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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열. 2009.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헌법적 고찰. 「한국자치행정학보」, 23(2).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한 분란이 빈발하고 있다. 정부 측에서는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서 오로지 통제수단으로 억압하려고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분쟁의 원인 가운데에는 다소의 구조적인 문제도 놓여있다고 본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직업공무원제도에 관해서 검토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의 상호관계를 분석하여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고찰하며, 아울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 위반여부를 판단하는 판단주체 또는 결정주체로서의 국가의 중립성 문제를 다루었다.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용인하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제한을 하는 관용의 원리로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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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규정은 헌법 제7조 제2항을 비롯하여 국가공무원법 제65조와 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이하 ‘공무원노조법’이라 칭함) 제42조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 기존 법률에 규정된 공무원의 중립성의 범위와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며 이를 좀 더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종래 다수의 견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공무원이 당파의 이익에 편중하거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함이 없이 중립적 입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인사관리에 대한 정치적 간섭도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정의해왔다(권영성, 2009: 229-230 ; 정일섭, 1998: 138). 이와 같이 공무원에 대하여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이유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중립적 지위에서 공익을 추구해야 하고, 행정에 대한 정치의 개입을 방지함으로써 행정의 전문성과 민주성을 제고해야 하며, 정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엽관제의 폐해를 예방해야 하며, 사회․경제적 대립의 중재자 내지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헌재 2004. 12. 16. 91헌마67 결정).
그런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다 보면 공무원이 공무원이기 이전에 국민의 지위에서 갖는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받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늘날 발생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으로 규정되는 사안들도 결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권 행사 사이의 임계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관련구조
정치적 중립성은 ‘신분보장’, ‘성적주의’와 함께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으로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
1. 직업공무원제도의 의의 및 기능
1) 직업공무원제도의 의의
직업공무원제도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법상의 근무관계를 맺고 있는 직업적 공무원들이 공직을 집권세력의 논공행상의 제물로 삼는 엽관제도에 의해서 희생되지 않도록 하고, 정권교체에 따르는 국정운용의 중단과 혼란을 예방하며, 일관성있는 공무수행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안정적이고 능률적인 정책집행을 보장하려는 민주적이고 법치국가적인 공직구조제도를 말한다(권영성, 2009: 228).
직업공무원제도는 국가의 정책집행을 원칙적으로 공무원에게 맡김으로써 사인이나 공무수탁사인 또는 근무계약에 의한 공직자들에 의해서 정책집행기능이 행사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미도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직업공무원제도 아래에서는 국가의 정책집행기능이 공무원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맡겨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 헌법은 공무원제도에 관하여 지나치게 간결한 규정을 하고 있어서, 관련법률의 해석기준으로서 규범적 접근이 어렵고 해석의 여지도 다양하기 때문에, 헌법 제7조의 적용·해석과 관련해서는 학설과 판례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2) 직업공무원제도의 기능
(1) 민주주의·법치주의 실현기능
(2) 권력분립적 기능
(3) 통치권행사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기능
(4) 국민의 균등한 공직취임기회 보장기능
2. 직업공무원제도의 법적 성격
1) 제도적 보장으로서의 직업공무원제도
2) 제도적 보장론에 대한 새로운 논의
3.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으로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1)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의
직업공무원제도 또한 입법자의 폭넓은 입법형성권에 의해서 그 내용상의 형성이 가능하지만, 그 본질적 내용은 침해될 수 없다는 데에 제도적 보장의 헌법적 의의가 있다.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에 관해서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중립성과 더불어 공무원의 신분보장, 성적주의원칙을 거론하고 있는 바, 대부분의 학설 또한 정치적 중립성이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2)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내용
중립성의 방향성에 있어서 소극적 의미의 중립성과 적극적 의미의 중립성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소극적 의미의 중립이란 불간섭, 불가담의 중립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적극적 의미의 중립이란 공무원이 어떠한 사항에 대하여 그것을 결정함에 있어 사실에 적합한 조치, 즉 합목적성에 따르는 조치와 같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는 이익의 대립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정당하게 인정하여 적극적·중립적으로 조정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 헌법상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규정을 공무원의 정치적 침묵이나 정치적 무위를 강제하는 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칫하면 중립성의 의미를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정치적 중립의 해석은 특히 기본권과의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헌법학계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집권당의 영향으로부터의 독립과 정당에 대한 불간섭·불가담을 의미하는 소극적 중립”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권영성, 2009: 229; 성락인, 2008: 1001; 홍성방, 2007: 708 등).
그러나 중립성원리란 관용의 원리를 의미하고, 또한 국가의 중립성 원리는 다원주의적 가치를 거부하는 ‘실체적·윤리적’ 국가관, 사상의 자유시장을 거부하는 ‘후견적 국가관’에 대한 방어원리인 것이지 소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중립성이란 타자규정성의 해방된 구체적 이익들이 공적인 의사형성과정에서 토론되고 그 결과들이 표결에 붙여질 때 담보되는 것이다(이계수, 2005: 317). 마찬가지로 공무원의 중립적 태도라는 것도 일방적으로 강요된 국가방침에의 복종을 통해서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공민이기도 한 공무원이 관용과 토론의 자세를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스스로 탐지할 수 있을 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정작 공무원 스스로는 정치적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대해 경험․실천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민주공화국의 공무원으로 일하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이계수, 2005: 317-318).
4.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보장 및 성적주의와의 관계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으로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보장 및 성적주의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직업공무원인 경력직 공무원이 공무에 전념하고 능률적으로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력담당자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는 강력한 신분보장이 필수적이다. 우리 공무원법제도 이러한 신분보장을 구체화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성적주의란 공무원을 임용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중립에 위반되지 않도록 당파나 정실을 배제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행하는 인사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능력주의가 원칙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곳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은 응당 자기제한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공무원의 일반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은 기본권보장정신에 비추어서 이는 충분히 감내할 수준의 문제로서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오히려 정당들의 자기절제 및 민주적인 의지와 국민들의 민주적 통제로써 효과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이종수, 2002b: 78-79).
Ⅲ.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이 의무의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독일에서는 이 문제가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다. 즉 공무원의 정치활동이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갖는 의무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그 한계의 문제로 설명되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과 관련하여 거론되는 대표적인 기본권은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결사의 자유 등 소위 정치적 자유권이다.
공무원의 절제의무(절제란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이 국민들이 보기에 절제된 형식, 외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에 대한 요청은 전체 국민에 대한 공무원의 지위로부터 나오는데, 국민 전체에 대한 공무원의 지위는 어디까지나 공무라고 하는 한정된 활동영역과 관련해서만 논의되는 것이라는 사실이고, 공무원도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범위 내에서는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기본권의 주체로서 인정받는다.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에도 끝까지 엄격하게 고수되지는 못했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권,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실무상 정치적, 법률적 논쟁 끝에 역할분리가 관철되었다고 한다. 즉 직무영역에서 공무원은 법률적으로 그리고 헌법적으로 중립성 및 비당파성 원칙에 엄격히 구속되지만, 직무 외의 영역에서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활동 및 의견표명의 자유가 보장되었다(Karl-Jürgen Bieback, Martin Kutscha, 1984: 32 ; 이계수, 2005: 324에서 재인용).
따라서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성적주의가 원칙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곳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은 응당 자기제한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고, 설사 공무원에게 정당가입 등의 정치적 활동이 허용되어서 이른바 정당에 의한 파당적 정실인사(Ämterbzw. Parteipatronage)현상이 빚어질 위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의 일반시민으로서의 자유보장이라는 기본권보장정신에 비추어서 이는 충분히 감내할 수준의 문제로서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오히려 정당들의 자기절제 및 민주적인 의지와 국민들의 민주적 통제로써 효과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이종수, 2005b: 78-79).
여하튼 민주적 헌법국가에서 공직자가 공무원이면서 또한 민주시민이라는 공무원의 ‘이중적 지위’를 철저히 긍정함으로써, 공무원에게서 그의 자율성과 책임의식에 기초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정신에 충실한 바람직한 공직제도의 운용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스스로가 민주적 시민인 공무원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보장자이자, 국가권력에 가장 밀접하게 위치해 있는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와 사회는 무비판적인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BVerfGE 39, 334(348)).
Ⅳ.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
1. 전제조건으로서의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
1)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
실제로 ‘국가의 중립성’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장되는 바, 그들은 국가가 중립적일 때만이 국민들 각자의 자율성이 존중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그들에 의하면 국가의 중립성(neutralité)이란 특히 오늘날과 같은 소위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신념체계를 지니고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어떤 특정한 가치관을 편파적으로 지원·장려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 자유주의논리 가운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적 자유주의’이다.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란 정치적 영역에 한정하여 자유주의적 원리를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인데, 근원적으로 다른 신념체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이 갈등을 해결하여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적어도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적 영역에서는 자유주의적 원리를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2) 국가의 중립성의 수단으로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사회 내의 다원주의적인 의사형성을 긍정하는 가운데에서 국가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자기목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가 된다. 공무원은 국가정치적(staatspolitisch)으로는 결코 중립적일 수는 없지만, 정당정치적(parteipolitisch)인 중립성이 요청되고, 이는 정당국가에 대한 불신에 근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의회민주주의의 내면적인 인정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공무원의 정당정치적 중립성은 기능적인 의회민주주의에서 필요불가결하다(이종수, 2002b: 77). 다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요청을 구체화함에 있어서 현행 법률에서와 같이 획일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적인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공무원이 일반시민으로서 지니는 정치적 자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공무원집단을 정치의 맹목적인 복종자 또는 사회공동체 내에서 일반시민에 비해서도 정치의식 내지 정치감각이 떨어지는 수준으로 격하시키게 된다. 오늘날처럼 이미 정책수립의 단계에서부터 광범위하게 정당간의 토론을 통해서 구체적인 국가작용의 방향과 지침이 정해지는 현실 속에서 공무원집단에게 정치적인 무감각을 요구하는 것은 정해진 국가작용의 단순한 집행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적으로 그 실효적인 집행 자체마저도 저해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은 근무에 있어서 정당정치적인 요인의 개입이 없이 행해지는 불편부당한 과업의 처리를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서, 이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절차적인 장치의 마련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지, 근무 외의 시간과 공간에서까지 공무원에게 획일적·포괄적으로 정치적 활동금지를 규정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써 과잉적이고, 게다가 공무원이 일반시민으로서 향유하는 기본권적인 지위에도 위배된다(이종수, 2002b: 78). 규범적인 견지에서 보아서도 헌법 제7조 제2항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법률에 위임하고 있기 하지만, 관련 공무원법에서 나타나는 폭넓은 정치적 활동의 금지는 어떠한 논리로도 이로부터 직접적으로 정당화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정치적 중립성의 요청에 앞서서 헌법상 공무원에게는 일반시민으로서 기본권적인 지위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7조 제2항에서 공무원단 내지 개별공무원에게 요청되는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는 한편 일반시민으로서 헌법상 허용되는 정치적 활동을 보장하면서, 다른 한편 근무영역에서의 적법한 개입, 합리적 행위 등의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불편부당성(Unparteiilichkeit)’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이종수, 2002b: 7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국가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아무 일도 행하지 말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국가정치적(staatspolitisch)으로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즉 국가는 사회공동체를 정치적인 일원체로 조직하고, 대외적으로 국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국가가 정당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만 국가의 기능성을 담보하는 것을 의무로 지니고 있는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할 수 있고, 그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흔히 공무원을 중립적 권력(pouvoir neutre) 또는 중개적 권력(pouvoir intermédiaire)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중립성은 다른 신념체계를 존중할 줄 아는 모든 합당한 신념체계 사이에서 요구되는 중립성이며, 오늘날 입헌민주사회가 받아들이는 기본적 질서와 그 핵심가치인 관용을 존중하는 가치관들 사이의 중립성이다. 그것은 이렇게 모든 가치관 사이의 중립성이 아니라 관용의 원리를 중심으로 입헌민주체제를 받아들이는 가치관들 사이에 한정된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김영기, 2005: 44).
2. 정부(특히 절대다수여당의)의사와 국가의사
문제는 현실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종종 국가가 아닌 정부라는 점이다(사실 명확한 구별이 쉽지는 않지만 굳이 하자면, 정부의 의사는 집권정당의 의사에 토대하고 있어서 정파적인데 대하여, 국가의사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서 통제받는, 즉 법치주의원리에 따라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권력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정부는 국가의 입장에서의 인터레스트(interest)나 가치지향을 다르게 함으로써 대립하는 여러 사회적 제 집단의 위에 서서 이것을 조정하고 스스로의 정책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국가의 관념은 그 신성한 권위를 잃어도, 여전히 조정자 또는 결정권자로서의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행동할 때, 이것을 수용하는 주체가 국민이든, 공무원이든 심리적으로 그 중립성을 믿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로는 국가의 신성한 권위만 크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국가는 판단주체, 결정주체로서의 실체를 결하고 있다(堀尾輝久·勝田守一, 1989: 384). 그것은 공무원노동조합이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내건 공무원노동조합의 광고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
국회에서의 다수가 일정당의 절대다수이거나 비정상정인 표결로 다수를 가장할 때에는 정부의 의사나 정책은 이미 국가의 그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즉 정부가 여당의 영향아래 있을 때 국가에 관한 어떤 가치결정에 대한 결단에 대해서도 조정자 또는 결정주체로서의 정부의 자격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공무원의 중립성을 판단한다든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에 관한 기준이라든가 책임을 묻는 입법을 한다고 해도 쉽게 동의받기 어려울 것이다.
정당은 국민 가운데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조직적으로 반영하는 정치단체이다. 그리고 대립하는 인터레스트는 주로 계급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국민의 총의로서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정당의 가치결정도 현실적으로는 일당 일파의 인터레스트일 뿐이다.
한 정당에 속한 정부가 국가를 대신하거나 참칭한다면, 즉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의사는 당파의 의사이지 국가의 의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근자에 우리 사회에서 자주 적용되고 있는 한 방법으로서 이른바 '안배모델(Paritätsmodell, Proporzsystem)'을 제시하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르면, 안배모델이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나 방송위원회 조직의 구성 등에서와 같은 국가기관이나 공적 기구의 구성에 있어서 이들 기관이나 기구의 독립성·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야당의 참여 하에 다수당에 의한 독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조직원리를 말한다. 이를 통해서 각 정당들에 의한 정실인사의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이에는 개별 공무원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관한 믿음의 포기가 근저에 놓여있다는 비판도 뒤따르지만, 현실정치를 전제한 가운데 국가기관 내지 공적 기구의 공정성과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한다(이종수, 2001: 179-180).
여하튼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적 바탕 위에서 공무원의 공복으로서의 기능과 공무원의 기본권주체로서의 지위가 최대한으로 조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Ⅴ. 맺으며
전인격적인 충성을 요구했던 소위 특별권력관계이론이 지지받지 못하는 오늘날까지도, 공무원의 시민적 지위를 부인하거나 또는 시민적 지위에 따른 기본권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자유민주주의원리를 위해서나, 국민에게 양질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유능한 공무원으로서의 자질을 고양시키는 데 있어서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또한 실무가로서 정치적 영역에 속하는 정책결정에 일정부분 참여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정책집행에 있어서도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본래의 의미도 모든 것을 똑같이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념체계를 존중할 줄 아는 모든 신념체계 사이에서 합당하게 요구되는 중립성이며, 오늘날 입헌민주사회가 받아들이는 기본적 질서와 그 핵심가치인 관용을 존중하는 가치관들 사이의 중립성이다. 그것은 이렇게 모든 가치관 사이의 중립성이 아니라 관용의 원리를 중심으로 입헌민주체제를 받아들이는 가치관들 사이에 한정된 중립성이라고 본다.
따라서 헌법상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하여 공무원의 정치적 침묵이나 정치적 무위를 강제하는 규정으로 이해했던 종래의 해석 내지 태도는 문제가 많다. 지금껏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했던 것도 결국은 이러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도 종래의 일반적 이해였던 “집권당의 영향으로부터의 독립과 정당에 대한 불간섭·불가담을 의미하는 소극적 중립” 가운데 전자인 집권당의 영향으로부터의 독립은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하겠지만, 정당에 대한 소극적 중립의 태도를 벗어나서 공무원 스스로 정치적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대해 경험·실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국가에서 공직자가 공무원이자 또한 한 민주시민으로서 지니는 ‘이중적 지위’를 철저히 긍정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공무원의 자율성과 책임의식에 기초한 공무수행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바람직한 공직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스스로가 민주적 시민인 공무원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보장자이자, 국가권력에 가장 밀접하게 위치해 있는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치적 중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사회 내의 다원주의적인 의사형성을 긍정하는 가운데에서 국가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자기목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가운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된다면, 그것은 공무원으로 하여금 정부·여당정책에만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정부의사와 국가의사의 구별이다. 사실 명확한 구별이 쉽지는 않지만 굳이 한다면, 정부의 의사는 집권정당의 의사에 토대하고 있어서 정파적인데 대하여, 국가의사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서 통제받는, 즉 법치주의원리에 따라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갖는 권력을 의미한다. 근래 정부에 의해서 언론사 사장에게 행해진 처분이 사법부에 의해서 취소되는 판결도 있었지만, 국가가 국가이기 위해서는 통치기관의 구성부터 공권력 행사에 이르기까지 법치주의원리에 입각한 주권자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용인하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제한을 하는 관용의 원리로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참고문헌
권영성. (2009). 「헌법학원론」. 법문사.
김영기. (2005).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국가의 중립성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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