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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작품을 해와서 늘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배우 박지일의 자취가 무대에서 언제부터 안보일 때 그의 행방이 궁금해진 것은... 하지만 안 보인다고 해서 그가 마냥 겨울잠을 자고 있었을리는 만무. 무대에서만 볼 수 없었지 배우 박지일의 바퀴는 다른 분야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관객들과 다시 만날 채비를 다 갖추고 이번 봄 <슬픔의 노래>로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박지일을 만나보았다.
작년에 <슬픔의 노래>까지 포함해서 다섯 작품을 쉬지 않고 연달아
해서 진이 많이 빠지고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푹 쉬었죠. 쉬면서 그 사이에 영화
두 편도 찍었어요.
<취화선>과 <남자 태어나다>라는
작품이에요. <취화선>같은 경우는
제 역할이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영화진행이 더뎌서 촬영기간이 오래 걸렸어요. 여행을 좋아하는데 지방으로 촬영 갈 일이 많아 영화촬영 겸 여행도 갔다
왔죠. 쉴 때 어떻게 쉬는 가가 중요한데 아직도 쉬는 게 불안하고 좀 낯설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을 잘 이용을 못해요. 이번에는 운동이나, 일어 공부, 컴퓨터 공부를 중점적으로 좀 하려고
했는데 마음먹은 만큼은 못했어요.
이제 봄은 오는데 편하게 지냈던 제 봄날은 갔네요.
연극스케줄이 잡혔어요. 3월에 <슬픔의 노래>와 6월 초에 서울연극제 기간 중 마지막 작품으로 극단 창파의 <사물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어요.
어렸을 때 남 앞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처음 연극이라는 것을 해본 건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따라 성당에 놀러갔다가 크리스마스 이브 축제 때 <엉터리 이발사>라는 무언극을 혼자서 하게 되었어요. 그 때 처음으로 연극의 맛을 보았죠.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주로 성우 쪽으로 목소리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본도 직접 쓰고 방송축제 때 발표도 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목소리로 하는 연기가 아닌 실지로 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 극회활동을 시작했죠. 그렇게 연극을 하게 된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속에 일어난 욕망 때문이었어요. 단순히 주목받고 싶은 욕망보다는 좀더 복합적인 욕망이었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단순히 무대 위에 서서 연기를 하는 게 좋았고 그때만이 제가 살아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운명적으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이 힘들어서 포기를 하고 싶어도 절 연극판으로 돌아오게 한 동기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어떤 운명적인 힘이 작용한 것 같아요.
연극을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포기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부산에서 연극을 하면서도 앞날의 비전은 없고, 연기자로서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어떤 단계에 올라서려는 욕망이 강했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포기를 했었어요. 연극을 접고 일반생활인이 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직장을 잡아서 연수를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참에 채윤일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일년 전에 제가 부산에서<멕베드>라는 작품에서 뱅코역을 한 것을 보고 저 배우를 언젠가 서울에서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봐요. 극단 산울림에서는 유명배우들이 공연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단역이라도 하나 시킬 생각에서 연락하나보다 했어요. 그래서 거절해야지 하고 찾아갔더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역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하시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죠. 이건 내 인생의 또 다른 하나의 기회이자, 연극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구요. 그 다음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서 짐 싸고 올라왔죠.
연기라는 것은 내 속의 것을 끄집어내서 그 인물에 맞게 조합을 해서 표현하는 건데, 내 안에 전혀 없는 것들이 나와서 보여진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표현한 역들이 비슷한 이미지로 보여질 수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전 작품을 하면서 어떤 역을 맡든 내가 똑같은 인물로 표현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했어요. 맡은 역이 비슷해 보여도 그 인물마다 느끼는 고통의 무게감과 그 역할의 생각의 깊이도 다 틀리니까요. 극단적으로 강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참으로 유약한 인물을 만나기도 했지만 제가 표현해 내는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진지하고 무거운 인물들이었어요. 하지만 그 작품에서 요구하는 인물을 최대한으로 표현하려고 내 속에서 끄집어 낸 감정들이 비슷한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선다는 말인데... 처음에는 그게 딜레마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도 싶어요. 부정적으로 말하면 제 한계일 수도 있고. 과연 어떤 배우가 비슷한 역들을 맡았을 때 그 역들을 완벽하게 다른 인물로 소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하지만 그런 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밝아졌고, 나 자신이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정말로 이런 역할은 배우 박지일이 아니면 그 내면과 깊이를 표현해낼 수 없다라는 자기만의 색깔과 깊이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문제는 지금의 극단시스템과도 연관이 있어요. 예전처럼 극단 내에서 모든 작품이 행해지면 그 안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역할들도 욕심내고 선택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요즘 같은 PD시스템에는 연출자들이 그 동안 봐왔던 배우들의 이미지에서 자기 작품에 필요한 배우들을 뽑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많은 작품들이 들어와도 다양한 역할의 선택의 폭이 좁은 것 같아요. 사실 부산에서 연극 할 때는 코미디극도 많이 했고, 개인적으로 연극의 놀이성을 광장이 좋아해요. 한 때는 광대가 되고 싶어서 프랑스의 광대학교로 가려고 했어요. 저한테 내재되어있는 끼는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저 같이 심각해 보이는 사람이 코미디를 해야 정말로 웃기는데 말이죠.
연극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참 중요해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든 배우는 공동창작자의 인식을 갖고 작업에 임해야 되요. 감정과 감각이 다르고 나름대로 축적되어진
연극 메소드가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얼마나 유연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또한 정신적으로도 자유롭고 열린 사고가
필요해요. 작품을 만났을 때 자기가 쌓아온 경험이나 연극지식으로만 보지말고,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이나 역할에 따라서 유연성 있게 대처 할 수 있어야 되요. 신체적으로도 유연해야 되구요. 연기는 결국 자기인식의 깊이와 표현능력이에요. 얼마나
자기를 잘 인식하고 있고, 자기 안에 축적되어진 것을 잘 끄집어내서 그 역할에 맞게 잘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연기자로서의 삶은 잘 모르겠어요. 배우들은 무대 위의 삶과 실제의 삶을 혼동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아요. 배우는 존경받기도
하지만 천박한 직업으로 천시 당하기도 하죠. 요즘 같은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노동의 생산성이나 작업의 효율성이나 경제성으로 봐서 참으로 우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내 자신이 연기를 열심히 해왔으니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난 참 사회미숙아구나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난 모하고 살았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요. 그만큼 정신적으로는 아직 나약하다는 거겠죠. 자기 신념과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왔다면 흔들리지 않았겠죠.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금껏 연극을 해온 것은 운명적이라고
생각해요. 그전에는 갈등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알게 모르게
연극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고통으로 빠뜨리기도 하고 삶의
질곡을 많이 겪기도 했는데, 그 또한 내 의지만으로 수습되지
않았어요. 지금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연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갈등은 이제 없다는 거죠. 매순간 처해진 상황과
선택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나중에 돌아다 봤을 때 집안에
가구에 쌓인 먼지처럼 뭐가 좀 쌓여있겠죠. 그때 소중하게 닦아내든지 아님 그냥 훅 털어버리든지 하겠죠. 30대까지만 해도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지금은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되요.
앞으로는 더 이상 제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죠. 그러면서 존경받을 수 있는 좋은 배우로 남고 싶어요.
솔직히 옛날에는 연극을 하면서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어요. 지하실에서 몇 달 연습하고 공연하고, 그런 조건에서 공연을 또 이어서 하더라도 고생스럽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환경 속에서 연이어 공연을 한다는 게 두려울 때가 있어요. 연극하는 환경에 조금씩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서 그런 점이 연극을 하는데 방해가 되어 중간에 주저앉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있어요. 예전에 선배들이 무대에 서는 그 자체가 무서워지고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는데, 요즘에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대사를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위는 거의 안 했는데 요즘은 무대 위에서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제자신을 발견 할 때가 있어요. 연극을 하면서 쓸데없는 자의식을 가지게되는 순간들이 앞으로 연극을 열심히 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하지만 무대에 선다는 것은 여전히 제 삶의 최고의 가치면서 최고의 행복이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정서나 기질이 기본적으로 자기관리나 통제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 통제가 잘되고 자기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배우를 안하고 있을 거예요. 늘 배우로서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기계발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그렇게 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배우로서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은 무엇입니까?'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기도 한데 전 뻔뻔스럽게 '난 배우라는 인식을 늘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도 난 배우로서 일어나려고 한다' 라고 말해요. 그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늘 배우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내가 공적인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반듯함도 생기고 내가 처해진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무의식적으로도 더 관찰하게 되요. 그런 것들이 나의 간접경험이 되기도 하구요. 내가 배우라는 인식을 늘 하고 있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안목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필터를 통해서 내가 흡수하는 것들이 배우가 되기 위한 큰 자양분이 되는 거죠. 중요한 건 그런 마인드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인식을 하고 있으면 무슨 짓이든지 하게 되어있어요.
있어도 그런 거 말하면 선택되지 않는 배우들이나 연출가들이 오해할까 싶어서 안할래요. 한 명 있긴 있어요, 알 파치노요.(웃음) 전 너무 평범한 배우가 돼버린 것 같은데, 배우는 좀 신비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웃음) 그러려면 이렇게 온라인상으로 인터뷰도 안 해야 되는데... 이 배우는 모하고 사나 궁금증을 일으켜야지, 너무 일상의 모습들이 들켜버리면 그 배우가 무대에 섰을 때 무대에 서는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일상의 모습까지 반추해서 보잖아요.
제 프로필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리고 일반관객들의 공연소감도 듣고 싶기도 하구요. 근데 저 혼자 뚝딱거리면서 만든 조악한 홈피라서 홍보도 많이 안했어요. 그래서 연극하는 후배들이랑 가끔 교감을 나누는 정도죠.
절 좋아하는 후배들이 좀 있죠. 몇 년 전에 <슬픔의 노래>같은 작품을 보고 절 좋아하던 어린 관객들 중에 지금 연극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연극과 학생들이 제법 있어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코드라고는 없는 연극이었는데도 그 친구들한테는 연극에 대해서 진지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나봐요. 그런 후배들을 만나면 정말 더 열심히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연극을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잠깐 관심을 가졌던 그 사람들은 지금 아마 영화 보다가 내가 잠깐이라도 단역으로 나온 거 보면 '저 배우 예전에 내가 봤던 연극에서 주인공 하던 사람인데 왜 저렇고 있지?' 하겠죠. 영화도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마지못해서 하고 그랬는데 이제 영화도 좀 잘해보고 싶어요. 요즘 연극배우들이 많이 영화계로 나가서 대학로에 우리 또래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귀해져서 내가 좀 더 버티고 있으면 연극판에서도 제 값어치가 좀 올라가지 않을까도 싶긴 하지만요.
세상에 일이 참 많은데 선택을 해야하는 시절에 그 선택을 잘못해서 자신의 청춘을 너무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 자기 만족에서 하겠지만요. 연극을 시작하는 젊은 시기에 고생스럽게 극단생활을 하면서 밑바닥을 전전하는데 그게 자기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살아남는 거는 하늘의 별 따기잖아요. 일찍 자신의 행로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잘 아는 일이에요. 대한민국에서 배우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잘 생각해봐야 되요. 그리고 이 일이 나한테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가도 생각해야 되구요. 내가 배우를 해낼 능력이 있을 것인가, 인고의 세월을 참아낼 인내심이 있는가, 내 주위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회인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들을 다 포기한 채 정말 자신만을 위해서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한 자기 확신이 충만했을 때 연극을 선택하면 후회는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막연하고 자신의 확신이 없으면 청춘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후배들이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 배우를 하기로 한 이후에는 배우로서 미덕과 덕목을 잘 쌓도록 노력해야죠.
생 년 월
일 |
1960년대 부산 출생 |
혈액형 |
A형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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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및 수료 |
부산상업고교 66회 졸업 |
동아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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