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생활의 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린 70년대 사진
1. 에메트 고윈의 일상성의 전개
미국은 외향의 시대와 내향의 시대를 반복한다고 한다.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가 급진적인 외향의 시대였다면 70년대는 확실히 내향의 시대였다. 물론 사진 표현도 역시 사회 구조의 산물로, 현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다. 50년대와 60년대의 사진은 도시를 주제로 한 급진적인 방향으로 비약하였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선 시대를 반영하고 자신들의 마을인 지방에 눈을 돌리는 유턴(U-turn)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 전형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에메트 고윈의 사진집 『사진(Photographs, 1978)』을 들 수 있다. 나의 사진은 매일매일 생활의 일부로서 제작된 것이다. 어떤 계획이나 할당된 임무로서 찍은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이렇게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를 고발하거나 새로운 사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진집에 수록된 67점의 작품은 고윈 자신의 생활의 일부로서 찍은 이른바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집은 그의 처 에디스 모리스(Edith Morris)와 결혼하기 1년 전인 63년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본격적인 가족사진으로 찍기 시작한 것은 66년부터이다. 에디스와 그리고 그녀와 닮은 용모를 중심으로 친척, 이웃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80세가 넘어 보이는 조모 레니 부허(Rennie Booher)는 에디스가 찍혀져 있는 작품 속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윈의 사진에서 늙은 조모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녀는 가족제도와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상징이다. 즉 일상 속에서 생의 빛남을 에디스라고 하면 레니는 죽음의 무거움이다. 양쪽 모두 장엄함 현실이다. 이 늙은 조모는 72년에 사망했다. 주름 장식이 달린 하얀 천에 쌓여져 관에 넣어진 레니의 사진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고윈 일가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 단빌(Danville)의 사계절 사진이 10페이지 정도 이어진다.
남부 단빌은 가족과 함께 고윈에게는 사진의 중요한 요소이다. 풍경은 물론 가족의 포트레이트의 배경으로 놓여져 있는 주택, 침대, 의자, 문 등의 가구가 남부생활의 정취를 농후하게 띠고 있다. 그는 말한다. 수면에서의 태양의 반사, 베란다 철망문의 흔들거림, 문의 여닫이 등 여렸을 때부터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성장하였지만 나는 그러한 즐거움으로부터 졸업하고 싶지 않다.
고윈과 그의 처 에디스는 남부의 단빌 출생이며, 이러한 일상성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일상이 어느 때는 눈부시게 빛나는 일이 있다. 그늘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밝은 빛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일 것이다. 이 사진집은 마지막에 에디스가 해산에 가까운 무거운 몸으로 딸 엘리야(Elijah)와 함께 나체로 대지에 드러누운 장면과 방금 태어난 아이를 에디스가 안아 올리고 있는 작품으로 끝나고 있다.
전부터 현대사진의 하나의 방향으로서 필자는 투명도가 강한 사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성의 표현보다도 사진가는 투명한 자세로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주장하는 방향이다. 즉 감상적 태도를 거절하며 냉정하고 학구적이며 기록적 정신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고윈의 사진은 이 투명함을 아름답게 결정화시키고 있다. 즉 일상을 투명하게 사진집으로 우리들 앞에 제출할 때, 우리들은 이 총체를 인간생활의 무게로서 묵직하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앤셀 아담스의 한 장의 풍경사진에서 계발(啓發)되었다고 말하고 있듯이, 이 투명도는 아담스로부터 배운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담스의 투명함은 우주적 신비감을 감돌게 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고윈의 그것은 일상세계로 하강하기 위한 것으로 완전히 질을 달리하고 있다.
고윈의 사진을 처음 접한 것은 정확히 71년 뉴욕의 전시장에서였다. 당시 ‘현대사진가들’의 사진이 전성기를 지났다고는 하나 아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강인한 사상의 뒷받침이 느껴지는 사진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실로 70년대 사진의 등장이 눈앞에 이르렀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사진들은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지면서도 다양한 삶의 디테일을 감추고 있었다. 격동의 60년대부터 70년대의 환멸과 회고의 시대를 맞이했을 때, 아직은 시기상조이지만 고윈의 작품이 거기에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삼각대를 세우고 대형 카메라로 찍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찍는 삶도 찍히는 사람도 서로 마주보게끔 되고, 서로 느낀 것이 사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진의 발명 당시의 원점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새롭지도 아름답지도 못하지만 확고한 현실을 포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에매트 고윈은 1941년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964년에 리치몬드 프로페셔날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펜실베니아 주에 거주하며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강사를 하고 있다. 라이트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197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와 2인전을 열었다.
2. 빌 오웬즈의 ‘교외 거주자’와 밀튼 로고빈의 슬럼가의 사람들
지방으로 시선을 돌려 우리들의 생활을 맨처음부터 다시 보자는 점에서는 빌 오웬즈도 이러한 사진가 중의 한 사람이다. 미술에서는 1930년대에 대불황을 극복하려고 국내에 눈을 돌린 ‘지방주의(regionalism)'로 일컬어지던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진에서도 70년대는 정말 ’지방주의‘가 약동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빌 오웬즈(Bill Owens)는 1973년에 사진집 『교외 거주자(Suburbia)』를 간행했다. 이 사진집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속도로로 40분 거리에 있는 교외 주택지를 무대로 해서 이 지방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면밀히 찍은 것이다.
오웬즈는 그후 사진집 『우리들의 친구(Our Kind of People : American Group and Rituals, 1975)』에서는 전미국의 각종 단체를 촬영하고 있다. ‘돈 때문에 하고 있다(I Do It for the Money)'라는 부제가 있는 사진집 『노동(Working, 1977)』에서는 우주선의 기술자에서 누드모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채집하고 있다. 또한 어떤 사진집에도 반드시 찍힌 사람들의 코멘트가 적혀 있다.
오웬즈가 중산 계급의 미국인에게 시선을 돌렸다면, 밀튼 로고빈(Milton Rogovin)의 사진집 『로워 웨스트 사이드(Lower West Side, 1975)』는 공업 지대인 뉴욕 주 버팔로 시의 로워 웨스트 사이드의 빈곤한 사람들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집은 일종의 가족사진으로, 일반적인 가족사진과 같이 가족이나 친구가 촬영한 것이 아니고 사진가라는 타인이 개입하고 있다. 따라서 가족사진에서 보이는, 찍는 측과 찍히는 측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 찍히는 쪽은 타인의 사진가를 의식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불가사의한 긴장감이 도는 듯한 자세와 표정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들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관계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있지만 찍히는 측은 단순히 찍히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거의 모든 사람이 여러 가지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띠고 있다. 아마도 우리들이 일상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찍힌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사진의 프레임에 담긴 것은 아닐까?
오웬즈의 『교외 거주자』에서는 그 자신의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사진집은 나와 친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찍은 것”으로, 사진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사람들을 찍고 있다고 하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대상이 머무르지 않고 오웬즈는 자주 뒤로 물러나서 촬영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이 속해 있는 배경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로고빈은 오웬즈와는 반대로 사람들을 비정하리만큼 직접적이고도 선명한 초점으로 찍고 있다. 초점이 선명하다는 것은 이 경우 벽, 종이, 커튼, 의자, 스탠드, 그림과 같은 그들의 생활 장소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표정과 포즈와 같이 많은 정보를 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심스러운 일종의 배경음악으로써 사용되고 있다.
현대사진의 이해 - 고쿠보 아키라 지음, 김남진 옮김,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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