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양우량 선조의 후손[4종파]
양우량 선조께서 처음으로 육지[남원]에서 지방장관이 되시고 양씨가 호족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셨는데 신라 하대에서 고려 건국시기에 양씨는 남원과 충주지역의 대호족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원은 후백제의 영향권이었고 충주는 고려의 지지기반 세력이었기 때문에
고려 개국시기에는 충주지역의 양씨가 득세를 하고
충주지역의 대호족이었던 양능길이 삼한통합대장군이 되시자 그 후손들이 충추양씨(예성군파)로 분적을 합니다.
고려가 건국되고 광종에 의해 개국공신들이 정리되고 성종에 의해서 지방제도등이 개편되자
남원지역의 양씨들은 호남일원을 대표하는 씨족으로 고려사에 족적을 남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본격적인 득세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고려의 무인시대로 인하여 고려 문벌귀족이 붕괴되자
남원양씨가 신흥사대부로 중앙무대에서 주도적 위치를 자리잡게 되는데 남원양씨는 3개의 종파로 구분이 됩니다.
종실의 사위인 양능양이 병부낭중을 역임하시고 그 후손들이 병부공파로 하나의 종파를 이루었고
남원의 또 다른 명칭이 대방이고 별칭이 용성인데 고려조종에 공을 세우고
대방군에 봉해진 양수정과, 용성부원군에 봉해진 양주운의 후손들이 각각 대방군파와, 용성군파로 하나의 종파를 이루었습니다.
7. 대방군파
1세가 양수정이고, 2세가 양변이고, 3세가 양우룡 입니다. 양우룡 선조까지 자식을 한 분 두셨기 때문에
양우룡 선조께서는 모든 대방군파의 직계선조가 되시는데[고려말기~조선초기]
동일 시대에 남원양씨 병부공파의 후손중에도 양우룡이라는 선조가 계십니다.
그래서 동일인 이시다..아니다 라는 문제로 남원양문은 다툼의 큰 화근이 되고 있습니다.
대방군파의 일부 종문에서는 대방군파의 참여하지 않고 병부공파의 한 분파로 세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방군파에 의하면 양우룡 선조께서 사귀와 사도 두 아들을 두셨고
사귀는 다섯 아들을 두셨고
사도는 아들 한 분을 두셨습니다.
사귀와 사도의 아들 여섯 분께서 대방군파에서 분파를 나누어서 세대를 이어오고 있는데
연일공파는 양사귀의 세째 아들이신 양역을 파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질의하신 분의 직계선조이신
양사귀는 왕에게 간언하는 사간원의 으뜸 벼슬인 대사간을 지내셨는데
최고의 요직이라 할 수 있지만 중앙정계의 답답함을 벗어던지시고
김해부사를 역임하셨습니다.
양사귀의 세째 아들이신 양역 선조께서는
연일지역의 병마첨절제사를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연일공파로 분파를 하셨습니다.
제가 대방군파의 족보가 없는지라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병마첨절제사이면 정3품 상계인 당상관은 되셨을 것입니다.
당상관이라 하면, 당에서 상쪽의 위치이니 그래서 왕과 직접 국정을 논하는 품계를 칭함이니
고위층에 해당하겠지요..
그 이하는 계보를 제가 알 수 없으니
가계도를 올려 주시면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