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태실로 올라가는 진입로 주차장서 약 100 m 거리
세종대왕 왕자 태실에 대한 안내 표지판
태실전경 근래에 경계석 울타리와 관람하기 편리 하도록 공사가 진행중인데
거의 마무리중 이사진은 들머리에서 바라본 모습임.(2010 . 1.8 )
태실의 위치는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 8 번지에 있으며 1975년 12월 30일자로
지방 유형문화제 제88호로지정되었음
세종20년(1438년)에서 세종24년까지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왕손 단종(端宗)등 20 여기의
태실이 안치 되었는데 세조(世祖)가 단종의 왕위찬탈이 있은뒤인1457 년(세조3년) 단종 복위에 연류된 금성대군
등 다수의 태석(胎石)과 태비(胎碑)는 산아래로 파헤쳐 굴러지고 13기만 남았다.
1975년 보수때 일부태석은 산아래에서 찿아 복원했고 세조의 태석을 알리는 예조판서 홍윤성(洪允成)이
쓴 비문(碑文)은 세조의 잘못을 미워하는 백성이 비석의 글을 매끈하게 깍아 알아볼수 없다.그곳에서
출토된 분청인화문(粉靑印花紋) 백자(白磁) 태호(胎壺:태항아리)와 분청상감연화문(紛靑象嵌蓮花紋)
덮게 명기지석(銘記誌石) 등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고 그외는 1929 년 왕가(昌德宮)로 이관됐다.
(태실에서 건너편 선석사 까지는 0.5 km 거리)
지금의 모습은 안쪽 에서 입구쪽 을 향하여 바라본 모습 최근에 성주 8 경에 지정되었음
선석사에서 바라본 태실이 모셔져 있는 태봉 봉우리모습
인촌池 에서 바라본 태봉(중앙 봉우리가 왕자 태가 뭍혀있는 태실임.)
원래 이곳 태봉자리는 문열공 이장경(李長庚)의 묘소였는데 명당터로 알려져
묘는 대가면 옥화리로 이장 되었다고함, (星州의脈 文化財 總攬 上卷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