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광장내의 신전들

사투르누스(Saturnus) 신전.
BC. 497년에 완공, 현재 이오니아식 8개 기둥이 남아 있다.
사투르누스는 농업의 신이자 불멸의 태양을 주재하는 이탈리아 신이다.

베스파시아노 신전.(오른쪽 3기둥)
현재 15.2미터의 코린트식 세 기둥만 남아있는 이 신전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디투스 때
시작하여 81년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완성했다.
화해의 신전과 사투르누스 신전 사이의 가장 명당 자리에 세웠다.

사투르누스 신전과 베스파시아노 신전의 원형도

베스타 (Vesta) 신전.
대로마제국의 상징은 ‘힘’이었고 이 힘의 상징은 ‘불’이었다. 불은 또한 영구 불변을 상징했고
로마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겼다.
베스타 신전은 이 불을 보관하던 곳으로 직경 15미터 원통형 대리석 건물로 거대한 국가 화로였다.
이 지역은 로마에서 가장 신성한 지역이었고, 불이 꺼지면 국가에 재앙이 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불을 지키는 여사제의 규율이 몹시 엄격했다.
394년 기독교를 국교화한 테오도시우스(Teodosius) 황제가 성화를 꺼버리고 신전을 폐쇄시켰다.

처녀 제관의 집 (베스타 여사제관)
성화를 지키고 의식을 집전하는 여사제들의 거주지였다.
총 6명이었는데 보통 7,8세 전후 귀족 가문의 딸 중 선발 30년간 순결을 지키며 업무해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로부터 상당한 급료를 받았으며 높은 지위를 받아 공공 행사시나 축제 때
정무관 수준의 특별석에 앉았다.
그녀들은 매우 신성시 되었는데 한 예로 사형수가 형장으로 가다가 여사제를 보게 되면 즉시
사면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성화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꺼뜨리거나 순결을 잃으면 생매장의 형벌을 받았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여사제관 터.

율리우스 케사르 신전.
BC.44년 3월 15일 암살 당한 시이저를 화장한 장소 위에 초대 황제 아우구투스가 그를 위해
신전을 세웠다.
이는 인간을 최초로 신격화한 신전이었고 이후 황제들의 신격과 신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스토르와 풀룩스 신전.
12.5미터의 원주 3개가 남아 있다.
신전 입구 양쪽에 말에서 내리는 쌍둥이 형제 모습의 석상이 있었는데
현재 캄피톨리오 로마 시청사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아래 사진)


안토니오 파우스티나 신전
141년 안토니오 피우스 황제가 죽은 왕비 파우스티나를 위해 세운 신전으로 11세기에
산 로렌조 인 미란다 교회가 내부에 들어섰는데 밖에 17미터의 녹색 대리석 10개 원주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로물루스 신전
로마 창건자 로물루스가 아닌 막센티우스황제 아들 로물루스를 기리기 위해 309년에 축조되었다.
거대한 청동문이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으며 자물쇠는 현재도 작동되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안토니오 파우스티나 신전과 로물루스 신전.

Via Sacra (성스런 길 – 聖路 ) - 사진 아래 위.
로마 광장을 가로지르는 길로 승전 장군의 개선 행사가 이 길을 통해 이루어졌다.


흑석.
원로원 앞의 공간으로 로물루스가 이곳에서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로마인들은 죽음과 관련 불길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곳을 검정 대리석으로 덮고
담장을 설치했다. 이로 흑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캄피톨리오 언덕에서 본 포로 로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