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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주요 쟁점들
언어와 문화
번역의 과정을 탐구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번역이 기본적으로 언어 행위의 주된 핵심이긴 하지만 기호 체계나 구조, 기호 처리 및 기호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인 기호학에 가장 적절히 속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p41)
번역이란 어떤 한 단위의 언어 기호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사전과 문법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다른 단위의 언어 기호로 변환시키는 것이다.(p41)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는 "언어란 사회 현실로 인도하는 안내자“라고 말하며 인간이 사회생활의 표현 매체인 언어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였다. 사피어는 또한 경험이란 주로 공동체의 언어 습관에 의해 결정되고 각각의 개별적 구조는 개별적 현실을 나타낸다고 역설하였다.(p41)
사피어의 논문은 훗날 벤야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도 지지한 바 있고, 소련의 기호학자 유리 로트먼(Juri Lotman)이 보다 최근에 언어를 하나의 모형 체계라고 주창한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로트먼은 일반적인 문학과 예술을 이차적 모형 체계라고 기술했는데, 이것은 바로 문학과 예술이 언어라는 일차적 모형 체계에서 파생된 것임을 암시해 준다. 또한 로트먼은 “어떠한 언어도 문화라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떠한 문화라도 그 중심에 자연 언어의 구조를 갖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사피어나 워프에 못지않을 만큼 주장했다. (p42)
번역의 유형
로만 야콥슨(Roman Jacobson)은 「번역의 언어학적 국면에 관하여」(“On Linguistic Aspects of Translation")라는 그의 논문에서 번역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p42)
1)언어 내 번역, 또는 바꿔 쓰기: 동일한 언어 내에서 언어 기호를 다른 기호로 해석
2)언어간 번역, 또는 전정한 번역: 언어기호를 어떤 다른 언어로 해석
3)기호간 번역, 또는 형태 바꾸기: 언어 기호를 비언어적 기호 체계의 기호로 해석
이상의 세 가지 유형 가운데 2)번의 진정한 번역이 원천 언어에서 목표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야콥슨은 이 세 유형을 설정하고 난 후 번역에 관해 누구나 공통으로 갖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계속 지적해 낸다. 그의 요지는, 메시지가 부호 단위를 적절히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번역을 통한 완전한 등가는 통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명백한 동의어조차도 등가를 갖지 못한다. 야콥슨은 언어 내 번역을 하는 경우에 종종 한개 단위의 의미를 완전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부호 단위들의 결합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p43)
야콥슨은 자신이 분류한 어떠한 범주에서도 동의어나 동일성이란 의미에서의 완전한 등가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시(詩)예술은 기술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p43)
이러한 야콥슨의 주장을 프랑스 이론가인 조르쥬 무넹(Georges Mounin)은 다시 자신의 연구 분야로 삼았다. 무넹은 번역을 일련의 조작이라고 인식했는데, 그 조작의 출발점과 결과물은 곧 특정 문화 속에서의 의미와 기능이다. 예를 들어 pastry라는 영어 단어의 ‘동의어’를 이태리어 사전에서 찾을 수는 있겠지만 만약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이태리어로 옮긴다면 문장 속에서 적절한 의미를 살리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이태리어 pasta는 완전히 다른 연상 영역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번역자는 대략적인 등가어를 찾기 위해 여러 단위들의 결합에 의지해야 한다. 야콥슨은 영어로 대충 cottage cheese(연하고 흰 치즈)라고 번역되는 러시아어 syr(발효된 압축 응유로 만든 식품)를 예로 든다. 야콥슨에 따르면, 이 번역은 이질적인 부호 단위에 대한 적절한 해석에 불과하며, 그 두 단어 사이에 등가성은 있을 수 없다.(p44)
부호 해독과 재부호화
번역자는 단순한 언어적 수준을 초월하는 기준을 운용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부호 해독과 재부호화 과정이 일어난다. 번역에 대한 유진 나이다(Eugene Nida)의 모형은 그와 관련된 여러 단계들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원천언어 수신언어
원문 → 분석 → 전이(轉移) → 재구성 → 번역문
언어간 번역을 할 때 얼핏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 같지 않지만 복잡한 문제가 수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yes와 hello를 불어 ․ 독일어 ․ 이태리어로 번역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불 어: oui, si
독 일 어: ja
이태리어: si
불어에 두 용어가 있다는 것은 다른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용법이 포함되어 있음을 명백히 암시한다. 불어의 oui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지만, si는 모순이나 논쟁이나 이의를 표현하는 특수한 경우에 쓰인다..(p45)
영어에서는 직접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인사할 때 쓰는 어휘와 전화를 받을 때 쓰는 어휘를 구별하지 않는 반면, 불어 ․ 독일어 ․ 이태리어에서는 반드시 그런 구분을 한다. 이태리어 pronto는 독일어 hallo와 마찬가지로 전화 통화 시 인사말로만 사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불어와 독일어는 인사 형태로서 간단한 수사적 질문을 사용하는 데 반해, 영어에서 이와 똑같은 형태의 의문문인 How are you?나 How do you do?는 좀더 의례적인 상황에서만 사용된다. 이탈리아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인사 형태인 이태리어 ciao는 도착시나 출발시에 똑같이 사용되며, 오고가는 개인들 간의 접촉 순간과 관련된 어휘이지 도착시의 특정 상황이나 초면의 경우와 같은 상황에 맞는 어휘가 아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hello를 불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임하는 번역자는 우선 그 용어로부터 의미의 핵심을 추출해야 하며, 이때 일어나는 과정의 단계를 나이다 도표에 따라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출발 언어 수신언어
HELLO→ 도착시 다정한 인사→ 전이→ 사용가능 한인사말 형태를 구분하기 위한 결정→ ҪA VA?
위의 번역과정에서 일어난 것은 인사말의 개념이 분리되어 hello라는 어휘가 같은 개념을 갖는 문구로 대체된 것이다. 야콥슨은 이를 가리켜 언어간 치환이라고 기술한 반면 A 루즈카노프(Ludskanov)는 기호의 변형(semiotic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p46~47)
기호 변형의 문제는 영어 butter와 같은 단순한 명사를 번역하려 할 때 그 범위가 더욱 확대 된다. 소쉬르(Saussure)에 의하면, 기의(시니피에) 즉 버터의 개념과 기표(시니피앙) 즉 butter라는 단어로 만들어지는 소리의 이미지 사이의 구조적 관계가 언어 기호인 butter를 구성한다. (p48)
퍼스(Firth)는 ‘의미’를 가리켜 “상황적 문맥을 구성하는 용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의 복합체”라고 정의하며 Say when 이라는 영어 구문을 인용한다. 이 문구는 그 어휘들이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문구를 번역할 때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기능이지 어휘 자체는 아니다. 이 번역 과정에는 목표 언어의 언어적 요소로 대체하고 치환하는 결정이 포함된다. 퍼스가 지적하듯이, 이 문구는 영어권의 사회적 행동 패턴과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구를 불어나 독일어로 옮기는 번역자는 그 두 문화권에 이와 비슷한 관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불어 Bon appetit을 영어로 옮기는 번역자 역시 이 문구가 주어진 상황에 의존하는 표현이기에 그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힌다.(p51~52)
번역자는 원문과 대체로 비슷한 뜻을 갖는 목표 언어의 문구를 선택하는 문제에 더해서 해석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기에 정확한 번역이란 불가능하다.(p52)
영어로 어떤 표현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 번역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1) 언어적 수준에서 일차 언어 구문을 이차 언어로 옮길 수 없는 번역의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2) 이차 언어에 유사한 문화적 습관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3) 일차 언어에서 화자의 신분 ․ 지위 ․ 연령 ․ 성별의 제시와 화자와 청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정황을 참작하여 이차 언어에서 사용 가능한 구문의 범위를 고려해야 한다.
4) 연극 대본에 나오는 긴장의 순간과 같은 특별한 정황 속에서 구문이 갖는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5) 관련된 두 체계(텍스트의 특정 체계와 텍스트가 생겨난 문화 체계)에서 일차 언어 구문이 지니고 있는 불변의 핵심을 이차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레비(Levy)는 번역할 때 어려운 부분을 빼거나 축약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번역자란 아주 어려운 문제까지도 해결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레비는 번역자가 의미뿐 아니라 문체와 형식과 관련하여 번역의 기능적인 견해도 함께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방대한 성서 번역에 대한 연구와 개별적인 성서 번역자들이 독창적인 해결책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방법에 대한 탐구는 특별히 기호 변형 사례에 대한 풍부한 원천이다.(p53)
번역에서 초점은 언제나 독자 또는 청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따라서 번역자는 번역문이 원문에 잘 부합할 수 있도록 우선 출발 언어 텍스트에 철저히 매달려야 한다. 부합의 성격은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나 그 원칙은 불변하다.(p54)
일차 언어문화의 가치 체계를 이차 언어의 문화 구조에 투사시키려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따라서 번역자는 자족적(自足的)인 텍스트를 바탕으로 원저자의 본래 의도를 결정할 수 있는 듯 주장하는 학파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번역자는 일차 언어 텍스트의 저자는 될 수 없지만, 이차 언어 텍스트의 저자로서 이차 언어 독자에게 확실한 도덕적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p54)
등가의 문제
관용구의 번역은 의미와 번역의 문제를 고려함에 있어서 언어유희와 마찬가지로 문화에 의존한다. 이태리 관용구인 menare il can per l' aia는 번역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환의 종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Giovanni sta menando il can per l' aia 이 이태리어 문장을 영어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이 옮겨진다. John is leading his dog around the threshing floor.〔존은 개를 끌고 탈곡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이 문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약간 놀라운 것이다. 주어진 정황이 그런 장소를 아주 구체적으로 가리키지 않는다면 이 문장은 모호하거나 사실상 거의 무의미할 것이다. 상기한 이태리어 관용구에 가장 가깝게 부합하는 영어 관용구는 to beat about the bush인데, 이 또한 관용적으로 쓰이지 않는 한 의미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의 이태리어 문장을 정확히 영어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이 된다. John is beating about the bush. 〔존은 요점을 말하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린다.〕
여기에 영어와 이태리어 모두 ‘얼버무림’의 개념을 나타내는 대응적인 관용적 표현을 가지고 있다.(p54~56)
은유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다귀(Dagut)의 주장을 관용구를 번역할 때 생기는 문제에 적용해 보면 아주 흥미롭다. 그러나 다귀가 이렇게 “번역”과 “재생”을 구분한 것은 캣포드(Catford)가 “글자 그대로의 번역”과 “자유로운 번역”을 구분한 것과 마찬가지로 번역을 기호적 변형으로 보려는 견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포포비치(Popvic)는 번역의 등가를 정의하면서 그 유형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구분한다.
1) 언어적 등가: 출발 언어 텍스트와 도착 언어 텍스트의 언어적 수준에 동질성이 있는 경우로 단어 대 단어의 일 대 일 번역을 말한다.
2) 어형 변화적 등가: “어형 변화적 표현 축을 구성하는 요소들,” 즉 문법의 요소들에 등가가 있는 경우로서 포포비치는 이것을 어휘적 등가보다 한 단계 높은 범주로 간주한다.
3) 문체적(번역적) 등가: “원문과 번역문에 요소들의 기능적 등가가 있는 경우로, 언제나 불변하는 동일한 의미와 표현상의 일치를 목표로 삼는다.”
4) 텍스트적(통어적)등가: 텍스트의 통어적 구조에 등가가 있는 경우로 형식과 형태의 등가를 가리킨 다.(p56~57)
번역이란 언어간에 어휘적이거나 문법적인 구성 요소를 대체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관용구와 은유를 번역할 때 볼 수 있듯이 번역 과정은 원문의 기본적인 언어 요소를 완전히 배체할 수도 있다. 이는 출발 언어와 도착 언어의 텍스트 사이에 ‘표현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포포비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번역자가 가까운 언어적 등가에서 벗어나면 자신이 목표하는 등가의 수준이 정확히 뭔지를 결정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p57)
노이베르트는 “번역에 관한 완벽한 이론의 구성 요소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동적 모델과 정적 모델 모두에 해당될 수 있는 등가 관계 이론인 것 같다”고 말한다. 번역연구에서 많이 사용되고 또 남용되기까지 하는 등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p58)
유진 나이다(Eugene Nida)는 등가를 형식적 등가와 동적 등가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며, 전자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똑같이 메시지 자체에 중점을 둔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번역에서 우리는 시(詩)대(對)시, 문장 대 문장, 개념 대 개념과 같은 대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이다는 이런 유형의 번역을 가리켜 “주해(註解)번역”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원작의 많은 정황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 번역이다. 동적 등가는 등가 효과, 즉 도착 언어 독자와 번역문간의 관계가 출발 언어 독자와 원문간의 관계와 같아지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p58)
한때 어느 특정 문화권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등가 효과의 원리는 우리를 추측에 빠뜨리고, 때로는 아주 모호한 결론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형식이 갖는 의미가 현대 유럽에서 산문의 형식이 갖는 의미와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호메로스를 영어 산문으로 번역하기로 한 E.V.류(Rieu)의 의도적 결정은 텍스트의 형식적 특성에 동적 등가를 적용한 경우인데, 이는 나이다가 분류한 등가의 유형이 실제로는 서로 상충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p59)
포포비치는 이 불변의 핵심이 텍스트에서 안정적이고 기본적이며 변치 않는 의미론적 요소들에 의해 나타난다고 주장하는데, 그 불변의 핵심이라는 존재는 실험적인 의미의 압축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변형 또는 변체(變體)란 의미의 핵심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형식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이다.(p59)
노이베르트는 번역의 등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번역 등가를 텍스트 이론의 관점으로부터 피어스(Pierce)의 분류에 따라, 통사론적, 의미론적, 화용론적 구성 요소로 이루어지는 기호학적 범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 구성요소들은 수직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관계에서는 의미론적인 등가가 통사론적인 등가에 우선하고, 화용론적인 등가는 다른 두 요소를 제한하고 조정한다. 등가는 전반적으로 기호 자체간의 관계, 기호와 그 기호의 지시물과의 관계, 기호와 그 기호의 지시물과 이를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p60)
번역연구에서 등가를 규정하는 문제는 이제까지 두 가지 측면에서 추구되어 왔다, 첫째는 비교적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의미론의 특별한 문제들과 SL에서 TL로 의미론적 내용을 옮기는 데 강조점을 둔 것이다. 둘째는 문학 텍스트에서의 등가 문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담화 분석에서 이룩한 보다 최근의 발전과 더불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과 프라그 언어학파가 문학 텍스트의 번역에 등가를 적용함으로써 등가 문제의 폭을 확장 시켰다. 예를 들어 제임스 홈즈(James Holmes)는 동일성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이기 때문에 등가란 용어의 사용이 “왜곡된”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두리신(Durisin)은 문학 텍스트의 번역자는 자연어 자체보다는 미학적 과정의 등가를 정립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과정은 별도로 생각할 수 없고, 그 과정이 이용되는 구체적인 문화적-시간적 맥락 속에 반드시 설정되어야 한다..(p60~61)
로트먼은 문학 텍스트가 자율적인 특성과 의사 전달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무카로프스키의 견해를 받아들여 텍스트가 명백하고(명확한 기호로 표시 됨)제한적(주어진 시점에서 시작하고 끝남)이며 내적 조직의 결과인 구조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텍스트의 기호는 텍스트 밖의 기호 및 구조와 대립되는 관계에 놓여있다. 따라서 번역자는 텍스트의 자율적 측면과 의사 전달적 측면을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등가에 관한 어떠한 이론일 지라도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번역에 있어 등가의 문제는 동일성을 추구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동일성이란 원문과 번역문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텍스트의 번역문 사이에서조차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포비치가 제안한 등가의 네 가지 유형은 유익한 출발점을 제시해 주고, 노이베르트가 분류한 세 가지 기호 범주는 등가에 대해 원천 언어와 목표 언어 텍스트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기호와 구조간의 변증법적 논리로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p62~63)
손실과 이득
두 언어 사이에 동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받아들이면 번역 과정에서 일어나는 손실과 이득 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출발 언어에서 도착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것은 간과한 채 상실한 것을 논의하느라 아주 오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는 사실은, 번역가가 때로는 번역 과정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출발 언어 텍스트를 풍부하게 하거나 또는 명료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또 다시 번역의 낮은 지위를 떠올리게 한다.(p63)
유진 나이다는 번역에서의 상실문제에 대해 특히 도착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출발 언어의 용어나 개념들에 직면했을 때 번역자가 처하게 될 어려움에 관한 풍부한 정보의 원천을 제공해 준다.(p63)
번역의 불가능성
캣포드는 번역 불가능성의 두 가지 형태를 구분하면서, 이를 각각 언어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번역 불가능성은 원천 언어의 한 항목에 대해 사전적 또는 통사적인 대체어가 목표 언어에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p66)
포포비치에 의해 제안되기도 했던 캣포드의 언어적 번역 불가능성의 범주는 정직한 것이지만 문제점도 아주 많다. 캣포드가 주장하는 언어적 번역 불가능성은 원천 언어와 목표 언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에 반하여 문화적 번역 불가능성은 원문에 해당하는 상관적인 상황의 특색이 목표 언어의 문화 속에 존재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p66)
캣포드의 주장은 어느 한 측면에서 보면 옳다. 그러한 영어 구문들은 대부분 유럽어로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democracy는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의 이러한 실수는 번역 불가능성의 문제에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 접근한 전형적인 문제점으로 여겨진다. 만약 I’m going home이 Je vais chez moi로 번역된다면 원천 언어 문장의 의미 (즉 거주 그리고/또는 출생 장소로 향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자기주장 진술)가 단지 막연하게 재생될 뿐이다.(p67)
democracy를 번역할 때에는 더욱더 복잡다단한 문제가 발생한다. 캣포드는 이 용어가 주로 여러 나라의 어휘에서 나타나고 비록 각기 다른 정치적 상황과 연관을 맺을지라도 주어진 정황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적합한 상황적 특색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독자가 이 용어의 개념을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특정의 관점을 가지고 적용하려 한다는 점이다.(p67)
로트먼(Lotman)은 문화에 대한 기호 연구는 문화의 기능을 하나의 기호체계로 고려할 뿐만 아니라 “문화와 기호와의 관계, 문화와 의미와의 관계가 기본적인 유형적 특징 가운데 하나”임을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캣포트는 이와는 다른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언어와 문화의 동적인 성격을 고려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진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문화적 번역 불가능성이라는 범주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언어가 문화 안에 존재하는 원초적 모형 체계임을 생각할 때 문화적 번역 불가능성은 번역의 모든 과정에 사실상 내포되기 마련이다.
다르벨네(Darbelnet)와 비네(Vinay)는 그들의 역저(力著)인 『불어와 영어의 문체비교』에서 두 언어간의 언어학적 차이 즉 번역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이들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핮만 다시 말하건대, 언어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을 구분하지 않고 번역 불가능성을 정의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포포비치였다. 포포비치 또한 번역의 불가능성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원문의 언어적 요소들이 외연적으로 일치하는 어휘나 함축적으로 일치하는 어휘가 없기 때문 에 구조 적 ․ 직선적 ․ 기능적 ․ 의미론적 입장에서 적합하게 대체 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두 번째 유형은 순수한 언어학의 영역을 벗어난다.
의미를 나타내는 관계, 즉 원문에서의 창의적인 주제와 그것의 언어적 표현간의 관계가 번역 문에서 적절한 언어적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위의 첫 번째 유형은 캣포드의 언어적 번역 불가능성 유형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한편, 두 번째 유형에는 Bon appetit이나 덴마크어로 고마움을 나타낼 때 쓰는 일련의 재미있는 일상 문구들이 해당된다. (p67~68)
포포비치의 두 번째 유형은 캣포트의 두 번째 범주와 마찬가지로 번역 가능성의 한계를 기술하고 규정하는 어려움을 보여 준다. 그러나 캣포드는 언어학 내에서 출발하는 데 비해, 포포비치는 문학적 소통 이론을 포용하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보그슬라프 라벤도브시키(Boguslav Lawendowski)는 번역학과 기호학의 상태를 요약하고자 한 논문에서 캣포드의 이론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조르쥬 무넹(Georges Mounin)은 번역 불가능의 문제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번역자가 다루어야 하는 일부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등한시 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무넹은 언어학으로 인해 번역이 상대적 성공으로 이룩될 수 있는 변증법적 과정임이 입증되었다고 믿는다. (p70~71)
과학인가 부차적 행위인가?
결국 번역 이론의 목적은 번역 행위에 수반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오해하듯이 완벽한 번역을 위한 일련의 규범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p72)
번역을 부차적 행위로 보려는 통념은 그런 평가에 수반되는 저급한 지위에 대한 모든 암시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일단 번역의 실용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작가 -번역자-독자간의 관계에 대한 윤곽을 그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번역 과정에서 이들 간의 소통 관계를 도식적으로 살펴보면, 번역자는 수신자인 동시에 전달자이며, 별개이면서도 상호 연결된 소통 고리의 끝이자 시작이다.
작가 - 텍스트 - 수신자 = 번역자 - 텍스트 - 수신자
그리하여 번역연구는 ‘과학 대(對) 창조’와 같은 술어상의 구분을 이용함으로써 번역의 연구와 실제 번역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했던 과거의 분류를 넘어선 단계에 와 있다. 이론과 실제는 상호간에 확고히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대립의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번역 과정에 대한 이해는 번역물을 생산해 내는 데 있어 단지 도움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번역물은 의미론적 ․ 구문론적 ․ 화용론적 수준에서 해독하고 기호화하는 복잡한 체계에 따른 결과물이므로 ‘창조성’을 이루어 내는 데 대한 시대착오적인 수직적 해석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번역학과 번역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옥타비오 파즈(Octavio Paz)가 번역에 관해 쓴 짧은 글에 잘 요약되어 있다.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독특한 것이며, 동시에 다른 텍스트의 번역이다. 어떠한 텍스트도 전적으로 원작이라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언어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미 하나의 번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비언어 세계에 대한 번역이고, 둘째로 모든 기호와 문구는 또 다른 기호와 문구의 번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 정당성을 전혀 상실하지 않은 채 역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 즉 모든 번역은 나름대로 독특하기 때문에 모든 텍스트는 원작이다. 그러므로 모든 번역작은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의 발명품이고,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특한 텍스트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