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소설가
출생 - 사망 : 1897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 1963년 3월 14일
학력 :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데뷔 : 1921년 개벽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 발표
수상 : 1995년 아시아자유문학상
경력 : 1955년 초대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1953년 예술원 종신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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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 ‘횡보 염상섭상’, 브론즈, 1996 서울 종묘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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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작품 배경
이 작품은 횡보(橫步) 염상섭의 데뷔작이다. 발표 당시부터 이미 이 작품은 김동인으로부터 ‘상섭의 출현에 몹시 불안을 느끼게 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고, 백철(白鐵)에 의해 ‘20년대의 시범작(示範作)이며 이종(異種)의 특이한 맛을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신동(神童)이라는 평판을 받아 왔던 ‘김창억’이 왜 광인(狂人)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탐구하면서, 그의 기괴한 행동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클로드 베르나르의《실험 의학 서설(實驗醫學序說)》에 근거하고 있는 에밀 졸라의《실험 소설론(實驗小說論)》에서 비롯되는 자연주의는 소설 속의 인물에 객관적인 환경을 설정하고, 유전 인자(遺傳因子)나 강한 병리적 본성(病理的本性)이나 야수적 성격 등을 부여하여, 그것에 의해 인물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으로 소설을 기술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연주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두고 흔히 평가되어 왔듯이 자연주의 작품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등장 인물들의 정신병이 발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또는 작가가 왜 정신병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액자 소설로서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액자의 틀이 되는 외부 이야기는 작중 화자인 ‘나’가 일본에서 서울로 돌아와 권태로 인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평양을 거쳐 남포에 도착, 광인 ‘김창억’을 만나고 난 후 ‘백설이 애애한 북국의 한 시골에 머문다.’는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이야기의 줄거리는 광인 김창억의 일대기라 할 수 있는데,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두 번째 아내의 가출로 인해 신동의 불리던 김창억이 정신병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정신병자가 된 이후의 그의 기괴한 행동으로 구성된다.
먼저 이 작품의 외부 이야기에서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취’에 찌들고 ‘무섭게 앙분한 신경’으로 인해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주인공 ‘나’는 ‘권태’와 신경과민을 해소하기 위해 어디로든지 여행을 하려 한다. 그러나 여행에 대한 ‘나’의 갈망은 실천력이 없는 ‘나’ 스스로에 의해 번번이 좌절당한다. ‘나’는 ‘방’ ― 이 방은 지식인을 고립시키는 암울한 식민지 현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 으로 표상되어 있는 갇힌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팽만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어디든지 가야겠다. 세계의 끝까지, 무한에, 영원히, 발끝 자라는 데까지, 무인도! 시베리아의 황량한 벌판! 몸에서 기름이 부지직부지직 타는 남향! …… 아아.”
나는 그림 엽서에서 본 울창한 산림, 야자수 밑에 앉은 나체의 만인(蠻人)을 생각하고 통쾌한 듯이 어깨를 으쓱하여 보았다. 단 일 분의 정거도 아니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있는 굳센 숨을 헐떡헐떡 쉬는 풀 스피드의 기차로 영원히 달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신흥사에 가려는 욕망조차도 실현하지 못하는 의지가 박약한 인물이다. 스스로 ‘내가 미쳤나?…… 아니, 미치려는 징조인가?’ 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여행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지 못한 인물이 바로 ‘나’인 것이다.
이러한 ‘나’는 정작 ‘H’의 권유로 평양으로 여행할 기회를 갖게 되지만 정작 떠날 때가 되어서는 떠나고 싶은지 그만 두어야 좋을지 자기의 심중을 몰라한다. 결국 ‘H’에 의해 끌리다시피 하여 역으로 나가지만 ‘검역 증명서’ 때문에 힐난당하는 광경을 보고는 또 여행의지를 포기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나’라는 인물의 의지 박약성은 그가 비사회적 인물이며, 폐쇄의 공간인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폐적 성격의 소유자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자폐적 성격의 소유자인 ‘나’가 남포에서 만난 광인 ‘김창억’의 일대기는 내부적 이야기의 근간이 된다. 그는 ‘나’보다 더 자폐적 증상으로 광인이 된 인물이다. 그가 광인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그의 성장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부친은 소시부터 몸에 녹이 슨 주색 잡기를 숨이 넘어갈 때까지 놓지를 못한 인물이었고, 그의 모친은 그가 십사 세 되던 해에 죽은 누이와 단 남매를 생산한 후에는 남에게 말 못할 수심과 지병으로 일생을 마친 박복한 여인이었다.
이러한 가정에서 그는 ‘잔열 포류(孱劣蒲柳)’의 약질일망정 신동으로 자랐다. 그의 부친은 가정에는 무관심했지만 자식의 총명함을 기뻐하여 그를 한성 고등 사범 학교에 유학시켰다. 그러나 부친이 졸사(猝死)를 하고 가세가 기울어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런지 얼마 후 ‘전 생명의 중심’으로 믿고 살아가려던 모친마저 죽자 그는 자살의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그의 처마저 젖먹이 아이를 남겨 놓고 죽는다. 그는 이러한 아내와의 사별을 견디지 못해 표연히 유랑을 떠났다가 반년쯤 되어 돌아온다. 친척들의 권유로 다시 한 여자와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가 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는 집을 나가 버린다. 김창억에게 있어 모친과의 사별, 첫 번째 아내의 죽음, 그리고 두 번째로 얻 은 아내의 가출은 그만큼 커다란 충격이었고 이로 인해 그는 결국 광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에 의하면 어머니의 품을 모르고 자라난 어린아이는 성장한 이후 에도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의존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이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어 이별로 인한 절망을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표면상으로 비의존적인 태도를 더욱 강하게 나타내고 타인들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 많아진다.
그가 ‘단 서른닷 냥’으로 삼층집을 짓고 집안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나 ‘동서 친목회 회장’ ‘세계 평화론자’ ‘기이한 운명의 순난자(殉難者)’ ‘몽현(夢現)의 세계에서 상상과 환영의 감주(甘酒)에 취한 성신(聖神)의 총아(寵兒)’ 등의 독자적인, 다시 말해서 비 의존적인 존재라고 허세를 부리는 행위는 성장 과정과 모친, 두 아내와의 이별로 인한 정신병인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아내의 가출은 그가 광인이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찾아 나선다거나 자신을 버린 아내에게 복수를 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 인해 광인이 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인물이다. ‘자의식’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위치에서만 신경을 쓰는 의식을 뜻한다.
이러한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높은 이상(理想)과 야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등 의식이 강하다. ‘나’ 역시 ‘김창억’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의식이 강한 인물이다. ‘나’의 신경증이나 ‘김창억’의 광증은 이러한 강한 자의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와 ‘김창억’의 자의식은 식민지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의 자의식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외부 이야기의 주인공 ‘나’와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 ‘김창억’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정신 질환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김창억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그를 놀리는 ‘H’ 나 ‘Y’와 같은 입장에서 그를 조롱하고 조소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김창억’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식민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유민’임에 부러워하게 되고 ‘P'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무엇이라고 썼으면 지금 나의 이 심정을 가장 천명히 형에게 전할 수 있을까! 큰 경이가 있은 뒤에는 큰 공포와 큰 침통과 큰 애수가 있다 할 지경이면 지금 나의 조자(調子)를 잃은 심장의 간헐적 고동은 반드시 그것이 아니면 아닐 것이오……. 인생의 진실된 일면을 추켜들고 거침없이 육박하여 올 때 전령(全靈)을 에워싸는 것은 경악의 전율이요, 그리고 한없는 고민이요, 샘솟는 연민의 눈물이요, 가슴이 저린 애수요……. 그 다음에 남는 것은 미치게 기쁜 통쾌요……. 삼 원 오십 전으로 삼층집을 짓고 유유 자적하는 실신자를 ― 아니오, 아니오, 자유민을 이 눈앞에 놓고 볼 제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소. 현대의 모든 병적 다크 사이드를 기름가마에 몰아넣고 전축(煎縮)하여 최후에 가마 밑에 졸아붙은 오뇌의 환약이 바지직바지직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욕구를 홀로 구현한 승리자 같기도 하여 보입디다……. 나는 암만해도 남의 일같이 생각할 수 없습디다.
어떤 인간이든 사회와 관련이 없이 살 수 없으며, 어떤 사회든 개인으로 출발하지 않는 사회도 없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인물도 사회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인물에영향을 주지 않는 사회도 없다.
따라서 순전히 개인적인 소설도 순전히 사회적인 소설도 없다. 즉 소설은 사회와 개인이 어떠한 형태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표본실의 청개구리》 에서도 역시 ‘나’의 신경증과, 권태, 답답함 그리고 이것들을 탈출하려는 여행에의 갈은 ‘나’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 보듯, ‘나’는 ‘김창억’의 자유로움에 감동을 받기까지 하는데, 이는 암울한 식민지를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현실 탈출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결국 ‘나’의 우울증이나 신경증은 그 원인이 암울한 사회 현실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들의 정신병이 사회 현실과 관련되면서 설명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막역하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나’와 ‘김창억’의 정신 질환이 라는 은유(隱喩)를 통해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정신적인 상처와 고뇌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출처 : http://www.esokdo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