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지금은 하늘만 잔뜩 찌푸리고 간간이 안개비가 내린다. 저녁 밤부터 또 많은 비가 온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날이 습하다. 아침에 일어나 10km정도를 힘껏 달렸더니 몸이 가볍다.
지난 7월 3일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그날 아침에 간병일기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종 조카 미복이가 창문을 두드린다. 할머니가 이상해요. 외삼촌 이름을 자꾸 불러요. 어 무슨 일인가. 아침 문안을 드릴 때 평소와 다른 말씀을 하셨다고 하더니 불길하다. 달려가 보니 온통 난리를 치신다. 김아주머니는 운동을 나가고 보이지 않는다. 통 말씀이 없으시던 분이 큰 소리로 무어라 말씀을 계속하신다. 내가 다가가니 나를 붙잡고 무어라 하신다. 말씀인즉 오늘 저녁에 내가 떠난다. 죽기 전에 골말 가야겠다. 골말은 어머니의 고향이시다. 지금은 북쪽이라 갈 수가 없다. 계속하신다. 다 불러라. 아이들을 다 오라고 그래라. 방앗간 아주머니도 오라고 그래라.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가자고 그랬다. 등의 말씀이었다. 막무가내로 손을 헤저으며 되풀이 하신다. 말씀을 잘 하신다. 어인 일인가. 정신이 말짱해지셨다. 말귀도 튀어 잘 알아들으신다. 전에 장인어른도 꿈에 장모님을 뵙고서 그날로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그런 경우의 이야기를 흔히 들어서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를 않았다. 이명현 선생과 통화를 하였다. 친지들을 부르는 것이 좋겠다 했다.
그날 형제들이 다 다녀갔다. 강원도에 사는 다섯째만 오지를 못했다. 일산아저씨 부부도 다녀가셨다. 누이가 부탁을 하여 어머니가 다니시던 능곡중앙교회의 천목사부부와 장로들 그리고 교우들도 열 명이 넘게 와서 예배를 드려 주었다. 평소와 전혀 다르게 이 날은 어머니께서 모든 사람을 알아보시었다. 귀도 열리어 묻는 말에 대답도 하시고 또 무엇보다 감사의 말씀도 하셨다. 교우들에게는 이렇게 멀리 찾아와 예배를 드려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또렷이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허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모두가 돌아간 후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꿈에 보았는데 그 양반이 가자고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이 많았나보다.
그 날 이후 다시 어머니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시었다. 말씀도 사라지고 다시 간간이 미소만 지으신다. 식사도 곧잘 하시다가 또 힘들어하시기도 한다. 문제는 족부 궤양이다. 수술부위 말고 발등 아래쪽으로 세 군데나 궤양이 생겼다. 한달 전쯤 불그스레 생기더니 드디어 곪았다. 염증이 심했다. 걱정이 되어 관동대 명지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란다. 사진을 찍어보니 아직 뼈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했다. 치료방법은 없고 그저 악화되지 않도록 감염예방에 철저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했다. 그날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비를 헤치고 큰 병원에 가는 길은 두려움이었으나 오늘 길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안타까울 정도로 몹쓸 모습은 보이시지 않고 곱게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용 : 세은병원 7/7 12,200
명지병원 7/9 35,360
세은병원 7/10 12,200
2009년 7월 28일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 기다리던 아이를 7월25일 낮에 순산을 하였다. 아들이다. 손자가 생겼다. 허허. 내가 드디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다. 생명이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
누이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다녀간다. 조카 미복이도 세 번 다녀간다. 요양사 자격증을 따서 어머니를 첫 대상 환자로 삼아 오는 것이다. 둘이 합쳐서 한 달에 60만원 정도의 수입이 들어온단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다. 누이가 오는 날에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와서 이야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를 모신다. 평소 무엇을 잘 드시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누이니까 음식이 얼마나 입에 맞으실까. 그동안 음식이 부실하기보다는 성에 차지 않았는데 누이가 일거에 해결을 해주었다. 그뿐인가. 덕분에 우리 식구도 이것저것 얻어먹는다. 어머니를 닮아 누이도 손이 크다. 크기도 하려니와 빠르기도 하여서 여러 가지 음식을 삽시간에 만들어 놓는다. 누이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머니가 많이 섭섭해 하신다. 환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음식과 돌봄인데 그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지근에 있어 언제나 항시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어머니가 복을 받으셨음에 틀림없다.
비용. 세은병원 7/14 12,200
세은병원 7/17 12,200
세은병원 7/21 16,400(내과)
세은병원 7/21 12,200
세은병원 7/24 12,200
세은병원 7/24 3,800
동화약국 7/24 19,700
-------------------------------
비용 세은병원 7/28 12,200
7/31 12,200
8/4 12,200
김아주머니 봉급 1,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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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비용 합산 1,385,060
---------------------------
비용 8/7 세은병원 12,200
8/11 세은병원 12,200
8/14 세은병원 12,200
2009년 8월 22일
토요일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산산한 것을 보니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제 세브란스 병원에 수술결과를 다시 점검하다. 눈이 많이 좋아졌다. 환하게 보인다. 담당의사인 김찬윤선생도 수술이 매우 잘 되었다고 흡족해한다. 3주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샤워나 세수도 하라고 한다. 그 동안 눈을 수건으로 동여매고 몸을 닦아왔으니 문제는 없었지만 오늘 아침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마음 놓고 하니 기분이 한결 가볍다. 어제는 당장 시력검사를 김선생한테 부탁을 하여 멀리 보는 안경과 가까이 보는 안경의 알을 모두 갈았다. 세상이 바뀌어 보이는 것 같다. 허허. 사람의 몸뚱아리가 이렇게 중요하다니.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술도 한잔 하고 싶어 물었더니 최소 3주간은 절대 금주란다. 욕심이 지나쳤던가.
날을 덥고 깊은 여름 속에 일상이 빠져들더니 매사 소홀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나 기록도 마찬가지다. 눈수술도 받았고 그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새롭게 살아야 하지만 스스로 지쳤나보다. 나 한 몸이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어머니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 등이 겹쳐 부담이 되었나보다. 어머니는 커다란 변동이 없으시다. 열흘 전쯤에 막내가 광어회 한 접시를 사와 대접하여 아주 잘 드시더니 그날 이후 식사가 시원치 않으셨다. 기본적으로 마시는 것 그리고 과일 약간만 드시며 애를 먹이셨다. 그러나 다시 며칠 전부터 다시 음식을 잘 드신다. 고개들이 굽이굽이 흘러 넘어가는 것 같다. 기복이 심하시다. 폐에 찼던 물은 다 없어지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더 악화되지 않고 잘 버티시고 계신다. 족부궤양은 전혀 변동이 없다. 현상 유지만하여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일주일에 두 번 꼬박 어김없이 병원에 다니니 그래도 더 나빠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다시 간혹 소리를 질러대신다. 전에는 소리를 지르시면 치매기운이나 아니면 어디 몸에 불편함이 있으셔서 그렇겠지 하며 걱정을 하였는데 그동안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시고 식사도 조금밖에 하지 않으셔서 불안감이 느껴졌었다. 근래 어머니가 내지르시는 소리는 어찌 보면 반갑기도 하다. 그만큼 기운이 다시 돌아오셨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신촌 세브란스를 다녀오니 오후 두시를 넘겼다. 아침 9시에 길을 나섰는데도 그렇다. 조금 쉬고 점심도 거른 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또 다녀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떡이나 팥도너츠를 찾았으나 시장이 수리를 하려고 모두 문을 닫았다. 그냥 비빅 아이스케키를 대접해드렸더니 잘도 드신다. 다녀와서 다시 읍내에 나가 안경을 맞추었다. 회사일도 젖혀두고 하루가 모두 병원일로 사라진다. 직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가 늙은이를 모시려니 내 업무가 병원 다니는 일이다라고. 그래도 이렇게 병원에 다닐 수 있는 건강과 여유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며칠 전에는 셋째와 다섯째 제수씨들이 다녀갔다. 동생들은 일을 하느라 오지 못하고 안사람들만 함께 온 것이다. 이것저것 많이들 들고 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복숭아도 한 상자를 사왔다. 덕분에 나도 잘 먹었다. 고마운 일이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원칙을 세웠다. 소위 말하는 효도는 가상적인 속박에 불과하다. 사람의 심정들은 대개 한결 같다. 해서 형제들 간에 그리고 그 어느 타인들이라도 어머니와 관련된 생활이나 행위를 일체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자주 찾아오든, 얼굴을 전혀 보이지 않던, 그리고 와서 얼굴만 뵙고 금방 떠나거든,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사오거나 또는 빈손으로 오거나, 안부를 자주 묻거나 아니거나 대체 상관이 없다. 비교를 하거나 탓하거나 한다면 본인들도 언짢을 터이고 무엇보다 내 마음에 어지러움이 쌓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마음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모시고 있음으로 인해서 그들이 나를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니 잠시라도 어머니 문제를 잊으며 그들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고 있다면 그것자체가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몇 달 만에 한번 겨우 어머니를 찾아뵌다 한들 다 사정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형제들이 나타난다 해도 고맙기만 하다. 자식 심정이야 다 같지 않겠는가. 둘째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 내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주어진 상황이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맡겨놓고 휴가를 간다든지 아니면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이 업무 때문에 벅차서 누군가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든지 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거북스럽게 할 뿐이다. 어머니의 운명도 좋거나 싫던 간에 나에게로 오셨으니 내게 불만이 있으시더라도 참으실 밖에 도리가 없다. 한마디로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운명이요 팔자다. 셋째로 가급적 아내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하였다. 아내가 고맙고 속이 그래도 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시부모를 모시는 일이 간단치 않은 일이다. 아내의 반대로 만일 어머니를 요양소로 보냈다면 필경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셨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오자고 제안하였을 때 전혀 반대를 하지 않은 아내가 정말 고맙기만 하다. 아내가 어머니와 같은 지붕 밑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깐깐하고 부지런한 아내가 어머니의 방에 들러 이것저것 참견하고 도와주는 일들이 예사롭지 않고 고맙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만 가고 있다. 여름이 오고 다시 지나가고,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늙어가고 그리고 어머니가 인생의 끝을 지내시고 있다. 모두가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다. 한 방에는 아기울음이 들리며 웃음소리가 나고 다른 한방에는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시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뚜무리와 가잘은 북인도 지방의 대중음악이다. 이것은 도시풍의 음악으로 대중음악이기는 하지만 예술성이 있는 음악이어서 세미 클라식과 비교할 수 있는 음악이다. 또한 음악의 분위기는 매우 경쾌하고 내용은 낭만적이며 종교적인 사설로 노래한다. 노랫말은 힌디어를 쓰고 주제는 힌두교의 신비주의자들이 벌이는 바크티(bhakti 信愛- 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운동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뚜무리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19세기 중엽 와지드 알리 샤 궁을 다스리던 오드Oudh가 만들었다고 한다. 뚜무리라는 말은 춤추는 사람이 발로 찍는 동작을 소리말로 나타낸 'thumuk'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북인도의 카탁춤을 보면 뚜무리와 관계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다. 뚜무리의 노랫말 형식은 매우 자유롭다. 노래의 주제로 흔히 등장하는 것은 크리슈나의 전설이다. 크리슈나는 힌두신의 화신이다. 뚜무리의 주제는 크리슈나와 인척관계에 있는 라다와 다른 고피(우유를 짜는 처녀)와 관계가 있다. 이 노래는 라다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 또는 기다림 등을 노래하고 있다. 이 음악의 라사(rasa)는 사랑과 비탄이다. 바크티를 예찬하며 한편으로는 시과 인간과의 결합을 추구하는 내용이 많다. - 인도음악의 멋과 신비, 전인평, 아시아음악학회, 103/4쪽에서 인용
음원 : Anthology of world music, North Indian classical music, disk 1, 연주시간 11:14
참고로 사랑기를 연주한 사브리 칸은 사랑기의 대표적 명인 중의 하나다. 그의 연주는 신이 들린 듯하다. 이미 올려져 있는 그의 음악을 새삼스레 다시 들어보시기 바란다.
어제 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지금은 하늘만 잔뜩 찌푸리고 간간이 안개비가 내린다. 저녁 밤부터 또 많은 비가 온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날이 습하다. 아침에 일어나 10km정도를 힘껏 달렸더니 몸이 가볍다.
지난 7월 3일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그날 아침에 간병일기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종 조카 미복이가 창문을 두드린다. 할머니가 이상해요. 외삼촌 이름을 자꾸 불러요. 어 무슨 일인가. 아침 문안을 드릴 때 평소와 다른 말씀을 하셨다고 하더니 불길하다. 달려가 보니 온통 난리를 치신다. 김아주머니는 운동을 나가고 보이지 않는다. 통 말씀이 없으시던 분이 큰 소리로 무어라 말씀을 계속하신다. 내가 다가가니 나를 붙잡고 무어라 하신다. 말씀인즉 오늘 저녁에 내가 떠난다. 죽기 전에 골말 가야겠다. 골말은 어머니의 고향이시다. 지금은 북쪽이라 갈 수가 없다. 계속하신다. 다 불러라. 아이들을 다 오라고 그래라. 방앗간 아주머니도 오라고 그래라.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가자고 그랬다. 등의 말씀이었다. 막무가내로 손을 헤저으며 되풀이 하신다. 말씀을 잘 하신다. 어인 일인가. 정신이 말짱해지셨다. 말귀도 튀어 잘 알아들으신다. 전에 장인어른도 꿈에 장모님을 뵙고서 그날로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그런 경우의 이야기를 흔히 들어서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를 않았다. 이명현 선생과 통화를 하였다. 친지들을 부르는 것이 좋겠다 했다.
그날 형제들이 다 다녀갔다. 강원도에 사는 다섯째만 오지를 못했다. 일산아저씨 부부도 다녀가셨다. 누이가 부탁을 하여 어머니가 다니시던 능곡중앙교회의 천목사부부와 장로들 그리고 교우들도 열 명이 넘게 와서 예배를 드려 주었다. 평소와 전혀 다르게 이 날은 어머니께서 모든 사람을 알아보시었다. 귀도 열리어 묻는 말에 대답도 하시고 또 무엇보다 감사의 말씀도 하셨다. 교우들에게는 이렇게 멀리 찾아와 예배를 드려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또렷이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허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모두가 돌아간 후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꿈에 보았는데 그 양반이 가자고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이 많았나보다.
그 날 이후 다시 어머니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시었다. 말씀도 사라지고 다시 간간이 미소만 지으신다. 식사도 곧잘 하시다가 또 힘들어하시기도 한다. 문제는 족부 궤양이다. 수술부위 말고 발등 아래쪽으로 세 군데나 궤양이 생겼다. 한달 전쯤 불그스레 생기더니 드디어 곪았다. 염증이 심했다. 걱정이 되어 관동대 명지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란다. 사진을 찍어보니 아직 뼈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했다. 치료방법은 없고 그저 악화되지 않도록 감염예방에 철저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했다. 그날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비를 헤치고 큰 병원에 가는 길은 두려움이었으나 오늘 길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안타까울 정도로 몹쓸 모습은 보이시지 않고 곱게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용 : 세은병원 7/7 12,200
명지병원 7/9 35,360
세은병원 7/10 12,200
2009년 7월 28일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 기다리던 아이를 7월25일 낮에 순산을 하였다. 아들이다. 손자가 생겼다. 허허. 내가 드디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다. 생명이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
누이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다녀간다. 조카 미복이도 세 번 다녀간다. 요양사 자격증을 따서 어머니를 첫 대상 환자로 삼아 오는 것이다. 둘이 합쳐서 한 달에 60만원 정도의 수입이 들어온단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다. 누이가 오는 날에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와서 이야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를 모신다. 평소 무엇을 잘 드시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누이니까 음식이 얼마나 입에 맞으실까. 그동안 음식이 부실하기보다는 성에 차지 않았는데 누이가 일거에 해결을 해주었다. 그뿐인가. 덕분에 우리 식구도 이것저것 얻어먹는다. 어머니를 닮아 누이도 손이 크다. 크기도 하려니와 빠르기도 하여서 여러 가지 음식을 삽시간에 만들어 놓는다. 누이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머니가 많이 섭섭해 하신다. 환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음식과 돌봄인데 그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지근에 있어 언제나 항시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어머니가 복을 받으셨음에 틀림없다.
비용. 세은병원 7/14 12,200
세은병원 7/17 12,200
세은병원 7/21 16,400(내과)
세은병원 7/21 12,200
세은병원 7/24 12,200
세은병원 7/24 3,800
동화약국 7/24 19,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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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세은병원 7/28 12,200
7/31 12,200
8/4 12,200
김아주머니 봉급 1,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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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비용 합산 1,38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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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8/7 세은병원 12,200
8/11 세은병원 12,200
8/14 세은병원 12,200
2009년 8월 22일
토요일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산산한 것을 보니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제 세브란스 병원에 수술결과를 다시 점검하다. 눈이 많이 좋아졌다. 환하게 보인다. 담당의사인 김찬윤선생도 수술이 매우 잘 되었다고 흡족해한다. 3주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샤워나 세수도 하라고 한다. 그 동안 눈을 수건으로 동여매고 몸을 닦아왔으니 문제는 없었지만 오늘 아침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마음 놓고 하니 기분이 한결 가볍다. 어제는 당장 시력검사를 김선생한테 부탁을 하여 멀리 보는 안경과 가까이 보는 안경의 알을 모두 갈았다. 세상이 바뀌어 보이는 것 같다. 허허. 사람의 몸뚱아리가 이렇게 중요하다니.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술도 한잔 하고 싶어 물었더니 최소 3주간은 절대 금주란다. 욕심이 지나쳤던가.
날을 덥고 깊은 여름 속에 일상이 빠져들더니 매사 소홀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나 기록도 마찬가지다. 눈수술도 받았고 그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새롭게 살아야 하지만 스스로 지쳤나보다. 나 한 몸이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어머니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 등이 겹쳐 부담이 되었나보다. 어머니는 커다란 변동이 없으시다. 열흘 전쯤에 막내가 광어회 한 접시를 사와 대접하여 아주 잘 드시더니 그날 이후 식사가 시원치 않으셨다. 기본적으로 마시는 것 그리고 과일 약간만 드시며 애를 먹이셨다. 그러나 다시 며칠 전부터 다시 음식을 잘 드신다. 고개들이 굽이굽이 흘러 넘어가는 것 같다. 기복이 심하시다. 폐에 찼던 물은 다 없어지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더 악화되지 않고 잘 버티시고 계신다. 족부궤양은 전혀 변동이 없다. 현상 유지만하여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일주일에 두 번 꼬박 어김없이 병원에 다니니 그래도 더 나빠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다시 간혹 소리를 질러대신다. 전에는 소리를 지르시면 치매기운이나 아니면 어디 몸에 불편함이 있으셔서 그렇겠지 하며 걱정을 하였는데 그동안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시고 식사도 조금밖에 하지 않으셔서 불안감이 느껴졌었다. 근래 어머니가 내지르시는 소리는 어찌 보면 반갑기도 하다. 그만큼 기운이 다시 돌아오셨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신촌 세브란스를 다녀오니 오후 두시를 넘겼다. 아침 9시에 길을 나섰는데도 그렇다. 조금 쉬고 점심도 거른 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또 다녀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떡이나 팥도너츠를 찾았으나 시장이 수리를 하려고 모두 문을 닫았다. 그냥 비빅 아이스케키를 대접해드렸더니 잘도 드신다. 다녀와서 다시 읍내에 나가 안경을 맞추었다. 회사일도 젖혀두고 하루가 모두 병원일로 사라진다. 직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가 늙은이를 모시려니 내 업무가 병원 다니는 일이다라고. 그래도 이렇게 병원에 다닐 수 있는 건강과 여유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며칠 전에는 셋째와 다섯째 제수씨들이 다녀갔다. 동생들은 일을 하느라 오지 못하고 안사람들만 함께 온 것이다. 이것저것 많이들 들고 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복숭아도 한 상자를 사왔다. 덕분에 나도 잘 먹었다. 고마운 일이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원칙을 세웠다. 소위 말하는 효도는 가상적인 속박에 불과하다. 사람의 심정들은 대개 한결 같다. 해서 형제들 간에 그리고 그 어느 타인들이라도 어머니와 관련된 생활이나 행위를 일체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자주 찾아오든, 얼굴을 전혀 보이지 않던, 그리고 와서 얼굴만 뵙고 금방 떠나거든,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사오거나 또는 빈손으로 오거나, 안부를 자주 묻거나 아니거나 대체 상관이 없다. 비교를 하거나 탓하거나 한다면 본인들도 언짢을 터이고 무엇보다 내 마음에 어지러움이 쌓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마음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모시고 있음으로 인해서 그들이 나를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니 잠시라도 어머니 문제를 잊으며 그들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고 있다면 그것자체가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몇 달 만에 한번 겨우 어머니를 찾아뵌다 한들 다 사정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형제들이 나타난다 해도 고맙기만 하다. 자식 심정이야 다 같지 않겠는가. 둘째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 내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주어진 상황이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맡겨놓고 휴가를 간다든지 아니면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이 업무 때문에 벅차서 누군가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든지 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거북스럽게 할 뿐이다. 어머니의 운명도 좋거나 싫던 간에 나에게로 오셨으니 내게 불만이 있으시더라도 참으실 밖에 도리가 없다. 한마디로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운명이요 팔자다. 셋째로 가급적 아내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하였다. 아내가 고맙고 속이 그래도 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시부모를 모시는 일이 간단치 않은 일이다. 아내의 반대로 만일 어머니를 요양소로 보냈다면 필경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셨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오자고 제안하였을 때 전혀 반대를 하지 않은 아내가 정말 고맙기만 하다. 아내가 어머니와 같은 지붕 밑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깐깐하고 부지런한 아내가 어머니의 방에 들러 이것저것 참견하고 도와주는 일들이 예사롭지 않고 고맙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만 가고 있다. 여름이 오고 다시 지나가고,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늙어가고 그리고 어머니가 인생의 끝을 지내시고 있다. 모두가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다. 한 방에는 아기울음이 들리며 웃음소리가 나고 다른 한방에는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시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뚜무리와 가잘은 북인도 지방의 대중음악이다. 이것은 도시풍의 음악으로 대중음악이기는 하지만 예술성이 있는 음악이어서 세미 클라식과 비교할 수 있는 음악이다. 또한 음악의 분위기는 매우 경쾌하고 내용은 낭만적이며 종교적인 사설로 노래한다. 노랫말은 힌디어를 쓰고 주제는 힌두교의 신비주의자들이 벌이는 바크티(bhakti 信愛- 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운동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뚜무리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19세기 중엽 와지드 알리 샤 궁을 다스리던 오드Oudh가 만들었다고 한다. 뚜무리라는 말은 춤추는 사람이 발로 찍는 동작을 소리말로 나타낸 'thumuk'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북인도의 카탁춤을 보면 뚜무리와 관계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다. 뚜무리의 노랫말 형식은 매우 자유롭다. 노래의 주제로 흔히 등장하는 것은 크리슈나의 전설이다. 크리슈나는 힌두신의 화신이다. 뚜무리의 주제는 크리슈나와 인척관계에 있는 라다와 다른 고피(우유를 짜는 처녀)와 관계가 있다. 이 노래는 라다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 또는 기다림 등을 노래하고 있다. 이 음악의 라사(rasa)는 사랑과 비탄이다. 바크티를 예찬하며 한편으로는 시과 인간과의 결합을 추구하는 내용이 많다. - 인도음악의 멋과 신비, 전인평, 아시아음악학회, 103/4쪽에서 인용
음원 : Anthology of world music, North Indian classical music, disk 1, 연주시간 11:14
참고로 사랑기를 연주한 사브리 칸은 사랑기의 대표적 명인 중의 하나다. 그의 연주는 신이 들린 듯하다. 이미 올려져 있는 그의 음악을 새삼스레 다시 들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