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5:10-15
출정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그들을 큰 권능과 위엄으로 이끌어 내신 구원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길갈에서 지킵니다. 그리고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날 맛나가 그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초라한 출정식을 하는 것 같아서, 싸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사왕 아하수에로는 살라미스 대전을 앞두고 전국 127도에 있는 방백과 신복과 장수들과 귀족들과 함께 180일 동안 잔치를 벌인 왕입니다. 개다가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칠일 동안 잔치를 베풀어 지도자와 백성들의 사기를 지극히 높인 적이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지금 여호수아의 군대는 그동안 아무런 탈 없이 조달되었던 만나라는 보급도 중단되고, 축제는 커녕 쓴 나물과 맛없는 빵만 먹었으니 군의 사기가 얼마나 무참하게 추락했을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한 영적 전쟁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준비에 있어서 인간적인 흥분이나 육체의 근력에 호소하려는 어떠한 여지도 패하신 것입니다. 그 마침표는 바로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인간이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큰 칼을 들고 싸우는 싸움임을 마지막으로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어떤 주석에 보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일리가 있고 초대 교부들의 입장과 같은 맥락을 가진 해석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분명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약 1400년 이후에 육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인간적인 시간 구분에 제한되는 분이 아닙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천지를 지으시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리셨던 분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오신 이후에만 활동하신 분이 아니라, 모든 천지 만물이 그분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분은 잃어버린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부르고 계시며, 육체로 오시기 전에도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며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영원이란 말은 시간성을 초월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에겐 모든 시간이 영원한 지금(eternal now)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좌우할 수 없는 과거나 미래라는 개념으로 그분의 활동성과 존재를 제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원하신 분은 그 어떤 일시적인 것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군대장관은 바로 성자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해석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중요한 언급을 히브리서에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것은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모세가 그 당시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던 것인가? 이것은 바울의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영원한 진리로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맞습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시작되는 초두에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과 언어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서만 백성들을 이끌라는 뜻으로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큰 칼을 소지하고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장관도 인간의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주님만이 검을 붙드시는 분이라는 뜻에서 모세와 동일하게 “네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그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는 것이 영적 전쟁의 마지막 준비입니다. 바울이 영적 전쟁의 무장방식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설명할 때,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방어용인데, 성령의 검은 유일한 공격무기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검이 없으면 적을 피할 수는 있는 섬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그 성령의 검은 누가 잡아야 하는가? 여호수아의 설명은 큰 검을 든 자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의 군대장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 군대장관이 큰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여호수아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군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상대방의 신분을 묻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임을 알리고 신을 벗으라 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칼을 들고 우리를 째려보고 있으면 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군대장관의 말을 그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검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붙들고 있으며, 그 검은 우리도 죽이고 적들도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 검은 좌우에 예리한 날을 가졌기 때문에 나의 자아 중심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아 계시게 만드는 동시에 적들도 완전히 섬멸하는 쌍방향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을 무시로 수행하는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믿음이 있어, 구원도 받았다구, 진리 위에 견고히 서 있다니깐, 난 이미 의인이 되었어, 복음에는 정통한 사람이야! 이러한 확신만으로는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대장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신발을 벗어야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으면 공격할 수 없습니다. 신발을 벗으라고 명하신 분이 공격하고 방어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온전히 처하는 것이 바로 영적 전쟁의 마지막 준비입니다. 믿음과 의와 진리와 구원과 복음은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입니다. 이 모든 것들도 알고 보면 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이처럼 세상의 방식과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준비도 다르고, 전쟁을 치루는 방식도 다르고, 거두는 열매도 다르고 전쟁의 목적도 다릅니다. 모든 것이 다릅니다. 혈과 육에 속한 세상의 전쟁 원리를 따르면 반드시 망하는 전쟁이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거룩한 전쟁의 원리를 따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규정대로 성막을 제작한 것처럼 그 거룩한 전쟁도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지침 그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할례와 유월절 준수와 맛나의 보급중단 등은 전쟁이 온전히 주께 속한 것임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