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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에서 승리로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제가 대학 다닐 때 ‘기업의 도산’에 관해 연구하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복학생선배 한 분이 도산한 기업을 예로 들며 그 기업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이 교수님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더니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성공한 사례를 통해 강의할 때보다 더욱 열을 내셨습니다. 저는 그 교수님에게 그런 열정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를 통해서 더욱 절실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호수아 6-12장에 나오는 가나안 전쟁기록에는 승리한 사건과 함께 패배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아이 성 전투와 다음 주에 배울 기브온 사건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패배의 사건을 승리한 사건보다 더 길게 기록했습니다. 아마 승리한 사건보다 패배한 사건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왜 패배했습니까? 또 어떻게 해서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1. 패배한 이스라엘 (7장)
지난주에 공부한 6:18을 보면 여리고를 점령하기에 앞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그런데 오늘 말씀 1절을 보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에 손을 댄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아간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고 또 아간 자신도 그 일이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고 이스라엘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2절을 봅시다. 여호수아는 아간의 범죄나 하나님의 진노를 알지 못한 채, 아이와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탐들이 돌아와서 이삼천 명만 올라가면 충분할 것 같다고 보고했습니다(3). 그들은 견고한 성 여리고를 점령한 막강 이스라엘 군대라면 2,3천명만으로도 쉽게 아이 성을 공략할 수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은 36명의 전사자를 내고는 고지에서 내리달아 공격해 오는 아이 군대를 당하지 못하고 퇴각해야 했습니다(4,5a). 5절 뒷부분을 보면 이스라엘은 그만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전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이 녹았는데(5:1),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녹아버렸습니다.
3천 명이 나간 전쟁에서 36명이 전사했다면 그렇게 큰 손실이라고는 할 수 없고, 또 한 번 정도 지는 일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어 버린 것은 그들이 이제까지 패배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36명이 전사하자 패배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마음이 녹아버렸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이 왜 패배했습니까?
2,3절에서 정탐꾼들이 이삼천 명만 올라가도 되겠다고 보고한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자만심이 있었고, 그들이 자만심에 기초해서 작전을 짰기 때문에 패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탐꾼들을 문책하거나 그들에게 패배의 책임의 뒤집어씌우지 않았습니다. 6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날이 저물도록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이 정탐꾼들에 의한 정보의 오류나 수적인 열세나 작전의 미숙함보다도 더 깊은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패배의 원인을 신앙적인 문제로 보았습니다. 8,9절을 봅시다. “주님, 우리가 적들에게 지고 돌아온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일 것이니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가나안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면 이 기회에 우리를 아주 진멸하려 할 텐데, 그러면 주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 주님의 이름을 위해 뭔가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8,9; 私譯)
10절을 보면 이렇게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패배한 원인이 바친 물건을 도둑질한 데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범인을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모이게 한 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제비를 뽑으니 유다 지파가 나왔고, 유다 지파에서 제비를 뽑으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에서 제비를 뽑으니 삽디 가족이 뽑혔고, 삽디 가족에서 제비를 뽑으니 아간이 뽑혔습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의 죄를 추궁하자 아간이 입을 열어 고백했습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21)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어 아간의 장막을 수색하고 훔친 물건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아간을 체포해서 모든 이스라엘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갔습니다. 거기서 아간의 가족과 재산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때에야 하나님께서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습니다.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먼저 탐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닫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나와 광야에서 누더기만 걸치고 지내던 아간에게 시날 산, 즉 made in Babylon의 외투가 얼마나 멋져 보였을까요? 또 재산이라고는 가축 몇 마리밖에 없었던 유목 민족에게 은덩이 금덩이는 정말 탐나는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탐심이 생기자 그는 여리고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을 생각하지 못했고, 자신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당할 괴로움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탐심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적발해 내신다는 사실도 배웁니다. 아간은 전쟁의 북새통에서 약간의 물건을 감춘 것은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죄가 허다합니다. 감사를 하고 청문회를 열고 재판을 해도 드러나지 않는 죄가 많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지은 죄가 무덤에 갈 때까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는 모든 게 다 드러납니다. 그 날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수치를 당합니다. 아간은 자기 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가 제비 뽑힐 때까지도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는 범죄 했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다하더라도, 죄가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회개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한 사람의 범죄가 신앙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사실 아간의 범죄는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간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셨고, 아간을 돌로 치고 불사른 후에야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간의 범죄를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아간의 범죄가 방치된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전쟁을 하면서도 땅뺏기와 약탈에만 급급하게 될 것이요, 그러면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는 거룩한 뜻을 잃어버릴 것이며,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도둑 떼가 되고 맙니다. 그보다도 자기들끼리 서로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하다가 스스로 망하고 맙니다.
한 마디로 아간은 암적인 존재였습니다.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하찮은 병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발견되지 않고 방치되면 나중에는 손도 댈 수 없게 되고 병자는 죽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방법은 암을 조기발견하여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술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시기 위해 아간을 조기발견하여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술하셨습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60만분의 1의 작은 문제였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니 몇 사람 안되는 개척센타에서 한 사람에게 암적인 요소가 생긴다면 그 영향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한 사람의 작은 문제 때문에 우리 모임이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매우 두렵습니다. 우리 각자가 죄를 회개함으로써 우리 모임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모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암은 예방이 최고이고 조기발견이 최고의 치료라고 믿습니다.
2. 승리한 이스라엘 (8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간을 적발하여 그와 그가 훔친 물건을 돌로 치고 불살랐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8:1) 그리고 아이와 그 땅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작전을 지시하셨는데, 이번에는 여리고 때와는 달리 매복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둡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 주도면밀(周到綿密)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도도 하지 않았고 작전도 없었습니다. 그저 2,3천명으로 무턱대고 공격하다가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짰습니다. 먼저 삼만 명을 뽑아 밤을 타서 아이 성 뒤로 가 매복할 것이며, 여호수아가 지휘하는 본대(本隊)는 어느 때에 공격하고, 어느 때에 일부러 퇴각할 것이며, 또 어느 때에 다시 방향을 바꾸어 공격할 것이고, 그러는 동안 매복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등의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하여 자칫 무계획적으로 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잘 따르기 위해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중에 영어공부를 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먼저 주도면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2학년에 올라가기 위한 전공공부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짜야합니다. 특히 우리가 2007년 개척역사를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둘째, 전심전력(全心全力)했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정탐도 머리와 마음을 쓰지 않고 대강대강 했고, 전투도 3천 명만 보내서 쉽게 해치우고자 했습니다. 나머지는 장막에서 잠을 자거나 잡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처음 군사의 열 배인 삼만 명으로 매복조를 편성했고, 나머지 모든 군사들이 일어나 아이 성을 공격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는 밤에 매복조를 보내놓고 난 다음 진중에서 백성들과 함께 잠을 자고(9),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백성들을 점호했습니다(10). 이렇게 이스라엘은 처음과 달리 온 마음과 온 힘을 다 해 전투에 임했습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쉬운 일이라고 해서 힘을 다 하지 않으면 어떤 허점이든 허점이 생겨서 일을 그르치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을 대충대충 하는 사람은 일 하는 기쁨이 없고 그것이 자기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남이 하는 일만 부러워하게 되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지루해집니다. 일하는 기쁨 대신에 향락만 찾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과 힘을 다 해 일하면 능력 없어도 큰일을 이룰 수 있으며, 짧은 시간에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큰일을 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능력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과 힘을 다 해 일하면 일 할수록 기쁨이 생깁니다. 그래서 마음 바쳐 일하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그를 존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요즘 회사에서는 일을 너무 시켜서 지긋지긋하다는 마음이 생기고 벗어나고 싶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 일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마음을 다하여 일하는 기쁨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공부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잠을 자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마음을 다해 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또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일사불란(一絲不亂) 했습니다. 밤을 타서 매복조가 떠난 이튿날,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군사를 이끌고 아이 성 북쪽에 진을 쳤습니다(11). 그리고 그 날 밤 군사 5천명으로 아이와 벧엘 사이에 또 매복조를 배치하고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이를 본 아이 왕은 쥐가 독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음인지 이스라엘을 총공격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작전대로 지는 척하면서 광야 길로 도망했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을 패퇴시켰던 아이 군사들은 신이 나서 이스라엘 군을 추격했습니다. 아이 군사들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벧엘 군사들도 합세했습니다. 그들은 아예 성을 비우고 성문을 열어 놓은 채로 전군인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18)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켰습니다. 단창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습니다. 이를 신호로 아이 성 뒤에 매복해 있던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함성과 함께 일어나 텅 빈 아이 성을 점령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검은 연기가 솟는 것을 신호로 이번에는 도망하던 이스라엘 본대가 방향을 바꾸어 함성을 지르면서 아이와 벧엘 연합군을 공격했습니다. 동시에 아이성을 점령했던 매복조도 함성을 지르면서 뒤편에서 아이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와 벧엘 군은 이스라엘의 본대와 매복조 사이에 갇혀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20).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아이와 벧엘 사람들을 전멸시키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아이성에 진주하여 아이 왕을 죽이고 아이를 불살라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어버렸습니다(28).
이 같은 전과는 이스라엘이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짰을 뿐만 아니라, 일사불란하게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매복조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여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거나, 유인조가 아이 군을 유인하다가 정말 잡히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불순종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먼저 공을 세우려고 여호수아의 단창 신호를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설쳤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매복조와 유인조로 나누인 이스라엘 군대는 오히려 전력이 약화되고 혼란에 빠져서 아이와 벧엘의 연합군에게 또다시 패배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적은 숫자로 개척역사를 섬기지만 일사분란하게 순종한다면 큰 능력을 발휘하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넷째, 처음의 패배가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주도면밀, 전심전력, 일사분란에 더하여 이스라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은 그들이 처음에 패배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처음에 패배함으로써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 차려 전심전력했고, 패배한 쓰라린 경험 때문에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짜고 일사불란하게 순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음에 패배했기 때문에, 방심한 아이 군대를 유인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승리는 패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자주 패배하고 실패하는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패배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패배했다고 해서 절망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은 패배가 승리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에는 여러 모로 미숙하기 때문에 실패할 때도 많고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여 누워 지내거나 패배의 쓴맛이 싫어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젊은 날에 신나게 실패하고 담대하게 패배함으로써 이를 장차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30-35절을 보면 전투가 끝나자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하나님을 위해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들에게 준 율법을 그 제단 돌에 새겼습니다. 또 그들 가운데 함께 사는 이방인들을 포함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궤 앞에 세우되 절반은 그리심 산 쪽에, 절반은 에발 산 쪽에 서게 한 다음 축복과 저주의 모든 율법의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낭독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가 끝나고 여호수아는 단을 쌓아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고, 백성들을 모아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전투가 끝나면 새롭게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재편성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휴식을 갖기 위해 술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여호수아는 그 모든 것보다 제사를 드리고, 돌에 율법을 새기고, 백성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했을까요? 전쟁은 진지 구축이나 부대 편성이나 충분한 휴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이 전투가 준 가장 귀한 교훈이었습니다.
맺는 말 - 패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매복 작전을 지시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신호하도록 결정적인 공격의 시점을 잡아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보다도 처음에 패배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큽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패배를 통해 아간의 문제를 드러내고 수술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도둑 떼나 ‘광야의 무법자’로 전락하고, 그러면 여호수아가 염려했던 대로 한 번의 패배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이름이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입니다(7:9). 패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오묘합니다. 저희가 패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래서 그 패배가 승리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