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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2006년 가을호.
<서정시학 집중 조명 대담 원고>
꽃 外 4편
표성배
무슨 꽃빛이 저리도 강렬한가
성질 급한 봄꽃 마냥
피었다 지는 꽃은 아닌 듯하다
할말 다하지 못하고 쌓이고 쌓여
가슴이 폭발하듯 내뿜는
분노 같은 빛,
일직선의 팽팽한 긴장이 꽃이 되었다
똑바로 볼 수 없는
저 강렬함에 비할 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화려한 장미를 넝쿨째 늘여 놓아도
무슨무슨 꽃 축제장을 둘러보아도
비교가 안 된다
자유자재로 꽃잎을 늘였다 줄였다
칼처럼 세웠다 눕혔다 오므렸다 하는
공장의 꽃,
그라인더 불꽃,
저 꽃 속에 밥이 있다
저 꽃 속에 아내가 있다
저 꽃 속에 아이들이 있다
여름부터 봄까지
꽃잎 하나라도 상해서는 안 될
꽃 한 송이 부여안고
비 오나 바람 부나 애지중지 염려하다 보니
김씨 얼굴에도 어느덧 꽃이 피었다
공장 벽에 걸린 시계가 멈춘 날
내가 공장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믿지 않았다
기계 앞을 벗어날 수 없는 나처럼
벽에 붙어 찰칵찰칵 몸을 밀어
공장을 돌리던
벽시계가 멈춘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뜨거웠던 사랑의 순간처럼
공복의 가슴을 누르는 공장 천장이 빙그르르 돈다
순간이나마
모든 의지가 멈춘 시간, 공장은 꼼짝하지 않는다
공룡 발자국마냥 선명한 핏빛
쿵쿵거리는 아우성
일시에 멈추어버린 시계 초침의 힘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지나온 발자국이 어지럽다
잠깐 멈춘 시계는
다시, 공장을 돌리지만
내 앞에서 멈춘 시간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공장은 안녕하다
아침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기계는 멈춰야 할 시간이면 어김없이 멈춘다. 잘려지고 용접되어야 할 제품들은 제자리에 단정하고, 복도며 화장실을 맹글맹글 닦아 놓는 김씨 이마에도 송송송 땀방울이 맺혔다. 열다섯 살에 공장을 알아버린 내 가슴도 콩콩콩 뛴다
마산시 신포동 1가 9번지 공장 앞 하늘하늘거리던 가로수 수양버들은 어느 곳에 뿌리를 내려 오늘도 한가할까 2차로 길 옆 장성처럼 버티던 전봇대도 서로 사이가 멀어지고, 차도가 반듯하다. 밀리고 밀린 시간만이 따라 잡기 위해 그림자처럼 바쁘고 나는 헤어날 줄 모른다
사십이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 건너야 할 강이 몇 개인지도 모른다. 공장 그림자가 어깨에 내려앉아 아이들 커가는 것만큼 작아진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공장 터에는 번들거리는 건물이 높이 솟아 내 추억 같은 외로움마저 슬프게 한다
그래도 공장은 안녕하다
기름 냄새가 난다
살짝 스치기만 한 바람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가만가만 내려앉는 햇살에서도 근방 기름 냄새가 난다
민글민글 반짝반짝
방바닥에서도 천장에서도 겉옷에서도 속옷에서도 처마 밑 국화 화분에서도 거실 한 쪽 소나무 분재에서도 숟가락에서도 젓가락에서도 더운밥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싱긋 웃는 얼굴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눈물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헉헉 숨소리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손이 닿기만 하면 눈길이 머물기만 하면 기름이 배어 번들번들거린다
그가 마시던 막걸리 잔에서도
그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에서도
그가 잘라 버린 손톱에서도
그가 입을 맞춘 아이 볼에서도
그가 지나다니는 골목, 실비집 구둣방 이발소 슈퍼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낡은 지갑 속 네 귀가 닳은 만 원짜리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뒤축이 닳은 구두에서도 소매가 해진 양복에서도 등록금에서도 학원비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아버지 몸에서는 언제나 기름 냄새가 난다
저 말 못하는 것들에게
가끔은 일하지 않는 일요일, 공장에 가볼 일이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인데도 버릇처럼 단정하게 앉은 기계들, 주름살 깊은 눈까풀을 내려 오래간만에 늦잠을 자는 천장등에게 행여 방해라도 될까 살금살금 이곳저곳 공장을 돌아볼 일이다
내가 하루 쉬는 날, 공장도 몸을 눕혀 늘어지는 날, 무거운 짐에 어깨가 처진 지게차도 멀리서 위로해주어야지 제품을 들고 옮기느라 마음이 바쁜 크레인에게 정답게 웃어주고, 쇠를 굽히고 펴느라 허리가 휘어진 프레스도 마음속으로 다독여 주어야지, 가끔은 내 머리가 아프고, 내 팔이 처지고, 내 어깨가 무겁더라도
저 말 못하는 것들과 마음으로라도 말 좀 해보아야 겠다 싶어 가만히 공장 문을 여는 순간, 나보다 먼저 천장을 뚫고 들어온 햇살 몇 줄기 화살처럼 공장바닥에 꽂혀, 저 말 못하는 것들을 위해 침입자를 경계하듯 나를 노려보는 눈이 매서워 공장 안에 발을 들이기가 오히려 미안하다
표성배
1966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해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개나리 꽃눈』이 있다.
<집중 조명 대담>
맹문재 : 표 시인,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삶을 아주 열심히 시로 담아내고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01년 첫 시집 『아침 햇살이 그립다』(갈무리)를 출간한 이후 『저 겨울산 너머에는』(갈무리, 2004) 『개나리 꽃눈』(삶이보이는 창, 2006)을 연달아 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정시학>에서 또 다른 시집이 출간 예정에 있습니다. 좋은 시집을 쌓아가면서 한국 시단을 크게 움직이려는 <서정시학>에서 표 시인의 시집을 출간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근황을 좀 말씀해주세요.
표성배 : 반갑습니다. 선생님, 저 역시 선생님을 만나 뵙고 여러 가지 고맙다는 인사말씀도 드려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시집 『저 겨울산 너머에는』이 출간되고 선생님의 평론집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에서「신자유주의시대의 공장에서 길 찾기」란 주제로 평을 해줌으로 해서 나름대로 제 시집이 올바르게 평가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근간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마는 한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면 공장에서는 지난 7월 말에 올해 단체교섭을 마무리한 것이 가장 큰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학 활동과 관련해서는 다섯 번째 동인지를 출간했습니다. 출간과 더불어 지역의 여러 선생님들과 현장 동료들을 모시고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바 있습니다. 그 외에는 일상적으로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오후 늦게 하루 일과를 마치는 것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맹문재 : 표 시인이 그동안 출간한 시집을 읽어보니 작품이 여전히 단순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시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또 오늘날 자신의 삶터를 지키며 시를 쓰는 시인이 드문데 표 시인은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든든합니다. 표 시인은 이제 네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동안 출간한 시집과 다르게 내세우고자 하는 면이 있는지요?
표성배 :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여전히 소재의 편협함과 단순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재의 편협성이란 ‘공장’이라는 삶의 터전을 붙잡고 어떻게 문학작품으로 형상화시켜 낼 것인가라는 제 나름의 고민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래도 작품이 단조로운 것은 여전히 고민으로 남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공장을 넘어 시 세계를 더 넓게 확대해 나가야 된다는 것에 공감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에 준비하는 시집 역시 작품의 단순한 면이 먼저 눈에 들어 올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공장을 소재로 해도 그 형식면에서 달리 취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앞의 시집과 구별되는 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의 변화에 좀더 무게를 두고자 합니다.
맹문재 : 그렇지요. 제가 이야기한 시의 단순성이란 제재의 문제라기보다는 표현 방법의 문제인 것이지요. 표 시인께서 그와 같은 면을 잘 인식하고 있으니 좋은 시집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저는 언젠가 표 시인의 시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시대의 공장이란 주제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표 시인의 시 세계를 지배하는 시어는 “공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공장에 대해서 얘기를 좀 나눌까 합니다. 지금 일하는 곳은 어떤 공장인가요? 그리고 그 공장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요? 작품들을 보니까 그라인더 작업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용접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공장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다니게 되었는지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표성배 : 현재 제가 일하는 공장은 정밀화학과 석유화학 및 원자력 플랜트 등에 들어가는 압력용기, 열교환기, 타워, 반응기 등을 생산하는 공장과 공작기계(CNC선반, CNC밀링, 머시닝센터 등), 그리고 고속도로와 철도교 등 특수교량을 생산하는 공장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요. 저는 석유화학과 관련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91년도에 입사하여 제관 일을 시작으로 용접(그라인더는 필수적)과 철판을 동그랗게 말아내는 벤딩 작업, 사업을 철수한 자판기 조립 작업 등을 거쳐(구조조정으로 계속 하는 일이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석유화학 제품을 출하하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주로 야외에서 작업을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빨리 실감하는 것이 저희들이라고 봅니다. 물론 납기가 바쁘면 비가 와도 일을 합니다.
제가 공장을 나가게 된 것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 때는 누구나(내 친구들 대부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갔습니다. 고향이 너무 시골이라 중학교에 진학하는 애들이 동네에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꼭 중학교를 가려고 했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대신 창원공단에 취직만 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제 주위 형들도 그랬으니까요. 저는 1979년 2월부터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첫 출근하는 날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렸는데, 지금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맹문재 : 생활해온 공장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처음 일하던 때와 지금의 모습은 얼마나 변했는지요? 공장의 규모나 작업환경,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수준 및 의식 정도 등이 궁금하네요.
표성배 :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처음 입사한 공장은 소위 마찌꼬바(작은 공장)이었습니다. 전체 인원이 많을 때는 20여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주위의 다른 공장에 비해 좀 많은 편이었지요. 그 때는 공장에서 형들에게 맞아가며 기술을 배워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기술자가 되는 것, 기술자가 되면 높은 임금을 받을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좀더 큰 공장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게 없어요. 기계의 자동화가 한 몫을 했겠지만 아무리 자동화가 되어도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는데, 이런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요. 기술을 배워도 비정규직으로밖에 취업이 안 되지요. 그렇다고 임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런 것이 마찌꼬바의 현실이지요.
제가 다니는 공장 규모는 큰 편입니다. 사무직을 합해서 1천5백여 명 정도 되는데 구조가 기형적입니다.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겠지만 정규직은 6백여 명이고 이 중에서 5백여 명이 사무직입니다. 나머지 1천여 명은 사내 하청업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합원이 많을 때는 7백여 명일 때가 있었습니다마는 부서의 통폐합과 공장 축소 및 폐쇄 등을 거치면서 모두 퇴사를 했지요. 그 후 다시 일거리가 많아지면서 지금의 기형적인 구조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조합원과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의 차이가 큽니다. 아무래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자본과 맞서 본 경험이 있는가 없는가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고 봅니다. 작업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더욱이 마찌고바야 대기업 노동자들에 비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다들 어려워요. 사는 게 그래도 사회 전반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어려워도 휴대전화나 컴퓨터나 자동차를 안 가질 수 없고, 가끔 외식도 해야 하지요. 물론 저도 만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옆집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겠지요. 그리고 의식이라는 것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계기가 없는 한, 특히 주체적인 노동자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맹문재 : 공장의 규모나 작업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더 듣기로 하지요. 공장 생활을 하다보면 시간이 부족하고 분위기가 어색해 사실 시 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열심히 쓰고 있는데, 물론 좋아서이겠지만, 시 쓰는 데에 어떤 면이 어려운가요?
표성배 : 작업 시간에는 시를 쓰지 않습니다. 아니 쓸 수가 없지요. 동료들과 조를 맞추어 일을 하기에도 벅차니까요. 또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은 작업환경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제가 주로 시를 쓰는 시간은 일을 마친 밤 늦은 시간과 아침 시간이지요. 아침 6시 정도면 공장에 출근을 하는데 일을 시작할 때까지 한두 시간 정도 남지요. 이 때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생각과 메모를 해두었던 것을 시로 씁니다. 그러다보니 시를 쓰는데 특별한 환경적 어려움은 없습니다. 어떤 내용을 어떤 새로운 형식으로 쓸 것인가가 늘 어려움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이 또한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겠지요.
맹문재 : 시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요? 습작기에 영향 받은 시인이나 상황이 있는지요? 독서 경험이나 다른 경험도 들려주시면 고맙겠네요.
표성배 : 제가 시를 쓰게 된 동기는(동기라고 붙여도 될지 모르지만) 1981년 야간 중학교를 다니면서 야학 선생님들의 영향이었다고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공장 형님들의 도움으로 야간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때는 잔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가기가 어려웠지요. 그런데도 형님들이 사장님께 청을 넣어서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야학을 하시던 선생님들이 대부분 진보적(?)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1989년 방송대 국문과에 입하하여 노동시 모임인 <객토>를 결성하여 활동하면서 시에 대해 좀더 깊이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봅니다. 특별하게 영향을 받은 시인은 없습니다. 주로 <실천>이나 <창비> <청사> 등에서 출간된 시집을 탐독하고 스스로 시를 썼습니다.
맹문재 : 표 시인의 작품 「방」「방안에도 별이 뜬다」 등을 읽으면 “아내”가 등장합니다. 저는 이 시어를 표 시인의 실제 아내로 읽었는데,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표 시인의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표성배 : 저의 가족은 단출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3학년인 딸이 있습니다. 사실 제 시에는 아내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딱히 구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많습니다. 제 아버지는 나이 열한 살에 한국전쟁이 나고 보도연맹과 관련되어 당신의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어려움을 안고 사셨지요. 물론 어머니의 헌신이 뒤따른 것은 당연하고요. 아내는 저와 같은 방송대에서 만났습니다. ㅎ섬유회사에서 일을 하며 야간 실업고등학교를 마치고 일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ㅅ전자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일이 힘들다 보니 늘 몸이 아팠지요. 우린 그렇게 만나서 두 아이와 함께 18평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결혼을 하고 아내는 몸이 좋아져 쉬었던 일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규모 전자부품조립회사에 말입니다. 저희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일흔이 다 되신 부모님이 계십니다.
맹문재 : 첫 시집의 제목인 『아침 햇살이 그립다』에서도 그렇고 다른 많은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표 시인은 “햇살”이란 시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장”이 지배하고 있는 표 시인 시 세계의 다른 한쪽에는 “햇살”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햇살”을 많이 쓰고 있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요?
표성배 : 철야 작업을 밥 먹듯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공장 밖으로 나왔을 때 아침 햇살은 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희망이 없다면 내일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파업 철야 농성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햇살은 늘 가까이에 있는데 실지로 노동자들은 이 햇살을 알지 못합니다. 즉 많은 노동자들이 희망을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햇살이라는 좀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도 눈앞의 환경에 밀쳐지기 일쑤입니다. 저는 햇살을 이런 희망으로 쓰고 있습니다. 물로 모든 작품의 햇살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런 물음을 던져도 봅니다. 노동자에게 희망은 있는가. 무엇이 노동자의 희망인가 하고 말입니다.
맹문재 : 「공장 벽에 걸린 시계가 멈춘 날」은 공장 파업처럼 읽힙니다. 표 시인이 근무하는 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있나요? 표 시인은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표성배 : 먼저 노동조합의 필요성인데요. 한마디로 노동조합은 없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공장에서 일을 해본 노동자라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그런 표현을 써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니는 공장에 입사하기 전에 마찌꼬바에서 조합을 결성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노동조합이 있는 공장에 입사하여 조합 활동을 했습니다. 1991년에 입사하여 1992년부터 지금까지 대의원, 상집간부, 임원을 거쳐 지금도 조합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맹문재 : 표 시인의 시는 노동시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데, 앞 시대의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와 다른 면이 있겠지요. 본인이 시를 쓰면서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면은 있는지요? 이 점은 현재 21세기의 노동시가 1980년대와는 다르게 추구해야 할 방향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표성배 : 박노해 시인이나 백무산 시인의 시와 다른 점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좀더 쉽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삭막하기만 한 공장에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많습니다. 기계와 기계의 관계, 기계와 사람과의 관계 등 딱딱한 노동시가 아니라 서정이 넘치는 노동시를 쓰고자 합니다. 공장에도 살아 숨쉬는 생물들이 있다는 것을 쓰고자 합니다. 물론 선배 시인들의 초창기 시는 쉬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자들의 현실에 다가서지 못하는 시들이 노동시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을 때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거부감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노동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공장이라는 환경이 바뀌었고(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시를 대하는 노동자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노동시는 좀더 노동자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맹문재 : 근래 노동시의 침체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동문학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요 며칠 전(7월 28일) 인천문화재단에서 학산문화원 산하 ‘컬쳐팩토리 문학위원회’가 마련한 「한국 노동문학의 역사와 전망」이라는 포럼이 있었습니다. 노동문학의 역사를 살펴보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요. 저도 참석해 송경동 시인의 시세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려고 했습니다. 표 시인은 현재의 노동시가 왜 침체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다소 어렵더라도 답변을 해주시면 고맙겠네요.
표성배 : 총체적으로 보면 시를 쓰는 시인과 독자를 비롯하여 출판과 발표지면 모두가 노동시에 갖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창비>나 <실천>이 어떻게 자리매김해 왔는지 다 알고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노동문학을 생산해도 출판할 곳이 없습니다. 다행히 ‘도서출판 갈무리’나 ‘삶이보이는 창’과 같은 출판사가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노동시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평론가도 거의 없습니다. 맹문재 선생님 같은 분이 많아야 여러 잡지에도 노동문학이 소개되고 아울러 그것을 접하는 독자도 새롭게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름만 노동시인이 아니라(사실 노동시인이라는 칭호도 옛것이 되었습니다) 실질적인 노동시를 쓰는 노동시인도 몇몇을 빼고 나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또한 노동시라는 것이 노동자가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애매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노동시의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맹문재 : 표 시인은 어떤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지요? 그렇게 여기고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요?
표성배 : 앞에서도 약간 언급을 했지만 좋은 시는 일단 쉬워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문학적 장치를 배제한, 무조건 쉬운 것을 의미 하지는 않습니다. 쉽다는 것의 기준이 불확실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누구나가 읽으면 아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기준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노동자가 쓴 노동시를 노동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참 낭패이지 않겠습니까?
맹문재 : 표 시인은 주로 어떤 시인들과 친분이 있는지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을 이 기회를 통해 소개를 해주시지요. 열심히 시를 쓰는 또 다른 시인을 소개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표성배 : 먼저 <객토> 동인들을 소개하면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배재운 시인과 저와 같이 마창노련문학상을 받고 <일과시> 동인 출신인 문영규 시인, 그리고 들불문학상을 받은 정은호 시인 이상호 시인, 이규석 시인 수필과 시를 함께 쓰는 박종국 시인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 정규화 선생님, 이응인 선생님, 서정홍 선생님, 오인태 선생님, 박영희 선생님 등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맹문재 : 「마지막 욕심」을 읽어보면 동료가 작업 중에 산업재해를 당해 사망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도 좀 해주시지요. 가장 친하거나 영향을 주고 있는 동료며 한국 노동자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동료 등 말입니다.
표성배 : 석유화학 플랜트를 주로 생산하는 공장이다 보니 조선소처럼 사고가 났다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2004년을 빼고 매년 사망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도 한 동료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늘 불안한 것이 나와 동료들의 나날입니다.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분들도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입니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1994년에서 1997년 초까지 노동조합 간부로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했던 동지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조태일 동지, 3년이 넘는 긴 시간 해고 싸움에서 복직한 김기영 동지, 언제나 조합원 앞에 서서 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장정철 동지, 이런 분들이 있어 제 삶이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힘겹지만 노동자로서의 삶을 지탱하는데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맹문재 : 얼마 전 일단락된 포항건설노조원들에 의한 ‘포스코 본사 점거 농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그에 따른 정부의 노동자 구속이라는 악순환을 겪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로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그리고 현재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보다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요?
표성배 :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짧게 말씀드리면 정부가 자본을 통제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자본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정부 정책으로 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말은 정부의 노동정책에 노동자로서 손을 들어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저 역시 정부의 노동정책에 항의하는 머리띠를 메는데 주저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현재의 노동조합 활동은 크게 보면 어떻게 자본과 대등한 관계를 가질 것인가가 주안점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씀드리면 한 때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의 위상이 높을 때가 있었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노동조합 가입률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갈수록 가입률이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타개하기 위해 산업별 노동조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많은 사업을 하고 있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의지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은 희생을 할 때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어깨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를 달리 말씀드리면, 비정규직의 지위를 높이지 않는 한 정규직의 지위 역시 언제 비정규직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에 노동조합의 활동방향을 맞추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은 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아무런 제약 없이 가입할 수 있어야 하고, 가입 후에도 지위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하고, 가입을 빌미로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법으로 제제할 수 있을 때 많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높아야 일차적으로 자본과 대등한 관계가 설정된다고 봅니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던 우리들이 고용 보장을 외치고 있습니다. 신명나는 일터가 아니어도 일만 할 수 있다면 된다는 것이지요. 무섭습니다.
맹문재 : 「공장은 안녕하다」 「저 말 못하는 것들에게」등을 보면 표 시인에게 공장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계속 공장 생황을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요? 시인으로서의 계획도 물론입니다.
표성배 :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생활하며 시를 계속 쓰는 것이 계획 아닌 계획입니다. 공장에는 계속 다닐 생각이고요, 또 노동조합 활동도 할 수 있는 한 할 것입니다. 우선은 <서정시학>에서 나올 시집 원고를 마무리 지어야겠지요.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
첫댓글 대담집을 찬찬히 살펴보며 읽게 되었었는데 여기서 다시 감상합니다 공장은 안녕하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 등을 두루 섭렵한 독자로서 노동시인의 서정성을 감동하며 읽었던 기억입니다 이렇게 조명 해놓으신 대담들에 눈 여겨볼거리를 내내 읽어내려가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