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會者 宣敎 專攻
崔 聖 奉
"태국을 중심한 동남아시아
불교권 지역에서의 교회 개척 전략"
指導敎授 : 정 병 관
이 論文을 宣敎學碩士 ATA 學位論文 (Th.M equ)으로 提出함
1998年 12月
總神大學校 宣敎大學院.
牧會者宣敎專攻
최 성 봉
최성봉의 宣敎學 碩士 ATA 學位論文을 認准함.
1998年 12月
주심 정 병 관 印
부심 강 승 삼 印
부심 안 재 은 印
목 차
제 1 장 서 론
제 1 절 연구배경 및 목적 ------------------------ 8
제 2 절 연구방법 및 연구과제 --------------------- 9
제 3 절 연구질문 ------------------------------- 12
제 2 장 동아시아 선교의 당위성
제 1 절 신학적인 측면 ------------------------ 14
* 선교의 정의 ------------------------------- 15
제 2 절 지정학적인 측면 ---------------------- 18
제 3 절 선교학적인 측면 ---------------------- 19
제 3 장 동남 아시아에 대한 연구
제 1 절 동남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반적 상황
제 1 항 종교적 측면 ------------------------- 20
제 2 항 경제적 측면 ------------------------- 22
제 3 항 일반적 각국의 상황들
1 > 대만 ---------------------------------- 23
대만의 선교역사/현황/교회들 --------------- 24
1 > 베트남 -------------------------------- 25
베트남의 종교분포 ------------------------- 26
제 4 장 선교를 위한 태국 연구
제 1 절 자연환경
제 1 항 지리 ---------------------------------- 29
제 2 항 기후 ---------------------------------- 29
제 3 항 주위환경 및 부족분포 ------------------ 30
제 2 절 인문환경
제 1 항 역사 ---------------------------------- 31
제 2 항 정치 ---------------------------------- 33
제 3 항 경제, 산업 및 기타 -------------------- 34
제 3 절 종교적 환경
제 1 항 태국민의 일반적인 종교역사 ------------- 36
제 2 항 태국민의 일반종교(애니미즘, 브라만교) -- 37
제 3 항 태국의 기독교와 타 종교 ---------------- 40
1 > 태국의 기독교 단체들 -------------------- 40
2 > 로마 카톨릭 ----------------------------- 45
3 > 이슬람교 -------------------------------- 46
4 > 기타 종교-------------------------------- 46
5 > 불교 연구 ------------------------------- 47
불교의 종교생활/소승불교 교리/태인의 사고
제 5 장 태국의 선교약사
1 > 네스토리우스 -------------------------------- 53
2 > 로마카톨릭 선교 ----------------------------- 54
3 > 프로테스탄트 선교 --------------------------- 55
4 > 태국교회의 근황 ----------------------------- 57
제 6 장 태국의 선교현실
제 1 절 태국 선교단체의 사역형태 --------------- 59
1> 태국 기독교 총회(C.C.T)의 한국선교사의 사역형태- 59
2> 태국 복음주의 연맹(E.F.T) 사역형태 ---------- 60
제 2 절 선교현장에서 이해가 요구되는 사항들
교역자 양성/ 훈련/ 교회개척 및 양성 ----------- 62
제 3 절 태국 선교의 문제점들------------------- 63
제 1 항 태국인의 인격 ----------------------- 63
제 2 항 태국인의 종교관 --------------------- 66
제 3 항 태국교회의 문제점 ------------------- 67
제 3 절 태국 불교문화가 미친 복음의 장애
제 1 항 소승불교와 민족주의 --------------- 68
제 2 항 종교와의 혼합주의 ----------------- 71
제 3 항 기타 장애들 ----------------------- 71
제 7 장 태국선교의 전략 연구
제 1 절 과거 교회의 선교전략
제 1 항 구약교회의 전략 ----------------------- 72
제 2 항 신약교회의 전략 ---------------------- 73
제 3 항 바울 선교전략 ------------------------ 76
제 2 절 한국교회의 태국선교 실제 -------------- 78
1 > 주 태국 한국장로교 선교부의 정책 ------- 78
2 > 정승희 선교사의 선교실제 --------------- 79
3 > 김성곤 선교사의 선교실제 --------------- 82
제 3 절 태국 교회개척 전망과 전략
제 1 항 교회 개척의 가능성 ------------------ 85
제 2 항 전망에 따른 전략 -------------------- 88
지역별 전략/ 종교별 전략/ 지역민의 종교영향 연구
제 3 항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사의 준비사항 ------ 99
1 > 복음전도에 고려해야 할 태국민의 민족성 ---- 99
2 > 복음 제시방법 ----------------------------- 101
3 > 개인전도와 양육을 위한 대안 --------------- 104
사귐전도/ 종속전도/ 동질전도/인정전도/ 예비전략
제 4 절 교회개척과 육성을 위하여 ---------------- 109
1 > 개척을 위한 개척팀 훈련전략 ------------- 111
1단계(팀 사역과 모집단계) ------------------ 113
* 모교회 구성/ 훈련팀/ 피훈련자 팀/훈련과정
2단계(훈련과 개척단계) -------------------- 116
3단계(훈련과 교회조직단계) ----------------- 117
4단계(재생산 단계) ------------------------ 118
2 > 교회개척을 위한 요약 정리 --------------- 119
참고 문헌 ------------------------------------------ 130
제 1 장 서 론
제 1 절 연구배경 및 목적
한국교회는 복음을 받은 지 100여 년만에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복음 전파를 위해 220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이미 선교사로 파송 하였거나 앞으로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선교의 여명기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대교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일은 선교 전략을 재고하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창기의 허다한 진통과 난경 속에서도 세계선교의 비젼을 구현시키려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꿈을 사실화시키려고 할 때 선교사 양성의 문제와 선교철학과 전략의 문제, 선교행정 문제, 선교비 지원의 문제 및 선교 현장의 문제 등 여러 분야를 개척하며 정립하는 부단한 노력이 요청된다. 초대 선교사 바울 사도가 그러했듯이 선교사의 가는 길이란 한없는 수난의 끝없는 역경만이 점철될 뿐, 우리에게는 탄탄대로의 평지란 감히 생각조차 미치지 않는 서구선교사들의 성공과 실패의 선교 체험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졌듯이 한국교회의 선교 전략이니 방법론은 한국선교사의 현장 선교체험을 심각하게 그리고 구체적인 측면에서 분석 검토함으로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선교에 있어서 아시아는 대단히 중요하다.
제 2 절 연구 방법 및 연구과제
세계 50억 인구 중에 57%가 살고 있으며 공산주의에 의해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5,669개의 방언 중에 1,965개 언어를 가진 가장 복잡한 지역이요 아직도 비 기독교인이 98%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아시아를 보다 세부적으로 나누어보면 남부 아시아인 아프카니스탄, 푸탄, 세일론, 인도, 네팔, 파키스탄 등은 이교세력이 가장 강한 지역이고, 동남 아시아 지역으로는 미얀마, 타일랜드,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지역은 대부분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중국은 10억, 인도에 7억의 인구가 복음을 받지 못한 채 있다. 아시아 지역의 기독교 인구를 보면 태국이 0.5%, 일본 1%, 파키스탄 1.4%, 대만 4%, 스리랑카 73%, 싱가폴 9%, 홍콩 12%, 필리핀 85% 이나 필리핀의 경우 대부분이 카톨릭교도들이며 그들 중의 미사 출석율은 겨우 7%미만이다. 신교도는 5% 밖에 안되는 실정이다. 선교사업이 절망적이고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 지역을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동남아시아는 우리의 선교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동남아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복음 선교를 위해 특히 불교권 나라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함으로 선교를 나가게 될 태국에서의 교회개척을 위해 전략을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국회 도서관과 중앙대학교, 영남대학교, 총신대학 도서관, 영남 신학대학 도서관에서 정보와 자료를 2년에 걸쳐 수집하였고 몇 군데의 시립도서관에서 작업을 했다. 본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동남아 지역의 여러나라를 개괄적으로 불교권 지역을 중심으로 연구하되 태국을 선정하여 세밀하게 분석(환경, 종교, 생활습관 사상 등)하고 선교지의 개척적 선교과 교회개척 전략을 세우고자 한다. 연구 방법과 범위는 다음과 같다. 먼저 2장에서 선교의 당위성, 전략의 원리를 인식하고 선교를 하려면 선교전략을 세우기 전에 먼저 그 지역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3장에서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고 4장에서는 선정된 태국을 연구하여 그들의 환경과 종교를 연구. 그 가운데 불교를 세밀하게 다루면서 그들의 생활 철학을 염두해 두고 그들의 불교문화 속에서의 약점을 이용, 기독교 복음을 제시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한다. 5장과 6장에서는 태국선교의 약사 및 태국의 선교실상을 관찰 검토하고, 7장에서는 전략적 측면으로 복음전도를 서술하면서 선교사의 제 문제점들과 함께 교회 개척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에서 지금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해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동남아시아 지역 문화를 이해시키고 그 가운데 불교권 선교사의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아울러 제시한다.
제 3 절 연구 질문
* 한국이 왜 동아시아 선교를 감당해야 하는가 ?
* 동아시아의 상황과 토양의 상태는 어떠한가?
* 동아시아 각국의 선교의 시작은 언제부터 였는가?
* 그들이 선교를 받아들인 후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 선교지로 택한 태국에서의 선교적 바램은 어떤가?
* 태국에서의 문화와 복음에서의 갈등은 무엇인가?
* 그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 태국에서 교회개척과 성장전략 프로그램은 실제적인가?
복음 선교를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휼륭한 관리와 사려 깊은 계획은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분야를 차지한다. 전략이라는 말은 "전투를 실행하는 수단 방법"이다. 선교는 신령한 전투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70년대부터 해외 선교에 박차를 가하면서 선교를 하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 교회 및 선교단체에서는 해외 선교를 위해 더욱 열심을 내고 있다. 그러나 열심을 내는 것 만큼 선교지역의 문화이해와 선교 전략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동남아 지역를 위한 지금까지의 선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를 이해하고, 이에 맞는 복음 선교전략을 세워 최선을 다함으로써 효과적인 열매있는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휼륭한 전략은 광범위한 원칙과 특별한 작전에 관심을 두지만, 그러나 정한 목적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선교사들이 효과적인 선교전략의 부족으로 하나님의 일이 많이 지연되고 있다. 전략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선교에 목표가 없으면 전략은 개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교지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효과적 전략수립이 급선무이다. 기독교 선교의 성패는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무장여하에 있다.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점에서 볼 때 선교에서 전략이란 우리가 목표하는 곳에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다. 선교하는 선교사는 그리스도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교를 승리로 이끌려면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군수 물품을 제공하는 후방에서는 전방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전쟁을 계획하는 어떤 지휘관이 적의 능력을 의도하지 않은 채 공격을 감행한다면 이것은 자살행위요, 그는 초보적인 군사학도 모르는 무능자'라고 하지 않겠는가. 이와같이 교회의 영적 전쟁인 선교전략에도 이러한 원리를 잘 응용하여야 할 것이다. 많은 선교사들의 선교 문제들을 기초로 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교회가 지향하는 선교 문제를 불교라는 종교를 중심으로 선교전략과 교회개척을 수립하는데 소기의 목표를 이루는데 조금이나마 기여 하고자 한다.
제 2 장 동아시아의 선교 당위성(한국교회의 책임)
제 1 절 신학적인 면
텐드릭 벨코우프나 헨리 부어가 지적하는 대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선교이다. 미카엘 그린이나 데이빗 왓슨이 논술하는 바와 같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살아있고 성령충만 하다면 자연스럽게 성경적인 생명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으며 이것은 랄프 인터나 데이빗 헤셀그레이브가 선교 용어로 정의하듯이 이웃과 타 문화권을 뛰어 넘는 모든 족속을 향한 선교운동으로 확산되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하면 그것은 당연히 한국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만들 것이다.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고백하는 바처럼 복음에 빚진 교회이다. 초창기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를 연구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섭리적인 예비하심과 은총의 선행이 있었다. 1866년 대동강변에서 피를 뿌린 토마스 선교사의 한국에 대한 헌신과 사랑, 1876년 산동에서 중국인들을 위한 사역을 일시 정지하고 심양을 거쳐 중국쪽 압록강 하류 접경지역인 고려문에 이르러 한국선교를 염원하며 다섯 명의 청년을 섭리적으로 만나 결국 회심케 하여 로스 성경전서를 만들기까지의 과정, 언더우드의 내면에서 울린 하나님의 소리 '누가 한국을 위해 갈것인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신령한 것으로 거져 받은 한국교회의 빚인 것이다. 한국교회는 가까운 이웃이며 문화적 유사분모가 많은 동아시아 교회의 어려움과 선교에의 요청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신령한 것을 거져 받았으니 복음에 빚진 자의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복음을 거져 주어야 할 것이다.
* 선교의 정의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의 기쁜소식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믿게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도록 하는 사역을 말한다.
그로버(R.H Glover)는 "선교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회개치 않는 모든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또한 현대 교회 성장학의 창시자인 맥가브란은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복음을 들고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을 권하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 그의 교회의 책임적인 회원이 되게하여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전도와 사회 정의를 위한 일이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종래의 선교 개념이 교회 중심적이었던 데 반해 선교를 하나님께 그 기원을 두는 것을 Missio Dei라 한다. 순수하게 영이신 분이 물질세계를 말씀과 영으로 만드신 사건을 선교로 본다. 따라서 오순절에 성령의 오심도 선교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때 선교의 주체는 삼위 하나님이시다. Warneck는 선교가 삼위 하나님에 근거됨을 언급하였고, Karl Hartenstein이 이 사상을 발전시켰다. 한국교회는 그 역사가 비록 짧지만 위로부터 하나님의 축복과 부름을 받은 하나님 백성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바야흐르 제 3세계에서 말씀의 토대 위에 굳게 세워진 가장 역동적인 교회로 간주되고 있다. 제 3세계에서 한국교회가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때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중요한 위치와 역사적 역할과 공헌이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선교는 어떤 특정한 지역의 교회나 인물들의 전용물이 될 수 없다. 선교는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부과된 사명이다. 교회와 선교는 분리될 수 없고, 선교신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신학이 바로 선교신학이다. 그래서 교회가 선교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회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공동체라는 관점과 "교회는 세상으로 파송된 단체"라는 관점에서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면 선교사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사무엘 로렌(Samuel Rowen) 같은 이는 "선교사"란 문화적 구경을 초월하여 전도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함이 적당하다.고 주장하며, 피터 와그너는 복음 증거의 목적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일하는 기독교 일꾼을 선교사로 정의 하였다.
제 2 절 지정학적인 면
다비가 동아시아의 특징을 몬순 아시아라고 평했듯이 아시아의 사람들은 땅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권으로 쌀을 주식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농경 사회는 가족과 이웃과의 연대를 중요시하며 정교한 친족체제를 발전시켰으며 인간관계를 중요시한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특징은 중국 대륙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데 아시아의 전통적 유교적 사고와 전통종교에서 비롯된 문화적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들의 침입과 일본에 의한 식민지 경험은 아시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역사적 상처를 남기고 있다. 언어적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터키어, 몽고어, 퉁구스어를 포함한 우랄 알타이어군에 속한 말레지아, 인도네시아,필리핀, 대만산지족, 캄보디아를 포함한 오스트로네시아어군과 지나, 티벳트, 버어마군이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언어군은 영어 계열의 인도 유럽피안 언어군과 크게 차이가 나는데 한국어가 속한 우랄 알타이어군은 다른 두 개의 아시아의 대표적 어군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이 동아시아는 한국교회의 선교대상 지역이 되는데, 서구 교회보다 실질적인 면에서 훨씬 유리한 지정학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제 3 절 선교적인 측면
동아시아의 교회는 자체적으로 동아시아를 복음화하는데 여러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자급 자족하는 교회가 많지 않으며, 신학교육의 후진성과 목회자, 평신도 지도력의 부재 등이다.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 말레지아, 인도차이나 지역을 살펴보면 목회자의 수효가 많지 않으며, 많은 교회가 평신도에 의해 인도되고 있으며, 목회적인 훈련과 신학교육의 부재로 지도력에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자민족을 복음화 하는 일도 힘겨운 일인데 주변에 흩어진 최소한 삼천 이상의 미전도 족속 선교와 세계선교를 수행한다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역사가 오래된 주류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는 진보적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미시오데이 관점의 구원론이나 교회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타종교와의 대화를 혼합주의적 종교 다원의 차원까지 상황화시키는 소위 토착화 신학화의 작업을 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한국교회는 이렇듯이 선교적인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는 동아시아의 교회 형편
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 3 장 동남 아시아에 대한 연구
제 1 절 동남 아시아 각국의 일반적인 상황
제 1 항 종교적인 측면
동남 아시아 세계관은 Paul Hiebert가 구분하고 있는 중간 영역의 세계관이다. 동남아시아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종교사원, 종교의식, 서민들의 체질화 된 종교표현과 종교심을 목격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 흩어진 3천만 이상의 중국인들은 전통적인 샤머니즘과 혼합된 불교, 도교, 유교 등을 신봉하여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도교 사원이나 절에서 각양 종교의식을 거행하며 가장이나 직장에서는 도교와 연관된 제 신들을 섬기고 있다.
태국이나 버어먀(미얀마)의 불교는 소승불교군에 속하지만 토착적인 샤마니즘 사상과 혼합되어 독특한 기복신앙적인 종교의식과 상징적인 제례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도 힌두교의 부차적 경전인 대 서사시에 속한 Ramayana의 Krishnah의 현현인 Rama를 일종의 Avatar(일종의 성육신 이론)로 숭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 80%이상이 신봉하고 말레지아 국가종교이기도 한 이슬람교는 동남아지역에서 상당한 종교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본산지인 중동지역의 교리적이고 보수적인 성향보다 동아시아의 토속 샤마니즘의 정령숭배 사상이 결합되어 신비주의적이고 주관성이 강하다. 이렇듯 동아시아의 종교는 교리적인 정통성보다 동아시아 특유의 정령숭배 사상과 결합되어 초자연적인 실재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그로 인해 각양 기복적이고 마술적인 종교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권이라함은 불교가 그 나라의 역사,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들이다. 그 지역은 주로 동북,동남아시아 인데, 이제 그 지역 중에서 각각 대승, 소승불교를 대표로 하는 나라를 통해 선교가 어느정도 진행되었는가를 차후에 살펴볼 것이다.
제 2 항 경제적 측면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폴, 등 몇 지역을 제외하고서는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고 경제성장을 국가의 최고 목표로 삼고있다. 동아시아의 경제개발 정책을 살펴보면 태국은 중국과 연결되어 있는 Asian Higway를 중심으로 부상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말레지아는 수상 마하티르를 중심으로 국가 경제개발 정책인 "Vision 2020" 운동을 벌이며 자국의 기간 산업을 부양시키며 선진 외국기술과 자본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판차실라의 국가 이념 위에서 수마트라지역내 싱가폴 접경지대인 바탐성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무역항구 건설과 싱가폴, 말레이지아의 조호루주를 연계한 성장삼각 무역지대를 구상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지역 안의 나라들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보수적 경직성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외부와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등 국가적인 차원의 경제개발 정책을 발표하고 외부 세계와 교류를 활성화 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경제개발을 모델로 보고 있으며 한국 경제 발전사례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연구하며, 최근에는 한국 경제를 앞설 전망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경제개발 열기는 정치와 종교가 연계하여 반 복음적 실체를 형성한 보수적이고 때론 호전적인 장벽들을 무너지게 하고 있으며, 세속화 과정이 이루어지고 도시화 현상이 가속화 되며, 따라서 가치관 혼란과 영적인 공백상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가 동아시아에 이미 세워진 교민교회와 협력하여 동아시아 복음화를 시도한다면 복음의 수용성이나 전략적인 측면에 최적의 시기가 될 것이다.
제 3 항 일반적 각국 상황들
1. 대만(Taiwan)
대만은 주로 일본과 필리핀 군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특수 전략적 요충지이다. 또한 기독교적으로 볼 때 현재 중국 대륙의 선교를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이다.
1> 선교 역사
세계 선교사 중에는 대만의 선교 역사가 명확하게 강조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대만의 선교역사가 독특한 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선교 역사는 선교의 대부라고 말하는 윌리엄 케리의 선교보다도 약 165년전에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대만에서 제일 먼저 선교를 시작한 것은 홀랜드 선교사들로 서 1627년에 선교를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5년 후에는 홀랜드 상인들이 상륙했고 1627년부터 1644년 어간에는 모두 37명의 선교사들을 대만에 파송했다. 대만에 제일 먼저 발을 디딘 선교사는 홀랜드인 George Candiduid이다. 그 뒤에 청나라 정권 전복 기도 실패, 정권와해, 만주정부 건립, 선교사들의 강제 추방 등의 사태로 말미암아서 대만의 복음의 문이 175년간 철폐 되었었다. 그러다가 1895년에 영국령이던 도미니카 천주교 선교사들이 선교를 했으나 미진했다. 그 후 영국 장로교회의 의사인 맥스웰(Dr. James Maxwel)선교사가 대만에 1865년에 와서 중국인 동역자 3 사람과 함께 대만의 남부에서 선교하던 중, 1872년에 캐나다 장로교회에서 의료선교사인 멕케이(Dr.George Mackey)를 파송해서 그는 대만 북부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2> 선교현황,교회 현황
대만의 교회 현황은 전체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 규모가 극히 작은 것이며, 만인 제사장이라는 사상이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교회 안에서는 예배의식에 위엄스러운 모습이나 질서적인 모습에서 많이 부족한 점을 느낀 점은 거의 동일하다. 대만에서는 통일교를 제외한 모든 교단과 교파들이 있으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대만에는 지방교회(독립교회)들이 많다는 점이다.
2. 베트남(Viet Nam)
1> 베트남의 종교
베트남의 정부의 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으며 종교 단체는 베트남 조국 전선에 참가하고 정부와 당의 정책에 협력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불교가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고 카톨릭이 보급되어 있다. 유교와 도교, 프러테스탄트 신자들도 소수가 있다. 그 외에도 베트남 고유의 카오리아교, 호아하오교가 남부 지역에서 신봉하고 있다.
① 종교 분포
* 불교: 대승불교로 22종파로 분류된 정로종이다. 불교도수는 인구의 약 60%를 접하고 '베트남 불교회'라 칭하고 통일대회에서 헌장과 6개 항목의 행동 강령을 채택하여 불교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 카톨릭교: 프랑스 식민시대에 전파되어 약 360만명으로 성직자의 수는 추기경이 1명,대사교 2명, 사교 363명, 신부 2,000명, 수도사및 수녀가 약 12,000명으로 전국 조직으로는 '베트남 애국 카톨릭 고도 연대 위원회'가 있다. '베트남 카톨릭'이라는 주간지가 발간되고 있다.
* 카오리아교: 1926년 사이공에서 창립되어 남부지역을 기반으로 농민층에 널리보급 되었으며 불교, 유교, 도교, 그리스도교를 통합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혼합 종교이다.
* 호아하오교: 1939년 남부 론센 근처의 호아하오 촌에서 유행했던 기도를 주제로 한 일종의 대중불교(호아하오 불교라고도 한다)로서 남서부 메콩 델타지역에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다.
* 기독교: 1987년 말 현재 프로테스탄트 교도의 수는 약 30만명이 있다.
*** 참고로 1970년대의 월남(남베트남)의 종교 분포 1683만명 중에
불교가 842만명으로 50%를 차지했다.
카오리아교는 219만명으로 13%
호아하오교 118만명, 7%
카톨릭교 168만명, 10%
기독교 51만명, 3%
무종교 265만명, 17% 도합 종교인이 83%이다.
② 기독교의 발자취
베트남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카톨릭 교회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전래되었다. 1911년 스웨덴 복음 교회에서 베트남 다낭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하노이와 사이곤에 중앙 복음교회를 설립하면서 전국 도시에 전파 개척되기 시작했다. 1945년도에 해방을 맞아 17도선 북쪽에는 호치민 공상정권이 수립되면서 모든 종교는 폐쇄되고 17도선 이남은 개신교가 복음의 물결을 타고 성장하다가 미군이 진주하면서 미국 침례교회가 미군 기지 주변에 건립되면서 총 320개 교회의 51만의 교인으로 확산되다가 1975년 4월 30일 공산화 통일이 되면서 전 교회가 폐쇄 국유화되어 상점, 창고, 극장, 공회당, 주거건물 등 폐 처리가 되었다. 다시 1989년 개방화 되면서 현재 250개 교회에 50만 교인으로 부활하고 하노이 신학교가 새로 인가되어 30명의 신학생을 양성하고 있다.
제 4 장 선교를 위한 태국연구
제 1 절 자연환경
제 1 항 지리
남한의 4.5배되는 면적이 514,000Km이다 비옥한 농경지로서 쌀 수출국이며 아시아 인도지나 반도의 거의 중상부에 위치한 입헌 왕국이다. 서부 및 북서부는 버어마, 동부는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라오스와 접하고, 남동부는 크메르, 남부는 사이엥만을 향하고 남서부는 말레이지아와 접해있다
제 2 항 기후
전국적으로 평균온도는 27℃정도이며 전형적인 계절풍, 몬순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철 건기(11월-2월, 4개월간)에는 북동 계절풍이 불고 8℃까지 내려가는 추위가 있고, 우기(6월-10월, 5개월간)에는 매일 1회이상 비가 오는데 간혹 홍수가 있어 10월에는 학교가 방학이며, 남서계절풍이 불고, 여름철 하기(3월-5월, 3개월간)에는 무더운 시기로 비가 없고 30℃-40℃되어 학교마다 2개월 정도의 긴 방학이 있다. 이와같은 열대성 기후이면서 전형적인 계절풍 기후이다.
제 3 항 주위 환경 및 부족분포
태국의 반은 숲이다. 숲은 거의 터이고와 티프터카프라는 재목과 송진을 동시에 쓸 수 있는 나무가 주종이다. 대나무, 등나무, 양치식물, 난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연못과 습지에서 연과 수련이 자란다. 코끼리, 물소, 말, 노새 등 가축들이 농사와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도마뱀은 집 주위에 살며 벌레를 잡아먹는다. 방콕에는 상업과 과학의 목적으로 악어를 농장에서 사육하며, 독액채취를 위하여 뱀을 사육하기도 한다.
비단 사업으로 가정용 누에와 야생종 누에가 많다.
현재 타이인 100명중 약 95명이 타이 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약 4천9백만 타이 인구중에 80%이상이 타이족이다. 이들 타인인은 주로 중부평야지대에, 라오인은 북부와 북동부에 많이 살고 있으며 타이어와 라오어를 사용하고 대부분 농사일에 종사한다. 공용어는 타이어이다. 태국에는 약 4백만명의 중국인이 살고 있으나 타이사회에 많이 동화되어 약 30만명이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남부에는 백만명의 말레인이 살고 있고, 그밖에 인도인, 베트남인, 크메르인, 몬족이 각각 20-30만명씩 살고 있다. 또한 북부에는 메오족 등의 소수민족 22만명이 거주한다.
총 인구는 약 4천3백3십만명으로 타이인이 86%인데 세분하여 인척타이인53%, 타이라오인 30%, 크메르인 3%이다. 서부 산족 5만명과 카렌족 1만명이 살고 있다. 중국인이 약 10%정도이며, 약 1%의 부족민이 산다.
제 2 절 인문환경
제 1 항 역사
타이족은 기원이 분명치 않으나 한족의 남진에 밀려 중국의 양쯔강 남부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동하여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13세기에 선주민이 몬족과 크메르족이 쇠퇴하자 창마이를 수도로 정한 북태국의 랑나타이 왕국(타이유만족), 수코타이를 수도로 정한 중부 태국의 수코타이 왕국(사이앰족), 라오스 동부와 태국이 걸친 란산왕국(라오스) 등 태국민족의 소왕국이 각지에 생겼다. 랑나타이 왕국은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으나 정통왕조는 수코타이 왕조(1257-1350)이다. 수코타이 왕조의 제 3대 라마 캄헴왕(1277-1317) 때에 크메르 문자를 개량한 타이 왕조(1350-1767)는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6세기 후반 미얀마군대에 점령당하였으나 무장 프라야탁선이 버마를 격파하고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의 부하인 차크리 장군이 지금의 차크리 왕조를 세웠다. 19세기에 유럽 열강들의 압력으로 영국과 보링조약을 맺고 출랄동콘(라마5세)왕은 제도개혁과 근대화를 실행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이용하여 식민지의 위기를 벗어났다. 왕족이 저치적 부패에 불만이 높아지자 1932년 6월 무혈쿠테타에 성공해서 입헌군주국으로 발족하였다.
제 2차 대전중에 수상 피불이 일본에 협력하였고, 전후에는 항일운동자 프리디가 정권을 잡았다가 47년에 피불파가 쿠테타로 정권을 또다시 쥐자 군부내 대립이 심화되어 전쟁이 있은 후 군정을 실시하였다가 68년 타놈은 민정으로 이양하였으나 71년 쿠테타로 다시 군정이 환원되었다. 73년 반정부 시위가 학생과 시민의 합세하에 사임한 타놈의 뒤를 이어 산야정권이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나 죄우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75년 반정부 폭동으로 물러났다. 석유파동에 따른 위기 의식의 고조로 정치불안이 계속되었다가 타닌 수사을 놀아낸 크리앙시크가 국방상겸 최고사령관에서 수상에 취임하여 78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다.
제 2 항 정치
1932년 입헌혁명후 문관과 무관의 정권다툼으로 정변이 있은 후 1968년 정치체제가 확정되어 입헌 군주제, 상하원제, 3권분립의 확립, 국민의 의무와 기본적인 인권 등이 규정되었다. 1975년 이래도 공산주의자들과 게릴라들의 테러가 격증되어 1976년에도 군사쿠테타가 일어났다. 왕족은 태국사회의 구심점이 되며, 국가 연합의 상징과 국가복지 및 전통의 수호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총사령관인 왕의 통치아래 있고 왕은 육, 해, 공군의 토수권자이자 국가원수이다. 태국은 동남 아시아조약기구(SEATO)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다.
제 3 항 기타 사항들(경제, 산업, 문화, 교통, 화폐)
* 경제: 태국의 국민 경제는 예로부터 1차산업에 치중되어 취업인구의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산물은 쌀, 고무, 옥수수 등으로 세계적인 쌀 수출국이다. 양곡을 제외하고는 일반관세는 낮은 편이다.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6개년 계획을 통하여 산업화를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공업은 국내 총 생산의 18.3%를 차지한다. 무역은 자유무역제도를 취하고 무역수지는 항상 적자다.
* 문화: 예로부터 사원교육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의무교육 7년, 중등교육 5년, 대학교육 4년 과정으로 의무교육의 취학률은 97%이고 10세 이상의 문맹률은 약 30%이다.
* 교통: 수로 중심의 수운이 발달되었고 방콕을 중심하여 전국으로 교통망이 뻗어있다. 1960대 이후로 군사상 필요에 따라 도로건설이 급속도로 진전되었고 철도는 국영이다. 500만 인구의 수도 방콕에 있는 돈무안 국제공항은 30여개의 국제선이 발착하고 있다.
* 화폐: 동전은 25,50싸땅과 1,5빠트짜리가 있다.
지폐는 10, 20, 100, 500빠트짜리가 있다.
환률은 1달러당 22,50빠트, 1빠트는 약 35원이다.
참고: 1쓸능은 25싸땅, 1빠트는 100싸땅이다.
제 3 절 태국의 종교적 환경들
불교국가인 태국은 전인구의 93%가 소승불교도로서 약 24,000개의 사원과 17만6천의 승려가 있다. 태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또한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는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으나 그외 기독교, 쁘라만교, 힌두교, 시크교, 유교 등은 인정만 할 뿐이다. 정부에서는 각 종교를 국고에서 지원 육성하며 이를 통한 국가의 발전과 안정을 꾀하고 있다. 폭 넓은 정책에 따라 한국교회 예장합동측 정승희 선교사의 선교보고에 따르면 태국 정부의 육성자급을 수령했다고 보고한다. 그외 말레이족 간에는 이슬람교, 회교간에는 대승불교가 신앙되고 있다. 기독교는 1.1%로서 천주교가 0.6%이고 개신교가 0.5%이다.
제 1 항 태국인의 일반적 종교역사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태국의 종교는 소승불교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보면,불교는 애니미즘(Animism)과 브라만교(Bramanism)가 혼합되어 있다. 타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는 똑같이 선하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종교도 분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많은 종교를 섞어 놓으면 그들의 구원에 있어서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태국인의 최초 종교는 아이라오(Airao)라는 애니미즘이다. 태국인은 몽고족의 일종이므로 아시아 계통의의 애니미즘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현재의 태국 땅에 정착한 15세기 경에는 이미 강력한 애니미즘 문화가 있었다. 브라마니즘은 아쇼카(Asoko)의 불교가 전파되기 전에 이미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더우기 12세기 말, 태국이 크메르 땅을 점령하면서 크메르의 샤마니즘과 대승불교가 전파되므로 더욱 널리 유포되었다.
제 2 항 태국의 일반 종교(애니미즘과 브라만교)
최초로 태국인의 종교였던 브라만교와 애니미즘은 불교가 들어온 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교의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통하여 볼교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오늘날 태국의 종교의 기초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북부와 남부에 거주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중부 평원에 거주하는 도시인들까지도 애니미즘과 브라만교의 지배를 받고 있다. 특히 태국인들이 갖고 있는 영(Sprit-phii)에 대한 신앙은 모든 태국인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피(phii)란 죽은 사람의 영이나 시체 또는 혼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겠으나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아주 불행하게 죽거나 어린시절에 죽어 원한이 사무친 귀신
② 정글 속, 또는 산이나 나무 등 자연 속에 있는 흡혈귀 같은 귀신
③ 집이나 사원, 빌딩에 붙어서 그것을 지키는 수호귀신
④ 도시 설립자 등의 기적을 행한 공로자의 영 - 이런 피(phii)에 대한 신앙은 애니미즘과 브라마교에서 영향 되어진 것이다. 원초적 불교에서는 기도나 희생 제사가 전혀 없으며 영혼에 대한 사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phii)에 대한 두려움이 태국인을 지배하고, 피(phii)에 대한 제사가 날마다 행해지는 것은 애니미즘과 브라만교의 영향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인은 자오신을 집이나 정원에 모셔놓고 향불, 촛불, 음식 등으로 제사를 드린다. 집안에 특별한 일(출생, 사망, 질병, 나쁜일, 손님방문, 시험, 여행 등)이 있을 때 자오신에게 제사를 정성스럽게 드린다. 이 자오신은 과거에 특별한 공로를 세운 사람의 영(靈)일 경우가 많다. 과거에 사람을 위하여 도시를 설립했던지 아니면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사람의 영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태국은 소승불교의 전통을 순수하게 전수했다고 하면서도 대승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불타(佛陀)를 신으로 보는 현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자오신 사상에서 온 것이다. 태국 불교안에는 118가지의 비불교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말한다. 불교의 승려들이 적당한 의식을 행하면 이 의식에 의하여 초자연적인 힘이 부여되고 기적을 낳게 된다고 믿는다. (1)프라(Phra) 즉 왕,붓다,제사장 등은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신성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콩크랑(Khong Khlang)이라고 한다. (2) 17세 이상된 남자들은 몸에 문신을 새기면 신비한 힘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여 문신을 새긴다. 이것을(Sak)이라고 한다. 더우기 문신은 욕크루(Yog Khruu) 제례를 행해야만 효력이 발생되며, 문신을 새긴 남자는 성교를 할 때 조심해야 할 사항도 갖게된다. (3) 승려나 영적인 기능인들이 병을 고치거나 악귀를 쫓아낼 때 쓰는 물을 남몬(NamMon)이라고 한다. 이처럼 태국의 애니미즘과 불교와 브라만교의 관계는 지극히 혼합적이면서도 불교에 의하여 통합되고 있다. 대체로 애니미즘은 정신적 기초를 차지하여 심리적 요소에 작용한다. 실제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불교이고, 브라만교는 종교의식이나, 관혼상제,제사법 등 의례적인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브라만교가 그 공백을 채워 준 것이다.
제 3 항 태국의 기독교와 단체 현황
1 > 태국의 기독교
불교 태국의 기독교 인구는 약 27만명 정도이며 전체인구의 0.5%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프로테스탄트는 30%뿐으로 전체인구의 0.2%이다.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성인들이 5만9천명 정도이다.
태국의 기독교는 수적으로도 작고 그 역사가 깊지 않다. 태국의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총인구 성장율(2.6%)에는 미치지 못한다. 1960년의 정부 발표에 의하면 기독교가 인구의 0.6%를 차지했으니 현재는 0.5% 정도이다.
도표 1에서 지역별 인구비율은 방콕이 가장 높은데 주로 로마 카톨릭이 중심이고(1.28%), 그 다음이 창마이를 중심한 북부(0.83%)가 프로테스탄트가 압도적인 지역이다.
도표 1. 지역별 기독교 인구표
도표 2. 인종별 기독교 인구
도표 2에서 인종별 기독교인구비율을 보면 타이인 0.4%, 중국인 1.4%, 북부부족들 3.0%로서 태국의 모든 민족들이 복음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1978년 출라둥곤왕(라마 5세)이 종교관용법을 선언한 이후에 타이랜드의 모든 법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왔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비록 이미 할당에 제한은 받지만 입국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핍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신체적인 박해는 거의 없었다. 2차 대전후 새로운 선교 기관들이 들어왔는데 그 중 가장 큰 기관은 O.M.F인데, 이 선교에서 파송되어 북부, 중부, 남부 태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모두 275명이었다. 그외에도 미국 남침례교, 그리스도교회, 말북 선교회, 스칸디나비아 오순절교회 그리고 새 부족 선교회 등이 있다. 1980년, 대부분이 소규모인 교회들로 구성된 627개 프로테스탄트교회들과 약 500여개 교회 단체가 존재했다. 이것은 5년 동안 44% 성장한 것인데, 지난 10년간 교회 성장과 개척을 크게 강조해 온 결과이다. 태국에는 30여개의 교파가 있고, 446명의 현지 목사 그리고 294명의 교회 사역자들이 있다. 사역자들의 약 3분의 1이 CCT에 속해있다.
** 태국 기독교의 총회기관
태국 정부의 종교정책에 의하여 고대로부터 1개의 기독교총회가 존재하여 왔으나 신학 및 신앙 그리고 선교단체 등의 문제로 1969년 또 하나의 총회가 인정된 이래 현재 4개의 대 기독교 조직체가 활동 중에 있고 모든 선교단체 및 교회는 이런 대 조직체 안에서 자유로이 활동하고 있다.
* C.C.T.(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 태국 기독교 연합총회)
① 1934년 조직
②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에 각 노회별로 독립활동.
③ 장로교가 주축.
③ 14개 노회, 346개 지교회, 30,695명의 신자보유.
④ 자유주의 신학 및 신앙이 편만하고 W.C.C회원임.
④ 33개 외국 선교단체 147명의 선교사가 소속됨.
⑤ 3개 신학교 보유(1개는 정부인가, 2개는 중국계)
⑥ 한국교회와의 관계
1956년 장로교 총회와 협력선교로 최찬영, 김순일 목사 파송
1964년 송예근 의료선교사 파송 1971년까지 사역함.
1985년 3월 그동안 단절되었던 관계는 재수립(합동측)
1971년 국제선교 협력기구에서 5인의 선교사를 현재까지 파송
* E.F.T(The Evangelical Fellowship Thailand. 태국 복음주의 연맹총회)
① 1969년 정부 등록
② 초교파 선교단체들과 오순절계의 친교협력단체
③ 324개 교회, 약 2만명의 교인보유.
④ 41개 외국선교단체, 35개의 국내선교단체, 700명의 선교사 보유.
⑤ 세계복음주의 연맹회원: O.M.F, C.M.A, W.E.C, N.T.M 등 소속됨.
⑥ 10여개의 신학교 보유(각 선교부 소속).
⑦ 한국교회와의 관계
1979년 12월 예장합동총회 정승희 선교사가 회장의 초청으로 입국하여 관계를 수립하였고, 후속으로 김성곤 선교사가 1984년 12월에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다. 1980년 10월 독립선교단체인 한국장로교 선교부를 설립하고 20명의 선교사 쿼타를 확보하여 서신껏 사역중임. 현재 10여명의 선교사를 운용중임.
기성총회에서 본 단체 소속교회가 협력사역하고 있다.
* 침례교 총회는 83명 선교사, 29개 교회, 1개 신학교 보유
2 > 태국에서의 로마 카톨릭
신자 대부분이 방콕과 북동부에 거주한다. 중국계, 베트남계, 캄보디아계에 속하는 많은 사람이 포함된다. 220명의 외국인 사제, 150명의 수녀들이 봉사하고 있다. 1965년 12월 태국의 카톨릭 대주교가 처음으로 임명되었다. 전래사에 의하면 1511년 대사를 수행해 온 사제들이었다. 1555년 도미니크 수도사 2명이 태국에 와서 살다가 모두 순교했다. 포루투갈 사제들도 들어왔으니 타이족을 향한 개종의 노력은 실패하여 끝내는 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북부지역으로 선교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인구 성장률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 50년간 교회성장 속도가 어느 때보다도 가속화되어 왔다.
3 > 이슬람교
말레이시아를 통해 전래되어 대부분 말레이족이 숭상하고 말레이에 인접한 4개도는 전 인구의 70%가 모슬렘으로 강한 영향력을 각 방면에서 행사하고 있으며 단영 기독교를 능가하고 있어 현재 2,000개의 교당, 140만명의 신도, 62개 지도부를 설치 운영중이며 200개의 학교도 운영 중이다.
제 4 절 기타 종교들
시크교는 사찰이 있고 대부분 방콕에 신자들이 있다.
힌두교와 쁘라만교는 5,000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으나 태국내의 공의식이 쁘라만식이어서 상당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유교는 대부분 중국인들에게 영향력이 많으나 이들도 대부분 불교를 겸하여 신봉하며 약 50만 신도가 있다고 본다. 또한 태국에는 편만한 미신으로 각 신앙과 병합하여 귀신을 섬기고 있어서 귀신으로 가득찬 느낌을 주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마저도 미신적이고 불교적인 요소가 편만하여 상당히 복잡한 중에 있다
5 > 불교
3세기에 전래된 불교는 2만6천개의 사찰, 21만명의 승려, 12만명의 어린이 승려가 있어 전 인구의 94%이상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풍습에 따라 만 20세의 남자는 우기에 3개월동안 입찰 수도하면서 227가지 계명을 지키고 도를 닦으며 20세 미만은 10계명만 지킨다. 태국은 국가적으로 소승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는 법적으로 허락되어 있으나, 실재로 개종을 하려고 할 때 많은 박해가 따르고 있다. 94%에 이르는 불교와의 갈등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와 박해를 줄이고, 보다 효과있는 선교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교의 교리와 세계관, 종교생활을 반드시 알아야 하기에 이 부분에서 태국인의 불교생활을 자세히 살펴보자.
가> 불교의 종교생활
태국의 불교는 태국인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태국인의 생활은 불교의 종교생활로부터 시작하여 종교의식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지 그곳에는 불교의 영향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주어진다.
주요한 불교적 요소를 든다면 6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① 매일 새벽,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시주하는 승려들을 공양한다. 태국에서 승려가 되는 것은 니르바나(Nirbbana-열반)를 향하여 가는 과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들의 탁발을 드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이며, 그날의 행운을 좋게하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새벽 공양을 하기 전에는 좀처럼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② 남자들에게는 승려생활이 의무적인 것처럼 부여된다. 일단 남자로 태어나면 언젠가는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야 한다. 그 시기는 언제 이든지 자의이지만, 기간은 최소한 3 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승려의 입문은 가문의 명예와 직접적 관계가 있고 부모가 공덕을 쌓는 것이므로 가족적인 행사로 이루어진다. 승려생활을 거치지 않고는 사회생활에 결격 사유가 되므로 거의 필수적인 것이다. 오늘날 산업의 영향으로 많이 악화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승려에 입문하는 행열을 만날 수 있다.
③ 사찰은 마을 단위로 건립되어 있어서 그 숫자가 전국적으로 1970년에 25,695개에 이르렀다. 사찰이 불공의 장소로만 의미 이외에도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사찰에 하루에 한번 이상 반드시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곤 한다.
④ 종단의 영향력은 태국에서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상가는 정부 차원에서 조직되고 국민에 의하여 이루어져 가는 제, 정, 민의 중요한 결속 단체이다. 종단의 최고 위치인 법왕은 왕이 인준하고 , 기타 대승정, 도의장, 군의장, 읍의장을 방콕에 있는 행정위원에서 임명한다. 실제로 국왕은 종단내의 모든 업무를 직접 관계함으로써 종교적 위계질서를 통하여 국민을 지배하는 통로로 삼고 있는 것이다.
⑤ 불교신자는 누구나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 관념이 불교와 생활이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만든다. 태국인이 2개 이상의 사찰과 연관을 갖고 종교생활을 하는 것, 학교에서 공부하기 전에,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불공을 드리며, 태어날 때, 장례, 혼인, 건축, 추수, 아플 때 등의 제례를 행하는 것, 등, 일상생활 중에서 가족단위로 혹은 마을 전체가 종교생활을 영위한다. 이것은 종교생활 자체가 바로 개인과 사회의 공덕을 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⑥ 태국 불교인은 완프라(Wan phra)의 날 -일주일에 하루를 거룩한 날로 정하는 것- 을 지킨다. 이날에는 사찰에 모여 불공을 물론 교육도 받게 된다. 이외에도 석가모니 생애에 따른 연중 축제 불교 5계에 따르는 일상생활, 가정생활 등 태국인 생활 전체는 불교에서 근원된 것이라고 할 만큼 불교의 지배를 받고있다.
나> 소승불교의 교리
태국불교는 원시불교에 충실히 따르려고 하는 소승불교이다. 원시불교의 성격은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기초로하여 유화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평안을 기초로한 실천적 행동을 추구한다. 따라서 불교는 자신의 도그마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종교적 장벽까지도 뛰어넘어 수용하고, 모든 종교를 불교의 내조자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소승불교의 특성이 태국인의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고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태국인에게 알맞은 효과적인 선교를 위하여 소승불교를 이해하여야 한다. 소승불교의 교리를 약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ㄱ> 괴로움과 무상-불교의 시작은 고뇌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괴로움은 맹목적인 욕구에서 나온다. 그 욕망을 버리는 것이 곧 괴로움을 버리게 되는 것이며 세상을 실제로 있는것(무아,무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해탈의 첩경이라고 한다.
ㄴ> 자아 탐구-무아설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트만(자아)를 찾아내는 것 무아설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곧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며 타인에 대한 자비로써 자신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나의 것에 집착이 생기면 이것으로 자신까지도 잃게된다. 그러므로 무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ㄷ> 니르바나(열반)- 인간 세상은 생로병사(生老病死),애별이고(愛別離苦), 구불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가 가득찬 세상이다 이러한 고통의 세상은 무단히 되풀이 되는 데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그러나 무상과 무아를 통하여 완성에 이르는 각자는 생사를 초월하므로 윤회 과정을 벗어나 니르바나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성자에게 윤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는 더 이상 환생하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된 것을 가리커 사성제(四聖諸) 라고 부른다.
ㄹ> 생활로써 실천 -팔정도- 불교에서는 특별히 인간의 마음을 중시여기고 있다. 그러나 결코 마음 상태로만 그치지 않았다. 상당히 구체적인 윤리가 제시된다. 불교 윤리 성격은 나쁜 행위를 행치않고 생활을 깨끗히 하는 것에 집중된다. 이것을 '팔정도'(八正道)라 한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마음씨, 바른 정신통일의 8가지 생활을 말한다.
ㅁ> 구체적인 윤리는 성(性)윤리부터 부부윤리, 남편과의 윤리, 가정의례, 부모와 자식윤리, 사회에 대한 윤리, 고용관계, 사제관계, 친구관계, 경제윤리 등으로 구분된다.
다> 태국인의 불교
태국의 불교 태국인 생활전체를 상징하는 표상이다. 태국인들은 자기네들이 계승받아 내려오는 불교의 가르침, 관습, 그리고 전통 속에 자라난 모든 사람은 무조건 불교인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의미에서 태국의 불교는 교리나 가르침이나 심원한 철학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도덕과 윤리와 사람들의 전통 속에 불교가 자리잡고 지배하고 있다. 태국에서 불교는 사람들이 기뻐할 때나 슬퍼할 때나 사망과 종국이 올 때에 불교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제 5 장 태국의 선교 역사
제 1 절 태국 최초의 선교사 네스토리우스
네스토리우스가 태국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계통설리 가장 유력하다. 주후 8년경 네스토리우스 교직자가 태국에 주제하고 있었다.
제 2 절 태국의 로마 카톨릭선교
1956년경 포루투칼 상인들의 왕래와 함께 카톨릭 선교사업이 시작되었다. 그후 프랑스 선교사들도 찾아왔다.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1,400명의 군인과 300명의 기술자들과 람바트 감독과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다. 당시의 나라이왕은 좋은 사절단으로 보고 친교를 맺고 땅을 주며 집도 제공하여 태자들과 공주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포교의 자유와 함께 국사를 협의도 하여 관대함을 보여 주었는데 그 이유는 불교를 원숙히 하기 위하여 배운다는 입장이었다. 이때 심각한 불씨가 터져서 선교의 해방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재정장관으로 신임을 받고 있던 콘스탄틴 폴콘이 프랑스의 힘을 빌리고 관리들을 충동시켜 황실을 전복시키려는 음모가 사전에 발각된 것이다. 혁명의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고 나라이왕이 별세하자 카톨릭 선교사들과 프랑스 군인들이 모두 축출당하고 카톨릭 신자들은 투옥되거나 사살되었다. 그후로 카톨릭 선교는 긴 동면에 처하게 되었다. 태국 황실은 서구문명과 교역을 거부한 채 쇄국정책을 쓰게 되었다. 오랜 후 1899년에 교황의 대리사교가 방콕에 존재하게 되었으나 너무나도 강대한 불교세력에 밀려 태국의 중심족인 샴족을 떠나 주로 북쪽 산간지대의 다오스족으로 전도대상을 바꾸었다. 현재 태국의 로마 카톨릭교세는 약 4만명으로 평가하고 있다.
제 3 절 태국의 개신교 선교
개신교는 1828년 8월 23일에 들어 왔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의 버어마 '랭구운'에서 선교하던 저드선(A.H.Juson)과 그의 지혜로운 그의 아내는 당시 활발했던 태국과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에게 대한관심을 갖고 태국말을 배우기 시작하여 그의 남편이 지은 교리 문답서를 번역하여 1819년도에 인쇄를 했는데 당시 인쇄는 인도의 '서럼풀'에서 하였다. 최초의 두 선교사 이름은 구츨라프(Rev. F. Gutzlaff)와 톰린(Rev. J. Tomlin)이다. 구츨라파목사는 중국 선교를 통하여 익힌 중국말과 그의 중국인 통역자의 도움으로 동료인 톰린목사와 함께 6개월 동안 익힌 태국어 등을 종합하여 성서 4복음서를 번역하였다.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피와 땀으로 태국의 교회를 개척하며 성장시켜 왔다. 이들 모두 샴족에게는 선교의 손이 닿지 아니하여 중국인 상대로 하였다. 6개월만에 최초의 신자인 중국인 3명에게 침례를 베푼 딘(William Dean)목사는 1837년에 세례교인 11명으로 방콕에 극동의 최초의 중국인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창립되었다. 1895년에 태국인 첫 개종자 나이추네(Nei chune)가 출현되었다. 감격스러운 세례식을 집례한 하우스 목사는 19년만에 눈물로 씨를 뿌린 생명의 열매를 거두었다. 그의 '기쁨의 눈물'이라는 글이 현존한다. 태국인 최초의 신자 나이추네는 그 후에 높은 명예와 지위를 주겠다고 불교도로부터 온갖 유혹을 다 물리치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따르면서 의업에 종사하면서 복음 전파에 정력을 쏟아 주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교사업은 계속 진행되어 방콕을 비롯하여 지방 여러 곳에 교회를 설립되었다. 1852년 최초의 기독교학교, 1973년에 여학교가 설립됙는 한편 의료사업으로 병원, 정신요양원, 고아원 등을 설립하여 경영중에 좋은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북쪽 치엥마이 지구에는 1869년 맥 길바리(D. McGilvary)의 윌슨(J. Wilson)목사의 개척으로 복음에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1885년에 라오스족을 상대로한 선교부가 설치되어 교회개척사업과 프린스 로얄대학, 맥 길바리 신학교, 맥코믹 병원, 매퀸 문둥병 환자 부락이 세계제일이라는 시설이라고 전해진다.
제 4 절 태국교회의 근황
태국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15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약 1천명의 선교사가 각 방면에서 활동중이나 교회 성장이나 교인의 증가는 상당히 부진하여 중국계를 비롯 몇 개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자립하는 교회가 극히 적고 아직 교회 형태를 갖추지 못한 교회도 많이 있다. 최근에는 오순절 계열의 교회가 놀라운 성장을 보이고 자유주의 계열은 성장이 극히 부진하여 기존 신자를 빼앗기는 경향도 있다. 현재 태국 내에는 안수 받은 목사가 약 150명, 전체 교역자가 약 450명, 신학교육기관이 15개처이나 신학생은 1백명이 미달이고 학생과 교수의 수준미달로 교육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고 있어 교역자 수급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방콕에는 교회 개척 붐이 일고 있으나 자유주의 계열과 복음주의 계열간의 불화로 협력사역이 불가능하고 기존 1백여개의 교회가 제각기 열심히 교회 확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교회들이 대부분이 복음송에 의지한 집회가 성행하고 있다. 태국의 기독교 학교는 1개의 종합대학과 37개의 초등학교에 15개 신학교육 훈련기관이 있고 15개의 병원이 있으나 대부분의 일군들이 불교도이기에 효과적인 복음전파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평신도 제자훈련이 요청되고 있다. 특히 10여개의 서점이 있으나 대량으로 서적이 부족하여 교역자나 교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태국교회는 국민성만큼이나 외부의 간섭이나 선교사들의 사역에 상당한 장애요인이 되며 자체 발전에도 많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 당국에서는 81년부터 시작된 선교사 규제 조치 문제를 놓고 모종의 움직임이 보이는 가운데 해마다 선교사 비자문제 등 여러 가지 규정들이 수시로 변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불교신앙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지금 각급 학교마다 불상을 건립하게 하여 불교신앙에 몰두한다.
제 6 장 태국 선교의 현실
제 1 절 태국 선교의 사역형태
제 1 항 태국 기독교 총회(C.C,T)내의 한국선교사들의 사역형태
1956년 이후의 한국 장로교회 선교사들과 1970년이후의 킴선교부 선교사들의 사역형태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① 협력사역의 형태
② 선교사의 안정된 사업
③ 소신보다는 상당한 제약하에서의 사역
④ 총회에 희생되는 결과
⑤ 선교비의 절약
제 2 항 태국 복음주의 연맹(E.F.T)체 내의 사역형태
①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선교부(1970년 이후)
② 기성 총회 선교사들(1981년 이후)
③ 국제 선교 단체들에 소속된 한국 선교사들
특색 :
① 완전자유하는 선교사역
② 선교사역의 주인적 위치
③ 선교사가 실직할 우려
④ 많은 선교비 필요(자체 사업관계로)
1> 최초의 한국 장로교 총회 선교사들의 사역
1956년 최찬영, 김순일, 1964년 송예근 선교사(약 15년)
태국 기독교 총회소속 선교사(C.C.T)외국단체에 기탁한 사역.
2> KIM선교부, 선교사들의 사역
1971년 신홍식 목사부터 현재까지 (약 15년)
태국 기독교 총회소속 선교사(C.C.T)
협력선교, 제약된 사역, 태국 기독교 총회를 위한 사역
3> 대한 예수교 장로회 태국주재 선교부의 사역(합동총회)
1979년 정승희 선교사부터 김성곤 선교사까지(약 6년)
완전독립 자유한 선교사역/ 많은 재정과 독자적인 선교프로젝트 필요/ 태국복음주의의 연맹총회회원(E.F.T)과 태국 기독교총회와 협력관계.
4> 기성총회 선교사들의 사역
1982년 박희성 목사로부터 현재 (약 4년)
개교회 소속 선교사역으로 바랍직하지 못함(개교회 협력사역)
5> 국제선교 단체소속 선교사들의 사역
월드컨션(Word Concern)
유스 우이드 어 밋션(Youth with A Mission)
기타(5년 미만)
대부분 간접 선교사역
제 2 항 태국 선교현장에서 요구되는 사항들
① 교역자 양성 및 훈련
신학생 장학사업
목회 훈련사업(신학생 및 졸업생, 현역전도사 훈련)
교회 지도자 훈련
고급인력 양성(해외 유학지원)
태국교회 지도자 한국교회 연구 방문사업 지원
② 교회 개척 및 육성사업 분야
교회 개척 및 단독 및 협력 지원으로 육성사업
미지립교회 지원 육성사업, 교역자 파송 및 지원
교회 특별사업의 지원, 교회당 건축 등의 지원
③ 협력지원 사업분야
태국 내 선교단체 지원, 태국교회 진흥원 지원
나환자 선교회 지원사업, 신학교 설립 및 지원사업
④ 부족선교 사업분야
태국내의 30여개 부족을 대상으로 함
⑤ 간접선교사업 및 난민 구제 사업분야
제 2 항 태국 선교의 문제점들
** 선교현장의 문제점
1 > 태국인의 인격적 문제에 대하여
(1) 봉건성
태국은 1448년-1920년에 장기간 철저한 봉건사회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1930년 이후 급격히 서구의 자유주의 물결리 들어오고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있어서 봉건제도는 붕괴되었지만 여전히 국민성 안에는 그 봉건성이 내재하고 있다. 관리나 세력있는 자를 '짜은나이'라고 하는데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섬기면서 두려운 존재로 생각한다. 노동자를 천박하게 생각하는 '짜은나이' 사상은 불교의 업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현실 세계에서의 권세와 부귀와 명예는 바로 전생에 축적된 공덕의 결과로 인한 것이기에 당연하다.
(2) 낙천성
태국인은 평화의 나라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며 스스로 "평화를 유지하는데 적극 노력한다. 상하 질서와 남존여비의 위계질서가 철저하다. 여체는 남성의 영적진보에 방해요소라는 불타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여체는 악한 것으로 본다. 낙천성을 대표하고 싸눅(SANUK)이라는 말은 '즐겁다, 재미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어떠한 환경에도 걱정하거나 고민하기를 싫어하며 역경이 있어도 걱정하거나, 덤비지 않고 무관심하거나 태연하게 살면서 조급하고 분주한 사람들은 구양이 덜된 사람으로 생각한다. 특히 농촌지역이 심하다.
(3) 타협성
태국인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사찰에 관계된 일과 농사일에 일손을 나누어 가지는 것, 심지어는 가정의 일인 혼인, 건축, 장례까지 공동적인 사역을 아룬다.
(4) 자주성
태국인은 한번도 서구의 세력에 의하여 식민지화 된 적이 없다는데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다. 항상 웃는 스마일의 나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지만 기본정신은 철저하게 자주적이어서 혹자는 이런 가면적인 태도로 분장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태국인은 최고의 미덕이 얌전한 자세이기 때문에 항상 웃음으로 연막작전을 피우며, 결정적인 순간에도 웃음으로 마음의 결정을 감추어 버린다. 그들은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자기들의 것을 고수하며 종교적인 것은 더욱 그렇다. 가장 큰 장벽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태국민의 자주성이다.
2 > 태국인의 종교관과 선교의 문제점에 대하여
(1) 실제 태국인의 종교적 실태란 주민의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착미신과 에니미즘 위에 힌두교와 불교를 혼합시켜 놓은 격이다. 태국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 자란 모든 사람을 무조건 불교인이라고 간주한다. 태국인의 생각에는 승려가 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해탈의 상태"를 향하여 가는 과정으로 본다. 저들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국왕을 위시하여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태국인은 승려들 앞에서 합장경배와 무릎을 꿇는 것이다.
(2) 태국에서는 일단의 남자로 태어나면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있다. 어려서 절에 들어가든지 노후에 들어가든지 일단 승려생활을 해야 한다.
(3) 태국 불교 종파에는 보수파와 자유파가 있다. 그들은 포용성과 관대함을 상호간에 갖고 있다.
(4) 태국인은 기독교 선교사를 서양승려로 생각한다.
(5) 불교의 신관은 무신교이다.
3 > 태국 교회의 문제점들
(1) 교역자의 능력부족
(2) 교회의 재정빈곤
(3) 교역자의 이중직업 현상
(4) 교회에 대한 애착심 결여
(5) 기도와 전도의 열심 결여
(6) 성경과 찬송에 대한 열의 부족
(7) 신학교 교육 자체에 문제성 농후
(8) 어린이와 청소년 전도의 빈약
(9) 개교회 일보다 기독교기관 선호도 우세
제 3 절 태국 불교문화가 끼친 복음의 장애
제 1 항 소승불교와 민족주의
태국에서 소승불교는 형식적인 국교의 차원이 아니다는 것을 이미 언급했다. 태국인들에게는 불교의 교리가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불교의 생활 속에 깊이 젓어있으므로 실제적으로 태국인의 일부가 되어졌다. 전통적인 문화 속에는 물론이고 현대생활 속에도 불교의 영향은 지극히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고 교회 안에도 불교문화의 요소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 실례로 태국인은 인사를 할 때,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는데,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교회 안에서도 합장하여 인사를 한다. 이러한 불교의 영향은 마을마다 세워져 있는 사원과 연중행사로 행해지는 각종의 불교행사로 국민 모두에게 더욱 화려하고도 차원이 깊게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태국인들이 불교를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생활의 일부분을 버리는 것이므로써 크나 큰 어려움이 되는 것이다. 또 이렇게 강력한 불교의 영향력은 태국의 민족주의와 깊은 관련을 맺으므로 더욱 큰 선교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태국인은 누구나 불교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사람인데 이러한 생각은 곧 불교와 민족주의와 긴밀한 연관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이러한 민족주의와 불교의 일치성은 역사 속에서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특히 1910년에 와라치웃 왕이 전개한 민족주의 운동이 불교를 기반으로 하여 일어남으로 민족의식이 곧 불교의 사상이라고 인식되었다. 불교신자가 되는 것이 애국자가 되는 것이고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은 서양종교를 따르는 것이므로 곧 애국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맺곤하는데 여기에 선교의 어려움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국인들에게는 국가를 떠나서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부 샴족들에게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이러한 열광적인 애국주의는 상류사회나 하류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 열정적 애국주의는 시대적으로 다른 나라나 민족에게서는 배타적인 자세로 나타나게 되는데 타민족 문화나 종교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 민족주의적 정신과 불교와의 일치성이 기독교 선교에 실제적인 핍박을 가져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 신자인 학생들은 학교에서 불교 신자인 친구들과 심지어 선생님들께도 조롱과 구박을 받게 된다. 사회생활에서도 극히 제한을 받게 되며 결국 기독교인들은 신자가 되는 동시에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를 당하게 되고 사회의 지도자로 나설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소승불교와 민족주의에서 오는 선교의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불신자가 신자가 되려는 결단이 가로막히게 된다. 기독교 학교에서까지도 신자가 되려는 표시하려면 수많은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 호감을 갖게 된다 해도 그것을 표시할 수가 없고 따라서 새신자를 양육 할 수가 없으므로 결실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는 기독교 교인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선교에 대하여 배려를 받을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늘 소외될 수 밖에 없고 사회적인 위치를 차지 할 수 없게 되므로 선교의 효과가 절감되게 된다.
제 2 항 종교의 혼합주의
종교의 혼합주의는 태국인의 역사 속에서 오래동안 자리를 잡아온 불교와 애니미즘, 브라만교의 영향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태국인들은 종교에 대하여 극단의 혼합주의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종교란 모두 긍극적으로 같은 목표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다만 방법만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종교던지 유익한 점이 있으며 그 종교의 좋은 점만을 수용한다면 더 좋은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불교 사원에도 보통 2곳 이상을 나간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기독교 의식의 장례를 치룬 후 불교의식을 또 갖으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태국 종교의 혼합주의라 불리운다.
제 3 항 기타 장애물
태국인들의 여러가지 특징적인 요소들이 선교에는 장애가 되고 있다. 시골 교회에서는 높은 문맹율이 성경을 읽지 못하므로 장애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봉건성은 사회 계급의식을 합리화 시켜주며 왕권과 귀족 중심의 태국 사회를 형성하고 보존시켜 주고 있는데, 기독교의 선교가 만민 평등의 사상과 사랑의 실천 윤리를 가르치므로 왕권의 지위를 추락시킬 가능성을 갖게 되므로 정치적으로 배타감을 갖게 된다. 실제 1981년 태국정부는 선교사에 대한 비자 발급에 재한을 두는 법령을 발표하므로 기독교 선교를 사실상 재한하고 있다. 행동이나 생활보다는 마음을 강조하는 의식구조와 낙천성이 풍부한 열대성의 기질은 실천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서구화된 기독교 교리와 이질감을 느끼게하므로 선교정책을 수립하고 결과를 집계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씨족중심의 진지한 가정생활이 종교에 있어서도 개인적인 자유를 허용치 않으므로 개인적인 선교를 어렵게 한다. 태국인의 습관이 개종을 어렵게 한다.
제 7 장 태국선교 전략 연구
제 1 절 과거 교회의 선교전략
제 1 항 구약교회의 전략
구약교회의 선교전략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스라엘의 현존(Presence)이다. 하나님은 열방의 목전에서 이스엘을 해방하셨고, 의도 열방의 목전에서 베푸셨다. 이스라엘의 범죄때도 열방 앞에서 그들을 심판하셨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기록한 종교용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의 현존으로 바사인이 유대교로 가입한 대대적인 전도의 기회가 되었다.
"유대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라는 말은 개종을 의미하는 첫 용어였다. 화란의 선교학자로 불리우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구약성경은 세계적이요, 동시에 선교적이라고 하였다.
제 2 항 신약교회의 선교전략
신약교회가 선교전략상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1) 선교사의 소명과 인격이다.
크레머는 선교사 자신이 접촉점이 된다고 말하면서 선교의 성공여부는 외적인 요인인 전략보다 선교사의 절대소명과 인격에 좌우된다고 했다.
(2) 동역정신이다.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여 팀 선교를 했다.
(3) 지역선정의 우선 문제였다
(4) 바울은 교회 설립후 선교본부와 긴밀한 접촉을 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 교회로서 개척되어 바울과 바나바를 초대선교사로 파송하여 구라파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교회를 설립하여 선교의 전진기지를 마련하는데 성공한 성경의 실례이다.
바울이 약 20년동안 3차 선교여행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완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의 응답인줄을 믿었다.
(5) 바울은 4지역에 노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였고 국한시켰다.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 만큼의 시간과 정력이 있을 뿐이다. 그는 그와 몇몇 다른 사람들이 뿌린 씨에 물을 주고 김을 매며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좁은 지역을 선택했다. 이 점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과 누가는 도시를 기준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역을 기준으러 삼았다는 점이다. 분산보다 집중선교가 효과적이라는 점을 바울선교에서 배울 수 있다.
(6) 바울은 대도시에 집중하였다.
대도시를 복음전파의 전략적인 센터로 삼아 주변지역으로 복음의 빛을 확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실례는 에베소 교회인데 아시아 지역의 수도인 동시에 종교적 중심지였다. 수만명의 순례자들이 에베소를 방문하였다. 상인들은 관광업으로 얻은 수입이 많았다. 이곳에서 바울은 금싸라기 같은 귀한 3년의 세월을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즉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여 총괄지휘감독 하면서 동시에 외곽도시에 선교사를 재 파송하였다. 많은 상이, 관리, 군인들이 자주 출입하면서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로부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말씀의 흥왕하는 역사를 감당하였다. 바울의 이런 선교전략을 곱셈식 교회설립이었다고 케인은 말한다.
(7) 바울은 회당을 복음 전파의 본거지로 삼았다. 바울은 회당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기존시설인 회당을 이용하였고, 의식구조와 사상을 최대한 활용하여 선교사 할동사역을 감당하였다.
(8) 반응있는 사람에게 전파하기를 좋아했다.
(9) 바울은 신앙고백과 동시에 세례를 주었다.
(10) 바울은 교회 설립이 충분한 기간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선교하였던 것은 현대선교에서 배울 점이 많다.
(11) 바울은 동역자들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바울의 적응원리는 겸손, 겸손, 겸손이었다. 그는 선교전략으로 볼 때 세계선교의 모델이 되었다..
제 3 항 바울선교의 전략
(1) 소명에 대한 확신감(고전 1:1, 엡 1:1, 골 1:1)
(2) 전폭적인 헌신
(3) 성령에 대한 완전한 의존(행 20:24)
(4) 담대한 복음제시(골 1:5, 롬 1:16)
(5) 자립선교의 원리
(6) 지혜로운 재정정책
(7) 모범적인 생활 실천
(8)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사후처리(철저한 교육)
(9) 서신교환, 바울 서신들...
(10) 지도자 임명과 파송정책
이상의 바울 선교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
(1) 선교와 교회 설립의 원동력을 알려 주었다.
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보편성과 유일성을 제시했다.
(3) 서구 문명을 기독교화 시켰다.
(4) 역사의 목표를 제시했다.
만물이 회복하는 때까지 예수님은 하늘에 계실 것이라고 한다.
(5) 기독교 진리를 체계화 시켰다.
(6) 기도의 사람이었다.
(7) 다양한 인격을 복음전파에 사용하였다.
제 2 절 한국 교회의 태국선교 실제
현재 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태국 주재 한국 선교사 중에 예장 합동 총회 선교사인 정승희 선교사와 김성곤 선교사를 중심으로 태국 선교전략을 살펴 봄으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려 한다.
* 주 태국 한국장로교 선교부(The Korea Presbyterian Mission in Thailand)의 선교정책은 다음과 같다.
1 > 주 태국 한국 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정책
(1) 태국 복음주의 연맹의 일원이 되어 독립선교단체를 활용한다.
(2) 태국 전 지역에 복음사역 전개
(3) 태국 전 지역을 상대로 한 교회개척 및 육성
(4) 교역자 및 교회 지도자 훈련과 육성
(5) 육영, 의료, 봉사사업 전개
(6) 구라선교회 추진
(7) 태국내 각 단체와 협력 선교전개
(8) 기타
2 > 정승희 선교사의 선교실제
서울 수도노회 소속 왕십리교회 단독 선교사인 그는 1979년 12월에 총회 파송을 받아 임지로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5년간 단독 목회와 신학교 교수 경험과 군목으로서 경험을 가져 처음에는 과도한 선교적 욕심을 가져 오류도 많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 동안의 선교사역을 통하여 얻은 현장 실습이론을 재정비, 강화하여 선교전략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의 선교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교회 개척 및 육영사업
정선교사는 1년에 1개처의 교회를 개척 시도하여 사역한 결과 1988년 현재 6개처의 교회를 개척하고 육성하는 중이다. 방콕에 1개처, 중부지방에 1개처, 북부지방에 3개처로 산족교회이다. 개척 방법으로는 신학을 졸업한 사역자와 함께 적당한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고 교역자 샹활비로부터 제반 경비를 부담함과 동시에 월 1회 방콕으로 또는 2개월에 1회씩 현지를 방문하여 협력사역하고 교역자를 지도하며 월 1회 방콕으로 소집훈련을 실시하여 제자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2) 교역자 육성 및 목회 훈련사업
부족한 교역자와 미흡한 수준향상을 위하여 교회개척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① 신학생 장학사업
② 신학생 목회 훈련실습
③ 목회신학연구원(Thailand Pastoral Training Institure)
④ 신학교 설립만큼이나 중요한 신학도서 발간사업
(3) 현지인을 발탁하여 선교사로 훈련하여 동역함
최근 일부에서 경제적인 선교방법에 대단히 관심이 있는 자 한국인 선교사를 파송하기 보다는 현지인 선교사를 발탁하여 복음사역에 동참케하면 큰 효과가 있든지 아니면 현지인에게 속는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동역하는 위라 전도사의 경우는 한국교회에서 전지 훈련을 체험한 후 귀국하여 태국 임지에서 뿌리 내린 첫 케이스라는 것이다.
3 > 김성곤 선교사의 선교실제
대구 서문교회 단독 선교사인 김성곤 선교사는 1984년 12월에 총회 선교사로 파송되어 특히 5개 분야인 개척교회, 신학교 설립, 사회선교분야, 나환자 선교, 빈민과 난민선교이다.
(1) 태국 현지인 교회 개척사업
태국에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 교회와 교단 설립을 목표로 열심을 다한 결과로 제 1차 사랑의 교회를 방콕에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신학교, 제자훈련학교를 설립하여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한 재정 후원은 대구 서문교회에서 지원하였다. 태국 선교 후원회에서도 각 교회와 개인의 지원으로 지방교회 개척과 지도자 양성, 사회분야 선교로 고아원과 불우여성보호소, 나환자교회와 나환자들을 지원하는 일들을 계속해 오고 있다. 김성곤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지방교회 개척 사항으로 나코나욕 기도처가 있어 4세대(장년 10명, 유년 12명)가 있고, 북동부 지방에는 가나안교회에 8세대(장년 15명, 유년 10명)가 있고, 남부지방에는 팡아기도회가 있어 7세대(장년 8명, 유년 9명)가 있다.
(2) 신학교 및 제자훈련 학교설립
태국 기독교 사회의 실정은 지도자 양성의 실패로 인하여 기독교 문화가 바로 세워지지 못한 탓으로 교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방콕의 사랑의 교회 설립이후 교단 설립을 지지하는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학교를 설립 계획을 보고한 바가 있다(1차 12주반, 2차 24주반 등). 교육진 확보가 이루어진 후 신학교 설립을 계획 추진중이다.
(3) 태국전역의 나환자교회와 나환자 지원
육신적으로 버림받아 죽음을 기다리는 나환자를 위하여 교회개척지원과 이들에게 필요한 의약품, 의류, 생필품을 공급하며, 복음 전도를 통해 결신자를 얻어 교회를 세우고 지원하는 사업이다.
① 북동부 지역/ 골고다 나환자교회
전체 환자 수는 1,200명, 신자 수는 장유년 포함 150명.
② 중부지역/ 프라파댕 니환자교회
전체 환자 수는 1,400명, 신자 수는 장유년 포함 60명.
③ 중부지역/ 짠타부리 나환자교회
전체 환자 수 400명, 신자 수는 2가정
④ 남부지역/ 폰충 니환자교회
전체 환자 수는 500명, 신자 수는 장유년 포함 100명
* 교회 건물지원, 교역자 지원, 나환자 의약품, 의류, 문화시설 지원 등
(4) 사화분야로 고아원 불우여성보호소, 가정상담, 생명의 전화 등
태국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이 어두운 가운데 정상을 회복하기 힘든 상황인 것을 통감하며, 불교사회가 양산해낸 치유 불능의 상태이지만 기독교 복음만이 가능함을 믿고 주님의 역사를 소망하고 있다.
① 고아원/ 방콕고아원
전체수 18명, 매월 성경공부 지도, 식생활 필수품 계속지원
* 재정이 허락하면 인수하거나 별도 설립구상 중
② 불우여성보호소(방콕)
전체수는 평균 100명, 매주 1회씩 성경공부 및 레크레이션지도
③ 가정 상담소 및 생명의 전화 설치위한 기도중
* 소요재정으로 전화설치비 1,200불과 운영비 월 100불
(5) 빈민 및 난민, 산족을 위한 선교
방콕을 제외한 지역은 마치 별개의 나라인 것첨 모든 분야에서 격차가 심하다. 방콕 이외의 지역 특히 북동부 지역의 빈민들과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지대의 피난민들과 북쪽지역인 버어마 접경지역의 난민들은 죽지 못해 살아있는 듯하다. 동물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고, 영양실조와 치료를 받지 못해 아무런 대책없이 그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주는 일이 하급하다. 이를 위해 교회의 지원과 구호의류 전달, 생필품 전달을하고 있다.
제 3 절 태국선교의 전망과 전략
제 1 항 태국 선교의 가능성
(1) 인종적 조건
태국선교에 한국인 선교사가 파송되었을 때 같은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서구 선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나고 또, 민족주의와 결탁하여 외세를 배척하고있는 강한 반발세력이 선교의 강한 장애지만 같은 인종으로서 한국선교사에 대한 호감과 한국교회의 부흥상에 대한 동경은 선교의 좋은 전망임을 틀림없다.
(2) 지리적 조건
태국은 동남아시아 지역 인도지나 반도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로서 우리나라와 인접한 이웃으로서 친밀감, 유대감이 있다.
(3) 문화적 조건
조상숭배와 가족간, 부락간, 연대의 친밀성 등이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다라서 복음을 전해줄 선교사는 한국인이 적격이다.
(4) 종교적 조건
태국 전체의 인구의 93%가 불교신자인 불교왕국이라는 점이 선교의 큰 장애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도 1964년에 1만명이상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불교의 뿌리가 깊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1천만 성도와 4만여 교회, 3만명이 넘는 목회자, 서울 인구 중 4사람마다 1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태국선교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5) 대화의 가능성
여기서 대화는 선교를 위한 기독교적 접근방식이지 결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진보적 신학의 입장이 아니다. 다행히도 태국선교사였던 김순일 박사에 의하면 태국 승려들이 선교사를 만나줄 뿐 아니라 대화도 잘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접촉점으로 하여 불교의 허구성을 일깨우고 스스로의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유도해야 한다.
불교는 매력적인 면이 있으나 필연적으로 세속철학인 것이다. 둘째는 불교는 분명하고 참된 하나님의 개념이 없으며, 셋째 불교는 구원과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틀림없이 거짓된 점을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을 열반의 태양 속에 흡수된 개인의 인격성의 소멸로 생각한다.
제 2 항 전망에 따른 선교전략
세계선교는 2,00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오늘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명령을 남기고 간 유언과 직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10억이 넘는 크리스챤들이 오대양 육대주 구석구석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들이 하루아침에 만방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한다면 이 지구는 하루 아침에 복음화 될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일찍이 에큐메니칼 선교학자 호켄다이크가 그의 저서 [흩어지는 교회]에서 교회론 중심의 선교는 바로 교회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그 전통적인 선교관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세상중심의 선교를 제청한 바가 있다. 선교의 목적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이 땅위의 평화(Shalom)의 건설이라고 하여 자유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20세기 선교신학이 이처럼 큰 도전적인 문제점을 안고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인본주의 선교신학의 조수를 막아내는 순수한 초대교회 바울 선교의 복고풍이 한국의 개신교단을 중심으로 그 기치를 높이 들려야 할 때가 왔다. 이교도를 상대로 개종시키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이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제자삼는 세계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일어설 때가 왔다. 우리는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이 둘 중에 하나를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가 왔다. 내가 가지 못하는 고로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다.
(1) 한국교회에 요청되는 태국선교 전략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열정이 뜨겁다. 그러나 아직도 선교 지원체제가 미흡한 설정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선교사 다양한 현지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선교전략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선교의 목적이 단순히 토착교회 설립만을 의미하기에 앞서 현지에 알맞는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 선교대상에 따라 선교전략은 달라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한국교회가 요청되는 선교전략을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특성과 태국 현지의 필요에 따라 다음과 같은 사역이 요청되고 있다고 본다.
① 지역별 전략정책
선교에 기본적인 임무는 전도이다. 태국같은 불교국가에서는 최선의 방법이 개인전도이다. 이미 사역중인 각 선교단체들은 개인전도와 양육을 우선적인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O.M.F(Overseas Missisnary Fellowship)의 전략정책은 다음과 같다.
북부태국지역 : 개인전도/ 성경공부/ 문서전도/ 지도자양육
중부태국지역 : 개인전도/ 교회개척/ 가정성경공부/ 지도자양육
남부태국지역 : 개인전도/ 교회개척/ 성경공부/ 지도자양육
방콕지역 : 방콕성서대학/ 교회개척 및 진흥/ 대학생전도
또한 C.M.A(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의 전략전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선포와 문서를 통한 직접전도/ 수용하는 지역에 대한 집중심방/
예배처 개방과 가정교회 운영/ 개인전도에서 결신한 초신자양육/
그외에도 남침례 선교부(Souther Baptist Mission Convention)에서는 제자화를 통한 전도 방업과 특히 평신도 및 지도자 교육도 중점적으로 전도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개인전도와 양육원리의 방법론이 얼마만큼 태국적이냐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Autrey는 전도인의 동기와 목적을 관련시켜 말하기를 "전도는 복음에 대하여 타오르는 심령으로 증거해야 한다. 또 그것을 듣는 사람을 제자삼겠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고 전도해야 한다"고 했다.
② 태국의 종교별 전해야 할 구원론
태국의 지형적, 종교적 ,인종적 상황은 크게 북부와 중부와 남부로 나뉜다. 북부는 애니미즘에 영향을 받는 러오스족과 소수부족들이 살고있다. 산악지대로써 가난과 질병이 많은 곳이다. 중부는 샴족의 강한 영향으로 소승불교를 정신적 기반으로 하고 정치, 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현재는 산업 개발지역으로 극심한 사회변동을 겪고 있다. 남부는 말레이지아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종교도 말레이지아와 똑같이 모슬렘이다. 인종도 말레이 계통의 인종이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접근과 제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가> 북부지역 : 애니미즘 영향지역
애니미즘에는 교리나 정리된 이론이 없다 다만 산재해 있는 여러 요소들에서 공통된 원형을 찾아내어야 한다. 애니미즘의 신관은 다신론이다. 신의 세계는 계급이 있어서 그 중의 최고의 신이 있지만 치고의 신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신은 가장 능력이 많고 자연 만물의 근원자이다. 애니미즘의 신은 이기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윤리성이 매우 부족하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는 자연 만물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는 정령 숭배와 우상숭배가 동일시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관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간의 삶과 인격에 나타나도록 하는 반면에 애니미즘의 신관은 물질세계에서 확인하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애니미즘의 죄론은 신관에서 영향을 받아서 종교적인 죄는 금기로써 강조되는 반면에 신에 대한 불손과 불신앙을 말한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신의 노여움이다. 신의 노여움은 현세적인 고통이거나 내세의 고통이다. 애니미즘의 구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죽음 이후에 새롭게 얻어지는 풍요한 내세와 오늘의 고통의 삶에서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은 전적으로 신에게 달려있다. 모든 괴로움은 신에게서 온 것이므로 신의 노여움이 풀리므로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의 전적인 은총이란 말은 기독교의 하나님의 은총만으로 구원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움직일 수 없으나, 애니미즘은 신의 노여움은 전적으로 인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니미즘의 구원관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은 구원에 대한 윤리적인 사명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태국 북부에서 애니미즘에 심취되어 있는 사람에게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우리는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가 긍정되고, 현실의 고통이 죄의 결과로써 죄에 대해서는 받드시 심판을 받을 것임, 인간에게는 죽음을 건너 뛸 수 있는 구원이 있음,구원은 신의 용서로 얻어 지는 것임, 이러한 점들이 기독교의 구원론과 공통되는 점들이다. 복음 증거의 접촉점은 공통되는 부분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또한 애니미즘에서는 체험적인 특징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은 최선의 접근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철저한 교육과 훈련으로 시정해야 할 사항을 시정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순수한 복음이 지켜 질 수 있기 때문이다.
①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으로 나의 인격을 만나고 아울러 다른 사람의 인격과도 만난다. 결코 자연만물이나 역사와 같은 비인격적인 요소와는 만나질 수 없다.
② 죄란 불신앙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불신앙은 하나님과 분리되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하는 것으로써 영적이면서 동시에 행위적인 것이다.
③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간의 구원을 원하신다. 인간의 노력없이 은총으로만 구원되어 진다.
④ 구원의 뒤에는 성화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봉사가 따르게 된다.
⑤ 인생의 목표는 세상적 축복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가치관계에서 생겨진다. 특별히 북부 지역은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산지지역으로써 교통 문제와 소수부족의 폐쇄성으로 통일된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역적 특성을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나> 중부지역 : 소승불교의 영향지역
앞서서 언급했듯이 소승불교는 원시불교의 철학적 이론에 충실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실제 태국인들에게는 교리보다는 생활에 깊이 젓어 있으므로 교과서적인 방법 보다 태국인의 불교 의식을 고려하여 복음 전파의 접촉점과 강조하여 개선해야 할 점을 찾고자 한다. 소승불교에서는 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한다.
그들은 "불교에는 인격적인 신이 없고 오직 불타와 자연에 대한 지식뿐이며, 불교도들은 고타마를 그들의 신으로 예배하지 않는다" . 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거의 모든 태국인이 불상 앞에서 절을하며 의식을 갖는다. 그들은 만물 조성의 기원이라는 아비야(Avijja)를 거의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아바야는 결코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비야는 비인격적이며 무형적인 존재로써 모든 업을 만들어 내는 법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인간을 유츌시킨 악한 규칙과 같은 것이다. 태국인은 종종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을 아비야와 혼돈하고 있다. 그들의 개념 속에는 사랑의 인격을 갖으시고 능동적으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승불교의 구원관은 고통의 구덩이인 윤회에서 벗어나서 해탈하는 것이다. 윤회의 고통은 자신의 죄(Tucharit)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의 댓가를 지불해야 죄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우기 구원의 힘을 타인에게 빌려 줄 수 없으며, 책임을 전가 시킬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기독교의 절대 은총론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 된 것이다. 태국 사람들은 불교의 구원의 도리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 구원을 얻기 위해 수행에 들어가는 신자는 극히 드물다. 그들도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죄의 결과를 사망으로 본다. 그러나 불교는 죄의 결과는 죄에 따른 고통으로 간주하고 만다. 기독교가 죄를 철저하게 해결 하려는데 비해 불교의 해결의지는 약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내세관은 기독교가 종말론적으로 분명한데 비하여 불교는 희미하기만 하다. 불교에서 내세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열반(Nirebbana-니르바나)이다. 생, 노, 병, 사의 고통이 사라지고 다시는 윤회의 과정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이외에도 축생, 수라 등과 같이 징계에 대한 내세가 있으나 애니미즘과 혼합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기독교의 천국이 인간의 분명한 낙원임을 말해 주는데 비교하면 불교의 내세인 열반은 이 세상의 고통을 떠났다는 의미만으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열반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상태는 완전한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이므로 기독교의 사랑의 마음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불교권 문화에서의 접촉점은, 태국인이 아비야를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적극적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을 내세울 수 있다. 그 외에도 죄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 구원에 대한 열망, 새로운 구원의 길 - 은총으로 인한 구원 - 등이다. 복음의 내용이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을 하나님의 인격성,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 죄에 대한 분명한 심판, 인간의 고뇌의 원인- 죄에 대한 용서, 은총으로 인한 구원 종말적인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소망,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사랑의 정신, 등이다. 불교의 생활 윤리는 보시의 윤리로써 기독교의 윤리와 비슷하다. 생활의 지혜를 깨우치는 것보다는 교리의 설득과 살아있는 간증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시켜야 할 것이다. 태국의 산업화는 도시지역에서 불교의 쇠퇴는 지나치게 현실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삶의 종교를 선택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다> 남부지역 : 회교의 문화 영향
남부는 말레이인들의 영향으로 회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 회교는 기독교에 대하여 대단히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기독교에 대한 회교의 비판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부정하며 사도 중의 하나로 봄으로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 하나님의 신성이 무시 당하는 듯한 모욕감을 갖기 때문이다. 회교도는 유일신을 믿는다. 전도의 접촉점으로 하나님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좋다. 회교도는 죄를 무섭게 질책을 한다. 그러나 죄에 대한 용서는 없다. 따라서 저들은 죄책감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회교에서 공덕을 쌓으므로 일부 용서받을 것을 말하나, 이것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알려 주므로 선교의 접촉점을 가질 수 있다. 회교의 최고 강점이면서도 단점이 되는 것은 신에 대한 절대 복종과 신의 섭리를 거스리지 말라는 계율이다. 이들은 교리로 강한 종교심을 갖게 되지만 운명론에 빠져 그들의 삶을 낙후한 생활로 보내기도 한다. 기독교의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성화의 비결은 회교도들에게 새로운 소식이 될 것이다.
제 3 항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사의 준비사항
1 > 복음전도에 고려해야 할 태국의 민족성
가장 효율적인 전도 방법은 성령님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령께 쉽게 복종할 마음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의 성품과 문화적 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태국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의 국민성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요약을 해 보면 다음과 같다.
ㄱ) 국민적 통일을 요구하는 국민성과 결속된 사회- 태국인은 언어, 인종, 자연환경 등 민족적 구성이 다양하나 중부 태국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단단한 결속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개선을 위한 분쟁보다, 발전하지 않는 평온을 요구하는 경향을 소유하고 있다.
ㄴ) 낙천성- 태국 민족성의 '3S'라고 일컬어지는 싸바이(괜찮다), 싸눅(재미), 싸이엔(평온)은 태국민의 낙천성을 잘 말해주는 말이다. 이들은 열대성 기후의 특성대로 낙천적인 태만 생활 속에 나타내고 있다.
ㄷ) 소극적인 사고와 운명론적 인생관(세계관)- 힌두교와 에니미즘과 불교의 혼합이 태국인의 종교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관은 태국인의 사고와 세계관을 소극적이며 운명론적으로 형성케 하였다. 더우기 종교의 저변에는 에니미즘이 깊게 자리잡고 있으므로 현세주의적이면서도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배격되고 영의 세계에 의지하는 인생관이 만연되고 있다.
ㄹ) 근대화와 사회변동- 1960년부터 진행된 경제개발과 근대화를 위한 산업화는 1987년부터 급속한 성장을 보이며 사회구조와 도시생활 형태는 물론이며 의식주조에도 갈등 내지는 변화를 구조와 도시생활 형태는 물론이며 의식구조에도 갈등 내지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태국민의 특성은 복음전도전략과 실천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2 > 복음 제시
선교의 기본적인 임무로 선교사가 할 일은 전도하는 일이다. 개인전도는 태국과 같은 불교국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불교인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전도하느냐가 중요하다. Autrey는 복음전도와 전도인의 동기를 관련시켜 말하기를 "전도는 복음에 대해 타오르는 심령으로 증거해야 한다. 또 그것을 듣는 사람을 제자로 삼겠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고 전도해야 한다"고 했다. 복음은 한 사람을 중생시키기 위해 알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에 관한 말씀을 뜻한다. 전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악된 상태를 깨닫게 하는 작업이다. 불교인에게 전도할 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이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를 떠나있는 모든 사람은 버려진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평화를 주시고 구원을 허락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심을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당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불교의 약점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이해하면서 구원의 메세지를 들려 주어야 한다. 불교는 본래의 무신론이었고, 근본적으로 비인격주의와, 사람의 생명과 신체, 여자와 가정의 저열한 평가와, 환경세계의 저열한 평가, 사회적 책임을 거절, 소극적 구원방법, 복된 열반의 공상, 염세주의 등, 신이 없었다면 법천과 마왕을 운운하는 모순 등을 이해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영생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가능함을 전한다.(요한 3:16)
개인전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나는 누구인가 ? 죄인이다(롬 3:23)
② 죄를 범한 인간의 운명은 ? 죽게 되었다(롬 6:23)
③ 죽게 된 운명에서 구원 얻는 비결은 ?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전 2:24)
④ 죄가 무엇인가 ?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이다(요 16:9)
⑤ 믿음이란 무엇인가 ?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다(롬 10:9~10)
⑥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성부,성자,성령) (요 14:1)
⑦ 믿는 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
천국에서 영생한다(요 20:31)
이런 구원의 교리를 대화 속에서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인 전도의 큰 효과를 거둔 것은 바로 4 영리 소책자를 통한 전도방법이었다고 한다.
3 > 개인전도와 양육을 위한 대안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방문전도이다. 이를 위해서는 방문전도 계획이 선교사의 교육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역사를 통해서 볼때 하나님은 개개인을 찾아 오셨다. 하나님은 그들과 말씀하셨고, 격려하셨고, 자기의 뜻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방문은 개인적이었다. 방문전도는 사도들의 사역에도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리김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행 20:20)라고 하였다. 우리는 역사가인 누가에게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듣는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이러한 신약성경의 방문에 관한 기록은 사도들이 복음을 가지고 여러 가정을 방문하여 예루살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방문 전도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방송전도 방법도 불교국가 지역에 대한 전도활동으로 그 중요성이 크다. 아직도 숨겨져 있는 종족들을 향한 집단 전도도 중요하다고 본다. 매스컴선교와 문서선교를 입체적으로 동원되어야 할 부분이다. 불교의 업사상에 근거한 강력한 계층의식구조는 개인전도와 양육을 통하여 잘못된 의식을 개혁시킬 것이며, 또한 오히려 계층의식을 역이용하여 전도의 통로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계층의식과 사회결속의 장벽을 뚫는 문제를 다음과 같은 개인전도와 양육원리를 대안으로 제시해 본다.
① 사귐전도
태국문화는 불교 토양위에 철저하게 관계성으로 성립된 NS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람과 사람, 인종과 인종 등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태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구를 아는가?"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때문에 태국선교는 먼저 이 삶의 사역부터 시작해야 한다.
② 종속전략
이 전략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일단 작업적 내지는 기능적으로 타인인 중에 나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를 선택하여 스승의 입장에 전도자가 놓이게 하는 것이다. 태국 사회에 있어서 스스의 위치는 부타와의 중재적 위치로 생각할 정도로 그 권위를 격승시키고 있기 때문에 우선 이런 관계를 갖게되면 복음에 대해서도 수용적 자세가 되기 때문이다.
③ 동질전략
태국사회는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 주민들도 삶속에서 "이웃"관계를 핵으로 하여 살고 있다. 즉, 소단위 동질 그룹들이 긴밀한 이웃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갖고 개인 접촉을 시도한다 해도 주위 인물에 대한 의식과 관심을 소흘히 한다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한 개인을 대상으로 선택했다면 그가 속한 동질 그룹의 속성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④ 인정전략
이것은 "사귐전략"과는 다르다. 태국 불교사상의 중심은 철저한 개인주이이다. 구원관 역시 자신의 수련과 공덕으로 성취된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자력구원사상에 젓어 있다. 그러므로 실패를 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으며 쉽게 체념해 버린다. 이러한 태국인에게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하나님의 사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교리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인정전략은 필요하다 하겠다.
단순히 접근하여 사회적으로 혹은 사무적인 관계를 맺고 복음을 소개하는 것을 지나서 인간대 인간의 관계에서 나눔과 돌봄과 사랑의 희생을 피부로 느끼도록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말한다. 상당한 이점이 있는 전략이다.
* 기독교 공동체 안에 함께 생활함으로 느끼고 깨닫게 한다.
* 물질지원, 인적지원, 특별기구없이 감정을 통해 자각토록 한다.
* 인위적 상황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 이런 사역을 통해서 특별한 은사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 이 사역은 영적인 필요성을 자극시켜 주는 기회로 선용된다.
⑤ 예비전략
이와같이 예비전략의 단계를 거쳐야만 철저하게 계층의식으로 결속되어 태국인의 개인전도는 성공과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더 구체적인 방법들은 지역과 인종과 기타 대상의 상황에 따라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직접전도가 태국사회에 크게 적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계층의식이 빚어낸 결과이다. 효과적인 방안으로 상류층 전도인데 상류층일수록 철저하게 전통불교를 신용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에서 태국 공익사업에 유익을 줄 수 있는 매개체를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35년 개신교 초기 선교시대에 Bradley 선교사는 서양의 의술과 인쇄술을 보급함으로써 황실의 인허를 얻어 자유롭게 선교할 수 있었다. 또한 몽꿋(King Mongkut)은 서양의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선교사들의 황실 출입과 선교지역의 자유를 허락하고 적극 지원한 바가 있다. 사회 결속전략으로는 이민족 우선 전도와 가족과 씨족 중심한 전도와 이웃을 통한 제자화 전도방법이 있다. 사회결속 분위기는 비교적 순수 타이혈족들이 거주하는 중북부와 중부지역이 제일 강하며 반면에 이민족과 부족들이 거주하는 북부지역에는 대체로 약하다. 북부지역이 기독교 개종자의 수가 많음을 볼 때 순수 태국인에 비해 이민족들이 확실히 복음에 대해 수용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민족들에게 가장 많은 인종은 화교이다 약 400만명이 거의 방콕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집중전도가 시급하다. 사도들 역시 가족 단위로 세례를 베푼 것을 알고 있다. 이웃을 통한 제자화 전도방법은 도시 중심의 전도 전략으로 효과적이며, 현재 방콕 지역에서 각 선교단체들의 선교사들이 이 방법을 적용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제 4 절 교회 개척및 육성과 미자립교회 지원
연약한 태국교회에 한국적인 강력한 개척교회는 어려움이 많으나 태국교회에 크게 기대할만한 사업인바 이는 목회 경험이 있는(특히 시골교회) 선교사가 현지 목회자와 함께 교회를 개척하고 육성하는 일인 바 한국교회에서 보통하고 있는 방법과 경비는 가능한데 대략 교역자 생활비, 예배처소, 전도비 등을 지원해주면 교회가 개척되고 계속 육성하게 된다. 이에 따른 경비는 약 2백 20불 ~ 4백 40불 정도로 농촌과 도시간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후에 교회당을 마련해 주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준다면 그 교회는 쉽게 부흥될 것이며, 그 기간은 약 5년으로 잡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난민촌, 빈민촌이 있게 마련이다. 태국은 특히 나환자촌의 크기는 대형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마음 문을 쉽게 열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교회개척 역시 이들을 향한 것이라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재정적 지원과 협력선교가 바람직하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신약교회의 선교사들 역시 팀 선교사로서 사역을 감당했다.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누가, 바나바와 누가, 바나바와 마가 둘씩 둘씩 작을 지어 70인 파송의 예를 보아도 정확한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며, 선교사는 하나님의 일군이며, 선교비 역시 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교회개척을 위해서는 단독선교보다 협력선교가 더 알찬 것을 이미 잘 알고있는 실정이다. 협력선교는 한두 교회의 정책이 바뀌어 계속적인 지원을 하지 못해도 큰 타격없이 사역은 계속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에는 몇 가지 연구와 단계를 가져야 한다.
첫째는 교회 개척과 지도력(리더쉽)/ 둘째는 팀 사역의 준비/ 셋째는 지역 선정의 순서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력은 선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지적 영적 모든 사항을 포함하기에 본장에서 생략한다.
1 > 교회개척 목표에 따른 개척팀 훈련전략
이제 실제적인 교회개척 전략을 살피고자 한다. 재생산하는 교회개척 전략을 다루기 전에 먼저 최소한의 몇가지 원리가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21세기 선교전략으로서의 교회개척 전략에서 본인이 정리한 것이다.
① 교회개척은 목표가 있어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② 교회개척은 성경적 복음적이어야 한다.
③ 교회개척의 대상은 일정할 수 있으나 폐쇠적이지 않아야 한다.
④ 교회개척의 내용(훈련과정)이 확립, 보장되어야 한다.
⑤ 개척교회는 현지인 중심의 교회로 정착되어야 한다.
⑥ 교회개척은 팀사역 중심이어야 한다.
⑦ 교회개척이 목적은 자립, 자영, 자전, 토착화이며 교회성장의 목적 이전에 교회의 재생산에 두어야 한다.
팀사역을 위해서는 팀 구성원은 바울을 관찰하고 다른 이들이 바울의 삶과 사역을 닮아갔다. 예수의 교육은 보여주는 교육이였다. 훈련팀은 훈련을 받음과 동시에 신설교회에 부분적으로 관여하면서 새로운 피훈련을 교육한다. 피훈련팀은 목표지역 안에서 전도와 제자훈련을 실시하고, 특별사역(가정,치유은사,기도등)을 위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함으로 다양한 훈련을 참여할 수 있다. 사와스키의 훈련주기는 5년으로 이 기간은 피훈련팀의 훈련기간일 뿐 아니라 이들이 개척한 새로운 교회가 모교회가 되어 지교회를 설림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한다. 이 훈련주기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단계 : 팀구성과 모집단계(6개월).
2단계 : 훈련의 계속과 새로운 교회개척(2년 6개월)
3단계 : 훈련의 계속적인 실시와 교회의 조직(4년차)
4단계 : 훈련의 종료와 신설교회설립(5년차).
1. 팀사역과 모집의 단계 / 1단계 : 팀구성과 모집단계(6개월)
사와스키는 교회 개척의 1단계로서 팀구성을 언급한다 여기에는 세 개의 팀이 있다. 모교회(the parent church) + 훈련팀(the church planting team trainers) - 피훈련팀(the church planting team trainees)이 그것이다.
가> 모교회(the parent church)
다양한 수준의 사람, 남녀, 독신자와 기혼자를 평판을 기초로 교회에서 선택하여 공예배시에 임명한다. 모교회는 이외에도 기도, 재정지원, 선교지역 결정에 참여(기존교회의 존재여부, 위치의 적합성, 인구의 적합성, 인구의 수준, 잠재성장 가능) 이 교회 개척팀은 기존교회나 이미 개척된 교회에서 보내어지며 개척팀은 파송교회의 대표자요, 그리스도의 대사적인 책임을 지니고, 파송교회는 파송교회로서의 영적 재정적, 지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개척을 시작하면서부터 모교회와 개척팀과 개척교회의 관계로 발잔하게 된다.
나> 훈련팀(the church planting team trainers)
구성원으로서는 선교사외로 가능하면 빨리 현지인이 참여하는 것이 좋고 5년 코스 이수자로 참여할 수 있다. 1단계에서의 사역은 전도와 목회이며, 이후 현지에 맞게 수정된 전도 폭팔(훈련회심자를 얻기 위해)과 네베게이토 2:7 프로그램(회심자에 대한 추가 훈련 및 제자훈련을 위해)을 사용한다. 훈련팀의 기능은 교사, 강화무장훈련, 조언자, 충원자, 모교회와 훈련팀간의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훈련팀의 기능은 지역교회를 심고 물 줄수 있는 현지 기독교인들을 무장시키고, 동기부여하는 것이다. 훈련팀은 교회개척팀이 아니다. 훈련팀은 교회개척의 여러 사역에 참여하나 교회개척의 이부이지 개척팀은 아니다.
효과적인 훈련팀은 다음의 역동성을 이끌게 된다.
① 동일한 비젼과 목적 전략을 공유한다.
② 상호이해, 신뢰, 존경을 가능하게 한다.
③ 솔직한 대화가 가능하다.
④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불일치도 나눌 수 있다.
⑤ 완전 합의에 의한 의사 결정함.
⑥ 팀 구성원이 상호지지, 성장을 하게 한다.
⑦ 개인, 공동전략에 대한 자유로운 평가활동 등을 통한 공동체가 된다.
다> 피훈련자팀(the church planting team trainees)
피훈련자 팀 구성: 규모는 8명이 적합하고 한 교회, 혹은 여러 교회에서 선발하거나 신학교 졸업생들도 참여할 수 있고 선발기준은 현재의 성과보다는 잠재력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자신의 역할과 사명, 훈련 목적을 인식, 십일조(훈련팀과 피훈련팀의 십일조는 6개월간의 경비로 사용)하게 함. 1단계시에는 주별모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기본 과목 이수뿐만 아니라 성경공부, 합심기도, 나눔, 공동기획, 공동예배를 통한 일체감을 키운다. 이 기간동안에 새로운 개척교회의 기초가 형성된다.
라> 훈련. 교육과정
* 전도코스-잃은 양에 대한 사랑
* 귀납적 성경공부-개인성경 공부방법과 연구를 통한 통찰력의 나눔
* 세계선교 코스- 세계적인 안목과 사랑을 지닌 세계적인 그리스도인 양성. 훈련팀은 이 과정을 통해 은사를 발견한다. 또한 이과정을 이 통해 훈련팀은 예배인도, 설교, 심방, 교회성장에 대해 정예부대가 되고 현지 개척팀의 모범이 된다.
2. 확립의 단계/ 2단계: 훈련의 계속과 새로운 교회개척(2년 6개월)
이것은 사와스키의 2단계를 말한다. 2년 6개월의 훈련과정 속에서 훈련팀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시기이다. 6개월이 경과하면 피훈련자 모두 부분적 경험이 형성되며 이때가 OTJ(on-the-job: 근무중). 그러나 모교회와 신설교회는 특별행사, 세례, 기념식, 캠페인 등을 연합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집회를 하지 않도록 한다. 한편으로 대규모의 불성실한 관리보다 소규모의 알찬 관리가 효과적이기 때문에 대규모 전도집회보다 소규모의 전도집회가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3. 무장의 단계/ 3단계: 훈련의 계속적인 실시와 교회의 조직(4년차)
4년차의 신설교회는 교회 헌법, 지도자, 장로, 남녀집사를 피택하여 교회를 조직한다. 이 단계에서 모교회는 신설교회의 자율권을 인정한다. 단 상호협력은 계속한다. 이렇게 4년까지 기다린 이유는 바울이 1차 방문때에 교회를 조직하지 않고 2차 방문시에 조직하여 지도자들이 교만하지 않도록 하고, 누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지 평판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음을 감안 한 것이다. 지도자 임명은 토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을 하면서 딤전 3장, 딛 1장에 의거 선발한다. 중요한 것은 선발된 지도자들을 신설교회 회중이 승인할 수 있어야 한다.
4. 재생산(파송)의 단계/ 4단계: 훈련 종료와 신설교회 설립(5년차)
신실교회는 도시 속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에 대한 사역을 해야 한다. 영적 물적 사회적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체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총체적인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주 공략 대상은 중산층이다. 재정 지원과 하위계층으로 확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도표는 개척 단계의 설정을 다섯가지 목표(자립, 자영, 자전, 토착화, 재생산)에 따른 단계별 전략의 성취를 도표화 해 보았다. 자영, 자립, 자전은 2년차까지, 토착화의 목표는 3년차부터, 그리고 재생산의 목표는 4년차부터 그 성취가 기대된다.
* 교회 개척을 위한 방업 요약
1 단계 : 개척팀의 구성및 전도 단계(12개월 /1년차)
선정된 지역에서 전장에서 언급한대로 사귐전도법을 활용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주민들에게 호감과 인정을 받는다. 이것이 전략적이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개척팀은 먼저 기도와 경건으로 팀웍을 맟추어야 한다. 이들은 자연적으로 전도그룹이 되는 것이다. 이 때 만들어진 소그룹은 홈처치(Home Church)의 성격을 띠고 몇개의 그룹으로 확장된다 그룹과 예배, 교육을 실시하면서 교회가 설립된다.
2 단계: 확립의 단계(24개월/ 2,3년차)
그룹별로 동질집단을 향한 비젼을 가지고 개척을 시도한다. 예를 들면 농어촌에서는 새로운 농사법을 가르치면서 하는 것이 타당하다. 도시빈민층을 향한 것으로는 청소년의 방황이나 상담과 교육 등에 역점을 둔다. 도시지역에서는 부녀자와 그 자녀를 위한 건전문화 시청각을 활용하고, 노인과 병약자를 위해서는 의료 사업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토착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사회 공동체 개발과 구제와 봉사의 방편을 찾고 이를 위해 그룹이 참여하게 한다
3 단계: 무장의 단계(12개월/ 4년차)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교육과 헌신 과 투자가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사랑에 근거한 것임을 항상 전달한다. 비록 작은 공간일지라도 사랑과 기쁨이 있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도록 기도하여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한다. 교회의 조직을 보강하고 가능한한 교회개척킴이나 훈련팀 중에서 직분자를 세운다. 어느정도 자립의 단계에 들어서면 현지인들에게 모든 자율권을 부여한다. 교회는 직접 지역사회에 대해 참여하기 위해 지역정서에 맞는 합당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필요하다면 상설기관을 설립한다.
4 단계: 파송(재생산)의 단계(12개월 5년차)
개척그룹은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현지 지도자를 세우고, 주도권을 완전히 이양한다. 주도권의 중심이 옮겨져야 함은 선교사들의 실수를 언급하지 않아도 될 분명한 실천의 내용이다. 개척그룹은 재생산을 위해 새로운 개척 지역을 선정하고, 떠날 준비를 하며 피훈련팀으로도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현짇=교회는 자발적인 재생산의 교회로서 교회 목적을 설정하고, 모든 영적, 재정적, 파송교회가 되며, 피훈련팀으로 개척자역을 향해 그룹이 떠나도록 한다.
제 5 장 결 론
태국은 전통적인 소승불교 국가로써 160년의 선교역사를 갖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선교가 부진하였던 이유는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보다 정확한 태국문화의 분석이 고려되지도 못했으며 그들의 종교적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체 혼합주의에 휘말려 교회의 본질까지 상실한 허약한 교회만 보여왔다. 태국의 선교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선교의 이론은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학'이다. 교회 성장학은 복음주의적 개념을 지켜가며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위하여 인류학, 사회학, 통계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도입하여 선교지에 맞는 선교전략을 과학적으로 수립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의 전통적인 종교는 혼합주의적으로 입혀진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태국은 근대화의 영향으로 산업사회로 급격히 변화되고 있으며 이 변화는 불교의 쇠퇴와 의식구조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어서 기독교 선교의 기회가 되고 있다. 태국 선교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선교의 저조함은 복음주의 선교개념을 떠난 선교개념이였다. 교회는 그 자신이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교의 기구로 하나님과 사람과 세계를 위해 역사할 때 참된 자기 본분을 다하게 된다.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선교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타문화권에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야 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변혁을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교에는 만병통치약 같은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나 선교하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대가를 지불케 되는데 목숨과 재산과 시간과 기도 등 여러 가지의 대가가 포함된다. 태국인들의 심성과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태국 전통종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교현장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복음의 순수성을 고수하면서 태국실정에 적절히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의 연구와 실행이 필요한 것이다. 바울도 복음자체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없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이 선교 방법은 상당히 적응력을 보여 주었다.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하였었다. 그러나 태국 선교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선교전략 측면에서 미흡하게 되자 교회의 성장이 멈추게 되었고 신앙지도가 결핍, 교회 지도자 육성 부진 등 결과적으로 선교 실패였던 것이 태국의 선교 약사에서 이미 보았다. 따라서 앞으로 선교전략은 적극적인 직접 선교를 주축으로하여 세워야 할 것이다. 복음전도와 교회개척, 교회성장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교회개척은 농어촌과 대도시, 신흥도시를 막론하고 집중하여 개척하며 이를 위하여 현지사역자 양성에 힘써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불교국가로써의 접근방식이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태국인의 93%가 소승불교도라는 것을 감안하여 불교를 이해해야 한다. 아울러 태국인들은 농업을 중심한 제1차 산업에의 의존도가 높으므로 경제적 빈곤의 문제를 감안해야 한다. 취업인구의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농업에 관한 기술을 선교사로써 습득하는 것이 좋다. 그들의 낙천성으로 교육열이 낮은 편이다. 충분한 교육시설의 확충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태국의 국가가 불교라는 사실은 교회의 운영과 유지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한 두 가지의 묘방으로 단시일내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태국의 문화를 깊이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인들에 대한 지도자 양성을 병행되어야 한다. 교회가 아무리 선교의 책임이 느낀다해도 구체적으로 선교의 일군을 양성하지 않으면 선교는 활기를 띠지 못할 것이다. 마가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했던 120명의 일꾼들 없이 사도행전의 교회가 부흥되고 사방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태국교회 성도들에 대한 제자양육의 프로그램이 또한 절실히 요청된다. 대개의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불교문화에 깊이 젓은 탓으로 미신적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장례식을 오전에는 기독교식으로 하고, 오후에는 다시 승려들을 통해 다시 장례식을 행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들이 기독교에 대한 무지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전통종교인 불교와 기독교를 섞어 놓은 혼합주의가 토착인 신자들에게 깊이 뿌리 박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처하도록 제자양육을 통한 신앙무장을 시켜야 한다. 10대 청소년과 도시유입의 인구와 신흥도시 중산층에 대한 전도가 실시되어야 한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기업 진출이 예상되므로 기업인과 기술자를 비롯한 평신도 선교사들의 활약을 기대 할 수 있다. 교회 성장은 너무 오래지 않도록 선교부와 현지를 연결이 끊기지 않도록하며 '5년 이내'의 성장을 목표로 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태국 문화와 정서에 맞는 예배의식이 제시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교회가 갖추어야 할 조건도 있다. 첫째는 영적 부흥이 전 교회를 휩쓸고 있어야 하며, 둘째는 강력한 교회 성장이 계속되고 있어야 한다. 셋째 선교사를 파송할 만큼 교육수준이 높아야 한다. 넷째 선교사가 되려는 젊은 후보생이들이 많아야 한다. 다섯째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지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성장과 헌신적인 모교회 등을 고려해볼 때 아시아에서 이런 여건을 갖춘 교회는 한국교회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근원적이고 최종적인 원동력은 성령이시다. 최종적 투쟁과 싸움도 영적인 것이다. 복음 선교를 위한 최선의 전략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민감한 응답을 할 때 최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최고 선교전략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길이 최선의 전략이다. 태국이라는 선교지에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논문을 다루게 되어는데 선교의 의미를 살핌에 있어서는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 순서로 살폈고, 현대선교 역사를 살핌에 있어서는 선교역사를 역추적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개척지에서의 복음 전도와 많은 문화적 갈등들은 문화이해와 인간이해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포용하는 넓은 의미의 그리스도의 나라와 사랑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교회 개척분야에 들어가서 전략으로 팀 사역을 구성하여 교회 수립을 꾀하여 본다. 그리고 현지 선교사들의 실제 개척 이론을 제시하였다. 본 논문의 기초석을 마련하기 위해서 많은 서적을 읽기도 했지만 선교 대학원에서의 강의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선교의 당위성과 선교에 대한 기초지식은 선교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세계선교]지가 도움을 주었다. 문화이해 부분에서는 강승삼 교수님의 [타문화이해]에 대한 강의가 도움이 되었고, 서적으로는 폴 히버트 저서 채은수 교수 번역으로 나온 [문화 속의 선교], 교회 개척에 들어가서는 정병관 교수님의 강의 중에서 [도시선교]와 [교회 개척]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고, 개척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윤형복의 [새신자 훈련교재]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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