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살고있고 또 화성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학생인데요... 저도 자원 봉사하고 싶거든요 ^^;;
: 1795년 윤 2월 9일 창덕궁. 이른 새벽 1,779명의 수행원을 거느린 정조의 행차가 시작된다. 이 장엄한 행차의 목적지는 한양에서 1백 리 떨어진 화성, 즉 수원이다. 해마다 2월경이면 나서는 원행길이지만 이날은 좀 특별하다.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나란히 회갑을 맞이하는 해였기 때문. 이렇게 시작된 행차, 왕복 200여리에 이르는 8일간의 화성 행차는 오늘날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구체적인 기록과 여덟 폭 병풍 『화성능행도』에 고스란히 담겨 전하고 있다.
:
: 지금으로부터 205년 전의 기록을 따라 그때 그 길을 밟아 본다. 출발점은 당연히 창덕궁 돈화문. 종로 보신각을 지나 명동을 거쳐 숭례문을 빠져나간 행렬은 지금의 한강 인도교 부근에서 잠시 멈춘다. 임시 가설된 배다리로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다. 배다리를 건넌 행렬은 점심을 들기 위해 잠시 머문다. 지금은 한강 인도교 건너 축대 위의 기와집으로만 남아있는 행궁 '용양봉저정'이다.
:
: "해방된 뒤 3채 정도 남았는데 그 나마도 6.25 피난 갔다왔더니 폭격으로 1채만 겨우 남았더라구" 55년째 이곳을 가꾸며 함께 살아온 고순낭(80) 할머니. 이승만 대통령 때 복원, 서울시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를 바로 이웃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금껏 집 수리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너무나 정이 들어 여기서 끝까지 살겠다."며 활짝 웃어 보인다. 이후 행렬은 대방동을 지나 시흥대로로 들어선 뒤 이날 밤 유숙지인 시흥 행궁을 향한다. 현 시흥5동사무소 부근이다. 이튿날 행렬은 안양역과 의왕시 왕곡동 골사그내 부근을 지나 지지대 고개로 들어선다. 지지대 고개란 귀경길 이곳을 넘으면 사도세자의 원이 있는 화산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정조의 발목을 늘 더디게 붙잡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
:
: 이윽고 행렬은 수원시 파장동 노송지대를 지나 마침내 화성에 도착한다. 꼬박 이틀이 걸린 100리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흥대로를 통한 이 길은 1795년 처음 개척된 길이었다. 사도세자의 원을 수원으로 옮긴 1789년 이후 줄곧 노량진을 거쳐 사당동, 남태령 고개, 과천, 인덕원을 거쳐 지지대 고개로 넘어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
:
: 현재 수원 화성은 다양한 길로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어떤 길을 택하느냐가 여행의 느낌을 크게 좌우하는 법. 정조의 원행길을 따라간 수원 화성은 타임머신을 타고 200여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수원의 화성 성곽 역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복원, 보전되고 있다. 과거 일제의 훼철과 한국전쟁의 참화를 벗어 날 수는 없었지만 화성 완공 이후 정리된 보고서로 편찬된『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통해 완벽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기 때문. 그 기록의 꼼꼼함은 95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시에도 당시 유네스코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
: 현재 복원된 수원 화성의 둘레는 약 5.7㎞. 수원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성곽을 따라 도는 맛이 그만이다. 또 각각의 문루와 전각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도 매우 특이한 체험. 방화수류정의 경우 빼어난 경치는 물론, 각기 다른 빛깔의 벽돌로 꾸민 연속무늬는 그 장식성도 일품이다. 무엇보다 친절히 안내해주는 자원봉사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화성을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다.
:
: "조선시대의 역사는 물론 성곽 조성의 동기, 건축사 등 체계적인 교육을 거친 뒤 활동하게 됩니다. 현재 숙련된 8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는데 외국어 요원도 30여명 정도입니다." 수원 화성 자원봉사자 신용건(29)씨의 말이다. 옛길 따라 청명하고 높은 가을 하늘에 빗긴 수원 화성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성곽길 따라 친근한 이웃의 안내 받으며 가볍게 거닐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