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성곽 답사기
일 시 : 2006. 6. 18
누구랑 : 노짱.갑오연화
구 간 : 사직공원- 홍지문
지난주 설악을 다녀 와, 이번주는 갑오연화와 조용한 산행을 계획한다.
엘비클럽은 오늘도 인수에 간다고 공지가 되었으나, 불참 통보를 하고, 가벼운 산행을 계획하다 보니, 서울성곽 답사가 떠오른다. 북한산 13성문, 남한산성 답사는 이미 했었고, 서울 4대문 성곽(서울성곽)은 현재도 통제 구간이 있어, 전구간 답사가 어렵다.
북악산 숙정문(북대문) 구간은 2007년에 개방을 한다 하니, 그때 일시종주를 해보기로 하고, 우선 가능한 구간을 나누어서 답사를 해 보기로 한다.
사직공원 앞에서 사직터널쪽으로 성곽이 지났을 거라 생각하고, 성터를 찾아보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사직공원옆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오른다. 좌측 주택지(이재형 전 국회의장 집)의 골목마다 쳐다 보아도 성곽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단군성전 앞까지 올라와 버렸다.
신성한 단군 성전 옆에는 여전히 **여관(옛날 박** 전 국회의원소유)이 볼상 사납게 버티고 있다.
십 수년전 부산에 거주를 하고 있을때, 중국인(대만) 료영총씨와 조용한 곳이라 생각하고, 사업상 장기투숙을 한적이 있어, 여관의 내력을 좀 알게 되었는데, 여전히 그 대로다.
물론 사유재산이니 어찌 할수 없다지만, 신성한 단군성전 옆에 여관이라니 좀 거시기하다. (정부 차원에서 거시기 할 수 없나?)
<단군성전 전경>
<단군성전 내부>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인왕스카이웨이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오른다. 좌측은 군부대 입구로 초병이 경계근무중이다.
세월이 무상함에도 군부대는 변하지 않은 그 자리 그대로다.
약간의 경사진 도로를 따라 오른다. 도로 담 넘어로 황학정이 보이고, 이윽고 도로변에 등과정터란 안내석도 세워져 있다.
<황학정>
<등과정터 안내석>
< 인왕산 유래 안내판>
"서울 종로구 옥인동과 서대문구 홍제동 등에 걸쳐 있는 인왕산은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던 곳이므로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유명한 서울의 명산 중의 하나이고 이 산에는 인왕사라는 절이 있다. 이태조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궁궐터를 잡을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을 좌청룡, 우백호로 삼아 동쪽을 향해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북악을 주산으로 삼고 낙산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로 삼아 남쪽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그가 도읍지로서 동쪽을 향한 예가 없다고 반대한 바람에 무학의 주장이 꺾이게 되었다. 이에 무학이 말하기를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반드시 내말을 생각케 되리라』하였다. 무학의 말 뜻은 신라 도선대사의 비기(秘記)에 국도를 정할 때 중의 말을 들으면 나라의 기초가 연장되나 정성의 말에 따르면 5세(世)가 되지 못하여 혁명이 일어나고, 200년 만에 큰 나리가 일어나 백섣이 어육이 되리라 한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과연 조선은 5세 만에 세조의 찬탈이 생기고 200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무학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자료펌)
시멘트 포도길을 따라 평이한 길을 걸어가니, 무악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성곽을 단절시키고 지나간다. 성곽이 잘린 부분에 초소가 있고, 사복을 입은 초병이 근무를 하고 있다.
<무악재쪽으로 넘어가서 본 성곽>
성곽은 옛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나, 성곽 안쪽은 군부대, 성곽 바깥쪽은 민가들로 막혀 답사할 수 없다.
<담쟁이가 얽혀있는 옛날 모습의 성곽>
군부대 담으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은 성가퀴도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초소쪽에서 본 성곽 안>
성곽 이 잘린 부분에서 우측으로 성곽을 따라 인왕산을 오른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다.
인왕산 등산로를 알리는 안내판과 서울 성곽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나, 성곽 안내판은 우거진 잡초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인왕산 등산로 계단>
<서울성곽 안내판>
서울 성곽 우측으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인왕산 정상까지 계속 오름길이다.
비로서 이 구간에서 부터 성곽 답사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성곽과 나란이 하고 있는 등산로>
성곽 복원공사를 해 놓아, 성가퀴와 성벽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성한 담쟁이도 세월을 감추지 못한다.
<성가퀴>
<말끔하게 단장된 성가퀴에 담쟁이가 세월을 감춰 보지만,..>
전망이 있는 첫 고개에 당도한다. 제법 땀이 옷에 베인다.
인왕산 정상이 고개를 내민다.
<전망고개>
<성곽>
<정상쪽으로 이어진 복원된 성곽>
좌측으로 내려다보니 인왕사 절 지붕이 내려 보인다.
무악재쪽으로 내려가 인왕사 절을 보고 올라 왔어야 하는데, 그냥 내려다 보고만 만다.
사찰연혁 및 현황
인왕사(仁旺寺)는 종로구 무악동 산3번지에 있는 사찰이다. 이 절은 현재 단일 사찰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암자들이 인왕사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다.
인왕사는 본래 조선 태조가 서울에 도읍을 정한 뒤 궁궐에 있던 내원당(內院堂)의 조생(祖生)스님을 주지로 삼아 인왕산의 호국도량으로 창건한 절이다. 1503년(연산군 9)에 이 절의 입지가 경복궁을 내려다보고 있는 위치라 하여 한 때 철거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다시 세워졌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타 없어지고 복원되지 않다가 그 터에 1912년 박선묵(朴銑?)거사가 선암정사(禪巖精舍)라는 이름의 암자를 세웠다. 이후로 1914년 탄옹(炭翁)스님이 대원암(大願庵)을 1922년 서옹(西翁)스님이 극락전을 1924년 자인(慈仁)스님이 안일암(安逸庵)을 1927년 춘담(春潭)스님이 다시 극락전을 1930년 묘법(妙法)스님이 치성당(致誠堂)을 각각 세우면서 여러 개의 암자가 한 터에 군집되었다. 1942년 이들을 통합하여 인왕사라는 이름으로 등록했는데 이렇게 여러 개로 독립된 암자를 하나의 절 이름과 또 전체를 대표하는 주지도 한 사람으로 등록하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각 암자마다 따로 주지가 있고 운영도 별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일된 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통사찰 인왕사로 등록된 사찰은 본원정사 관음전 보광사 대웅전 극락정사 등 5개이다.
한편 이곳에서 산쪽으로 조금 올라가는 길에 치마바위 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 큰 주춧돌이 여려 개 남아 있고 기와도 수습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바로 예전의 인완사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우측으로는 북악산과 청와대가 보인다.
<북악산과 청와대>
성곽 바깥쪽을 내려다 본다. 개스가 심하여 남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옛날 남산에서 이곳까지 성곽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을 것이다.
<남산 방향으로 성곽 바깥쪽을..>
이 구간은 성곽 하단부만 남아있고, 상단부와 성가퀴가 없다.초소를 앞에두고 오르막이다.
<성벽>
달팽이 형상을 한 바위가 좌측 성밖에 보인다.
<달팽이 형상석>
<지나 왔던 성곽쪽을 내려다보고>
<무악재 건너 안산의 모습>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초소에는 사복을 입은 초병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옛날에는 살벌 하였을것 같다.
계속해서 성곽 상단부가 없는 지역을 지나간다.
<성곽을 끼고 정상으로>
인왕산 정상 직전에 옛날 모습 그대로 쌓여있는 성곽 상단부의 모습이다
<옛모습 그대로인 성곽>
정상 직전은 바위를 계단식으로 파 놓았다.
<바위에 새겨진 계단>
<정상 전 헬기장>
<오래된 소나무>
인왕산 정상에도 초소가 있다. 초소 이름이 명명되어 있다. 어떤 연유에서 인지 33경비단 불사조 초소라 되어 있다.
여기서 부터 성곽은 북악산 숙정문(북대문)쪽으로 흐른다.
<북악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성곽>
인왕산 정상에서 약간 급경사를 따라 성곽을 우회하여 내려간다.
<인왕산 정상에서 남산을 보고>
더 이상 성곽을 따라 갈수 없어 오늘은 홍지문쪽으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홍지문 쪽으로 하산을 하며, 북악산을 따라 오른 성곽을 보고..>
<정상을 내려 오다가 쉼터에서 정상을 뒤돌아 보고>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봉이 희미하게>
<비봉 .향로봉. 쪽두리봉. 불광동쪽 끝자락>
숙정문을 비롯한 북악산 서울성곽의 일부는 청와대에 사전 신청을 하여 안내를 받아 답사를 할수 있을뿐,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답사하기는 불가능하고, 2007년에는 개방이 된다고 하니 기다릴수 밖에...
<가 볼 수 없는 북악산으로 오르는 성곽>
홍지문방향으로 내려 오면서 보니, 또 다른 성곽의 흔적이 보인다.
아 하~~ 언젠가 상명대 후문으로 대남문을 오르는 길에 보았던 성곽이 바로 서울성곽의 외각 성곽으로 홍지문을 지나, 상명대학 뒷산으로 이어지는 탕춘대 성곽으로 북한산까지 이어지는 성곽이로세.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사실을 알게되니, 오늘 1차 서울 성곽 답사의 의미가 한층 보람이 있는것 같다.
< 옛날 통제시 사용되었던 철망과 문>
<상명대학교 전경>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홍지문을 지나 상명대학 좌측 산으로 오르는 성곽이 뚜렸하게 보인다.
<슬랩 바위사이로 지나는 성곽>
<옛모습 그대로의 성곽 흔적>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 북쪽의 능선을 따라 북한산 서남쪽 비봉 아래까지 연결된 길이 4㎞짜리 산성이다. 세검정의 동쪽 약 100여m 거리에 있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어 탄충대성이라 불렸다.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란 편액을 내려 공식 명칭이 됐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년)에 건축됐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돼 1977년 서울시가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했다. 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현장에서 홍지문과 탕춘대성에 대해 설명한다.
홍지문 가까이 내려오자 성가퀴까지 보수된 확실한 성곽이 보인다.
<보수된 성곽>
<도로에 내려 서기 직전에 본 홍지문>
도로에 내려서니 건너편 세검정이 풍류스럽게 서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다녀, 눈에 띄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각의 옛 멋스럼과 함께 역사의 현장으로 의미있게 다가온다.
<세검정>
|
|
<세검정 유래>
<세검정차일암>
<탕춘대 터>
<탕춘대 한지 마을 터>
산행이기 보다는 문화유적 답사의 의미가 큰 산행이였다.
짧은 거리, 짧은 산행이였지만 나름대로 보란있는 답사산행이였다고 자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