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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 프로듀서 인터뷰
<발리…>가 어두운 심리멜로였다면 <파리…>는 밝은 럭셔리 멜로
<발리에서 생긴 일>은 어떻게 기획된 것이었나.
김기호, 이선미 작가의 이름을 딴 이김 제작단에서 쓰여진 시놉이 있었다. 처음 제목은 <청춘에 건배를>이었다. 기획 자체가 다른 것들과 좀 달랐다. 4명의 이야기인데,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따라가기에 굉장히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없었던 심리멜로였다. 그런데 오히려 이 점이 좋아 보였다.
(불편하다? 다시 말하면 관습적이지 않았다? 그 일례. 하지원은 드라마의 처음이 아니라 어느 순간 뒤늦게 비참한 몰골로 등장한다)
시작부터 엔딩이 결정되어 있었다고 알고 있다.
발리는 처음 촬영 때 가서 엔딩을 찍고 왔다. 좀 이례적이었다.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어차피 여기에서의 사랑은 100%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힘들다. 어느 쪽이 희생당해야 한다면, 이 사랑 자체를 깨끗하게 끝내자고 판단했다.
(여기에 비해 <파리의 연인>의 사랑 방정식은 이미 이뤄질 항수를 미리 짝지워놓고 그 큰 틀 안에서 갈등을 배치한다. <파리의 연인>에서 해피엔딩의 두 주인공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특별히 발리에서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있었다. 김기호 작가가 발리의 방직공장에서 한 일년 정도 근무했었다고 했다. 발리를 잘 알고 있더라. 그런 경험이 배경이 된 것 같다
발리 안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책을 등장시킨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원래 시놉에 있던 것이다.
(이로써 <발리>에서 은연중에 묻어나던 ‘재벌 농락’의 의도는 작가의 것으로 추정된다)
<발리에서 생긴 일> |
<파리의 연인>으로 넘어가보자. 이번에도 20회 만에 끝내는가.
기본 20회 예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지금 자꾸 연장하라고 권유하기도 하는데, 그건 시청자 반응과 배우 컨디션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결정이다.
<파리…>는 <발리…>를 모델로 다른 극본가와 다른 연출자를 통해 좀더 대중적인 작품을 해보자는 기획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발리, 파리, 구리, ‘리’자로 끝나는 걸로만 하자, 뭐 이런 농담도 한다. (웃음) 100% 그 점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발리…> 때문에 <파리…>에 대한 부담이 컸다. 기획단계만 놓고 보면 시기적으로 <파리…>가 <발리…>보다 빨랐던 기획일 수도 있다. 순번만 정해진 거다, 일년치가 지금 동시에 가고 있다. 이런 점은 있다. <발리…>하고 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해보자. 사실 <파리…>도 기본 시놉은 조금 어두웠었다. <발리…>가 어두웠으니까, 그것보다는 좀 밝게 가자는 것이었다. 재밌고, 쿨하게. 같은 멜로지만, ‘럭셔리 멜로’를 하자는 거였다. 현실이 많이 어렵지 않은가? 드라마라도 좀 밝게 보여주려고 했다. 영화사 디즈니가 상표등록을 해놔서 못 썼지만, 처음 제목은 <프리티 우먼>으로 하려고 했었다.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컨셉을 가져왔다. 이미 봐서 알겠지만…. 그리고 이것도 사실은 김정은을 보고 쓴 거다.
(‘럭셔리 멜로’라… 음… 솔직하다…. 한마디로 이것이 <파리의 연인> 인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이 점을 두고 딴죽을 한번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정씨는 그냥 듣기로 한다. 발리… 파리… 엑조티즘으로 날려버리는 현실이라…)
인물 구성이 유사하다.
하지만, <파리…>는 넷이라기보다 셋이고, 삼각구도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에는 악한 역할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악이 없다. 그래서 문윤아 역의 오주은이 끼어들게 된 거다. 그렇다면 이동건쪽보다는 박신양쪽에 붙여야겠다 생각했다. 파리에서부터 들어오는 건 좀 무리수인 것 같았다. 파리에서는 아름답게 만나는 과정만 보여주고, 악다구니는 한국에서 하자고 결정한 거다. 이번은 삼각구도가 중심이다.
초반에 <파리…>는 <발리…>보다 훨씬 더 빨리 반응이 왔다.
<발리…>는 초반이 좀 복잡했다. 드라마 자체가 단순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바로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파리…>는 상상력 필요없이 바로 눈에 보인다. 대사에서 주는 재미도 있고. 김정은의 모습이 빨리 와닿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파리라는 장소의 배경과 느낌도 무시 못한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는 밝게 시작했다. 만나는 동기 자체도 재미있게 시작했고. 뻔한 스토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 보기에는 편했을 것이다.
<발리… > 때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발리…>는 초반에 엔딩을 찍어놨다. 하지만, 이건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른다. 기본적인 생각은 해피엔딩으로 끝내겠다는 것 정도다. 기본 설정을 박신양과 김정은으로 해놨으니까. 시청자들 의견을 수용하면서 가려고 한다.
정씨, 머리를 싸매고 <파리의 연인> 인기 원인을 분석하다
돌아와서 정씨는 사견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인기가 <파리의 연인>으로 어떻게 확장된 것인지 그 맥락을 생각해본다. <파리의 연인>의 현재 인기몰이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이하는 정씨 생각.
첫 번째, ‘엑조티즘’(이국성)이다. 두 드라마를 제작한 SBS 특별기획팀뿐 아니라 타방송사에서도 이국에서의 사랑은 지금 인기가 높은 소재다. 일에 매여 오도가도 못하는 시청자들은 매주 저녁마다 주중에 지쳤던 몸을 이끌고 돌아와 앉아 브라운관 안에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들 안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현실을 잊게 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의 어느 도시. 과연 홀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정씨가 처음 <발리에서 생긴 일>의 첫회를 보면서 자리를 잡고 앉은 이유도 난생처음 나가본 해외 여행지 방콕의 풍경이 언뜻 스쳐서인 것 같다. 엑조티즘으로 현실의 고통을 날려버리는 것. 정씨는 스스로에게 이 점이 옳지 않다고 반복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이에게 독인지, 약인지 판단하는 건 지금 정씨가 할 몫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국의 풍경으로 드라마를 여는 것이 시선을 끌 수 있는 매혹의 요소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두 번째, 여주인공의 캐릭터다. <씨네21>에 기고하는 어느 필자는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하지원이 연기한 이수정을 두고 신데렐라라고 불렀지만, 정씨의 생각은 다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냥 ‘하녀’다. 그것도 아주 비천한 하녀다. 게다가 그 비천함을 즐기는 독한 하녀다. 정씨가 정말로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다. 이 비참한 하녀가 두 남자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고 또 미루면서, 그러나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계급 사이를 오가면서, 쫓아도 쫓아도 다시 기어들어와 일을 하겠다고 뺨을 맞으면서, 결코 뒤집어지지 않을 계급 모순을 그 독한 행동으로 오락가락하면서 갈피를 못 잡게 흔들어버리는 그것이 정씨의 눈길을 끌었다. 젊은 청춘 남녀의 독한 사랑 이야기로만으로도 인기의 이유는 충분했다고 <발리에서 생긴 일>을 평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파리의 연인>보다 시청률이 낮았다는 것은 그 하녀의 힘이 대중의 시선 어딘가에 무의식적으로 끼어들어 신분상승의 욕망에 껄끄러운 균열을 냈기 때문이라고 정씨는 생각한다.
때문에 진짜 신데렐라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이 아니고,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이다. 가령, 이수정이 “마음을 주지 않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에 반해 강태영은 “내 자존심 지키자고 어떻게 당신 망신 줘요”라고 말한다. 이수정은 독하지만, 강태영은 착하다. 하지원은 강하지만, 김정은은 부드럽다. 시청자들은 후자를 더 보고 싶어한다. 별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데, <파리의 연인>은 그 클리셰를 클리셰로 돌파한다. 가령, 지구상 최고의 낭만적 도시로 손꼽히는 파리에서, 단숨에 꿈의 프리티 우먼이 되는 드라마로 시작하고, 서울에 와서도 잊을 만하면 <문 리버>(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석을 동경하던 오드리 헵번의 그 주제가)를 틀어준다. 시청자들은 그 판타지의 실체를 분석하는 것까지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이다. 시청률이 그걸 말해준다.
세 번째, 그 여주인공을 둘러싼 남자주인공들의 배치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재벌 정재민은 그저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는 돈을 뿌리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것이 매력이었다. 강인욱은 지성적이고, 강인했다. 그 점이 그 인물을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 둘은 비교의 대상이었고, 서로가 져서는 안 되는 경쟁의 대상이었다. 지면 죽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전멸을 택했다. 그 점이 오히려 인기 상승을 불러오긴 했지만, <파리의 연인>이 처음부터 명확한 대조점들을 두루두루 뒤섞으면서 얻은 수치에는 못 미친다. <파리의 연인>에서 연적인 두 남자주인공은 피붙이로 묶였고(석연치 않지만), 그 매력을 반반 나눠가졌다. 그것이 유도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서 <파리의 연인>은 프리티 우먼을 꿈꾸는 여성 시청자들만이 아니라 정씨 같은 평범한 남성들의 판타지를 끌어들인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남성 판타지가 <파리의 연인>에서는 마구마구 자극된다. 아! 멋지다고. 멋지고 싶다고. 그래서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 어록은 비수가 되지만,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어록은 솜사탕이 되는 법이다.
지금까지 말한 이러이러한 이유들로 <파리의 연인>은 <발리에서 생긴 일>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인기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정씨는 결론내린다. 하지만, “럭셔리 멜로”… 이 말 참 슬프게 들린다고 되뇐다. 그러나 다시 또, 정씨는 이번 주말에도 영화를 보지 않거나, 술을 먹지 않는다면 텔레비전 앞을 서성거릴 것이다. 남들 다 보는 거 나 혼자 꺼리지 말고 하던 대로 쭉 볼 것인지, 아니면 금단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정씨를 고민에 빠뜨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파리의 연인>의 힘은 대단하다고, 또 자뻑 자평할 것이다. 드라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정씨가 ‘<파리의 연인>이 인기있는 이유’에 대해 털어놓은 해석은 그저 이 정도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첫댓글 개인적으로 어떤 드라마가 더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발리에서 생긴 일'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분노가 정재민을 파멸로 몰고가는 것이 더 현실성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들끼리 그깟(?)사랑좀 덜 받았다고 적이 된다는게 더 이해가 안된다.
위의 말은 내가 좀 심했나. 암튼 돈많은 부자 만나는 여자에 대해 부러운 건 그녀가 예쁜 옷을 입어서도, 멋진 프로포즈를 받아서도 아니다.이 실업난에 너무도 쉽게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는게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낙하산이라고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받겠지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