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타자기
성낙승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사무소
왜 한글이 좋고 한자가 불편하지 잘 알지도 못했던 때부터 나는 한글을 사랑했다. 그러니까 중학교 시절 국어책에 우리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쓰기 편하고 과학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한글을 예찬하는 과목이 있었는데 세종대왕께서 쓰기 불편하고 양반이라는 특권층만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배운 한자보다 쓰기 쉽고 배우기 쉽고 표현하기 쉬운 우리 글을 만드셨으니 얼마나 위대한 글이냐면서도 그 과목에 한자가 나왔다. 또 한문시간이 따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어시간에 한자를 배우게 했고 국어시험에도 한자시험문제를 냈다. 나는 지금도 우리 한글이 좋다면서 한자를 섞어서 국어책을 편찬한 분의 심정을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다. 국어시험에 한자시험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시험지를 백지로 냈던 그 반발심이 한글 쓰기를 주장하게 되었고 군대에 복무할 때 타자를 배우고 부터는 아주 한글전용주의자가 되었다.
아직도 일부 학계와 행정가들이 뜻 전달의 불편을 들어 한자폐지 반대론을 펴고 있으나 이것은 마치 교통사고가 날까봐 서울을 걸어서 가자는 격이요 자주성 없는 사대주의적 관념이 아직도 남아있는 탓이라고 하겠다.
한자폐지가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주는지 그 하나의 예로서 글자의 기계화와 통신화를 들 수 있겠다. 손으로 한글을 쓰면 1분간에 30자 정도 쓸 수 있으나 한글타자기는 200자 이상 찍을 수 있다. 즉 한자로 된 호적을 한글로 고친다면 한 시간에 한 통밖에 작성 못하던 것을 한글로는 3통을 만들 수 있을 것이요 타자기로 친다면 20통을 만들수 있는 것이다. 타자기를 다루어 본 사람은 타자기가 얼마나 사무능률을 올려 주는지 알고 있다. 타자수를 따로 두지 않고 직접 타자를 하면서 행정을 볼 때 5~7사람의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으니 인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형편에 정부에서 전 공무원에게 타자기술을 습득시키려는 뜻도 이런데 있을 것이다.
여러 종류 글자판의 타자기가 있어 타이피스트들을 괴롭혀 오던 것이 국무총리령 81호로 표준판 타자기가 공고되어 통일을 보게 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라 할 수있다. 그러나 몇가지 종전의 타자기에 비해 불편한 점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껴 전문가가 아닌 실무자 입장에서 고찰해 본다.
기계 사용의 목적은 사무의 스피드화에 있을 것이다. 3벌식인 공병우식과 5벌식인 김동훈식의 타자기에서 장점만을 살려 4벌식으로 만든 것 같으나 속도식과 체제식의 중간에서 둘 다 기능을 상실한 느낌이다. 공병우식은 200자 이상 찍을 수 있는데 비해 표준판은 60~80자 찍을 수 있다. 글판에 글자의 배열을 보면 대략적으로 공병우식은 위에서 밑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표준판은 옆으로 자모의 배열이 되어 있어 많이 사용되는 자모의 키를 약하고 둔한 새끼손가락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림으로 보면 표준판이 글자 배열이 쉬운 것 같으나 실상 더 어렵다.
사무적으로 표준판 타자기의 불편한 점을 들어 보면 첫째 많이 사용되는 쌍받침이나 부호가 없는 대신 별로 사용하지 않는 부호가 타이프키를 점령하고 있다. x - + = 등은 사무에서 별로 많이 쓰는 부호가 아니다. ㅃㅉㄸㄲㅆ 등도 많이 쓰지 않는다. 글자의 모양이 다소 없더라도 속도를 많이 잡아먹는 주원인인 받침있는 모음과 받침없는 모음을 구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한글은 쌍받침이 많아서 표현 못하는 소리가 없듯이 쌍받침을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표준판은 쌍받침이 3개 밖에 없어 쌍받침을 만드는데 또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둘째 수자를 찍을 때 오자가 나기 쉽다. 영문타자기 식으로 4단위에 열렬로 배열이 되어 있어 8손가락 모두 사용하게 되는데 한손 즉 4개의 손가락으로 숫자를 칠 수 있는 공병우식 보다는 배의 오자가 나기 쉽다는 결론인데 익숙한 타자수도 숫자를 찍을 때만은 글판을 보고 찍는다.
세째 표준판은 다른 타자기에 비해 배우기가 어렵고 배우는데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네째 표준판 타자기는 타자하는데 피로가 많이 온다. 이유는 걸쇠를 새끼손가락으로 자주 사용해야 되기 때문이다. 박자가 안맞는 음악을 들을 때 불안감처럼 타자도 리듬을 맞추어 치면 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청각에 큰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다른 타자기는 3박자의 리듬을 맞추어 칠수 있으나 표준판은 걸쇠를 자주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리듬적으로 칠 수 없다.
이상은 실무자 입장에서 표준판 타자기를 다루어 본 문제점을 들어 본 것이다. 새로이 고안된 기계가 종전의 기계보다 능률이 없을 때 문제점 해결은 하나일 것이다. 인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행정부의 어느 공무원이든 단시일 내에 익힐 수 있는 편리한 타자기의 보급은 단시일 내에 한자를 추방할 수 있을 것이고 한자의 추방은 우리 일상생활에 많은 이익을 줄 것이다.
발행년도 : 1971년, 기관 : 대한지방행정공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