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4월 당고모님의 회갑연 축사
-(당시 18세로 고 2년생 글을 쓰고 낭독함)-
오늘 당고모님의 회갑연에 이처럼 만당(滿堂)의 귀
빈이 모이신 자리에서 18세 어린 나이에 제가 감히
먼저 축사의 말씀을 드리게 되오니 그 광영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이 기쁨니다만 여러 어르신들께는
대단히 송구스럽고 면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
습니다.
그러면 먼저 회갑 잔치니 칠순 잔치니 그런 말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겠
습니다만 저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것을 간단히 먼저
말씀을 올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회갑이란? 아득한 옛날부터 고난에 가득찬 길고 긴
인생을 혜치고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삶을 위로해 드
리기 위해 60세가 되는 해에 벌이는 생일 잔치를 말
하여 육순 잔치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61세가 되면 수연(壽宴)으로써 간지육갑(干
支六甲)을 따져 자기가 난 해에 다시 갑(甲)이 돌아왔
다고 해서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 말하여
왔습니다.
또한 환갑 이듬해 62세가 되는 생일의 해를 진갑(進
甲)이라 하여 이 또한 잔치(음식을 차려 놓고 손을 청
하여 먹으며 즐기는 일) 를 베풀었습니다. 환갑 때와
같다고는 하나 그렇게 성대하게는 하지 않았으며, 다
만 형편에 따라서 규모있게 지내는 것이 진갑(進甲)
잔치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칠순이란 일흔 살이 되는 해의 생일로 칠순
또는 희수(稀壽)이란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두보(杜甫)의
시에서 유래한 말 때문인지 이 연세가 되면 잔치를
할 만큼 생존해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 찬치를 베푸
는 사람도 없었던가 칠순 잔치는 흔하게 볼 수도 없
었습니다.
그 러다 보니 칠순 잔치는 점점 약화되어 갔고 당시
넉넉치 못한 삶에 많은 부담을 느꼈던지 많은 사람들
이 칠순 잔치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였나 봅니다.
그런 이유 때문 인지 80을 바라보는 나이를 일컬어
서 망팔(望八), 희연(稀宴), 또는 팔순(八旬)이라는
등 연령에 따라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옛 사람들은 연령에 따라 이렇게 자주 잔
치를 베풀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인이
되면 쓸쓸하고 외로우니까 이런 기회에 자손들이 자
주 만나서 늙으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려는 마음
에서 이루어진 행사라 여겨짐니다만 오늘날은 이와
같은 미풍양속도 점차 사라저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
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옛날의 삶과는 달리 우리 현실은 모두가
잘 먹고 윤택한 삶을 살다 보니 그 옛날 못 먹고 못
살던 때 환갑을 굉장히 오래 산 것으로 여겨 잔치
를 벌이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육십 칠십은 당연히
살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그런 점에서 시대
에 상반되는 견해 차이 때문 오늘날은 회갑을 성대
하게 보내지 않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당고모님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회갑을 시동생님 내외분께서 이처
럼 온갖 산해진미로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심은
우리 당고모님 60평생의 삶이 하늘처럼 높고 바다
처럼 넓은 덕을 후덕하게 쌓으심이 아닌가도 생각
이 됩니다.
그리고 이 또한 오늘이 있기까지 누구보다도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손아래 시동생
님 두 내외분들이 존재하지 않고는 오늘과 같은 어
질고 훌륭하신 섬김의 정성이 어디에서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우리 당고님의 손아래 시동생님 두 내
외분에게 요즘 보기드문 뜨거운 섬김의 정성에 고
마운 뜻으로 또한 보답의 뜻으로 힘찬 박수를 보내
드립시다. 귀빈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말
씀은 우리 당고님을 대신해서 손아래 시동생 내외
분께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저도 함께 인사드립니다.
오늘 이와 같은 섬김의 정성이 담긴 회갑 잔치야
말로 요즈음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오니 우리 당고
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손아래 시동생님 내외분을
두셨다고 감히 제가 격찬의 말씀을 드려봅니다.
지금도 형수님의 약수발을 하고 계신다는 손아래
시동생님 내외분의 그 갸륵한 정성은 어느 누구의
시동생도 따를 수 없는 훌륭한 분이라고 고개가 숙
여지며 진심으로 존경해 맞이않는 바입니다.
오늘의 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주신 손아래 시
동생님 두 내외분께 저희 당고모님과 안씨 문중
을 대표하여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뭐라고 다 말
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당고모님 17살에 시집와서 사흘만에 남편은 일
본으로 징용에 끌려가고 꽃다운 나이에 돌아올 날
만 기다리다 한 평생을 살아오신 한(恨) 많은 세월
이였지만 시아버님 시어머님 모시고 손아래 어린
시동생을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고 살아온 날들!
손아래 시동생님 장성하여 결혼시키고 얼마 안
되어 시아버지 시어머니 세상을 뜨니 세상이 무너
지듯 의지할 곳 없을 때도 손아래 시동생님 두 내
외분은 형수님 섬김에 한 치도 소홀함이 없이 너
무 지극하여 손아래 시동생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서 용기와 힘을 일깨워 준 세월이 어언간 44년이
란 세월이 엇그제 같다고 하시니 보내고 지나온
세월은 참으로 빠른가 봅니다
그토록 곱고 고운 모습들이 이제는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어 세월따라 환갑을 맞으신 연세가 되
었으나 아직도 환갑을 맞으신 모습 갖지 않습니다
너무 정정하게만 느겨짐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
은 평상시 너무도 활동적인 분이셨기 때문 더욱
더 정정하게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느 모임 어느 좌석에서도 항상 만연의
웃음으로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나와 더
불어 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시는 유모어가 풍
부하신 분이셨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당고모님의 싹싹한 마음씨와 결단력
있는 마음씨는 널리 알려져 알고 있는 사실로 일제
말기 학정에도 고결한 지조와 철석같은 절개는 변
절하심이 없이 최씨 문중에 큰 자부로 살아온 나날
어언 한 평생! 어떤 시련과 역경도 두려워 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신 분이셨습니다.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오직 시동생 하나만 잘
사는 것이 내가 설 곳이라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
아오신 그 큰 뜻! 참으로 장하고 훌륭하십니다.
젊은 청춘 꽃다운 시절을 최씨문중 큰 자부님으
로 그 체통을 잃지 않기 위하여 홀로 수절을 하면
서 살아온 나날...... 이 어찌 어느 세상에 이 보다
더한 열녀가 또 어디 있다 하리오!
시집와서 바로 혼자 몸이 되고 부터 이제나 그
제나 한 가닥 희망으로 살아온 나날 ...... 낭군님
살아 돌아올 날을 기대하며 살아온지 반세기......
그러나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아직도 어디메 계시온지 일장의 소식조차 알 길
이 없으니 너무도 무정하고 야속한 임이시나 이제
는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1940년 일제의 탄압이 너무도 원망스럽기만 하
군요. 그러나 조국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신 우
리 당고모님의 삶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에 주어진
운명의 길을 오직 올곧게 살아오신 그 정신......
우리 당고모님의 삶은 어느 순교자의 정신보다
도 더 맑고 고울 뿐만 아니라 백옥같이 순결한 삶
을 살아오신 분이라는 것을 충북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부락 주민들은 물론 타처의 면민들도 널
리 인정을 하고 열녀중의 열녀라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남편을 위해 변함없는 사랑과 마음을
최씨 문중에 바치시고 님 생각으로 덧없는 세월
을 올곧게만 살아오신 우리 당고님! 아직도
돌아올 낭군님을 기다리며 평상시 즐겨 애송하
고 있다는 시 한 수를 대신 낭독해 드리겠습니
다.
가고 가고 또 가고 가신 낭군아!
생이별의 슬픔만 더할 뿐이네
만리 밖에 떨어져 생각은 깊고
천애(天涯)가 아득한데 정만 사뭇쳐
만나고자 생각은 간절하지만
만날 길 아득하니 어이 하리오.
-<천애(天涯 : 하늘 끝 멀리 떨어진 타향)>-
호조(湖鳥)는 바람따라 북을 그리고
월조(越俎)는 가지 골라 님을 바라네
헤어져 떠난지가 너무 오래니
허리가 헐겁게 몸은 여위어
구름은 오락가락 날은 흐리고
한 번 가신 낭군은 올 뜻이 없네
호조(湖鳥 : 호수가를 날으는 새, 갈매기)
월조(越俎 : 자기 직분을 넘어
남의 일에 간섭하는 새)
님 생각으로 이 몸 늙어만 가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만 가나
꿈을 꿔도 일편 단심 굳은 절개
한 번도 변절은 해본 적이 없소
아직도 님 곁에 맴 도는 이 몸
모쪼록 님이여! 살아만 돌아오소.
오늘 같이 기쁘고 즐거운 날
우리 당고모님의 회갑 잔치에
축사를 올린다는 것이 너무도
울쩍한 분위기로 이끌고 가서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함
을 널리 양해를 해주기를 부탁
드리면서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셔서 만수무강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서기 1962년 4월
18세 고교 2년생 안 광 용 올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