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28
고양시에 사시는 아저씨에게 좌대를 찾으러갔다.
70세인 아저씨는 원숙된 솜씨로 좌대를 제작한다.
20여년 수석생활에서 좌대값만 수천만원 들었을 것이다.
수석에 맞게 좌대를 제작하여 만족으러운 경우는 별로없었다.
수석종사자들이 열악하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였다.
강돌은 김동철씨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즈음에는 업종변경하였다.
여러곳을 섭렵하다가 아저씨를 알고 멀지만 이곳으로 다닌다. 그로부터 고양수석을 소개받았다.
고양시에 고양수석(지 용균) 사장은 젊은날 건설쪽에 있으면서 수석을 알고
지금은 롯대마트에 다니면서 수석의 량이많아 가게겸 전시겸 하고있다.
만나는 순간 진정 수석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20여년의 경륜이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처음보는 순간 오랜 벗과같은 느낌이다.
그에게서 석도돌 2점과 외국돌2점을 불하받았다.
이즈음엔 바람을 쏘이려 영흥도에 간다고한다
나도 그렇다.
강돌에서 해석으로 바뀌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해석의 거부반응을 바다여행에 핑게를 대고 70여곳을 2`3백번 가고보니 미련이 없다.
특히 외국돌을 접하고보니, 국내에서 탐석으로 작품하는 것은 비경제적이고 그냥
강과 바다가좋고 맑은 공기가 좋고 석우들이 좋을 뿐이다.
그래서,
삼척으로 아내와 여행겸 떠날 계획을 수정하여 가까운 영흥도로 추억여행을떠났다.
지용균 사장과 동행하게 되어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아내는 나를 이해해 주었다.
지혜로운 아내가 언제나 고마울 뿐이다.
6시에 출발하여 고양수석에서 지 사장을 만나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시화방조제에 도착했다.
수도권 사람들이 가장쉽게 바다에 접 할수있는 곳이다.
대단한 토목사업이고 자연 파괴다.
어짜피 정답은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마련이니까?
시화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대부도는 육지가되더니
7년전에 대부도와 선제도를 연결하는 선제대교가 개통되고
선제도와 영흥도를 연결하는 영흥대교가 개통되어 지금은 영흥도마저 승용차로 갈수있는 편리한
여행지가 되어 분당에 살던
한때는 한달에 한번 꼴로 회먹으러 바다바람 쏘이러 혹은 탐석하러 가곤 했다.
정말 풍광이 좋은 곳이다.
별장부지가 속속등장한다.
영흥도 산지로 내려가는 언덕에서
석질좋고 물씻김 좋지만 좋은 작품은 나올듯 나올듯 나오지 않는다.
내가 수석을 많이도 사들인 것은 탐석이 않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애석생활의 중심에는 탐석이있다.
오늘도 산들산들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공기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광
말없이 새월감과 자연미를 풍기는 돌같을 바라볼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늘 내곁에 있어주는 사랑스럽고 고마운 아내의 산책모습
지용균씨의 자연에 동화된 모습
주름석이 나오던 큰돌밭
영흥도의 풍광
적당한 산책후 영흥도 회타운으로 자리를 옮겨 전어구이와 전어회로 입맛을 돋우고 용균씨와 끝없는 석담을 나누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