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돗물불소화사업의 우식예방효과
먼저 충치예방연구회의 창립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충치예방연구회가 우리
수돗물불소화연구회와 더불어 동반자와 협력자로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수돗물불소화사업의 치아우식증 예방효과는 사업 초기에는 약 60%로 조사되었습니다.그런데 최근에는 수돗물불소화사업 만의 예방효과는 약 30-40 %로 낮아졌습니다. 그것은 이사업이 실시된 지 약 50년 이상이 지났고, 그 이후로 불소의 예방효과를 다른 방법으로 얻기 위하여 다양한 불소 이용 우식증예방법이 개발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차이가 줄어든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불소배합 세치제의 사용, 불소정제 복용, 불소도포, 불소배합 치면이장법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의한 효과도 불소에 의한 것이므로, 불소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결국 더욱 높아졌습니다.
한편 수돗물불소화사업이 널리 시행되면서 확산 및 희석효과도 많아졌는데,사업지역과 비사업지역 사이에서 예방효과의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두 지역
사이에서 주민들의 이사, 여행, 혹은 출퇴근이나 통학이 빈번해 지고, 생산되는 식음료 제품의 교류와 이동이 많아졌기 때문에 통계상으로는 사업도시 만의 예방효과가 낮게 조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한 지역사회에서의 사업이 다른 비사업지역에까지 도움을 주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불소화사업의 효과를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이런 것을 이용하여 외국의 몇몇 반대자들이 불소화사업의 효과를 깎아 내리고자 선전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유심히 본다면 그것이 근거없는 주장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들은 비불화지역의 우식 유병율이 불화지역보다 낮다는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식증 발생의 원인요소는 대단히 다양하며,특히 그 중에서도 설탕을 비롯한 식품성분이나 물리적 조성 혹은 가공정도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그렇기 때문에 도시지역이나 산업화된 지역에서 우식증의 발생이 현저히 높습니다.
수돗물불소화사업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우식증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실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서는 우식증을 비롯해서 암이나 다른 여러 가지 질병이나 범죄의 발생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마치 이것이 불소화때문인 것 처럼 선전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근거하는 논문이란 것들도 조잡하고 비과학적인 것들이지만, 이들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서 순진한 시민들을 현혹시킵니다.
2. 설탕대체물질의 필요성
수돗물불소화의 예방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불소화사업으로는 평활면우식이나 인접면우식이 예방되는데 반해서, 열구우식증의 예방효과는 그리 높지 못합니다. 그래서
열구우식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치면열구전색사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열구전색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국민학교에 구강보건실이 설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법적 뒤받침으로 구강보건법이 지난해에 제정되어 올해 7월부터 실시되게 되었습니다. 한 편, 자본주의 상품시장에서 설탕의 소비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우식증의 발생은 늘어날 수 밖에 없고,수돗물불소화사업이나 열구전색사업으로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우식증은 발생할 것입니다. 결국 과학이 밝혀낸 우식증 예방법도 설탕의 소비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헛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설탕태체 물질의 개발과 홍보, 교육, 그리고 이를 촉진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들의 마련이 꼭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식증을 유발하는 설탕의 소비를 억제하며, 동시에 설탕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잇는 우식증을 예방처치하는 것으로서, 마치 토끼를 몰 때는 양쪽에서 몰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 잘못된 주장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부터 수돗물불소화사업을 시작하여 약 20년이
경과하여 현재 약 30개의 지역사회에서 불소화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사업을 잘 확대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외국(주로 미국)의 불소반대자료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유포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개인적인 인기나, 어떤 잡지나 조직의 인기와 선전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이들은 물론 이분야의 전문가들도 아니거니와, 이들이 근거로 하는 외국의 자료들도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거짓선전일 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자료를 믿는 반대자들이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미국사람들도 반대하는데, 인터넷에도 나와 있는데"하면서 맹신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로, 이 몇 사람들이 여러 가지 극단적인 선전활동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미국정부나 학계에서 이들의 주장을 검토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수십년전부터 반대자들의 활동은 있어왔지만, 불소화사업은 계속 확대되어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미국 국민들은 반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는 반대자들이 활동하며 잘못된 주장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중에서 요즘 거론되는 몇 가지 문제들입니다.
4. 잘못된 주장들의 몇가지 사례
1. 다까하시
USPHS, Review of Fluoride, Benifits and Risks (이른바 ad hoc report)
WHO, technical report 846, Fluorides and Oral Health
일본, 어린이 치아를 지키는 모임(山下文夫)
gttp://www.system9.co.jp/fusso
충치예방 전국대회 (Dr. 田浦勝彦, 東北大齒學部 豫防齒科, Sendai 市
靑葉區 星陵町 4番
地 1 , 022-274-1111(交3313) )
2. EPA
3. 로져 매스터즈
4. 녹차
5. 자궁경부암
6. 알미늄
5. 보충자료: 불소화 단상 (김영수, 부산 믿음교회목사)
나는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잘 알지 못하기에 말하는 것이 적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꼭 전문가의 의견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의
이야기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한 마디하는 것을 너그러이 받아 주시기 바립니다.
최근 나는 어느 치과의사로부터 수돗물 불소화라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돗물을 온통 불소화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 말을 들어보니 그 분의 지적이 옳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아는 수돗물 불소화의 내용은 수돗물에 극미량의 불소를 타는 것입니다. 수돗물에 0.8ppm의 불소함유량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ppm1은 아시다시피 농도를 가리키는 parts per million의 약자로 1ppm은 100만 분의 1을 뜻합니다. 물1㎏에 불소 1㎎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1㎏은 1,000g이고 1그램은 1 ,000㎎입니다. 그러므로 물 1㎏은 100만㎎입니다. 0.8ppm을 돈으로 알기 쉽게 표현하면 1000만원에 10원이 채 안되는 8원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돗물 불소란 말은 최선의 용어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 분은 법적으로 수돗물에 불소함유량을 1.5ppm까지는 허용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먹는 샘물은 2ppm까지이고요, 또한 여러지역의 수돗물에서도 불소가 검출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을 꺼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0.8ppm으로 수돗물 불소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법적 허용치의 중간에 있으며 법적인 하자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법적인 정당성 문제를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지난 번「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회원 몇 분과 시민단체대표, 실무자가 모여 가진 간담회에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불소는 자연속에 존재합니까? 그 분들의 대답은 흙 속에도 물 속에도 자연 모든 곳에 불소가 천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함유량에 차이는 있지만. 무지가 인간에게 도움이 된적은 없습니다만 이 날 나는 심한 무지를 들어낸 셈입니다. 하여튼 나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인공적인 원소를 집어넣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돗물 속에 존재하는 불소의 함유량을 적정하게 조정하자는 이야기로 들었으니까요.
나는 1980년대부터 건치에서 꾸준히 불소화를 주창하는 모습을 지켜 봐왔습니다.
드디어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불소화 사업이 곳곳에서 더 넓게 진행되려고 하는 바로 이 때 불소화는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생태운동의 한 상징처럼 된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교수로부터 불어오는 역풍이었습니다. 그 여파로 얼마 전 「수돗물 불소화 반대 국민연대」라는 전국적인 단체까지 만들어졌으니까요. 건치는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10년이 넘게 불소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으로는 치과의사단체로부터의 무언의 질시를 받아왔고 밖으로는 지방정부와 관계단체의 무관심과 무성의에 시달려 왔는데 이제 한 목소리로 불소화를 추진하게된 이 때, 결실을 얻으려는 이 찰나에 강한 돌풍을 만난 것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김종철 교수는 지난 십여년 넘게는 왜 침묵했을까요. 그 동안 불소화문제에대하여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불소화 사업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문제제기를 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전에는 큰 문제의식이 없다가 최근에 불소화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한 것일까요. 잘은 모르지만 후자인 듯합?求? 그렇다면 참으로 귀한 발견인데 그 발견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루어 질 수 있다니요. 그것도 인문학 분야에서. 수 십년 불소화의 역사 속에서 반론, 확인, 재반론, 재검증을 거쳐 과학적 사실로 인정되고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통해 공인된 사업을 논문 몇 개로 뒤집어버리다니요.
불소화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일반인들이 불소화반대 논문들, 특히 김종철 교수의 반대 의견에 놀라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래서 사실 반향이 컸고요. 그러나 그 논문들이 불소화의 역사 어느 시점에서 제기되고 다시 재반박을 통해 검증된 것이라면 그런 문제를 뒤늦게 뭔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처럼 드러내는 태도는 학자가 취해야 할 태도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자가 다른 학문영역을 넘나드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아니, 폐쇄된 것이 더 문제이겠지요. 그러나 문제제기를 할 때는 나름대로 깊은 숙고와 연구를 거치고 난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것이 학문의 다른 영역,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한 경우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반과학적 자연주의적 태도나, 인문주의적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꼭 옳은 것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제기 이 전에 치과의사 등 관계자와의 깊은 토론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폭로 식의 문제제기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는 결과가 되었습니다.이것이 바로 인쇄매체를 쉽게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흠입니다.
저는 녹색평론독자입니다. 정기구독자입니다. 녹색평론을 사랑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그윽한 맛의 생태논문도 많이 발표되고 있고 그리고 일찍부터 재생용지를 쓰는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단행본으로 펴낸 책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 다른 비슷한 잡지가 생겨 옛날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는 어렵지만 앞의 잡지보다는 무게 있는 논문이 실려 좋습니다.
그러나 녹색운동 혹은 생명운동을 하는 이들은 제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삶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보다 언제나 삶이 앞서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녹색평론을 보면서 불소화에 대해 김종철 교수를 포함하여 회원들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회원들이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듯합니다. 마치 "우리는 불소화에 대해서 과학적으로는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 수돗물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존경하는 김종철 교수가 반대하니 우리도 따라 반대한다. "는 식입니다. 제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는 것일까요. 여느 매체와 다름없이 녹색평론에서도 불소화를 찬성하는 글을 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대 일색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녹색평론이 불소화반대에 쏟는 열정은 남다릅니다. 마치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것보다 더 강한 톤으로 반대하는 듯합니다. 물론 그 어떤 일에도 반대는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있어야만 합니다. 반대가 없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반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전체적으로 재점검 할 수 있게 됩니다. 김종철 교수는 바로 이 점에서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반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반대를 제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불소화반대 캠페인은 합리적인 반대를 넘어 감정적인 싸움으로까지 확대되는 듯하고 화해는 이미 물 건너 간 듯합니다. 녹색평론의 정기구독자의 한 사람으로 녹색평론과 건치의 불소화를 놓고 벌리는 논쟁의 모습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좀 더 부드럽게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었을 까?
생명운동다운 생명운동은 여러 가지 생태적 문제제기에 있다기보다는 청정하고 청빈하게 사는 영성적 삶의 모습, 삶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로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최근에
전국적인 한 환경단체 실무책임자는 국민 앞에 「고백」을 했습니다. 사과와 고백의 시대이니 나쁠 것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환경단체의 행태에서 오늘날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의 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남을 배려하고 살피는 마음의 결여, 자기가 옳기에 아니 자기만 옳다고 믿기에 고압적으로 되는 교만, 무지, 그리고 아집. 어느새 우리가 이렇게 변했을 까요. 나는 이런 환경운동에 감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생명운동 이야기도 하지 않는 이름없이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그리고 얼마나 생명운동적이던가요. 생명운동을 하는 분들이 먼저 깊이 자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겸허함을 배워야 합니다. 수돗물에 독극물을 탄다는 투의 선전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물론 불소는 독극물로 분류됩니다. 염소도 독극물입니다. 오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수도를 소독할 때 염소와 오존을 쓰고있지 않던가요. 독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독이 독을 다스리니까요. 얼마만큼 적정량을 쓸 것 인가가 문제일 뿐입니다. 아무 것도 투입하지 않은 그야말로 뒷동산의 생수를 마시자고 고집한다면 몰라도.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염소소독 등도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김종철 교수가, 그리고 불소화에 맞서 있는 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수돗물 염소처리에 반대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덧나게 하는 식으로 논쟁을 계속 이끌어서는 안됩니다. 이쯤에서 논쟁을 한숨쉬고 뒤를 천천히 돌아다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상처와 아픔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운동은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날카로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는지요. 나는 개인적으로 불소화에 대한 전문적 소양은 없지만 수돗물불소화, 수돗물에 적정불소투입은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건강권 확보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접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국민복지가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맡기는 식의, 자유방임식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부나 자치단체의 직무유기일 것입니다. 나는 핵발전소를 반대합니다. 그런데 불소투입문제를 핵발전소문제와 같은 선상에서 다루어 반대해도 좋을까요. 그 점에 대해 나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김종철 교수가 녹색운동분야에서 드높은 도덕성이 있다면 건치 역시 이 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헌신해 왔으며 도덕성을 갖고 있습니다. 논쟁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성숙한 논쟁, 너에게서 배우려는 진지한 논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경의 예가 없는 논쟁은 생태운동에서도, 의료운동에서도 피해야만 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