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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싱
고은주
핀셋 끝에서 파닥이는 것은 고래의 검푸른 꼬리였다. 절지동물처럼 몇 가닥으로 끊어진 고래는 차가운 핀셋에 들린 채 건조한 솜 위로 던져졌다.
“귓속에서 부러진 겁니다. 염증이 생겼어요. 아물 때까진 만지지 마세요.”
연골을 길게 가로지르던 고래의 등뼈를 제거했을 때 그 안에는 온갖 구균들이 가득했다. 부식된 고래의 몸이 내 몸과 맞닿으면서 부대낀 흔적이었다. 갈변된 사과 표면처럼 녹슨 고래의 몸 아래, 벌건 녹물이 배어 나왔다. 터진 혹 안에 고여있던, 노랗게 달뜬 열망들도 흘러나왔다. 알코올 스펀지가 귓가에 닿자, 오래된 연골이 삐걱거리며 파도를 탔다. 그것은 낡은 장롱의 두 문짝이 아귀가 맞지 않아 내미는 소리처럼 처량했다. 박자와 화음이 엇갈린 쇳소리 속에 바다는 사라졌다. 푸른 파도 대신 과산화수소의 시큼한 냄새가 밀려들고, 그렇게 또 한 마리의 고래가 떠났다. 고래는 떠나고 음습한 구멍만이 남았다.
몸에 구멍을 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날렵한 꼬리, 철갑상어의 지느러미, 알타이 동굴벽화 속 포효, 이글거리는 태양의 흑점에 화려한 월계관까지……. 굵어봐야 두께 12mm 도 되지 않는 철심이었지만, 그 끝에 매달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금속을 몸에 끼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3초면 생살에 구멍이 났고, 그 틈으로 긴 철심을 끼우는 것도 30초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몸에 온전히 뿌리를 내리는데 2주에서 한달이 걸렸고, 지금 나는 또다시 2주에서 한달의 시간을 들이며 그것들을 빼내고 있다.
문제는 금속이 온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켈로이드 피부였다. 티탄으로 된 고래를 심었던 삼각뼈 부위도 그러한 체질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갑자기 느껴진 생경한 이물감에 몸은 당황했고 고래를 심하게 밀어냈다. 단단하게 고정했던 고래의 몸체는 그만 내 연골 속에서 몇 동강으로 부서지고 말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범인처럼 구멍 위로 동그란 혹이 불거졌다.
혹, 이상한 희열. 그것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밤을 훔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빗방울이 부딪힐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 양철지붕, 방 모서리의 퀘퀘한 먼지, 늘 5분 늦는 시계분침까지, 사소한 일상의 결핍 속으로 혹은 뿌리를 내린다. 넘쳐흐르는 과잉이 있지 않는 한 일상의 결핍을 감지해내기는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고 시계바늘은 어디서나 똑같이 24시간을 돌고 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원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온전한 24시간도 어떤 사람에게 와서는 비 새는 양철지붕처럼 구멍 난 하늘이 되고, 움푹 팬 도로처럼 가슴 철렁 내려앉는 바닥이 된다.
모래알처럼 부서진 고래의 몸을 굳이 가져가겠다고 하자, 간호사들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는 고름과 딱지로 얼룩진 고래를 휴지에 돌돌 말아 호주머니에 넣고 병원을 나섰다. 그것은 일곱번째 고래였다. 동시에 내 몸에 남아있던 마지막 고래이기도 했다. 병원을 나서는 등 뒤로 붉은 비린내가 따라온다. 헐값에 고래를 팔아버린 것 같은 부끄러운 죄책감이다.
J를 만날 때마다 함께 피어싱을 했지만, 결국 지금 내게 남아있는 흔적은 고름 진 구멍들뿐. 마지막 고래까지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 몸을 떠나고 말았다. 이것은 꽤 중대한 사실이지만, J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상할 것 없어요. 손톱발톱처럼 익숙한 걸요.”
J는 종(種)으로 따지자면 갑각류에 속했다. 상처가 굳어 돌이 되고 그 결절이 뼈마디마다 박혀있는 갑각류. 울긋불긋 돌아가는 조명 아래서 J의 몸 여기저기에 뿌리내린 날카로운 비수들이 드러났다. 위치도 모양도 제각각인 금속들은 각도와 조명이 달라질 때마다 여기서 반짝, 저기서 반짝하며 제 존재를 알렸다. 오른쪽 귀에 둘, 왼쪽 귀에 하나, 오른쪽 눈썹 끝에 하나, 미간에 하나, 인중에 하나, 말할 때마다 삐죽 나오는 혀에 하나, 덧니 위에 둘, 그리고 옷 속에 얼마나 더 많은 금속들이 숨어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스프링 노트처럼 줄줄이 링으로 엮인 J의 귀는 고개를 까딱거릴 때마다 특유의 쇳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것은 J의 숨소리, 곧 삶이었다. J를 지탱하는 것은 뼈가 아니었다. 금속이 곧 J의 골격이었다. 몸에 구멍을 뚫은 것이 아니라 구멍에 J가 매달린 것 같았다.
“도대체 몇 개나 뚫은 거지?”
“세어보지 않아서 몰라요.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날름 내민 혀에서 화살표 하나가 반짝 빛났다. 세모꼴의 머리가 목청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화살표를 따라 J의 모든 말들이 거슬러 올라간다. 숨소리도 거슬러 올라간다. 웃음도, 울음도, 한숨도 모두 땅에 닿기 전에 목 안으로 흡수되어 J는 늘 표정이 없었다.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늘 담담했다. 처음 만난 날, J에게 5만원을 준 것은 나 역시 그 목을 따라 거슬러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화대는 아니었다. 목을 향해 화살표를 박아 넣은 그 아이와 밤새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내 모든 말, 모든 시간, 모든 숨소리를 J의 목청 안으로 흘려보낼 수 있다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았다.
“화살표를 박은 날 저녁에 뭘 먹었는지 알아요? 라면 먹었어요. 고추 송송 썰어 넣고 끓인 매운 라면이요. 면발이 화살표에 자꾸 닿는 바람에 조금 불편하긴 했죠. 그래도 혀에 구멍이 하나 뚫리니까 산소가 잘 통해서 그런가, 라면 맛이 기똥차던걸요? 냄비 째 다 비우고 식후땡으로 담배까지 한 가치 태웠어요!”
목청을 향해 화살표를 박아 넣은 얘기를 하며 J는 옷을 벗었다. J에게서는 비린내가 났다. 어시장 좌판에서 맡을 수 있는 무딘 비린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 오는 날 녹슨 금속에서 꿈틀대는, 선혈처럼 붉은 비린내였다.
“바늘로 뚫은 거예요. 이게 제일로 아팠어요.”
J의 유두는 목에 칼을 찬 듯한 몰골로 우울하게 질려있었다. 봉긋 솟은 가슴 한 중앙에 달린 은색 링은 고문용 기구를 떠올리게 했다. 링의 둥근 굴곡 위에서 작은 자물쇠가 달랑거렸다. 살과 금속이 맞물린 그 경계지점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J가 작은 몸을 기대왔다. 나는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온 몸이 가려웠다.
“왜 그래요?”
그래, 왜 그랬을까? 아무런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 금속 알레르기라도 발동한 것처럼, J의 몸을 보자 온 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돋아나는 듯 했다.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처음엔 이상하게 보다가도 다들 뭐, 나중엔 더 좋아하던데요.”
J는 가끔 온 몸에 멍이 들곤 했는데, 검푸르던 부위가 상한 사과 표면처럼 누렇게 떠갈 즈음이면 어김없이 그 위에는 수소의 뿔이나 전갈, 기하학적인 형태의 피어스가 등장했다. 그리고 멍이 들 때마다 그녀는 승진을 했다. 아니, 승진을 할 때마다 멍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라미드’ 라고 말하면 꼭 ‘다단계’라고 정정을 하던 그녀는 ‘피라미드’ 란 단어가 주는 아슬아슬한 느낌이 싫다고 했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때마다 그녀는 한 단계씩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오른쪽 팔에 끼워진 매의 부리는 J가 비즈니스에 오를 때 심어진 것이다. 두 달 후, J의 위치가 실버로 올랐을 때는 오른쪽 미간에 불가사리가 하나 등장했다. 먹이사슬과도 같은 구조 속에서 J는 한 단계, 한 단계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카드빚 좀 갚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지 뭐예요? 발을 들여놓은 이상 다이아몬드까지는 가보고 말 거예요. 지금 빼면 죽도 밥도 안돼요.”
점점 불어나는 카드빚을 갚기 위해, 빚 청산의 일환으로 J는 나를 만났다. 그렇다고 해봐야 하룻밤에 내가 덜어줄 수 있는 그 아이의 빚은 고작 5만 원이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편했다.
전화는 계속 불통이다. 몇주째 신호음만 간다. 이 번호가 맞는지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다. J와 만나온 세 달, 그 사이에만 그 아이의 전화번호는 네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나 늘 먼저 연락해오는 쪽은 J였기에 새로운 번호들은 내 손에 익기도 전에 증발되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다림 뿐. 나는 J를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거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도시 모퉁이의 유흥가. J는 그곳에서 오늘도 부업을 하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의 가로수들은 도시의 소음 속으로 길게 목을 빼고 흔들린다. 숭숭 뚫린 이파리 사이로 J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이 가로수길 끝에는 오늘도 여전히 상호에 받침 하나가 떨어져나간 25시 해장국집이 있다. J는 새벽마다 해장국 한 그릇을 가뿐히 비워내는 오랜 단골이었다. J를 만난 첫 날부터 마지막으로 봤던 날까지 함께 해장국을 먹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나는 지폐 몇 장으로 J를 산 것이 미안해서 늘 새벽 해장국을 사주곤 했다.
막다른 골목 하나 없이 이어지는 이 길은 결국 아내의 병원 사거리까지 이어지고야 만다. 그녀는 맞은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그 옆 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를 들고 나온다. 습관적으로 들르는 단골 약국에서 소화제 몇 알을 삼키기도 하고 그 옆 세탁소에 몇 벌의 옷을 한꺼번에 맡겼다가 찾곤 한다. 차는 병원 지하 주차장 2-1 라인에 세워두며, 퇴근 후에는 늘 누군가가 병원 앞 사거리에서 그녀를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는 몇 개월 혹은 몇 주 주기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까지, 내가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은 지금도 꽤 많다.
1년 전 나는 아내로부터 독립했다. 라면박스로 스물이나 되던 이삿짐은 풀어놓으니 모두 딱딱하고 굵은 책들뿐이었다. 달마다 20만 원을 내는 자취방 벽면에 담처럼 책을 쌓아놓으니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지구가 태양을 열 바퀴 도는 동안 나는 한 자리에서 맴을 돌았다. 간혹 아주 색다른 시도를 취한 적도 없진 않았다. 광고기획사에 카피라이터로 들어가 그럭저럭 괜찮은 길을 달릴 때도 있었다. 그 행보가 가장 성공적이었을 때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가 또 한 사람의 이어달리기 주자에게 전달되었음을 알았다. 홀어머니에게서 큰누나, 큰누나에서 둘째누나, 이어서 셋째누나, 그리고 아내에 이르기까지, 나는 여러 주자들에게 전달되는 이어달리기 바통이었다.
방은 좁았지만 천장이 높았다.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오려진, 가로로 기다란 창은 아침마다 납작하게 억눌린 햇살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격자무늬의 창살 그대로 원고지 칸칸만한 햇살이 내려앉으면, 나는 그 공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해가 움직이면 앞에 놓인 상을 들고 햇살이 드는 곳을 찾아 조금씩 몸을 옮겼다.
독립이라고 해봤자 아내의 병원 사거리, 혹은 지금도 그녀가 머물고 있을 아파트 단지에서 채 2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내 생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잠들며, 사흘에 한번씩 장을 보고 30분씩 쌀을 불려 밥을 짓는다. 아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내가 혼자 웅크린 채 잠이 들고 한 달에 몇 번을 제외하고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방에 틀어박힌다는 사실은 늘 같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날짜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내는 깔끔한 성격이었고, 그런 그녀를 위해 냉장고는 철저한 유통기한을 준수해왔다. 싱싱한 채소도 고기도 과일도 3일이 지나면 퇴출이었고, 주마다 한번씩은 대대적인 냉장고 안 정리를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유통기한을 확인하지 않는다. 이미 내 일상은 유효기간을 한참이나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병원 통유리에 얼굴을 갖다댄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올망졸망한 눈동자들은 아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통유리 건너편에서 개털을 깎아주던 미용사가 흘끔 이쪽을 쳐다본다. 아내가 없는 것을 보면 수술중인 것이다. 잠시 후면 식욕도 성욕도 왕성해지겠구나. 그녀의 흰 장갑과 흰 가운을 생각하니, 등이 쭈삣 솟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나는 1년 전 독립했지만, 아직도 기억은 아내에게 세 들어 살고 있다.
‘수컷’ 이 죽기 일주일 전, 그 날도 그녀는 발정 난 개 두 마리의 본능을 거세했다. 그런 날이면 그녀는 꼭 밥 한 그릇을 싹싹 다 비워냈다. 집 안에는 고기를 굽고 생선을 뒤집는 냄새가 진동했다. 고기를 물에 담가두라고 했잖아, 핏물도 다 안 빠졌네, 그런데 왜 이렇게 비려, 씹히는 것도 질기고, 상추말고 깻잎으로 달라니까, 양념장에 생강 안 넣었지, 다음에는 석쇠에다 구워볼까, 야들야들하고 괜찮다던데…….
으르렁거리는 개를 거세하고 나면 잃어버린 식욕을 되찾기라도 하듯 아내는 거한 식사를 했다. 시퍼런 채소를 한 젓가락씩 집어들고 두툼한 고기를 몇 점씩 겹쳐 쌈을 쌌다. 고기 한 근이 그녀의 입안으로 우걱우걱 들어가는 동안 나는 마주앉아 양념장이며 야채며 물 따위가 떨어져 그녀의 식욕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챙겼다. 고기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지만, 월례행사처럼 이어지는 그녀와의 겸상에서 먼저 일어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언성을 높이거나 크게 뜬 눈으로 쏘아보는 것도 싫었지만, 그녀의 밥상 앞을 지켜야 할 좀 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녀가 숟가락을 놓고 상을 물리고 나면, 나는 생활비 내역이 쓰인 종이를 내밀며 한 달 생활비와 담뱃값을 타냈다. 집 안에 틀어박힌 지 두 해가 지났지만, 그녀는 한번도 내게 실망의 기색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빨리 일을 찾아보라고 종용하거나 눈치를 주는 일도 없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버둥거리다가 3개월을 못 넘기고 주저앉았을 때도, 입시학원에서 잘렸을 때도 개의치 않았다. 모든 것은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 역시 그녀의 삶에 참견할 의무 혹은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가 내 오랜 실직과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같은 시, 야무지지도 여유롭지도 않은 성격에 침대에서의 무능까지 모든 것을 담담하게 넘기듯이 나 또한 그녀의 잦은 외박과 대담한 연애, 일방적인 결정권을 모두 참고 넘겨야만 했다. 그것은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어느 한 쪽이 포기를 선언해야만 깨지는 법칙 말이다.
그러한 불문율이 깨지지 않는 한, 집 안은 늘 평온했다. 단지 조금 무심할 뿐이었다. 그녀가 없는 집, 유일한 가족은 ‘수컷’ 뿐이었다. 3개월 된 코커스파니엘 수컷. 그녀 말에 의하면 순종은 아니었다. 길 잃은 개를 거두는 데 선뜻 응한 그녀였지만, 그 이상은 역시 기대하기 힘들었다. 개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까 묻자 그녀는 심드렁한 얼굴로 “수컷”이라고 말했다. 그걸 이름으로 하자고? 그녀는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수컷이지 암컷이냐?”
그녀는 개의 코만 보고도 종을 가를 수 있을 만한 전문가였지만, 사실 그녀에게 개란 두 종류뿐이었다. 온순한 개와 그렇지 않은 개. 온순하던 개도 발정기에 접어들면 산만하고 공격적이 되기 마련이었으므로, 다시 말하자면 중성화수술을 거친 개와 그렇지 않은 개로 나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성화 수술 전문의이기도 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손에 개를 맡겼지만, 정작 그녀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개를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의 팔에 상처가 난 것은 수컷을 들인지 얼마 후의 일이었다. 수컷은 그 즈음 벽에 기대거나 컹컹 짖는 등 발정증세를 보였는데, 그 날도 그녀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들어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거 뭐야, 얼른 치우지 못해? 이런 개새끼가 발정이 났나!”
그녀 손에서 수컷이 떨어졌다. 둔중한 쇳소리도 함께 떨어졌다. 삽이었다. 현관 한 켠에 세워두었던, 녹슨 삽이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수컷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무릎을 굽혀 수컷의 목을 꾹 눌러보았다. 잠깐, 그녀의 숨이 멎는 듯도 했다. 그녀의 미간에 푸른 강이 발끈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곧 잠잠해졌다. 그녀는 손을 탈탈 털고 일어섰다.
“진작에 나한테 말했어야지, 수술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꽝.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수컷의 눈은 꼭 감겨 있었다. 어떤 미동도 감지되지 않았다. 성큼성큼 걸어가 화장실의 문고리를 비틀었다. 찰칵찰칵 잠금 장치의 차가운 쇳소리가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욕실 벽에 귀를 대자 그녀가 손을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누로 하얗게 거품을 내는 소리, 거품 사이로 그녀의 손이 말갛게 드러나는 소리, 미지근한 물로 거품을 녹이는 소리. 그녀는 일상을 이해 못할 박자로 헝클어놓고도 늘 그렇게 평온하고 단정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욕실 문에 기댄 채 입을 열었다.
“장례식 해주고 싶어. 수컷 말이야.”
“뭐?”
“요즈음에는 개들도 죽으면 그런 거 해준다는데. 수컷도 장례 치러 주고 싶어.”
“개도 개 나름이지. 장례 한번 치르는 값이면 저런 개 서너 마리는 더 살 수 있어.”
“돈을 빌려주면, 내가…….”
“얼빠진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줘.”
결국 돈이 없는 나는 혼자 힘으로 수컷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수컷을 이불로 돌돌 말아서 내 방 한쪽에 두었다. 아직 이렇게 따뜻한데 온기가 식기도 전에 땅에 묻을 수는 없었다. 온 몸이 노곤노곤해지며 피로가 몰려왔다. 한 잠 자고 일어나면, 내일 아침이 되면 수컷의 방울 소리가 다시 들릴 것도 같았다. 그러나 다음날, 그 다음날이 되어도 수컷은 깨어나지 않았고 그 다음날이 되자 수컷의 몸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돌돌 말았던 이불도 함께. 이불 채로 수컷은 증발했다. 둘 중 하나였다. 수컷이 환생해 움직였거나,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수컷을 치운 것이었다. 물론 그 누군가는 그녀다.
이틀 후 수컷은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수컷을 들어올렸다. 집게 끝에 라면 찌꺼기와 물에 젖은 밥풀이 딸려왔다. 울렁, 속이 요동쳤다. 토할 것만 같았다. 참담한 수컷의 몸 때문이 아니었다. 역한 냄새 때문도 아니었다. 나를 흔든 것은 바지춤 사이로 밀고 나오는 혹이었다. 발정이 났나, 이 개새끼가. 발정이 났나, 이 개새끼가.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눈 앞이 노래졌다. 온 몸의 무게중심이 사타구니 사이로 쏠리면서 하늘이 팽글팽글 돌았다. 멀리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또각 땅을 찌르며 걸어오는 그녀의 손에 날이 시퍼런 가위와 칼이 들려있다. 싹둑, 싹둑. 성기가 동강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지가 축축했다.
수컷의 죽음 이후 한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코 앞에서 개가 펑 터져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꿈을 자주 꿨다. 그 조각조각을 기워서 하나의 무늬를 맞추면 완성된 퍼즐 위에는 나의 축 늘어진 어깨가 어른거렸다. 흰 가운의 그녀도 자주 등장했다. 식욕도 성욕도 왕성한 그녀는 꿈 속에서도 늘 내 성기가 좀 더 자라기를 강요했다. 그리고 자랄 때마다 동강동강 잘라버렸다. 그녀의 가위 혹은 이빨 달린 성기를 피하기 위해 나는 미로를 헤맸다. 거세당하지 않기 위해 온 밤을 헤매고 다녔고, 아침이 되면 늘 축 늘어진 몸으로 깨어나곤 했다.
발이 멈춘 곳은 DEAD. 음울한 간판을 발이 먼저 알아본다. 사면을 빼곡하게 채운 금속들과 급소를 표시해둔 듯한 인체도, 어두운 조명 아래 사방 천지로 뚫고 꿰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아령, 자물쇠, 별, 하트, 선글라스, 십자가, 숫자와 알파벳,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 번뜩이는 금속 사이에서 내 손가락은 버릇처럼 고래로 향한다. 고래 성기가 3m까지 발기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이가 아내였나, J였나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건 나는 처음부터 고래가 마음에 들었고, 중독처럼 일곱 마리의 고래를 심어왔다. 고래는 내 삶을 지탱해줄 말뚝, 내 등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다. 내 몸에 뿌리내린 고래의 길이는 1.6cm. 그러나 그 안에는 3m로 팽창하는 꿈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귀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피어서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연고 발랐네요? 귀에 덧났나 봐요?”
“제발 부탁인데, 마취약 같은 거 사용하지 말고 그냥 아프게 찔러주세요.”
피어서는 염증이 생긴 귀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러나 구멍을 내는데 염증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염증보다 더 두려운 것은 외로움이다. 구멍을 뚫을 수 없다는 말에 온 몸이 근질근질 가려워진다. 어떤 금단 증상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싶다. 은색 고래 몇 마리를 사들고 DEAD를 걸어 나온다. 이곳은 처음부터 썩 내키지 않는, 왠지 불쾌한 공간이었지만, 그 불쾌감을 사기 위해 나는 돈을 지불했다. 하루에 반 갑씩 태우는 담배와 끼니를 위한 생필품 외에 다른 지출내역으로는 DEAD가 유일했다. J때문이었다.
“어차피 시간문제예요. 하나 뚫게 되면 줄줄이 꿰뚫게 될 테니까.”
DEAD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피어싱할 부위를 표시한 인체도였다. 그것이 내게는 사격장의 과녁처럼만 보였다. 부위마다 보이지 않는 점수가 걸려있고, 인체도의 모든 부위를 섭렵해야 만점을 얻을 수 있는 과녁.
“개인적으로는 혀가 가장 좋아요. 입 안에서 갖고 놀 수가 있거든.”
J의 의견대로 나는 혀에 굵은 고래 한 마리를 박았다. 의자에 앉아 혀를 길게 내밀었다. 오랫동안 먹지 않아 입 안 가득 고여 있는 구취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치아로 혀를 잘근잘근 씹으세요, 마사지를 충분히 해야 덜 아파요, 피어서의 말대로 나는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메롱하고 혀를 내밀어요.”
“메롱.”
따끔. 고압전류가 흘렀다. 너무 얼얼한 나머지 고통의 정도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꼭 눈을 감았다 뜨니 차갑고 뾰족한 말뚝 하나가 박혀있었다. 내 몸을 모두 의지할 만한, 튼튼하고도 위험한 말뚝이었다.
2주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내가 고래를 몸의 일부로 인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혀는 차가운 금속성 종기에 매여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 며칠은 아침마다 얼얼한 몸을 붙들고 한참을 씨름해야 했다. 뜨겁거나 차가운 국물을 마시면 혀는 놀란 미꾸라지처럼 팔짝 뛰었고, 말할 때는 조금씩 발음이 새기도 했다. 이를 닦을 때도 조심스럽게 칫솔질을 해야 했고, 행여나 담배라도 한 대 물면 쇠붙이에 불이 옮겨 붙는 건 아닌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노이로제에 걸려 입 안 가득 혓바늘이 돋았다.
뾰족하게 돋아 오른 혓바늘은 모든 음식물을 밀어냈고, 지독한 설태만 쌓여갔다. 얼얼함을 잊기 위해 몰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았으나 그럴수록 상처는 더 아프게 흔들렸다. 흔들리고 흔들리다가 마침내는 이상한 열망처럼 부풀어올라 아주 단단한 구슬처럼, 혹처럼 변해버렸다. 금속과, 그 금속이 닿은 부위 모두가 딱딱하게 굳어져 붉은 빛으로 부었고, 밤마다 혹이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몇 주가 더 지나자 고래는 자연스레 둥지를 틀었다. 마치 전부터 있었던 세포 돌기의 하나처럼 금속은 혀 속에 박혀 있었다. 더 이상 고름이 나지도 않았고 발음도 예전 같게 되었다. 가끔 껌이 들러붙거나, 라면 면발이 꼬리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 무디어졌을 무렵 J에게서 연락이 왔다. 근 한 달 만에 만난 우리는 시내를 누비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서로의 혀가 어떤 감촉인지를 교환하기로 했다. 혀 깊숙이 뿌리박은 두 개의 금속이 입 안에서 부딪혔다. 고래가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온 몸으로 발기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구멍을 뚫었다. 그 만남을 지속하는 동안 내게도 일곱 개의 구멍이 생겼다. J의 말처럼 시작이 어려웠을 뿐이었다. 살을 뚫을 때의 쾌감은 그 순간으로 끝이었다. 영구적인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마치 중독처럼, 어딘가를 뚫을 때 이미 그 다음 차례를 모색하게 되었다. 피어싱은 몸 위에 기록하는 대화였고, 그렇게 하면 외로움이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피어싱은 내 몸에 하나 둘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몸에 새 구멍이 하나씩 뚫리고 그 속으로 철심이 길게 뿌리를 박는 날이면 우리는 한 층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가능하면 세상이 좀 더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곳, 일상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올라 손바닥 하나로 가려질 만큼 작은 거리며 건물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J는 오늘도 연락이 없다. 그 아이가 자주 나타나던 곳을 온통 헤매고 다녔지만, J는 보이지 않았다. 세 달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DEAD에서 사온 은색 고래가 닳도록 몇 번이나 만지작거린다. J가 다이아몬드 단계까지 승진하게 되면 이걸 그 아이의 몸에 심어줄 생각이다. J는 운동장에 떨어져있던 헌 바통을 들고 뛰어주는 새로운 달리기 주자다. 담배와 술로 얼룩지다가 동이 터서야 까무룩 잠이 드는,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에야 겨우 구취 속에 깨어나는 내 생활을 J는 이해해주었다. 나 역시 생계를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J를 이해했다. 그것은 아내와 나 사이에 흐르던 방관적인 기운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J가 달릴 때는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것이 지옥의 나락이든 천국의 반대방향이든간에 우리는 한 곳을 향해 함께 달리고 있었으니까.
아내와 나 사이는 편집상의 실수로 발생한 파본과 같았다. 아내의 생활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잘못 끼어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구석이 딱 한 페이지 있었고 그것이 바로 나였다. 그러한 확신의 절정은 수컷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왔다.
“나 임신했다.”
고기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어 보이며 아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으며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임신했다고, 나.
그 순간, 그녀를 변기로 밀어붙인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녀의 등 위로 거친 손바닥을 세차게 내려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토해, 토하라고! 소리지른 것도 내가 아니었다. 찰싹, 뺨에 불이 붙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나는 잠시 내가 아니었다. 퍼뜩, 정신이 들고 보니 그녀가 떨어뜨린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뻘건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돼지 목살. 저 고약한 돼지 목살, 고약한 돼지 목살. 그녀가 몸을 탈탈 털고 일어서는 순간, 나는 변기를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아이 갖고 싶어했잖아. 잘 된 거 아니니? 입양하자 어쩌자 하는 판에.”
아니야. 갖고 싶지 않았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소리로 내뱉기에는 목이 너무 쓰라렸다. 어차피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몇 번째 애인의 아이일까? 저번에 얼핏 봤던 그 사내일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나와 비슷한 놈의 아이였으면.
“날 알아볼까?”
“당연하지, 아빤데.”
이로써 그녀는 나의 부권을 인정했다. 그녀와 내가 5년 동안 가정을 지켜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같은 신뢰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공평하잖아.’ 라고 말했다. 그녀는 돈을 벌고 나는 살림을 하고 그녀는 애를 낳아오고 나는 그 애를 키운다는 식의 아주 평등하고 합리적인 가정살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임신이라니, 어쩐지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담배 한 대가 간절했으나 집 안은 금연이었다. 터덜터덜 밖으로 나온 나는 약국에 들어가 임산부를 위한 철분제를 사고, 정육점에 가서 소꼬리를 사고, 과일 가게에 가서 뽀얀 복숭아도 한 봉지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권을 한 장 샀다. 오늘 날짜로 여섯 자리를 찍었다. 꽝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꽝이었으면 좋겠다.
임신 3개월, 4개월이 지나도록 그녀의 배는 불러오지 않았다. 입덧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신경도 예민해졌지만, 그녀의 배는 잠잠했다. 6개월이 지나고, 9개월이 지나고, 그리고 그녀의 상상이 만삭이 되었을 때, 헛배를 가르고 나온 것은 10달을 곪은 종양뿐이었다.
아내도 불임이었다. 내가 참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철저한 임산부였던 그녀가 한번도 병원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믿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불신, 그리고 믿고 싶은 것에 대한 강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불임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믿지는 않았다.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의 상상은 결국 자궁까지 도려냈다. 속이 텅 비어버린 그녀는 바싹 마른 입술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하나는 자궁이 없고, 하나는 정자가 없어. 공평하구나.”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우리는 헤어졌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나는 운동장에 바통 하나가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5년 남짓한 생활은 막을 내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는 동그랗게 혹으로 부풀었다. 언제든 찌르면 노랗게 달뜬 열망들이 터질, 그런 혹 말이다.
집으로 가는 골목은 달의 분화구처럼 군데군데가 움푹 패여 있다. 길고 좁은 골목을 지나 비탈진 경사면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은 늘 무게중심이 한 쪽으로 쏠려 있다. 깍두기처럼 배열된 창문들은 언제든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문고리가 힘겹게 비틀린 채 삐그덕 열린다. 한없이 높아 보이던 천장은 석 자쯤 내려와 있다. 재떨이 안의 담배꽁초는 새끼손가락만큼 자라있고, 눅눅한 이불은 한없이 가벼워져 있다. 반쯤 구겨진 맥주캔이 휘청 허리를 펴고, 십 분에 일 센티씩 낯설어지는 방 위로 소독하듯 원고지 칸칸 만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그물처럼 바닥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니 한 줌 가득이다. 길게 구불거리는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J외에는 드나든 사람이 없으니 분명 J의 머리카락인데, 바닥을 쓸고 닦은 기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이건 아주 오래 전에 흘려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상 위에 올린다. 상 밑으로 빨간 지갑이 하나 떨어져있다. J는 신분증이 없다. 신용카드가 가득한 지갑 한 켠에서 찾아낸 것은 기한 지난 복권들 뿐. 꼬깃한 복권 속에는 생명력 잃은 숫자들이 난무한다.
뭔가 잘못이라도 있었던 걸까? 더듬어보면 문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저 남녀 사이에 흔히 일어나고 또 흔히 잊는 사소한 다툼이었을 뿐이다. 그 날도 나를 먼저 찾은 쪽은 J였다. 함께 술을 마신 후 나는 J를 집으로 데려와 재웠다. 그 날 J는 취했다. 평소보다 화장이 좀 짙었던 J는 그날따라 자주 웃었다. 비음 섞인 헤픈 웃음, 그것은 J와 어울리지 않았다. 짙은 향수도 그랬다. 나는 늘 그랬듯이 5만원을 주고 그녀의 유두를 비틀었다. 그 순간, 기겁하며 소리를 꽥 지른 J.
“징그럽게!”
징그럽다고?
J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애 같잖아요, 꼭.”
애 같잖아. 그 말은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침대에서 그녀는 늘 내게 애 같다고 했다. 물론 그것은 아내였지, J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J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J를 달래며 다시 한번 유두를 잡았다. 영화 속 기계공처럼 비틀고 또 비틀기 위해서. J는 화를 내며 몸을 뺐고,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고리가 사라져있는 것을.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고리가 없었다.
“언제 뺐지?”
“빼다뇨, 뭘요.”
“여기에 걸었던 쇠고랑 말이야. 춘향이 칼 같던 쇠고랑, 그게 나에 대한 정절의 표시라고 했잖아.”
“뭔 소리야. 이 아저씨, 정말?”
나는 담배를 피워 무는 J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유두를 깨물고, 또 깨물었다. 역한 향수 냄새 밑으로 J의 선혈처럼 붉은 비린내가 맡아질 때까지 깨물었다. J의 팔이 거세게 내 몸을 밀었다.
“아저씨, 이럴 거면 5만원 갖고 안돼요.”
솔직히 말하자면 J는 반쯤 미쳐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J의 몸을 확인해야 했다. J의 가슴에도, 팔에도, 귀에도 금속은 없었다. 그녀의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말랑말랑하기만 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없었다. 그토록 내가 사랑하던 화살표가 사라진 것이었다. 목청으로 넘어간 걸까? 그 새?
“대체 언제 뺀 거야. 말도 없이.”
“괜히 눙치지 말고 빨랑 대답해요, 5만원 갖고는 안돼요.”
J는 딱, 딱, 소리가 나도록 껌을 씹었다. 규칙적이고도 분명한, 뾰족한 소리였다. 아내의 높은 구두굽이 차가운 복도와 부딪히던 소리.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네? 나는 그런 J의 몸을 아스러지도록 안았다.
“짱나, 정말. 웬 재수 똥통이냐, 오늘.”
내 팔을 밀어낸 J는 딱딱 씹던 껌을 빼서 벽 귀퉁이에 붙이고는 재떨이에 침을 퉤, 뱉었다.
“5만 원에 할 테니까 빨리 해요. 바쁘단 말예요.”
치마를 내리고 방바닥에 떡하니 드러누운 J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다.
“5만원에 해준다니까요, 대신 빨리 좀 하라구요!”
J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허리춤을 풀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J의 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왔지만, 조금도 흥분되지 않았다. J가 내뱉는 교태 섞인 신음 소리도 공허할 뿐이었다. 나는 J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정신차려, 제발, 정신차려!
너무 심하게 흔든 걸까? J는 가겠다며 일어섰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입은 J가 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J는 이미 내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J의 다리를 붙잡았다. 붙잡고 밀치는 사이에 J가 넘어졌다. 나는 J의 얼굴에 대고 절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같이 있어줘, 그리고 부탁이야, 그 화살표를 어쩐 거야, 내가 얼마나 그걸 사랑했는지 알잖아, 그냥 목으로 삼켜버린 거야?
“이 변태 같은 놈아!”
찰싹, 뺨에 불이 붙는 소리. 나는 화끈거리는 뺨을 감싼 채 멀뚱히 J를 바라보았다. J는 겁에 질려있었다. 나는 화가 난 J를 안아주기 위해 팔을 뻗었다. 순간, 머리 위로 둔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서 재떨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손에 묻어나는 것은 시뻘건 피였다. 이러지 마, 이러지 마 J. 나는 J의 몸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내 머리에 상처가 난 것쯤은 괜찮았다. 너무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J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J의 뒤로 쌓여진 거대한 책이 커다란 어둠처럼 보였다. 눈 위로 뜨거운 물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이리 와, 이리 와.
J는 책으로 쌓인 벽면에 등을 바짝 붙였다. 두 손을 싹싹 모아 빌면서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듯 했으나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내가 온 몸의 고래를 발기시킬게, 그럼 되잖아, 더 이상 애 같다고 말하지마, 제발, 제발…….
와르르, J가 나를 피하면서 높이 올려진 책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두꺼운 양장본의 모서리가 관자놀이를 짓누른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토록 사랑하던 책더미 밑에 J가 깔려있었다. 나는 J를 끌어올려 손목이며 눈자위에 흐른 피를 닦아주었다. J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나는 DEAD에서 산 고래를 꺼내 J의 성기와 유두와 미간과 혀와 온 몸에 박아주었다. 그 때서야 J는 고래를 기억하는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저기, 안에 아저씨 있어요?”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운 지 얼마나 지났나, 깜빡 잠이 들었나.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 주인 여자다.
“아니, 몇주째 왜 코빼기도 안보여요?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오늘도 잠겨져 있으면 사람 불러 문 따려고 그랬다고.”
“왜요?”
“왜긴 왜야, 이 냄새 안나요? 이게 웬 썩는 냄새야. 응?”
코를 킁킁거려보지만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다.
“아휴, 지금 이 방에서 나는 거잖아, 악취도 이런 악취가 어디 있어. 좀 비켜 봐요.”
덜컹, 젖혀진 문 뒤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태풍이 지나간 듯 어지러운 방에서 사물들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다. 반쯤 열린 서랍, 서랍 위로 삐져나온 옷가지들, 바닥에 눌어붙은 담뱃불, 쓰러진 책들, 굵은 국어 대 백과사전, 낡은 동물도감과 식물도감, 그리고 그 밑에 누워있는 까만 점 하나. 까만 점도 자라난다. 둥글게, 둥글게, 조금씩 커져 가는 까만 점, 까만 원, 그리고 까만 머리통, 그 옆으로 뻗어있는 가느다란 팔 두 개.
이불에 돌돌 말려진 그것은 사람이었다. 울그락불그락 붉고 푸른 피꽃이 얼굴 가득 퍼진 젊은 여자. 몸 가득 고래를 박아 넣은 갑각류. 나는 오랫동안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낯설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그리고 어쩌다 한 번은 만나게 될 법한 얼굴인데 낯설기만 하다. 이 사람은 왜 여기에 있나. 그리고.
J는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