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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12월26일 염화실 인터넷방송법문 시작 하겠습니다.
반야심경 강의 3번째
舍利子(사리자) 色不異空 空不異色(색불이공) (공불이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
구절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처음에 관세음보살님이 등장했고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할 때 우리들의 몸도 마음도 모두 텅비어서 없는 것으로 비추어보고 일체 문제를 다 해결한다고 앞에서 전체적인 대의를 말씀하시고 사리자를 “사리자여” 라고 부르는 거죠.
경전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등장해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지혜의 한 부문으로서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이 반야심경을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죠.
관세음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 분신이다. 깨달음의 한마음이다.
물론 지장보살님, 문수보살님, 보현보살님도 다 그렇죠.
역시 석가모니부처님의 한 대변자다,
반야심경을 설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변자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수많은 보살님들이 부처님을 대변해서 방대한 경 전편을 다 설하십니다.
부처님은 조금밖에 설하지 않죠.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부분만을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고 나머지는 모두 부처님의 대변자로써 일체 보살들이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반야심경도 부처님의 대변자로써 관세음보살님이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죠.
관세음보살님이 이와 같은 실천을 하고 있을 때 모든 문제를 다 일체 해결한다.
그러니
舍利子(사리자)여 色不異空 空不異色(색불이공)(공불이색)
이렇게 했습니다.
왜 색이 먼저 등장하는가 하면 원래의 거론이 그랬습니다.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오온(五蘊)이죠.
우리의 육신의 사대도 색(色)이고 밖에 있는 사대도 색(色)
이고 내 사대(內四大) , 외 사대(外四大) 이렇게 부릅니다.
우리 육신을 구성하는 사대는 내 사대(內四大) 이고 우리육신이외의 다른 모든 물질들을 구성하는 사대를 외 사대(外四大) 그렇게 부릅니다.
사리불은 지혜제일(智慧第一)입니다.
반야심경에서도 지혜의 상징자로 등장했습니다마는 본래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에 사리불은 지혜의 제일 사리불로 그렇게 통합니다. 정말 부처님 제자 중에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고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理)와 사(事)를 겸한 그런 인물이죠.
사리자(舍利子)는 보통 사리불이라고도 하고 사리자(舍利子)라고도 부르고 그럽니다. 사리불다라(舍利弗多羅)고도 하고 사리보달라 라고도 이렇게 표기하기도 하고 그러죠.
번역하면 추로자, 또는 추자(鶖子) , 신자(身子) 이렇게도 번역도 합니다.
마갈타 국 왕사성(王舍城) 북쪽 나라촌 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웃에서 사는 목건련하고 함께 서로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죠. 흔히 외도(外道)라고도 하고도 하는데 사연이라는 그런 스승을 처음에는 섬기다가 뒤에 부처님의 제자 마승비구를 만나서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죠. 사리자가 마승(馬勝)비구를 만나서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는 그 사연은 우리가 정말 마음에 깊이 새겨둬야 할 인연이기 때문에 자주 기회만 되면 얘기를 합니다.
사리자 출가 동기인데 본래 외도를 섬기다가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 멀리서 어떤 사람이 노란색의 옷을 입고 아주 점잖게 정말 품위 있게 기품이 흐르는 그런 모습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리불이라든지 목건련은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경제인으로서 아주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어떤 사람을 보니 옷도 남다른 옷을 입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품위가 너무 뛰어나고 남달라서 그만 그 모습에 감동합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가까이 와서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거리에 오게 됩니다. 그러니 저절로 인사를 하게 되지요, 하고는 사리불이 마승비구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스승을 섬기고 어떤 가르침을 실천하기에 당신의 행동거지가 그렇게 고상하고 품격이 있어 보입니까?”
이런 것을 묻게 되지요.
그러니까 마승비구가 “나는 싯달태자가 출가를 해서 수행한 뒤에 깨달음을 성취했는데 그분을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귀의를 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황색으로 된 가사, 법의를 입고 삽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 분은, 그 스승은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는가?”
그러니까 마승비구는 대단히 겸손했지요.
사실 출가한지도 얼마 되지 않고 또 그 당시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한 5년 쯤 되었을 때 사리불과 목건련이 제자로 들어왔다 하는 설이 있어요. 그래서 마승비구도 출가했다 해봐야 크게 오래되지 않았던 그런 때입니다. 그래서 마승비구가 대답하기를
“저는 출가한지도 얼마 되지 않고 또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을 쉽게 전해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리불과 목건련은 배움의 열정이 남달랐던 분들이라 지혜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고 이와 사가 밝은 그런 분들이라 알고 싶어 하는 열정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죠.
“아니 그래도 한마디라도 전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릅니다. 조르니까 할 수 없어서 마승비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제법종연생)(제법종연멸)(아불대사문)(상작여시설)이라.
저는 출가한지도 얼마 되지도 않고 기껏 알고 있는 것이 이 한 마디인데 이 한 마디는 전해줄 수 있습니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서 생기고 또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서 소멸한다.’ 우리 부처님 큰 사문께서는 항상 이와 같은 설법을 하십니다.”
하고 아주 짧은 게송 이것을 소개를 했습니다.
그 당시 인도사회에서의 자연 현상의 생성과 변화와 발전과 소멸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천생이 ‘있으라 하니 있게 되고 생기라 하니까 생기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고 또 범천이라고 하는 하늘나라의 어떤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하는 설도 있고 저절로 되었다 하는 그런 설도 있고 그랬는데 이 마승비구가 전한 부처님의 교설은 그렇습니다.
‘일체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 소멸한다.’
그것을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이런 이야기죠. 이것은 그러니까 현상은 모두 인연으로 보는 불교적인 독특한 가르침이죠. 그 당시로서는 아주 뛰어난 가르침 이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온갖 종교, 온갖 철학에서 이 현상계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뭐 1주일 만에 만들었다하는 그런 학설도 있지요. 그런데 이 불교에서는 일체가 인연에 의해서 생성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소멸한다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누구의 특정한 힘에 의한 것도 아니고 전지전능한 어떤 신의 주제 하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존재는 존재 각자 각자가 자신이 처한 인연에 의해서 생성 소멸 변화 발전한다 이런 이야기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돌 하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 생물 일체존재가 전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또 인연에 의해 변화, 발전하고 소멸하고 또 다시 생기게 되고 뭐 바람이 그렇고, 비가 그렇고, 물이 그렇고, 사람의 삶이 그렇고, 저 나무, 풀 일체가 다 그렇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학설을 처음 듣는 거죠. 그래서 사리불과 목건련이 그 말에 감동을 해서 정말 깜짝 놀라고 그런 학설을 주신 분께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해서 그래서 마승비구를 앞세우고 두 사람이 자신들 제자들을 전부 데리고 부처님께로 귀의하지요.
자기들이 믿던 종교들을 다 버리고 개종을 하는 그런 일이 큰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아주 뛰어난 사리불은 부처님제자로서 큰일을 많이 하죠.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 불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절, 가장 아름다운 절,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기원정사라고 하는 그 유명한 절, 부처님께서도 25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기원정사에서 보낼 정도로 그렇게 아주 큰 절이고, 환경이 좋고 하는 그런 곳이라고 하는데 불교역사에서 가장 근사하고 멋진 사찰, 그 기원정사를 설계하고, 감독하고 일체 설계에서부터 모든 건축이 완성되기까지의 일체 감독을 사리불이 했다는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 정도로 사리불은 깨달음도 뛰어났지만, 지혜도 뛰어났지만 세상사에도 그렇게 밝았습니다.
이와 사에 뛰어난 그런 분 이었다 그러죠. 정말 이상적인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회에서도 그렇죠. 옛날 뭐 정치를 잘 하는 사람이 문과 무에 겸했다, 문무를 겸했다 이렇게 하면 최상의 칭찬이죠. 그래서 불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선, 교를 겸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선과 교를 함께 다 겸해가지고 선이면 선, 교면 교, 어디에도 빠지지 않고 해박한 그런 안목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옛날에는 문무를 겸했다, 이사를 겸했다, 선교를 겸했다.
사실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상적인 사람이라면 선과 교를 겸해야 되고, 문무를 겸해야 되고, 이사를 겸해야 되는 그런 그 인격자, 그게 바람직한 인격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그런 지혜로운 분이니까 이런 존재의 법칙을 말하자면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이 말씀을 듣고는 그만 다 알게 되었죠. 모든 것, 한꺼번에 모든 의문이 풀렸고 궁금하던 것이 다 풀려버렸습니다.
이것은 마승비구가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전해 준 아주 간단한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보면 수십 년 절에 다니면서 법문을 듣고 불교서적을 보고 해도 불교 이야기를 해주려면 해도 뚜렷하게 자기소신이 있는 재료가 없어요.
근데 요런 말 한 마디는 참 좋은 전법의 자료가 되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최상의 전법자료죠.
모든 것은 인연의 이치야. 그러면서 마승비구와 사리불과의 관계도 이야기를 곁들이고 이것은 ‘부처님의 常作如是說(상작여시설)이라, 항상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부처님 현상계에 대한 그 이야기를 할 때 으레 이 인연설을 많이 하셨겠죠.
그리고 누가 괴로운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든지 별별 그런 고뇌를 안고 부처님께 찾아온 사람들에게 뭐라고 설했겠습니까?
말하자면 ‘모두가 인연의 이치야.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하고는 달라, 또 운명하고도 달라. 내가 지은 대로 가는 것이고 지금도 내가 어떻게 내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지어 가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은 이렇게 이렇게 변해갈 수가 있는 것이야.’라고 부처님은 조용조용하게 설득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는 것이죠.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라고 하는 이 표현을 볼 것 같으면 자주 하셨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전에 인연 이야기가 현상을 설명 하는 데는 더 이상 없죠. 인연은 곧 우리가 공부하는 공과 연관이 되어 있고, 왜 공이냐?
인연이기 때문에 공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연의 이치를 불교에서는 제일 많이 설명을 듣고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인연의 법칙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으면 자신의 처지가 어떻든 간에 자신의 처지를 원망할 일이 없죠. 남을 또 원망할 일도 없습니다. 또 질투하거나 시기하거나 하는 그런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이 아무리 잘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인연이고 내가 아무리 망하고 못됐다 하더라도 그것도 역시 나의 인연인거죠. 우리가 이런 나라에 처해 산다하더라도 그것도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함께 더불어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들을 것 못들을 것 다 들어가며 사는 것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인연 이예요. 이것을 우리가 잘 받아들이고 감수해서 여기서 우리가 어떤 해결의 길을 찾고 극복의 길을 찾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통을 터트릴 일이 아니라 전부 인연 소치로 본다. 불교에서 참 잘 쓰는 말이죠. 그게 다 인연소치야. 뭐 이런 말을 어른스님들이 잘 하시거든요. 그 짧은 말이지만 그 속에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거기에 있습니다. 또 인연이 다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기 마련이고요. 뭐가 제대로 안되는 것은, 내가 힘을 많이 쓰는데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은 그것 역시 아직도 어떤 인연을 덜지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죠. 뭐.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인연을 짓는 데는 덮어놓고 완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현명하고 지혜로운 마음이 꼭 거기에 개재되어야 됩니다. 지혜가 반드시 들어가야지 되지 지혜없이 덮어놓고 자기 감량 대로 밀어 붙인다고 인연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연의 법칙 하나만 잘 이해해서 이것을 따르게 되고 이 법칙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면 거의 인생사 99%는 해결했다고 볼 수가 있지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많은 인연의 이야기가 있고 부처님도 자주 말씀을 하셨고 그러기에 반야심경의 사리자도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의 문을 확 뜨게 되어서 곧바로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다 하는 그런 말씀을 아울러 드리게 됩니다.
그런 지혜로운 사리자를 불러놓고 색수상행식 이것이 오온인데 오온이 텅 빈 것으로 비춰 볼 때 일체 문제를 다 해결하느니라.
그 색은 공과 다르지 않다. 왜 오온을 다 공한 것으로 조견(照見), 비춰보느냐 하면은 색(물질)은 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공으로 본다 이겁니다. 오온을 공으로 본다, 물질을 공으로 본다, 수상행식을 공으로 본다 이겁니다. 그건 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이치도 없는 것을 무리하게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관세음보살 지혜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게 사실이니까요.
色不異空 空不異色(색불이공) (공불이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
그래서 色不異空(색불이공) 이라고 그랬습니다. 색은 그대로 공이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공이 그대로 물질이다, 空不異色(공불이색)이다 공이 그대로물질이다 이거예요. 물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같은 것이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정말 중생의 알량한 소견으로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다 빠지죠.
정말 있다고 생각해서 아둥 바둥 목숨을 걸고 쌓아올리고 벌고 애를 써서 모으고 쟁취하고 빼앗고 속여가면서 사기쳐가면서 온갖 수모를 다 겪어가면서 그렇게 해서 아둥 바둥 저 위치까지 올라갔고 저만치 쌓았는데 그것이 전부 바로 텅 비어 없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없는 것 그대로 다, 없는 것 그대로도 무한이 넘쳐나는 물질 그대로다.
이렇게 얘기했으니 중생들의 좁은 소견으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너무 힘 빠지는 소리입니다마는 그러나 힘이 이렇게 한번 빠지고 나서 거기서 정신을 차려서 제대로 바로 봐야 되겠죠.
뒤에 팔정도가 이야기되겠지마는 正見(정견) 바르게 봐야 됩니다.
바르게 봐야 된다는 것은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볼 줄 알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볼 줄 아는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볼 줄 아는 사실을 사실대로 볼 줄 아는 그게 정견이거든요.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공즉시색)
그래서 色(색)이 곧 空(공)이고 空(공)이 곧 色(색)이다 그랬습니다.
텅 빈 것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물질현상 그대로고, 꽉 차있는 물질 현상 그대로가 곧 텅 빈 공이다.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역부여시)
수(受) 우리가 받아들이는 감수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춥다, 덥다, 예쁘다, 밉다, 듣기 싫다, 듣기 좋다 인간의 삶은 어떻게는 전부 감수하는 받을 수(受)자 이것 하나가 인간의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감수하는 거죠.
덥다, 춥다, 누가 뭐라고 말하면 거기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배가 고프다, 배가 부르다, 일체 것이 수(受)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어떻게 나오던지 신문을 보고 내가 느끼는것, 경전을 읽고 내가 느끼는 것, 이게 전부가 수(受)자 거든요. 감수입니다.
인간의 일은 수(受) 하나로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은요.
그런 일들도 곧 역시 곧 공이요 수즉시공(受卽是空)이요 공즉시수(空卽是受)다. 감수다, 그 얼마나 많은 것을 감수합니까? 하루동안 우리가 잠에서 깨어서부터 지금 이 밤이 되기까지 우리가 하루 종일 내가 의식하고 받아들였던,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던 그 받아들이는 그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어떻습니까. 지금 이 순간 없죠. 뭐 쪼끔 남아 있는 것도 있을 겁니다. 덜 떨어지고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도 있을 겁니다.아직도 그래봤자 금방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공입니다.공임을 느끼게 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일뿐만 아니라 수즉시공(受卽是空) 공즉시수(空卽是受)다 감수하는일이 일상의 전부다 라고 하는데 그일상의 전부가 그대로 공한 것입니다. 공한 것이 일상의 전부인 것이다.
상도 역시 그렇죠.
생각하는 거죠. 뭐라고 좋다, 나쁘다 분별하는 거죠 크다, 작다 감수해서 그것이 좀더 진행한거예요.
어떤 개념으로써 형성화 되는 거죠. 한 개의 개념화된 거죠. 그런 것들이 또 하루만 가지고 계산하더라도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은 날씨가 참 따뜻하였죠, 따뜻하다 하는 것이 과거의 생각에 의해서 개념지어집니다. 지난날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따뜻하다 이런 것들이 많이 진행이되죠 그런 것들도 다 공이예요.
상도 또한 공이요 공 그대로가 상이다.
행은 그것이 더 발전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행입니다.
이건 몸의 행동이 아니라 몸이 행동하듯이, 우리의 생각이 마음이 행하는 것 진행 그것은 예를 들어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라고 규정을 지었으면 그것은 거기에 따라서 ‘아! 오늘은 밖에 나갈 일이 있는데 옷을 가볍게 입고 나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지어 나가죠.
아주 구체적으로 실천으로 나아갑니다.
그게 바로 行(행)이지요.
그런 일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것은 자동이죠. 자동적으로 감수하면 어떤 개념이 이루어지고 개념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거기에 따르는 후속조치가 저절로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뭐 그야말로 자동 장치예요. 의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의식 안한다고 이런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일체 문제가 다 저절로 심리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그것이 인식의 씨앗으로 박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식은 인식이면서 또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행이 됐던 식이 됐던 역시 공이요 공 그대로가 곧 행이며 식이다.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역부여시)
그래서 역부여시(亦復如是)라고 하는 말이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죠. 수상행식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하는 말은
수불이공(受不異空)이요 공불이수(空不異受),
수즉시공(受卽是空)이요 공즉시수(空卽是受),
상불이공(想不異空)이요 공불이상(空不異想),
상즉시공(想卽是空)이요 공즉시상(空卽是想),
행불이공(行不異空)이요 공불이행(空不異行),
행즉시공(行卽是空)이요 공즉시행(空卽是行),
식불이공(識不異空)이요 공불이식(空不異識),
식즉시공(識卽是空)이요 공즉시식(空卽是識)
수(受)도 불이공(不異空)이요 공불이수(空不異受),
수(受) 즉시공(空)이요 공(空) 즉시 수(受)요,
그 다음 상(想)자를 두고 이야기하면 그렇습니다.
상불이공(想不異空)이요 공불이상(空不異想),
행을 두고 이야기하면
행불이공(行不異空)이요 공불이행(空不異行),
식도 역시 그렇지요.
식불이공(識不異空)이요 공불이식(空不異識),
식즉시공(識卽是空)이요 공즉시식(空卽是識)이다.
이렇게 낱낱이 다 똑같은 원칙에 따른다. 똑같은 원칙에 따른다.그게 역부여시(亦復如是)란 말이죠. 또한 다시 그렇다.
오늘 반야심경 이게 중요한 말 제일 반야심경에서 제일 회자되는 구절이
色不異空 空不異色(색불이공)(공불이색)
또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공즉시색)
네 구절이 제일 많이 회자되고 그 중에서 두 구절만 뽑아본다면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공즉시색) 이 두 구절이 가장 인기있는 구절이죠.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중심되는 구절은 따로 있어요.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역부여시)라고 하니까 다른데도 다 해당되는 말이라서 중심 되는 구절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반야심경에서 이 구절을 제일 많이 거론 합니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공즉시색)
이 구절만 제대로 이해해도 수상행식에 대한 이해, 우리들의 존재에 대한 이해, 우리가 쌓아놓은 업적, 이런 것에 대한 것, 공덕도 좋고요 부귀영화도 좋고 재산도 좋고 명예도 좋고 이 모든 것들이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공즉시색) 이 원칙에서 결코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두 구절을 가지고 모든 것을다 대입 시켜서 이해를 하면 전부 시원하게 해결이 됩니다. 그러면은 크게 실망하지 않고 그렇게 원망하지도 않고 그렇게 애석해 하지도 않고 어떤 어려움과 어떤 실망할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이치를 우리가 일찍 안다면은 그렇게 상심하지가 않죠. 낙심하지 않습니다. 낙심할게 없는걸요. 상심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이 본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알면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 일체 문제를 일체 아픔과 일체 고통과 무슨 문제가 됐던지 지난시간에 말씀을 드렸다시피 경제문제, 정치문제, 문화문제, 사회문제, 가족간의 문제, 친지간의 문제, 기타 다른 회사에서의 문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 이런 모든 문제들을 전부 해결한다.
도(度) 건너간다 해결한다 이 뜻이죠.
그러니 정말 세상을 사는데 어찌 보면 이런 가르침이 정말 세상발전 시키는데 대해서 아주 장애 요인이 될 것 같지마는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들의 선결 요건인 말하자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고(苦)의문제, 아픔의 문제, 생로병사우비고뇌(生老病死憂悲苦惱) 등등 일체 없어야 할 부정적인 부분들을 해소 시키는 데는 이 열쇠보다는 더 훌륭한 열쇠가 없다, 이 처방보다 더 훌륭한 처방은 없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정말 사리자라야 능히 이런 이치를 자기의 삶으로 자기의 살림살이로 수용할 수가 있겠죠.
우리도 반야심경을 잘 공부하고 또 많이 외우고 또 사경을 많이 해서 사리자처럼 이렇게 정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텅 비어서 없는 것으로 보는 그런 안목 위에 인생을 영위해 간다면 얼마나 홀가분하고 상쾌하고 기분이 좋겠습니까?
저 돌아가는 흰 구름 같고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인생을 영위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 반야심경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반야심경 강의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셨습니다.
[예불문 제9강 정리: 인터넷 전법도량 염화실 녹취전법행자 길상화^^님]
첫댓글 오늘 수업 결석생, 이곳에서 보강합니다. 미륵골님 감사합니다. ()^^*
은우님! 녹취 불사에 감사 드립니다. 부처님 되십시요~
매일 수업 결석생 여기서 보강합니다 투, 미륵골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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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미륵골님 녹취불자님 그외에 수고해주시는 모든법우님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관세음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때 오온이 텅 비어 없는 것으로 비춰보고 일체 문제를 해결 하느니라.사리자는 처음에는 外道를 믿었으나 부처님의 제자 마승비구에게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이란 말을 듣고 부처님께 귀의 한 분으로서 理와 事에 밝으며 지혜 제1의 제자이다.모든 현상을 인연으로 보는 뛰어난 가르침이다. 모든 것을 인연소치로 보아야 한다. 色은 空과 다르지 않으며 공이 그대로 물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르지 않다.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볼줄 아는 것이 正見이다_()()()_
色卽是空 空卽是色...고맙습니다. _()()()_
※舍利子(사리자) 色不異空 空不異色(색불이공) (공불이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 : 사리불이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 또한 다시 이와같다. ※[<오온(五蘊):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모두 공(空)함]
1. 색(色) - 물질, 육체 ; 내 사대-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 / 외 사대. 색불이공 공불이색 (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며
2.수(受)·상(想)·행(行)·식(識) - 정신 ; 수불이공(受不異空) 공불이수(空不異受), 수즉시공(受卽是空) 공즉시수(空卽是受), 상불이공(想不異空) 공불이상(空不異想), 상즉시공(想卽是空) 공즉시상(空卽是想) ,행불이공(行不異空) 공불이행(空不異行), 행즉시공(行卽是空) 공즉시행(空卽是行), 식불이공(識不異空) 공불이식(空不異識), 식즉시공(識卽是空) 공즉시식(空卽是識)
※수즉시공(受卽是空) 공즉시수(空卽是受) - 감수하는 일이 우리의 일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관세음보살 - 지혜의 눈 - 색은 그대로 공이다.공이그대로 물질이다. 공불이색(空不異色) -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같다. 2.중생의 소견 - 인간의 삶은 어찌 보면 수(受) 가 대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은 사실 어떻게 보면 수(受) 하나로 이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감수합니까? - (無比) 큰스님 법문 中- _()()()_
처음으로 녹취를 담당 맡은 길상화...열심히 배워서 열심히 익혀서 곧 올리겠사옵니다..좀 느려 터져 답답하셔도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나무관세음보살_()()()_
길상화님, 홧팅!!! ^^*
길상화 님 너무 기쁜 소식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음 편히 천천히 하시옵소서....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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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감사합니다,,,
큰스님 감사함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관세음보살 _()()()_
항상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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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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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마하반야바라밀,마하반야바라밀._()()()_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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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의 법문과 함께 정진하시는 불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건강하십시요!!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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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왜 색이 먼저 등장하는가 하면 "원래의 거론"이 그랬습니다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오온(五蘊)이죠. 이부분에서 스님의 법문은 "원래의 거론"이 아니라 "오온의 거론"이 그랬습니다.가 맞는것 같아서요 _()()()_
잘 배우겠습니다.감사합니다.
역시 자세한 해설을 들으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것도 알게되네요...역시 푸로에게는 못당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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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존재하는 것이 텅 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