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후기) 우리나라에도 아프리카 원주민 불상이 있다네. -이천 소고리불상과 장호원 어석리 석불입상을 보고 와서..
아프리카 원주민상
가. 들어가는 글
연수원 별장에 아무도 없다고 해서 회사 동료와 이천을 향했다. 가는데 얼마나 비가 많이 오던지.. 정수 수영을 시켜줄런지 걱정이 앞선다.
이천쌀밥 집에 들러 점심을 했다..반찬이 30여가지 나온다. 워낙 여러집이 있는데. 맛있는데 찾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차 주차가 많고, 사람이 많은 곳. 갓 해온 쌀밥이 어찌나 입에서 살살 녹던지.. 밥 한공기 추가요?
역시 별장이라 좋긴 좋더군.. 2층집 넓은 공간 백만원짜리 오디오에다가.. 값비싼 가구들.. 그래 하루 호강하면서 살자..잉 마당 한켠에 놓여진 해태상과 거북석상이 별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서 있다. 필시 다른곳에서 옮겨온 것일텐데.. 개인만을 위해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건지....
어느 정도 정리 끝나고 카메라와 캠코더를 챙겨들고, 혼자 조용히 나왔다. 아내가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해도... 근처에 소고리 마애불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나. 소고리 마애불(경기도 유형문화재 119호)
소고리 마애불
지방문화재다 보니 대로엔 입간판이 보이는데..본격적으로 마을길로 접어드니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 젊은 사람들도 그 유적에 대해 잘 모르고,, 결국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에게 물어 물어 마애불로 찾아가는 초입을 찾을 수 있었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데.. 좀 섬뜻하던군.. 비와 안개가 섞인 숲길이 참 아름답다. 노송이 쭉쭉 자기 몸매를 뽐낸다.
300여미터 오르니 드디어 소고리 마애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첨 보는 순간 경주남산의 삼릉계곡의 육존마애불이 떠오른다.. 가부좌를 틀고 손모양은 초법륜인을 하고 있다. 가슴은 U자형 옷주름, 목에는 삼도가 진하게 새겨져 있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귀는 어깨에 닿을 만큼 크고, 눈은 부리부리.. 입술은 두텁다. 지방호족이 만든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손 모양이 미륵불인 법주사 마애불상과 비교되는 것으로 고려 조각사의 귀중한 자료란다.
아프리카 원주민 -소고리 마애 삼존 석불.
삼지창이 보이는 원주민상
소고리 마애불 바로 뒷편엔 파격적 형식의 불상조각이 보인다. 바로 소고리 마애 삼존석불이다. 한눈에 보아도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보인다. 둥근 입술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잇다.,, 뭉그러진 코. 툭-불거지고 깊이 팬 눈두덩이.. 팔은 사가슴에 모으고, 발가락은 쫙 펼쳐져 하늘로 향하고 있다. 영락없는 아프리카 토인모습이다. 좌우 부처도 마찬가지다. 심하게 훼손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얼굴 윤곽은 확인이 된다. 신라시대 토우나 신상을 좀 과장되게 표현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우주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먼 옛날 우주선 타고 와서 이곳에 아프리카 토인을 그려 넣은 것 아닌지? 토우처럼 느껴졌는지 얼굴자체가 포근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발견 했는데 한 옆에 삼지창와 칼이 섬뜻하게 빛이 나 있다. 얼마나 놀랬는지....얼마 전에 이곳에서 굿판이 벌어졌나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언덕 위에 빨간옷을 입은 염라대왕, 산신령과 동자승상이 일렬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놀랬는지...더위가 싹 가신다. 암만 낮이라도 이렇게 비오는 날 혼자서 답사 다니면 무섭구나.
* 가는길. 이천군 모가면 소고리. 버스는 무리..차를 가져 갈 것.
다. 어석리 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107호)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어석리 입석.
연수원으로 돌아 갈려니 여기까지 왔는데,, 장호원 어석리 석불입상을 꼭 보고 가자. 지방문화재라 보니 거의 푯말을 찾을 수 없다. 똑같은 길은 3번이나 헤메였다. 시간이 한참 지체되었지만 나중엔 오기마져 생긴다. 물어 물어 찾아간다. 지방문화재의 설움이랄까. 도저히 이정표를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어석리 석불입상까지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답다. 넓은 들녁에 학들이 군무를 이루고 춤을 춘다. 진녹색 들녁이 더 학을 희게 보이게 한다. 한참을 차를 세우고 감상한다. 석불입상은 마을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뒤에는 야산을 등지고 있다. 불상주변엔 철 난간이 아닌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국가에서 난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이곳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돌담장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다 쌀을 거둬다가 이 미륵상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쯤 되니 왜 이천쌀이 맛있고, 들녁이 풍요롭고 학이 노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복과 수확은 인간들의 정성이라고 생각된다. 신과 자연을 순응한 마을사람들의 소박한 심성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어석리 입석 옆면-이천쌀이 맛있는 이유.
석불입상은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리부분, 몸, 지붕돌 모양의 3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16각형이나 되는 넓은 모자를 머리에 얹고, 넓은 이마. 움푹 패인 미간이 눈에 띤다. 코와 입은 생각보다 작고. 뺨과 턱이 둥글어 전원일기에 나오는 시골 아저씨 모습 처럼 느껴진다. 친근한 부처님의 모습을 은근히 나타내줄려는 조각가의 의도인가 보다. 귀는 또 어찌나 큰지 어깨마져 덮었다. 몸통 이하는 돌의 크기 때문인지 인체의 비례가 자연스럽니 못하다. 상자에 들어간 것처럼 답답하게 보인다. 수인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으며, 역시 어색하다. 법의는 발끝까지 내려와 있고 발가락 10개가 보인다. 새까만 이끼가 법의와 발을 덮고 있어 천년의 세월을 말해준다. 불상 뒤는 아무런 장식 없이 자연스럽게 깍았다. 옆에서 본 모습에서 불상의 양감을 보며 돌의 따뜻함을 느낄수 있다. 뒤에서 들녁을 보는 모습.. 풍요를 기원하는 부처의 모습이 강렬하게 보인다.
가는곳 일죽 ic에서 장호원길로 가다가 율면으로 가는 383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거기서 고당교를 건너면 커다란 냉장창고가 안온다. 거기서 5킬로 정도 가면 어석리로 들어가는 입간판이 나온다.
라. 별장에서
별장에서 정수가...
별장으로 돌아와 정수와 함께 수영하고 밤엔 숯불에 삼겹살도 구웠다. 그리고 소주 한잔. 쏟아지는 별빛과 함께 한 바베큐 파티.. 잊을 수 없으리라..집이 크다보니 숨바꼭질도 해본다. 술에 취한건지 별에 취한건지 그냥 하늘을 안고 뻗어본다.
바. 마침말.
지방 문화재지만 민중들이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어 화려한 것보다도 훨씬 좋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곳을 자주 찾아 봐야 하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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