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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대화재로 폐허가 된 부산역 주변 모습. 화재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
'드르르륵'.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이 영사기에 16㎜ 필름을 걸고 작동을 시작하자 깜깜한 소극장 스크린에 오래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장면은 폐허가 된 화재 현장.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기도 전인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 대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 중구 40계단 근처 마을의 모습이었다.
3일 오전 부산 중구 40계단문화관에서 김 소장이 보관 중인 역전 대화재 당시 영상 세 편이 언론에 공개됐다. 모두 1953~54년 촬영된 것으로 부산에 주둔했던 미군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은 당시 화재의 처참함은 물론 주민의 다양한 생활상을 생생히 담고 있다. 화재 다음 날 낮까지 꺼지지 않은 잔불을 정리하는 모습, 넋을 놓고 화재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재민들, 미군이 이재민과 함께 천막을 치는 모습, 뼈대만 남은 옛 부산역과 부산우체국 등이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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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광동 40계단 주변 점포 앞에 독을 이고 가는 아낙의 모습이 정겹다. |
그런가 하면 정월 대보름으로 추정되는 날 지신밟기를 하는 주민의 모습과 지금은 사라진 당시 부산세관 건물, 정비 전의 40계단 등이 등장해 당시 중구 중앙동·동광동·영주동 일대 풍경과 생활상을 짐작게 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1953년 화재를 겪었던 주민 이영근(85) 씨도 함께해 "엄청난 화재로 망연자실한 이재민들을 미군이 많이 도왔다"며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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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사라진 1954년 부산세관의 옛 모습. 당시 세관은 현재 세관 옆에 있었다. |
이날 공개된 영상은 김 소장이 미국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20년 전부터 부산과 관련한 지도 사진 서지류를 수집하고 분석해 온 김 소장은 2005년 이 영상을 구입했지만 영사기가 없어 내용을 보지 못하다가 최근 역전 대화재 당시 자료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화재 직후 사진 자료는 공개된 것이 많지만 영상은 최초인 걸로 안다"며 "40계단 문화관에서 중구 주민을 상대로 공개 관람 행사를 하고 당시 역사를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