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봄이면 꽃소식이 먼저 찾는 곳이 남녘땅 구례가 아닌가 한다.
구례로 탐매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이 "매화꽃이 천지삧깔이다!"라고 매화 꽃소식을 전한다.
매화꽃이 만발할 때면 가슴을 짠하게 파고드는 사랑이야기가 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그때 나누고 싶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관기(官妓) 두향(杜香)사이에
매화(梅花)를 놓고 벌어진 사랑이야기이다.

작가 최인호는 장편소설 <유림> 퇴계 이황 편에서 퇴계가 매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감칠 맛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소설 <유림>에서 남한강가에 있는 관기 두향(杜香)의 묘를 찾아가는 장면부터 그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무덤 왼쪽에 묘비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검은 화강암으로 잘 깍아 만든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두향지묘(杜香之墓).
그 묘비를 보자 나는 마침내 두향의 무덤에 도착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무덤이 두향의 묘입니다."
두향은 퇴계가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였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 눈에 퇴계에게 반했다.퇴계는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인 것이다. 그는 단양군수 시절 두향을 만나 9개월 만에 생이별을 한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가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고 한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만큼 두향과 매화를 사랑한 퇴계다.
퇴계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 죽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그들이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간 두향은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퇴계 이황은 단양군수 시절 관기(官妓) 두향(杜香)을 만난다.
퇴계 이황이 48살 때 단양 군수로 부임 했다.
그 고을 관기였던 18세 어린 관기 두향이 첫 눈에 이황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 성격이 대나무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퇴계 이황이었다.
부인과 아들을 잇다라 잃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두향과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향이 외모며 글솜씨며 거문고 솜씨가 특출나서 퇴계 이황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고 전한다.
사랑을 시작한지 꼭 9개월만에 퇴계 이황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관기를 못 데리고 다니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결국에는 두향이를 혼자 두고 퇴계 이황은 풍기로 떠나 갔다.
떠나면서 꾸린 짐속에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한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게는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드디어 퇴계 이황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生別常惻測)."
그리고 이황이 말끝을 맺었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이황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이황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 하였다.

퇴계 이황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이황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이황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그의 그 말속에는 퇴계 이황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 身 應 是 明 月 . 幾 生 修 到 梅 花).
퇴계 이황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이황이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다.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퇴계 이황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 이황이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기리는 도산서원이다.
두향이가 퇴계 이황에게 주었던 매화가 도산서원에 대를 잇고 이어 해마다 그대로 탐스럽게 피고 있다.
지금도 퇴계 이황의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이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다고 한다.

옛날 중국 산동 지방에 '용래'라는 청년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약혼한 지 3일만에 그만 약혼녀가 몹쓸 병에 걸려 죽게되었다.
용래는 너무나도 슬퍼 약혼녀 무덤에서 울었다.
그의 약혼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하늘도 감동을 하였는지
그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나무가 한 그루 돋아 났다.
용래는그 나무를 집에 가져와서 마당에 심고 약혼녀의 넋이라
생각하고 일생 그 나무를 바라보며 살았다.
그가 늙어 죽어서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훗날 약혼녀 무덤에서 핀 나무를 '매화나무'라고 하였다.
매화 나무곁을 떠나지 않고 늘 곁에 있었던 새는 '휘파람새'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