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일시: 2009.2.22. 05:25-08:55, 10:23-12:43
2.날씨: 비, 3.6 - 8.5도, 북북동 12.4m/s 습도 60%
3.산행 지점기록
가) 돌산읍 金鼇山,向日庵
윤아슈퍼(05:24)-栗林峙(05:52)-金鼇山(06:19-24)-삼거리(06:50)-金鼇峯(07:18)-向日庵(07:36)-관음전(07:46)-하산바위샛길(07:59)-쉼터,식사(08:05)-일주문(08:19)-공단주차장(08:51)
나) 여수시 수정동 오동도와 紫山
오동도 들머리(10:23)-삼각점(10:36)-용굴(10:45)-서약바위(10:57)-등대(11:02-16)-일출관망지점(11:20)-동방파제(11:38)-일출정(12:03)- 일출암(12:09)-紫山전망대(12:20-25)-충무정(12;28)-버스주차장(12:49)
4.산행인원과 교통 : 좋은사람들 카페 산행,관광버스
5.gps data
가) 돌산읍 金鼇山,向日庵
Cartographic Length = 9.199 km Average Speed: 2.7 km/h Total Time: 03:25:45
나) 여수시 수정동 오동도와 紫山
Cartographic Length = 9.171 km Average Speed: 3.8 km/h Total Time: 02:26:04
6.지명유래 : 국토지리정보원 및 돌산읍 홈페이지(http://yeosu.go.kr/open_content/zone/dolsan/)참조
돌산은 서쪽의 가막만. 남쪽의 외해인 남해, 북쪽의 여수 반도를 바라보는 도서였지만 현재는 돌산대교로 여수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반도적 위치는 항구 발달에 유리하여 천혜의 어장을 형성할·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과거 공동 어장을 중심으로 한 연근해 어업과 최근 양식업의 증가는 돌산의 지리적 특정을 잘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방답첨사진(防踏僉使鎭)과 선소(船所)가 설치되었고 군사들의 생계를 위한 둔전(屯田)이 형성되었으며, 교통·통신 수단으로서 봉수는 한양까지 연결되는 직봉 가운데 채 5거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특히 군내리에는 방답진 선소의 굴강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주변 지역에서 훼손되어 버린 것과는 달리 역사적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가) 율림리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리(里)이다. 돌산도에 위치하며 봉황산 자락과 금오산이 있어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고 개가 발달해 있으며 율도가 속해있다. 자연마을로는 율포, 백포 등이 있다. 율포는 대율과 소율 사이에 있는 밤개에 있는 마을이어서 밤개, 한자어로 율포라 불린다. 마을이 커지자 대율과 소율로 나누어 졌다. 백포는 힌개 앞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 앞 갯가에 흰 바둑돌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오산 동남쪽 중턱에는 신선대(소금강)가 있으며 원통암터가 있다.
-금오산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산. 높이 323m이다. 여수반도에서 돌산대교로 이어진 전라남도 남단의 돌산도에는 여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출 풍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향일암이 있다. 향일암은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 가운데 하나로 금바위의 전설이 얽혀 있다. 풍수지리상 경전을 등에 모시고 바닷속으로 막 잠수해 들어가는 금거북이의 형상이라 한다. 대웅전 앞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머리, 향일암이 선 곳이 거북의 몸체에 속한다. 한때 거북 '구'자를 써서 영구암이라 부른 적이 있고 현재 영구암이란 편액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전설을 더욱 그럴 듯하게 꾸며주는 것이 이 일대 바위의 무늬이다. 바위마다 하나같이 거북등 모양을 닮은 문양이 나 있는 것이다.
향일암에서 백미를 이루는 장관은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암자 뒤에는 어른이 흔들거나 아이들이 흔들거나 똑같이 흔들리는 바위가 있는데 설악산 흔들바위보다 조금 작은 이 바위는 흡사 경전을 펼친 모습이라 이를 한 번 흔들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흔들바위 입구에서 5분 정도 비탈길을 오르면 곧 시야가 툭 트이는 바위지대 위에 서게 된다. 촛대바위·기둥바위 등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짙푸른 바다에 서 있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멋진 광경으로 일출 맞이를 해보는 것이 좋다. 널찍한 암반을 이룬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은 왼쪽의 잘록한 안부로 하거나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1984년 2월 29일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하였다.
-임포 : 예부터 이 마을에서 깨 농사가 잘 된다 하여, 꾀(깨)개로 불리우고 한자음 표기로 임포라 칭함. 읍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위치하며, 마을 뒤로는 금오산(金鰲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앞으로는 남해(南海)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향일암(向日庵)을 중심으로 한 주변경관은 해금강(海金剛)을 방불케 하는 관광 명승지이다. 1700년경에 이씨(李氏)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入鄕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 뒷산인 금오산을 뒤덮고 있는 바위에 새겨진 무늬가 거북이 등에 새겨진 육각형무늬와 흡사하고 동해 쪽으로 뻗어난 줄기가 거북머리를 닮아 멀리서 보면 흡사 거북이 한 마리가 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형상을 하고 있어 거북이가 길게 뻗어 있는 듯 하다 하여 장성포(長成浦)라 하였는데 일인(日人)들이 산세를 보니 금오산 정기를 받아 장시가 태어날 것같아 이를 막기 위하여 거북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깨를 마을 이름자에 붙임으로서 깨개, 즉 임포(荏浦)라 불려졌다 한다.
-소율 : 율림리의 작은 마을이라 해서 소율이라 칭함. 읍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해안 마을로 마을 북쪽으로는 대율리 (大栗里)와 남쪽으로는 임포리와 접하고 있다. 1790년경 여천에 거주하던 영산 신씨 (辛氏)가 처음 이곳에 이주해 왔으며, 그후 남양 홍씨(南陽洪氏)가 지금의 돌산읍 방죽포(防竹浦)에서 들어와 마을을 형성.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을 앞 해상에 조그마한 섬의 형상이 마치 밤송이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밤나무가 많아서 밤개(栗浦-율포)라고 부르다가 그 후 이웃 마을인 지금의 대율(大栗)과 행정리(行政里)를 달리하면서 소율(小栗)이라고 하였다.
-대율 : 이조시대에 병영진을 설치하고 군사들을 조련하였는데 식량이 부족하여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밤나무를 심었다고 하여 율포라 불리다가 이웃마을과 분동하면서 대율이라 했다는 설과 마을 앞 해상에 조그만 섬이 밤과 닮았다고 하여 큰 밤개(대율포)라 부르다가 그 후 대율이라 불렀다 함. 읍 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소율(小栗)마을, 북쪽으로 백포(白浦)마을과 접하고 있다. 1750년경 밀양 박씨가 지금의 광양에서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아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후 신안 주씨(新安朱氏) 김해 김씨 등이 입주,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진을 설치하고 군사들을 조련하였는데, 식량이 부족하여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밤나무를 심었다고 하여 율포(栗浦)라 하다가 이웃 마을과 分洞하면서 대율리(大栗里)라 하게 되었다는 설과 대율(大栗)과 이웃마을인 소율(小栗) 경계 해상에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그 형상이 밤(栗)과 닮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큰밤개(大栗浦)라 부르다가 그후 대율(大栗)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 돌산읍 금성리
성두 돌산읍의 제일 남단에 있는 마을이며 성이 있음으로 성머리로 불리우고, 성두는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읍 소재지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9.4Km 지점에 위치한 본 읍의 최남단 해안마을로서 주로 해안 산악지대로 평지가 거의 없는 지역이나 기암괴석의 해안 절경과 수려한 산세 및 천연의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1640년경 오씨(吳氏)성을 가진 일가가 처음 입주하였으며. 그 후 신안 주씨(新安朱氏)가 화순 능주에서 고흥반도를 거쳐 해로를 따라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해방 후까지 거주하던 오씨 일가는 인근 작금(作錦)마을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는 신안 주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에 12대손 주경빈(朱鏡彬)등 일가를 중심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주변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성(域)이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위치가 이 성(城)의 머리부분에 위치한다고 성두라고 불리어 오다가 해방 후 행정구역 개편시 성두리(星斗里)로 개칭하게 되었는데 1995년 주민들의 청원에 의거 다시 성두(城頭)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다) 여수시 수정동[水晶洞, Sujeong-dong]
여수군 여수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나무가 많아 수동(樹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행동(杏洞)·근동(芹洞)·아동(雅洞)·수동(樹洞)·정동(井洞)·재동(齋洞)·죽동(竹洞)·지동(枳洞)·남동(南洞)·장동(莊洞)·죽전동(竹田洞)·후동(后洞)·내동(內洞)·동천동(銅泉洞)·석성동(石城洞)·평동(平洞)·연동(蓮洞)·종포동(鍾浦洞)·석동(石洞)·예동(禮洞) 등이 병합되어 일본식 지명 표기인 여수면 동정(東町)이 되었다가 여수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여수읍 동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바꿀 때 수동을 분할하여 일부가 수정동이 되었다. 이 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한려동(閑麗洞) 관할 하에 있다. 섬인 오동도(梧桐島)가 있으며, 공공시설로 전라선의 종착역인 여수역, 여수항 등이 있다. 유적으로 기우단 터와 사정(射亭) 터, 유왕암(幽王岩) 터, 해운정(海雲亭) 등이 있으며, 휴식공간으로 종화동(鐘和洞)에 걸쳐 자산공원이 있다. 공공기관으로 한려동사무소, 출입국관리사무소 여수출장소, 국립식물검역소 여수출장소 등이 있고, 교육기관으로 여수고등학교가 있다.
-자산 [紫山公園]
여수시 동남쪽 자산(紫山) 정상에 있는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자산이라는 이름은 일출 때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붙여졌다. 산 입구에 주차장과 활터가 있다. 공원에 오르면 여수 시가지와 종고산·마래산·구봉산을 비롯하여 장군도·돌산대교·돌산도·오동도·신항부두·남해군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공원 아래 일출정에서 보는 새해 아침의 일출이 유명하다. 공원 정상에는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이충무공 동상을 비롯하여 헬기장·올림픽기념탑·충혼탑 등이 서 있고, 동상 반대편에 팔각정이 있다. 주변에 진남관·한산사·향일암·오동도·만성리 해수욕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라) 종화동 [鐘和洞, Jonghwa-dong]
여수군 여수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종고산(鐘鼓山) 밑에 있어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성동(石城洞)·근동(芹洞)· 수동(樹洞)·아동(雅洞)·정동(井洞)·재동(齋洞)·죽동(竹洞)·동천동(銅泉洞)· 평동(平洞)·행동(杏洞)·지동(枳洞)·남동(南洞)·장동(莊洞)· 죽전동(竹田洞)·후동(后洞)·석동(石洞)·예동(禮洞)·내동(內洞)·연동(蓮洞) ·종포동(鍾浦洞)를 병합하여 여수면 동정(東町)이라 하였다가, 여수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여수읍 동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종포동과 남동을 분할하여 종남동이 되었다가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종화동으로 바뀌었다. 이 동은 법정동으로, 1998년부터 행정동인 동문동(東門洞) 관할 하에 있다. 왼쪽으로 오동도와 앞으로 돌산을 마주하고, 남동·종남동 등의 자연마을과 다리인 종포교, 팔각정 등이 있다. 휴식공간으로 수정동(水晶洞)에 걸쳐 자산공원이 자리 잡고 있고, 시장으로 제3잠수기 수산업협동조합이 있다. 자산공원에 있는 현충탑은 1996년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때 전사한 여수 출신의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여수중앙초등학교가 있다.
7. 유산가
남녘의 붉은 곷과 황금 빛 보잤더니
오네오네 봄기운이, 가네가네 겨울 가뭄
눈부신 해돋이보다도 단비가 더욱 낫고.
海潮音 들며 보는 南海는 아련하고
행여나 피었을까 멈추어 살피어도
이제사 벙그는 꽃멍울 마음에 아삼하다.
비옷 갖춰 입지 않아 후줄근히 젖은 몸에
이리저리 쏘다녀도 추운 줄 몰랐던 건
젊은 때 치기 어렸던 추억들로 데운 걸까?
[빛고을 아리랑 제1집 - V.A.] 오동도.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