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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삼국지연의』 제29회의 회목은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于吉)을 참수하다.’이다. 손책은 원한을 맺은 자객들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고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낫기도 전인 어느 날 성루(城樓)에서 일을 논의하는데 갑자기 여러 장수들이 성루를 내려간다. 그들은 도인(道人) 우길에게 다가가 큰 절을 하고 신선(神仙)이라고 부르며 우러러 공경한다. 신선을 믿지 않던 손책이 우길을 체포하라고 명한다. 잡혀온 우길에게 재주를 물으니 바람과 비를 불러 올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우길에게 단에 올라 비를 빌도록 명하니, 때맞추어서 큰 비가 내린다. 이 광경을 본 여러 관원들은 더욱 우길에게 감복하여 큰 절을 올린다.
우길의 능력이 대중을 현혹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손책은 속히 참수토록 명한다.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길을 죽였지만 이때부터 손책은 꿈속에서 여러 차례 우길을 만나게 되고, 우길의 혼에 이끌려, 앉으나 서나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이 황홀해진다. 어느 날 거울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손책은 거울 속에 서있는 우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곧장 거울을 깨뜨린 손책은 크게 고함을 지른다. 이로 인하여 아물던 상처가 다시 터지고 오래지 않아 죽게 된다.
이렇듯 우길에 대한 나관중의 묘사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발생될 수 없는 황당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터무니없는 날조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역사상 근거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ㆍ손책전』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강표전(江表傳)』, 『지림(志林)』, 『수신기(搜神記)』 등에는 이에 관한 내용이 산견된다. 그래서 배송지는 ‘『강표전』, 『수신기』 등에 적힌 우길에 관한 기록은 동일하지 않아서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라고 했던 것이다.
북제(北齊) 사람인 안지추(顔之推)는 『환혼기(還魂記)』에서 이렇게 서로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모순까지 있는 부분을 연결시키고 있다. 즉 손책이 우길을 처치한 사건과 사냥 도중 자객에게 상처를 입은 사건을 뒤바꾸어 배치했다. 손책의 상처가 나으려는 참에 거울을 들고 자신을 비추다가 거울 속에 나타난 우길을 만나게 되는데 정작 뒤를 돌아보면 사라지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다가 그만 거울을 부수고 크게 고함을 지르고 그 바람에 아물던 상처가 터지고 조금 뒤에는 죽고 말았다라고 한 것이다.
나관중은 이러한 자료들을 적당히 정리해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형태의 소설로 완성했다. 즉 나관중은 역사소설과 역사과학을 적당히 혼합함으로써 『수신기』와 같은 종류의 기괴한 사건을 그의 역사소설 속으로 적절히 끌어들였던 것이다. 만약 그가 이런 기괴한 사건을 역사사실로 간주했다면 당연히 착오를 범한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를 쓸 때 설서예인들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신기하고 괴이한 사건을 특별히 중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은 수많은 독자들을 흡인하기에 충분하여 누구나 듣기 좋아하고 읽기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나관중은 사건의 진실성이나 합리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곧바로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면서 참고한 서적이 광범위하다는 것은 장점이겠지만, 때로는 너무 박잡해서 괴탄하고 황당한 것들마저 끌어들인 것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당연히 각도를 달리해서 평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모종강이 이 회의 평주에서 이르기를, ‘손책은 신선을 믿지 않는데, 이 점이 바로 손책이 영웅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한 무제(漢武帝)와 같이 영명(英明)한 경우도 오히려 신선에 유혹되고 방사를 좋아했으나 손책은 그렇지 않으니, 이에서 우리는 그의 식견이 보통 사람을 크게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지의 평주에도 역시 이런 의미가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그들의 고명한 점이다.
그러나 나관중이 표현하고자 한 본의는 아마도 손책이 우길의 손에 죽었다고 여긴다거나 손책의 죽음이 우길과 지극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나관중이 묘사한 것처럼 진실로 우길이 비바람을 불러 오고 병을 고칠 수 있었다면, 손책은 감히 우길을 죽이지 못하고 응당 공경하고 받들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우길과 같은 이러한 신선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