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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노래 부르는 서순원 교사와 3학년1반 아이들. 가운데 앉은 아이부터 시계방향으로 은성, 미나, 지은, 민영, 병욱, 수민
글│황자경 본지 편집장
계절마다 진달래와 국화꽃이 만발한 곳, 창으로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작은 분수에선 물 흐르는 소리가 이어지는 곳, 노랫소리가 피어올라 까르르 웃음꽃으로 터지는 곳, 그곳, 서순원 교사와 여섯 명의 아이들이 만드는 꿈같은 교실, 개령초등학교 3학년 1반이다.
언제나 노래로 시작하는 수업시간 서순원(60) 교사는 학교에 가장 먼저 출근한다. 여름에는 6시30분, 겨울에도 7시20분을 넘기지 않는다. 맑은 공기로 헹구어낸 교실을 따뜻하게 데워놓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글씨를 잘 쓰는 지은이, 통통한 병욱이, 멋쟁이 민영이, 침착한 미나, 까불이 은성이, 이쁜이 수민이가 하나 둘 모여 들면 서순원 교사는 병아리를 품는 어미닭처럼 양팔을 벌려 아이들을 맞는다. 수업은 늘 노래로 시작한다. 입을 모으고 짹짹짹 부르는 노랫소리에 맞춰 서 교사의 피아노반주에 신바람이 실린다. “우리 선생님은 절대 화내지 않아요. 선생님이 잘해주시니까 우리도 선생님께 잘해야 해요.” 아이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선생님이 좋아서다. 선생님이 좋으니 학교생활이 즐겁다.
웅크린 마음 다독이며 글쓰기 지도 도화지 같이 깨끗한 아이들에게 꿈을 그려주고 싶어서 서순원 교사는 교직에 들어섰다. 이왕이면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갔다. 벽지학교 점수가 따로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나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학교를 자원해 찾아갔다. 강벼랑을 따라 1시간여를 걸어가야 했던 초임지에서 그곳 아이들의 머리도 깎아주고 때도 닦아주며 세상을 비추는 창이 되었다. 당시 부모가 장애인이라고 돌팔매를 당하며 놀림을 받던 한 아이가 있었다. 서순원 교사는 자신의 하숙집으로 아이를 데려와 한 달간 생활을 같이하기도 했다. 노을이 내리는 강변을 함께 거닐며 ‘흔들리는 나뭇잎의 속삭임’을 들려주었다. 늘 주눅 들어있던 아이는 나날이 싱그러워졌다. 마음을 다독이자 그 안에 차있던 맑고 환한 감성이 터져 나왔다. 서 교사는 그 마음을 글로 담게 했다. 아이는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돌팔매를 당하던 미운 오리는 어느새 마을의 자랑스러운 백조가 되었다. “글쓰기는 마음을 담는 일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문장력이 늘고 자기반성도 하게 되지요. 좋은 작품을 많이 읽히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도록 하면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그 후에 한 문장 한 문장 개별지도를 하면 효과적이에요. 글을 쓰면 색깔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만의 색을 찾는 일이 바로 글쓰기이지요.”
서 교사는 교실에서 쓰는 글과 자연 속에서 쓰는 글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을 찾는다. 현장체험학습을 나가서도 즉흥적으로 백일장을 열기도 한다. “소년소녀가장이나 한부모가정에서 자라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에게 그들의 힘든 삶을 글로 승화시키도록 하는 일이 가장 보람됩니다. 늘 칭찬받던 아이들은 칭찬에 무디지만, 위축되고 줄곧 혼나던 아이에게 칭찬을 건네면 아이는 크게 달라져요. 못하는 아이에게 쉬운 질문을 줘서 칭찬거리를 만드는 일도 교사의 역할이지요.” 그는 근무지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익명으로 장학금을 건네고 편지를 써서 격려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다. 새학기가 되면 그는 담임학급 아이들의 생일을 찾아 달력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생일축하 편지를 써주고 평소에 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을 준비해주는 것도 서 교사의 기쁨이다.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예쁜 티셔츠를 봐도 아이들에게 입히고 싶고, 고운 꽃이 만발하면 아이들의 손가락에 꽃반지를 끼워주고 싶어 마음이 들뜬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만 좀 하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하지만 내 마음이 시키는 걸 어떡합니까.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저는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 걸요.”
교직은 하늘이 내린 천직 서순원 교사는 한때 교직을 떠나기도 했다. 결혼과 동시에 시댁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시 6년11개월의 길지 않은 교직생활을 마감했을 때만해도 서 교사조차 자신에게 찾아올 후 폭풍을 예견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떨어져있는 동안, 그는 나날이 시들어갔다. 시쳇말로 ‘상사병’이었 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몸이 나뭇가지처럼 말랐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환청 마저 들렸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학교 앞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며 울었다.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다시 임용시험에 도전해 교단으로 돌아왔다. 1년8개월만의 일이다. 아이들을 향해 뻗어나가는 그의 마음을 무엇도 막지 못했다. 아낌없이 아이들을 사랑했으나 40년 가까운 교직생애 가운데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심각한 문제아로 낙인찍힌 6학년 반장아이가 있었는데 주의를 주어도 계속 장난을 치며 수업을 방해하자 서순원 교사는 “반장이면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 6학년은 반장을 잘못 뽑은 거 같 구나.”는 말을 한 것이다. 그날 밤, 서 교사는 한잠도 자지 못하고 자신을 질책했다. 이튿날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편지를 건넸다. 교사로서 잊을 수 없는 부끄러운 자기고백이다. 서순원 교사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체벌보다 감화시키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극단적인 상황에서조차 아이를 탓하기보다 교사로서 자신을 벌한다. 한 번은 학교에 소문난 부적응 아이에게 “선생님이 잘못 가르쳤으니 선생님 잘못이다.”며 피가 맺히도록 자신의 손바닥을 회초리로 내리쳤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용서를 구했다. 이후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아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에 매달리고 학교의 재래식 화장실 청소도 자처하고 나섰다. “내가 아팠던 만큼 아이가 자라줬습니다. 아이들은 나를 사랑해서 선생님이 혼내시는구나 하고 느끼면 절대 튕겨나가지 않습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체벌만이 있을때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아이들을 훈계할 때는 꾸중이나 채찍보다는 감화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바보 같은 우직함으로 아이들 곁에 머물다 그가 현재 몸담고 있는 개령초등학교는 여러 근무지 가운데서도 더욱 특별한 곳이다. 헤어지지 않으려고 울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차마 떼어놓을 수 없어서 한 번, 두 번, 세번 연거푸 근무를 자청해 벌써 네 번째 근무하게 된 곳이다. 세 번째 근무만기가 됐을 때는 김천시내 근무연한(25년)을 꽉 채워 어쩔 수 없이 전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순원 교사는 아이들과 얼싸안고 울며 “선생님이 1년만 있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자택이 구미에 있었던 터라 김천의 개령초까지 출퇴근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집 앞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그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김천으로 내신을 냈다. 주위에선 모두 ‘바보’라며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과의 약속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과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제게 ‘바보’라고들 하지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지만 김밥 판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 시골 주민들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우체국 직원, 자 신의 다리를 끊어주고도 행복하게 웃는 아름다운 철도원…. 이런 분들입니다.” 서순원 교사는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공부하여 꿈을 이룬 후엔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삶이 보석처럼 빛나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서 교사는 구미시 무을면에 장만한 그의 전원주택에 해마다 아이들을 초대해 1박2일 동안 특별한 추억을 쌓는다. 백일장을 열어 담임이름으로 표창도 하고, 장기자랑, 게임, 시 낭송회도 연다. 과일과 채소를 거둬 한 아름씩 아이들 품에 싸주는 일도 잊지 않는다. 퇴직 후에도 학교의 협조를 얻어 전원주택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1박2일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꽃처럼 아름답게, 꽃처럼 향기롭게’ 살고 싶다는 서순원 교사. 그에게 선생님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세상의 부귀영화/ 다 접어두고/ 외지고 구석진 곳에서/ 창밖에 세월 가는 것도 잊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켜온/ 외길 인생 … [중략] …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긴 밤을 하얗게 밝히고/ 심신이 부족한 제자/ 알차게 키우느라/ 온 몸이 다 부서져도/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던 당신. (서순원 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