의 몸이 빛으로 휩싸였다.
"큭!"
그 빛에 잠시 눈을 가리는 캐니비어. 눈을 떴을 땐 어느새 남자는 사라져 있었다.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이미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아직 미처 대피하지 못한 노숙자들의 일부와 먼지를 뒤집어 쓴 검은 제복을 털면서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블러디스트 레이언 뿐. 베레모는 전투 중 떨어뜨렸는지 하얀 백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사라진 의문의 남자는 냄새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능력자가 흔한가? 그 남자도 그렇고. 네 놈도 그렇고. 몇 놈을 먹은거지? 다시 능력이 상승했군."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게 짜증난다는 듯 콧김을 뿜던 캐니비어는 레이언의 말에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 놈이라도 먹어야겠다, 라는 눈빛인 듯 했다. 레이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캐니비어를 바라보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도발했다.
"덤벼. 이미테이션 헐크."
"■■■!!!"
거대한 그림자가 덥쳐 온다. 하지만 레이언은 더 빨랐다. 번개같은 속도로 캐니비어의 관자놀이를 향해 돌려차기를 넣은 레이언은 체중에서 오는 반동으로 뒤로 몸을 퉁기며 데저트 이글을 캐니비어의 머리를 향해 난사했다. 하지만 어느새 캐니비어의 얼굴을 가린 손바닥을 통과하지 못하는 탄환. 레이언은 짧은 한탄 소리와 함께 왼손으로는 컴뱃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의 얼굴을 스치는 캐니비어의 주먹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은선. 단숨에 캐니비어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낸 레이언은 컴뱃 나이프를 쥔 주먹으로 캐니비어의 턱을 후려쳤다. 아무리 체중이 나가고 체력이 강하다 해도 턱을 얻어맞으면 순간 경직되기 마련이다.
'핸드가드가 부착되어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럼 턱을 부셔놓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레이언은 이번에는 캐니비어의 왼쪽 가슴에 컴뱃 나이프를 꽂았다.
"심장을 박살내주마."
디신티그레잇(disintegrate). 레이언이 가진 특수능력이 발동되려 한다. 웅- 하는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캐니비어의 얼굴에 공포가 떠오랐다.
"■■■■■■!!!"
괴물의 외침에 막강한 파장이 일었다. 발동되려던 능력이 정지되고 괴물의 심장에 꽂혀있던 컴뱃 나이프가 튕겨져 나가 버렸다.
"말도 안 돼!"
그 말에 답이라도 하듯 캐니비어의 춉이 레이언의 상체를 때렸다. 우두둑- 하는 소리가 끔찍할 정도로 선명하게 레이언의 귀에 전달된다. 왼팔, 사용 불능이다.
쿵! 벽을 뚫고 쳐박혀 버리는 레이언. 의식은 아직 선명하지만 몸은 아직 통제가 되지 않고 있었다. 움직여라!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캐니비어가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상황에 극적으로 레이언의 몸이 통제를 찾았다. 그를 짓밟으려는 캐니비어를 간신히 피하고서 동시에 발사된 데저트 이글이 캐니비어의 오른쪽 눈을 관통했다.
"■■■■■!!!"
빌어먹을! 이게 몇 번째인가! 캐니비어는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의 분노를 받는 레이언은 어느새 오른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놓고서 오른손으로 컴뱃 나이프를 쥐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캐니비어의 뒤로 돌아가 그의 왼쪽 아킬레스 건을 끊어버렸다. 척추를 관통하는 격통이 캐니비어를 흔들었다. 레이언은 휘청이며 무너지는 캐니비어의 등에 단숨에 올라타 캐니비어의 목에 컴뱃 나이프를 꽂아버렸다. 핏- 하고 피가 레이언의 얼굴로 튀었다.
"이번에야말로 끝내자."
목에 나이프를 꽂힌 채 몸부림치는 캐니비어지만 이번에야말로!
"너 내 친구한테 뭐하는 거야?"
막 디신티그레잇 능력을 발동하려던 레이언의 등 뒤로 가래 끓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레이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촉수 하나가 레이언의 관자놀이를 때리며 그를 캐니비어의 등 뒤에서 떼어냈다.
"젠장… 또?"
얻어맞은 채 쓰러진 레이언은 벽에 기대 일어나면서 지긋지긋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캐니비어에게 배후가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특수 능력자들을 골라서 사냥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다가오고 있는 녀석도 누군지는 대충 알 것 같다. 배후가 있다는 게 더욱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키키키키……. 내 친구를 괴롭히는 놈은 내가 죽여주지. 난 배신을 제일 싫어하거든?"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온 몸의 피부에서 짓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흰 부분을 찾기가 힘들었고 걸음걸이도 몸이 흐물흐물한 것인지 걸음을 제대로 지탱하기 힘들어 보였다. 등 뒤로는 5가닥 정도의 촉수가 흐물거리고 있어 그 기괴함을 더했다. 거의 삐져나올 듯한 왼쪽 눈이 획획 돌아가며 캐니비어와 레이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자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캐니비어에 비해서는 확실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지금 부상을 입은 레이언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이미 총도, 컴뱃 나이프도 잃은 몸이지만 전투의지를 불태웠다.
"이미 인간을 버렸군. 유형택."
"나를 버린 건 인간들이지. 키키키킥……."
인간이었던 자. 인간을 버리고 괴물이 되어버린 자. 유형택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의 촉수가 역겨운 짓물을 뿌리며 레이언을 향해 스물스물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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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발은 아니지만 백발에 와이어를 쓰고, 게다가 한손에는 데저트 이글이라... 모 신부님이 생각나는 분도 계시겠습니다. 전혀 의도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_ㅠ
여전히 주인공다운 활약은 하나도 못하고 있는 아영입니다. 주인공 아니라고 해도 별 상관 없긴 하지만 제목에 유아영이라고 붙어있는 이름값은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애초에 ECOS를 해체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탈퇴를 반대해주신 나유나유님 감사드립니다.
사용된 설정은
1. 나유나유 님의 '이 규환(Yi Grem)'
2. 히어로 캐릭터 - 블러디스트 레이언(Bloodist Layon)
3. 달마랑놀자 님의 '레온(Leun)'
입니다. 습격당하는 1인으로 나와서 죄송하네요; 수정해야 할 부분이나 지적사항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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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오 부활이군요! 하지만 맴버간의 불화는 남아있는 듯하네요... 게다가.. 민희의 등장이라니....
넵. 오해를 증폭시킨 민희가 등장했습니다. 덕분에 별 거 아니었던 아영이 좀 더 대단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 모 신부님이 순간 떠올랐었는데 하하;;
그러실 분 계실 줄 알았습니다-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