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여전히 가을이었다.
가을은 이미 떠나버렸다고. 피아골계곡과 만복대 억새 능선을 걸어, 정령치 끝으로 시뻘겋게 떨어지는 해를 보며. 가을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 이젠 그곳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 달 전과 똑같은 기차를 타고 두 달 전과 똑같은 버스에 승차해, 똑같은 사찰을 들어서 똑같은 길로 똑같은 배낭을 메고 걷고 있었다. 대신 똑같은 시간, 바람과 공기가 제법 서늘했고 하늘은 어둑했으며 태풍은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초록 숲도 앙상한 가지 끝을 퍼런 하늘 속으로 쓸쓸히 묻고 있었다.
이런 새벽은 차라리 잿빛 하늘이 어울린다. 그 메마른 나뭇가지와 저벅저벅 밟히는 나뭇잎의 이른 아침은 오히려 우울한 회색 하늘, 키작은 흐린 눈빛이 제격이다.
나는 두 달 전보다 늙어 있었고 검은색 바지와 붉은색 파일티를 걸쳐 입었다. 두 손을 주머니 깊숙히 찔러 넣고 쌍계사로 오르는 길은 20대 후반의 내 슬픈 나이만큼 적막하다.
텅빈 매표소를 지날 즈음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여전히 사라진 흰개에 집착하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자 커다란 개가 떡- 하니 버티어 서서 매섭게 짖어댄다.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내가 놀랐던 건 그 개의 위세가 아니라 그가 정말 춘우처럼 희어서.
춘우야... 개는 짖기만 한다. 춘우야... 개는 계속 짖기만 한다. 너 춘우 아니니...??? 짖던 개가 입을 꾹 다물고 달려간다. 저 앞 스님쪽으로 달리던 개가 나를 이윽이 쳐다본다. 나와 함께 한신골로 나가던 춘우 모습이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나의 얼굴을 측은하게 내려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그다. 땀으로 얼룩진 눈가에 금세 이슬이 맺힌다.
스님, 저 개 이름이 뭐죠...??? 언제부터 기르셨어요...???
흰개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스님에게 나는 따지듯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기만 한다. 입을 열기도 전에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난처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춘우.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지리산의 바람과 지리산의 흙내음과 지리산의 별들을 잊지 말라고. 내가 너를 잊더라도 너는 지리산을 잊지 말기를...
춘우가 없어진지 4년이 되도록 지리산 부근의 흰개는, 이제 어른이 되었을 흰개는 모두 살아 있는 춘우가 된다. 그래, 살아 있기만 하다면...
***
혹시 산행 준비하고 계십니까...???
배낭 패킹을 하다 말고 티비 수상기로 고갤 돌렸다.
그렇다면 아주 좋은 선택하셨습니다.
[9시 뉴스]의 기상 캐스터 말 그대로, 쌍계사를 돌아 불일폭포로 오르는 길은 쾌청하다. 등산로 좌우로 붉은 나뭇잎이 뚝뚝 가을을 남기고 있었다.
나는 마치 어느 소설, 작가와 제목이 무언지 기억할 수 없는, 아니 기억할 필요도 없는 어느 소설. 단, 그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꼭 가을이어야 하며 공간적 배경은 반드시 산으로 오르는 조그만 숲길. 배낭을 멘 여인이 주인공인 단편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멋진 광경을 그리진 않았다. 11월 중순, 단풍은 이미 10월 산행 때 <별로>라고 결론지었고. 발목까지 쌓이는 함박눈을 욕심내기엔 지독히도 이른 계절. 11월 중순, 그 어중간한 계절의 길목.
그런데.
그곳에 아직 가을이 남아 있었다. 마치 영상 아름다운 커피 광고의 일부처럼. 어쩌면 내 마음 한구석이 그런 모습을 원하고 그러한 색깔을 원해, 사실 그날 지리산 남부능선 초입은 황량한 벌판이었지만. 나는 마치 우울증에 걸린 여자처럼 <아름답다>라고 혼자서 결론 짓고 그렇게 단단히 믿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바보같이.
이름을 알 수 없는 흰개와 스님이 사라진 쌍계사 경내를 향해 합장하고 불일폭포 길을 오른다. 추석 땐 사정없이 쏟아붓는 빗줄기에 걸음도 배낭도 마음도 무거워, 한참을 고생했는데 다행히 그땐보다 속도가 붙고 땀이 찬다.
이제 익숙할만도 한 조릿대, 나의 땀냄새와 살갗의 까칠한 느낌을 기억할만한 그곳의 조릿대는 여전히 내게 냉담하고 차가워서, 내 구릿빛 팔뚝을 자꾸만 긁어 상처를 낸다.
상불재 삼거리로 올라서자 오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쬔다. 바위에 눕는다. 조금 졸립다.
후두둑- 주루룩-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빗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바람이... 청학동 쪽으로 사라지는 바람이, 나뭇잎 몇 개를 스치우면서 후두둑- 주루룩- 빗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곤하게 잠든 내 가슴 속으로 그림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쌍계사에서 삼신봉으로 오르는 길은 참으로 힘들고 지겹다. 왼편의 선유동 단풍이 유독 곱게 물들어 있는 것만 빼곤 이렇다 할 눈요깃감도 없이 길고 지루하다. 촛대봉 아래로 손톱보다 작은 산장 지붕이 보인다. 지금쯤 세석의 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행락객 수십 명을 머리에 이고 선 삼신봉이 시야에 들어오자 조금 편하다. 삼신봉 너머로 이어진 능선은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라 그제사, 휴- 깊은 숨을 토해낸다.
노고단 - 반야봉 - 벽소령. 저게 덕평봉인가. 이건 세석산장. 촛대봉 - 일출봉 - 제석봉 - 천왕봉. 그리고 아래로 보이는 내대리의 시커먼 아스팔트까지.
해발 1천 고지가 훌쩍 넘는 지리산 주능선엔 회색빛 가지만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마치 말라붙은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스산하다. 사진 찍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멍청히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본다. 광양만의 은빛 바다까지 훤히 보이는 봉우리 끝에 서서 나는 지리산의 숨결을 안는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삼신봉을 출발하기도 했지만 아직 전망대 바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해질녘 왕시루봉 너머로 붉은 덩어리가 너울대고 있다. 아주 동그랗지도 않은 태양 주위가 뿌연 어둠에 덮여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늘금 전체가 바다처럼 수평선을 만든다. 주홍빛 굵은 띠가 서쪽 하늘 끝까지 조용하게 물들어간다. 카메라를 꺼낼 여유도 없이 일몰은 순식간에 산능선 뒤로 미열이 가시지 않은 붉은 이마를 쑥- 파문 채 숨을 거둔다.
땅거미가 짙게 깔린 남부능선은 매력적이다.
전망대 바위에서 헤드램프를 켠다. 별들이 하나씩 하늘 위로 모습을 나타내고 세석의 환한 불빛만이 외로운 등대처럼 나의 지친 마음을 토닥인다. 별이 많아지고 있었다.
별. 하나 둘 셋...
바람도 그새 잠이 들어, 하늘을 흐르는 별빛만이 쉭쉭- 소리를 낸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 별 흐르는 소리.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야광별을 볼 때마다 나는 두 해 전 여름, 이름 모를 바위에서 보았던 은하수를 떠올린다.
방 안의 야광별은 지리산에서 보았던 무수한 별과 추억을 매일 밤 내 꿈속에 쏟아 부웠는데. 별... 얼마만이지. 이렇게 별 흐르는 소릴 들으며 산행하는 게. 기분이 개운하다. 바람도 잠잠하다.
***
세석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8시가 넘어서였다. 식사 준비로 분주한 등산객들 틈에 현의 단단한 어깨가 보인다.
[현]은 그의 이름이다. 4년전 6월, 대성골에서 처음 본 그 남자의 이름이다.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인 영신대를 찾아, 무작정 떠난 대성골 입구에서 나는 현을 보았다. 흰색 개와 나란히 선 그의 그을린 피부가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였다. 의신의 조그만 민박집에 벌써 한 달을 머문다던 그도 마침 영신대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대성골 초입을 지나 산행에 나선 사람은 버릇없는 여자와 흰개를 이끈 낯선 남자 뿐이었다.
바짝 마른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위로 뜨거운 태양이 연신 춤을 춘다. 대성폭포를 지나 동네 어른이 알려준대로 방향을 잡지만 영신대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무엇에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을까. 무엇이 그와 나의 판단력을 그토록 흐리게 만들었는진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세석고원의 서쪽 봉우리인 영신봉에서 일렁이는 물결처럼 남부능선이 유려하게 뻗어내려가고, 그 오른쪽으로 보기에도 아찔한 골짜기가 하나 있다. 바로 대성골이다. 지리산 남쪽 자락에서는 드물게 깊고 신령스러우며, 아직까지 그런대로 때묻지 않아 정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한껏 느껴지는 계곡이다. 한편으로 대성골은 과거 군경 토벌대에 쫓겨 포위된 많은 빨치산들이 참혹한 순간을 맞이했던 음울한 죽음의 골짜기이기도 하다.
지리산 대성골.
내게는 참으로 특별한 길이었다. 90년대 중반, 대성교에서 시작해, 그날 하루를 모두 쏟아붓고도 세석까지 닿지 못했던 야릇한 곳. 6월 첫종주를 마치고 두번째로 찾아간 낯선 산행지에 덩그러니 남아, 덜컹대는 나의 심장소리와 반달곰 앞에 꼼짝없이 얼어붙어 오도가도 못했던 환상에 시달리던 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희미한 시편 23장을 외우며 애써 무서움을 밟아내던 그 초행길에서 결국 나는 세석을 코앞에 두고 음양수의 서늘한 바위 위에 누워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다시는 대성골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물론 그후로도 몇 번 가게 되었지만 30여 회가 넘는 나의 지리산 산행 중 유일하게 비박을 한 곳이, 아니 길을 잃고 부득이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곳은 모두 대성골이었다.
지리산 대성골.
그리고 그곳에서 현과 흰개 춘우를 처음으로 보았다.
우측 계곡을 오르면 길은 다시 양쪽으로 나뉜다. 그곳에서도 다시 왼편으로 꺽고 왼편의 또 왼편으로 꺽자 능선이 나타난다. 길은 당연히 없었다. 우거진 숲을 헤치고 전진하지만 과연 이 능선 끝에 영신대로 향하는 비밀의 문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흰개와 동행한 현은 애당초 길찾기엔 관심도 없는 이방인이었다.
바위 위로 올라 주위를 살핀다. 갑자기 무릎에 힘이 빠진다. 아득하게 멀어진 능선 위로 철난간이... 그렇다면 세석으로 향하는 바위 위의 철난간일텐데. 영신봉과 세석이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능선의 저 끝에 걸쳐진 철난간은 다리의 힘을 일순간에 흐트러 놓는다. 한참을, 아주 한참을 잘못 올랐다.
계곡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도 확실치 않은 깊은 수목을 뚫고 우리는 다시 내려가야 했다.
시간은 오후 3시.
내일 출근을 위해선 하산을 서둘러야 했지만 나는 그리 하지 않기로 한다. 이렇게 한번쯤 일탈을 꿈꾸는 것도 절실히 필요했는지 모른다. 출근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진다.
지류 삼거리로 돌아와 간단한 식사를 한다. 현은 빈손이었다. 흰개 춘우에게도 빵 조각을 건넨다.
계곡이 양쪽으로 갈리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꺽었는데 이번엔 우측으로 가기로 한다. 계곡 상단부의 어마어마한 바위가 영신대이기를 바라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길은 또 양쪽으로 나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꺽어 오른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서자, 계곡 아래에서 보았던 바위가 나타난다.
영신대가 맞을까...
바위 - 아니, 그것은 바위가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절벽이며 으리으리한 성벽처럼 넓고도 높게 버티어 섰다 - 를 돌아 길을 찾아보던 현과 춘우가 맥없이 돌아온다.
길이 없다고. 주능은 아주 멀게만 보인다며.
샘터와 제단도 보이지 않는다. 세석은 종잡을 수 없는 위치에 숨어 있고 우리는 대성골 상류 어디 쯤에서 분명 길을 잃은 것이다.
산장에 전화를 한다. 대충 있는 곳을 얘기하고 영신대로 가는 길을 물어볼 요량이었는데 우리는 졸지에 구조를 요청하는 꼴이 되었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요. 큰세개골 본류를 따라 쭉- 올라오다가 대성폭포 지나, 오른쪽에 있는 지류를 따라서 계속 올랐거든요. 성벽같은 거대한 바위가 버티어섰는데 한두 사람 비박할 굴도 있고.
병풍바위네요. 곧 갈테니깐 하산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꼼짝말고 기다리십쇼.
산장엔 이미 전화를 해둔 상탠데 하산과 비박을 두고 현과 의견이 자꾸 엇갈린다.
오후 5시 30분. 랜턴을 갖고 온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큰세개골 이정표까진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산행에서의 예외성은 언제나 존재해서 가파른 계곡길을 내려서다, 어둠이라도 쏟아지면 낭패다.
어차피 하산을 하여도 출근은 어려운지라 나는 끝까지 이곳에서 비박할 것을 고집한다.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그럼, 대성폭포까지만 갑시다. 물이 있어야 뭐라도 해먹을 거 아니예요. 현이 억지로 나의 손목을 잡아 끈다.
산장에서 온다잖아요.
그 사람들이 오겠어요...???
이곳 지리에 훤하다니까 기다려 봅시다. 폭포까지 내려간다 해도 가파른 비탈에서 어떻게 자요. 계곡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요. 비는 오지 않겠지만 만약 비라도 내리면... 차라리 여긴 굴도 있고... 무서우면 당신과 당신의 개만 내려가요. 전 여기 있을 테니까.
20분이면 도착한다는 공단 직원의 호루라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이 다시 전화를 한다. 위치를 설명하지만 그쪽에서도 병풍바윈가... 장군댄가... 확신을 하지 못한다.
현은 내 고집을 더이상 꺽지 못하겠는지 털썩 주저 앉는다. 킁킁대던 개도 그의 옆에 배를 깔고 눕는다.
우리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빛이 남아 있을 때 장작을 모은다. 마른 나뭇가지가 많아, 고작 몇십 분 주위를 살폈을 뿐인데도 하룻밤 충분히 불을 지필 수 있을 것 같다.
현을 남겨두고 그의 개와 10여 분 떨어진 곳에 물을 길러 간다. 숲속을 헤집고 나오면 마치 중국의 계림처럼 별천지가 펼쳐지는데, 도대체 나는 지금 어디에 와있는 걸까. 밑에서 올려다보면 끝을 찾을 수 없는 저 어마어마한 바위벽의 정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찌하다 이곳까지 발을 돌린 것일까. 어둑한 계곡을 향해 춘우가 컹컹 짖어댄다. 모든 것이 미안하다.
현은 무릎을 가슴에 안은 채 앉아 있었다. 능선 너머로 사라지는 붉은 태양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마지막 해가 떠나버리면 음울한 어둠이 습격해 올 것이다. 수통을 내려두고 흰개의 등을 쓸어준다.
여벌로 가져온 긴바지와 오버재킷을 걸쳐 입지만 준비없이 올라온 현이 너무 추워한다. 내 옷을 그에게 빌려주고 춘우를 부둥켜 안았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위 아래에 장작을 세우고 불을 붙히니 제법 훈훈하다.
하나 뿐인 라면을 끓이고 한 병 뿐인 소주를 씨에라컵에 담는다. 한 개 남은 프랭크 소세시를 나뭇가지에 끼워 살살 굽고 세 등분으로 나눠,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리는 한 봉의 김치를 고맙게 먹고 하나 뿐인 껌을 나눠 씹으며 그제서야 맘놓고 웃어본다.
허전한 하늘에 둥그런 달 하나가 걸렸다. 그러고 보니 보름이었다. 오늘은 현충일이고. 우리는 1952년 1월, 소위 백야전 전투사령부의 제3기 토벌 작전 당시 빨치산 수백 명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대성골 상류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있었다.
전생을 믿지는 않지만 만약 내게 전생이 있다면, 이 산에 젊음과 열정을 뿌린 빨치산이 아니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역사에 남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낡은 이름으로 지리산에 뼈를 묻은 젊음이 혹시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쓴웃음을 토한다. 흰개의 숨결이 손등에 와닿는다.
모닥불 주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우리는 산행 중엔 하지 못했던 말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우리는 모두 20대 중반이다. 아직은 꿈도 욕심도 많은 젊은이였고. 서로의 말에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고 긍정과 부정도 하며. 서울에 남겨둔 직장 문제나 장래 문제, 어깨를 짓누르는 온갖 세파의 무게들은 어느새 기억조차 할 수 없이, 내게 그날 그 기슭에서의 하룻밤은 천상의 시간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모닥불 곁에 앉아 불꽃을 바라본다. 사방은 온통 적막 뿐이어서, 바람이 나뭇잎에 스치우는 소리도 무척이나 크다. 차가운 흙에 등을 기대고 누운 현의 어두운 그림자와 혹여 모닥불이 꺼질까 하여 마른 나뭇가지를 자꾸만 불속으로 집어 넣던 나의 분주한 손길.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든 일들도 이렇게 흔적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미궁 속으로 어둠이 진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의신으로 내려왔다. 아스팔트 위로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6월 7일. 에어컨이 머리 아프게 윙윙- 대는 조그만 공간에서, 가슴을 쥐어 뜯으며 답답해하는 도심의 번잡한 시간 속에 웅크리고 앉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모습으로 근무를 하고 있을 그 시간에... 의신의 도로 위로 쏟아지는 태양을 비처럼 맞으며, 나는 한순간 자연이 되었다가 세상으로 돌아온 나무같다.
너는 맨날 보는 지리산, 익숙한 모습이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곳의 풀내음, 흙내음에 넋을 잃었다. 만약 너무나 쉽게 영신대를 찾았다면 지금의 이런 느낌은 결코 얻지 못했을 거야. 나도 점점 지리산이 좋아진다.
의신의 허름한 민박집에서 한 달째 머문다던 휴학생 현은 무심코 오른 대성골을 내려오며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라고. 구례구역까지 마중나온 현과 그의 흰개 춘우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4년전 초여름이었고 폭설로 입산통제가 되었던 그해 겨울, 나는 세석에서 그와 흰개를 다시 보았다. 진주에 사는 공단 직원의 권유로 얼마간 일을 봐줄 것이라고. 그는 여전히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세석에서만 이틀을 묵고 필요한 물품 구입을 위해 백무동으로 떠나던 길. 진돗개 춘우가 소리없이 길을 나선다. 대성골에서의 내 체취를 기억하고 있는지 흰개는 꼬리를 흔들며 앞장섰다. 나는 스물다섯의 철없는 여자였고 춘우는 눈처럼 하얀 개였다. 3시간이면 내려설 백무동까지는 그 배가 걸렸다. 부식거리를 주섬주섬 어택배낭에 챙겨넣고 등산로로 들어섰을 때 잿빛 하늘은 또한번 무거운 눈을 쏟아붓고 있었다. 길은 이미 눈에 덮혀 보이지 않았고 나의 발자국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여벌 장갑도 챙겨오지 못했는데 그새 손이 곱아 움직이질 않는다. 스패츠 틈으로 차가운 눈덩이가 꾸역꾸역 들어온다. 목이 말랐다. 우측 계곡에 걸린 폭포를 향해 눈을 헤집고 나간다. 내 뒤를 묵묵히 따라온 춘우에게 초코렛을 던져주고 씨에라컵을 꺼내 폭포로 내려선다. 눈을 쏟는 푸근한 날씨 덕에 얇은 얼음 속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쾌청하게 들려왔다. 돌멩이로 얼음을 깨고 물을 마신다. 춘우는 눈을 씹는다. 등산로로 돌아나선 나의 얼어붙은 발이 어질어질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계곡으로 굴러떨어진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무엇을 움켜 잡을 수도 없었다. 잡을 수 있는 건 모두 미끌하게 얼어 있었다. 춘우는 사방을 돌며 매섭게 짖었지만 이런 날씨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다. 얼음이 깨지면서 오른발이 계곡에 빠졌는지 찢어진 스패츠 사이로 뼈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춘우야... 몸을 비틀지만 다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흰개의 이름을 몇 번 부르다가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부르르 몸을 떨다 잠에서 깼을 땐 이미 세석이었다. 현의 걱정어린 눈빛이 나를 무안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춘우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다.
현의 따뜻한 손이 이마를 짚어준다. 돌아올 시간을 한참이나 넘겼는데도 소식이 없자 현과 공단직원 J씨가 한신계곡으로 향한 모양이다. 거기서 비틀대는 춘우를 보았단다. 흰개가 현의 옷자락을 물고 내가 쓰러진 곳까지 안내하였다며.
저도 많이 지쳤을텐데 네가 뭐 예쁘다고 우릴 데려갔는지 모르겠다.
현이 권하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나는 한참을 울었다.
공단 헬기로 산장을 떠나면서 밥 먹는 춘우에게 인사를 못한 게 아쉽다. 그새 얼굴을 익혔으니 차라리 말없이 가라고, 그가 인사를 말린다. 그런데 그것이 듬직한 흰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 갈 것을...
한 달 뒤 그들을 찾아 세석에 갔을 때 춘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등산객을 따라 나섰는지, 지리산 골골을 헤치며 살고 있는지. 사라진 흰개 때문에 빗속에서 울어제낄 적 나를 위로하고, 화개의 향좋은 차와 알 굵은 밤을 택배로 보내주던 따뜻한 손길이 그 사람 현이었다. 현과 나는 그렇게 4년을 알았다.
***
어둠속에서도 그가 나를 알아본다. 배낭을 취사장 한 켠에 세워두고 현과 길을 걷는다. 랜턴을 앞뒤로 비춰가며 오르는 산길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저 산능선 너머 봐라. 환하지. 왜 그런지 아니...???
그의 말대로 고개를 돌리자, 장작더미를 환히 밝힌 것처럼 산너머로 노오란 빛이 일렁이고 있다. 광양제철소의 불빛이다. 현은 웅장한 남쪽을 가리킨다.
남부능선 기억은 나니...???
그럼. 그때 하동에서 점심을 먹고 청학동으로 올랐다. 여기서 내려오시던 분들이 세석까진 힘들 거라고 하더라. 다음날 비박을 하겠다던 내게, 네가 봉투 하나를 찔러 넣어 줬잖아... (부끄러움) 생각 안나나...???
생각 안 나긴...
세석의 현은 거림골로 하산하는 나의 오버재킷 주머니에 몇 만원을 넣어 주었다.
날이 추우니 절대 비박하지 말라고. 3시간이나 내려와서 주머니 속의 봉투를 보고서야 알았지만. 되돌려 주려 해도 받지 않던 그에게 꼭 갚겠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푸르게 젖은 밤하늘 끝으로 뭉게구름이 길게 드리워 있다. 손에 잡힐 듯 민가의 불빛이 보인다. 계곡의 아스라한 물소리가 차량의 소음, 잔소리, 비난으로 길들여진 내 귓속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우리는 백숙으로 식사를 한다. 산장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분명히 11월 세석은 겨울이었는데도, 바람이 가깝게 흐르는 탁자에 둘러 앉아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인다.
현은 딱 2주일 뒤에 결혼을 한다. 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건 작년 가을에야 알았다.
소개해줄 친구가 있으니 꼭 농평으로 와달라는 현의 전화를 받고, 가능한 산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서울을 떠났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겨우 당치마을 입구에 닿는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올라오라고 일러준 민박집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구불구불 시멘트 오르막길을 헐떡대며 오르던 후배의 차는 급기야 지쳐버리고. 차에서 내려 얼마 간을 걷는다. 차가운 바람이 휭- 하고 귓가를 스치더니 이미 보름이 지나버렸는데도 지리산 능선에 걸린 둥그런 달은 푸른빛이다. 자정을 넘긴 깜깜한 시골길에 까치발을 서면 손끝에 걸릴 듯한 달과 별 세 개. 등 뒤로 파도처럼 걸린 남도의 산자락이 층층이 겹쳐진 모습에 자꾸만 감탄사가 쏟아졌다.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면 지리산 능선이 바로 코앞에 있어서, 저 밭 너머로 보이는 건 바로 하늘이었다.
현이 나를 기다리는 곳은 농평마을에서도 제일 윗집, 통꼭봉으로 오르는 제일 첫집이기도 하였다.
어두운 그림자가 소근소근, 민박집 마루에 앉아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현... 그림자 두 개가 동시에 돌아다본다. 현과 여자였다. 술잔을 기울이는 내내 나는 후배와 깔깔대며 웃었지만 한번도 현과 여자를 향해 눈길을 주지 못했다. 다음날 일찍 후배를 서울로 돌려보내고 정장 차림의 나는 불무장등을 넘어 연동골로 산행을 하였다. 일주일을 앓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설 수가 없었다.
세석의 하늘 끝으로 별 하나가 떨어진다.
장가 가니깐 좋니...??? 떨리니...???
춘우가 사라지던 그해 겨울, 빗속에서 한없이 울던 내 20대를 지켜봤던 현은 아직도 나를 착하고 예쁘고 똑똑한 여자로 믿고 있었다. 현의 멋적은 미소 뒤로 말없이 사라진 춘우의 숨소리가 처량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내가 먼저 자리에 눕는다.
***
일출을 위해 일찌감치 촛대봉을 오른다. 여명에 붉게 물든 산자락들이 아름답다.
고갯마루에 걸려 보이지 않던 산너울이 암릉쪽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숨겨둔 새벽 풍경을 원없이 펼쳐 놓는다.
너무 예쁘지 않니...??? 등뒤에 선 현에게 불쑥 묻는다.
도봉산에서 보는 거랑 똑같네, 뭐.
맞아, 도봉산에서 보는 거랑 똑같다. 진짜. (웃고 만다)
흩어져 있는 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동녘 하늘을 향해 시린 눈을 열어둔다.
해가, 시뻘건 덩어리가 선분홍 산자락을 지나 하늘 끝까지 이어진 첫아침의 바람을 가르던 해가... 처음엔 말간 얼굴을 조금 내밀더니 둥그런 하늘을 넘어, 서서히 솟아나고 있었다. 피아골 단풍처럼 붉은, 반야봉의 낙조처럼 바알간 해다.
현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샘터에 들려 목을 축인다.
여기... 전에 남자친구랑 지리산 왔을 때 여기서 물 먹던 기억난다. 너를 알기 훨씬 전이다. 그땐 그 산행이 제일 재밌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왜...???
만약 그때가 제일 재밌었으면 그 다음 산행부턴 그때보다 재미없어야 되니깐 말야. 영신대도 나 혼자 가진 않았겠지.
너는 남자친구보다 지리산을 더 좋아했구나...???!!!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 둔다. 그 산행 마지막 후기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무엇보다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건 지리산, 이라고. '산'과 연관짓던 그애의 돌아선 마음을 그저 유치한 발상쯤으로 치부해버렸는데 그럴 수도 있었겠다, 라고. 5년이 지나서야 헤어진 이유를 조금 수긍한다.
너, 다음에 남자 만나면 절대 산 좋아한단 말은 하지 말아라.
그래야겠다.
떠나기 전 한 번 더 빙- 둘러보고. 몇 년 전 가을. 우리가 하하, 웃으며 물 마시던 그 풋풋한 기억을 미련없이 지워버린다. 세석의 하늘은 짙푸르다.
결혼을 하면 지리산에 자주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떠나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현의 눈동자를 외면하고 돌아나선다. 그의 마지막 그림자가 기억에서 사라지자 불현듯 눈물이 솟는다.
한신으로 내려서는 흙길엔 푸근한 낙엽이 쌓였다. 햇살에 둥그렇게 말린 나뭇잎을 밟을 때마다 등산화 안의 발바닥이 간지러워, 씁쓸한 웃음을 참느라 혼쭐이 난다.
나는 낙엽이 좋다. 색바랜 마른 낙엽, 그래서 발 밑에 아삭하게 밟히는 묘한 느낌과 나뭇가지 사이로 뿌연 햇살이 뿌려지고 그 햇살과 바람 속을 비처럼 나긋하게 날리는 나뭇잎의 마지막 임종을 사랑한다.
모르지.
40대가 되면 전국의 단풍 명산을 맹목적으로 쫓아다닐지도. 입술엔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두리뭉실해졌을 배와 엉덩이를 씰룩대며, 단풍보다 더 현란한 등산 조끼를 단체로 맞춰 입고 산행할런지.
내가 40대가 되어도, 그래봤자 이제 10년 조금 넘은 후의 일이지만. 그때도 이 산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도로를 내고 댐 건설하느라, 여기저기 파고 깍고 메꾸고 퍼내는 바람에. 10년 후쯤엔 크기도 높이도, 산을 이루던 푸른 숲과 맑은 계곡, 싱그런 공기와 숱한 밤별들도 모두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런지.
남편과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훌쩍 떠나 와, 그래, 이 산에 내 20대를 묻었지. 그곳에서 눈이 맑은 청년을 보았고. 그곳에선 마음이 선한 어르신을 만나 뵈었지... 하고. 초췌해진 한 부인이 눈시울을 축축히 적시우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예전 시절을 애써 지운 채 매정하게 돌아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억만금을 다 내어도 돌이키거나 되찾을 수 없는 나의 젊음과 점점 황폐하게 사라져 가는 산...
내 청춘은 지리산을 제껴두고선 설명할 수 없다.
겨울로 들어서는 저 한신의 숲속 어딘가에서 하얀 꼬리를 흔들며 내 품으로 뛰어들 춘우의 환영을 절레절레 삭히며, 나는 지리산을 떠난 춘우와 지리산을 떠날 현을 세석에 놓아두고 산길을 돌아 나선다. 20대 나의 마지막 지리산이었다.
철지난 가내소폭포를 지나 백무동 민박단지로 들어선다. 어찌어찌 하다 보면 특별히 한 것도 없이 산행이 끝난다. 산을 뒤로 하고 하산하는 걸음은 몇 번이고 내 가슴을 슬프게 하지만 내 아쉬움만큼 나를 이렇게 내려보내는 지리산 당신과 그 사람 현도 아쉽고 아플 거라고. 텅빈 거리를 달리며 위로해본다.
열어둔 버스 차창으로 늦가을 따스한 바람이 불고 실상사가 마주한 천왕봉을 여전히 그곳에 남겨둔 채 쓸쓸히 버스가 돌아나선다.
언제나 그렇다.
산은 늘 그 자리에 묵묵히 남아 있고. 그 산을 찾는 사람이, 혹은 나 자신만이 변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