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어린 시절 막연히 유럽과 미국을 동경하여 1973년 봄에 국제친선펜팔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영국인과 펜팔하였으나 그는 나를 영국내 소년잡지에 소개하여 스코트랜드의 한 소녀로부터 편지가 왔다. 이것을 계기로 오랜 시간 동안 국제펜팔을 하였다. 당시 가정형편의 어려움으로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였으나 영어 단어 하나에 영국의 숨결을 느끼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하였다. 우리가족은 경남 김해군 김해읍 삼방동 3구에서 셋방을 살고 있었다. 주인(김강석님)집 동생은 카추샤 태권도사범으로 미 여군과 결혼하였다. 백인 여군은 뚱뚱하였으나 밝은 표정과 언행에 애교가 있었다. 그녀가 오는 날에는 씨끌 벅쩍 하다. 그녀에게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읽어보기를 청하여 내가 읽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해 신기하였고 서투른 영어 몇 마디로 의사소통이 됨에 감격하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한국말은 "엄마" 한마디 였다.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크게 외치곤 한다. 김강석님댁에서 허의정님 댁으로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들었던 삼방동 3구를 떠나 읍내 부원동으로 이사를 갔다. 어느 날 골방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문간에서 보살이 염불을 한다. 어머니가 동전 한 닢을 시주하는데 보살이 아들에 대해서 미래를 보아주고 싶다고 한다. 잠시 귀를 기울였다. "작은 아들은 나중에 외국물을 먹을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중학교도 진학할 수 없었던 우리 살림에 외국물이란 뚱딴지 같은 소리였다. 해외펜팔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나 기분은 몹씨 좋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이 유행처럼 되었다. 신혼여행을 동남아로 가는 것이 상례가 되어 버렸고 이웃 일본 및 대만 나들이는 예사스러운 일로 변하였으나 진정 나에게는 가까운 일본방문도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어느 날 유럽으로 연수를 가게 되는 행운이 왔다. 내가 속한 부서에 층 층 계층으로 높은 사람이 있었고 전입 고참 및 쟁쟁한 동료들이 있어 유럽연수 대상 선발에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농특회계 국장님의 도움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요즈음 시대에 누구나 가는 해외여행인데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나의 생애에 있어서 해외에 내딛는 첫발자국임에 의미가 컸다. 어머니에게 유럽에 출장 다녀오겠다고 하니 " 그 때 외국 물 먹는다 했었는데..." 라고 하셨다. 본 여행기는 유럽에 가보지 아니한 분이나 이국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저자가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점등의 행적을 사소한 것도 기록하였다. 본 여행기의 특징은 저자가 방문한 곳의 유명한 유적지나 특이한 곳은 상세히 부언하여 역사적인 지식의 전달도 아울러 병행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유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께서는 아량으로, 초보자 또는 미래 여행자에게는 희망의 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저라 ! (Boys Ambitious) Ⅱ. 미지의 나라로
2000.12.6 창원의 새벽 바람이 차갑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간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지하열차를 이용하여 김포에 도착 후 외환은행 김포공항지점에서 미화 500불을 환전하였다.(500불 x 1,242.89원= 621,445원) 오전 11:00경에 김포공항 국제선 로비에 도착하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커피와 햄버거로 요기를 하고 국제선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국제선 공항대기실에 외국인이 많이 보인다. 공항 점원 및 직원들이 친절하다. 여행객들의 틈에 끼여 영어회화 가이드(영어로 여행가자)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데이콤에서 나온 직원이 국제전화카드 가입을 권유한다.(터치 터치 콜링 카드: 가입비 무료이며 전화사용 후 후불조건임) 12:30에 일행과 만났다. 주석환 국장님도 마중 나오셨다. 2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국제선 대한항공 KE907기에 탑승했다.
♡ 항공기 탑승번호 FLIGHT KE907 From SEOUL To LONDON Economy Class Boarding Pass 195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두려움 과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2000. 12. 6 14:30 비행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하고 있으며 기내방송과 여행객들의 대화가 편안하다. 전광판은 16:20를 가리키고 있다. 창 밖의 중국 베이징 상공은 흐린 날씨다. 계절 탓인지 중국 땅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눈이 덮인 곳도 이따금 있다. 비행기 날개에 표시된 HL7460 글씨가 시야에 들어온다. 기내식사 시간이다. 쇠고기요리(밥없음, 빵1개, 쇠고기,버터,크림빵,포도주,간이 고추장)와 비빔밥 중 비빔밥을 선택했다. 식후 포도주와 땅콩이 간식으로 나왔다. 17:00 지상은 설원으로 하얗다. 바깥 온도가 낮은지 비행기 창 밖에는 성애가 끼고 있다. 17:15에 Ulaanbaatar에 접근 중 인데 설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45 Novosibirsk 주변 상공으로 여전히 지상은 하얀 설원으로 이어지고 날씨는 점점 어두워 지고 있다. 런던까지 항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출발 1) Seoul - 2) 베이징 - 3)Ulaanbaatar - 4)이루크츠크 - 5)Novosibirsk - 6)Ural Mountain - 7)Moscow 주변 - 8)lithuania - 9)베를린 - 10)Hanover - 11)London 도착
20:10 Novosibirsk 상공의 어둠속은 고도 35,000피트, 스피드 851Km/h, 실외온도 -70도/F이다. 약 6시간이 경과하자 피가 아래로 쏠려 다리가 저려 온다. 장거리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비행기 뒷 편의 통로 및 공간에 아예 잠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도 35,000피트, 속도 850km/h 를 유지하며 우랄 산맥으로 접근한다. 비행기는 어둠에 묻히고 하얀 설원만이 간신히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행기는 기장을 포함하여 17명의 승무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화장실에는 치솔,치약,비누,화장크림,화장지가 깨끗하게 비치되어 있고 기내 한가운데에 커다란 전광 안내판은 수시로 기내의 변화 와 항로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를 떠나 본적이 없으므로 인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유럽은 지구 반대편에 있다. 1974년 국제펜팔을 하였던 Scotland Glasgow의 17세 소녀 Marrie Mathison이 생각난다. 당시 영어에 대한 호기심은 가득하였지만 영어권 나라는 희망에 불과하였고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영국이었다. 1982년 농협에 입행하여 진해에서 약 1년간 근무하고 있을 무렵 스코트랜드 Marrie Mathison에게 편지를 하였다. 약 달포 후 London에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그녀는 무척 반가워 하였으며 친정인 스코트랜드에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 온 편지를 보고 놀랐다고 하며 그녀는 영국 청년과 결혼하여 London에 산다고 했다. 당시 취업 1년째되는 신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훗날 그녀의 새로운 주소(런던)가 쓰여진 봉투를 잃어버려 소식이 두절되었다. 다시 Scotland로 편지를 보냈으나 영영 소식이 없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영국으로 가고 있다. 어쩌다가 우연히 라도 그녀를 만났으면 하는 생각에 잠기고 있을 즈음 비행기는 암흑 속으로 점점 빠져 들고 있다.
21:35 우랄산맥(Ural Mountain) 상공을 진입할 즈음 고도38,000피트, 속도864km/h, 밖의 온도는 83도/F 이다. 22:00 우랄산맥을 거쳐 22:25 모스코바(Moscow) 상공을 지나 피터스버그(St.Petersburg)로 향하고 있다.(당초의 항로는 Moscow 아래 지역임) 22:30 닭 불고기 기내 식사를 하였다. 식사시간 이후 화장실을 이용하는 승객이 많아 식사전이나 휴식 및 수면시간에 활용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22:50 지구의 둥근 면이 아련한 빛의 선으로 보인다. 23:00 지구의 둥근면이 뚜렸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지구가 보물이며 창조자의 위대함에 감탄한다 . 서투른 글솜씨로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3) 제일 위부분 짙은 청색 2) 둥근면 과 접선 위부분 밝은 청색 1) 둥근면 과 접선부분 노란색(나중에는 점점 하얗게 변하였음) ----------지구의 둥근면--------------------짙은 갈색---------------------- 1) 둥근면 아래 하얀색 2) 그 아래 짙은 갈색(점점 옅은 갈색으로 변하였음) 3) 그 아래 붉으스름한 색(점점 빨갛게 변하였음) 4) 그 아래 짙은 갈색
넋을 잃고 멍하니 있다가 사진을 촬영을 하였으나 현상되지 않아 아쉬웠다. 23:30에 다시 암흑에 잠겼다. 01:00 독일의 베를린 상공에서 태풍으로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01:10에 이상 기후로 기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다. 고도 35,000피트, 스피드 881km/h로 다시 정상을 유지하며 01:47에 암스테르담 주변 상공을 비행하여 02:00에 북해 바다 상공을 날아 02:30에 런던 상공에서 하강하고 있다. 런던 넓이는 서울의 1.5배 이다. 런던(London)의 야경이 펼쳐지고 있어 감개 무량하며 애절하고 가슴 뭉클하다. 시계는 02:30을 가리키고 있는데 영국시간은 2000.12.6일 오후 5시경이다. 런던의 밤하늘에 주황빛 가로등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다. 영국에는 오후 4시에 해가 진다. (영국은 한국보다 약 9시간 시차가 늦음)
2000.12.6 14:30에 김포공항을 이륙 영국시간 2000.12.6 17:00에 도착 했다. 기내 좌측 앞자리에서 만 한 살박이 Iro(이로)란 이름을 가진 영국 아기가 칭얼대고 있었는데 그 동안 우리와 친했다 . 아기를 안고 장난도 쳤는데 마음이 통한 것 같다. 아기와 작별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영국 땅을 밟았다.
Ⅲ. 영국
런던공항은 시설과 규모가 국제공항으로서 손색이 없다. 안내 표시에 따라 입국절차를 거치기 위하여 입국수속 출구로 갔다. 입국하기 위해서는 Landing Card 작성하여 여권과 함께 입국심사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심사관은 서류 입국심사와 몇 가지 질문을 하는데 대개의 질문은 아래와 같다
◎ 통상적인 질문내용 1) How long will you stay ? 2) Where are you from ? 3) what Occupation ?
쉽게 통과 할 수 있는 요령은 심사관에게 입국서류를 제출하면서 How do you do? 먼저 인사를 건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친근하게 심사 한다. 공항로비에서 가이드(전승선: 전화 077-6586-8033)가 『농협』 팻말을 들고 있었다. 안개의 도시 런던공항에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가이드는 우리를 7인승 봉고차에 태우고 런던 시내를 경유 Wembley로 향한다. Wembley Plaza에 여장을 풀었다. 방3개를 예약하였는데 120호(내가 머문 곳), 302호, 307호 이다 (숙박예정2000.12.6~12.9) 샤워를 하고 영국시간 21:30에 아버지, 어머니, 형, 집, 부본부장님(김일군)께 전화 했다. 호텔 바에서 흑맥주를 한잔 했는데 맛이 없다. 음악이 흐르고 손님의 아기인 듯한 약 3~4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음악에 맞추어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귀엽다.
2000.12.7 새벽 6:00에 눈을 떴다. 7:00에 이국재 부부장님과 Wembley 거리를 산책하는데 아직 어두웠으며 거리는 한산하였고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이는데 대부분 흑인이다. 건널목은 보행자가 신호대에 부착된 보턴을 누르면 “Wait" 문자가 나오고 잠시 후 붉은 신호에서 푸른 신호로 변한다. 자전거 1대가 휘하니 지나간다. 자전거 뒤 부분에는 빨간 주위 등이 깜빡이고 있다. 산책 후 레스토랑에 갔다. 호텔 레스토랑은 외국인 과 내국인용으로 구별되어 있다. 외국인 전용 룸에 있는 동양사람들은 일본인이었으며 젊은층이 많다. 호텔구내 작은 매점에 흑인 남자 점원이 있다. 책을 보고 있는데 "뭐하냐"는 질문에 독학 한다고 했다. 나를 만나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서투르게 한국어로 반갑게 맞이한다. 빵, 우유, 과일 등으로 아침식사 후(맛없음) Hyde Park(하이드 파크)에 갔다. 12월의 공원은 푸른 풀로 덮여 있으며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낸 고목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산책로가 보기 좋게 선을 그은 듯이 놓여져 있다.
▣ 하이드 파크 하이드파크는 켄싱턴 가든과 연결되어 있고 버킹엄 궁전의 그린파크(Green Park)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을 합쳐 넓이가 249ha로서 하이드 공원의 넓이는 약 60만평 규모이다. 켄싱턴가든은 서펜타인 호수와 알버트 기념관이 유명한데 켄싱턴가든의 알버트기념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로얄 알버트홀,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하이드파크는 헨리 8세의 사냥터였으며 알버트 기념동상(Albert Memorial)은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왕자 알버트와 결혼하였는데 알버트공이 42세에 장티프스로 세상을 뜨자 그를 사랑한 빅토리아 여왕은『조지 길버트 스코트』경에게 알버트 기념비를 부탁하여 1867년에 건립하였으며 1872년에 보수공사를 되었다
알버트 기념 동상에서 사진촬영 하는데 부슬비가 내린다. 영국은 1년 중 반이상이 우기로서 항상 습기가 있어 하이드 공원은 12월인데도 온통 초록이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lace) 앞에 관광객이 많이 모였다. 매일 오전 11:30에 거행하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위해 궁전 정문에 모여있다. 교대식을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11:20경 그 자리를 떠야했다 ▣ 버킹엄 궁전(Buckingham Place) 1703년 버킹엄 공작이 세운 것으로 1762년 조지3세가 왕비를 위하여 구입한 뒤 『왕비의 집』으로 불리 우고 있으며 1825년 『존 내쉬』가 개축했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처음으로 이 곳에 거주하면서 왕궁이 되었다. 2000.12.7부터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남편)이 거주하고 있으며 궁전 앞에는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매일 근위병 교대식이 거행되고 여왕이 궁전에 머물면 왕기가 게양된다. 런던(London)도로는 중앙선 개념이 없으며 도로 중앙에는 하얀 점선으로 되어있다.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로 왼쪽 방향으로 진행하여 한국의 교통 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도로변 주택가는 대부분 오래된 2층 주택이며, 주택입구에는 자동차 1대 주차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주택과 도로사이의 보도가 넓어 자동차가 다닐 정도다. 영국 국민은 아파트보다 주택을 선호한다고 한다. 2층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버스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 이런 내용이 있다. 『버스 안에서 흡연 시 1,000파운드의 패널티 부과함』 한화로는 1,800,000원이다. (영국 1파운드/ 한화 1,800원) 12:00경에 웨스트 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에 갔는데 또 부슬비가 내린다.
▣ 웨스트 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 앵글로 색슨족의 마지막왕인 에드워드가 건축한 것을 1245년 헨리 3세가 완전히 새로 개축하였으며 초기의 건축가는 프랑스인 앙리(Henry)이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은 정복왕 윌리엄 이후 모든 영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룬 곳으로 에드워드 5세 와 8세만이 대관식을 거치지 않았다. 이 곳은 영국의 왕들이 영원히 잠든 곳인데 『다이에너』왕세자비도 이 곳에서 장례식을 치루었다. 에드워드 헨리 7세 예배당에 묻힌 조지 2세를 마지막으로 다음 왕들은 윈저에 안장 되었다. 사원내부는 2군데 예배실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무덤으로 이 곳에 뉴턴,다윈, 바이런, 워즈워드, 헨델 등이 잠들어 있다. 대사원 남쪽에는 시인들의 무덤이고, 북쪽에는 무명용사의 묘지가 있다.
다이에너 왕세자비가 사고를 당하였다는 도로를 지나갔다. 굴곡이 원만하고 약간의 오르막이면서 금방 지나갈 정도의 작은 터널을 통과하는 일반도로이다. 이 곳에서 비운의 다이에너 왕세자비가 사고로 운명하였다니 참으로 허망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나 『테임즈』강에 갔다. 강 건너 웅장한 의회 의사당이 보인다. 테임즈 강은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강물이 풍성하였으나 맑지 아니하다. 테임즈 강변으로 영국 소년 2명과 소녀 2명이 이야기하며 지나가고 있다. 순진하고 표정이 밝다. 사진으로 볼 수 있었던 그들을 현지에서 같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들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잠깐 엉거주춤 수줍어 하다가 흔쾌히 응해 주었다.
▣ 테임즈 강 테임즈 강은 런던의 생명수이자 상징이다. 테임즈 강에는 워털루브릿지, 런던브릿지, 타워브릿지등 10 여개 다리가 있다. 영화 <워털루 브릿지>로 유명한 워털루브릿지 끝나는 지점에 워털루 인터내셔널역(Waterloo International RaiL Station)이 있는데 이 곳이 파리와 브뤼셀을 3시간정도로 연결하는 유로스타(Eurostar)의 출발과 종착역의 기능을 하고 있다(나중에 프랑스로 갈 때 이 곳을 이용하였음)
▣ 의회 의사당(House of Parliament) 1840년에 건립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민주주의의 표본이며 영국의 상징이다. 1605년 화약음모사건 이후 의회가 개회될 때에는 영국 왕실의 근위대는 궁전의 천장을 수색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의사당 남서쪽 끝에는 116.9m의 빅토리아 탑이 있으며, 동쪽 끝에는 102.4m의 종 탑 시계 빅벤이 있는데 정확성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 시계는 매 시간마다 종이 울린다.
테임즈 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타워브릿지를 지나 런던타워(Tower of London) 에 갔다. 런던타워는 탑이 있는 것으로 상상했는데 커다란 성이다. ▣ 런던타워(Tower of London) 1066년에 윌리엄왕이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자신의 대관식을 마친 후 세운 요새로서 1078년에 성 중앙에 있는 화이트타워(White Tower)를 건축하였다. 이것을 중심으로 13개의 탑이 있고 바깥쪽 방벽에 6개의 탑이 있다. 또 이 곳『반역자의 문』은 국사범들이 런던타워에 투옥되기 위하여 끌려 들어간 문이라 하여 명명되었다. 이 타워그린에서 국사범들이 암살 또는 처형되었으며, 성밖의 타워힐(Tower Hill)에서는 공개처형 하였다. 테임즈 강변에 옛날 적들이 강으로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포문 2구씩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다. 17세기 까지는 런던탑이 왕의 공관으로 사용하였으며 지금도 여왕의 궁에는 런던타워 관리장관이 근위병인 비프이터와 살고 있다. 런던타워는 성역으로서 런던시장이나 주교의 관할을 받지 않는다. 런던타워를 연결하는 1894년 건축된 타워브릿지는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도개교로 되어 있다. 14:40 한국인이 경영하는『한강』식당에 갔다. 김치 와 된장찌개가 구수하다. 가격은 1인분에 6.0파운드였다(원화 10,800원 →영 1파운드/원화 1,800원) 식사 후『Cats(고양이들)』뮤직컬 공연 극장으로 가면서 『런던대학』앞을 지났다. 캠퍼스는 없고 아파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교문 앞에 『London University』라 쓰여 있다. 약간 어두운 날씨지만 지나가는 학생에게 사진촬영 부탁했다. London 중심지에 있는 극장에서 『Cats』 뮤직컬을 감상했는데 2시간 이상 1부, 2부 나누어 공연하였다. 입장하려 하는데 류영하 님이 입장 티켓을 잃어버려 황당하였다. 극장측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임시입장 티켓을 재발급받아 겨우 입장하였다. 만약 한국에서 입장표를 잃어버린 똑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입장이 가능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관객들이 자리를 다 메웠다. 사람들은 훌륭한 공연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건만 나는 계속 졸았다. 1부 공연 막이 내리자 마자 구내 매점에 가서 콜라(작은병) 1병(2파운드 한화 3,600원)을 마시며 대기실에서 서성거리다 2부 공연 때 또 졸았다. 입장료는 1인당 52파운드(한화 93,600원)이다.
저녁에 런던시내 작은 분식집에서 쇠고기, 감자튀김, 콩을 주문하였는데 맛이 없어 겨우 먹었다. 저녁식사를 끝낸 후 밖에 나오니 또 비가 온다. 참으로 하염없이 오고 있다. 영국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우산을 쓴 사람 안 쓰고 가고 오는 사람 혼잡하다. 16:30에 런던시내 백화점 밀집지역으로 갔으나 살만한 상품이 없고 비쌌다.
2000.12.8 새벽 7:00시(한국은 16:00시)에 일어나 런던 주택가를 산책하였다.오전에 런던근교에 있는 바우만 농장(Bowmans Farm)을 방문했다. 농장주로부터 영국농업부문 특성과 농장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농장을 둘러보았다
▣ 바우만 농장의 특징 ㅇ 농장주 : 바우만 울프 ㅇ 농장면적 : 650ha ㅇ 주요재배농작물 : 콩, 밀, 유채, 보리 ㅇ 가축 : 소 120마리, 말 25마리 ㅇ 농작형태 : 40% 윤작 ㅇ 올해 농산물 가격 : 3년전 보다 50% 하락 ㅇ 농지소유 형태 : 100년간 임차지로서 1932년부터 3대 째 운영하고있음
▣ 영국농업정책부문 특징 ㅇ 농업부문 세금: 소득의 21% (일반 근로자는 복지부문등 포함한 세금 40%) ㅇ 농업지원정책 : EU공동농업정책기금에서 농가 순소득의 1/4 지원 ㅇ 농업여신 금리 : P + 1.5% (현대출이자율 7.5%) ㅇ 대출형태 : 한도거래제 약정 ㅇ 담보형태 : 보증보험(농업대출 신용보증)제도 활용 ㅇ 농업금융 : 일반은행에 농업대출전담자(Special Farm Banker)가 있음 ㅇ 비료가격 : 전년도 대비 50% 인상되었음
ㅇ 농민의 농산물 판매형태 : 협동조합 이용하지 않으며 개인별로 판로개척 (협동조합 이용률 약 3% 수준) ㅇ 199년 농작실적: 비가 많이 와 피해가 컸음 ㅇ 영국농민의 현위치 - 파운드 환율이 높아 수출이 어렵고 보수당은 농민위주의 정책을 위주로 하나 집권당인 노동당이 세금을 올리고 있으며 연료(기름)값의 80%가 세금임 - 노동당 : 세금을 높여 저소득자 기타 사회복지 증대 추진 - 보수당 : 국민 개인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발생되는 정책을 추진 (2001.6.8 오후뉴스에 영국 집권당인 노동당 당선확정 발표됨) ㅇ 광우병으로 인한 농민들의 어려움 : 영국은 문제 없다고 말함
앤드류 울프 와 농장방문 기념 촬영 후 윈저궁으로 향했다. 윈저궁에 도착하니 또 비가 온다. 윈저궁은 궁전 입구에서부터 그 웅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윈저궁 바깥은 촬영이 허용되었으나 내부촬영은 금지되었다. 윈저궁 입구를 들어가자 역대 영국왕실의 가족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윈저 성 주변에는 옛날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지상에서 성벽의 높이는 엄청 높아 그 모습이 웅장하게 보인다. 윈저궁이 지리적으로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적들이 성을 함락하기는 힘들 것 같이 보인다. 윈저궁에 왕실의 보물들이 가득하다. 왕족들이 쓰던 검, 피스톨이 수십 정 전시되어 있었고 귀족 및 외국사신들이 상납한 순금으로 장식한 보물과 중국사신이 바쳤다는 화려한 접시들 그리고 전쟁에서 노획한 전리품 등이 있다.
오후 4시가 되자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보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윈저궁 주위를 흐르고 있는 강은 물이 말고 풍성하였으며 주변의 배경이 그림 같이 아름답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사진 촬영을 했다. 오후 6시 경에 Wembley Plaza에 도착하여 호텔 앞 2층 건물 레스토랑(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음)에서 빵과 쇠고기, 포도주를 주문하였다. 쇠고기 요리가 얼마나 짠지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계란으로 만든 음식을 다시 주문하였다. 역시 너무 짰다. 이 레스토랑의 특징은 서빙(Serving)하시는 분이 전부 머리카락이 희끗한 60대 후반으로 배가 불룩하고 뚱뚱한데도 마냥 즐겁고 동작이 빨랐다. 옆 좌석에 흑인여자 1명, 백인여자 1명, 흑인남자 1명, 백인남자 1명이 앉아 재미있게 떠들고 대화를 즐기고 있었는데 보기가 아름다웠다. 내일이면 영국을 떠나게 된다. 영영 다시 오지 못할 곳이라 생각하니 야속하다. 영국과 이별의 아쉬움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했다. 영국 농촌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겨울철(현재 12월)인데 비닐하우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국에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2000.12.9 05:20 기상하여 빵과 우유로 아침을 하고 06:00에 택시를 타고 워터루 유로스타 (Waterloo Urostar)로 갔다. 호텔에서 워터루 역까지 택시요금은 20파운드였다. 많은 사람들이 붐볐으며 입국심사는 하지 않았다. 부산역에서 서울행열차 타는 기분으로 유로스타 기차를 탔다. 이 열차는 해저 터널로 4시간을 달려 프랑스에 도착할 것이다.
유로스타 열차표는 Class2. Coach 05 Place Nb 52. 08708817019606 이다.
Good Bye 영국 !
Ⅳ. 프랑스
2000. 12.9 08:23 워터루 유로스타(Waterloo Eurostar)에서 출발 프랑스로 향하고 있다. 북대서양과 북해가 연결되어 있는 해협 밑으로 터널이 있다. 이순간이 못내 아쉽다. 열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하였으나 상상했던 것보다는 빨리 달리는 것 같지 않다. 내가 탄 객실은 끽연가능실로서 여기 저기서 담배를 피우는데 연기가 금방 자욱하다. 소녀, 아가씨, 미즈, 아줌마, 아저씨등 모두가 한대씩 들고 있다 . 어이쿠 담배냄새 질색인 나는 잘못 걸렸구나 생각했는데 다른 객실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막 피워 대고 있다. 예쁜 어린 여자애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서글펐다. 내 자리 맞은편에 앉은 프랑스여자 3명은 계속 떠들며 웃고 재미있어 한다. 여행객들은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할 때 까지 떠들고 있다. 유럽사람들의 표정이 대부분 밝았다. 프랑스 국기는 3가지 색으로 되어있는데 3색의 뜻은 1)자유 2)평등 3)박애란 뜻이며 왕족(흰색), 귀족(청색), 평민(붉은색) 구성층에 대한 화합의 뜻이기도 하다.
08:23에 런던 워터루(London Waterloo)역을 출발한 Eurostar 열차는 12:23에 프랑스 파리 노드(Paris Nord)역에 도착했다. 가이드(이철호.전화:01.40.20.40. 42)의 7인승 밴(Van)을 타고 파리시내 모리당 호텔 (Meridien Hotel)로 갔다. 호텔은 깔끔 했으며 일본인 여행객이 눈에 띄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투숙절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안내직원인 프랑스 아가씨의 업무가 서툰 것 같다. 한참 후에야 방이 배정되었다. 2054호에 투숙하여 짐을 푸니 시장기가 돌았다. 피곤하고 배가 고프다. 가이드(이철호씨)의 배려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식당『김태랑』에 갔다. 김치 라면을 주문하였다. 한국 라면보다 쫄깃한 맛은 없었으나 김치와 고추가루가 들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기름진 것 과 싱거운(때로는 너무 짠 것) 음식보다 얼큰한 맛은 일품이었으며 귀국하면 라면을 많이 먹고 싶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22Km 떨어진 루이 14세가 건축한 베르사이유 궁전(Palais De Ver sailles)을 방문했다. 날씨가 쌀쌀하다. 왕족 및 귀족들의 초상화 와 조각상들이 많았으며 정교하다. 궁전 내부는 영국의 윈저궁이 사치스러운데 비하면 수수하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천정에 웅장한 그림이 있으며 궁전 주변은 넓고 아름다웠다 특히 궁전 맞은편에 인공호수를 배경으로 한 경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 베르사유 궁전 (Palais De Versailles) 베르사유 궁전은 정원은 조경사 앙드레 르노트르의 작품으로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전형으로서 호사스러우면서도 수수한 최고의 미학적 성취로 유럽의 다른 궁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원래는 왕실 파티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졌으며 루이 14세 이후 100년 동안 정치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루이 15세에 완성하였으며, 1837년 루이 필립은“프랑스의 모든 영광”을 위하여 이 성(城)을 박물관으로 개조했으나 1870년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략하여 그들의 본부로 사용하였으며 또한 독일 황제의 대관식을 이 곳에서 거행하였다. 그 후 프랑스-독일 평화조약체결을 하고 8년 후에 프랑스 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1875년 프랑스 제3공화국 헌법반포, 3~4 공화정의 대통령선출, 프랑스혁명,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조약 체결 등이 이 궁전과 정원에서 있었다. 찌뿌퉁한 날씨가 결국은 한바탕 소나기로 변했다. 비는 12월 겨울철이라는 것을 잊은 듯 퍼 부었다. 비를 맞으며 사진촬영을 했다. 영국은 한국시간과 9시간, 프랑스는 8시간 시차가 난다. 첫날은 피곤하였으나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피곤 한 줄은 몰랐다. 단지 음식이 문제였으나 가끔 한국식으로 시식할 기회가 있다. 프랑스의 도로안내 및 유도 표시, 진행방향 과 자동차 운전석등 교통문화가 한국과 같다. 영국의 교통문화와는 반대였다. 옛날부터 프랑스와 영국은 정치적으로 알력이 심하였으며 현대에 와서도 양국간의 자존심 대결이 원인이라고 안내인이 설명한다. 프랑스에서 영어로 질문을 하면 거의가 불어로 대답했으며 영국 파운드화가 통용되지 않고 프랑스의 프랑화만이 통용되었다. 나는 미화 달러를 소지하고 있었으나 호텔에서 팁으로 주는 용도 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BC카드를 사용했다. (프랑스 1프랑/원화 1,400원, 영국 1파운드/원화 약 1,800원) 저녁은 파리시내에서 한국인 식당『우정』에서 돼지불고기와 밥으로 하였다.
2000.12.10 7:00에 이국재 부부장님과 개선문으로 산책하였다. 이른 아침의 거리에는 행인이 없었으며 상점들의 문도 닫혀 있다. 개선문은 독립문보다 컸다. 레마르크의 소설『개선문』을 감회 깊이 읽은 적이 있다. 주인공『라비크』는 유태인 외과의사로서 프랑스로 망명 온 처지라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베베르의 수술을 대신하곤 한다. 어느 날 산파 수술 중 소녀가 죽는다. 소녀는 무허가 산파인에게 갔다가 거의 죽음에 임박하자 병원을 찾은 것이다. 미리 병원을 찾았다면 살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걷고있는데 삶의 절망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여인을 『세느강』 다리 위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을 시작으로 개선문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 개선문 (ArcdeTriomphe) 파리 샤를드골 에투알 광장에 위치하며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연합군과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기념으로 나폴레옹에 의해 세워졌다. 개선문에는 승리를 거둔 전투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개선문 아래에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징물 에펠 탑에 갔다. 흑인들이 모형 에펠탑과 보자기를 팔고 있다. 에펠탑은 예상보다 웅장했으며 주변으로 세느강이 흐르고 있다. 세느강의 폭은 그리 넓지는 않으나 길이는 776Km이다. 에펠 탑으로 오는 도중 강변에 10여척의 배가 나란히 정박하여 있는데 이것은 배로 만든 주택이라 한다. 도심의 씨끄러운 곳을 피해 이 곳에 와서 사는 사람들의 주택이다.
▣ 에펠탑 (Tour Eiffel) 귀스타브 에펠이 1889년에 만국박람회의 상징으로 만든 것이 프랑스와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에펠 탑은 철탑으로 높이가 318.3m이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어 꼭대기에 오르면 최대 64km앞 프랑스의 풍경이 펼쳐진다. 여름밤에는 밤12시까지, 겨울밤에는 밤11시까지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며 파리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항상 붐 빈다.
프랑스 파리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와 강도들이 많으며 특히 한국 및 일본인들이 표적인데 혼자일 때 말을 걸어오면서 순식간에 소매치기 한다. 만약 들키면 찌르기도 하니 밤길을 조심하라고 안내인이 설명한다. 프랑스는 한반도 남.북한 면적의 2.5배, 면적 효율성은 80%, 농지는 3모작을 한다. 고속도로의 최고제한 속도는 h/150Km 이며 고속도로주변 들판은 지평선으로 이루어진 푸른 초원이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르와르강 주변에 있는 고성(古城)으로 가기위해 8차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프랑스에서 유명한『리모즈』도자기공장과 원자력 발전소(2기)가 보인다. 평원을 계속 달렸으며 지평선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불르와(Blois)에 도착하여 르와르(Loire) 강변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강폭은 넓었으며 많은 량의 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강 건너편에는 성과 같은 거대한 건물들이 마을같이 늘어서 있는데 성당 건물이다. 르와르 강변을 따라 아름다운 고성(古城)이 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江)의 한가운데 성을 지어 강을 건너야만 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성을 샤또성(방어용 건축물을 뜻함)이라 하였다. 강변의 샤또성은 13세기의 블르와(Blois)성, 1515~1523년에 건축한 쉬농(Chinoneau) 성, 1519~1547년에 건축한 샹보르(Chambord)성이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샹보르 성이다.
▣ 샤또성의 특징 1) 샹보르(Chambord)성 : 샤또성 중 가장 크고 아름답다. 성의 면적은 궁전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땅이 모두 성주의 소유라 한다. 주변에는 푸른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숲은 블르와 백작의 사냥터였으나 지금은 자연공원으로 개방하였다. 차가 샹보르 성 숲으로 진입하여 달리고 있을 때 숲속에서 이따금 사슴과 동물이 보인다. 2) 쉬농소(Chinoneau)성 : 르오르 강 한가운데 있는 성으로서 강물 위의 궁전 같다. 강물이 거세어 사람이 수영하여 성으로 건너올 수 없으며, 강을 가로 질러 성에 도착할지라도 깍아지른 듯한 성벽을 타고 올라올 수 없을 것 같다. 성내에는 작은 성 하나가 더 있으며 큰 성안에는 음식을 만들 수있는 공간과 강물을 퍼 올릴 수있는 펌프시설이 있다.
3) 암부아즈(Amboise)성 : 야산의 정상에 위치하여 르와르 강과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으며 성내에 여러 개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르와르』 강변에 어두움이 밀려 온다. 르와르 강 주변 경치가 아름다웠으며 강 건너 건물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아 주변경치를 촬영하고 있는데 프랑스 여인 2명(약 40~50세)이 나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깜짝 놀란다. 내가 사진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웃음을 띄웠다. 사진촬영을 부탁했는데 서툴게 찍은 탓에 현상되지 않았다. 르와르 강변과 아름다운 고성을 뒤로 하고 파리로 향했다. 오후 4시경에 출발 약 4시간 달리고 있다. 파리의 저녁은 자동차로 가득하여 시내 진입에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냈다. 저녁은 파리시내 식당에서 프랑스 전통요리“케밥”으로 하였다. 엄청 맛 없다. 2000.12.11 07:00에 기상하여 부부장님과 개선문으로 산책하였다. 자동차가 이따금 지나가고 행인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낮에 보는 파리의 경치는 여느 도시와 같이 평범하게 보이는데 밤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곳이다. 아침을 빵과 우유, 일본식 오뎅국물을 먹었다. 일본인들이 많이 보였으며 나의 옆자리 중국인 한 분은 주변을 경계 하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후 09:00에 파리 농수산물 유통시장인 『홍지스(Rungis)』를 방문했다.『홍지스(Rungis)』는 파리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이는 230ha로서 사령탑인 센타(Center)와 입주업체로 구성하고 직원수는 약 12,730명(입주업체 직원포함)이며, 센타의 정규직원은 소수이며 대부분 입주업체에서 고용한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센타는 유통시장 전체를 조정하는 역할만 할 뿐 입주업체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홍지스(Rungis)』본관 건물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머리칼이 짧은 프랑스 여자가 지나간다. 유난히 눈에 띄었다. 키가 늘씬하며, 이목구비 뚜렸하고 바바리 코트를 걸친 모습이다. 남자 직원이 출근하면서 그녀와 키스로 반가움을 표시하며 얘기를 건넨다. 그녀는 통상 그렇게 인사를 하는 냥 키스로 응답하고는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녀는 이 곳의 홍보팀장이라 자기를 소개하고 우리를 기다렸다 한다. 그녀는 젊은 아가씨 1명과 함께 우리를 강의실로 안내하고 영사기로 홍지스(Rungis)의 규모와 역할 등에 관하여 상영하고는 유통에 대한 설명과 질문에 응답하였다. ▣ 홍지스(Rungis) ㅇ 소유권 지분 : 정부지분 57%, 기타(파리시,국세청,홍지스,입주업체 등) 43% ㅇ 가격결정 : 입찰로 결정 (정부에서 일체 가격조절에 관여하지 않음) ㅇ 등급 결정권자 : 조합에서 등급을 매기는 사람 선출 ㅇ 센타는 유통시장의 최소한 행정(유지, 보수, 관리)만 담당 ㅇ 프랑스의 유통업체수 : 18개 업체 (홍지스가 규모 면에서 가장 큼) ㅇ 농수산물 출하형태 : 협동조합단체, 개인 ㅇ 경매 수수료 : 없음 (농수산물 보관장소 임대료만 납부) ㅇ 종사원 수 : 12,730명 (센타 직원 230명, 입주업체 직원 12,500여명) ㅇ 광우병 발생과 농.수.축산물 유통에 대한 영향은 : 전년대비 판매 실적 50% 줄었음 ㅇ 농산물 농약검사소 보유여부 : 없음 (유럽규격, 등급 검사만 함) ㅇ 유통시장 경매 시간 : 04:00 - 08:00 ㅇ 도살장 보유여부 : 없음
ㅇ 청과류 및 수산물 취급 현황
ㅇ 기타 1일 취급물량 : 육류 100톤, 가금류 400톤, 닭고기 가공류 450톤 ㅇ 수송 방법 : 철도운송 15%, 육송 85% ㅇ 입주 금융기관 수 : 15개 금융기관 ㅇ 주요고객 : 도매상 ㅇ 거래 범위 : 파리시 와 홍지스로 부터 200Km 반경의 모든 시장
홍지스 방문 후『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에 갔다. 몽마르트뜨 언덕이 원만하게 경사진 푸른 초장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주택들이 가득하였으며 언덕 위에 『몽마르뜨』성당이 있다. 관광객들로 붐볐으나 동양인은 우리들 뿐이다. 성당 옆 공간 모퉁이에 머리에 헝겊을 두른 아랍인의 하얀 석고가 서있는데 약간 움직이는 것 같아 유심히 보니 석고상 앞 통에 동전을 넣으면 서서히 움직이면서 절을 하고 원위치로 돌아가 꼼짝없이 있다. 조각품이 아니고 사람이었다. 『몽마르뜨』 성당 정면은 계단인데 제법 높아 아예 계단 옆으로 케이불카가 설치되어 있다. 계단 중간정도 평평한 좁은 공간에 2명의 악사가 하프를 연주하면서 테이프를 팔고 있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이 곳에 많이 서성인다. 성당은 언덕 위에 위치하여 전경이 좋았다.『몽마르트르(Montmartre)』의 원어는 순교란 뜻인데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던 당시 이 곳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아침의 이슬과 같은 처형장이었다.
▣ 몽마르트르(Montmartre) 『몽마르트르』는 가난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식처였으며 몽마르트르언덕 테르트르 광장의 화가(街)와 1875년에 건축된 로마 비잔틴풍의 바실리카 사크레쾨르 성당, 몽마르트르 묘지는 파리시민들의 정신적 위안처이며 몽마르트르는 예술 과 묘지의 상징이다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는 주택가이다. 노트르담 성당을 방문했다. 웅장하다. 성당 안에는 성인들의 조각상들이 있는데 천정이 엄청 높다. 모든 것이 웅장해서 조각상들의 크기를 가름하기 힘들 정도이다. 조각상들은 성모마리아상, 예수그리스도상, 성 베드로상 등이 있으며 한쪽 옆에는 미사 중이다.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을 이 곳에서 거행하였다. 점심은 일본인이 운영하는『우정』식당에 갔는데 동양인을 보니 반가웠다. 김치라면의 면발은 한국의 라면보다 쫄깃한 맛은 없었으나 매웠다. 점심 후 『로댕』 박물관에 갔으나 오늘 월요일은 휴일『Close』이라 하여 실망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로댕 박물관 앞에는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그림이 붙어 있다. 『Close』표시를 모르는 체 박물관 정문을 지나 현관입구 까지 가는데 경비직원이 달려와 우리를 제지한다. 로댕 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프랑스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로댕 박물관 관람 시간 정도 감안하여 1시간 후에 이 곳으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이드는 떠났는데 로댕 박물관이 오늘 휴일이라니 약 1시간을 소일 하여야 했다. 파리시내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했다.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붐볐으며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다. 파리의 카페에는 술, 빵,차등을 팔았다. 프랑스인들이 낭만적이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1시간 후 『루브르(Louv re)』 박물관에 갔다. 안내인이 루브르(Louvre) 박물관 전문안내인을 소개했다. 자그마한 키의 한국인 여자가이드였다. 박물관의 주요 작품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30,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매일 구경할 경우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주요 작품을 감상하고 둘러보는데 2시간을 소요했다. 만약 길을 잃어 입구를 찾으려면 피라미드 유리모형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23m 높이의 피라미드형 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루브르(Louvre) 박물관 지붕 위에 1808년에 건립한 소 개선문이 있다. 1815년에 건립된 개선문보다 7년 이전에 건립되었다. 루브르 궁전은 최초 12세기 때 건립하였는데 점차적으로 그 규모를 확장하였다. 박물관 내부에 성벽 잔해가 보존되어 있었으며 성벽에 군데 군데 □ ♡ 표시가 있어서 궁금하였는데 당시 성벽을 쌓을 때 석공들이 자기들의 급여를 위하여 생산실적을 표시한 것이라 한다. 박물관에 『모나리자의 미소』 작품이 있다. 특히『예수님께서 잔치집에서 최초의 기적에 대한 그림』의 작품은 퍽 인상적이다.
▣ 루브르(Louvre) 성 과 박물관 필립 2세가 1200년 경에 파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짓기 시작하였는데 일시에 지은 것이 아니고 성의 규모를 점차 확장 건축하여 1852년에 웅장한 규모로 완성되었다. 루브르(Louvre) 박물관에는『밀로의 비너스』『모나리자』등 명화와 BC 7 ~ 19세기 중엽까지의 방대한 미술품이 보관하고 있으며 루브르(Louvre) 입구는 23m의 피라미드형 유리 덮게(Pyramide de Louvre)로 되어있다. 루브르(Louvre) 성(城)과 박물관을 방문 후 파리시내 백화점에 갔다. 백화점내 2층에 면세점 코너가 있다. 이 곳은 외국인을 위한 면세점 코너다. 귀국할 때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30만원이상 구입시에 세관에서 조사한다는 입국신고서의 문구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무게와 부피가 가볍고 파리제품으로서 으뜸인 화장품을 사기로 했다. 화장품은 파리제품이 좋다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어왔다. 화장품 코너로 가니 프랑스 여직원이 한국 여직원을 데려 왔다. 크림 과 화운데이션, 립스틱 등을 샀다. 면세점을 나오면서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아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다. 스위스와 로마에서 부족한 것을 사기로 마음먹고 쇼핑을 마무리했다. 쇼핑하는데도 거의 1시간 정도 소요됐다. 날씨가 어두지고 비 마져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파리거리는 찬란한 불빛들과 함께 행인들의 발길이 바쁘다. 18:30경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강남』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밥을 먹었다. 파리 와 런던시내의 식당 공통점은 빵은 공짜이나 물은 대금을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식사 후 18: 55에 호텔에 돌아와 편한 복장으로 로비에 있으니 프랑스여자 가이드가 맞이한다. 검은 망또를 입었다. 대부분 프랑스인들은 외국인과 대화 때 자국어를 사용하는데 영어로 맞이한다. 서투른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었다. 모국어를 듣는 것 같이 감격하여 막 흥분되었다. 프랑스에 도착이후 호텔의 카운터 직원, 도매시장의 안내원 모두 불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에 엄청 힘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여인 가이드에게 불어 3마디를 배웠다.
『며르시』 ☞ 감사합니다. 『무슈』☞ 안녕하세요. 『메르드』 ☞ 이놈아
7인승 밴으로 세느 강 선착장으로 갔다. 『you are very beautiful』소리에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띄웠다. 『 what's you name ? 』『 michel(미첼) 』대답한다. 19:00에 선착장에 도착하였는데 20:00에 유람선이 운항하여 1시간을 강변에서 보내야 했다. 미첼에게 『 Please Camera with us? 』하니 흔쾌히 응해준다.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였으나 나중에 현상이 되지 않아 아쉬웠다. 1 시간 동안 『엘펫』탑에서 서성였다. 『엘펫』탑에 엘리베이트 설치가 되어 있다. 1인당 시승비가 66프랑이다. 엘펫탑 위 커다란 네온사인 『 2000 』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엘펫탑 에는 흑인들이 모형 엘펫탑, 모자, 보자기를 팔고 있다. 세느 강 바람이 이따금 불어온다. 엘펫 탑에서 사진 촬영하고 선착장으로 갔다. 20:00에 유람선에 승선했다. 유람선은 실내에서도 밖의 경치를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거세게 흐르고 있는 세느 강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여자 승무원이 승객의 앞에서 6개국어로 안내 방송하고 있으나 한국어는 없다. 세느 강변 양 옆은 거대한 성과 저택들이 즐비하여 장관을 이루었는데 『파리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실감난다. 배 후미에서 배경사진 촬영을 하였다. 강물은 도심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그리 맑지 않았으나 강폭이 넓으며 강물의 량이 풍부하고 물결이 거세다. 21:00에 선착장에서 『미첼』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리도 쇼』극장으로 안내한다. 파리의 리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극장 내에서 카메라 소지가 금지되어 미첼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입장했다 관객들이 자리에 가득했으며 테이블에 기본으로 맥주가 나왔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아가씨가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왔다갔다 한다. 그녀는 전속 사진사로 돈을 받고 촬영해 주고있다. 한국의 롯데『리도』와 흡사했다. 리도쇼는 23:00에 마쳤다. 극장 밖에 미첼이 있다가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 기약도 없이 아쉬움을 간직한 체 그녀와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눈에서 프랑스를 모르는 동양인에게 베풀고 자하는 친절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친절을 가슴에 간직한 체 작별하였다.
내일은 스위스로 갈 예정이다. 아 듀~ 프랑스
Ⅴ. 스위스
2000.12.12 05:30에 기상하여 호텔 레스토랑에서 빵 2개, 쥬스를 마시고 파리의 『리옹』역에서 가이드와 작별하며 미화 150달러를 팁으로 주었다. 그는 팻션을 선도하는 파리의 의류를 취급하고 싶으면 연락을 하라며 명함을 준다. 07:41 출발하는 열차는 스위스 『베른』역에 12:28 도착예정이다. 열차표는 Class 2, Wit 8, Place no 24 이며 요금은 프랑스화(FRF) 447프랑이며, 유로화(EUR) 68.14프랑이다. 파리의 『리옹』역에서 2층으로 된 열차를 보았다. 지금시각 프랑스시간 08시 40분이다. 스위스로 가는 바깥 풍경 참으로 아름답다.
초록빛 들판이 끝없는 지평선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따금 보이는 주택의 모습이 장난감 나라에 온 것 같다. 주택은 거의 2~3층이며 지붕이 뾰쪽하다. 유럽에 입국하면 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등지를 입국심사없이 국경을 자유스럽게 왕래한다. 마치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땅으로 열차여행 하듯이 그러하다. 프랑스 열차(TGV)는 모양도 멋있다. 09:30에 『디존 (Dijon)』역에서 잠시 정차하였다. 작은 시골역이다. 스위스 국경에 접근할수록 야산과 숲이 보인다. 작은 마을도 보이고 들판은 12월의 계절인데 불구하고 초록빛 풀이 가득하다. 푸른 초장에는 소와 양들이 한가롭다.
10:50에 프랑스 외곽지역인 『터보 (Ets. Turberg)』역에 잠시 정차하였다. 시골의 간이역으로 주변이 한적하다. 11:30에 스위스 국경으로 진입하고 있다. 프랑스의 풍경과는 달리 산간지방이 펼쳐지고 나무가 곧고 푸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에서는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스위스 국경을 달리고 있는데 열차 안에서 사복 경찰이 여권(Pass Port) 제시를 요구한다. 국경을 넘으니 조사하는 절차인 것 같다. 건너편 자리의 아랍인(추정)은 조사를 철저히 받고 있는데 가방과 주머니의 소지품을 다 꺼내 보이고는 무어라 사정하며 변명하고 있다. 스위스『베른』역에 도착하였다. 가이드는 7인승 밴(Van)으로 루체른(Luze rn)으로 안내한다.『루체른(Luzern)』은 17만 인구의 작은 도시로서 도로 가운데로 전철이 다닌다. 루저네르호프 호텔(Hotel Luzernerhof : Tel0041-(0)41- 4104646)에 숙소를 정하였다.
15:00에 랜디(Landi)에이고 농업협동조합을 방문하니 조합장이 반겼다. 우리는 한국 농협(N.A.C.F → National Agricultual Cooperativer Federation)에 근무한다고 하였다.『랜디 (Landi)』조합장으로부터 조합의 현황을 설명 듣고 시설과 취급상품을 둘러 보았다. 신용사업은 하지 않았으며 경제업무만 하였는데 연쇄점에서는 생활필수품 과 옷가지들이 있다. 특히 치즈가 눈에 띠었다.
▣ 『랜디 에이고』 ㅇ 사무소 수 : 500여개 ㅇ 협동조합 형태 : 1) 연합회 2) 랜디(조합) ㅇ 운영 형태 : 독립 채산제(모든 자금 운용 과 경영 자체적으로 함) ㅇ 조합장 선출 방식 : 조합원 투표 (임기 3년) ㅇ 조합 규모 : - 년간 총매출액 : 900만 프랑 - 총자산 : 약 900만 프랑 - 1999년 기준 당기 순이익 : 12만 프랑 - 직원수(조합장 포함) : 8 명 - 조합원 수 : 120 명 ㅇ 수익금에 대한 조합원 환원사업 : 전액 자체적립 ㅇ 정부에서 농민에게 주는 혜택 : 저금리 정책자금 지원 ㅇ 조합의 주요사업 - 농민에게 농업생산 원료(사료등) 공급과 농민이 생산한 생산물 판매 - 지하에 저온저장 시설 보유 (에어콘 시설 장착) - 사료 직접생산 농민에 판매 (연간 생산량 1,000톤) 사료는 개인사업자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다 (아주 골치 아프다고 함) 1) 가격조절로 적절히 대응 2) 개인사업자가 부당하게 가격경쟁 유발 시키면 다른 조건으로 응징함 - 안테나 기지국을 임대하여 임대료 수익을 올리고 있음 - 조합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인데 엘리베이터 시설되어 있으며 - 주유소와 세차장운영 함 - 주요 취급 품목 : 사료, 감자, 생활필수품 특히 술이 많음
ㅇ 협동조합의 구성도 F (국가 부속기관 : 국가에서 간섭함)
UFA (연합회)
회원 Landi 회원 Landi 회원 Landi 회원 Landi 회원 Landi
ㅇ 농민들의 협동조합 이용율 : 약 18% - 82%의 농민 개인 판매 18:30에 호텔(모텔급 수준) 레스토랑에서 가이드가 추천한 퐁디(Pondue)를 시켰다. 저녁 식사 후 스위스의 유명한 『사자기념비』(Lowendenkmal)에 갔다. 서서히 주변이 어두워 지고 있다.
▣ 『사자기념비』(Lowendenkmal) 1792년 파리의 튈러리 궁전을 수호하다 전멸한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베르텔 토르발트젠 작품으로 루체른의 상징이다. 18세기 스위스가 프랑스에 보낸 용병연대는 정예부대로 약탈과 고용주에 대한 배신을 일삼던 유럽용병과는 질적으로 다른 팀이었다. 다만, 돈에 팔려 역사상 위대한 민중혁명과 그 혁명가들의 손에 죽어야 했던 비참한 운명의 직업정신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 쇼핑을 하고 『로이스』강의 『카펠』다리를 거닐었다. 『카펠』다리는 1333년에 만들어졌으며 다리위로 지붕이 있고 다리 중간 부분에 저수탑이 있다. 『로이스』강에는 7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고 강물은 호수와 같이 맑고 잔잔하다. 거위종류의 새들이 강가에서 노닐고 있다. 『루체른(Luzern)』도시는 로이스강에 의하여 양쪽으로 나뉘어져 위치하고 있었으며 도시의 야경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지나가는 65세 가량의 아주머니에게 공중전화 박스를 물으니 친절히 가르쳐 준다. 아버지에게 휴대폰으로 전화하니 통화가 되었다. 내일은 알프스 산맥을 등반할 계획인데 운동화가 없어 걱정이다. 2000.12.13 06:30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빵과 스프로 요기를 하고 호텔을 나오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전철 역까지 안내한다. 열차는 09:00에 출발 10:00 인터라켄오스트(Interlaken Ost)에 잠시 정차하였다. 이 곳은 융프라우(Jungfrau)에 오르기 위한 취리히(루체른)에서 인터라켄으로 들어와 융프라우지역으로 올라가는 길과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들어오는 접경경로 이다. 알프스 산맥은 웅장하고 설원으로 덮였다. 열차가 운행하는 동안 이따금 4개국어의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그중 한국어가 있다. 억양은 북한 말투와 같이 약간 거칠었으나 이국 땅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을 들으니 반가웠다.
12시 50분에 해발 3,454m의 융프라우(Jungfrau)에 도착 했다. 융프라우의 제일 높은 곳은 해발 4,158m이다. 눈앞에 펼쳐진 설원은 장관이다. 해발 4,099m의 묀히(Monch)산맥, 해발 3,970m의 아이거(Eiger)산맥이 우뚝 버티고 서있는데 하얀 설원 탓인지 그리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알프스의 가장 자랑스러운 곳이 융프라우, 묀히, 아이거 3곳이라 알려지고 있다. 융프라우에서 외국인 관광객과 사진촬영 후 매점에서 컵라면(농심라면) 1개 원화 6,000원에 사서 먹었다.
산을 올라 갈 때는 루체른(취리히)에서 인터라켄으로 융프라우로 가서 인터라켄으로 내려와 밴(7인승 Van)을 타고 루체른으로 왔다. 오는 도중에 호수가의 찻집에서 커피 한잔 하였다. 호수의 물이 맑고 충만하며 그 넓이가 엄청 넓다. 이 호수가 브린져스(Brienzersee) 호수라 기억된다. 호텔에 오니 카운터 종업원이 너무 친절하여 그림엽서 몇장 샀다. 스위스에는 미화(달라)가 통용된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 호텔에서 집을 꾸리고 나왔다. 호텔 여주인과 종업원이 스위스 국기를 흔들며 환송한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미소와 스위스기 흔드는 손길에 인정이 기득하다. 스위스 국민의 친절을 가슴에 담고 차에 몸을 실었다. 스위스는 인정이 가득한 곳이었다. 취리히 공항주변에 위치한 뮌피크 호텔(Moverpick Hotel)에 19:00시에 도착하여 빵과 새우와 포도주를 저녁으로 먹었다. 내일 아침에는 로마로 간다. Ⅵ. 이탈리아 / 로마
2000.12.14 09:00에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모헨피크 호텔(Movenpick Hotel)을 출발 쮜리히 공항에서 스위스 국기가 표시된 비행기를 탑승하였다. 붉은 열십자(+) 스위스 국기가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도착하니 노란 점퍼를 입은 한국인 가이드가 마중 나와 있다.
▣ 이탈리아 인구 5,700만명, 면적 30만Km(한반도 1.3배), 종교 카톨릭, 1인당 GNP $22,000로 유럽남부의 정치경제 중심국이자 경제대국 G7회원국으로서 로마를 중심으로 북쪽은 자동차산업, 남쪽은 농.어업이 발달되어 있으며 로마(Roma)는 약 2,750년 전에 세워졌고, 힘,예술,종교로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고대와 현대가 함께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반도국가로서 북쪽으로 오스트리아,스위스,프랑스와 인접하고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여러 유럽민족과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보유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등 대표적인 미술과 음악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안토넬라 호텔(Antonella Hotel)에 여장을 풀고 15:00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비원』에 갔다. 이 곳을 방문한 한국인 명함으로 장식된 액자가 벽에 걸려 있다. 이집 주인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한글로 표기된 명함을 보며 향수를 느끼는가 보다. 밥 과 순두부 찌게, 김치,나물 등이 나왔다. 이제껏 먹은 것 중 제일이다. 점심식사 후 『카타콤베』지하공동묘지에 갔다.『카타콤베』란 그리스도인의 영혼불멸 사상과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쉼터를 의미한다. 지하공동묘지 입구통로를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폭 1.5m, 높이 5m 통로가 이어지고 있는데 양쪽 벽에 구멍을 뚫어 시체를 안치하고 석회로 마감 하였다. 통로의 양 벽면이 묘지다. 이 곳은 예전부터 이미 지하무덤이었는데 그리스도 복음이 전파되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귀족이든, 평민이든 동일한 인격체인 사상』을 귀족들이 심히 걱정하던 차에 AD 60년 로마 대화재사건을 계기로 이를 그리스도인의 소행으로 지목하고 박해를 시작하였다.
혹독한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은 지하로 숨어들기 시작하였으나 로마군에 의해 지하 굴이 발견되자 미로와 같은 굴을 더욱 깊 히 파 내려갔다. 길이는 850Km 로 지하 4층, 입구 40개로 이루어 졌으나 현재는 7개만 발견되었으며 그중 4개만 일반인에 공개하고 있다. 로마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통로의 벽에 4가지 암호를 표시하여 통로를 이용하였다.
▣ 4가지 암호 1. 어른 주먹크기의 구멍 2. X 가운데 P 3. 새 그림 4. 물고기 그림 지하통로를 따라 중간 중간에 방 모양의 공간이 있다. 그중 한공간에 석관이 있었는데 1,900년 전에 죽은 사람이 석관에 있다. 오랜 세월 탓에 이미 재가되어 그 형태만 남아 있다. 당시에 얼마나 고통의 생활을 하였으며, 어떠한 생각들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하무덤의 천정에 환기구멍을 여러 군데 뚫어 붉은 흙을 파서 환기구멍을 통하여 올려 벽돌재료로 팔아 그 자금으로 지하무덤을 더욱 더 깊이 파 내려갔다. 환기구멍은 음식물을 공급하는 통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혹독한 그리스도인 박해는 BC 313년에 공인되었으며, BC 416년에 로마는 멸망하였다. 카타콤베를 방문 후 팔라티오 언덕에 갔다. "벤허"에서 나오는 대전차 경기장(Circo Massimo)이 있다. 로마제국의 가장 오래된 큰 경마장으로서 약 30만명의 관중을 수용하고 2두 전차 나 4두 전차의 경주를 하였으며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이 곳에 클라우스 황제의 고가(古家) 잔해가 있으며 경주장 건너편에는 성 대 그레고리우스 성당이 있다. 경주장을 배경으로 벤치에 이탈리아 젊은 남.여 한 쌍이 정답게 앉아 있어 사진에 담았다. 오랜 퇴색된 역사와 현대의 만남과 같은 느낌을 준다. 『로마의 휴일』영화에서 나오는『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에 갔다.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있는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교회의 한 모퉁이에 나무우리(보호막)와 같이 생긴 곳의 안쪽에 있어 주위있게 보지 않으면 지나갈 뻔 한 곳 이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진실의 입안에 손을 넣으면 잘린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두렵고 어색한 표정으로 입에 손을 넣고 기념촬영을 한다.
▣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 강의 신 홀로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그 손을 자른다는 전설이 있으며 로마제국 시절에 악덕 영주들이 반감있는 사람에게 손을 넣게 한 후 뒤에서 잘랐다고 한다. 오드리 헵픈 과 그레고리펙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진실의 입이 상영된 적 있다. 바티칸 광장(Piazza San Pietro)에 갔다. 바티칸 광장 바닥에 하얀 줄이 길게 그어져 있다. 이탈리아와 바티칸의 경계선이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진 이 곳은 1656년 ~ 1667년에 걸쳐 베르니의 설계로 건설되었으며 매주 일요일 정오에 교황이 바티칸 궁전에서 시민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이때 교황의 모습을 보려는 신도와 관광객들로 가득 메워지는 이 곳은 약 40만명을 수용할 수 있고 광장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있고 좌우에는 분수가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은 1656년 ~ 1667년에 걸쳐 『지안 로렌조 베르니』가 설계하고 건축하였다. 광장 입구에 전체 복합건축물의 중앙 포커스를 두어 중앙에 위치한 건물의 돔이 부드러운 느낌을 주도록 하였다. 광장 오른쪽에 신앙교리를 위한 성과 17세기에 만든 우피지 궁이 있고 바로 뒤에 1971.6.30 바오로 6세가 제막한 교황 알현실이 있다. 알현실과 바실리카 사이에 『튜튼』 대학이 있다. 이 건물은 샤를르마뉴가 프랑크 순례자들을 위해 숙소로 건축한 것이다. 이 건물 옆에는 19세기에 지어진 팔라조 델라 카노나카와 돔이 있는 바실리카의 성물소가 있다. 바실리카 오른쪽에는 니콜라스 5세 탑, 스위스 건위대 막사, 시스틴 예배당과 사도 궁이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은 세계에서 제일 웅장하고 로마교황이 집무 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내 수용능력은 60,000명이며, 높이 132m로서 42층 건물과 같은 높이로 그 웅장함은 대단하다. 성당입구 광장에 성 베드로상 과 바울상이 있으며, 바티칸 광장 가운데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곳으로 기념탑이 있다.
성당입구에 있는『천국의 문』은 1999.12.25~2001.1.7 까지만 열고 2001.1.8 부터 2026.1.7 까지 25년간 닫힌다. 천국의 문이 열리는 광경을 보게 되어 운이 좋았다. 미사를 준비하느라 사제들이 분주하다. 사제들이 두줄로 입장하는 뒤를 따라 신도들이 따랐다. 나도 뒤를 따라 성당 안으로 입장하였다. 마리아가 죽어가는 그리스도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미켈란젤로의『비탄』이 인상적이다. 성당 안 한가운데에는 성 안드레안상, 성베드로상, 동정녀 헤레나상, 로마병정 돈진상 4개의 석상이 버티고 서 있다. 베드로 성당 본당 회중석은 바오로 5세 보르그헤세의 명에 의해 1608년~1612년에 걸쳐 마데르노가 만들었으며 돔 안쪽 모자이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너에게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주리라』
본당 입구에서 제단까지 거리는 186.36m이며 빌리카 장식은 1650년 성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르반 8세 바르베리니 통치 때 베르니니가 설계 감독하였다. 잠깐 시간을 내어 『Colosseo Shopping』간판이 붙은 면세점에 갔다. 이태리 지갑 3개를 샀다. 혁띠 와 머풀러, 넥타이등을 파는 가게였다. 콜로세움(Colosseo) 으로 갔다. 훌라비오 황제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성하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오락시설로 여기에서 검투사 시합, 맹수 연기 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이 긴쪽 은 188m, 짧은쪽은 156m, 둘레 527m 타원형의 4층으로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건축하였다. 내부는 약 5만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있으며 네로 황제의 엄지 손가락이 내려가면 승자는 패자를 비정하게 죽여야만 했던 곳이다. 콜로세움 경기장은 오랜 세월동안 폐허가 되어 그 옛날의 쓰라린 함성의 흔적만 간직한 채 흉물스럽게 서 있다. Colosseo(콜로세오)는 『거대하다』 라는 뜻이다. 콜로세움을 뒤로 하고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으로 갔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2년에 마크센티우스 황제에 승리한 기념으로 세웠으며, 이후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다. 벽면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업적이 묘사되어 있다.
▣ 개선문 전쟁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황제 또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아치형의 통로인 공랑에 원주 등을 배치하여 조각으로 장식한 것으로 단공식과 삼공식이 있는데 단공식은 큰아치 하나로 된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이며, 삼공식은 기본적인 형식의 큰아치 좌우에 작은 아치를 겯 들인 것으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그것이다 역사대학의 호수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에 갔다. 스페인 계단과 함께 로마의 명소이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 분수 중 가장 아름다운 분수이며 바로크 양식으로 30여년 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관광객들이 뒤로 서서 동전을 던지거나 분수를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 분수를 뒤로 하고 서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전설에 동전을 1개 던졌다. 만약 2개 던지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3개 던지면 이혼 한다는 말이 있다. 『트레비』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첫째는 삼거리라는 뜻으로 바로 앞에 3개의 길이 뻗어 있어서 유래 되었다 하고 둘째는 목 마른 로마병사에게 물이 있는 곳을 알려 준 트리비아(Trivia) 소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베치니아 광장(Piazza Venezia)에 갔다. 이 곳은 빅토리아 임마누엘 2세 기념관이라고도 불리워 지는데 이탈리아 초대 국왕 빅토리아 임마누엘 2세 즉위를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이탈리아 전통식당으로 유명하다는 『다메오 빠다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하기로 하여 갔다. 레스토랑 앞에서 꽃파는 집시여인이 장미꽃을 사라고 한다. 그냥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음악과 노래 소리 가득하여 분위기 좋았다. 비올라,아코디언,기타를 켜는 악사와 찰찰이를 흔들며 노래하는 집시여인이 테이블을 돌면서 노래와 연주한다 우리 앞으로 왔다. 3곡 연주신청에 미화 20달러였다. 물망초등 3곡을 신청하고 기념촬영 하였다. 다른 테이블 손님이 악사들의 연주에 맞추어 가곡을 노래하는데 아름다운 목소리에 손님들이 놀라 나도 목을 한껏 빼어 그 곳을 보니 금발여인이 독일계 남자와 마주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우뢰 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로 가득했다. 금발여인에게 다가가서 훌륭하다고 하니 기뻐하며 악수를 청한다. 독일계 남자도 덩달아 기뻐 악수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 『코리아』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여 더욱 뚜렷하고 똑똑하게 "코-리-아"라 되풀이하니 밝은 웃음과 함께 『꼬~레~아』 하며 기뻐했다. 조개 스파게티, 조개 및 홍합요리와 백포도주를 주문하였는데 얼마나 짠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음 여행을 위하여 억지로 먹었다. 6시경에 메뉴를 주문 후 식사 끝나고 문을 나서니 9시였다. 백포도주 한잔에 취하여 이탈리아 음악에 젖은 채 레스토랑 입구에서 기념 촬영하려는데 갑자기 꽃파는 집시여인이 내 목을 끌어 안은 체 사진이 찍혔다. 그녀는 애교 어린 웃음으로 장미꽃 한 송이 사 달라고 한다. 지금 임신 중이라 하며 애원하여 얼마인지 물으니 손가락 다섯을 펴고는 『고』하고 했다. 값으로 따지면 장미꽃 1송이에 5달러는 비싸다고 생각했으나 그녀에 대한 한없는 동정의 연민이 느껴져 선뜻 5달러짜리 지폐를 건네니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 한다. 좋은 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호텔로 오는 길에 한적한 공원 길을 접어 들자 헤트라이트 불빛에 도로변 약 100m 간격으로 하이힐에 긴 코트의 백인여인 이 차가 가까이 접근하니 바라보고 서 있다. 이들은 오늘 밤도 차가운 밤바람을 쐬이며 밖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따뜻한 침대를 바라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경찰들도 모르는 척 관용을 베풀고 있다. 정부는 동구권 사람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지갑 등 절도와 집시들 때문에 곤란해 하는 입장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22:00이다. 아~ 피곤하다. 2000.12.15 06:30 모닝콜 소리에 기상하여 빵과 우유를 먹었다. 08:30에 로마에서 출발 나폴리로 향했다. 『오토그릴(Auto Grill)』휴게소에서 이태리제 검정 목도리를 샀다. 나폴리에 도착하니 12:40 이다. 약 4시간 소요되었다. 보메로(Vomero)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나폴리해변 과 쏘렌토 항구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였다. 보메로 언덕 도로변에 1톤 트럭 과일장수 노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나폴리는 이탈리아의 로마, 밀라노에 이은 제3의 도시이며 인구 밀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다. 나폴리만 북동쪽 구석에 위치한 『나폴리 항』은 3대 미항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인근에는 베수비오 화산, 폼베이, 에르콜라노 유적 과 카브리섬, 이스카아섬, 소렌토등이 있어 국제적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나폴리의 민요 중 『오 솔레미오』와 『산타루치아』등의 명곡이 있다. 나폴리 해변에 있는 일반식당 『렉』에 갔다. 손님이 아무도 없다. 점심을 위해 조개스파게티와 물고기구이를 시켰다. 정말 맛이 없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 왔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허기라도 채우기 위해 국수 종류인 스파게티를 주문하니 식당종업원이 어른 손바닥 2배정도 크기의 죽은 물고기를 손에 들어 보이며 이탈리아 정통요리를 권유하여 맛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맛이나 볼 겸하여 주문하였다. 물고기 요리라는 것이 배도 따지 않고 한 마리 삶아서 쟁반에 가져왔는데 어떻게 먹는 것이냐고 물으니 소쓰에 묻혀서 먹는다고 한다. 맛이 어떠냐고 직접 요리를 해 온 요리사가 옆에서 우리의 눈을 이리저리 보고 맛에 대한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휴~ 진짜 + 정말 맛이 없는 것이 이루 표현 할 수 없다. 그래도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요리사의 체면도 있고 해서 엄지 손가락을 내 보이며 맛있다고 하며 웃어 보이니까 기뻐하며 포도주를 잔에 따라 주며 흐뭇해 하였다.
▣ 나폴리(Napoli) 이탈리아 카파니아(Capania) 주청 소재지이며 107만명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남부지방의 중심도시로서 1923년 확장 건설된 제노바 다음가는 이탈리아의 제2 상업항구이나 남부 중심도시로 발달하면서 남부 각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인구에 의해 빈민 문제 등의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13: 40에 『폼베이』에 도착하였다. 안내하던 가이드가 갑자기 분주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더니 현지 가이드 한 사람을 데려왔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탈리아 당국 수입증대 차원에서 현지인의 안내원 없이는 『폼베이』유적지에 출입허가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결국 우리의 안내원이 현지안내원을 고용하게 된 셈이다. 얼마에 고용 하냐고 하니 그냥 미소만 띄운다. 『폼베이』는 고대문명의 화려한 도시이자 음란하고 타락한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BC 4세기 상업도시로 서기 79년에 베브이오산 화산으로 인하여 화산재에 매몰된 고대도시인데 1700년경에 최초로 발견하여 약 80% 발굴하였으며 지금도 발굴 중이라 한다. 당시의 시민 수는 약 25,000명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 까지 5세기에 걸친 삶의 도시는 거대하였으며 당시의 흔적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보존되어 있었다. 도로는 돌로 포장되어 있으며 마차가 지나간 자국이 뚜렷하고 대중 목욕탕이었던 곳을 가보니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천정가로 흐르도록 약간 원형 지붕이었으며, 당시에 이미 상수도가 발달되어 집집마다 수도관이 있고 빵을 굽던 집과 돌담길 등이 요즈음 지은 것 같아 너무나 놀라웠다. 돌로 포장된 바닥에 이따금 남자성기가 그려져 있는데 당시에 이 곳이 국제적인 상업도시로서 외국 상인들의 언어 소통이 어려웠다. 이국에서 회포를 푸는 장소를 그림으로 바닥에 새겨 표시하였는데 성기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니 당시의 유명한 사창가들이 즐비하다. 가장 유명하였다는 한 사창가를 들어가 보았다. 문에 들어서자 마자 벽에 성행위의 그림이 4종류(앞, 뒤, 입, 손) 있었다. 손님에게 그림으로 선택하라 하였던 모양이다. 작은 방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데 얼마나 방이 작은지 겨우 두 사람이 누울 정도로 작았으며 키가 큰사람은 머리와 발이 닿은 지경이다. 방에도 그러한 그림이 있다. 아직까지 칼라색깔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감탄스럽다. BC 79년 8월 어느 날 『비오산』화산이 대 폭발하여 순식간에 약 3만명 인구인 도시를 송두리째 매장했다. 식사 중인 사람, 일하는 사람, 술 마시던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아기 보던 사람 등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뜨거운 화산재가 덮쳐 갑자기 굳어버렸다. 당시의 사람들이 항아리 보존하는 장소에 엎드린 채 보존되어 있다. 도시주변의 원형 경기장에 가 보았다. 당시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나 주변 나무와 풀들이 메말라 그 쓸쓸함을 더하게 한다. 정치 와 재력으로 막강하였다는 세도가의 집을 찾아 갔다. 다른 집터 보다 넓었으며 집안에 정원의 흔적들이 있다. 도로변에는 넓은 신전에는 큰 기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현지 가이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를 따라 다녔으며 무어라 설명을 하는 것 같았으나 이태리 말을 전혀 몰라 웃음으로 답변을 갈음 했다.
『폼베이』유적 입구에서 유적지 사진 및 앨범을 파는 거리의 상인이 보인다. 기념 엽서를 사려하였으나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가야할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지나쳤다.
Ⅶ. 귀국 2000.12.15 10:42에 『레오나르도다빈치』국제공항에서 김포 행 대한 항공기를 탑승하여 좌석을 찾으니 외국인 여자가 입구 쪽에 앉아 있어 『익스 큐~즈미』 라며 양해를 구하니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녀는『티나(Tina)』라 했다. 외국인과 이야기가 흥미로워 나를 소개하고는 20년 전에 스코틀랜드에 예쁜 펜팔소녀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결혼하여『런던』에 살고 있어 나는 런던에 갔다 오는 길이며 그녀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녀의 주소를 몰라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I am from korea. My name is Mr Oh. chang shig. Long Long ago (Befor 20 years) I had a pretty girl friend in Scotland. She married and she had two son. she lived London in England. I went London now. but I do not met her. I sad now.
그녀는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으며 어머니, 오빠와 함께 덴마크에 갔다가 한국을 경유 호주로 가는 중이란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소개한다. 인테리어 건축사무소 일을 하고 있으며 올해의 계약은 해 놓은 상태이며 사업은 잘된다고 하였다. 쾌활하고 표정이 밝다. 오랜 시간의 여행에 서투른 영어와 노트에 글씨로 대화 하는 중에 비행기는 김포의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 호주 여행객에게 기내 쵸코렛 1개를 선물하니 기뻐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과 작별하고 김포공항에 착륙하였다. 비행기 트랩에 내리니 진눈깨비가 강한 찬바람과 동반하여 온몸으로 스며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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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 견문록 꼼꼼히 잘 썼네~~~ 정말 여행 갔다온 기분이네~~
벌써 다 읽어보셨어요? 전 아직 다는 못읽었는데.. (공부한다는 핑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