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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시인론(中堅詩人論)
-朝鮮의 詩歌는어디로가나-
<1938.1월 신인춘추 제 2집>
이 해 문 (李海文)
시평(詩評)이 없고 시론(時論)이 없고 시문학(詩文學의) 진지(眞摯)한 학구(學究)가 없어 한사람의 귀의(歸依)할만한 지도자(指導者)를 발견(發見)할 수 없는 금일(今日)의 조선시단(朝鮮詩壇)에서, 그의 주조(主潮)와 경향(傾向)을 찾고 명일(明日)의 새로운 시(詩)를 전망(展望)하기는 퍽이나 어려운 일이다.
기성(旣成)을 자부(自負)하는 과거(過去)에 속(屬)한 퇴색(退色)한 선배(先輩)에게는 오즉 과거(過去)의 시(詩)는 물을수 있을지언정 금일(今日)의 시가(詩歌)와 그의 경향(傾向)을 묻는것조차 우둔(愚鈍)하다
그렇다고 요지음 신문(新聞)이나 잡지(雜誌)에 있다금 시편(詩篇)을 보여주는 새로운시인(詩人)-그중(中) 우수(優秀)한이-들에게 시(詩)의 길을 물어보기는 아즉도 그들에 대(對)한 우리의 신망(信望)이 부족(不足)하다
이리하야 모다 각자(各自)의 길을 거러가고 있는 조선(朝鮮)의 신진시인군(新進詩人群)들은 흡사(恰似)희 무장(武將)의 졸(卒)인 감(感)이 있다.
나를 억압(抑壓)할자(者)가 누구이냐, 나도 노력(努力)에 따라서는 시단(詩壇) 최고봉(最高峰)의 영예(榮譽)를 획득(獲得)할수가있다-함이 그들의 기개(氣槪)일것이다. 물론(勿論) 이 기개(氣槪)만은 귀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즉도 시(詩)에 대(對)한 학구적(學究的) 진지성(眞摯性)이 부족(不足)하였다. 이것은 생활(生活)의 탓이랄가. 아니면 환경(環境)이 가지온 소양부족(素養不足)의 까닭일가
하여튼 오늘의 시단(詩壇)에 있어 시(詩)의 조류(潮流)를 찾고 시풍(詩風)의 변천(變遷)을 구명(究明)하며 시(詩)의 형태(形態)을 말하고 시어(詩語)의 요소(要素)와 구별(區別)을 논(論)하기는 그다지 용이(容易)치 않으리만치 지극(至極)히 혼란(混亂)한 상태(狀態)에 함(陷)하여 있는 것이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필자(筆者)가 이에 말하랴함은 전기(前記)의 모든문제(問題)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둔사(遁辞)가 아니라도 이것을 어느 정도(程度)까지 해명(解明)하여 줄만한분이 있을것임으로 나는 여기에 다만 조선시단(朝鮮詩壇)의 현역(現役) 중견시인(中堅詩人)을 고찰(考察)하여보고 그들의노력(努力)을 촉(囑)하며 전도(前途)를 축복(祝福)하는 것만으로 그치랸다
현역(現役)의 중견시인(中堅詩人)을 말함에는 과거(過去)에 있어 시단(詩壇)의 선구자(先驅者)이었던 제씨(諸氏)[단(但, 별세(別世)한분은 제외(除外)함]와 및 현재작품(現在作品)을 발표(發表)하고 있으나 그 시적기혼(詩的氣魂)에 있어 침체상태(沈滯狀態)로볼수밖에없는 선진(先進)의몇분에게 대(對)하야도 일언(一言)할 필요(必要)를 느낀다.
그런데 설명(說明)의 편의(便宜)를 위(爲)하야 구태여 조선시인(朝鮮詩人)들에 대(對)하야 그 유파(流派)를 나누어본다면 다음과 같다.[但, 상기(上記)의 파자(派字)는 당파(黨派)의 파(派)가 아닌것은 물론(勿論)이다.]
선구파(先驅派) - 김안서(金岸曙), 김파인(金巴人), 주요한(朱요한), 박팔양(朴八陽), 이동원 (李東園), 변수주(卞樹州), 오상순(吳相淳), 박월탄(朴月灘), 황석우(黃錫禹),
김석송(金石松), 이은상(李殷相), 정인보(鄭寅普), 이병기(李秉岐), 양주동 (梁柱東), 이상화(李相和)
카프계급동반자파(系及同伴者派) - 김해강(金海剛), 임화(林和), 김창술(金昌述), 권환(權煥),
유적구(柳赤駒), 손풍산(孫楓山), 김병호(金炳昊), 박세영(朴世永), 양우정 (梁雨庭),
선구아류급잡파(先驅亞流及雜派) - 오천원(吳天園), 김화산(金華山), 조운(曹雲), 정노풍(鄭蘆 風), 유도순(柳道順), 정지용(鄭芝鎔), 김동명(金東鳴), 신석정(辛夕汀), 장정 심(張貞心), 권구현(權九玄), 송순일(宋順鎰 ),노춘성(盧春城), 유엽(柳葉), 장기제(張起悌), 이하윤(異河潤), 배춘강(裵春岡), 김달진(金達鎭), 김상용 (金尙鎔), 김광섭(金珖燮), 늘샘(卓相銖), 유운경(柳雲卿), 김일엽(金一葉), 김탄실(金彈實),
현역중견파(現役中堅派) - 김기림(金起林), 조벽암(趙碧岩), 이흡(李洽), 유치환(柳致環), 이 응수(李應洙), 박아지(朴芽枝), 김년남(金年男), 모윤숙(毛允淑), 임린(林麟),
태우촌(泰雨村), 유창선(柳昌宣), 김조규(金朝奎), 김광균(金光均), 민병균 (閔丙均), 마명(馬鳴), 윤곤강(尹崑岡), 이찬(李燦), 안용만(安龍灣), 오장환 (吳章煥), 한흑구(韓黑鷗), 이정구(李貞求), 을파소(乙巴素), 조령출(趙靈出), 백석(白石), 이고려(李高麗), 박노춘(朴魯春), 임학수(林學洙), 정래동(丁來 東), 김광주(金光洲), 윤석중(尹石重)
기타(其他) 역량(力量)있는 중견급신진파(中堅及新進派) - 이발원(李撥元), 이대용(李大容), 김대봉(金大鳳), 김봉제(金鳳濟), 김북원(金北原), 이해월(李海月), 양상은 (楊相殷), 박귀송(朴貴松), 이서해(李瑞海), 황순원(黃順元), 김우철(金友哲), 김람인(金嵐人), 김태오(金泰午), 양운한(楊雲閒), 서정주(徐廷柱), 이병반 (李秉班), 노천명(盧天命), 이용악(李庸岳), 황백영(黃白影), 김광섭(金光燮),
목일신(睦一信), 오일도(吳一島), 민태규(閔泰奎), 김동리(金東里), 이원우 (李園友), 고령민(高嶺民), 이운회(李雲懷), 김희규(金禧圭), 고마부(高馬夫),
장기방(張起邦), 박재륜(朴載崙), 박승걸(朴承杰), 이무극(李無極), 염주용 (廉周用), 허윤석(許允碩), 박남수(朴南秀), 유병우(劉秉宇), 장만영(張萬榮), 이혜숙(李惠淑)
상기(上記)한 시인수(詩人數)를 볼 때 선구파(先驅派) 삼십일인(三十一人), 카프계급동반자파(系及同伴者派) 구인(九人), 선구아류급잡파(先驅亞流及雜派) 이십일인(二十一人), 현대중견파(現代中堅派) 삼십일인(三十一人), 기타중견급신진파(其他中堅及新進派) 삼십칠인(三十七人) 계(計) 백십삼인(百十三人)이란 원수(員數)에 달(達)한다. 물론(勿論) 이상(以上)의 구분(區分)이란것은 반드시 정확(正確)한것은 아니다.
선구파중(先驅派中)에도 선후(先後)의 관계(關係)을 순서적(順序的)으로 나열(羅列)치 못하얏고 카프계급(系及) 동반자파(同伴者派)에도 다소(多少) 빠진분이 있으며 선구아류급(先驅亞流派) 잡파(雜派)는 혹(惑)은 선구(先驅)에 속(屬)할분도 있으며 혹(惑)은 장구(長久)한 세월(歲月)을 시인적활동(詩人的活動)을 하여왔으나 아즉 이렇다는 색채(色彩)<思想的이아님>가 없는분 우(又)는 현역중견(現役中堅)은 못되고 신진(新進)이라고도 할수없는분들이다.
그리고 현대중견파중(現代中堅派中)에도 잡파(雜派)속에 속(屬)할 분도 있으며 조벽암(趙碧岩), 윤곤강(尹崑岡), 이찬민(李燦民)등(等)은 카프계급(系及) 동반자파(同伴者派)에 속(屬)하지 않을가도 생각되나 상기(上記)한 삼씨(三氏)는 역시(亦是) 현대중견파(現代中堅派)인것도 사실(事實)임으로 여기에 넣은 것이다.
그다음 기타(其他) 중견파(中堅派) 신진파(新進派)인데 모다 어느정도(程度)의 역량(力量)을 가지고있는가 그 출발(出發)한 년조(年條)로는 멀리 현대중견(現代中堅)의 우에 서는분도 있으나 아즉 이렇다는 존재(存在)로서 시단(詩壇)의 일각(一角)을 점(占)하지 못한이도있고 또는 사오년전(四五年前)까지 발척(潑刺)한 활약(活躍)을하다가 현재(現在) 침묵중(沈黙中)에 있는분, 그리고 이삼년이래(二三年以來)로 갑자기 그두각(頭角)을 나타내인 사람도있다. 그리고 소위(所謂) 현역중견파(現役中堅派)속에도 다소(多少) 침체상태(沈滯狀態)에 빠진 이도 없지않으며 여러 가지 주위(周圍)의 사정(事情)으로 인(因)하야 이삼년이래(二三年以來)로 시단(詩壇)의 일원(一員)인듯이 나스게된 사람도있으나 쩌나리즘과의 통상관계(通商關係)는 여하간(如何間), 요(要)컨대는 실력문제(實力問題)이다.
선구(先驅) 우(又)는 카프파(派)는 한시대(時代)의 과정(過程)을 장식한분들이었으니 그들의 공적(功績)을 부인(否認)할수 없는것이나 현재(現在)의 상태(狀態)로는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노력(努力)이 없는 한(限), 선구(先驅)는 물론(勿論)이오 카프급잡파중(及雜派中)의 일부시인(一部詩人)에 대(對)해서는 별(別)다른 기대(期待)를 보낼수가 없다.
그래도 혼란(混亂)하나마 현재(現在) 조선시단(朝鮮詩壇)을 떠메고 나아가는이들은 현역(現役中堅)에게 그 대부분(大部分)의 예기(銳氣)를 양보(讓步)할수 밖에없고 그다음 선구아파급(先驅亞派及) 잡파(雜派), 카프급(及) 동반자파(同伴者派), 기타중견급(其他中堅及) 신진파(新進派), 선구파중일부(先驅派中一部)의 순서(順序)로써 그 역할(役割)의 정도(程度)를 말할 수가 있다.
현역중견(現役中堅)의 일부급(一部及) 이와 거의 유사(類似)한 신진파(新進派)에는 여러 가지 수법(手法)으로 새로운 감정(感情)의 표현(表現)을 꾀하는 시인(詩人) 잇는바 건실(健實)한 지도자(指導者)가 없는 조선시단(朝鮮詩壇)에 있어서일지나 오즉 이들만이 우리 시단(詩壇)의 광명(光明)이요 명일(明日)에의 촉망(囑望)을 그들에게 보낼수가 있을것이다.
시(詩 )와 평론(評論)을 써온 이원조씨(李源朝氏)는 - 십월(十月)의 시가(詩歌)를 말함에있어 현대시(現代詩)의 감정적해조(感精的諧調)의 결여(缺如)를 지적(指摘)하고 이것으로써 내용공소(內容空疎)의 시(詩)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현대(現代)와 같이 생활(生活)이 극도(極度)로 동요(動搖)되고있는 시대(時代)에 시(詩)가 있는것은 한개의 의문(疑問)이라고까지 말하였다. (本年十月上旬朝報所藏)
사실(事實)이다. 옛날과 같이 음풍영월(吟諷詠月)하던 시대(時代)는 낭만(浪漫)의 자유(自由)가 범람(氾濫)하고, 계급(階級)의 색(色)다른시(詩)가 젊은이의 영웅심(英雄心)을 울려주든때도 이미지나갔다.
금일(今日)은 오즉 금일(今日)의 금일(今日). 회의(懷疑), 고민(苦悶), 비통(悲痛), 절망(絶望), 자중(自重) - 이 모든 감정(感情)이 혼란(混亂)되어있는 오늘에 있어 몇몇 시인(詩人)들이 아모리 신감각적(新感覺的)인 소위(所謂) 주지주의(主知主義)의 기치(旗幟)을 휘날릴지라도 새로운 시대(時代)의 고민(苦悶)속에서 침통(沈痛)한길을 각자(各自)히 걸어가고있는 무수(無數)한 시인군(詩人群)들이 그것을 받어드려 마음을 안정(安整)할만한 감정(感情)의 여유(餘裕)가 없다.
말이 딴길로 들어간듯하나 하옇튼 오늘의 중견시인(中堅詩人)들은 모다 각자(各自)의 시풍(詩風)이 다르다 하리만치 그시상(詩想)이나 표현방법(表現方法)이 형형색색(形形色色)이다.
이것은 아즉 미완성(未完成)된 시인(詩人)들인 까닭이라고 볼는지도 모르나 대개(大槪)는 한사람의 흠앙(欽仰)하는바 지도자(指導者)도 없이 오즉 잡연(雜然)한속에서 각자구구(各自區區)한 시학도(詩學徒)의 길을거쳐 자가류(自家流)의 일개작풍(一個作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금일(今日)의 조선시단(朝鮮詩壇)에 있어 시(詩)에 관(關)한 문제(問題)를 논란(論難)한 몇분의 논문일부(論文一部)를 예거(例擧)하야 그에대(對)한 소감(小感)을 술(述)하고 순서(順序)없는 본고(本稿)의 끝을 삼으랸다.
- 낡은 일을 낡은 방법(方法)으로 언제까지든지 써가면서도 아모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 작가(作家)나 시인(詩人)을 내가 행복(幸福)스럽다고 말하는것은 그 까닭이다. 그렇건마는 시(詩)는 언제든지 정지(停止)할줄 모르는 움즉이는 정신(精神)속에 살어야 한다는것은 얼 마나 무서운 일이냐 ? (昭和十年四月朝報所藏金起林氏의[午前의詩論]一節]
- 기교주의시(技巧主義詩)는 마치 십년대(十年代)의 [신시(新詩)]가 중세기(中世紀)의 시조 (時調)나 한시(漢詩)에 대(對)하야 또 푸로레타리아시(詩)가 [신시(新詩)]에 대(對)하야 혁 명적(革命的)이었든것과 같이 그들이전(以前)의 모든 시가(詩歌)에 대(對)하야 신시대(新時 代)를 체현(體現)하는 시적반항자(詩的反抗者)일것과 같은 관념적환상(觀念的幻想)을 조직 (組織)하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전(全)혀 고의(故意)의 논리적(論理的)인 기교(技巧)이거 나 그렇지 않으면 지식계급(知識階級)의 완전(完全)한 주관적환상(主觀的幻想)이다.
(昭和十年十二月號新東亞所藏 林和氏의[朝鮮詩文學은어디로]의 一節)
- 임화씨(林和氏)가 포로시(詩)의 쇠미(衰微)와 기교파(技巧派)의 번영(繁榮)을 탄(歎)하는 그 번영쇠미(繁榮衰微)는 다분(多分)히 상업주의적용어(商業主義的用語)다. 우리가 매체 - 로라 자칭(自稱)하는 부원(部員)의 수(數)나 획득(獲得)한 문학청년(文學靑年)의 수(數)로 그 예술(藝術)의 영쇠(榮衰)를 논(論)해 무엇할것인가 일인(一人)이라도 비교적(比較的) 우 수(優秀)한시(詩)를 창작(創作)하는 푸로시인(詩人)이 있다면 그것은 우수(優秀)한 시(詩)를 생산(生産)지 못하는 카프시부원(詩部員) 백인(百人)보다 번영(繁榮)할것이 아닌가.
우수(優秀)한 작품(作品)이라는 관점(觀點)을 떠난 모든 예술론(藝術論)이란 전(全)혀 허무 (虛無)한것이다. (昭和年十一年三月十八日二東亞報所藏 朴龍喆氏의[詩壇時評]一節)
- 모던이즘의 효자(驍將) 김기림씨(金起林氏)의 독창적수법(獨創的手法)은 다소(多少)의 팬 을얻는데 능(能)이 성공(成功)을 보였다고도 보겠으나 그것도 벌서 권태(倦怠)를 느끼는 모양(模樣)이다. 또한 이론자(異論者)라고도 말할 이상씨(李箱氏) 의 출현(出現)도 지금의 이 혼란중(混亂中)의 시단(詩壇)의 산물(産物)인것을 좌징(左瞪)하는것 같다.
(昭和年十二年一月二日附中央詩報所藏 朴世永氏의[丁丑詩壇展望中]一節)
- 한개의[풍경(風景)]을 [있는그대로][보는그대로] 그려놓은것은 그시인(詩人)이 한개의 카 메라맨보다도 불건강(不健康)한것을 의미(意味)한다. 한개의 단순(單純)한 감정(感情)을 [느끼는 그대로] 노래하는것은 그시인(詩人)이 한개의 전설(傳說)보다도 허망(虛妄)한것을 의미(意味)한다.{中畧} 권태(倦怠)는 반성(反省)을 가져오고 반성(反省)은 자각(自覺)을 낳 게한다. 우리의 새로운시(詩)는 낡은 시(詩)가 종언(終焉)을 고(告)하는 지점(地點)에서부 터 새로운 스타-트를 끊게된다. {中畧} 그것은오-즉 시인(詩人)이 자아(自我)의 감정(感 情)에대(對)하야 자아(自我)의 의욕(意慾)하는 방면(方面)으로부터 거짓없는 도전(挑戰)을 개시(開始)할때 비로소 그자유(自由)는 도래(到來)할것이다.
(本年六月二十九日附朝報所藏 尹崑岡氏의[現代詩의反省과自覺]中一節)
- 현대서정시(現代敍情詩)의 군색(窘塞)은 시인자신(詩人自身)이 더 잘알고있을것이다. 여기 대(對)해서는 무수(無數)한 분석(分析)과해설(解說)이 시론(試論)되였고 그것만으로써 현대 (現代)의 시론(詩論)을 꿈일수있을 형편(形便)이다. 그러나 군색(窘塞)은 아모리 분석(分 析)하고 설명(說明)하야 본대도 군색(窘塞)이다. 이군색(窘塞)에서 나오는 것 밖에는 면 (免)할 도리(道理)가 없다. 서정시(敍情詩)를 나은시인(詩人)은 서사시(敍事詩)로의 시원한 길을돌것이다. 이리하야 서사시(敍事詩)로의 전개(展開)는 모든 현대시인(現代詩人)이 풍 고있을 명일(明日)의 세계(世界)이다.
(昨年九月十九日附朝報所藏 崔載瑞氏[詩와道德과生活]中의一節)
- 현대(現代)의 시인(詩人)이라는것은 운문(韻文)을 사용(使用)할줄 모르는 사람들을 이름이 다. 하고 누가비꼬아서 말을 하였는데 신날(辛辣)하고도 알맹이가있는 소리다. (中畧) 이 것은 사실(事實)이다. 오늘날 누구나 소설(小說)을 읽는 습관(習慣)으로 시(詩)를 읽어버린 다. 그러나 이대로 운문(韻文)의 정신(精神)은 과연(果然) 쇠망(衰亡)하고 말것이냐. 우리 는 이것을 이땅의 시인(詩人)들에게 제의(提議)하야 반가운반성(反省)과분기(奮起)를 듣고 싶다. 눈으로 보고 두뇌(頭腦)로 사고(思考)하고 입으로 중얼거리게만 하는 시외(詩外)에 단 한편(篇)이라도 정말노래부를수있는 시(詩)를 고대(苦待)하여 마지않는다.
(本年七月二十九日附朝報所藏 五星子의[詩論]中에서)
상기(上記)한바 몇분의 논조(論調)의 귀착점(歸着點)을 고찰(考察)하여볼때 좌기(左記)의 골자(骨子)와 새로운 논의(論議)를 발견(發見)할 수가 있다.
- 낡은것을 버리고 정지(停止)할줄 모르는 새로운 유동(流動)의 세계(世界)로 (金起林)
- 금일(今日)의기교주의(技巧主義)는 한개의 시대적(時代的) 반항(反抗)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계급(知識階級)의 완전(完全)한 주관적환상(主觀的幻想)이다. (林和)
- 금일(今日)의 현상(現狀)으로 막연(漠然)히 푸로시(詩)의 쇠징(衰徵)을 말할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즉 일인(一人)이라도 비교적우수(比較的優秀)한 시(詩)를 창작(創作)하는 푸로시 인(詩人)을 얻으면 족(足)하다. 그러므로 우수(優秀)한 작품(作品)이라는 관점(觀點)을 떠 난 모든 예술론(藝術論)은 허무(虛無)하다. (朴龍喆)
- 모던이즘의 권태(倦怠)도왔다. 이상(李箱)의 이단시(異端詩)도 귀엽지 않다. (朴世永)
- 우리는 과거(過去)의 [카메라맨 적(的)] 시(詩)에 권태(倦怠)를 느끼고 반성(反省)에서 자 아(自我)의 길로나와 자아(自我)의 의욕(意慾)을 향(向)해 거짓없이 도전(挑戰)해야만 비 로소 자유(自由)가 도래(到來)할것이다. (尹崑岡)
- 현대(現代)에 있어 서정시(敍情詩)는 군색(窘塞)하다. 현대시인(現代詩人)의 명일(明日)의 세계(世界)는 오즉 서사적(敍事的)의 시원한길에 있다. (崔載瑞)
- 운문(韻文)을 모르는 현대시인(現代詩人)은 반성(反省)과 분기(奮起)로써 정말노래부를수 있는 시(詩)를 쓰라. (五星子)
이상(以上)의 문제(問題)로써 여기에 구태여 장황(長皇)한 설명(說明)과 비판(批判)을 가(加)하고 싶지 않다. 다만 김기림씨(金起林氏)의 [새로운 세계(世界)에로] 에 대(對)하야 우리는 어떠한 방면(方面)으로 수긍(首肯)해야 하겠으며 임화씨(林和氏)의 기교주의공격(技巧主義攻擊)의 뒤에 오는 자아(自我)의 표명(表明)은 무엇이며, 박용철씨(朴龍喆氏)의 우수(優秀)한 작품(作品)의 규정(規定)은 무엇으로햐야 하는가가 문제(問題)이다. 그리고 모던이즘의 권태(倦怠) 이상(李箱)의이단시(異端詩)의 무시(無視), 카메라맨적시(的詩)의 권태(倦怠)와 새로운 도전(挑戰)과 자유(自由)의 회득(獲得)은, 그당음 음영(吟詠)할수 있는 음률적시(音律的詩)의 길은 어디로가야하나?
최재서씨(崔載瑞氏)의 논의(論議)한바 서사시(敍事詩)의 길로 - 이것은 김기진씨(金基鎭氏)가 임화(林和)의 [오빠와 화로(火爐)]를 절찬(絶讚)한 나머지 [단편서사시(短篇敍事詩)의길로](昭和四年五月號[朝鮮文藝]所藏)라는 문제(問題)를 제창(提唱)한 후(後)로 이미 九年, 필자(筆者)의 저윽히 주시(注視)하여온바이었으나 아직 이렇다는 진전(進展)을 보옂지못한 과제(課題)이었다.
그럭저럭 선후(先後)없는 말이 너무 길어졌다. 일언(一言)으로써 말하면 조선(朝鮮)의 중견시인(中堅詩人)은너무나 그들의 임무(任務)가 과중(過重)하며 조선(朝鮮)의 시가(詩歌)는 그의 갈길이 아즉도 묘연(渺然)한바인즉 이것의 연구(硏究), 해명(解明)과 명일(明日)에의 돌진(突進)은 오즉 신구(新舊)를 막론(莫論)하고 각자(各自)의 진지(眞摯)한 학구적노력(學究的努力)에 있다는것일뿐이다.
끝으로 필자(筆者)의 가장 갈망(渴望)하는바 우리 시단(詩壇)의 중견시인(中堅詩人)인 유운경(柳雲卿), 김기림(金起林), 조벽암(趙碧岩), 유치환(柳致環), 이응수(李應洙), 모윤숙(毛允淑), 유창선(劉昌宣), 김조규(金朝奎), 김광균(金光均), 윤곤강(尹崑岡), 마명(馬鳴), 이정구(李貞求), 조령출(趙靈出), 한흑구(韓黑鷗), 이규원(李揆元), 박노춘(朴魯春), 오장환(吳章煥), 민병균(閔丙均)제씨(諸氏)의 건승(健勝)을빌고 이만 각필(擱筆)한다.
(丁丑十月上旬.於無限川邊)
첫댓글 고생하셨네요. ㅎㅎㅎ
ㅎㅎㅎ 박 시인님의 노력으로 이렇게 예산문학에 남게 되네요 수고 하셨어요
쉼없이 연구하여 올려주신 문헌 감사합니다 더 많은 문학인들이 보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자료.. 수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