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SBS 방송연예대상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방송 3사를 종횡무진 하는 MC군단과 <웃찾사> 를 중심으로 한 코미디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치뤄진 제 1회 SBS 방송연예대상의 영예의 '주인공' 은 다름 아닌 강호동이었다. <스타킹><야심만만> 등으로 꾸준히 SBS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오던 강호동은 결국 제 1회 방송연예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음으로써 만천하에 '강호동' 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각인 시키는데 성공했다.
당대 최고의 씨름선수에서 당대 최고의 MC로 성장하기까지 수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는 생긴 것 만큼 다부진 은근과 끈기로 온갖 편견과 냉대를 온 몸으로 부딪혀왔다. '꽁트형 연기자로 전락할 것' 이라는 주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10여년 넘게 정상의 자리에서 시청자들과 호흡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초특급 MC로 명망을 날리고 있다.
험난하디 험난한 연예생활을 그토록 힘차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운동선수 출신다운 끈질김? 선천적으로 내려 받은 유쾌함? 주위를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 그러나 강호동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말한다. '이경규' 때문이었다고.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도 같이 옷을 벗을게.
강호동이 두고두고 회자하는 말이 하나 있다.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도 같이 옷을 벗을게." 바로 이경규가 강호동에게 TV 데뷔를 권유하며 던진 말이다. 강호동은 이경규에게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만기 등 씨름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저없이 코미디언의 길을 선택했다. 강호동의 연예계 데뷔를 두고 '씨름의 신' 이라 불렸던 이만기는 "아! 장차 씨름계를 이끌어 갈 인물이 사라졌구나!" 하며 탄식했다지만 한국 대중문화사에 있어서 강호동에게 던진 이경규의 한 마디는 가장 극적이고 파격적인 조건이었던 셈이다.
훗날 이경규는 <무릎팍 도사> 에 나와서 "다 거짓말이야!" 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16년 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강호동의 끼' 를 이경규만이 발견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당대 최고의 MC라 불리는 '천하장사' 강호동을 발견하고 창조해 낸 그의 진정한 스승이며, 그의 인생을 180 도 바꿔 놓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991년에 씨름선수 자격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그 때 이경규 선배님을 처음 만났다. 내가 한껏 라디오에서 떠들고 나왔는데 이경규 선배님이 날 보고 '새로운 느낌의 개그맨 하나가 혜성처럼 떨어졌네!' 라고 했다. 나도 웃고, 선배님도 웃고 그냥그냥 장난으로 넘겼었는데 2년 뒤에 선배님한테 정말 러브콜이 왔다.
넌 천상 코미디언이니까 코미디를 해서 씨름을 했던 것 만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라고. 고민했지만 이 길을 선택했고 보란듯이 성공했다. 여전히 나는 내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MC 강호동)
강호동 인생의 무릎팍도사, 이경규
그렇게 방송 데뷔를 하고 16년의 세월만에 강호동은 이경규를 능가하는 초특급 MC로 방송연예대상을 손에 넣었다. 강산이 한 번하고도 반 번이나 더 바뀐다는 세월 속에서 강호동과 이경규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눈빛도 많이 달라졌으며, 버라이어티 쇼의 질적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단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영원한 '사제지간' 으로 남은 강호동과 이경규의 돈독함이었다.
"대상, 강호동!" 이라고 불리는 순간 강호동은 옆에 있는 이경규에게 고개를 푹 숙인채 오랜 시간 동안 인사를 했고, 이경규는 그런 제자의 등을 연신 두드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무대로 올라간 강호동은 다시 한 번 이경규를 바라보며 "우스운 사람이 아닌 웃긴 사람이 되라던 개그 철학을 가르쳐 주신 이경규 선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은 저의 영원한 무릎팍 도사입니다." 라며 감격에 겨운 수상소감을 발표했고 뒤 이어서 "내년에는 이경규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 더 좋은 MC로 성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며 끝까지 이경규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지 않았다.
강호동의 그런 수상소감에 멋 쩍은 듯 두 손을 번쩍 들고 '오버' 를 하던 이경규는 이내 자리에 앉아 강호동에게 진심 어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이 눈빛을 교환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청출어람'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제자와 '명불허전'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스승의 존재감은 그 상의 대소에 관계 없이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데 충분했다.
돈과 권력만이 난무하다는 삭막한 연예계 생활에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나이, 경력, 부와 명예를 초월해서 그저 존재만으로 힘이 되고, 존재만으로 자랑스러운 존재. 그것이 바로 이경규와 강호동의 관계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어쩌면 강호동이 그 다사다난한 생활 속에서도 16년 동안 한결같이 지키려 했던 것은 바로 '이경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다짐했던 초심, 그 단 한가지 였을지도 모르겠다.
부끄럽지 않은 방송인으로 남아있기를
처음 이경규와 약속했던 것처럼 강호동은 부끄럽지 않은, 우습지 않은 방송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경규 역시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MC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껏 방송인의 겸손함과 진지함을 간직한 채 '유쾌한' 방송인으로 남아있는 두명의 MC, 이경규와 강호동. 이들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나중에도 부끄럽지 않은 방송인으로 남아있기를, 시대는 변해도 웃음의 가치만은 지킬 줄 아는 진정한 방송인으로 남아있기를 기도한다.
오늘 SBS 방송연예대상의 진짜 주인공은 '강호동, 그리고 이경규' 였다.
|
출처: ♤끄적끄적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승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