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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 해안도로는 넓은 바다를 옆에 두고 길이 바다처럼 흐른다. |
그 길에 서면 ‘전설’이 눈에 닿는다. 칠산바다, 뱃사람들에게 그곳은 꿈의 영토였으며 목숨을 건 도박의 바다였다.‘사흘칠산’이라고 했다. 조기가 칠산바다에 머무는 시기는 대략 서너 달. 물때를 잘 맞추면 두 사리에 일주일 정도 그물을 펼 수 있다. 변덕 심한 바다를 감안하면 제대로 그물질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사나흘. 칠산바다에서는 사흘이면 일 년의 굶주림이 해결됐다.
바다로 직접 배를 몰아가는 것은 아니다. 도로가 넓고 바다는 가깝다. 칠산바다를 곁에 둔 19km의 길, 바다와 흐름을 같이 하는 그 길을 두고 사람들은 ‘백수 해안도로’라 한다. 칠산의 전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길의 전설은 이제 시작이다.
몇 해 전 길을 다듬었다. ‘전국 아름다운 길’에 이름을 올렸고, 소문은 사람을 불러 길이 붐빈다. 풍경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람은 다시 풍경이 된다. 넓은 바다를 옆에 두고 길게 이어지는 도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길이 품고 있는 어떤 마을에서는 영화도 찍혔다. <마파도>다. 할매들의 입담은 영화의 대박으로 이어졌고, 같은 장소에서 <마파도2>가 찍혔다. 속편의 속설을 증명하듯 두 번째 영화는 망했지만 길의 아름다움이 영화를 불러온 것만은 사실이다. 칠산의 바다는 그렇게 육지를 섬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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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와 해변 사이, 비좁은 영토에서 옥수수나 참깨가 자란다. |
뱃사람들의 꿈, 칠산바다
해안도로에서도 보인다. 멀리 먹구름처럼 섬들이 길게 이어진다. 백수 앞 바다에 일곱 개의 섬이 말줄임표처럼 웅크린다.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전부 합쳐 칠뫼다. 칠산바다는 여기서부터 서북쪽으로 백 리다. 영광 북쪽으로 부안의 위도와 식도, 치도를 거쳐 상·하왕등도까지 이르는 길을 이른다. 그 길목에서 조기들은 산란을 했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뱃길이다. 조기철이면 팔도에서 수백 척의 중선배가 모였고, 곳곳에서 파시가 열렸다. 그 거래액은 수십만 량, 조기떼가 칠산바다로 밀려들면 포구에 배를 대기 힘들었다. 그때 칠산바다에 온 사람들은 만선의 꿈을 꾸었고, 더러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바다가 만만히 배를 몰아올 곳은 아니었다. 풍요 속에는 항상 빈곤이 있고, 위험이 도사린다. 뻘이 넓고 깊지 않은 바다지만 북서풍이 불어오면 바다가 뒤집힌다. 수많은 배들이 바다에 묻혔다. 조그만 풍선배를 타고 조기를 잡던 어부들은 품고 온 꿈과 함께 저승을 건넜다. 칠산바다는 꿈과 매장이 뒤섞인 바다다.
세월이 지나고 그 바다는 전설을 아주 잊었다. 작은 어선 몇 척이 바다를 건널 뿐 물길은 조용하다. 백수 해안도로는 백수면 홍곡리에서 염산면과 길이 갈리는 사잇길에서 시작한다. 19km를 이어지는 길옆, 바다가 함께 흐른다. 바다 곁에 사람의 흔적도 함께 흐른다. 도로와 해변 사이, 비좁은 영토에서 옥수수나 참깨가 자란다.
바다를 덮고 있던 물이 멀리 빠져나가면 갯벌이 넓다. 물때의 시기에 따라 달라 단정하긴 어렵다. 갯벌이 가장 넓은 날은 4km다. 바다에 지평선이 그려진다. 물이 완전히 밀려나가면 해안도로 옆으로 마을을 이룬 사람들은 조개를 캐거나 정치망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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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파도>가 찍혔던 동백마을. |
동백마을, <마파도>를 품다
세상에 그런 섬은 없다. <마파도>다. 지도에도 없고, 누군가가 마음 속에 꿈꾸는 이상향으로서의 섬에도 그런 곳은 없다. 마파도는 이어도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섬보다 재미있는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나라 영화사에서 ‘할매’들이 처음으로 중심에 섰던 섬이기도 하다. 그 할매들 엽기, 호러, 그로테스크하면서 또한 인정 많았다. 그 상상의 섬 마파도가 백수 해안도로에 있다. 동백마을이다.
동백마을은 영화처럼 할매들의 땅이다. 평균 나이가 70이 넘는다. 할매 열 둘, 할배가 둘. 영화와 마을의 운명이 절묘하게 일치한다. 이태 전 영화가 찍힐 때만 해도 몰랐다. 촌사람 눈이 호강한다 싶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배우들이 동네에서 몇 달을 죽치고 살았다. 심심하던 할매들 정말로 신이 났다. 영화가 개봉됐을 때는 영화표도 나눠줬다. 생전 처음 극장이란 곳에도 가봤다. 법성포에서 단체 상영도 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지쳤다. 조용하던 마을에 사람 홍수가 났다. 거짓말 조금 보태고 백수해안도로에 놀러온 사람은 모두 동백마을을 거쳤다. 알고도 오고, 모르고도 왔다. 관객이 많이 든 영화는 촬영장소도 대박이 난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오는 사람 말릴 것까지는 없으나 달가워할 이유 또한 이제는 없다.
“아조 항꾸네 몰려온디 징해. 첨에는 맨나 할매들만 산디 좋았제. 근디 엥간해야 쓴다마제 요거는 날마다 시장통이 되야분께 기력이 딸려. 인자 좀 조용허겄다 시펐더만 또 영화 찍는다고 왔어. 밤낮 없이 마을이 시끌사끌 허네.” 동백마을 김정님(75)씨의 말이다.
동백마을 사람들의 흔적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하루는 영화사 사람이 와서는 신던 신발을 모조리 쓸어갔다. 고무신이 가장 인기였다. 또 어떤 날은 밥그릇을 가져갔고, 호미나 낫을 빌려갔다. 대신 전부 새것으로 사다줬다. 그렇게 동백마을 사람들은 소품으로 영화와 함께 호흡했다.
잠깐 스쳐 가는 나그네의 눈으로 전부를 볼 수는 없다. 백수 해안도로는 아름답지만 까닭 모르게 바다가 쓸쓸해 보인다. ‘사흘칠산’, 전설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다의 잔상뿐이다. 다시 칠산바다가 일어설 순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