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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안식일 다음날 낮에 일어났던 일로 엠마오를 향해서 가던 두 제자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낯선 사람(부활하신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때가 되어 식사에 초대하는 호의를 베푸는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며 함께 묵상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인데 첫째로는 실패와 좌절감입니다. 모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는 건 성공하기 위해서인데, 자신에게 원인이 있든지, 주변에 원인이 있든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면 실망합니다. 같은 실패라도 기대와 노력이 클수록 실망도 크고 그만큼 더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심하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나 사회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성공한 것 같은데도, 자신의 목표를 기준으로 실패했다고 느껴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우울증 환자들이 점차 늘어가는 게 그 증거입니다. 오늘 복음은 깊이 실망한 사람들의 상황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곧 이즈음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 자신이 실망하게 된 일, 자신과 관련된 주변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특히 남자들에게는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여자들은 힘들수록 대화하면서 풀어가는 심리구조를 가졌지만, 남자들은 힘들수록 자신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자칫하면 힘들수록 자신에게 갇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힘들수록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고 더 애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자연스럽게 그 대화에 끼어들어 참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 오셔도 우리가 잘 몰라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함께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몰라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자신들이 깊은 실패감과 좌절감에 싸여있을 때에는 더군다나 예수님을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조차, 자신 안에 있는 좋은 것조차, 주변에 있는 좋은 보물조차 제대로 발견하기가 어렵기에 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자신을 감추시고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대하듯이 서로를 대하기 바라시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것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시는 비움이시며 겸손이시고, 사람들의 품위를 당신처럼 높여주시는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것을 나누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삶과 관련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들어주며 이야기에 참여해줄 때, 혹시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을 품어보는 게 습관화되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혹시 예수님이 아니신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두 제자가 낯선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을 때 예수님을 알아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식사 때에 예수님께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침통한 가운데서도, 몹시 실망하고 좌절한 가운데서도, 낯선 이에게 선의로 대하고 사랑으로 행동할 때에,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예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 아주 평범한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과 관련된 최근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주 평범하게도 낯선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면서 예수님을 체험하고 ,자신들의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다음날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그 밤중에 30리 길을 되돌아가서,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을 동료들에게 그 소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누운 뒤 수연이네 집은 언제나 우울했다. 몇 년 전, 수연이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끝내 중풍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몸의 반쪽이 마비된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했으며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까지 생겼다. 말수가 적던 수연의 아버지는 병으로 누운 뒤 더 말이 없어지고, 깊게 그늘진 눈으로 온종일 방 안 천장만 바라보며 지냈다. 어느 날 수연의 오빠인 성준은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아주 잘했구나, 성준아. 고맙다. " 엄마는 오빠의 합격을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내 쓸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성준아, 에미로서 할말은 아니다만, 만약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어쩌지? 엄마가 버는 돈만으로 우리 식구 밥먹고 사는 것도 빠듯하잖아! 아버지 병원비도 그렇고." 핼쑥해진 엄마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는 땅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누운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남들은 대학에 못 들어가서 난린데 우리집은 왜이래, 이번에 학교에 못들어가면 집을 나가서 혼자 살 거야. 성준은 아버지를 째려보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훌쩍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지요. 아이들에게 해줄 일은 산더미 같은데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요. 나 혼자 둥둥거려 봐야 밥 먹고 살기도 힘들잖아요!" 설움에 복받친 엄마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깡마른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그렇게 흐느꼈다.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힌 엄마는 머쓱해진 얼굴로 아버지를 위로했다. "여보. 내가 괜한 억지를 부려서 미안해요. 당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요. 아까는 하도 속이 상해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여보."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날 집을 나간 성준은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감감했다. 들어오지 않는 성준 때문에 수연이네 집은 더 무거운 슬픔 속으로 빠져들었다. 성준이가 집을 나간 지 5일째 되던 날은 가랑비가 질금질금 내렸다. 성준이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방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더듬더듬 거리며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여, 여, 여보세요. 제, 제가요. 신장을 팔수 없나 해서요, 제, 제 아들놈, 대학 드, 등록금 때문에 그, 그러는 거니까 꼬, 꼭 좀, 부, 부탁드립니다. 꼬, 꼭이요. " 마루에 걸터앉은 성준이는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문득 오래 전 학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사랑은 등대 같은 거란다. 밝은 낮에는 가만히 있다가, 어두운 밤만 되면 깜박깜박 제 몸을 밝히는 등대 말야, 아버지들의 침묵 속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담겨 있는 거야." 성준이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속에 감춰두었던 눈물이 한없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몇 십 년을 같이 살아도, 부모님 사랑도, 그 사랑의 깊이와 강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인생의 실패 속에서 깨어지고 상처받으며, 자기 자식을 키워가면서, 내가 받았던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깨달아갑니다. 모든 자녀는 부모의 살과 피를 통해 이 세상에 왔고, 부모의 인생을 먹으며 자랍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견디며, 자녀에게 자기인생을 내어주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닮는 일이며, 번듯한 자녀의 모습은 곧 그 결과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인품은 곧 부모의 살과 피는 물론이며, 부모의 정신과 삶이 담겨진 또 다른 모습이기에, 자녀들에게 부모는 생명을 나누어주는 예수님이기도 합니다. 단지 가족이기주의에 너무나 닫혀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서 찌그러든 예수님의 모습이기에, 함께 살면서도 부모님의 모습속에 담긴 예수님을 알아보기가 힘들 뿐입니다. 이즈음에 일어난 사건을 예수님과 함께 나누는 또 하나의 방법은 성서를 읽는 것입니다. 성서는 예수님과 함께 삶을 엮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예수님께 들려드리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성찬전례는 오늘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빵을 나누어주는 현장입니다. 나도 오늘복음의 두 제자처럼 사랑으로 이웃을 초대하여 밥을 먹을 때, 이 성찬전례 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우리는 내 인생에 동행하고 있는 사람이 혹시 예수님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나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예수님이 아닌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 실망에 빠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동행해주고, 사랑으로 빵을 나누어주려고 애를 써야겠습니다. 나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발견할 수도 있는 일이며, 더구나 순수한 사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나눈다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들의 이런 노력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당신을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주시도록 간구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