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으로서의 순수성, 결과로서의 형식적 법칙, 전개로서의 역사주의와 맥락으로서의
미술관, 독창적인 작가와 유일무이한 작품, 이것들은 모더니즘이 특권을 부여해온 용어
들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것과는 대립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 그것들은
현재로서는 그 생명이 고갈되어버린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런 행위의 인습성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순수성에 사로잡혀 물화되어
버렸던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의 매체들 사이에, 그 너머에, 흑은 그들 밖에서, 또는 새로운
아니면 무시되었던 매체들(비데오나 사진) 속에 존재한다. `미술'이라는 대상이 미술관에
의해 역사화되고 화랑에 의해 상품화되어 중성화되어버린 까닭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미
술은 그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공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예술의 영역이
일정하게 변화함에 따라 작가의 역할도, 미학적 의미도 변화하게 되었다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 Krauss)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조각은 매체라든가 양식의
역사적 전개라는 맥락에 의해서는 모더니즘 조각과 명백히 구별되지 않으며, 다만 문화적
맥락에서의 형식들의 논리적 운영이라는 차원에서만 그 특수성이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매체라든가 역사적 맥락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오직 추상적인
문화적 논리라는 맥락에서 모더니즘과 단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단절은 이제
모더니즘의 문화공간을 폐쇄시켜 버린 후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공간을 개
방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크라우스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징후가 미술영역(조각영역)의 확장이라면,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에게 있어 그것은 `작위성'(theatricality) (모더니즘 말
기에는 금지되었었던)에로의 복귀이며, 또한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의 경우에는
`언어의 분출'이자 `알레고리적'인 또는 `해체적인' 충동이다. 미닌멀 조각의 `작위성'
에 반대했던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와는 달리 크림프는 (그림들)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대부분의 이런 작가들이 미니멀리즘에서 쟁점이 되었던 퍼포먼스의 영
역에서 영향을 받았다 해도 그들은 고것의 우선 순위를 뒤바꾸기 시작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연출된 사건의 지속을
지극히 심리학적으로 다루어진 하나의 그림(tableau)으로 만든다. 결국
퍼포먼스는 오로지, 그림을 연출하는(staging) 많은 방법들 중의 하나가
된다. "
또한 오웬스는 모더니즘적 시각예술이 억압해왔던 '담화의 출현'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현저해지는 점에 주목한다.
"언어가 미의 영역으로 분출-스미드슨, 모리스, 앙드레, 주드, 플래빈,
라이너, 르윗에 의해 드러나는-된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의
결정적인 지표는 아니라 하더라도(적어도) 그와 상옹하는(성질의) 것
이다. 이러한 '격변'은 미의 영역을 특별히 구분되는 분야로 갈라 놓았던
모딕니즘 회화의 안정상태를 뒤흔들어 버렸다. 가장 깊이 충격받았던
것 중의 하나는, 문학행위를 정체되어 있는 시, 소설, 수필(‥‥) -고유의
영토에서 끌어내어, 미적행위의 전체 영역에 걸져 분산시켜 버린 것이다."
오웬스는 미니멀 아트에 잇따라 발생하는 작품들(콘셉츄얼 아트, 스토리 아트, 특정위
상의 아트 site-specific art)을 과거의 작품처럼 어떤 오브제와 결부된 한정성을 띈 것으
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가변적인 텍스트적인 것(textual)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텍스트란
단일한 '신학적' 의미(신과도 같은 저자의 메시지라는 점에서)를 방출하는 말의 배열이
아니라, 어떤 것도 원형적(original)이지 않은 수많은 저서들이 흔합되고 상충하는 하나의
다차원적인 공간이다. " 이러한 텍스트성(textuality)에 의할 경우, 궁극적인 의미나
원저자의 독창성(originality)이 사라지는 대신 다의미적으로 조직된 유동하는 약호들과
유일한 의미의 창조자로서의 예술가의 '죽음'이 함축되어진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노선은 후기구조주의의 노선과 그 맥을 같이 하는데, 이는
양자가 공히 약호화된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후기구조주의적 미학은‥‥모
더니즘적 범례의 소멸을 의미한다-신화와 상징, 순간성이 고정됨에 따라 유기적 형식과
구체적 보편, 주체의 자기동일성과 언어적 표현의 지속성‥‥그것들이 전략적으로 '텍스트'
흑은 '기술체'(ecriture)로 재편되면서 비지속성, 알레고리, 기계적인 것, 기의와 기표간의
간극, 의미의 소멸, 주체의 체험의 상실이 강조된다." 여기서는 이제 낡은 기호가 다시금
새로운 논리로 다루어지며, 예술가는 여러형태의 수사학을 변형, 조립시키고 또 조작하는
정교한 수사학자가 된다. 크림프에게 있어서 문제는 모더니즘적 자율성이 아니라 '재현의
충위'(strata of representation)이며, 근원이나 원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작용외
구조가 추구된다. 각각의 그림의 저변에는 언제나 또 다른 그림이 놓여져 있다. 결국 모
더니즘의 미적 한계는 인용, 발췌, 구상, 각색 등의 전략을 통해 초월되며, 그에 따라 꽉
짜여졌던 매체들뿐이 아니라 표현과 해석의 수준들도 서로 상충된다. 이렇게 해서 대상
그 자체가 변화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어떤 하나의 형태나 매체, 또는 위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간의 다차원적 관계의 그물망 내에서 불확정한 상태로 유
동하게 되고, 그만큼 주체(관찰자)도 혼란되고, 모든 예술의 확정적인 질서도 분열된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미적 질서와 개념들과의 단절로서 제기된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방법론과 자기모순 - 후기 구조주의와 해체론
데리다에 의하면 "초월적이거나 특혜를 누리는 기의(signifie)란 없으며, 따라서 의미의
영역이나 작용에도 한계가 없다. 기호라는 말 자체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은 정확하게
다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오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체에 대한 충동은 모
더니즘의 자기 비판적 경향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 매체에 집중된 자기비판은 (적어도
형식주의의 보호아래) 본질적인 것 혹은 `순수한'것을 지향하고 있는 반면, 해체는 의미의
`비순수성'을 분석시켜 노출시킨다.
확실히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지 양식적이거나 연대기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인식론
적인 단절'로 간주되고 있는 것을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식의 형태-또는 그 물적조건-에 기초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히 1960
년대 말 프랑스에서 발흥된 후기구조주의와 해체론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모더니
즘-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는 인식론적으로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의 관계와 상응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때로는 편협한 양식적 의미로, 또는 복고적인 역사주의의 의미로
인지되는 또는 수많은 소규모 형식들과 범주들의 상층되는 층위들간의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때로는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내재된 좀더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인식론적 방법 개념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를 위해서는 후기구조
주의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요청된다.
구조주의가 등장한지 불과 몇년이 채 되지 않은 1960년대 후반에 이미 강력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후기(또는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중요한 특성 모두를 비판하면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내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말하자면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가 구축해 놓은
(구조)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 또는 (탈구조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조보다는 개체
역사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 절대적 진리나 센터, 근원의 독선과 횡포가 아닌 타자와 탈
중심화 등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 중에서도 구조주의와 후기(탈) 구조주의를
구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기호들의 재현능력과 그것들이 지칭하는 대상의 현존과
`기호-대상'의 연계성이라는 이상주의적인 가정의 붕괴이다. 탈구조주의는 바로 구
조주의의 그런 이상주의적인 가정에 회의를 표명하고, (기호)가 더 이상 확실한 것이
아니며 (의미) 역시 유동적이고 일시적으로 유보된 상태일 뿐이라는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되어졌다.
데리다는 우선 구조주위자들의 (구조)나 (기호)라는 개념이 (의미)의 (센터)가 (현존)
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센터)에 대한 이러한 욕망과 확신은
구조주의를 포함하여 서구 형이상학의 근간을 이루어 온 것으로서 실제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다만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그것의 (흔적)과 (자취) 또는 (대체물)만이 가능할
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말이든 글이든 모두가 현존이 결핍된 의미화(signifi-
cation)의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호는 왜 완전한 현존이나 재현이 되지 못하는가? 데리다에 의하면 그 이유는
(차연) (differance)개념에 의해 설명된다. 그에 의하면(차연)은 두 가지 의미-(차이)
와 (지연)-를 지니고 있는데, 공간적 개념인 (차이)는 언어와 그것이 재현하려는 지시
물과의 숙명적인 차이를, 그리고 시간적 개념인 (지연)은 언어가 재현하려는 현존의 끝없는
유보를 의미한다. 하나의 텍스트 속에서 어느 한 요소의 의미는 그 텍스트 내의 다른
요소들과 필연적으로 상호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자립된 상태로 현존할 수
없으며, 이는 나아가 또 다른 텍스트의 요소들과 연결된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의미)는
영원한 (차이)를 갖게되고 끝없이 (유보)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텍스트성(textuality)및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이론이 생겨난다. 데리다는 하늘/땅, 자연/문화, 서양
/동양, 정상/광기, 저자/독자, 의식/무의식, 정신/육체 등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대립을
(폭력적인 서열제도)라고 부르면서, 이 양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보충과 대체)의 관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헤겔, 마르크스 이래 변증법적 논리의 골간을 이루어왔던 것이다.)
결국 데리다는 이를 위해서 기존의 이성중심주의의 서열적 구조를 그 근본으로부터
해체(deconstruct)하게 되는데,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후기(또는 탈)구조주의의
이론적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데리다의 해체론은 자기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우리가 반대하는 전통의 사고 관습과 언어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어떠한 형태의 청산주의도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텍스트의 불확정성과 무한한 해석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언어의 자유 유회)라고 표현하는데, 이럴 경우 (중심) 또는 (현존)과 그것의 해체의 (유희)
사이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중심)이 이미 없는 텍스트는 (해체)될 수 있는가? 아니면
거꾸로 해체의 (유희)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심)을 미리부터 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지점에 이르게 되면 데리다가 구조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상당부분 구조주의의 연장선에 놓여있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사실상 데리다는
형이상학을 공격하면서도 형이상학의 용 들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근원)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된 (자취)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그는 (근원의 근원) (origin of origin)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형이상학의 닫힌 체계를 깨뜨리려는 그의 시도도 다시금
그 전통을 부활시켜놓고 그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유입되어 버리는 셈이 되는데, 이로
인해 그의 새로운 시도의 성공(가능성)역시 영원히 (유보)될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의 밖이란 없다)-즉 우리는 결코 텍스트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여
모든 것을 텍스트와 언어의 문제로 귀결시켰던 데리다와는 달리, 역시 후기구조주의의
대표적 인물의 하나였던 푸코는 (글쓰기)란 곧 복합적인 힘을 창조하는 행위이고 (텍스트)
란 곧 이 복합적인 힘들어 권력투쟁을 벌이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데라다가 끝내 텍
스트성 內에 갇히게 되면서도 텍스트의 해체를 주장했던 자기모순에 처하게 되었던 데에
비해 푸코는 지식과 권력과 억압 사이의 함수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로 나아감으로써
텍스트의 안과 밖을 넘나들 수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 푸코는 텍스트와 언어 그리고 그것에
의해 산출되는 지식의 외부에 항시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일단은
해체론의 자기모순의 원인이었던 언어의 감옥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코가 발견한 역사, 언어의 감옥 너머에 편재해 있는 역사는 일정한 방식으로 그 내용을
제거당한 `추상적인' `권력'의 역사였다.
3) 지식(또는 인식)과 권력
`통상적'인 역사는 어떤 하나의 중심을 상정하고 그 둘레로 모든 현상들을 끌어다 붙이는
전체화하는 역사이다. 그것은 연속성, 인과율, 목적론 등의 개념으로 깊이 채색되어 있는
역사이다. 그에 반해 푸코가 보는 역사는 방산(攷散)의 공간으로서 갖가지 현상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결집되거나 그와 유사한 관계구조를 드러내지 않고 단지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데리다가 개진하는 언어와 의미의 불확정성의 이론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씨니피앙
대신에 현상이란 용어를 끼워넣으면,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은 곧 푸코의 역사개념에 해
당된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의 주장을 극한으로까지 밀고나간 예일학파의 비평가들은
텍스트성을,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알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는 (밑없는 광대한 심연)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푸코는 이 공간 내부에서 발견되는 한 묶음의 규칙 즉
에피스테메(episteme)에 의해 그 방산의 공간도 일정하게 규정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에피스테메는 기존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중심, 단일개념 혹은
초월적 의식과는 분명히 다르며, 갖가지 성격이 다른 요소들을 포함한 이질적인, 따라서
`문제적'인 단일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고 사멸한다. 하지만
결국 에피스테메는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상정된 개념적 단일체이며, 각시대의
역사적 충족성을 설정하는 위장된 형이상학적 용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되며, 푸코의 언
술행위이론(theory of discourse)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강조점을 이동시킨다. 즉
언술행위는 에피스테메에 기초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행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푸코는 1977년의 대담 「진실과 권력」에서 이러한 변화를 자기비판의 형식으로 잘 요
약해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말과 사물」 (1966)에서 다루려 했던 것이 바로 불연속성에
의해 생겨나는 상이한 체제(regime)들이었는데, 그때는 그 체제가 갖는 특유한 힘의 효과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체계성, 이론적 틀, 혹은 패러다임과 같은 것으로, 즉 에피스테메와
혼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지식의 형태를 바꾸게 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문제였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이전에 운용했던 고고학이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국부적 사실들을 찾아내고 분석하는 방법이라면, 새로운 계보학은 그런 작업을
토대로 해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진리 혹은 지식이라는 것의 기원이 사실은 지배와 종속,
여러 세력 사이의 관계 즉 권력에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억압된 지식이
지배전략의 지식에 대해 반대하고 투쟁할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체작업 이후에 그가 부딪치게 되는 것은 권력의 의지들의 `유희'이다
따라서 불변적인 것, 근원적인 것들이 모두 해체된 터에 각각의 권력의 의지가 진리의
체제로 내세우는 것은 각기 자기나름의 지배를 위한 `해석'에 불과하게 된다. 현실은
언술행위에 의해 `반영'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언술행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해석은 현실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다른 해석들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해석에는 사실 정당한 보편적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어느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게된다. 아마도 유일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각 시대의 권력의
의지일 뿐이리라. 그에게 있어서 역사란 언어와 기호들이 아니라 전쟁과 전투의 모델로
보여지며, 우리를 끌고 가며 결정하는 역사는 씨니피앙과 씨니피에 사이의 의미관계가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권력의 관계들로 보여진다. 역사는 수많은 권력에의 의지들이
언술행위와 진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해석의 유희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부조리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서 객관적인 (의미)는 없다. 단지
있다면 (지배전략)으로서의 (의미)가, 또한 (지배전략)으로서의 (진리)가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역사가 바로 텍스트의 공간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 광대무변한 공간에서 형식적인
규칙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술행위를 우리가 사물과 세계에
가하는 일종의 폭력행위 즉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행위로 파악하면서부터
그는 그같은 형식적 규칙 대신에, 권력에의 의지들간의 언술행위를 둘러싼 유희와 전투의
전개과정을 탐색하게 되었다.
푸코가 데리다의 텍스트성을 넘어서서 마주치게 된 것은 바로 권력의 의지와 역사의
폭력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의 해체론은 다른 후기구조주의자들이 탐닉했던 끝없는 오
르가즘의 유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해체론의 벼랑 위에서 그가 바라보게 된 것은 막연한
심연이 아니라 권력과 폭력으로 가득찬 전장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후기구조주의
또는 해체론 전반에 내재한 이론적 모순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는 그 모순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생리학의 법칙을 따르고 역사의 영향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왔던
육체에서까지도 사실은 그것이 각기 특징적인 수많은 권력의 지배체제를 거치면서 형
성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하나의 역사인 것처럼 과거의 수많은 이질적인 폭력의
혼적들이 육체 속에 남아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가 보기에 권력은 항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권력이 아닌 것, 즉 인간적인 학문이나 개인적인 자기인식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단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소단위의 권력(예를 들면 군대,
학교, 병원등)으로 분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개개인을 그들 자신도 모르게 지배,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푸코의 계보학은 권력의 행사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권
력으로부터 단절된 지식은 없으며, 만약 권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지식은
위선이나 오류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권력을 분석하는 그 자신의 작업 역시 권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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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연관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때문에 푸코 역시 지식과 권력의 이질적인 대립과 모순관계 속에 놓여지게 되는
셈인데, 중심, 기원, 목적과 같은 어떤 형태의 절대적 가치도 분쇄하고 모든 것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는 탈구조주의자의 일원으로서 그 자신 역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결코 이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사람, 즉 (보편적 지식인)이 아니라 특정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한 지식인)일 뿐임을 밝힌다. 특수한 지식인으로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가,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섬세한 메카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권력이 지배를 위해 사용하는 구체적인 기술과
전술은 어떠한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탐구를 토대로 그가 할 일은 "현재 지배권의
여러 형태 -즉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형태들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진리의 권력을
그 지배권의 여러 형태로부터 떼어내는 것" 이며, 달리말하자면 현재의 체제 속에서의
권력의 균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4) 권력에 익명성과 주체의 부재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되면 지식과 권력의 관계분석에 있어서 주체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푸코에게 있어서 (주체)의 개념은 본래 능동적 주체라는 의미와 수동적인 주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이는 사회적 실천의 과정에 대한 분석과정에서
점차 후자의 의미로 기울어지게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주체는 (대상화)된다. 푸코는
주체의 대상화과정이 봉건적 지배질서의 느슨한 권력구조가 무너지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구조가 전국적 단위로 확립되는 동시에 인간의 동원과 통제를 본격적으로 체
계화하여 통치의 기술로 삼았던 근대자본주의 국가의 형성과정과 발맞추어 진행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권력의 문제를 계급간의 문제로, 즉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강제력으로 파악하지 않고, 계급과 무관한 다양한 권력의 원천을
상정함으로써 권력의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를 의미없는 질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주체)의 대상화과정과 마찬가지로 근대자본주의의 분업화과정에 따라 권력의 익
명화과정이 발생한다. 말하자면 자본을 집적, 집중시키는 과정에서 지본가가 자본의 소
유자-소비자라기보다 오히려 자본의 운동이 그를 통해 관철되도록 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듯이 권력의 담지자, 행사자는 권력순환의 복잡한 유통구조 내에서 한나의 매개고리
역할을 할 뿐 권력의 원천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은 제도도 아니며, 구조도 아니며,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특정한 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주어진 사회 내의 어떤 복잡하고 전략적인 상황에 부여된 명칭인 것이다.
이 때문에 지식과 권력의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특수한 지식인의 역할은
애매해지게 되며, 투쟁의 (주체)와 극복 대상및 그 방향, 그리고 방법 등이 지극히 불투
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푸코는 (언술행위의 불가시성)이라든가 (권력의 익
명성)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추동적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변혁의 (주체)를 명확히
설정하지 않음로써 사회현상은 본래(주체)의 힘으로는 대항하기 힘든,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무엇으로 보는, 지극히 암울한 전망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푸코가 탈구조주의자들 중에서 누구 못지 않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에드
워드 사이드에 의하면 '세속적인'-문제를 소재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구조
주의의 치명적인 한계인 (주체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여타의 해체론자들과 별
차이 없이, 벼랑에 서서 권력의 의지들의 투쟁과 갈등으로 가득찬 역사의 소용돌이를
다분히 방관자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고 보인다.
·리얼리즘
물론 데리다의 해체론이나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이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안정과 정지의 상태를 추구하던
기존의 서구 형이상학의 토대를 끊임없이 뒤흔들고, 열린 다각형외 상태를 지향하는 반
권위주의적이고 반교조주의적인 탐구의 정신과 방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데리다는
스스로 (글 쓰기의 학문)이라고 칭하는 (문자학) (Grammatology)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새로운 학문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학문 전체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심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구체적인 (해체적 책읽기)의 전략은 텍스트의 논리와 저자의 논리가
실은 어떻게 서로 상충되고 있는가를 밝혀내어 텍스트의 가정과 전제 속에 내재해 있는
모순들을 지적해내는 것이며, 텍스트의 조직 속에 쌓여서 가라앉아 있는 의미의, 잊
혀지고 잠들어 있는 침전물을 끄집어 내며, 한 작가가 다른 작가에 대해 오독(誤讀)한
부분과 저자가 빠뜨리고 지나간 부분, 저자 자신이 혼동한 부분, 저자가 말하려다 흐지
부지한 부분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푸코 역시 상기한 바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제안, 특히 시각예술의
해석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고 생각된다. 푸코의 저작 「말과 사물」 (1966)의
제1장에서 전개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rninas)에 대한 분석은 고전적인 재현의
논리에 함축된 내용을 새롭게 예시해줌으로써 모더니즘에 의해 오랫동안 왜곡되고 배
척받아온 '재현'개념의 새로운 측면을 부활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연관관계
속에서 앞 절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예술에 내재한 일정한
의의가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차용하고 있는 재현의 논리는 무관심적인 정치적 중립행
위로서의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라는 자연주의적 재현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그에 내재해
있던 지배와 통제의 사회적 과정과의 긴밀한 연관관계를 되살려냄으로써 특정 시대의
문화권 내에서 작용하고 있는 권력의 관계망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내고 또한 그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입지점을 발견하고자 시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적어도 이 지점에서
후기구조주의, 특히 푸코의 재현의 논리는 리얼리즘 방법과 일정한 측면에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권력의 도구로서의 재현(representation)
벨라스케스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그림인 (시녀들) (1956)은 통상적인
회화의 구도와는 달리 화가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그림 속의 화가가 그리고
있는, 대상자의 관점(그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정경이 그려져
있다. 그 그림에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화면의 좌측에 잘리워져 있는 캔버스 앞에
서있는 화가와, 화면 중앙에 감상자인 우리를 향해 서있는 공주와 그 좌우의 시녀들, 화면
우측에 서있는 난쟁이와 그 앞에 앉아 있는 개, 그리고 뒷쪽에 열려 있는 문 사이의 방문객과 그 옆의 거울 속에 희미하게 비치는 왕과 왕비의 모습들이다. 어찌 보면 그저 사실적인
필치로 단지 특이한 구도를 갖춘 정도로만 보이는, 이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품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독특하다.
'여기에는 기교들의 어떤 교묘한 체제가 존재한다‥‥마치 그 화가는 자
기를 담고 있는 그림에 나타나는 동시에 그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한꺼번에는 나타날 수 없는 것 처럼. 그러나 고는 이 두개의 서로
양립할 수 얼는 가시성(可規性)의 문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단
순히 상호성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한 폭의 그림을 보는가 하면 그 그림
속의 화가도 그림 밖의 우리를 본다는 단순한 문제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호가시성이라는 이 가느다란 선은 불확실한 것과 교환과 전위
(轉位)같은 것들로 구성된 복잡한 조직을 전체적으로 포팔한다. "
푸코는 복잡한 조직을 차근차근 분석해 낸다. 우선 그림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전혀
그림 속에 수용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수용하고 있는 모든 시선에 의해 전제되어
있는 장소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자세히 보면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가 하나의
곽경을 응시하고 있으며, 거꾸로 이 광경에 대해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광경이 되고
있다. 여기서 바로 관찰되고 있는 거울과 관찰하고 있는 거울은 서로 순수하게 상호성을
보여 준다. 이런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이 그림의 맞은편의 광경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 바로 그림의 됫쪽 거을 속에 비친 왕과 왕비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그림에
나타난 도상들 중에서도 가장 희미하며 또 비실재적이고 의문스러운 상이지만, 그림
밖에 놓여적 있음으로써 본질적인 비가시성으로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모든 표상의 중
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중심축은 3가지 응시하는 기능. 즉 화가의 시선, 감상자의
시선, 그리고 화가의 모델의 시선이 서로 겹쳐지는 중심으로서 실제로는 그림 밖에 놓여져
있다. 말하자면 이 모든 명백한 그림의 표상들은 사실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지시된
하나의 본질적인 '부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벨라
스케스의 이 그림 속에는 고전주의 시대의 표현법에 대한 표상과 그 표상이 우리 앞에
열어놓은 공간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크레이그 오웬스는 고전적인 재현회화에 대한 푸코의 분석에 깊이 공감하면서, 푸코가
주목하고 또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재현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임을 잘 기술해주고 있다. 고전적 재현에 있어서
주체는 결코 자신이 주재하는 광경이 재현되어 있는 화면 안에 결코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내다볼 뿐이다. 그러나 그가 직접 재현
자체 내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방식으로 가령 거울을 통해 대치된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첫번째 방식에서 주체는 일점원근법의 체계 내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사물을 투시 한다(Transparency). 그럴 경우 재현은 그 자신의
시각과 사고의 한 양식이 된다. 그러나 두번째 방식에서는 주체적인 시점이 사라지고
세계는 예술가의 개입 없이도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재현의 고전적 체계안 에서 재현의
주체는 전적으로 군주에게 주어지며, 궁극적으로 회화가 재현하고 있는 것은 화가의
시선이 아니라 왕의 시선인 것이다. 우리는 그가 보는 것 이상도 그 이하도 보지 못한다.
이와 같은 재현의 개념은 플라톤 이래 서구예술사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던
모방으로서의 재현 이라는 공식적인 예술사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동기를 부여해 준다. 작가와 감상자 그리고 이미지와 지시물의 복잡한 관계를 괄호치운
채, 단지 현존하는 이미지 즉 재현되어 있는 대상 자체만을 재현의 고유한 속성으로
간주해온 전통적인 재현 개념에는 실은 상기한 바와 같이 투시성(Transparency) 또한
창문으로서의 회화라는 관계와 거울로서의 회화라는 관계의 복합이 내재해 있다. 투
시성의 개념은 재현된 대상의 물리적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 그것을 가능케 해준
재현과정, 또 그런 과정 속에서 삭제되거나 숨겨진 대상및 행위 그리고 재현행위의 목표와
의도를 주목케 해준다. 이러한 투시관계가 밝혀질 때 거울로서의 회화에 재현되는 표
상들의 의미는 더욱 증폭되며, 거울에 반사되는 표상들의 관계는 복잡한 투시의 조직,
푸코의 말에 의하면 권력의 그물망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예술들은 모더니즘에 의해 배척당했던 재현 개념을 정당하게
(?) 복구하며, 시각 이미지를 (지시물)기표기의의 복합층위의 관계로서 해석하고 또
형상화해내고 있다. 이런 경우 그 형상화의 양식이 추상이건 구상이건 그것들은 모두
기호의 의미화작용이 발생하는 문화적 맥락 내에서 현상되는 리얼리티를 일정하게 재
현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리얼리티들은 오직 '문화적' 재현에 의해서만 산출되고
유지되는 가공품으로 간주된다. 투시성의 개념에 기초해서 저항적인(또는 비판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미지와 형상들을 다루면서 그것들 자체가 이미 권력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예술가들은 그 안에 약호화되어 있는 이념적 메시지를 탐구할
뿐만이 아니라, 그같은 이미지들이 우리 문화 안에서 권위적인 지위를 보장받게 해주는
전략및 전술을 탐구한다. 만일 이미지들이 효과적인 문화적 설득력의 도구라고 한다면,
이미지 안에서 리얼리티가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미지에
부여된 억압적인 물리적, 이념적 지지 기반을 새롭게 해체할 필요가 있게 된다. 또한
양식상의 차용, 조작, 패러디의 사용 역시 고전적 재현논리의 투시성의 전거를 통해
비가시적인 메카니즘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수 있도록 동원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1980년대에 들어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말로 흔히 불리워지곤 한다. 물론
이 복권이라는 것이 19세기 식의 리얼리즘의 완벽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리얼리즘적 경향들은 복잡한 기호화-의미화- 작용의 복잡한 메카니즘을 통해 과거의
그것과 구별되며, 또한 투시성의 주체와 과정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도 과거와는 구
별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회화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흐름들이 실제로 올바르고도
바람직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2) 포스터모더니즘 소비사회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1982)라는 글에서 포스트모더니
즘적 현상들의 중요한 특징들을 (모조) (또는 재탕 pastiche)와 (정신분열증) (schizoph-
renia)이라는 두 개념으로 압축하여 예시하면서, 이런 특징과 현상들이 바로 196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부상되는 서구 후기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질서의 내적 진리를 표현해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양식을 기술하기 위한 용어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하나의 시기구분의 개념으로서 이해되며, 그 기능은 새로운 유형의 사
회생활과 경제질서-즉 종종 후기산업사회 또는 소비사회, 미디어사회 또는 스펙타클
사회, 혹은 다국적 자본주의라고 불리우는-의 대두와 문화에 있어서의 새로운 형식적
특징들의 대두를 서로 상관시켜 주는 데에 있다고 간주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발견되는 시기는 미국에서는 1940년대말 또는 1950년대 초까지,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제5공화국의 수립시기였던 1958년까지 소급될 수 있다. 1960년대는 여러
측면에서 볼때 중요한 이행기였는데, 그것은 새로운 국제질서(신식민주의, 녹색혁명,
컴퓨터와 전자정보의 시대)가 동시에 설정되면서 그 내적 모순과 외적 저항에 치해
동요되던 시기였다.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소비와 계획적인 폐기,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유행과 양식의 변화, 전사회에 걸쳐 유례없는 속도로 침투되는 광고와 TV,
그리고 미디어, 도시와 농촌, 중심과 주변 사이의 낡은 긴장이 보편적인 표준화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을 야기했고, 거대한 그물망의 고속도로가 증폭되고 자동차문화의 도래를
초래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현상들은 전성기 모더니즘(high modernism)이 여전히 저
항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과거의 戰前 사회와는 급격한 단절을 나타내주는 특징들의
일부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앞장에서 지속적으로 기술해왔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하고 복
합적인 의미화의 메카니즘과 특징들-데리다, 푸코, 오웬스, 크림프, 바르트 등의 논의
에서 보여졌던-은 단순히 문화적 맥락과 논리의 새로운 운용이라는 추상적인 인식론적
합의만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196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서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 경제적 질서의 새로운 내용들과 구체적으로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제임슨은 다른 사람들처럼 심연 위의 벼랑에 선 아포리아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대신
그 심연의 구체적 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선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관행들과 특징들을 (패스티쉬)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런 식의 (모조) 행위는 통상(패러디)라는 형식을 통해 모더니즘이나 그
이전의 수많은 예술양식 속에서도 흔히 발견된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
더니즘에서 보여지는 모방행위인 (패스티 쉬)는 다른 스타일의 모방, 또는 다른 스타일의
양식적 차용이라는 점에서 외적으로는 그 이전의 패러디와 유사점을 지니지만, 그 내적
연관에 있어서는 (패러디)와 큰 차이를 지닌다. (패러디)의 경우에는 본래의 원전(the
original)에 대한 은밀한 공감이 남겨져 있다. (패러디)를 이용하는 모더니스트 미학에
서는 원전(the original)이 지닌 독창적인 자아와 사적인 동질성, 유일무이한 개성과
인격성에 대한 모종의 연결이 존재한다. 따라서 (패러디)의 경우에는 이런 독창적 양식에
대한 매너리스트적인 표절이 지니는 사적인 성격에 대한 조롱과 풍자의 효과가 남겨져
있으며, 이러한 웃음을 가능케 해주는 언어학적인 일반적, 정상적 규범이 하나의 기준
점으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일반적인 정상언어와 그것의 의사소통적 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모든 것이 파편화되어 버리고 사적인 것으로 화해버린다면,
더 이상 사적인 언어와 개성적 스타일을 풍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상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패러디)는 불가능해진다. 한때 혜게모니적인 사회계급으로서 부르조아가
활동하고 있던 전성기의 경쟁적 자본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과거의 개인주의적인 부르
조아적 주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되는 현대의 국가독점 자본주의 시대를,
심지어는 부르조아 개인주의로서의 주체라는 것 자체도 애당초 존재해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주체의 죽음"의 논의를 고려해 본다면, 이런 변화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미학적 딜레마가 남게 된다. 독창성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인
현대의 예술가에게 남겨진 것은 단지 과거의 죽은 모델들의 모방일뿐이다. 어느 누구도
과거처럼 유일무이한 사적 세계와 그것을 표현할 개성적 양식을 더 이상 지닐 수가 없다.
양식적 혁신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남겨진 것이라고는 단지 과거의 죽은 스
타일을 모방하고, 가면을 통해서 이야기 하며, 상상적 미술관 속에 있는 다양한 양식들의
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패스티쉬)이다. 따라서
모더니스트 미학의 전통 전체의-이제는 죽어버린-거대한 무게가 "살아있는 자의 뇌
속을 마치 악몽처럼 짓누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은 과거
속에 갇히게 된다.
다른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의 두번째의 기본 특징으로 간주되는 (정신분열중) (schizo-
phrenia)의 현상들은 라깡(Lacna)의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빌어 분석된다. 라깡은 프로
이드의 정신분열의 개념을 재구성하여 그것을 언어적 무질서라고 독창적으로 해석하
였다. 라깡은 구조주의의 토대 위에서 기호, 말, 그리고 텍스트를 기표(signifier)와 기의
(signified)의 관계로서 모델지웠다. 물론 제3의 요소는 소위 지시물, 실제 세계의 실제
사물이 되겠지만 구조주의 일반은 지시물을 일종의 '신화'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는 의미화 과정에서 아예 배제된다. 따라서 우리가 문장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전체 의미(기의)는 단어들 또는 기표들의 상관관계로부터 파생되게 된다. 이런 맥
락에서 볼때 정신분열증이란 기표들의 연속적 상관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정신분열적 경험이란. 고립되고 절단된 불연속적인 물질적 기표들에 대한
경험이며, 따라서 이는 정상인보다도 일단 주어진 현재 세계에 대해 더욱 강렬한 체험을
갖게 된다. 정신분열환자는 현재의 주어진 세계를 다른 세계, 다른 시간 경험과의 복
잡하게 분절된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고립된, 무차별적으로 혼효된 상태로서 체험하게
된다.
그 결과 시간적 연속성이 단절되고 현재의 경험이 생생하고 압도적으로 "물질적"
으로 증폭된다. 그와 동시 에 정상인들에게는 바람직한 경험으로 느껴지는 것이 여기서는
"상실", "비현실"로 느껴지게 된다. 결국 의미가 상실됨에 따라 기표들의 물질성이 과
도해지게 된다. 기의를 상실한 기표가 그렇게 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변형된다.
제임슨은 이러한 사태들을 개괄적으로 (역사감각의 소멸)이라고 요약한다. 현대의
사회체제 전체가 점차 자신의 과거를 보존할 능력을 상실하면서 우리는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살게되며, 이전의 다른 모든 사회구성체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보존해야만
했었던 전통을 망각시키는 지각 변화속에서 살기 시작하게 된다. 뉴스와 미디어의 흥수는
최근의 역사적 경험들을 가능한한 빠른 속도로 과거 속으로 추방한다. 미디어의 정보적
기능이 우리의 망각을 도와주는 것이며, 우리의 역사적 기억상실을 위한 대리인과 메
카니즘으로 봉사하는 셈이다.
제임슨의 분석을 개괄적으로 수용해본다면 소위 '후기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한편으로는 과거 모더니즘의 찬란한 엘리트주의의 죽은 모델들의 증압에 눌려
그것의 재탕과 모방에 급급할 뿐이며(패스티쉬),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기억상실 속에서 미디어와 광고로 가득찬 상품사회의 쾌락을 소비하는 데에 물두한다고
(스키쪼 프레니아) 하는 이중의 질곡 사이에 끼여있는 셈이 된다. 그것은 실재를 이미지로
변형하고, 시간을 영원한 현재의 연속으로 파편화시키는 과정으로서, 이렇게 해서 거꾸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는 후기자본주의의 상품생산과 소비의 논리를 그 자체로서 복
제하고 또한 재생산하게 되는 셈이다.
푸코가 재현의 메카니즘이 사회 도처에 산포되어 있는 권력의 투시성에 의존하고
있다고 본 그 지점을 제임슨은 1960년대 이후 서구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생산콰
소비 메카니즘의 복제와 재생산으로 설명해낸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들을 통해-바르
트와 데리다를 넘어서서-텍스트를 넘어 권력으로, 그리고 추상화된 관계망으로서의
권력을 넘어 좀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의 상품생산과 소비의 논리와 메카니즘에까지
도달하게 된 셈이며, 또한 이렇게 해서 해체론의 쾌락주의적인 불가지론을 넘어 주체적인
역사인식의 리얼리즘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게 된다.
3) 구체적인 사회생활로서의 역사에로의 복귀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되면, 상품생산과 소비의 메카니즘이 한 사회 내의
모든 주체를 완전히 삼켜버릴수 있고, 또한 그들 모두가 정신분열적인 상태에 함몰되어
역사감각을 완전히 상실토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지나핀 가설임을 알게된다. 물론 특정
기간 동안 특수한 조건하에서 그러한 '경향성'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
실이며, 또한 바로 그것이 자본의 논리임은 분명하나, 그것은 단지 특수한 역사적 조건,
가령 1960년대 이후 서구 선진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내에서의 일정한 '경향성'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정한 경향성을 절대적 현실성으로, 또한 특정한 역사
적조건 하에서 일시적으로 가능한 현상을 일반적인 조건 하에서 보편적, 항구적으로
현존하는 필연적 법칙인양 확대, 과장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제임슨의 경우는 1960년대
이후 서구의 특수한 문화현상인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경제적
질서와의 연관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한다는 기슬적 목표에 의해 미리부터 분석이
구체적으로 한정지워짐으로써 그러한 일반화와 확대해석의 위험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푸코만 하더라도 (권력의 익명성) (주체의 대상화)과정은 지나치게 일반화되고
확대해석됨으로색 결국 그가 애써 세련되게 만든 개념과 범주들은 그 구체적 내용을
상실한 추상적인 형식적 분석기제로 화해버리고 말았으며, 나아가 데리다와 바르트의
해체론과 후기구조주의 이론 일반의 경우에는 그러한 일반화가 다시 초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됨으로써 과학적 이론의 차원을 넘어서서 다시금 형이상학의 지평으로 퇴행하고
말았다. 대다수의 상기한 이론가들이 100년전의 니이체의 사상에 상당히 의존하거나
또는 전적으로 회귀한다는 사실도 따라서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들을 분석해본 결과 그런 특징들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웠다.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급진적인 단절이 실제
로는 내용상의 완전한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주어져 있던 특정한
일련의 요소들의 재구성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이전 시기의
체계 내에서는 부차적이었던 특징들이 이제는 지배적인 것이 되고 지배적이었던 것들이
다시금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본질적으로 양 시기 사이의
내용상의 변화가 아니라 형식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형식-즉 요소들의
배열 방식-상의 단절 이면에 내용상의 연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구조주의든 후기(또는 탈) 구조주의든-모더니즘이 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각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자본주의의 발전및 그 운명 속에서 태동, 전개되어 왔던,
일정하게 역사적으로 조건지워진 철학적 형식주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다. 연속성-불연속성, 중심-주변, 구조화-탈구
조화, 일치-차이, 기원-혼적 등의 이항 대립에서의 상호 이행은 항시 언어의 모델,
언어사용의 형식, 텍스트성, 담화의 형식 내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양극 중에서 두번째 극을 발견한 것을 후기구조주의의 큰 성과이자 새로움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관계는 이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철학사에서 빈번히 나타났었으며, 특히 칸트와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 철학에서
현저하게 규명되고 천착되었던 범주적 연관들의 일부일 뿐이다. 이러한 연관은 관념론의
오랜 전통 속에서 종종 나타나는 객관적 관념론과 주관적 관념론 사이의 극적인 반전이며,
목적론과 불가지론사이의 악순환의 기나긴 연쇄과정 상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특징은 객관적 현실 세계의 인간 의식에 대한 독립성과 일차성을
인정하지 않으며,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삶 속에서의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의식간의 변증법적인 발전관계를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문에 지시물은
배제된 채, 미끄러지는 기의와 부유하는 기표의 부단한 상호이행만이 현기증나게 되
풀이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초기의 를랑 바르트의 정당한 지적과도 같이 정치적 실천을
거부하는-실제로는 그 거부행위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실천인 셈인-쁘띠부르조아적
세계만의 자기 탐닉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중심-주변, 기원-차이의
대립문제 역시 사실은 객관적인 실재와 인간의 의식간의 일치와 불일치의 변증법적
관계상의 한 국면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자의적으로-또는 히스테리칼하게
-동일성이든 차이이든 그것들을 주관적 의식 내에서 양자 택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양자택일에 의해 객관적 현실의 변증법적 운동이 지워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호와 언어가 아무리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자 해도 그것은 결코 객관적 지
시물로부터 완전히 지유로울 수는 없다. 푸코는 정당하게도 기호적 재현이 현실적인
권력의 도구임을 직시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와 인간의 사회적 삶의 과정은 권력의
미세한 그물망이라는 범주에 의해 추상적으로 일반화되기에는 너무도 깊고 다양하며
풍부하고 역동적이다. 구체적인 사회생활은 익명적인 권력의 관계망에 의해 영향받을
뿐만이 아니라 권력의 그물망 자체도 그것을 담지하고 그 기능을 수행하는 개개의 주체,
집단적, 계급적 주체들의 능동적인 의식과 실천에 의해서도 양적·질적 변화를 겪는다.
우리는 텍스트와 기호 자체 내에 실재하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모순과 불일치를 깊고
풍부하게 관찰하여 글쓰기와 해석의 논리를 보다 정밀하게 규명해야 하지만, 나아가
텍스트와 현실, 기호와 지시물 간의 모순, 객관적 현실과 인간의 의식적 활동 사이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의 역동적 '발전'을 올바로 주목함으로써만 비로소 우리의 의식과
객관적 현실의 총체적인 모습을 이해할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인간의 의식 -감각적 인식과
논리적 인식-의 발전 역시 객관적 세계의 풍부한 운동과 의식 사이의 변중법적 모순의
추동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이와 같은 변증법적인 모순의
운동과정 속에서 형성되며, 이러한 올바른 인식태도는 리얼리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
워왔다. 이와 같은 을바른 태도는 우리의 고도화된 의식을 현실 역사 속의 생동하는
구체적 사회생활 속으로 되돌려 보내준다.
물론 언어는 실재와 직접 연결되지 않고 사유과정을 매개로 연결된다. 따라서 특정의
물질적 대상을 그에 해당하는 단어와 직접 연결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이유로 언어는 실재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환상이 생긴다. 그러나 단어들은 인간에 의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어들은 인간의 인식과 실천활동 과정을
통해서 객관적인 대상및 현상들과 긴밀하게 결합된다. 이러한 객관적 과정들은 단지
환상적인 단어구사에 의해서는 바꿔지거나 제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환상에
집착할 경우 그것에 매인 주체들만이 스스로의 객관적인 실천과 인식 능력을 손상하게
될 뿐이다. 오히려 올바른 인식은 비록 객관적인 물질세계의 반영을 토대로 출현했지만,
역으로 객관적 과정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이 객관적
세계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면서도 객관적 과정의 역동적인 발전에 능동적인 영향을 미
치는 변증법적 과정으로부터 풍부하고도 유용한 과학적 인식과 예술적 형상화가 출현
되게 된다.
4) 리얼리즘의 방법과 예술의 진보성
세계와 인간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태도는 관념론의 태도와는 달리 현실의 제과정을
항시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운동'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역동적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전면적으로 인식하는 주체의 인식과
실천과정에서 사회적 생활의 생생한 모습이 포착될 수 있다.
예술 창조의 출발점은 사회적 생활 가운데에서의 구체적인 것, 개별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예술가의 두뇌 속에 구상이 형성되며, 그는 그것을 자신의
생활 경험, 자신의 다양한 인상의 풍부한 축적에 의해 예술형상으로 완성해내기 때문이다.
예술형상의-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창조는 창조적 상상력의 작용이 없으면 어럽다는
점이 그 특수성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생활의 구체적 현상들과 생활의 합법칙성에 대한
깊은 연구와 예술가에게 고유한 진실에 대한 감각에 입각할 경우에만 을바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 낸다. 임의의 상상력에 의해 자의적 주관주의와 무정부주의 또는 불가
지론의 심연으로 매몰될 위험은 매순간 존재하지만 이러한 위험은 객관적인 사회적
생활세계의 진실을 올바르게 반영하려는 리얼리스틱한 태도에 의해서만 방지될 수 있다.
리얼리스틱한 태도를 견지하는 예술가는 (전형화)에 의해 진실, 생활현상의 의미, 그
근저에 깔려있는 내면적 법칙을 밝혀내지만, 형식주의자들은 관념론적 태도에 의거하여
도대체 (예술적 진실)이라는 문제제기 자체를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며, 오직 예술가의
주관적 정서와 감각의 세계만을 문제 삼는다. 그들은 예술이 생활의 반영을 지향한다는
것 자체를 현실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며, (내적 자유)라는 미명 아래 현실과의 인연을
끊고자 한다. 이 때문에 이들이 만든 작품에는 생활의 진실이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의 의미는 앞 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리얼리즘적인 예술형상에 있어서 (생활적 진실의 해명)은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생활에 잠재한 논리와 그 심오한 합법칙성, 그 가운데에서의 일반적이고도 본질적인
것의 발견과 해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보편적 이념의 상징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별적 실례, 구체적 사례에 의한 도해도 아니다. 그것은 개별적인 것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을 항시 개체적인 것을 매개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서 각각의 형상이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풍부하게 반영하도록 무한히 노력하는
것이다. 예술은 한 개별적 인간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의식의 '운동' 과정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별적 인간과 계급, 계급과 계급, 다양한 사회세력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도 묘사한다. 그러나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는 것이 진정으로
문제가 된다.
예술은 여러가지 갈등, 개별적 인간 각각은 물론 사회적 관계의 총체 내에서 역동적이 고
중충적으로 복합되어 있는 모순적인 관계를 매개로, 또한 그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들의
성격의 항쟁을 매개로 사회생활의 다양한 측면과 관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생생한 관심을 각성시키는 것은 인간의 개성과 운명, 개별적 인간의 구체적
감각과 의식을 통해 비춰진 구체적인 자연과 사회일 뿐이며, 사회적 본질의 추상화 따위가
결코 아니다. 전형적 형상의 창조과정에 대해, 사회세력의 본질에 대한 추상적 개념을
처음부터 고안해내든지 흑은 '외부'에서 빌어와서 그 개념을 개별적 형상에 의해 의
인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런 식의 속류 사회학적 도식
주의는 졸렬하고 편협한 형상화를 초래할 뿐이다. 이런 식의 도해성은 예술가로 하여금
전면적으로 생활을 연구하지도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은 채, 완전히 사변적이고 형이
상학적인 방법으로 미래의 형상의 사회학적 도식을 만들게끔 오도한다. 그러한 도해성은
이미 고전주의에서도 충분히 발견되었으며, 여타의 많은 시대와 민족의 예술전통 속
에서도 쉽게 찾아질 수 있는데, 이는 예술의 내용을 현실의 새로운 측면이나 현상으로써
풍부하게 하려는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리얼리즘 예술형상화의 발전을 방해한다.
이러한 도식주의는 사회적 생활과정 그 자체 속에서 미적 이상의 정열을 발견해내는
예술가의 뜨거운 열정에 의해서만 극복되어진다. 그러한 정열은 불결하고 잔인하며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비타협성을 견지하며, 자연주의적인 생태기술의 냉담한 사이비객관주
의와 철저히 거리를 두는 태도, 뜨거운 정열로 가득찬 생활세계 위에 군림하려는 방
관자적이고 엘리뜨주의적인 편협한 자세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태도 속에서 생생하게
꽃피우게 된다. 리얼리즘 예술의 풍부함이 라는 것은 제형상의 상호관계의 복잡한 총체를
통해 맥맥히 관철되는 인간의 미적이상과 정열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지 모종의 도식이나
일반 법칙만으로는 도저히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 올바로
기초하지 않을 경우 내용과 형식의 긴밀한 통일이라고 하는 것도 공허한 미학적 담론에
불과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는 관계 자체는 생촬의 진실과는 위배되는
작품 속에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의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의 중요한 필수조건이라고 해도 보다 중요한 가치는 우선 생활의
진실이 그 필수조건 자체의 본질적 토대를 이를 때에야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의 진실은 따라서 주관적인 것도 추상적인 것도 아니며, 엄밀히 객
관적이며 구체적인 것이다. 참된 리얼리즘에 있어서의 구체성은 단순히 자기목적적이고
자족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생활상의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정신적
시선과 감각을 그 한계 밖으로 끌어낸다. 이렇게 해서 객관적 현실의 다면적인 진실이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적 인간의 정신생활 속에서 반영되고 공명되며, 또한 인간의
의식과 감각을 충만시키고, 나아가 인간의 개인적 체험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실천의
보다 광범위한 규모에서 주위 환경에 그 진실을 각인시켜 놓는다. 이렇게 해서 리얼
리즘적인 예술형상은 물질적 생활과 정신적 생활의 심오한 변중법적 관련을 탐구하며
드러내 보여주게 된다.
이에 반해 형식주의 예술은 생활을 제멋대로 반영하고, 현실을 임의로 바꾸고, 마음껏
형식을 변형시키는 철저한 주관주의와 관념론을 궁극적인 근원으로 하고 있다. 형식
주의에는 객관적 진리란 없다. 그러므로 형식주의는 본성 그 자체로부터 예술적 진실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 결과 형식주의는 예술을 생활현실과 그 객관적 법칙으로부터 유
리시키고 맹목적이고 자의적인 주관성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수많은 훌륭한
재능을 췌손시키고 파멸시키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패스티쉬)와 (징신분열적 양식)에 대한 프레데릭 제임슨의 분석을 상기해 볼
것). 물론 어떤 형식주의자들의 작품에도, 만약 그 재능이 완전히 쓸모없을 정도로까지
훼손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예술성이 유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그것은 형식주의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의 의식 내부에 각인된, 그에 반대하는
무의식적 경향에-생활의 진실-의해 성취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 사회, 그 마지막 단계인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보수적이고 퇴폐적인 문
화예술에 있어서도 리얼리즘에의 잠재적 경향이 완전히 소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리얼리즘의 올바른 태도에 입각해 볼 때, 예술은 그 본성 자체에서부터 객관적 세계에
대한 다각적이고 구체적인 관계의 모든 측면과 관계하고 있다. 그러한 다각적인 관계
로부터 형성되는 정서적 풍부함은 예술가로 하여금 현실의 매우 크고 복잡한 재료와
그에 대한 반영에서 형성되는 사상적 복잡함을 풍부하게 매개하도록 끊임없는 예술적
기량의 진보를 요구한다. 그러나 예술적 기량의 진보는 단순히 양식, 방법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관계의 풍부함, 사상과 감정의 풍부함, 결론적으로
현실의 미적 반영의 다양함이다. 리얼리즘 예술의 진보성은 바로 이러한 풍부함 속에서
인간의 모든 능력, 감성적, 논리적 인식과 실천, 창조적 지식과 상상력, 깊고 풍부하며
섬세한 감정을 발전시키기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결코 개인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미적 이상이란
결국은 사회적인 미적 이상이다. 또한 리얼리즘은 그러한 미적 이상이 단순히 예술가
개인의 독창성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의 실질적 주체인
민중, 단순한 권력의 대상물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의 주인으로서, 객관적 현실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생산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민중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 입각하여 예술가 역시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진보에 동참하며, 또한 그것을 촉진하게 된다.
·전 망
애당초 역사의 연속성, 역사의 진보를 거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태도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전적으로 그릇된 것만도 아니다. 일면적으로는 그들의 역사관에 정당한
측면이 존재하고 있는데 실제로 역사의 진행에는 불연속적이며, 퇴보적이고 단절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이미 18-19세기 부터 관념론 철학에 의해 단
속적으로 주장되어 왔으며, 특히 니이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그 단적인 표현이다.
실제로는 역사의 진행이란 연속과 불연속(비약)이라는 서로 대립되면서도 긴밀하게
상호연관된 두 측면 또는 두 단계의 통일로 나타난다. 발전에 있어서(연속성)은 느리고
감지하기 힘든 양적 축적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는 대상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그 대상의 (양적) 변화를 일으킨다. 반면 (불연속성)은 어떤 대상에서 근본적인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과 단계로서 낡은 질이 새로운 질로 이행하는 순간들이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무시하는 것은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의 발전과정을 왜곡하고
형이상학으로 빠지게 됨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형이상학자들은 -또한 부르조아 세계관은- (질적) 발전을 무시하고, 발
전을 항시 감지하기 힘든(양적) 축적으로 환훤하는 전형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형이
상학적 사유노선을 따라 사회발전을 비약이나 혁명, 또는 단절이 없는 순수한 연속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장은 구조주의자들과 모더니스트들의 역사철학에서 쉽게 찾
아볼 수 있다. 그에 반해 객관적인 현실에 있어서 (양적) 발전을 부인하는 태도는 인식론적
무정부주의의 -쁘띠부르조아 세계관의- 전형적인 이론적 기초이다. 이들은 양적 축적이
없는 질적 비약만을 (유토피아) 맹목적 로 기대하며 또는 완전한 단절을 가정한 채 파편적
고립상태에서 자포자기의 지적쾌락에만 몰두한다.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
론적, 세계관적 기초는 대채로 이와 상응한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리얼리즘적인 역사이해는 연속과 불연속성을 역사발전의 불가
결한 상호모순적인 통일적 과정의 두 계기로 파악한다. 이러한 모순적 과정을 통해 역사는
진보한다. 그러나 역사 발전의 진보적 성격은 그룻된 '역사주의'의 오해와는 달리 일직
선적인 운동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나선형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는 때로는 이미
지나간 단계들이 일정하게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단계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즉 좀더 높은 기반 위에서 되풀이 된다. 말하자면 이 반복은 결코 낡은 것으로의 실질적인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것의 출현을 위한 양적축적을 의미한다.
하지만 객관적 실재로서의 구체적인 역사과정의 나선적 진보의 발전은 항시 저절로,
즉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주체적 활동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나선적
발전형식은 실질적으로 그 발전의 내용을 이루는 인간 주체들의 사회적 관계내에서 작
용하는 모순과 갈등을 통해 촉진되기도 또는 억제되기도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계급적
관계는 주요한 사회 발전의 동력 또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때문에 사회생활의 진실을
깊고 풍부하게 반영하면서 나아가 생활의 진행과정에 능동적인 각인조차 남길 수 있는
리얼리즘적인 예술형상화에 있어서 인간의 주체적 활동관계, 특히 계급적(그리고 민족적)
갈등과 모순관계는 그 내용상의 심오함과 역동성의 성취에 있어서 주요한 관건이 된다.
이렇게 사회생활의 심층부를 폭넓고 풍부하게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리얼리즘의
예술은 자연스럽게 정치성을 띄게 되며, 그러한 정치성의 현실적인 내응은 바로 민중성
계급성, 당파성의 복합적인 층위와 관련되게 된다. 따라서 사회생활의 진실을 폭넓고 풍
부하게 반영하려는 리얼리즘 예술에는 그 사회 내의 물질적 생산관계에 기초하여 그를
조직하고 또 그에 저항하는 주체들의 정치적 실천의 핵심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그 과정에
동참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우리의 현대미술은 1980년을 전후로 해서 비로소 사회생활의 객관적 과정과 그 과정
내부의 핵심적인 정치적 갈등 문제를 반영하고 또한 단순히 그런 사실을 재현해낼 뿐만이
아니라 객관적 과정의 모순적 발전에 일정한 작용을 가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형성된 민족민중미술운동은 아직 리얼리즘 예술방법의
풍부한 성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이는 저간의 우리 미술계 내부의 열악한
조건및 전반적인 정치사회적 질곡의 부정적 영향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특히 미술계
내부에서는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행의 문제가 올바르게 파악, 반성되지 못했고
그러한 파행적 수용에 따른 혼란 등으로 인해 리얼리즘적 예술창작방법의 필요성조차
크게 절감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 전사회분야에서 민주화에 대한 본격적인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현상황은 우리의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과 문화예술적 역량의 모습을
진보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런 지점이야말로
리얼리즘적인 현실파악에 있어서의 질적 비약의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비약은
이제까지 소박한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민족·민중미술운동이 90년대를 향해 전진하는
민족민주운동의 새로운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와 새로운 민주주의적
미술문화의 미학적 질을 고양시킬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결정지울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