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경기도 양평군의 모교 농업연습림의 굴참나무 아래에서는 경건하고 단출한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장에는 흔한 조화나 묘비 하나 없었다. 가족 등 고인의 친지들이 나무 주변에 둘러서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며 마지막 작별을 고한 것이 장례식의 전부였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살다 타계한 故 김장수(전 모교 농대학장) 교우의 수목장이었다. 김 교우를 모신 굴참나무에는 손바닥만한 크기로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간단한 표지 외에 흔적 하나 남겨져 있지 않았다. 김 교수의 제자 변우혁(임학65) 교우가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김 교우의 유지를 받들어 유족에게 제안한 ‘수목장’은 이렇게 처음 국내에 들어왔다.
변우혁 교우가 처음 수목장을 접한 것은 독일에 유학을 가있던 시절이라고 한다. 지도교수의 사모님께서 나무 밑에 화장된 재를 묻는 수목장을 소개해줬다. “처음 들었을 때는 하필 묻을 데가 없어서 뿌리가 시신을 감싸게 될 나무 밑이냐고 놀랐었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생각이 바뀔거라 제안하셔서 수목장 한 곳에 다녀왔죠. 학교를 다니며 늘 지나던 길이었습니다. 아름드리 참나무가 수목장의 현장이었어요.”
그는 그 곳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장묘문화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저들은 집 앞이나 가까운 곳에 고인을 모시고 매일같이 꽃을 들고 가서 추모합니다. 꽃이 시들면 최악의 후손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입니다. 자주 찾아 뵙고 정성을 다하는게 진심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아닐까요?”
변 교우는 지금 장묘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 국토의 1%를 묘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용 가능한 국토면적이 전체의 4.7%임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면적이 아닙니다. 또 묘지의 90%가 산에 있어서 공간상의 문제가 많습니다. 고비용이고 관리도 어려워지고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화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장도 이후의 대안이 없어요. 납골당에 모실 수 있지만 100년, 200년이 넘도록 계속 유골을 모아둘 수 없지 않습니까? 강에 뿌리는 산골 방식은 강물이 오염되거나 법에 저촉될 위험도 있어요. 고인을 추모할 매개체가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언젠가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거라면 긍정적인 방법이 좋겠죠.”
수목장은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친환경적인 장묘방식이다. “수목장은 장묘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불필요해 산림훼손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봉분이나 납골시설과 달리 인공물을 설치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비용이 적게 듭니다. 필요한 것은 나무와 자신의 나무임을 표시할 작은 표식뿐이죠. 집 화단에 있는 나무에서도 수목장을 할 수 있습니다. 고인을 추모할 매개체인 나무에 유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관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무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숲을 이루게 되고, 숲이 많아지는 것은 인간들에게 또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기피시설로 인식되던 기존의 장묘시설과 달리 아름다운 숲으로 가꾸어 지역의 명소로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 흔적없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자연회귀 정신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장점들이 알려지면서 수목장을 하겠다는 사람도 2006년 61%에서 2010년 81%로 늘었다. 우리나라의 좁은 국토상황을 고려하면 나무나 숲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국민들의 환경의식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수목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될수록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사설 수목장업체들이 야산에 있는 나무를 비싼 값에 분양하고, 사후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수목장을 설치하기 위해 나무를 베거나 철조망을 치는 등 환경을 훼손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불법이다. “원래는 ‘수목장 전도사’였는데 지금은 ‘수목장 소방수’라 불리고 있어요. 원래 취지는 돌아가신 분을 공원과 같이 아름다운 곳에 모시는 건데 상혼(商魂)이 불면서 불법 업체들이 늘어나 본래의 좋은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업체들은 한 그루에 몇백만원씩 받고, 충분한 공간 없이 나무를 심어서 나무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목장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변 교우는 김성훈 전 상지대 총장, 조연환 전 산림청장, 황인성 전 국무총리 등 사회인사들과 수목장위원회를 결성했다. 변 교우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의 노력은 최근 결실을 맺었다. 국립·도립·군립공원 등 자연공원 안에 수목장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족들은 더 쉽게 고인을 추모할 수 있게 됐다. 환경부가 이 내용의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5월 2일 입법예고했다.
요즘엔 기존의 묘지를 수목장으로 전환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존의 묘지 주변에 나무를 심어서 후손들이 거기에 수목장을 하거나, 봉분을 없애고 돌로 묘지라는 표식을 한 후 꽃과 나무를 심는 방법이다. “현재 우리나라 묘지가 1400만 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묘지에 꽃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들면 꽃나무 동산이 됩니다. 천만개의 꽃나무 동산을 만드는 것이 제가 바라는 겁니다.”
김이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