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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상해를 가다!
중국 상해는 중국 양쯔강 하구에 있는 중국 최대 도시로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이자
중요한 공업기지이며 항구와 무역, 정보와 금융의 중심지이다. 지하철과 고가도로를
건설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도심은 명․청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통거리와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상해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임시정부가 있는
도시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일제 치하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멀리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항일운동의 대표기구 상해임시정부청사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중국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상해는 식민
지배에 항거하는 여러 세력의 독립 투쟁을 위한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영화 ‘아나키스트’
나 ‘색계’같은 영화에는 상해를 배경으로 스파이, 혁명운동가, 독립단체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상해임시정부도 이 시기에 3·1운동 이후 일본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반발해 우리 민족은 1919년 3.1운동으로 항거했고, 이런 자주독립의
의지를 결집해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에 1919년 4월 11일에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했으며,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했다.
그 이후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는 조선민국임시정부, 노령의 대한인국민회 등과
통합을 모색해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루게 되었다.
당시 상해는 일제의 영향력이 직접로 미치지 않아 활동하기가 유리한 곳이었다.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임시의정원(입법), 법원(사법), 국무원(행정)의 삼권
분립의 형태로 민주공화정 체제를 갖추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안창호, 여운형, 김구, 김규식, 이동휘, 이동녕,
김철 등이 있다. 이렇게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후 광복을 맞을 때까지, 중국
각지로 옮겨 다니면서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줄기차게 투쟁했다.
상해의 청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6년 7월부터 1932년 4월까지 청사로 사용한 역사
깊은 장소이다. 그러나 임시정부 건물은 1992년까지 중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남쪽의
대한민국 정부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의 방치 속에 점점 잊혀져
갔지만, 그 후 이곳을 떠난 지 60년 만인 1993년 4월에 이르러서야 한중 양국의 협조로
상해 정부와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등을 1차 복원하였고, 2001년 12월 건축물을 전면
보수한 후 전시 시설을 확장해 유적지로 새단장했다.
1층 시청각실에서는 항일투쟁시기에 활약상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볼 수 있으며,
2층에는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각 부처의 장관 집무실이 재현돼
있다.
이곳의 입장료는 기념관의 운영기금으로 사용되고 있고, 3층에는 임정정부의 활동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 전시관에서는 당시 사용하던 빛바랜 태극기와 내빈용
테이블, 주방이 등을 볼 수 있다.
이밖에 독립신문과 안창호 선생, 윤봉길 의사, 김구 선생의 이야기, 역사 유물을 비롯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어 편지 등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처음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진 이후 1945년 광복까지 임시정부의 역사는 방랑과 정착의
여정이었다. 임시정부 청사는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압박을 피해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고 체제를 정비할 때까지 약 8년간 항저우-자싱-전장-광저우-류저우-치장 등 중국
각지로 여덟번이나 옮겨 다니며 유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32년4월 윤봉길 의거 직후부터 충칭에 도착하기까지 8년 동안은 고난의 시간들이었지만
우리 독립군들은 중국인민들과 연대를 쌓고, 독립운동의 정치 군사적 이념의 바탕을
다듬어 갔다.
임시정부는 지도체제에 있어서도 수차례의 변천을 겪고 다섯 번의 개헌 끝에 대통령
중심체제에서 주석․부주석 지도체계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진
정당의 필요성에 다라 한국독립당을 조직해 정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한국독립당의
초대 주석으로 김구를 추대하여 김구 중심의 단일 지도체제를 마련한다.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해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임시정부는 해방과 광복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고, 이는 국가건설을 위한 준비로 이어졌다. 하지만 광복 후 귀국한
이들을 맞이한것은 미국과 소련의 군정체제였고, 한반도의 남부를 차지한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아 임시정부는 사실상 해체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세력과 손잡고 광범위한 독립운동의
무대를 구축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해 임시청사를 국내서도 볼 수 있을까?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는 상해임시정부청사를 그대로 복원한 건물이 있다. 복원된 임시청사가 이곳에 건립된 이유는 바로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의
고향이 함평이기 때문이다. 함평군은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부지 내에 상해임시
정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여 입구에서부터 상해의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회의실에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침실, 부엌 화장실 등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고,
임시정부요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과 기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그렇다면 기념관의 주인인 일강 김철 선생은 어떤 인물일까?
당시 천석군 부자이던 일강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모든 가산을 정리한 후 상해로
망명한 뒤 임시정부 재무장으로 일하며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건립해
기증한 인물이다.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홈페이지 http://ilgang.utsoft.co.kr 전화 061-320-3249
상해 임시정부 주변의 명소
임시정부의 주변에는 상해의 대표적인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즐비하다.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이들의 거리 신천지에서부터 골동품 거리 동타이루와
예술인의 거리 타이캉루까지, 이곳을 돌아보면 중국의 이국적인 모습과 함께 과거 전통이
살아있는 문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상하이 속 유럽, 떠오르는 명소 신천지
신천지는 ‘여기가 정말 중국이야?’라고 한참 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특히 거리에서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다. 또한 신천지에서 일대회지와 노천카페를 지나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지는 코스에 줄줄이 늘어선 석조건물들과 카페·바 등 예쁜 가게들,
그리고 깔끔한 거리는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와함께 주변에는 성룡극장과 스타벅스, 라이브카페, 그리고 이국적인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들도 많다.
중국인의 삶이 녹아 있는 골동품 거리 동타이루(동태로)
가장 중국스러운 골목은 상해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골동품거리
동타이루이다. 좁은 골목마다 수많은 상점들이 복잡하게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황학동 골동품 시장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거리와 건물에는 총천연색의 빨래들이 널려있고, 심지어 속옷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널려있다. 각각의 상점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 낡아 보이기도 하고 진귀해 보이기도 한
물건들과 잡다한 물건까지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특히 이 거리에는 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지만 가격은 제각각이다.
만일 물건을 산다면 최소한 여러 곳을 둘러보고 구입해야 손해를 면할 수 있다.
상해의 골동품거리 동타이루는 중국 역대의 유물인 도자기, 그릇, 공예품, 복장, 카메라,
레코드판,지폐·동전 및 그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골동품들이 즐비하다. 총 길이 200여
미터의 거리에 시장이 형성돼 볼 만한 물건도 많지만 짝퉁도 많다고 한다.
이 거리는 골동품 이외에도 골목마다 상점 뒤로 상해 사람들이 사는 생활상을 그대로
볼 수가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통타이루 입구 맞은편에는 만상화조어 교역시장이라는 중국의 재래시장이 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꽃과 새, 금붕어, 애완동물, 화훼류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으로
볼거리도 다양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애완동물인 귀뚜라미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수천 년 전부터 귀뚜라미를 애완용으로 길러왔고, 중국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중국 황제와 귀족들이 사육하는 귀뚜라미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인들은
귀뚜라미를 단순히 애완동물로 기르지 않고 싸움을 붙여 승부를 겨루는 내기 도박에
이용하기곤 한다.
이 시장에서도 싸움 전문 귀뚜라미를 길러서 팔고 있으며, 가끔 시장 깊숙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가보면 귀뚜라미 싸움을 구경할 수 있다.
예술인 거리 타이캉루
타이캉루는 다푸치아오 지역의 작은 골목길 중 하나로 중국 신예 예술가들이 모여 형성한
지역이다. 1998년 이전에는 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곳이었지만 9월 상해 정부의 후원을
통해 상해의 예술거리로 변화되기 시작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면, 신진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 공방들이 눈에 띈다.
공방에서는 도자기를 짖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조각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있는 아담한 찻집과 레스토랑도
만날 수 있다.
타이캉루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인사동이나 신사동 가로수 길과도 닮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는 동시에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이 거리에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소품, 재미있는 그림이 있는 가게,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 등 독특하고
이색적인 것들이 많다.
또한 좁은 골목 이곳저곳에 위치한 야외 노천카페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가롭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술인의 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은 바로 중국에서 생산된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이차로 유명한 운남 지역에서 커피가 생산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운남을 갈 수 없지만 타이캉루 속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는 있다. 운남 커피는 햇빛 아래 자연 건조 방식으로 가공되는데 해발 1400m
이상의 지대에서 재배된다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 동양의 베니스 주가각
주가각은 상하이 청포구에 있는 전형적인 수상도시로 대부분의 거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처럼 물길로 연결돼 있다. 임시정부와는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어 거리는 조금
멀지만 상해를 다녀오면 이곳은 꼭 들러야 할 명소로 꼽는다. 특히 주가각은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SBS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 소지섭과 한지민이 나룻배를 타고, 훗날을
약속하는 장면을 촬영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APEC 정상회담 당시 각국의
정상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곳이다. 주가각의 10대 아름다운 경치 중 그 첫 번째는
명 왕조 때 건축된 방생교이다.
상해 최대의 석교로 정교함과 동시 아름다운 미관을 자랑하는 방생교는 말 그대로
‘방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물고기들이 그물에 잡히지 말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방생시켜주는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다리 주변에는 방생용 금붕어와 거북이를
팔기도 한다.
주가각에는 약 36개의 돌다리가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방생교 이외에도 옛 황제의
별장인 ‘과식원’이라는 정원과 현재 유일하게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청나라
시대의 우체국인 청조우국도 있다.
주변 골목길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이 있고, 상점에는 민물고기와 새우를
재료로 요리하는 각종 음식점과 공예품 상점들이 있다. 음식점을 지날 때면 샹차이(향초)와
향신료 냄새가 진동해 중국 남방 고유의 음식문화를 느낄 수 있으며 마을 곳곳마다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저만큼 흘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