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마을 손회식이장(우측)과 금강마을 최문진이장이 신금대교 중간에서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며 두 마을을 오가던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래지도는 신금대교 위치도
시종면 신학리 정동마을과 서호면 금강마을을 연결하는 신금대교가 새해들어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다. 신금대교는 설 연휴전 개통된다. 이 다리는 3.9㎞(교량 680m)길이로 지난 2003년 시작된지 8년만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리가 놓인 곳은 영암천의 끝자락이다. 영암읍내와 월출산을 중심으로 10여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 영암천을 형성하는데 굽이굽이 장엄한 물줄기가 영산강 본류와 만나는 곳이다.
시종면 정동마을과 서호면 금강마을은 그동안 가깝지만 가장 먼 사이였다. 직선으로 불과 5㎞ 거리이면서도 정동마을에서 금강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멀리 도포면으로 돌아서 해창교를 지나 군서면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30분 이상이 소요됐다.
금강마을에서 신학마을로 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004년 시종농협과 서호농협이 통합해 월출산농협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물길이 두 지역을 갈라 놓았다.
두 지역은 1980년대 초반 영산강하구언이 막아지기 전까지는 아주 가깝게 지낸 지역이었다. 당시에는 이동수단이 뱃길이었다. 정동마을쪽에 창진포란 포구가 있었다. 금강마을쪽에 지내머리란 부두가 있었다. 이 곳을 나룻배가 하룻네 쉬지 않고 운행했다.
두 마을의 앞은 영암천이 영상강과 만나면서 거대한 강이 삼거리를 형성했다. 바다같은 강에 없는 고기가 없었다. 낙지 빼고 모든 것이 나왔다. 여기서 나오는 바다고기 맛은 전국최고를 자랑했다.
시종 사람들이 바다고기와 젓갈류등을 잡아서 금강마을 쪽으로 넘어왔다. 금강마을은 서호면과 학산면으로 뻗어가는 길목이었다. 남편이 강에서 바닷고기를 잡으면 부인들이 고기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팔러 다녔다. 사람들을 그들을 상고장수라고 불렀다.
반면에 시종쪽에는 해산물이 풍부했지만 땔감이 태부족했다. 금강리를 비롯한 서호면 일대는 산이 많았다. 시종 사람들은 배를 타고 넘어와 땔감을 구해갔다. 고기를 가지고 와서 팔고 그 돈으로 땔감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지역은 결혼도 많이 했다. 서호면으로 시집오는 여자의 절반은 시종면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서호면에서도 시종면으로 시집을 많이 갔다. 두 지역 중매쟁이는 주로 상고장수들이었다.
고기를 팔러다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중매쟁이가 됐다. 또 목포로 오가는 여객선에서 많은 중매가 성사됐다. 정동마을 앞 부두에서 목포로 오가는 여객선은 시간이 2시간 정도 소요됐다. 주변 마을사람들이 배안에 옹기종기 모여 나눈 화제는 아이들 결혼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게 중매가 이뤄졌다.
2011년이 저무는 지난달 30일 오전 정동마을 손회식(63) 이장과 금강마을 최문진(70)이장이 신금대교 중간에서 만났다. 각 마을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반갑게 두손을 잡았다. 어릴적부터 나룻배를 오가며 배구도하고 축구도 했던 사람들이었다.
두 이장은 신금대교가 개통되면 이 일대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시종면 사람들이 도청을 가려면 한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도포면 해창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1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신금대교를 지나 무영대교를 넘어가면 도청이 코앞이다.
서호면 사람들도 광주를 가기 위해서는 영암읍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했으나 이제는 신금대교를 건너 곧바로 신북과 영산포로 빠질 수 있게 됐다.
또 이제 서호면 북쪽 마을 주민들은 독천장보다 시종장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됐다. 독천장은 20분이 걸리지만 신금대교를 건너 시종장으로 가면 6~7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됐다.
최문진 이장과 손회식 이장은 “다리가 완전 개통하는 날 다리에서 마을주민들이 모여 줄다리기를 하자. 여름에는 다리 갓편에 평상을 놓아두고 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시원하게 바람을 쐬자”고 감회를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