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산행기(4박5일)
인천공항 -->장춘공항-->이도백화(버스로 11시간 이동)1박 -->백두산천지 관람, 장백산호텔 1박(백두산, 백운봉등산-->연변(연길)도착(1박)-->북경-->대련도착(1박)-->인천공항도착(오후8시)도착. 백두산
최근에까지 활동을 하였던 휴화산(休火山)으로 북위 41°31′∼42°28′, 동경 127°9′∼128°55′에 걸쳐 있고, 그 총면적은 약 8,000㎢에 달하여 전라북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 한편, 동쪽과 서쪽으로는 완만한 용암대지熔岩臺地)가 펼쳐져 있어 백두산은 한반도와 멀리 북만주지방까지 굽어보는 이 지역의 최고봉이다. 백두산의 이름은 먼 옛날부터 여러 가지로 불리어 왔다. 문헌에 의한 최초의 이름은 불함산으로 ≪산해경 山海經≫의 〈대황북경 大荒北經〉에 “넓은 황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이라고 이름한다. 숙신 땅에 속한다(大荒之中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라고 기재되어 있다. 한대(漢代)에는 백두산을‘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고 부른 바 있으며 남북조의 위(魏)시대에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 하였고 또는 ‘도태산(徒太山)·태백사(太白山)’이라 불렀다. ≪북사 北史≫에 “말갈국 남쪽에 종태산이 있는데, 중국말로 태황이라 하며, 세상사람들은 이 산을 받들어 모셨다. 사람들은 산상에서 오줌을 누어 더럽힐 수 없다 하여, 산에 오르는 자는 용변을 본 뒤 그릇에 담아갔다. 산에는 곰·범·이리가 있는데 모두 사람을 해하지 않고, 사람 역시 감히 죽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위서 魏書≫와 ≪수서 隋書≫에 모두 도태산(徒太山)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북사≫의 종태산(從太山)은 도태산의 오자일 것이다. 당나라 때는 태백산이라 불렀고, 금(金)나라 때에 이르러 장백산(長白山) 또는 백산(白山)이라 불렀다. 우리 나라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백두산을 ‘태백산(太伯山)’이라 칭하였다. 또한 ≪고려사≫의 광종 10년조에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 쪽에서 살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백두산의 명칭은 불함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단단대령·개마대산·도태산·태백산·백산·장백산·백두산 등으로 불리어왔으나, 한대 이후 불리어진 명칭의 공통점은 백(白), 즉 희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백두산 산정은 거의 사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을 뿐 아니라, 산정부는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눈〔雪〕이 아니더라도 희게 보이는 데서 그 이름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開國)의 터전으로 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다.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천지(天)를 비롯한 절경이 많은 데다가 독특한 생태적 환경과 풍부한 삼림자원이 있어 세계적인 관광의 명소로서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는 산이다.
장춘(長春)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성도(省都).
위치 중국 지린성 면적 1만 8881㎢ 인구 약 203만 명(1998)
면적은 1만 8881㎢이고, 인구는 약 203만 명(1998)이다. 지린성을 끼고 있으며, 이퉁강[伊通河] 연안에 있다. 쑹랴오[松遼] 평원 중부지역으로 지린성의 행정·경제·교통·문화의 중심지이다. 연평균온도는 4.8℃이고, 1월 평균온도는 -16.9℃, 7월 평균온도는 22.9℃이다. 연강우량은 611mm이다.
청(淸) 후기에 산둥성[山東省] 사람들이 개척하기 시작하였고, 러시아가 둥칭철도[東淸鐵道]를 부설한 이후부터둥베이[東北] 대평원 중앙부의 교통 요지가 되었다.러일전쟁의 결과로 둥칭철도의 창춘 이남 부분이 일본에 넘어갔고, 1935년에는 창춘 이북 부분도 만주국(滿洲國:1934~1945)에 매각되었으나 2개 철도의 합류지점으로, 교통의 요지 구실을 계속 유지해왔다.
일본에 의해 만주국이 성립되자 수도가 되어 신징[新京]이라 개칭하고, 정치·문화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1954년 성도를 지린[吉林]에서 창춘[長春]으로 옮겼다. 중화인민공화국 이 수립된 후인 1956년에 중국 역사상 최초로 자동차 공장이 세워졌고, 기계·화학·전기·유리·식품가공 등의 공업도 일어났다.
특산물로는 인삼, 녹용, 담비가죽 등이 있다. 시의 북쪽 교외에 공장지대가 있고 노동자 주택단지도 조성되었다. 둥베이대학을 비롯하여 의과대학·사범대학·기타 연구소 등의 교육·문화시설과 교육기관에 지린대학, 둥베이[東北]사범대학, 지린공업대학, 창춘[長春]지질학원 등이 있다. 관광지에 난후[南湖]공원, 위만황궁[僞滿皇宮], 창춘영화촬영소, 부월담(浮月潭) 등이 있다.
* 장춘공항에서 여기가 중국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작은버스(33인승)을 타고 이도백화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랜동안 차가 밤운행을 하면서 가는 것 같았다, 중간에는 기사가 길을 잘못들어 헤메기도 하느것 같았다. 11시간의 긴시간이 지나서야 숙소인 호텔에 새벽2시가 다되서야 도착 했다. 오는 도중에 저녁을 중국식당에서 먹은술 이과두주가 과했는지 다들 피고하고 힘들어 보였다.
이도백화
백두산은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16개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최고봉은 북한에 있는 장군봉입니다 천지는 북한쪽에 많이 차지하고 있으며 백두산 전체면적의 2/3이 중국에 있다고 합니다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르고 관리는 임업국과 보호국에서 관리를 합니다 관활은 고도 1000m를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이도백화에서 천지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짚차로 올라가며 20분정도 차량으로 올라가 5분이면 천지에 도착한다.
* 아침에 장백산 입구에 도착, 버스로 갈아타고 중간에 짚차로 천지가 보이는 곳까지 오른다 짚차 기사를 제외한 탑승인원은 6명, 우리는 총인원이 가이드가지 13명 이었다 , 짚차 2대로 준표,정표를 나누어서 한차에 7명이 타고 올랐다. 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본다는 것이 정말장관이었다, 조선족 가이드가 하는말이 10번와서 8번 정도는 천지를 완전히 보기가 힘들정도 라고하면서 오늘은 우리일행이 운이 좋다고 한다. 정말 그 말처럼 천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한국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천지가 바로내 발밑으로 내려다본다는 것이 감이 새롭기만 했다. 사진촬영에 정신없이 여기저기에서 가서 찍고 찍어주는라 바쁘기도 했다, 조금 있다가 가이드가 대장에게 무엇인가 제안을 하는 것 같았다. 천지까지 가려면 짚차로 다시 내려갔다, 장백폭포에서 천지까지 올라와야 하는데 여기에서 직접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모두는 찬성하고 중국 안내원을 따라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래는 않되는것인데 우리가 특별했나보다..^^(조금의 페이가들었다).
천지에 발을 한번 담거보고기념사진한 장..., 천지에 산다는 산천어회도 먹었다 우리나라 소주 처음처럼과 함께...정말 좋았다는 말밖에는 없다.
연변조선족자치주 [延邊朝鮮族自治州] 중국 지린성[吉林省] 동부에 있는 자치주 위치 중국 지린성 동부 면적 4만 3547㎢ 인구 219만 5000명(1998)
주도(州都)는 옌지시[延吉市]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북간도 라고 불렀다.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 12월에 자치주로 변경되었다.
옌지[延吉]·투먼[圖們]·둔화[敦化]·허룽[和龍]·룽징[龍井]·훈춘[琿春]의 6개 시와 왕칭[汪淸]·안투[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중조선족이 4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한족(漢族)·만주족(滿州族)·후이족[回族]의 순이다.
지린성 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접한다.창바이산맥[長白山脈]과 라오예링산맥[老爺嶺山脈] 경내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옌지분지가 펼쳐진다. 이 때문에해발고도 500∼1,000m 지점이 많다. 이 산지에서 흘러 나오는 하천은 둥베이수계[東北水系]의 근원이 된다.
주요 하천으로는 투먼강·쑹화강[松花江]·무단강[牡丹江]·쑤이펀강[綏芬江] 등이 있다. 투먼강 유역에 있는 중국의 국
훈춘경제개발지를‘동북아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부른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나 변화가 잦고, 강수량은 산지가 많기 때문에 하천의 수량이 풍부하다. 연평균기온 2∼6℃, 1월 평균기온 -14.1℃, 7월 평균기온 21.6℃, 연평균강수량은 500∼700mm이다. 농업은 주로 곡저평지(谷底平地)에서 이루어지며, 쌀·콩·조 등의 곡물을 생산한다. 특히 벼농사는 한국인이 이주한 뒤에 발달하였으며, 9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잎담배는 지린성 생산량의 4분의 5를 생산하며, 그밖에 특산물인 인삼과 과일도 많이 난다.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
위치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면적 390㎢ 인구 약 25만 8000명(1993)
면적은 390㎢, 인구는 약 25만 8000명(1993)이다. 중국 조선족의 문화 중심지이며, 주변 농업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주민의 40%가 조선족이다. 이곳은 청(淸)나라 말기에 간무국(墾務局)이 설치된 뒤 발달하였기 때문에 국자가(局子街)라고도 불렀다.
1902년 옌지청[延吉廳]이 설치되고 1909년 부(府)가 되었으며, 1913년 중화민국 수립 후 현(縣)이 되었다. 1909년 간도협약(間島協約:젠다오협약) 이후에 교역주로서 개방되자 조선인이 많이 이주하여 시의 주변지역을 개척하였다. 부근에는 석탄·금 등의 광산이 있어 광공업이 발달했다. 조선어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으며, 연변대학교·연변과학기술대학교 등이 있다.
* 연길에 저녁도착 한식 식당에서 불고기 및 오리고기 등으로 식사를 하면서 우리나라 소주(5,000원)을 주문해서 마시고 숙소로 이동해서 안마받을 사람과 술마실 사람들로 분류해서 각자 시간을 갖기도 했다. 좀 특이한 것이라면 맥주잔이 소주잔보다 조금크다 우리나라 물컵보다 작은 잔에 겹잔을해서 마신다, 호텔은 전체적으로 입식형태의 룸으로 (신발을 신고들어간다) 이루어져 있다. 중국에서 아침식사를 하다보면 계란과 빵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리고 스프종류가 많다.
베이징 [北京(북경),
정식명칭은 북경직할시[北京直轄市]이다.허베이성[河北省] 중앙부에 있으며, 중앙정부
직할시(直轄市)이다. 시역(市域)은 10구(區)·9현(縣)으로 나뉘어 있다. 즉, 옛 베이징성[北京省] 내성(內城) 안의 둥청구[東城區]·시청구[西城區], 내성 밖 외성(外城) 안의 충원구[崇文區]·쉬안우구[宣武區] 및 그들 성구(城區)를 둘러싼 차오양구[朝陽區]·펑타이구[豊臺區]·먼터우거우구[門頭溝區]·하이뎬구[海淀區]·스징산구[石景山區]·옌산구[燕山區]가 있다. 그 외곽에 창핑[昌平]·퉁현[通縣]·순이[順義]·다싱[大興]·팡산[房山]·핑구[平谷]·화이러우[懷柔]·미윈[密雲]·옌칭[延慶]의
9개 현이 있다.
광대한화베이평야[華北平野]의 북연부(北緣部)에 샤오우타이산[小五臺山]·쥔두산[軍都山]·옌산산[燕山] 등 평균해발고도400∼500m의 산지에 의해 동·서·북의 3면이 둘러싸인 분지가 펼쳐져 있다. 그 주머니 모양의 평지 중앙에 베이징이 자리한다.하이허강[海河]의 지류인융딩강[永定河]·차오바이강[潮白河]이 각각 북서쪽·북동쪽 산지에서 분지로 흘러드는데, 베이징성은 두 하천의 중간에 위치한다.
* 아침 8시 연길공항에서 북경에 도착 도시가 다른도시 보다 많이 틀리다 고층건물하며 차들이 많다. 버스가 전기로하는 전차같은 버스들이 눈에 많이 띤다. 또한 주목할만한 것은 우리나라 차들이 많이 눈에보인다. 나머지는 외제차들이 주류을 이루고 있다 아우디, 벤즈 등....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있어던 삼륜으로된 화물차들도 보인다. 중국 공안차(경찰차)가 우리나라 현대자동차 소나타 다. 중국에 현대자동차 조립공장이 있다고 가이드가 안내한다. 우리가 자금성 천안문 광장등을 둘러보는게 사람구경이었다. 10월1일부터 7일 까지 국경일 이라고 한다. 공산당 창립 57주년 이라고 하나 모...그런가 보다. 저녁에 대련으로 출발하기전 중국북경 오리고기로..^^, (생각난다 우리코메디에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달리는 차에서.... ..) . 북경에서 대련으로 비행기로 이동....! 다롄 : 大連(대연)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랴오둥[遼東]반도 남단부에 있는 도시 면적 1만 2574㎢, 인구 535만 명(1998)이다.
중국랴오닝성랴오둥반도 남단에 위치한다. 35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청(淸)나라 때는 칭니와[靑泥窪]라고 불렀으며,청일전쟁 후 러시아 가 조차(租借)하여, 작은 어촌이었던 곳에 항만을 건설하였다.
러일전쟁후 일본이 50여 년 동안 조차하여자유항으로 하고,남만주철도 본사를 이곳에 두어 만주 경략의 거점으로 삼았으며,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 반환되었다. 1950년 서쪽의 뤼순[旅順]과 합병하여 뤼다[旅大]라고 불렀다가, 1981년에 다롄으로 고쳤다.
둥베이 [東北]지구의 중요한 공업지대 와 항구도시 및 중국 외무해항(外貿海港)과 어업기지로 알려져 있다. 조선·기계·화공·제유·방직·복장가공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선다철도[瀋大鐵道:瀋陽∼大連]의 종점이며, 공항은 홍콩 등을 운항하는 국내선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54개의 중학교와 다롄이공대학[大連理工大學]·다롄해사대학[大連海事大學] 등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해양박물관 ·라오후탄[老虎灘]·방추이도[捧槌島] 등이 있다.
* 대련에서는 저녁때에 조그만 꼬치집에서 양고기를 먹어본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맥주에 양고기와 닭날개꼬치등.....^^ 여기서눈 고기가 흔하게 싸고 맛있다. 중국에서는 고기보다는 야체가 비싸다고 한다. 대련에서 여순감옥을 운좋게 관람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에게는 관람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하고 같이간 한국 가이드도 처음으로 여순감옥 내부는 처음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가 뼈저리게 아프게 느껴지는 이곳은 우리선열들의 순국하신 감옥이며 안중근 의사님이 계셨던 곳이며, 순국하신 형장까지 잘보존되어져 있다. 일본의 만행은 이곳 멀리까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열바치게 만들어 놓았다. (국력은 곳 힘인 것 같습니다.) 대련에서 점심식사를 하던중. 식당에서 여직원이 다른여직원을 손으로 얼굴을 때리는 사건목격, 식사하는 손님들이 많은데...... 여기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옆에있는 직원이나 식사하는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식사만 할뿐.... 별로 관여하지 않는 것 같다. * 이번 백두산 산행을 마치면서 같이 동행했던 11명의 산막회 회원님들과 기쁨을 같이 나누며 가이드 이신 김형석씨에게도 4박 5일 동안 동행수고 해주시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
첫댓글 민족의 혼이 살아있는 천지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머시따.....
나도 지난해 백두산천지를 보면서 ...백두산과 백두산 천지가 한반도 중심에 있다면 우리겨레 민족들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손에손잡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축제를 하면 좋을 텐데...산막산악회 회장대행겸부회장님,산악대장님,감사님,산막산악회 권고문님등 ,산악회 주요회원님들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원정산행을 안전하게 다녀온것을 감사드리며,수천년 변함없는 백두산과 백두산천지의 고고한기풍처럼 산막산악회 발전을 기원 합니다...웅쇠님 백두산소개와함께 주변글 그리고 역사적인자료등,백두산 산행기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