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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12강
임제스님의 법문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오늘 이 내용이 특히 마음에 들고 이해하기 쉬운 그런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시간에 불교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도 참되고 바른 소견이다. 진정 견해다. 라고 하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도 더러 나오는 사항인데 진정견해!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각이 바로 된다. 라고 하는 것. 제일 중요한 일이죠.
무엇을 한다고 할 때는 그냥 하는데도 생각이 바로 들어야 되지만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더욱 더 그렇고 특히 종교에 있어서 바른 생각 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다른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발라야 그 일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있듯이 특히 불교의 문제, 부처님의 문제, 깨달음의 문제, 신앙의 문제,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바른 소견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바른 소견이 아니면 오히려 진정 갖지 않음만 못하고 공부를 안 한 것만 못한 경우들이 종종 있죠. 그러기 때문에 임제스님은 자주 그 진정견해를 상기시켜서 우리에게 꼭 진정견해를 갖도록 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죠.
시중
10-3 일 없는 사람
儞若能歇得念念馳求心하면 便與祖佛不別이니라
이약능헐득염념치구심 편여조불불별
儞欲得識祖佛麽아 祇儞面前聽法底是니
이욕득식조불마 지이면전청법저시
學人信不及하고 便向外馳求하며 設求得者라도
학인신불급 편향외치구 설구득자
皆是文字勝相이요
개시문자승상
“그대들이 만약 능히 생각 생각에 찾아 헤매는 마음[馳求心]을 쉴 수 있다면 곧 할아버지인 부처님[祖佛]과 더불어 다름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할아버지인 부처님을 알고자 하는가? 다만 그대들이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철저하지 못하고 곧 자신 밖을 향해 내달리면서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설사 밖에서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훌륭한 문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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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若能歇得念念馳求心하면
이약능헐득염념치구심
그대가 만약 능히 염염치구심을 쉬어 버린다면 염염치구심, 순간순간 뭔가 편안하게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어지면 좋은데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가만히 있어 지지가 않아요. 본능적으로 뭔가 구하려는 마음 뭔가 하려는 마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치(馳)자는, 말 달릴 치(馳)자거든요. 여러 마리의 말이 그냥 먼지를 일으키면서 아주 치열하게 달리는 그런 말 경주의 어떤 모습
그런 어떤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 스님께서 보시기엔 중생들의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않고 막 나부대면서 한시도 그냥 있지 않고 뭔가 하려고 하는 그런 상태가 마치 여러 마리의 말이 경주를 할 때 먼지를 일으키면서 치열하게 달리는 그런 모습으로 비추어진 거죠. 사람들이 조용히 있으면 조용하게 있어지면 좋은데 그게 조용하게 있어지지가 않으니까 참 문제예요.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이런 저런 것을 만들어 가지고 그 쪽으로 해소를 시키기도 하고 운동경기 등...
그런 걸 만들어 가지고 자꾸 젊은 사람이 범죄에 빠질 그 쪽으로 유도 해가지고 해소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런 뜻에서 그런 정책을 쓰는 거예요. 다른 나라나 우리나라... 그 어떤 치구심을 해소하는 곳이 없으면, 그냥 두어버리면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고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이제 그런 현상이 더 많이 벌어지는데 이제 그런 것은 어렵게 살 때 가난하게 살 때는 먹고 사는데 급급해서 사실 그런 문제가 적었죠.
그런데 생활이 어느 정도 풍요로워지고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지장이 없게 되면 그때는 그런 문제가 더 생기는 거죠. 이미 그런 상황에 세상이 발전해왔으면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뭔가 해소책을 마련한다고 하는 것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듯이 사람의 치구심이라고 하는 것이 혼자 가만히 아무 일 없이 있어보면 알아요. 10분만 가만히 있어보면... 10분도 못 있죠. 뭔가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고 그런데 그것이 바람직하고 어떤 자기 발전의 도움이 되는 그런 생각이 일어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일을 저지르는 그런 일을 생각해내고 생각한대로 자기 자신이 움직이게 되고 그러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죠. 어떤 가정에 보면 직장을 잃고 가만히 놀면 좋겠는데 가만히 놀아지지가 않거든요.
자꾸 머릿속에 뭔가 망상이 일어나는데 그 일을 하면 될 것 같으니까 그냥 덜렁 퇴직금 갖다가 날려버리고,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좋겠는데 가만히 있어지지가 않으니까 그게 염염치구심이야. 염염치구심의 한 가지야. 가만히 있어지지 않는 거야. 사람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어차피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까 뭔가 바람직하고 그 어떤 자기발전에 보탬이 되는 그런 일을 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그렇게 한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어떤 지식과 견문이 중요해.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견문과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생각을 일으키거든요. 친구가 10명이라면 10명 이외의 것은 생각 못하지 않습니까? 다섯 명이라면 다섯 명 이외의 것은 생각 못 한다 구요. 자기가 갖고 있는 정보만큼만 생각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 사람이라는 것이...그러니까 견문을 자꾸 넓히고 어떤 일을 많이 경험하고 또 좋은 공부를 많이 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자꾸 접하다보면 이것이 전부 자기 속에 아뢰야식 팔식(八識)에 저장되는 하나의 정보이고 하나의 지식이고 경험이고 견문이 되거든요.
그럼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생각이 일어나는 거예요. 치구심이라는 것이,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지 아무런 밑바탕이나 근거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요. 전생에 익혀도 익힌 거라야 일어나지, 익히지 아니한 것이 문득 일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치구심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런데 종교 안에 들어와서 앞의 그것은 일반적인 말씀을 드린 것 이고 또 불교 안에서 도를 통하겠다. 견성을 하겠다. 뭘 성취 하겠다하는 그런 큰 열정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요즈음 사람 사는걸 보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손 안대는 것이 없고 뭐 이것저것 어느 정도 좀 머리가 돌아가고 경제적 능력 있고 그런 사람들은 보면 안 하는 게 없더라구요. 별걸 다해. 해봤자 전부 그게 소질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대성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막 하는 거라. 그걸 젊음의 열정이라고 해가지고 좋게 미화를 하긴 하는데 그게 사실은 미화할만한 꺼리가 아니 예요. 나이가 어느 정도 40쯤 든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자기 주제파악도 못하고 설치는 것같이 그렇게 보이죠. 대개 그런 정도인데 그런데 그게 무슨 살아가는데 의욕이고 열정인 것 같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걸 한쪽으로 딱 몰아가지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하면 좀더 성공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것저것 손대는 사람이 많아요. 이 불교 안에 들어와서도 이게 참 문제라는 겁니다. 염염헐득치구심(念念馳求心), 염염(念念)이라고 하는 것은 순간순간! 매순간마다, 한 순간도 가만히 그냥 안 있거든요.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잠 잘 때도 그냥 있는 게 아니고 늘 받아들일 감수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 어떤 마음을 열어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작용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어요. 저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불교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하는 그런 마음, 사실 그 마음 때문에 기도하고, 참선도 하고, 경전공부하고 그래서 견성도하고, 성불도 하고 그러는데 그것으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쉬어버리는데 있다하는 것입니다.
참 묘한 방법이죠. 다른 세상일은 안 그래. 어떤 마음을 일으켰으면 그것이 결말을 가져와야 그게 성공하는 것이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인데 불교 공부라고 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아니해서 마음을 일으킨 것 까지는 좋은데 일으킨 그 다음을 쉬는데 목적이 있다 이거야. 그 마음을 사그러지게 하는 그 자리에 말하자면 우리의 성정이 있다. 그 말이죠. 헐득염염치구심이라! 부처가 되려고 하는 그 마음 쉬어버리는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다 하는 거죠.
便與祖佛不別이니라
편여조불불별
조사와 부처와 다르지 않다. 조사라고 해도 좋고 부처라고 해도 좋고 여기 조사나 부처나 결국 깨달은 사람은 이중으로 겹쳐서 일컫는 말인데 조사라고 해도 좋고 부처라고해도 좋고 조사인 부처라고해도 좋고, 조사인 부처죠. 대개 그런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랬어요.
그런 최상의 경지 그런 불교의 경지가 가장 이상의 경지이고, 최고의 경지고 모든 불자가 궁극적으로 이르러 가려고 하는 경지가 조, 불, 여(祖,佛,與), 조사의 경지이고 부처의 경지인데 이르러 가려고하는 그 마음을 쉬어야 비로소 그 경지에 이르러 가지, 그것 쉬지 않고는 이르러 갈 수가 없다. 하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소리이지만 이 공부라고 하는 것. 이 일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儞欲得識祖佛麽아
이욕득식조불마
그대는 조사나 부처를, 아니면 조사인 부처를 알고자 하느냐? 부처의 경지, 조사의 경지가 어느 것인지? 또 부처님과 조사님이 어떤 분인지? 그들의 능력이 무엇인지? 그 어떤 내면의 세계, 조사의 세계, 부처의 세계를 진정 알려고 하느냐? 어떤 분이 깨달으신 부처님인가? 어떤 분이 조사스님인가? 이 불교 안에서 최고의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이니까! 불교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이르러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런 뜻입니다.
어떤 경지를 막론하고 불교 안에서처럼 아주 치열한 그런 수행은 없어요. 어떤 선인도 부처님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6년 고행 공부를 했다든지 아니면 달마스님처럼 9년 고행 정진을 했다든지, 그 외 뭐 10년 20년 30년 40년을 그렇게 치열하게 어떤 구도의 생활을 한 그런 역사는 잘 없어요. 불교 이외에는...
불교에는 허다하죠. 그런 공을 들여서 이룩한 그 자리가 부처의 경지고 조사의 경지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단 불교 안에서 만의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르러 갈 수 있는 최상의 경지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 경지를 불자라면 당연히 알고 싶은 거죠. 그것이 뭐냐? 결론은
祇儞面前聽法底是니
지이면전청법저시
다만 그대들이, 지금 바로 내가 말하고, 여러분들은 말하는 지금 나의 면전에서 듣고 있잖습니까? 면전에서 다 듣고 있다! 법문하는 소리를 다 듣는다. 듣는 것이 이것이다. 이것이 뭐냐? 조불이라. 조사와 부처라. 그러니 조사나 부처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이거야. 지금 말을 하는 그 놈이고 말을 듣는 그 놈이 바로 조사고 부처다. 이겁니다. 이렇게 정곡을 찔러서 명확하게 이렇게 법문하는 경이나 어록이 그렇게 흔하지 않아요. 참 드뭅니다. 그래서 조사어록 중에서도 어록중의 왕이다. 라고 임제록을 그렇게 평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조사나 부처를 꿈에서라도 되고 싶어 하는 것, 그리워하는 것을 수행자나 불자들의 이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높은 경지, 인간으로서 이르러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다름 아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말을 하고 말을 하는 소리를 듣는 바로 그놈이다. 그 당사자가 바로 조사요 부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한 구절 속에 이야기가 다 된 거예요. 살아있는 가르침 이예요. 사실 임제록은 지금 당장에 우리가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지적해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學人信不及하고
학인신불급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들이 신불급(信不及), 그걸 믿지 않는다. 이거야. 그렇게 분명하게 일러 주었건만, 정말 손에 쥐어 주었건만, 손에 딱 잡아 주었는데도 그것을 안 믿는다. 이거죠. 믿음이 안 가는 거죠. 일부러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지가 않는다. 여기에 대한 신불급(信不及)이라, 언제쯤이나 가슴에 확 다가와서 우리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될는지 그게 우리의 과제죠. 그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입니다.
조사요 부처면 다 된 거지, 그 이상 뭘 바라겠어요? 더 이상 어디에 올라간다는 말입니까? 또 어떤 성공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조사가 되고 부처가 되었으면 최고의 성공인데 대통령 100번 1000번 한 것보다 나은 성공인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게 모든 문제의 해결인데 이것이 믿음이 안가서 아직도 그 자리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便向外馳求하며
편향외치구
그래서 믿지를 않고“아니다”라고 한다든지, 들어보니까 그럴듯하고 생각으로는 돌아가기는 하는데 그래도 뭔가 얼른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래서 남의 법문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말을 할 줄 알고, 추우면 추운 줄 알고, 더우면 더운 걸 느끼고, 손은 뭘 잡을 줄 알고, 발은 걸어갈 줄 알고 하는 바로 그놈인데 더 이상 뭘 어떻게 보여줄 것 없는 그런 것 인데 그게 확신이 안가니까, 자꾸 또 밖을 향해 편향외치구(便向外馳求)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법을 전하는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삼체전심이라는 게 있지만 보통 일반적으로 염화시중이 있지 않습니까? 염화미소라고도 그러고 꽃을 이렇게 한 송이를 들어보였다. 부처님 옆에 올려놓은 꽃이 많이 있으니까. 그걸 이렇게 한 송이 들어 보인 거죠. 그게 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요. 꽃에 무슨 뜻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꽃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연필이 되었든 그냥 들어 보인다고 하는 그 사실
그 사실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거라. 그 사실을 보는 그 사건. 들어 보이고 들어 보인 것을 보고하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꽃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간에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확신이 안가고, 제대로 확신이 간 사람은 가섭존자라고해서 그래 가섭이 미소했다. 그럼 거기에 답을 뭔가 해야 되는데 가섭이 빙그레 웃었죠. 한 송이 꽃을 들었는데“할”을 하면 안 맞죠. 미소를 지었다. 꽃하고 조화가 잘 되죠.
그리고 법 거량도 그렇게 조화가 되도록 그렇게 해야지. 할을 했다한들 틀린 거라고 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모양새가 아니죠. 부처님이 꽃을 들었는데 그 꽃의 분위기와 맞는 그런 어떤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섭존자가 미소를 했다라고 하는 이 사건은 우리 불교사에서 너무 멋있고 아름다운 거죠. 거기에 임제록처럼“할”을 한다든지 멱살을 잡는다는 것은 그런 것은 모양새가 안 좋아. 그렇게도 표현할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편향외치구(便向外馳求)라, 납득이 안 되니까 막 밖을 향해서 치구한다. 이 치구라고 하는 글자를 보니까 요즈음은 차인이 되어가지고 가끔 나한테 햇차도 가져오고 그러는 사람인데 그전에 송광사에서...한번씩 이렇게 포행을 하다보면 법당에서 킁킁 소리가 나요. 하도 공부를 해도 안 되니까, 이마를 갖다가 법당 마루바닥에 대고 막 박는 거야. 이마를 갖다가 아픈 줄도 모르고, 치구심이 활활 타오르니까 그래도 그냥 아프지도 않는 거야. 그냥 이마가 깨져서 피가 흥건하고 그래도 그냥 이마를 박는 거야.
그 치구라고 하는 게 그건 아주 공부에 대한 어떤 열광적인 치구심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참 좋기는 하면서도 잘못될 소지도 아주 많죠. 지나친 치구심!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내가 많이 보고 그전에는 같이 살기도하고 근래도 자주 보고 그랬어요. 편향외치구(便向外馳求),곧 밖을 향해서 치구하며
設求得者라도
설구득자
지금 말을 듣는 그 사람, 밖을 향해서 이외의 다른 어떤 것들, 경이나 어록이나 어찌되었든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떤 다른 것에서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皆是文字勝相이요
개시문자승상
그것은 모두가 문자의 수승한 모습뿐이다. 우리나라에는 드문데 중국에 가면 법당에다 부처님의 명호나 보살의 명호 이런 것을 좋은 비단에다 수를 놓아가지고 근사하게 불상을 한분 조성하는 그런 정도의 공을 들여 가지고 좋은 천에다가 아름답게 새겨둬요.
그대로 석가모니불하면, 그대로 그 천에다가 아주 크고 아름답게 좋은 글씨로 잘 새겨가지고 벽이나 법당에 쭉 걸어두면 장엄도 되고 참 보기도 좋더라구요. 우리나라도 의상스님, 해가지고 무슨 큰 행사 있을 때만 거는데 그런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또는 경전에서 볼 수 있는 문자상의 석가모니불이고 문자상의 아미타불이고 천불, 만불 무슨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하는 그런 것에 불과한 것이지
첫댓글 법우님께 상단의 ?? 에 대해서 여쭙니다. 그리고 여러가지의 조언도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_()()()_
만약 그대들이 능히 생각생각에 치구심(馳求心)을 쉴수 있다면 조불불멸(祖佛不別)과 더불어 다름이 없느니라,일윤월님 수고하셧슴니다,,,_()()()_,,,
歇得念念馳求心...부처가 되려고 하는 그 마음을 쉬어버리는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다... 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조사와 부처를 진정 알고자 한다면은 지금 나의 면전에서 법문 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바로 그 놈이 조사와 부처다,.. 便向外馳求하며 設求得者라도 皆是文字勝相이요... 一輪月님! 감사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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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되려고 하는 그 마음 쉬어버리는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다. 이 마음을 쉬어버린다면 조사와 부처가 다르지 않느니라(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歇得念念馳求心 便與祖佛不滅...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_()()()_
10-3 일 없는 사람 [?若能歇得念念馳求心(이약능헐득염념치구심)하면 : 그대가 만약 능히 편안하게 구하는 마음을 쉬어 버린다면 便與祖佛不別이니라(편여조불불별)이니라 : 조사와 부처와 다르지 않느니라.]
감사드립니다. 큰스님 _()()()_ 감사드립니다. 一輪月님_()()()_
상단의??은... 無影樹님의 배려로 해결하였습니다....모든 법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_()()()_
헐득염염치구심! 부처가 되려고 하는 그 마음 쉬어버리는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다 ... 감사합니다. 일륜월님_()()()_
일륜월님 정말 장 하십니다. ^^
말하고 듣고 보고 할줄아는 그 당사자가 바로 조사요 부처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되는일이 중요하다.........감사 합니다._()()()_
이 자리에서 말을 하고 말을 하는 소리를 듣는 바로 그놈이다. 그 당사자가 바로 조사요 부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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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의 감사드립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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