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 교생 실무실습 지도 체험기)
두원초등학교 교사 이은영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농촌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산등성이 위로 잔잔히 피어오르고, 오후 내내 따가운 햇살로 영글어가던 황금빛 들판이 어느 샌가 석양빛 노을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동안, 이따금씩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가 마침내 고요한 마을의 정적을 깨는 그런 전형적인 시골 학교이다.
이 조용한 시골마을에 한 무리의 젊은 선생님들이 ‘교생실습’을 하기 위해 조그마한 시골 학교로 무리지어 몰려 왔다.
이들은 교대 전남반 3학년생으로 일주일 동안 ‘농촌 학교의 실상’을 직접 체험하고 미래의 교사생활에 도움을 얻고자 실습을 나온 것이다.
우리 학교에 배정된 인원은 남자 5명, 여자 7명인 총 12분 선생님!
월요일 아침, 12명의 젊은 선남선녀들이 멋진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교문을 들어서는 모습은 참으로 신선하였다. 벌써 교실 창가에는 우리 아이들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과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군데군데 모여서 교문에 들어서는 예비 선생님들을 수줍게 맞이하고 있었다.
이들이 오기 일주일 전, 작은 시골이라 교생선생님들이 묵을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 숙소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하였고, 때마침 학교 인근에 비워놓은 방이 3개 딸린 2층 사무실 겸용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무실로 쓴 방이라 부랴부랴 바닥에 장판을 새로 깔고 대청소를 하여 12분의 선생님을 맞을 채비를 단단히 하였고,
일요일 늦은 밤, 2시간이 넘게 걸린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린 이들을 이동 차량이 딱히 없어 대신 준비해 간 4톤 트럭에 전부 올라타게 한 뒤, 지정된 숙소로 향했다.
시작부터 열악한 시골 학교 현장을 몸소 체험 했으리라!
더구나, 숙소엔 침구류가 없어 교생선생님들이 직접 이불, 베개, 그리고 학교 출근할 때 입을 정장의류, 세면기구 기타 등등, 각자 가져온 짐들을 살펴보니, 보통 외국에 나갈 때나 사용함직한 바퀴달린 대형 여행용 가방들을 포함하여 전부 2개 이상 씩 양손에 한가득, 등에 이고 지고 나타난 모습들이 가히 국제공항 대합실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그러한 진풍경들이었다.
처음 가보는 깊은 산골학교 실습에 약간은 겁들이 났나보다.
‘왜 이렇게 짐이 많은가’ 에 대한 질문에 많은 체험이 없는 시골학생들에게 평소 배워온 전공과목 학습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해 온 자료들도 포함되다 보니 이렇단다. 예비선생님들의 의지와 각오가 대단하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게 단단히 다지면서도 약간은 겁이 났던지 오지의 아프리카 체험을 떠나는 사람마냥 열악한 환경의 시골학교로만 생각하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짐이 많아진 모양이다.
실습 첫째 날!
교무실로 들어선 이들은 몇 분의 선생님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마주 한 뒤 교장실로 모여 앉았는데, 교장선생님은 어느새 준비하셨는지 ‘만남’이라는 섹스폰 연주곡을 은은히 들려주며 환영 악수를 일일이 하셨다. 곧이어 교무실에서 상견례가 끝나고, 강당으로 가서 신기해하는 아이들과의 수줍은 환영인사도 끝났다.
교무실에서 일주일 동안의 실습 일정표가 배부되고 오전엔 교감선생님의 실습과정 오리엔테이션, 학교장과의 대화 그리고 학교 순방과 교실 탐방, 배정학급 수업 참관 및 학급 교육계획 설명 등이 이루어졌고, 오후엔 수업 참관, 배정된 학급에서 소개 및 학급 운영 안내 등 숨 돌릴 사이도 없는 빽빽한 실습일정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누가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열심히 잘 따라주었다.
많이 긴장들 했나보다. 오후 4시 30분경 하루 일정이 거의 끝나고, 교실 한 칸을 리모델링한 도서실 겸 휴게실로 돌아왔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의자와 소파에 전부 널부러졌다. 평소 입지 않은 정장과 꽉 조여 맨 넥타이가 긴장된 온몸을 더욱 조여 온 모양이다. 하루 동안의 실습록 작성과 반성을 하며 실습 첫째 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퇴근 한 뒤,
샤워 실이 딱히 없어 관사에 딸린 화장실 겸 목욕실을 잠시 대여해 주었더니, 여학생들은 그곳에서 약식 샤워를 하고 숙소까지 5분 이상 머리칼이 젖은 채 걸어가도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온 운동장에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피곤한 것도 잊은 채 마냥 즐거워했다. 마치 MT 온 기분 이란다.
실습 둘째 날!
군에서 풍물경연대회가 있는데 본교 학생들이 출연한 터라 교생선생님들은 체험학습으로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작은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그토록 잘하는 걸 보고 조금씩 그들의 ‘오지의 아프리카 인식’이 바뀌고 있었다. 오전 동안 공연을 본 소감을 물으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자신들의 대학에서 ‘대동제’ 나 축제에서 볼 수 있음직한 사물놀이 패 수준이라며 전부 놀라워했다. 오후엔 각 교실에서 진행되는 방과 후 활동을 참관하더니 도시의 학원보다 더 알찬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입을 모았다. 이어서 학교에서 자상한 교감선생님의 분장 업무 실습 지도를 받고 곧 바로 하루를 종료하였다.
실습 셋째 날!
이번 교생 실습은 짧은 날이지만 일주일 동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내용들을 체험하는 것 같다. 3개의 농촌 학교가 돌아가면서 한달에 한번씩 이루어지는 ‘소규모 협동 교육’이 교생 실습기간에 우리학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테면 이번 실습생들은 학교 외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들을 전부 경험한 셈이다.
오전 9시! 다른 2개 학교 학생들이 버스로 이동하여 본교에 도착했다. 학급당 10명 안팎의 시골 학생들이 갑자기 학급당 30-40명으로 늘어났다. 소인수학급에서 그동안 학생 숫자가 적어 하지 못한 미술, 체육, 재량, 특별활동 내용 부분들을 함께 모아서 온 학교가 떠들썩하며 신명나게 수업을 하고 있는 동안 교생선생님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학생들과 함께 분주히 움직였다. 갑자기 늘어난 학생 수에 정신 차릴 새 없이 학생들과 함께 흥이 나서 축구, 농구, 인라인 스케이트, 배구, 기악합주, 합창, 만들기 등을 교실바닥에서 혹은 운동장, 강당에서 열심히 하며 학교 잔치 마당이 벌어진 듯 함께 즐겼다.
협동교육이 끝난 오후엔, 본교 선생님의 시범수업을 참관하였다. 보통 다른 학교로 파견된 교생들은 수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하지만, 꼼꼼한 우리학교 연구부장님의 실습 일정표엔 세 분 교생선생님의 공개 수업이 여지없이 예정되어 있어 내일 자신들의 공개수업을 위한 수업 참관이라서 그런지 관심을 가지고 숨죽이며 뚫어지게 수업관찰을 하였다.
퇴근 후, 이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다시 학교로 몰려와 밤 10시까지 악기를 다루며 제각기 맡은 공개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특이한 것은 3명이 수업을 하는데 12명이 총 출동해 함께 준비 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관사에 거주하는 본인은 이들의 식사, 요구사항 등을 들어주며, 이들의 이동사항까지 함께 살피는 사감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실습 넷째 날!
교생선생님의 공개 수업이 있는 날이다. 첫째 시간에 3학년 영어수업이 진행되었는데 평소에 재잘대던 아이들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입을 열지 않자, 당황한 수업자 교생선생님을 보기가 안타까웠는지 동료 교생선생님들이 우르르 아이들 곁으로 몰려들어 일대일로 각기 개인 지도 하며 협공을 하여 무사히 마쳤다.
둘째 시간은 음악 공개 수업을 하였는데, 2일 전부터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나’ 고민이 늘 떠나지 않았다던 교생선생님은 그 전날, 11명 교생선생님에게 밤 10시까지 수업할 악기 연주를 서로에게 가르쳐주며 합주 연습을 하는 수고를 하였다. 다른 수업하기 수월한 반을 놔두고 굳이 우리학교에서 제일 뒤떨어지고 무시당하며 소외당하는 4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하려고 하는 데는 그들만의 의미가 있었다. 그들의 의지는 그렇게 밤늦게 까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수업전략을 짜고 악기연습을 하는 분투 정신으로 마무리 되었다.
둘째시간은 그들이 밤늦게 그토록 연습한 바로 그 음악 공개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자 선생님의 간단한 동기유발과 함께 도입,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파트별 개인지도 부분이 다가오자 아예 12명의 교생들이 학생 1명씩을 옆에 앉혀놓고 실로폰, 짝짝이, 리코더, 트라이앵글, 큰북, 작은북, 탬버린, 등을 개별지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며 도무지 따라하지 않던 아이들이 차츰 표정이 바뀌면서 흥미롭게 따라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4학년 구성은 특수아 준용이, 주의력 결핍 아동인 민우, 결손가정으로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늘 풀이 죽어있는 동준이, 표현력이 전혀 없는 쌍둥이 형제 등, 공개 수업을 도무지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활발한 음악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 얼굴엔 차츰 밝은 미소가 번지더니 교생선생님들과 재미있게 악기연습을 열심히 따라 하는 것이었다. 연습이 끝난 후, 연주된 기악합주는 교생선생님과 학생들의 마음까지 하나가 되어버린 훌륭하고 아름다운 합주 소리로 교내에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참관한 선생님들 마음마저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그 합주 소리는 마치 ‘전남교육의 희망’이 함께 연주되어 날아오른 듯 하였다. 이렇게 멋들어진 연주를 내보이다니....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도전감이 돋보이는 하루였다.
실습 다섯째 날!
교생실습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그동안 빡빡했던 일정을 잘 소화한 교생선생님들에게 보상 차원에서 주변의 유적지답사와 해수욕장 주변 산책을 하며 머리를 식히는 기회를 제공하였는데 그렇게 즐거워 할 수 가 없었다.
첫날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교무실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소감 발표회’에서 그들이 말하기를 ‘천국을 맛보고 간다’ 고 하였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순수한 어린이들과 동생처럼 따뜻하게 보살펴준 선생님들을 못 잊겠다고 한다. 마치 휴양 온 기분이라고... 한 교생 선생님은 그동안 도시에서 아팠던 머리가 아주 맑아졌다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뒤늦게야 교대 총 학생회장과 임원진이 우리학교에 실습 나온 걸 알았다. 그들은 학교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대학 학생회일을 위해 오후 5시 퇴근 후 광주를 왕복 4시간 동안 오가며 대학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참 예의바르다. 그 학생이 소감발표회에서 그동안 실습활동을 모아 ‘10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교직원 전원에게 대형 TV 모니터로 소감문 대신 보여주었다.
언제 찍었는지 학생들의 표정과 그동안 일주일 동안의 수업활동들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고 있었는데 동영상 타이틀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이었다. 배경음악으로 ‘선생님’ 노래를 띄워주었는데 가사 내용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노랫말 내용을 잠시 적어보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