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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7에서 29일(목요일에서 토요일)까지 2박 3일 간의 여행을 백교수님과 시작하였다. 첫 날, 오후 3시 경 보이시(Boise)에서 트윈 팔스(Twin Falls)로 출발하였다. 트윈 팔스(Twin Falls)는 아이다호 주의 남중부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 보이시의 동쪽에 있는 포카텔로(Pocatello)로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즉, 아이다호 주 남동부에 위치한 탓에 차로 남쪽으로 93번 도로를 40여 분 더 가면 네바다 주가 나오고, 86번과 84번 도로를 두 시간 정도 더 달리면 유타 주에 갈 수 있다. 트윈 팔스(Twin Falls)는 보이시와 포카텔로 두 도시의 가운데쯤에 있으며, 소요 시간은 두 도시 모두 대략 두 시간으로 해발 3,745 피트의 고지에 있는 도시이다. 트윈 팔스 근처에는 40m 이상의 폭포들 즉, 쇼숀폭포(Shoshone Falls)와 필라 폭포(Pillar Falls) 가 있으며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넓고 건조한 평야를 가르는 대협곡이 있다. 아이다호 주는 클리어워터, 새먼, 스네이크 같은 세 줄기의 강이 모두 미국 서쪽으로 흐르고 있어 광활하고 풍부한 자연 환경을 이루고 있다. 트윈 폴스의 인구센서스 조사를 보면 1990년에 27,591명 정도에서 2010년에 44,125명으로 증가하였다. 상점들도 꽤 많이 보인다.
마운틴 홈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페린 브리지(The I. B. Perrine Bridge)가 우리를 먼저 맞이하였다. 1500피트(약 457m)의 길이와 486(약 148m)피트의 높이를 자랑하는 다리 밑에는 스네이크 강(Snake River)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현재의 페린 브리지는 1976년에 $10,565,000의 비용을 들여 건설한 것이다. 이 도시에는 전문대학 중에서 규모가 큰 CSI(College of Southern Idaho)가 있다.
이 다리에서 보이는 블루 레이크스 컨트리 클럽(Blue Lakes Country Club)은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의 협곡과 함께 마치 미국판 몽유도원도처럼 펼쳐진다.
한 번 보세요. 초록색으로 보이는 곳은 골프장입니다. 여기는 모두 회원제이고 그러기 때문에 가격은 비싸다고 합니다. 자연의 웅장함에 놀랍기도 하고 광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스펙타클’이 미국문화와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주어 ‘팝’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지금 트윈 팔스는 공사 중이다. 그렇지만 도시의 대부분은 구름과 함께 사물이 되어 살아가는 한적한 도시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것은 대형 마트이다. 미국은 이런 대형 마트들이 많다. 한국에는 없는 윙코(Winco) 등등이 말이다.
이제 86번 고속도로를 타고 벌리(Burly)로 가는 중이다. 시종일관 구름들이 이번 아이다호 남동부 여행에 동참해 주었다. 피로 얼룩진 역사와 점령들을 마치 이 구름들이 지우개가 되어 그저 지극히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교환시키고 말았다.
풍력 발전! 아이다호 남동부만큼 풍력발전을 하기가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평지가 많고, 바람도 많이 분다. 풍력은 풍부하고 재생가능하며, 깨끗하여 온실효과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매력적인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발전단지 지역 자체에서는 시각과 청각적인 거부감으로 기타, 다른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항상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기술적인 어려움과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해상풍력발전이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전형적인 미국 북서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트랙터와 물 뿌리는 기계가 멀리 보인다.
넓고도 거친 농경지와 곳곳에 모여 있는 조그만 동네. 그리고 한쪽에 큰 십자가가 보인다.
가는데 마다 월 마트 같은 대형마트와 맥도널드 가게가 있다.
한국에서 잘 안 팔리는 쉐보레 자동차와 여기서 트럭(trucks)이라 부르는 뒤에 짐 싣는 차는 너무 많다. 아마도 농경지가 많고, 인건비가 비싸서 대부분의 가정 일을 스스로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차는 튼튼해서 20년 이상 써도 건재할 것 같다. 물론 자동차 AS문화도 발달되어 있다.
가는데 마다 은행도 엄청나게 많다. 여기는 포카텔로 근처이다. 아래 지도에서처럼 이동할 예정인데, 89번 도로와 91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프레스톤(Preston)이 있고 거기서 더 진행하여 몽펠리에(Montpelier)를 지나갈 예정이다. 2,350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몽펠리에는 89번과 30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아이다호 주에서 포카텔로(Pocatello, IPA: [ˌpoʊkəˈtɛloʊ])는 와이오밍 쪽에 가까운 도시이다. 인구는 55,076(2010년), 면적은 73.1km2다. 아이다호 주 동남부, 해발고도 1360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주변 관개농업지대는 미국에서 감자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의 하나로, 비옥한 농업지대의 상업·문화 중심지로 나온다. 지명은 이 지역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여기에는 1901년에 개교한 아이다호 주립대학교(ISU: Idaho State University)가 있다. 간호학과와 약학과가 있어서, 머물고 있는 BSU(Boise State University)에 없는 과들이 있다.
이 대학은 우수한 수준의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입학에는 거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학점도 2. 0이상까지 받아들이고 있으며 심지어 이 점수 미만이라도 학교 측의 특별한 사정을 충족시키면 입학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 대학은 미국의 주립대학 중 가장 소규모인 1만2천명의 학생 수 밖에 되지 않아 23,000명 정도의 BSU에 점차 거점 주립대학으로서의 위치를 과거보다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건 인구수와 도시의 산업 발전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면적은 넓은 편으로 대부분의 주립대학들이 겪고 있는 과밀학급 문제가 전혀 없는 점이 특성이라고 하나 공부만 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와 보이시인데, 두 군데 모두 4시간 이상 가야 한다. 전공학과의 경우 학생들이 10명도 안 되는 수업이 많아서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는 무척 친밀하다고 한다.
여기는 포카텔로에 있는 콜로니얼 홀(Colonial Hall in Idaoho State University)이다. 주변은 매우 조용했고 아름다웠다. 건물들은 100여년 이상 된 것들이 있으니 캠퍼스는 BSU보다 고풍 창연해 보였다. 이 건물은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되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이 대학의 등록금은 1만 달러 선이고 생활비는 5,000달러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수준높은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받아들이며, 외국학생들에게도 기숙사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회화, 조각, 도자기 등등의 미술관련 학과도 있는데 사진학과는 개설되어 있지 않았다. 포카텔로 변두리 주변 공원에 차를 세워 놓고 그 안에서 잤습니다. 새벽에는 좀 추웠으나 침낭으로 밤을 지냈다. 물론 라면으로 저녁은 먹었다. 좀 추워서 그런지 술 맛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이렇게 포카텔로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3월 28일, 포카텔로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위 지도에서처럼 아이다호 남동부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곳은 전체적으로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산들과 위치감각을 잃게 하는 광활한 평원이 대조를 이룬다. 위 지도에서처럼 멀지 않은 곳에 연결되어있는 그랜드 테톤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은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연보존이나 문화형태가 변하지 않은 미국 북서부의 숨겨진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처벅(Chubbuck)은 포카텔로(Pocatello)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블랙훗(Blackfoot)과 아이다호훨스(Idahofalls)는 몽펠리에(Montpelier) 쪽으로 돌아서 갈 예정이다. 지명이름도 영국식 이름보다는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이름과 불어가 혼재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다. 아이다호 주의 이름도 혹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인가 해서 찾아보았더니,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의 배경이 된 시기인 골드러시 때 채광물을 콜롬비아 강에서 루이스톤(Lewiston)까지 옮겨주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증기선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는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1860년대 초기에 로비스트인 조지 윌링(George M. Willing)이 아이다호를 주의 이름으로 의회에 제안하면서, 쇼숀(Shoshone) 족의 언어로 "산에서 온 태양(the sun comes from the mountains)” 또는 "산의 보석(gem of the mountains)”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윌링 자신에 의해 번복되었는데, 아이다호는 특별한 의미가 없이 만든 말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애국자가 많은 나라이다. 관공서뿐만이 아니라 주유소, 개인집 등등 아무데나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미국은 충성심과 애국자가 많은 나라이다.
빌 해리슨(Bill Harrison)은 ‘무법자와 충성심(Outlaws and Patriots)’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처럼 보이는 일련의 연필 정밀묘사를 작품으로 보여 주었다. 미국인들의 맹목적인 국기 사랑과 관련된 것처럼 생각되어 이 지면으로 가져 왔다.
여기는 어디 쯤 일까요? 어디라고 할 수 없는 그냥 언덕배기 도로입니다. 그냥 사물이거나 레디메이드로서의 언덕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치를 읽어내는 GPS 장치가 필요한가 봅니다. 이제는 사진 하나에 더 많은 정보가 실리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는 W Oneida Street, Preton, ID, 83263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아이다호 주의 프레스톤에 있는 오네이다(카운티이름이기도 함)의 서쪽에 있는 도로이다. 뒤에 오는 숫자는 Zip Code라고 하는 미국식 우편번호이다. 인구는 5,110명이라고 한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정보와 함께 더 나눌 수 있는 풍경이론이나 문화연구로서의 이미지 이론을 다루는 때가 되지 않았나요?
소다 스핑스(Soda Springs) 쪽으로 가는 길이다. 소다 스프링스는 미국 아이다호 주 칼리부 카운티(Caribou County)에 있는 소도시이다. 인구는 3,058명(2010 센서스) 이다. 1919년 이래 칼리부 카운티의 소재지인데, 인구는 2000년 이래 300여명 줄었다. 미국의 시골도 인구는 줄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구름과 함께 같이 갔다.
처음 예행계획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붉은 선대로 진행하였다.
소다 스프링스 안내판입니다. 간헐온천(geyser)이 있어서, 호텔이 몇 개 있는 소도시이다.
아이다호 주의 특산품인 감자를 소개하는 감자박물관이 있다는 블랙훗에 왔으나 오후 3시 30분에 문을 닫아서 관람하지 못했다. 미국에는 이런 작은 박물관들도 많이 보인다.
감자박물관이 있다는 Blackfoot에 왔으나 3시 30분에 문을 닫아서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는 작은 박물관들도 많습니다.
블랙훗에서 아이다호훨스 쪽으로 진행하여 렉스버그(Rexberg)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래 지도처럼 진행하였다.
렉스버그의 인구는 28,856명으로 나온다. 브리검영 대학교(Brigham Young Univeristy -Idaho, BYU-I)는 미국 유타 주 프로보(Provo)와 하와이 라이에(Laie)에 있는 BYU-Hawaii 그리고 여기 렉스버그, 이렇게 세 곳에 있는 명문사학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모르몬교)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교육 기관 중 하나이다. BYU는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 대학이며, 두 번째로 큰 사립대학이다. 학생의 약 98%가 후기성도 교회 회원이며, 미국 학생의 약 2/3는 유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학비의 약 70%는 교회의 십일조가 충당하기 때문에, BYU 학생들은 미국 전역에서 가장 저렴한 학비로 미국 최고의 사립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
2014년도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가 발표한 랭킹에 의하면, BYU는 약 4000개의 사립 및 공립 대학 중 전미에서 62위를 차지했다. 프린스톤 리뷰지는 BYU를 2007년도 ‘가장 가치있는 대학'으로 선정하였으며, BYU의 도서관을 2004년에는 전미 1위, 2007년에는 전미 4위로 기록했다.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지는 또한 '최고의 대학, 최소의 학비' 랭킹에서 BYU를 19위로 선정하였다.
미국대학교수협회(AAUP,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는 “학문 자유의 침해는 비참할 정도로 흔하고, 학문 자유의 풍토는 매우 불건전하다.”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대학교수협회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교리적 규제는 글로서 명확하게 표기되어야 함을 요구하는 바이다. 그래서 본 협회는 브리검영 대학교가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실패하였다고 결론은 내린 바이다.”라는 부분은 이 대학의 아쉬운 부분이다.
이건 렉스버그에 있는 브리검영 대학교 사진학과 사무실 앞 유리창에 재미있게 배치되어있는 사진들의 면면이다. 옆에는 영화학과도 있다.
이렇게 해서 아이다호 북서부에 있는 모스코(Moscow)에서 1889년에 개교하고 학생 수가 만여 명인 아이다호 대학교(University of Idaho)를 마저 보면 아이다호 주의 큰 대학들은 모두 탐방하는 것이다. 아이다호 대학교도 아이다호 주립대학교(Idaho State University, Pocatello)와 보이시 주립대학교(Boise State University, Boise)처럼 모두 아이다호의 주립대학이다. 그렇지만, 모두 의대는 개설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다른 주에 위탁교육을 해서 의사를 배출한다.
브리검 영(Brigham Young, 1801~1877)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제2대 회장이다. 동부에서부터 종교의 자유를 찾아 1847년 7월 24일 그 당시 황무지였던 유타 주 솔트레이크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성도들을 인도하여 이주하였고,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등 서부의 여러 도시들을 개척하고 난민들을 정착시켰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타 대학교와 현재의 브리검 영 대학교의 전신인 브리검 영 아카데미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브리검 영은 미국 판 모세 또는 위대한 개척자로 불린다. 그는 초기 교회 지도자로서 미국 동부의 종교적, 정치적 박해로 부터 수천 명의 난민들을 이끌고 미국 서부를 횡단했다고 한다. 1847년, 후기성도 교회 개척자 선두 그룹이 2,10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평원을 가로질러 솔트레이크 분지에 도착했을 때 브리검 영은 당시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을 바라보며 ‘바로 이곳이다.’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고행이 시작되었다. 렉스버그에서 나와 보니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되어서 33번 도로를 타고 머드레이크(Mudlake) 쪽으로 출발하였다. 음! 머드레이크! 진흙이 많은 호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먹구름이 앞으로 닥칠 고난을 예고한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그래도 이 길을 가다보면 잠잘 곳도 있고, 무엇인가 음식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없었다. 그냥 계속해서 앞으로 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가다보면 방향 감각도 잃게 된다. 아니 내가 지금 과거에 존재하는지, 미래에서 잠깐 온 것인지도 혼돈되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냥 달리는 것만 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 전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타고 갔던 자동차는 CD 플레이어가 작동 되지 않아서 라디오만 나올 때였다. 게다가 여기는 오지라 방송도 잘 잡히지 않았다. 바람소리만 들으면서 한참을 그렇게 달렸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머드레이크. 거기는 여든 살도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과할아버지 몇 분이 서부극에 나오는 모습과 유사한 술집에 모여서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주점만 덩그라니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할머니는 모텔도 함께 운영하는데, 열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그 주점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좀 더 가면 있겠지 라고 되뇌이면서 백 교수님과 나는 차를 몰고 다시 달렸다. 그런데 동쪽을 보아도 이러 했고, 다시 한참을 달려 서쪽을 보아도 이런 장면들만 보였다. 지금 이 사진은 몽테뷰(Monteview)를 향해서 가다가 잠시 내려서 촬영한 것이다. 몽테뷰라! 산이 보인다는 동네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 아무튼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이 지구의 끝 어디쯤인가 알 수 없는 풍경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기가 몽테뷰가 맞기는 맞는 것 같았다. 보세요! 멀리 산이 보이잖습니까? 비포장이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주변을 보았다. 아! 정말 넓고 크다. 아니 광활하고 황량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상 시인의 ‘운동’이 생각났다. “... 남쪽을 보아도 아무 것도 없고, 북쪽을 보아도 아무 것도 없고 해서... 동쪽으로 솟아오르는 태양이 서쪽에 떨어지고 동쪽으로 솟아올라 하늘 한복판에 와 있기 때문에 시계를 꺼내본 즉 서기는 했으나... 시간은 맞는 것이지만 시계는 나보다 젊지 않으냐하는 것 보담은 나는 시계보다는 늙지 아니하였다고... ” 아이고.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금까지 달려 온 것은 제대로 온 것일까? 아니면 이제 방향을 잃고 전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일까? 여기가 미국이 맞기는 한 건가? 나는 서구문화의 어떤 것을 보기 위해 어렵게 노를 저어 왔다가 마침내 그 노를 놓쳐 버린 것이다. 머드레이크의 한 가운데 서서 멍하니 커다란 산들을 보면서 잠시 상념에 빠졌다.
결국 한참 늦게 서야, 우리는 15번 도로에 인접한 두보아(Dubois)를 발견하고 우선 마을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쇠고기와 감자가 있는 저녁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맥주는 팔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로 주변에 있는 레스토랑은 주류를 허가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식사만 하고 팁을 15%인가 내야 한다고 해서 지불하고 난 후 모텔에 와서 샤워하고 빨리 잠에 빠져 들었다.
여기가 두보아이다. 그리고 저 조용한 모텔이 우리의 숙소였다. 마치 서부극에 나오는 동네 같다. 시간이 ‘과거의 현재’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모텔은 히스패닉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서 코리아라고 했더니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대답이 들려 왔다. 가격은 4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된다.
여기는 새먼(Salmon)이다. 3,141명이 거주한다는 미국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스티븐 쇼어(Steven Shore)의 사진과 거의 흡사하고 이 마을은 좀 아름답다.
이제 새먼에서 나와 샬리스(Challis)로 가는 길이다.
관광지 샬리스이다. 모텔도 몇 개 보인다. 마차가 옛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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