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지인들이 묻는다. 김선생 이번에는 어디로 가요. 항상 싸돌아다닌 사람으로 여긴 탓이다.
지리를 공부하는 자들의 본색이 답사였는데 근래에는 일반인들도 나들이나, 여행이란 표현보다 답사나 탐사라는 말을 잘 쓴다. 뭔가 의미 있는 구경거리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 담겼고, 재충전 사고가 터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 나의 답사지는 순천 별량면 일대이다. 광주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순천만 갯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순천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한숨을 돌리면 뾰족 봉우리가 왼편에 들어온다. 해발 297m이나 곧 눈에 띈다.
그 생김새 따라 바로 ‘첨산(尖山)’으로 벼랑진 모양이 반영되어 별량(別良)이 되었고, 참으로 별난 지역성이 깃들어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이 든다.
별량면은 순천시에서 가장 넓은 3만여 두락의 농경지와 6백만평 쯤의 양식장을 돌보며, 약 3천 가구 8천명 정도가 사는 곳이다. 옛날 갯벌이었던 들판에서는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된 ‘풍성원’ 브랜드를 지닌 쌀이 생산되고 있으며, 순천만 간석지에서는 맛조개를 비롯하여 짱뚱어, 참고막, 게가 잡힌다. 더불어 자드락 밭에서는 꼬들배기, 비닐하우스에서는 오이와 미나리가 재배되고 있다.
동서로 놓인 경전선 철도와 4차선 국도를 따라 동쪽은 순천의 근교촌이요 서쪽은 옛 낙안군 소속이어서 그런지 벌교 냄새가 난다. 제석산에서 오봉을 거쳐 호사산, 운동산, 수덕산으로 이어지는 해발 5백여m 산등성이가 배산이 되어 맑은 시냇물이 65개 마을과 들녘을 적셔주고 있다.
용두 황새등 선착장에서 거차, 창산, 화포, 쇠리(우명), 장산으로 이어지는 17㎞나 되는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포구와 갯벌, 양식장과 횟집은 혼자 접하기 아깝다.
요즈음 동네 가까운 밭에 노란 꼬들배기 꽃이 피어있고, 포구에는 맛조개 잡이가 한창이다. 용두어촌계 책임을 맡고 있는 김호빈에 따르면 열대여섯 아낙들이 널(뻘배)을 타고 하루에 한 사람이 70~80㎏을 채취한다고 한다.
오후 7시쯤에 벌교 도매상이 포구에 대기하고 있다가 ㎏당 4,700원에 사간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정원석 옹은 우리 용멀은 동네 형국이 금환락지(金環落地)인데 앞 갯바닥도 금밭이 되어 빈집이 없으며, 특이 타지에서 이사 온 사람마다 잘 되었다고 자랑한다.
면소재지인 장기마을 북쪽 반곡에서 큰(암)첨산에 오른다.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단연 순천만이 멋지고, 순천이 강남골임을 끄덕거리게 한다.
별량의 진산 또는 태산으로 여길 만한 뷰포인트다. 불행한 일이 다가오면 곡소리가 들린다는 얘기가 전하고, 가뭄 때 기우제를 올렸다니 성소(聖所)도 된 곳이다.
몇 년 전 민학회 답사 때 장흥에서 고흥을 거쳐 소록도를 가면서 유난히 솟아오른 뫼를 세 개나 보았다. 장흥을 상징하고 있는 억불산부터 벌교에서 뱀재 넘어 숫첨산(313m), 녹동 비봉산으로 풍수에서 이른 화산(火山)들로 문인으로 풀면 붓이요 무인으로 풀면 칼이나 창이 된다.
녹동 선창에서 비봉산을 바라보면서 동행한 장흥 강수의 옹의 한 마디. “난 흥에서 왔다가 흥으로 가네.” 장흥과 고흥 고을 이름에 ‘흥(興)’자 붙은 내력이 이 속금 모양 산과 관련된다는 느낌이다.
우리 산꼭대기 선은 월출산과 같이 날카로운 첨산 형태보다는 무등산과 같이 무덤덤한 모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등산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파른 면을 어느 정도 오르면 순하고 편한 능선에 이르고, 다시 비탈을 타면 훤한 곳이다. 즉 높이에 따라 단을 이루면서 이른바 평탄면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상부근에 꽤 너른 터가 펼쳐 있어 산성(山城)의 적지로 담양 금성산성이 그 본보기다.
최근 자기 고장에서 나는 신선한 제 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자는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이 관심거리다. 지금 별량 갯가에 가면 맛조개가 맛좋다. 여름이 오면 짱뚱어가 보약이다. 널을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엄니들보다 서툴러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맑은 갯바람과 함께 흠뻑 바른 머드(mud)크림이 향토지리공부를 더 아름답게 꾸리는 듯하다. 널 타러 갑시다.
/김경수(전대사대부고 교사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