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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30~31일 강릉여행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차량 문제로 고심을 좀 했다.
결론은 어찌 되었건 '다 함께 떠나자'라는 명제를 두고
소요시간, 비용문제 등을 고려해 보며 고민했다.
처음에는 수연이가 신랑과 낚시 스케줄이 선약되어 있어서 못가겠다고 했었기에
동행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으나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 전화를 했던 바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저녁시간 또 전화가 왔다.
엿기름을 기르기로 했는데 그것을 4시간 마다 물에 닦아가며 물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못갈 것 같다는...
그래서 우리는 수연이 빠지면 랜트를 안해도 되고 그냥 숙자차로 가기로 결정.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추진 중에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와서는 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러면서 차량 문제를 물어 왔다. 이 넘의 가시나 이랬다 저랬다 에구구 미친다.
미영이도 친정어머니 생신을 주말로 땅겨 하기 때문에 못간다 했고.
네가 안간다 해서 그냥 차 한 대로 가기로 했다고...그랬더니
찜찜하게 그럼 처음 계획했던 대로 그냥 다녀들 오라고 했다.
자기 하나 추가로 비용문제가 많이 발생하니까 그렇게 하라고...
이건 또 무슨....하지만 의리상 또 그렇게는 못하지...
난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고
갈 수 있는 상황이면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
그래서 명숙이에게 전화를 했다.
명숙이 역시도 내 생각과 같았다.
지가 차를 알아 볼 테니 함께 가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자며 기다려 보라했다.
그런데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도 연락이 없어 기다리다 전화를 하니 먹통.
문자를 넣어 놓고 조금 있으니 연락이 왔다.
자신의 회사 랜트카를 끌고 왔다며 2대로 가자고..
그래서 급히 다시 수연이와 연결을 시도해 보았으나 받지 않았다 미안해서 였는지...
난 다시 명숙이에게 전후 사정이야기를 하고 직접 통화해 보라고 했다.
결론은 다시 수차례 옥신각신 차량 문제로 전화 통화결과 어쨋건 다음날 아침에 함께 가는 것으로 하고
터미널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일찍 일어나 커피물을 준비하고 분주하게 부산을 떨고 있는데
경숙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터미널에 와 있다는 것이다.
분명 8시 반에 만나기로 했는데....이것이 또 나이 값을 제대로 한 것.
갑자기 7시반으로 약속한 것 같아 택시를 타고 달려 나왔다는 것이다.
내가 미친다...
날이 추우니 터미널 안에 들어가 기다리라 하고 나도 빨리 나가마 했다.
터미널 근처에 8시 반쯤 되니 수연이도 신랑이 데려다 주었고 재화도 숙자도 속속 도착.
그런데 명숙이가 오질 않아 또 연락하니 이제 출발한다고 했다.
그 밤에 김치 담으려고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랑 밤새 옥신각신 전화통화 하느라 늦게 잤다고
우리는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9시쯤 강원도를 향해 출발했다.
1호차에 명숙이가 운전을 하고 나와 수연이가 동승
그리고 2호차에는 숙자가 운전하고 재화와 경숙이가 함께 했다.
목적지 없는 무전여행이면 어떠하리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데
너무 행복했다.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어 마음도 풀고 몸도 풀고 간식도 먹고 히히호호
아침 뉴스시간에 강원도에 가을단풍이 절정이라 차가 많이 밀린다고
그리고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쌀쌀할 거라고...그렇지만 막상 떠나보니 분기점 주변 말고는
우리들의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목적지 경포대 나이아드 팬션에 1시쯤 무사히 도착했다.
두 번씩 휴게소에 들러 쉬며 천천히 움직였는데도 보통 3시간 30분 걸린다고 하는 거리를 4시간 걸린 셈이니까
헤아려 보면 계산이 나온다.
우리는 짐을 먼저 풀고 그 근처 한정식 집에서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하고 오죽헌으로 향했다.
신사임당의 사당과 율곡 이이의 사적, 그리고 민속박물관을 들러보며 즐거워했다.
오죽헌에 들러 오죽을 대하니 예전 여고 수학여행 때가 생각났다.
선생님께서 믿거나 말거나 말씀해 주신 말씀까지도...
"너희들 왜 저 대나무가 검은 줄 아니?"
그때 선생님 말씀이 이랬던 것 같다.
울곡 이이가 글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 남은 먹물을
뜰 밖으로 버렸는데 그 먹물 때문에 대나무가 그렇게 검게 된 것이라고.
그때는 선생님 말씀이 다 옳은 것이거니 하고 생각했었던 것도 같다.
친구들에게 다시 그 말을 전해주며 웃었고.
오죽으로 솟대를 만들면 예쁘다는 내 말을 듣고 친구들은 오죽을 양심상 잘라 가진 못하겠고
어디 가지치기 해 놓은 거라도 주워가자고 난리들이었다가 드디어 죽은 가지 하나를 발견하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필요한 가지만 골라 잘라서는 핸드백에 넣은 후
수공예품 전시관으로 가서 구경을 했다. 물론 판매도 했는데 친구들은 내가 지출을 총괄하는 총무이다 보니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명숙이와 숙자가 엄마 이거 사줘하며 졸랐다.
돌아보니 자연석으로 만든 브롯치나 장식품이었는데
나는 힘도 안 들이고 그거 이틀도 못가서 알이 빠져 병신 되는 물건들이야 했더니
친구들은 깔깔깔...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난리들이었다.
나무토막으로 만든 솟대 공예품과 올뺌이 모양의 장식품도 있었는데 정말 귀여웠다.
사달라고 난리들이었지만 내가 그것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 주겠다는 말로
그들의 극성을 물리치고 사진에 열심히 담았다.
다시 그 공예품 점을 돌아 나올 시점에 숙자가 또 익살을 부렸다.
물론 눈이 어두워서도 그랬겠지만 열쇠고리를 두고 이거 얼마라고 쓰여 있어 하고 숙자가 재화에게 물었다.
재화는 "응 3,000원" 했다. 그 말에 빨리 말을이어 숙자가 말하길 "밖에 안하는데"
우리는 또 전시관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무슨 엄마가 그리 인색하냐고 핀잔들을 했다.
그것밖에 안하는데 하나씩도 안 사준다고
내가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이구만...
"어린애들 달래듯 내가 다 만들어 줄께"라고 말하며 우리는 민속박물관 쪽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우리가 어릴 적 보아왔고 사용했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 이전 어른들의 숨결이 어려 있을법한 물건들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났지만
아련하기만 한 마음은 또 한 세기를 밀어내고 밀레니엄을 향해 내 달린다.
그렇듯 다시 한 세기가 지나면 지금의 우리를 다음 세대들은 또 얼마나 불쌍히 여기게 될까.
문명을 앞지르는 과학의 힘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계일지.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사당패 사물놀이 군들의 각시놀음이 한창인 오죽헌 마당의 신명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그곳을 빠져 나와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이 되었던 정동진으로 향했다.
약 40분쯤 걸린다고 했다.
명숙이가 운전하는 1호차를 선두에 두고 숙자가 잘 뒤따라 왔다.
먼저 크르즈호 모형 건물에 도착했으나 예전과는 달리 입장료를 받기에 우리는 그냥
그 주변만 구경하고 아쉽게 카메라에만 담아왔다.
정동진 바닷가로 내려와 모래시계 앞에 섰다.
정동진에 있는 모래시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했던 장구 모양이 아니고
둥글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름은 8.06m이고 폭은 3.20m 무게는 40톤, 모래무게 8톤으로 세계 최대의 모래시계이며
시계 속에 있는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꼭 1년이 걸리며 12월 31일 24:00 정각
1월1일 0시에 반 바퀴를 돌려 (레일 반대쪽으로 이동)1년간 다시 모래를 위에서 다시 아래로 떨어지게 바꿔
새롭게1년을 시작한다.
이곳 모래시계의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형 유리그릇이 아니고 둥근 모양인 것은 시간의 무한성을 상징하기 위함이며
또한 태양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평행선의 기차레일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고 한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쌓이는 모래는 미래와 과거의 단절성이 아닌 연속성을 갖는 시간임을 알린다.
모래시계 원 가장자리의 12지상은 하루의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 했다.
이곳은 서울 광화문 앞의 도로원 표석을 기점으로 정 동쪽에 있는 고을이다.
그래서 하지 때는 한반도 제일 동쪽에서 해가 뜨는 고을이라서 해서 정동진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란다.
해안 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며 위로 조금 올라가 보니 드라마에서는 멋지게 비춰졌던 정동진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드라마는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이다.
배우 고현정이가 데모대 운동권에 휩싸여 쫒기는 몸으로 이곳 정동진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그 역사에서 체포되었던
그때 정동진역 열차 부목 길을 걷는 고현정의 뒷모습이 환상적이었는데 그 사진이 그곳에도 남겨져 있었다.
고현정 소나무라고 이름 붙여졌다가 지금은 모래시계 나무로 불리어지는 그 소나무도 상징물처럼 그대로 자라고 있었다.
우리들은 "고현정 따라 하기" 포즈로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그곳을 돌아 나오는 길에
환상적인 장면 하나를 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해변을 끼고 산자락을 숨차게 돌아 사라지는 열차.
개인적으로 정동진을 환상의 명지로 가슴에 품고 있었던 이유는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던 한가지 이유가 언젠가 대했던 환상적인 그 장면 때문이었으리라
산도 집어 삼킬 듯한 파도와 애환을 감고 도는 굽은 산길
그리고 그 사이를 달리는 기차
그 삼박자가 어우러진 소박한 바닷가 풍경이 그렇게 멋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장면을 기대했었는데
그 그림이 방금 내 앞에서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꿈꿨던 나의 이상과 나의 소박한 꿈은 고스란히 그렇게 또 한 컷의 사진 속에 담겼다.
훗날 그 사진이 헤어지도록 되새김질을 하게 될 터...
시간을 쪼개어 쓰며 저녁노을을 경포호에 가서 보리라 계획했었지만
해가 짧아지다 보니까 벌써 늬엿늬엿 서녘 하늘이 붉어져 갔다.
우리는 그 계획을 포기하고 정동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로 했다.
정동진 모래시계앞 다리에서 지켜 본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다리 밑 개울에 비춰진 노을...그리고 어둠을 먹어가는 흑빛 도시의 정경도 장관이었다.
고층 빌딩들이 개천에 누워 거울 보듯 쌍둥이 건물을 만들어 내고
멀리 뒷 배경을 이루는 크르즈호의 모습도 마치 외국의 어느 도시로 연상 될 만큼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일몰을 지켜보며 우리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렸다.
바닷가 근처라 몹시 추울 거라고 옷을 두툼하게 준비했었는데 그것도 빗나간 설정
그리 춥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 크르즈호 모형
다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경포대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경포로 돌아오니 6시쯤 ...
저녁 먹기는 조금 일러 경포호를 산책하기로 했다.
그 주변을 반 바퀴 정도 돌고 나니 가장 어린 명숙이가 다리가 몹시 아파 더는 못 걷겠다고 해서 도중하차 했다.
몇 일전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인대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
난 예전의 기억들을 되살려 보며 친구들에게 각인시켜 주었지만 친구들은 제대로 들어 주지도 않고
지들대로 지껄여 댔다. 나 스스로만 지난 시간에 잠겨 잠시잠시 생각에 빠질 뿐...
쉼없이 자맥질하는 물오리.
하늘거리는 갈대
파란 하늘 그때의 그 벤취들...
하지만 내가 친구와 나란히 앉아 노을을 지켜보았던 그 그네가 없어진 것이 못내 서운했다.
날씨가 흐려 달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수연이와 하늘에 별을 헤아려 보았다.
하나 둘...
가장 빛나는 별 하나는 제 별이고 흐릿한 저 별은 나 갖으라나 칫~~~
경포호에는 달이 3개가 뜬다고 했었다.
하늘에 뜬 달
경포호에 비친 달
또 님에 눈동자에 어린 달
비록 달은 휘영청 밝지 못해 아쉬웠지만 상상만으로도 만족했다.
갈대의 부비부비가 군상을 이룬 인간사 표본처럼 느껴졌고
경포호를 깨금발로 차고 날아오르는
물오리의 절박함도 난 느낄 수 있었다.
네발로 가는 자전거의 뒷자리가
지금 이 순간
비워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이유도...
그 이유를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즈음
연인들이 네발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질러간다.
장난처럼 난 말한다.
"밀어 드릴까요? "
그 사람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요"
내가 얼마나 바보짓을 한 걸까?
그 빈자리를 난 누굴 태우고 싶어 했던 걸까
나의 잃어버린 실체
나를 투영할 수 없는 또 다른 내 그림자
바로 잃어버린 시간이리라.
날 이곳까지 몰아 낸 내 젊은 청춘은
어디서 팽이치고 있는 걸까
아무리 태엽을 되감아도
되돌아 갈 수 없는 지난 내 소중한 시간들
모래시계의 입자들처럼
한번 흘러내리면 다시 역으로 거스를 수 없는 그 시간은
또 과거란 이름으로 모래밭에 뿌려질 것이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그려 넣은 ♡ 모양이
누구의 가슴에 새겨지기도 전에 다시 갈가리 홅고 지나가는
몰인정한 파도의 심술처럼 세상은 그런 것이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의 정경 같지만
그 안에는 얼마나 피나는 투혼이 서려 있겠는가.
야금야금 땅 빼먹기 놀이처럼
산 정상 낭떨어지처럼 파도가 깎아 먹은 모래톱의 절벽하며
우리가 보기에는 평화로운 놀이처럼 보이나
소라집을 짊어지고 사는
집게의 투쟁 또한 그들에게는 피 터지는 삶의 방식이리라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난 쉼 없이 자맥질하는 물오리처럼
지난 시간들을 자꾸 낚아 올리며 앞으로의 시간들을 점쳐 본다.
내가 말하는 내 것이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내 것이란 의미 속에는
진정 내가 끝까지 안고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얼마 만큼 덜어내야
내 스스로 훗날 자화자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이론대로 만은 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인정되나 가슴으로는 실행이 되질 않는 나의현실
어떤 사람을 바보라고 하는지 난 너무도 잘 안다.
나 또한 그 바보들 중에 하나란 것도...
혹자는 그리 말하는 이도 있다.
정말 바보에게는 "바보"란 말을 하지 않는 법이라고
바보란 말이 얼마나 좋은 의미인지도 난 잘 안다.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 무지의 소산
덤으로 얹어지는 듯한 후덕함이 내포된 의미
아귀가 딱 맞는 변론이 필요치 않는...
2% 부족한 가운데에도 모든게 다 허용되고 용서되는...
짜깁기된 인생일지라도 한 귀퉁이의 여백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내포된 인간미를 풍기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말하는 그도 나도...
우리는 여성성을 느끼게 하는 잔잔한 경포호 산책을 뒤로 하고
남성미 넘치는 경포대해수욕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바닷가에 늘어선 회집들을 선회했다.
어느 곳이 좋을지...
난 예전에 친구와 갔었던 그 횟집으로 가길 원했지만 이 가시나들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일단 횟집이 크고 멋진 바다정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하자는 것.
해변 끝에서 거의 끝까지 걸어 내려오면서 정한 횟집으로 우린 들어가 자리 잡았다.
메뉴판을 보고 너무도 비싼 가격에 친구들은 또 놀란 표정들...
그렇지만 일단 이곳에 왔으니 비싼 만큼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우린
눈 찔끔 감고 200,000만원에 상당한 회를 시켜 먹으며 장난처럼 회 한사라에 얹어진
살점을 두고 가격을 메기기 시작했다.
살 한 점에 3,000원 꼴....비싼 만큼 맛은 경이로웠다.
입에서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럽고 쫄깃했다.
오히려 써비스로 온 오징어회가 더 싱싱하고 맛있어서 우린 자꾸 추가를 했다.
비싼 가격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체움으로...
그 와중에 언어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헤프닝도.
그 덕에 꽁치 구이는 실컷 먹었다.
우리는 한치회를 추가로 달라고 했는데 알바생 종업원은 한치를 못 알아듣고 자꾸 꽁치 구이를 가져 왔던 것.
바닷가에 살면서 그 알바생은 한치를 모른다고 했다. 이런........
술 한 잔을 곁들여 우리는 맛나고 감질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경포대 바다 해변가를 제주 올래길처럼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해변 따라 걸으며 즐거워했다.
연인들이 주위에서 터트리는 폭죽을 지켜보면서도 마치 우리가 살라 놓은 불씨인양 더 신나서 환호성하며
어둠 속에 스러지는 불꽃을 하나하나 헤아려가며 즐거워했다.
그 어떤날 그 시간이 내 기억의 끈을 늦춰 나를 다시 가둬 놓는 줄도 모르고....
메케한 화약 냄새가 내 영혼을 제자리에 끌어다 놓기 전까지는 행복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면서 건어물 집에 들러 오징어발을 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키 만한 길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문어발과 오징어 발을 구별하는 방법을 방송에서 한번 본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문어의 빨판에는 가시가 없고 오징어의 빨판에는 가시가 있어 구별이 확연했다.
만원에 4개라는 것을 우리는 억지를 써서 아저씨에게 1개를 더 얻었고 먹기 좋게 구워서 잘라까지 주셨다.
숙소에 돌아오는 중에 마트에도 들러 맥주도 사고 안주거리도 샀다.
모텔형 팬션은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깨끗했고 우리 6명이 지내기엔 그렇게 협소하진 않았다.
팬션형이라 주방까지 설치되어 있었고 따로이 침대방이 하나 더 있었다.
침대방을 차지하는 과정에서도 의견이 잠시 분분했었지만 코골이 친구들은 절대 사절.
연장자 순, 또는 가위바위보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제주에서처럼 그냥 재화와 내가 침대에서 자기로 결정.
맥주 한 잔 진하게 건배하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려는 순간
옆에서 문자를 확인한 수연이가 혼자 킥킥 거리며 웃고 있다.
우리는 왜????하며 수연이의 문자를 빼앗아 보고는 모두 까르르
문자 내용인 즉 "니미 마누라는 놀러 보내 놓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내용의 의미는 먼저 살짝 말했듯이 수연이가 여행을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로
나중에 고추장 담거나 식혜 만들어 먹으려고 엿기름을 손수 기르려고 물에 담가 놓았던 상태
그런데 그것은 계속 4시간마다 물을 갈아 주어야 한다는 것....
그 역할을 남편이 꼼짝없이 맡게 된 것이다. 그러니 마누라도 없겠다 놀러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신랑 친구들이 낚시가자고 자꾸 전화는 오는데...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누라가 맡겨놓고간 막중한 소임을 실행하려니'''
그 내막을 남편 친구들이 듣고 그럼 몰래 갔다가 마누라 오기 전에 얼른 오면 되지 않느냐고 꼬여 댄다나?
마누라 놀러 보내 놓고 그 짓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그런 문자가....
우리는 여담으로 이제 놀러 갈 때는 수연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신랑들에게 맡겨놓고 나오자고..하며 웃었다.
그 이후로 우리에게 "니미"는 유행어처럼 ...ㅎㅎㅎ
그래도 시간시간 마누라에게 전화하는 사람은 수연이네 뿐...(쬐금 부러웠다.)
우리 옆지기는 그런 잔정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잘 지내다 오겠지 하는 마음뿐인지.
떠나오기 전 현관 앞까지 나와 "잘 다녀와" 그 말 한 마디에 함축.
그 대신 내가 시간시간 보고형식...
아침 일찍 일어나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지켜보자고 했다.
알람을 6시에 맞춰 놓고 우리는 꿈나라로 갔다.
알람이 울리자 난 친구들을 깨워 놓기 바빴다.
일어나 옷만 챙겨 입고 차 한대에 옮겨타고 바닷가로 갔다.
아침 바람이라 많이 차가웠다.
조금 있으니까 정말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해가 어둠을 뚫고 솟아 올랐다.
날씨가 조금 흐려서 처음에는 그리 선명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광경을 온 몸으로 느꼈다.
한 컷 한 컷 사진에 담으며 행복해 했다.
불혹의 나이를 넘다보니 이젠 희망보다는 어느 때 부터인가 진취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모든 것을 망설임으로 일관하게 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젊은 날에는 그랬었다. 지금 못한 것 나중에 다 하며 살거야.
그런 생각으로 매 순간을 위로하며 꿈을 키웠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그걸 해서 뭐해?
언제 써 먹겠다고?
이 나이에 몸이 따라 주지도 않는 걸? 하다 다치기라고 하면? 등등
그렇다 지금의 나는 그런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 나의 현실이란 것에 동조하면서...
하여 난 지금의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을 때 맘껏 해" 라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일출을 지켜보고 우리는 바로 그 주변의 해수탕으로 갔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우리는 또 하나의 마음으로 뭉친다.
친구들의 뽀샤샤한 모습들을 난 한 줄로 세워 놓고 사진으로 담았다.
다시 아침식사로 유명하다는 순두부집으로 향했다.
원조집이라고 하던데 난 별로 그렇게 맛 있는 줄 모르겠다.
유명하다니까 그냥....먹어 보는 그 정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다 멈추겠지 생각했는데 하늘을 보니 예사 빛깔이 아니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발하며 한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우리는 혹시 상행 귀가 길이 막힐지 모르니까 설악 쪽으로 이동해서
조금 일찍 귀가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져 그렇게 움직였는데 빗발은 점점 세차졌다.
설악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휴휴암도 지나치고
비가 많이 와서 중간중간 내려서 구경할 그런 여건이 못 되었기에 그냥 이동하는 차 안에서 구경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한참 가을단풍이 절정인 설악산도 그냥 차창으로 구경 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
그렇게 돌아 나와 곧장 상행 길을 서둘렀다.
귀가 시간을 계산하여 시간이 넉넉하면 이천에 있는 명품 점에 들러 쇼핑도 하자며..
그런데 왠 걸 중부고속도로가 생각보다 길이 많이 막혔다.
앞차 뒷차 순조롭게 잘 운행하다가 수신호 미스로 중부고속에서 숙자차가 인천방향으로 빠지게 된 것...
잠시 당황하며 우왕좌왕했지만 우리는 음성 휴게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장 빠른 IC에서 유턴해서 그리로 오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합류할 수 있었다.
잠시 커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우리는 다시 출발.
대전에 도착해서 아구찜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힘겨웠던 1박2일 간의 여정을 마무리 했다.
이틀 동안 운전하느라 애쓴 숙자 명숙이이게 정말 고마웠다.
사랑하는 친구들 그대들이 있어 너무도 행복한 하루였네.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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