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제의 중요성
현 시점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작게는 1987년 시작된 민주화가 정착 단계를 거쳐 이미 심화과정에 들어섰으며, 남북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개선의 여지가 높아 보이는 시점이다. 그리고 크게는
새 천년의 시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유교적 전통과
가치가 민주주의의 이념 및 제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21세기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규범적 및 제도적인 차원에서 모색하려는 것이 본 소과제의 주된 목적이다. 이 작업은 다음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고찰될 것이다.
<1> 기존의 근대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적 근대화의 추구
<2> 한국적 민주공동체의 모색과 그와 양립가능한 경제체제의 탐색
<3>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비교연구
<1>에서는 기존의 근대화를 '돌격형 근대화'로 특징지우고, 그것에 대한 반성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성찰적 근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건국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담론과 실천은 근대화였다. 근대화는 경제발전,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 및 정치의 민주화, 그리고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동안 근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근대화는 그것을 구성하는 영역들이 부정합적 내지는 불균형적으로 발전됨으로써 일시적으로 체제발전이 정체되거나
위기가 초래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볼 때, 그동안의 근대화 과정은 그런대로 목표를 향해 전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은 아직도 많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비약적으로
진행되었고, 1987년 이후 정치 영역도 점차 민주화되어 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단체들이 결성됨으로써 시민사회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나아가 남한의 민주화와 전 세계에 걸친 탈(脫)사회주의 추세 및 북한의 내적 위기에 따른 개방·개혁의 압력은 한반도에서의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 큰 이변이 없는 한 각 부분 영역들에서 근대화는 더욱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앞으로 근대화를 심화시키는 과정은 현재와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를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의 근대화는 거의 무비판적이며 맹목적으로 서구적 근대성을 추구하여 왔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 1세기 동안 추진된 동아시아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동안 근대화는 돌이킬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세계사의 보편적 추세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근대화의 대의는 별도의 도덕적 평가를 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근대화의 부분적인 부작용들에 대한 비판은 때때로 제기되었지만, 그 당위성만은 도전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근대화가 달성되자 근대성에 내재된 자아성찰성(自我省察性, self-reflexity)이 학계와 시민실천운동 등을 통해 발현되기 시작했다.
근대성은 근대화 자체의 의미와 성취에 대한 자의식적 반성을 고취시키는 성격이 있다. 근대성에 대한 자아성찰은 애초에 근대성의 제도적
결함과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근대화 주체에 대한 내면적 자아성찰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비판과 반성의
대상을 근대화의 주체 자신으로 삼게 되는 과정은 근대성의 성숙단계를 반영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추구해 온 근대화 과정에 대한 자기반성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근대화가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숨가쁘게 추진되었던 '돌격형 근대화'의 추동력이 소진되고, 그 부작용과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서서히 나래를 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서 전통문화의
발굴, 그리고 문화종합에 관한 시도들은 이미 근대성의 세례를 받아
온 한국인의 자아가 내적 성찰단계에 진입한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근대화의 심화과정은-아직은 주로 지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자아성찰적 근대화의 성격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근대화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에서는 '자아성찰성' 개념을 사회발전 연구에 도입하여 한국사회
발전 부분의 목표로서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이념적·제도적 윤곽을 모색해 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민주공동체에 적합한 경제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총체적인 사회발전 부분의 목표로서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실현이란 결국 한국인들이 그 안에서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점진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한국인의 자아가
지닌 고유한 도덕적 특성과 보편적인 근대제도의 정합성, 다시 말해
양자 사이의 이상적 통합을 모색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들의 정체성·의식구조·정서구조를 틀지우고 있는
유교적 전통과 가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상적인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이념적·제도적 형태를 모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17세기 서유럽에서 발원한 자유주의 문화에 적응된 형태의 민주주의임을 감안할 때,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상이한 토양을 갖고 있는 유교문화권에서 제 기능을 그대로 발휘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자유주의 문화의 지나친 개인주의화 경향을 두고 볼
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절대화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한국의
문화적 토양 위에 구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이제 민주화의 심화과정에 들어섰다고 간주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유교적 전통과 가치가 민주주의의 이념 및 제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우리의 가치, 즉 유교적 가치에 적응된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적 형태를 모색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이렇게 유교적 전통에 기반을 둔 민주공동체가
기존의 시장경제체제가 지닌 본질적 약점을 어떻게 극복 또는 보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찰해 본다.
<3>에서는 한국·일본·중국·대만·베트남·싱가폴 등 6개 국가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유교적 전통과 국가발전의 상관성을 검토해보려고 한다. 동아시아는 정치발전과 산업화의 과정에서 가장 동태적인
지역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동태성의 원인을 유교문화와 접목된 '아시아적 가치'라는 포괄적인 틀을 통해 이해하고 이를 통해 국가발전의 전형적 모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실증적 검증은 아직도 논쟁중이다.
일부 학자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서구화에 따른 자유주의 . 개인주의 .
물질주의는 동아시아의 사회병리적 현상을 초래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면역체제로서 아시아적 전통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구식 국가복지주의는 국가재정의 파탄, 근로의욕의 저하, 노동윤리의 쇠퇴를 유발시키고 있으며, 유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기업복지주의를 통해 사용자측의 노동복지에 대한 책임감과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고 가부장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교문화의 전통을 통해 아시아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아시아적 가치'의 바탕에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자유민주주의의 약점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양의 공동체주의로 전환시키려는 논리가 존재한다. 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은 가족중심주의 전통과 효사상, 개인보다 사회를 앞세운 공동체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과
사회질서 . 규율중시, 합의 . 조화 및 다양성 속의 통일성 존중, 근검 .
절약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Bellows는 이러한 특유의 동양적 가치규범이 전후 일본·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의 경제기적을 낳았으며 중국 . 베트남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미국 . 영국 등 서구의 사유체계는 사회전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가치관으로,
이는 물질만능주의와 윤리도덕의 타락, 범죄확산, 노동윤리 . 사회기강의 해이 등에 직면하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의 논쟁은 소비지향적인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등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대안적 틀로서 유교적 공동체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체계의 개발을 중심테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동아시아는 특유의 가치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가치와 문화가 존재한다면 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만약 이것이 유교적 가치에 근거한다면 이는 개별
국가수준의 발전문제와 어떠한 상관성을 갖는가? 그리고 이러한 논쟁이 동아시아의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정형화 될 수 있는가?
여기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한국·일본·중국·대만·베트남·싱가폴 등 6개 국가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유교적
전통과 국가발전의 상관성을 밝혀 보고자 한다. 개별국가 수준의 비교
분석은 동아시아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논의되었던 '아시아적 가치'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그 실증성을 높이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시각에서 본 소과제는 제1소과제와 제2소과제에서 탐색하고 있는, 유교문화권에 축적된 전통적 사유 및 문화에서부터 사회발전 모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과제와 관련한 국내외 동향 및 전망
(1) 근대화론과 종속이론
전통과 근대라는 양분법에 입각해 非서구사회에 대하여 사고하는 것은 서구에서 실로 오래된 지적 경향이며, 그것은 1950-60년대 미국
사회과학을 지배한 근대화이론에 의해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그 후 전통의 온존을 세계체제적 요인 및 그와 연결된 근대 부문과의 관련 속에서 해명하려는 종속이론의 도전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비판도 전통 부문의 온존 매카니즘을 설명하는 데 주력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 발전에 있어 전통 부문 자체가 지닐 수 있는 적극적인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2) 전통의 재발견 1: 벤딕스와 거스필드
전통의 재발견은 이미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전통-근대의 이분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던 몇몇 사회학자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예컨대 벤딕스는, 전통은 근대에 반대되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성을
내포한 개념이며, 변동에 대한 그것의 수용성이나 탄력성은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근대화도 단순히 서구 경험의 되풀이가 아닌 특정한
역사적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스필드 또한 기존의 양분법의 오류를 7가지로 요약하면서 '전통적인 제요소가 특히 정치적 가치와 정당성이란 차원에서 사회변동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선구적 지적들은 이론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권에서 그것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 사례들이 충분히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거스필드의 경우 인도를 예로 들면서 주장을 개진했는데, 그가 사례로 삼은 인도가 1970년대 이후 정치경제적 역동성을 상실함으로써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현실이 미처 이론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3) 전통의 재발견 2 : 유교자본주의와 아시아적 자본주의
최근 들어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이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역동성을 보여 주면서 이러한 지적들이 다시 주목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통의 재발견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특히
(동)아시아적 가치의 강조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 등장한 것이 '유교자본주의'(confucian capitalism)와 '아시아적 민주주의'(Asian democracy)이다.
이 둘은 모두 유교와 자본주의 발전 및 유교와 민주주의 발전 사이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던 기존견해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지녔다. 베버가 유교와 자본주의발전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elective affinity)을 부인한 이래,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사실(the given)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리고 유교에서 기인하는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정치문화론자들의 주장도 그 동안 널리
수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통념들은 1970년대 후반 이후 동아시아권에서 일본 이외에도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등 소위 신흥공업국들(NICS)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의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제 학자들은 '수많은 비서구권 국가들 중 왜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들만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만이 가진 특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요인들 중 하나가 바로 유교이다. '유교자본주의'란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민주주의를 정치적 보편가치로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싱가폴에서 내세우는 '아시아적 민주주의'이다. 그것은 서구민주주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결합시킨 것이다.
즉, 선거, 의회 등의 민주적 절차를 유지하면서도, 서구민주주의가 노정하고 있는 개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권위와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고 국가의 교도적(敎導的)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인권논쟁의 와중에서 중국
측에 의해서도 주장되면서, 동아시아에서 그 목소리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이 문제에 관한 담론들이 무성한데,
최근 {전통과 현대}·{동아시아문화와 사상} 등 동아시아담론을 주도하는 잡지들이 창간되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으며, 금년만 해도 이와
관계되는 국제학술회의가 3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다.
(4) 한국 정치 연구의 패러다임 변화 : 조건·제도 연구에서 주체에 대한 연구로 전환
이런 국제적인 지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치발전 연구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정치 연구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된 정치경제학 내지 정치사회학은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인한 사회 경제적 구조변화와 강력한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어온 전통적 국가의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정치근대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규명함에 초점을 두었다. 권위주의국가의 전통, 자본주의적 시장, 세계자본주의체제 내에서의 위치, 미소냉전관계를 응축한 분단상황, 미성숙한 시민사회와 미약한 '정치사회'의 존재 등이 한국정치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주요 개념 내지
범주들이었다.
한국정치사에 대한 정치사회학 내지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정치와 사회 혹은 정치와 경제의 역동적 관계를 규명함에 치중하고 있는 까닭에
국가와 같은 정치제도와 자본주의 시장과 같은 경제제도의 상호작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연구는 정치와 산업의 근대화를 보편적 추세로 전제하고, 그 추세가 한국사회에서 구현되는 과정을 인과적으로 분석 이해함에 목표를 두었다. 다시 말해 정치근대화의 전개를
주로 민주적 제도화 및 민주제도의 기능적 정상화를 가능케 하는 사회구조적인 조건들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권위주의적인 국가전통, 남북분단 그리고 세계자본주의체제 내에서의 한국의
위치에 관한 이해 역시 정치근대화의 속도와 한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들로 강조되어 왔다.
정치사회학적인 연구의 진척이 그 자체로서 의미심장한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사회학의 독주는 정치학자들의 관심을 주로 근대적 제도의 수립과 민주제도의 기능적 정상화를 가능케 해주는 사회 경제적인 조건형성 연구에 집중시켰던 만큼,
정치근대화의 주체인 한국인의 도덕적 특성에 관한 연구를 소홀하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해도 그것들은
주로 전통적인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고답적인 이해를 답습했거나, 근대 서구의 인간관과의 상이점을 부각시킨 차원에 머물렀다. 전통문화와 근대적 정치제도 사이에서 한국인들의 자아가 양자를 어떻게 매개하고, 또 그 양자의 구성적 영향에 의해 한국인의 자아가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지에 관한 연구는 전무했다.
현대 한국정치사에 대한 열띤 정치사회학적 논의와 한국정치사에 수반해야 할 한국인의 자기이해의 결여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민주제도적 발전과 그 제도적 틀에서 삶을 영위하는 한국인들의 자기이해가
과연 정합적인가 하는 문제의식의 부재에 의해 설명된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근대적 제도들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와 관련된 것이다. 무슨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수용 정착시켜야 하는가?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의 도덕적 특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만이 대답되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이 채택 발전 전파시켰기 때문이라든가, 보다 더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효율적인 체제라는 주장도 한국인들이 그것을 도덕적으로 지지해야할 진정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만일 한국인들의 자아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개인주의적이며 합리적인 자아와는 다른
도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채택과 운용은 한국인에게는 도덕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나아가서 비(非)자유주의적인 한국인의 자아는 그 제도의 운용에 적응되어 자유주의적인 자아로
변형된다. 그러나 자아가 지닌 도덕적 성격의 변화는 많은 세대를 거쳐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인 만큼, 과도적인 국면에 있는 자아의 성격은 복합적이며 비일관적일 가능성이 크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순조로운 제도 운용은 그 운용의 주체인 인간의 복합적 성격 때문에 크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당화는 최소한 한국인의 자아가 서구 근대 민주시민들의 도덕적 성격인 자율성과 합리성을 체현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 목표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현대 한국정치사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는 이와 같은 자아성찰적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연구가 수반되지
않음으로써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성의 성숙이 자아성찰성을 불러왔듯이, 근대적 제도화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제도운용 주체의 자기반성과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빈번한 왜곡과 후퇴는 결국 자유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행위하는 인간의 특성과 그 인간형을 조성한 문화의 성격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활발해지고 있는 여말선초 및 조선조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라든지, 개화기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들은 모두 현재 한국인과 문화, 그리고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연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성은 현상주의적 관점에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오르테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역사성을 조명함으로써만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현대 한국문화의 틀이 형성되기 시작한 여말선초 및 조선조 그리고 개화기 단계에 대한 관심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구들은 대체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전통사상의 발굴에 치중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원자론적 개인주의, 지나친 합리주의, 사회의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개인의 권리 혹은 자유, 공동체의 파괴, 그리고 소외 등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의 고유(정치)사상이 지닌 강점들을 발굴하려 한다. 또한 오늘날 한국정치의 전환기적
상황과 여말선초의 상황이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고, 여말선초의 개혁사상들로부터 현재의 정치개혁을 위한 중요한 시사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 연구들이 중요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우리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 연구들은 여말선초의 전환기에 대한 이해를 통해 주체적 관점에서 현재의 전환기 한국사회를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구들은 현재 한국적 민주정치발전을 위한 주체적인 연구 기반조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아직은 전환기 한국정치사회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한국적 가치 혹은 목적에 관한 치열한 숙고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가치추구성). 그리고 그와 같은 숙의의 토대이자 결과인 이상적인
인간의 이미지를 해석 구성하고, 그 인간상에 부합하는 정치제도의 본질에 대한 체계적인 구상에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포괄성). 다양한
문화조류들이 공존 공명하는 전환기적인 상황에서, 다양한 가치와 신념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통해 다가오는 시대에 적합한 정치관을
모색하려는 철학적 노력이 미흡하다(철학성). 그리고 아직은 우리의
특수한 역사성의 이해에 몰두해 있는 만큼, 특수성을 보편성 속에서
표현해내려는 노력이 미진하다(보편성).
이상에서 제시한 주체적 정치발전 연구의 특징을 두고 볼 때, 현 시점의 한국에 필요한 주체적 사회과학의 내용은 세 가지의 지적 흐름에
대한 비판적 종합을 요구한다고 생각된다. 전통적 흐름, 근대성의 흐름 그리고 탈(脫)근대성의 흐름이 그것이다. 세 흐름이 서로 공존 공명하는 상황에서 한국정치사회가 지향해야할 궁극적인 가치(들)와 그 가치를 체현한 인간의 도덕적 이미지, 그리고 그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표현해내고 실현시킬 수 있는--보편성을 지닌--이상적인 정치공동체의 윤곽과 그 제도적 구현형식을 제시하는 것이 주체적 정치발전 연구의 임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제도들--예컨대, 자본주의 시장--과의 도덕적 정합성을 묻는 것도 그 중요한 한가지 임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전통의 흐름을 연구하는 역사적 연구와 현재의 지배적인 흐름인 근대성에 대한 연구 및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탈근대성의 흐름에 대한 연구들이 대체로 단절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한문원전에 대한 해독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교문화권의 전통을 왜곡시키거나 부분적 이해에 그쳤으며, 반면 전통의
흐름을 연구하는 유교 전공자들은 사회과학적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적인 영역이든 실천의 영역이든 이 세 가지의 흐름은 현재 한국인의
자아를 부분적으로 구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세 흐름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한 흐름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21세기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위한 적실성 있는 한국적 민주공동체의
모색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지나치게 편협한 국수주의적
정치질서를 미화하거나, 민족적 고유성과 특수성이 사상된 추상적인
근대적 정치질서를 예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는
이상적인 한국인의 자아와 그와 정합성을 갖는 이상적인 정치질서의
모색을 위해 이와 같은 세 가지 흐름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예비적인
단계에 머물러 왔다고 여겨진다. 본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주체적 연구의 부재가 자유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부한 극단적 태도를 조장한 한가지 원인이었으며, 나아가서 한국정치의 무(無)이념성을 지속시킨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전환기 한국사회를 위한 사회발전연구는 이와 같은 직무유기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3. 과제와 관련한 세부내용
본 과제의 목적은 사회발전 연구에 자아성찰성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바람직한 아시아적(유교적) 가치를 탐색, 그 가치와 양립 가능하거나
정합성(整合性, congruity)을 갖는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이념과
제도적 형태를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의 실체는 유교이다. 그러므로 본 과제는 유교를 전공하는 연구자와 정치학을 전공하는 연구자간의 학제적 연구·교육을 통해 수행된다. 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시아적 가치의 비판적 검토
한국의 민주정치발전과 경제발전에 관하여 아시아적 가치가 미친 영향에 관해서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IMF 금융위기 이전에는
주로 긍정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IMF사태 이후에는 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아시아적 가치체계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행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돌발적인 사태와는 상관없이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평가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특히 서구의 자유주의의 내재적 한계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적인 민주정치 공동체 원리를 모색해야 할 현 시점에서 사회과학계의 절박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는 다음의 세 가지 관점에서 검토된다.
가. 90년대 한국사회에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담론 분석
90년대 중반부터 서구문화권에 대한 대응항으로서 동아시아 문화권이 부상되면서 동아시아론이 제기되었다. 그 후 {전통과 현대}의 창간을 계기로 '유교자본주의론'이 화두에 올랐으며, IMF를 계기로 아시아적 가치가 논의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분석이 심화되면서 아시아적 가치의 실체인 유교적 가치에 초점이 모아졌다. 동양사회사상사학회에서는 {유교문화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본 과제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에 앞서 사회과학계와 철학계, 사학계 등에서 논의되는 동아시아론, 아시아적 가치 등
유교를 중심으로 한 담론들을 분석한다.
나. 아시아적 가치와 자유주의적 민주정치에 내재하는 가치의 충돌문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는 17세기 서유럽에서 발원한 자유주의 문화에 적응된 형태의 민주주의이다. 자유주의는 합리적 개인주의의 원리를 바탕으로 서있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서있는 자유주의문화는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반면에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유리시키고 고독하게 만들며 더욱 이기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고독, 소외, 불안 등 많은 사회문제들을 야기시키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는 자유주의 문화와 달리 공동체적 유대와 상호의존성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유주의 문화와 동양의 공동체주의 문화의 갈등은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의 낙후성 혹은 왜곡을 초래한 중요한 한 가지 원인으로 지적되곤 했다. 그러므로 아시아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의 충돌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한국적 민주공동체의 원리 및 제도 모색을 위한 필수적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는 헌팅턴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기독교문명권과 유교문명권과의 충돌이라고 하는 종교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사화과학과 인문학(특히 종교학)과의 학제적 작업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다.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의 양립가능성 및 상호지지성에 관한 검토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의 상호충돌문제 못지 않게
양립가능한 요소들과 상호지지 하는 요소들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는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이념적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2) 한국적 가치를 체현한 바람직한 한국인의 이미지 구성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실현은 그 이념적 원리와 제도적 형태의 모색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적 형식의 도입만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는 그 공동체 운영의 주체가 되는 한국적 민주시민의 덕성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고 또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한국적 가치를 체현한 이상적인 한국인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그 이상적인 한국인의 정치적 덕목들을 구체화시킬 목표를 갖는다.
(3)유교의 가족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과의 대비
유교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는 가족이며, 국가도 가족의
연장으로 파악한다. 인·충·효 등 유교의 핵심적인 덕목들도 가족윤리이거나 여기에 토대를 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서구에서는 기본적인
단위를 개인으로 보고 독립된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지상의 가치로 여긴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자의 공격과 이에 대한 응답이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이다. 본 과제에서는 이 논쟁이 갖는 문제점을 점검하고 유교의 가족공동체주의와
대비하여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델을 모색한다.
(4) 한국적 가치를 구현한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제도적 형태 모색
전통화한 모든 사회제도들은 일정한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적 제도와 시장자본주의의 이식이 한국사회에서 기형적으로 진화해온 한편, 한국문화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해 볼 때, 한국적 가치체계와 정합성을 갖는 제도적 형태의 모색은 그 자체가 중요한 공동선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도덕적 특성을 반영하고 또 실현·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형태의 실현은
한국인들이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적인 공동 조건임과 동시에,
제도의 이상적인 작동과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 있어서, 고도의 관료조직과 정치·행정제도를 운영했던
조선조 사회와 대비하는 방법을 취한다.
(5)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와 시장경제체제의 양립가능성에 관한 연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현대사회의 필수적인 두 제도이다. 이 두 제도가 서로에게 기능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적응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회의 제1의 실천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한국적 가치를 구현한 민주정치공동체가 시장경제체제와 기능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이 연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과제는 한국형 '제3의 길'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업에 있어서
유교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유교의 경제윤리에 대한 검토를 병행한다.
(6)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비교연구
일본, 대만, 싱가폴과 같이 아시아적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정치발전 목표와 그 제도적 형태들을 한국과 비교 연구하는 것은
한국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전망함에 대단히 중요하다. 비교방법은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드러내줌으로써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를 창출·발전시킴에 일조할 수 있다.
(7) 남북한 통합의 경우,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구조설계 문제
남북한의 통합문제는 이제 가능성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러므로 남북한 통합의 경우, 이상의 연구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배타적인 이념을 통합할 수 있는 민족 공통의 이념을 전통사회의 보편이념인 유교에서부터 모색하고자 한다.
4. 과제의 평가방법 및 지표
앞서 소주제를 제시한 바 있기 떄문에 그에 따라 평가 방법 및 지표를
제시해 둔다.
(1) 기존의 근대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적 근대화의 추구
철학자 및 사회과학자들과의 학제간 공동연구를 통하여 연구자간의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토대가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간
혹은 대학원생간의 학제간 정기적인 모임을 열어 발표 토론하며, 이를
토대로 협동 연구를 진행한다. 이에 근거하여 연차적인 교육, 연구 목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1-2차년도 : 기존의 근대화의 특징을 규명하고 그것에 대한 반성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성찰적 근대화'에 대해서 연구하기 위한 최근의
담론에 대한 참고 문헌의 자료 수집과 분석, 해석 및 결과를 정리한다.
제3-4차년도 : 건국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었던 근대화의
특징과 그 한계를 규명하고 부정합 내지는 불균형적으로 발전된 모순과 구조적 문제를 규명한다. 이를 위하여 학제간 공동 토론회와 협동
연구를 진행하여 논문으로 정리하며, 아울러 다양한 관점을 수용, 토론한다.
제5-6차년도 : 미래의 근대화의 유형 탐구를 위해 무비판적이며 맹목적으로 진행되어온 서구적 근대성과는 다른 내재적 자아성찰성(自我省察性, self-reflexity)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근대성의 모색을 타진한다. 그 대안으로서 전통 문화의 발굴, 그리고 문화 종합에 관한 시도들은 이미 근대성의 세례를 받아온 한국인의 자아가 내적 성찰단계에
진입한 것임을 입증해 보고자 한다.
제7차년도 : 소주제와 관련한 최종 목표 점검 및 성과를 발표한다. 특히 자아성찰적 근대화의 가능성에 관한 집중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2) 한국적 민주공동체의 모색과 그와 양립 가능한 경제체제의 탐색
이 주제 또한 자료 수집 및 정리한 자료의 공유와 토론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철학 및 문학·역사의 연구자와 대학원생 상호간에 공감대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연차적인 연구 목표와 함께 논문
발표 계획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제1-2차년도 : 한국적 민주 공동체의 모색을 위하여 한국인의 자아가
지닌 고유한 도덕적 특성과 보편적인 근대 제도의 정합성의 도출을 위해 한국인들의 정체성, 의식구조, 정서구조 등을 지배하고 있는 유교적 전통과 가치에 대한 이해를 강화한다.
제3-4차년도 : 이를 바탕으로 유교적 전통과 가치가 민주주의의 이념
및 제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한국인의 가치에 조화된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적 형태를 모색한다.
제5-6차년도 : 유교적 전통에 기반을 둔 민주 공동체가 사회발전의 모델로서 기존의 시장 경제 체제의 본질적 약점을 어떻게 극복, 보완할
수 있는가의 방안에 대하여 고찰한다. 이를 위해 소논문 발표와 종합
토론회를 개최한다.
제7차년도 : 소주제와 관련한 최종 목표 점검 및 성과를 발표하고 국제학술지와 전국 규모학술지에 게재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 및 교육의 성취도를 단계별로 점검하여, 연차적 논문 발표계획을 달성하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지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학제간의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의 마련이 필요하다.
(3)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비교 연구
이 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싱가폴 등 동아시아권 국가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유교철학전공 학자와 협동하여 각 나라의 유교적 전통과 국가
발전의 상관성을 검토해 보려고 한다. 이에 근거하여 연차적인 교육,
연구 목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1-2차년도 : 급속히 산업화된 서구화에 따른 자유주의·개인주의·물질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진단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면역체제로서 아시아적 전통가치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관련 문헌과 자료를 분석, 해석 및 결과를 정리하고 다각적으로 문제점을 도출한다.
제3-4차년도 : 개인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자유민주주의의 약점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양의 공동체주의로 전환시키려는 논리의 구조를 분석, 파악한다. 동시에 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을 이루는 가족 공동체주의의 전통과 효사상, 합의·조화 및 다양성 속의 통일성인 존중, 근검·절약 등의 덕목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
제5-6차년도 : 이러한 논리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싱가폴 등의 국가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유교적 전통 및 국가 발전의 상관성을 규명한다.
제7차년도 : 이상의 주제를 위해 소논문 발표와 종합 토론회를 개최한다. 특히 동아시아 특유의 가치 문화 그리고 그 연원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한다.
과제의 평가방법은 국내외 전문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편수와 주요
학술회의에서의 발표건수로 갈음한다. 가능한 한 A급 전문학술지에
발표함으로써 본 과제 수행의 우수성을 증명할 것이다. A급 전문학술지 게재를 위해서는 2-3명의 전문가들로부터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회과학 연구의 경우 전문학술지 게재여부와 전문학술지의 등급(A, B, C)을 그 우수성의 지표로 삼을 수 있다.
5. 과제의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
(1) 학문적 기여도
본 과제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정치학전공자와 유교전공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학제적인 연구로 진행된다. 두 영역의 연구성과들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연구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학문적 성과와 교육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된다.
(2) 정책 활용 가능성
1) 국가정책은 국민의 합의에 의해 뒷받침된 국가발전의 거시적 발전방향에 기초해서 작성될 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본 연구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한국적 민주정치공동체의 이념적·제도적 윤곽을 모색하는 작업인 만큼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모든 국가정책 작성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해줄 수 있다.
2) 본 연구는 한국의 정치개혁의 거시적 목표를 제시해 줌으로써, 그에 부합하는 정치제도의 수립에 기여할 수 있다. 바람직한 한국적 가치의 실현은 효율성 원리와 더불어 제도개혁을 도모함에 있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3) 본 연구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의 아시아적 가치논쟁을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킴 -예컨대 제도화 - 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한국적 민주정치발전을 주도해갈 수 있는 인력양성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3) 경제·사회적 기여도
본 연구는 한국적 가치체계에 적응된 형태의 민주정치공동체의 이념적·제도적 형태를 모색하는 작업인 만큼, 정치제도와 한국인의 도덕적 특성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최소화함으로써 사회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킴에 기여할 수 있다. 당장의 어떤 가시적인 경제적 효과를 산출하긴 어렵지만, 그러한 사회심리적 긴장의 완화는 전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사회적 통합을 가속화함으로써 전반적인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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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제의 중요성
중세적 패러다임의 근간을 이루면서 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인
유교적 가치관 혹은 세계관은 패퇴하여 과연 쓸모없게 되었는가. 미국식 개인주의의 패러다임이 현대화인 양 혹은 미래의 유일한 패러다임인 양 혼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의 소비주의적 퇴폐적 개인주의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중세적 패러다임의 핵인 유교적 가치관의 발전적 계승과
재창출이 21세기의 한국에 절실히 요청되는 바이다.
미래 발전 지향적 패러다임의 올바른 구축을 위해서는 민족문화의 뿌리로서 민족적 패러다임의 원형적 위치에 놓인 유교적
패러다임의 바른 이해와 역사적 굴절상의 확인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율적 발전을 이룩하는 터전이 될 것이다.
유교문화권에서 중세적 패러다임의 형성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형성한 16세기 이전까지 한국과 중국에서의 역사적
배경을 규명하고, 그 현실이 어떻게 중세적 이념과 세계관 및 가치관의 총합이라 할 당시대적 패러다임으로 구축되어 가는가를
해명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여 그러한 역사적 현실이
문학작품의 미적 형상화로 표출된 양상을 학제간의 연계적 연구에 의해서 탐구해 내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1)唐代를 전후한 시기의 중국의 역사적 현실을 검토함으로써, 유교문화권에서의 패러다임의 보편성을 확인하고 (2)이를
토대로 한국 중세사회의 형성과 구조를 중국의 경우와 대비적으로 검토하여, 한국의 중세 사회의 문화적 동질성과 특질 그리고 패러다임의 지평을 드러낸다. 이와 병행하여 (3)한국 중세 문학의 미적 형상화 문제를 다룸으로써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문학적 양상을 드러내기로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의 내용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3) 중세적 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1)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중심에 있는 중국의 사회와 구조를 포착하여 문화의 담론을 추출하고 이것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문화적 보편으로 되는 과정과, 이를 근거로 한국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한 전제로서 설정할 필요가 있다.
'儒敎'의 발상지로서 中國은 당연히 '유교문화권' 안에서 '중심'에 있다. 물론 주체성을 생명으로 하는 인문학에서 '우리'의
문제가 마땅히 위주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교문화권의 일반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하여,접근의 실상을 위해 방법적으로 중국을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를 포함한 유교문화권의 '패러다임'에 순차적으로 접근해 갈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안에서 유교는 다기로운 전개양상을 보이고 있다.
先秦시대의 '원시유교', 秦·漢 統一帝國의 성립 뒤 만들어진
'帝國儒敎' 그리고 '사대부'라는 특이한 지배층의 형성과 함께
나타나는 '新儒學'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유교란 명칭으로 개괄될 수 있는 공통적 속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특정 시대에 조응하는 그 사상의 구체적 변화상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중국의 유교를 동태적으로 파악하는 데
매우 긴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당대를 전후한 시기 '중세' 유교의 존재형태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魏晉南北朝라는 분열기
동안 사회적 의미가 점차 축소되어 간 듯한 '帝國儒敎'는 隋·唐
統一帝國의 출현과 함께 다시 그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五經正義}로 대표되는 經學의 국가적 정리사업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조건은 이미 그 이전 秦·漢帝國과 달라져 있었던 만큼, 기존의 유학은 현실적으로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唐後期에 古文運動과 더불어 등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결국 宋代로 이어져 '新儒學'으로 전개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당대의 상황은 기존에 秦·漢과 宋代 사이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간주되고, 그 전후에 존재하는 典型的 시기에 비하여 홀시되는 경향도 있었다. 즉 '帝國儒敎'와 '新儒學'만큼 당대의 유교는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면 당대를 전후한 시기에 그 사회적 생명력이 소진해 가는 듯했던 유교가 새롭게 부활하였다는 사실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당대의 역사적 조건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2)는 중세형성기에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에 대한 것으로 중세 유교문화 형성의 한국적 특질을 고찰한다는 데 연구의 중요성이 있다. 이 문제는 현재적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으로 연구의 중요성이 배가되는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규정한 양극구조의 냉전체제가 붕괴된 지금의 세계질서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다극적 구조인 지역공동체의 출현이다. 지역공동체는 지리적 근접성과
동일한 경제권을 형성 요인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문화적 동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세계도 지리적 근접성을 바탕으로 전근대사회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과 중국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의 경험과 그로 인한 한국의 분단체제화 및 중국의 사회주의화는 동아시아 경제권의 이질화를 유발함으로써 지역공동체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삼국이 향후 세계사의
조류에 맞게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철저한
반성 위에서 한국의 통일 실현과 중국의 시장경제로의 진입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할 때, 동아시아세계가 동일한 문화권 내에서 국제질서를 운영했던 근대 이전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오늘의 입장에서 한국 중세 사회의 형성과 구조를 재음미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3)은 중세형성에서의 패러다임이 문학에 어떻게 수용되고 이후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는가에 대한 고찰로 중세적 체제가 흔들리기 이전인 16세기까지의 문학에 대한 文藝美學的 접근이다. 이는 중세 한국문학의 본질과 전개양상을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내용이다.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한국문학은 유교문화권에 포용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유가사상과 유가문학론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고려 말에 처음 수입된 주자성리학은 조선의
건국 이념으로 자리하여 국가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유가문학론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학은 찬란한 꽃을 피워나갔다. 主題意識과 形像意識으로 되어있는 문학 역시 유가적 이념과 그에 기반한 미의식이 기본 바탕으로 되어 있다. 이 시기의 한국문학에서 주제의식에 관련된 분야는 광범하고 밀도 있게 연구되었을 뿐 아니라 업적도 상당한
편이다. 그런데 주제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미적 형상화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중세의 문예미학이라는 주제는, 한국인의 미의식이 한국문학
가운데 한시문과 국문시가에 여하히 나타나 있으며, 또 이들 문학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문학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핵심이 되는 문제이다.
중세적 패러다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미적 가치를 지닌 국문시가와 한시문은 그 동안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연구·번역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대량이 아직 연구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 있어서는 조선 중기를
전후해 만개했던 한시문의 가치를 서구적 관점에서만 평가한
나머지 그 자체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貶下해 버리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였다.
그 당시의 문학작품은 유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철학과 문학 역사적 관점이 混融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작품의 뛰어난 가치만큼이나 많은 작품활동이 이루어져서 현존하는 것만도 매우 방대한 분량이다. 특히 유가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 작품들의 미의식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속에서도
독특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학의 수입은 중국에서 이루어졌지만, 중세적 패러다임은 중세의 한국문학에서 온전히 드러난다고 하는 말은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창출된 국문시가 및 漢詩文이 가진 미의식의 변모양상을 검증하고, 이것이 중국이나 일본 등과 어떤 변별성을 지니는가를 규명할 필요는 절실하다. 과제의 성격상 국문시가와 한시문을 대등한 위치에 놓고 이를 연계시켜 연구에 임하고자 한다. 국문시가와 漢詩文의 미의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적 미의식을 추출할 수 있으며 근대 미학의 관점으로만 보아왔던 한국문학을 통시적으로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한국문학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재확인함으로써 훌륭한 문화유산의 계승과 새로운 가치발견에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된다.
2. 과제와 관련한 국내외 학문동향
학제간 통합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앞서 제시한 소주제로 나누어서 확인하고자 한다.
(1)의 내용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중세
문제에서 특히 唐代의 역사와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唐'이란
술어는 國名을 넘어 중국 문화 내지 동아시아 문화의 대표격으로 지칭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이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그간 중국이나 대만은 물론 일본과 미국에도 唐代史 연구를 위한 전문적인 학회와
학회지가 따로 독립되어 있음은 그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연구의 활황은 곧 다양한 학설·논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른바 '唐宋變革'을 둘러싼 일본학계의 시대구분논쟁은 주지의 사실로서, 그 결과 당대의 '古代'像과 '中世'像을 규명한 숱한
논문들이 나와 있다. 중국학계의 경우 이 시기를 '봉건사회'로
본다는 점에서 대개 일치하지만, 지주의 성격 변화와 관련하여
또다른 형태의 시대구분 논란이 있다. 즉 前期 봉건사회와 後期
봉건사회의 分期 문제가 그것인데, 후술하듯이 당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그 중요한 시점마다 이러한 논쟁에 휘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구분 논쟁들은 기본적으로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이론적 도식들을 전제하고 있어, 여기에 얽매이게 되면 당대사의 구체적인 실상과 오히려 멀어질 위험성도 없지 않다.
사실 근래의 국내외 학계는 기존의 이런 연구 경향에 대한 비판
위에서, 개별 사상에 대한 실증을 중시하는 추세이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전세계적인 보수화 경향과 맞물려 있는 듯한 이러한 연구태도 역시 문제가 없지 않으나, 이것이 당대 역사상의 이해에 그 토대를 확고히 해주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魏晉隋唐史學會'와 '宋遼金元史學會'가
생겨, 여기에 소속된 다수의 중국 중세사 연구자들이 이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연구 수준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고, 연구 주제도 개인적 차원에 머무를 뿐 학계 일반의 공통된 관심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특히 당대나 宋代의 역사가 우리 나라의
역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우리의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에 {譯註唐律疏議} 3권이 간행되어 여태껏 부족했던 사료의 견실한
정리·주석 작업의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형성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한다.
(2)의 내용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한국 중세 사회의 문제 가운데 동아시아의 7세기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일정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자국 중심 역사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학계는 세계제국으로서의 당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고지에서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이해하는 극단적인 중국 중심적 애국사관에 매몰되어 있다. 한편 일본학계에서는 대화정권이 白村江戰 패배의 충격을 계기로 당의
율령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고대전제국가가 비로소 확립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통치제도의 성격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한편 한국학계에서의 논의 방향은 당연히 中·日學界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특히 7세기 전쟁과 그 이후의 체제 재편에
대한 연구동향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그 하나는 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전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종래에는 일제 식민사학의 滿鮮史觀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민족주의사학의 남북국시대론을 계승하여 南北國의 성립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이 제기되었다. 신라삼국통일론의 강조는 발해의 역사로 하여금 한국사에서 위치할 수 있는
논리적 공간을 약화시키는 점과 최근 渤海史에 대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자국 중심적 역사해석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는 점을 아울러 고려할 때, 이 전쟁의 전개과정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기점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성립 시기에 관한 견해는 상당히 다양하다. 첫째, 삼국시대부터 중세사회로 파악하려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주체사관에 입각한 북한학계의 공식적 견해인데, 고조선과 진국을 고대노예소유자사회로 파악함으로써 그 이후의 삼국시대를 중세로 이해하고 있다. 둘째, 羅末麗初의 轉換期論에 입각하여 고려시대부터 중세사회로 파악하려는 입장이 있다. 이
견해는 지금 한국학계의 주류적인 것으로서 친족집단의 변화와
선종 불교의 대두 및 고려시대에서 차지하는 유학의 비중 등에
주목하였다. 셋째, 고려의 무신정권 이후를 중세사회로 시대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이 구분은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국가에
의해 인간노동력 자체가 수취되는 단계에서 지주-전호제에 의해 토지생산물을 수취하는 단계로의 전환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신분제의 확립여부 등 몇 가지 지표들이 한국의 중세문화의 형성기와 그 이후 전개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3)의 내용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중세
문학은 미의식을 바탕으로 했을 때 문학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 학계는 문학작품에서의 미적 형상화 문제를
그 동안 논의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를 논의하는 경우도 미적
범주론이나 미적 유형론 같은 관념론에 머물러 그 독특한 미적
가치의 실체를 밝히는 구체적 연구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근래에 와서 미의식에 입각한 문학연구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지만, 의욕에 비해서 그 동안 연구업적이 미미한 탓으로 내실있는 논문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계에 한국문학의 미의식을 연구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좋은 계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하고, 이같은 학계의 인식과 본 연구과제가 우연찮게 합치된 것은 여러모로 다행한 일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지의 경우 그들 문학의 미의식적 접근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역시 관념론에 머물고 있거나, 지나친 실용론에
편중된 경향을 보이는 수준이고,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업적은 없다고 여겨진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문화혁명 이후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적 미의식으로 중국문학을 해석·이해하여 왔다. 그들은 중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모두 부정하고 사회주의적
미의식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 오다가 전통과 단절된 문화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면서 중국의 옛 모습을 한국에서나마
찾으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는 일찍부터 서구와의
교류를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와 문학을 세계에 알리면서
적절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문화적 선점을 모색하고 있으며, 일정 부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문학에 대한 연구소개나 번역작업, 소개할 수 있는 인재양성의 소홀 등으로 심도 있는 연구는 그만두더라도 아직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개론 수준의 이해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한국문학을 체계화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한국문학의 미의식'에 관한 연구작업은 매우 시급하다.
이 시기의 시가문학은 물론 서사문학·산문문학과의 연계를 모색하여 한국문학의 미적 형상화의 전체적인 상에 대한 탐구를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근대 이후 현대 한국문학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튼튼한 기반을 갖는 한국문학이 될 것이다.
3. 과제와 관련한 세부 내용
세부 내용은 앞서 이미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주제에 따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서술한다.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이 내용은 중국 중세사의 구체적 양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이 때 당대를 전후한 시기 곧 魏晉南北朝로부터 宋代까지를 시야에 넣는 통시적 접근과 함께, 당시의 주변 동아시아세계에 대한 공시적 검토를 아울러 도모할 것이다.
사료의 정리 작업은 역사 연구의 기본 토대를 다지는 일일뿐만
아니라, 이 바탕 위에서 비로소 수준 높은 성과도 기대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이러한 기초 작업에 소홀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니, 이번 기회에 비교적 장기적인 계획 아래 중국 중세사의 기본적인 사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존 역사상을 제공하고 있는 正史 기록들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철저한 사료 검토 작업은 비단
정사에 그쳐서는 안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筆記史料들이다.
이 책들은 당시 사회상을 직접 반영하고 있는 유용한 사료이나,
활자화되어 학계에 널리 보급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들을 상호 비교함과 동시에 당시 政書類 서적들과 대조하면서, 그 정리·주석을 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밖에 시문 등 종래 역사학계에서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당시 문학 작품들도 적지 않으니, 이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개인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특정 문헌이나 주제별로 讀會와 같은 지속적인 공동 작업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학만이 아니라 문학, 철학 등
유관 학문들간의 학제간 연구가 될 때 더욱 유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제는 앞으로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포괄적이고도 장기적인 계획 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역사의 전개과정을 표면적으로나마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다. 따라서 중세사의 구체적인 양상에 접근하기 위해, 무엇보다 이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술한 바 시대구분 논쟁에서 과도기에 위치한 당대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궁정 내부의 정쟁들까지 학계의 큰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당시 민중의 정치적 움직임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본 주제의 중심이 되는 唐代의 경우를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당대가 '律令體制'라고도 하듯이, 이 시기 법제의 정비는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그 이전 시기의 율령을 발전·체계화시킨 唐律과
唐令은 이후 전근대 중국에서는 물론 동아시아 각지에서 그 기준과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치를 비롯하여 土地·稅役, 身分, 村落, 喪葬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制度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므로 당대의 社會相을 파악하기 위해 이러한 율령의 정확한 파악이 선결 과제인 셈이다.
이와 함께 여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禮制의 문제이다. 전근대 중국에서 禮가 갖는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데, 실상 기존의 당대사 연구에서 이것은 율령만큼 주목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율령과 함께 편찬된 {大唐開元禮}는 국가적 의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고, 당시 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헌이다. 그러므로 종래 학계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유교문화권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더욱 그러하다.
魏晉南北朝 이후 중국에서는 불교·도교가 융성하고, 이러한
현상은 당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당시 관료의 선발 과목에서 明經科가 수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지배이념으로서 실제로 가장 큰 기능을 한 사상은 역시 유교였다. 단지 상대적으로 그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었을 뿐인 것이다. 더욱이 중국사 전체의 흐름에서 생각할 때, 전술한 것처럼
이 시기는 유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해 간다는 점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유교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 사회적 조건에 대한 구명이 필요하고, 이것은 앞으로 다양한 측면에서의
역사적 조망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교의 새로운 움직임은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文體의 개혁과 함께 그 내용의 혁신을 도모한 古文運動의 흐름 속에서, 이후 신유학적인 사유구조의 기본틀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문학이 크게 발전한 당대의 士人들에게 경학과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니, 이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고 분명히 한 것이 바로 古文運動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문학적 소양이 경학적 교양과 함께 士人의 필수적인 요소로 되었고, 이 점에서 당대 문학에 대한 연구는 당시
유교의 이해에도 극히 긴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것은 唐初 이래 다수 등장하는 類書들이다. 따라서 당대 지식과 지식인의 존재형태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가지 책들이 어떻게 분류되고 또 읽혀졌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해명을 필요로 한다. '圖書의 사회사'가 문제시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당대의 구체적인 역사상을 구축하는 데,
민중의 실생활에 대한 이해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문제이다. 사실
이와 같은 주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종래 학계에서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유관 연구들도 많지 않다. 따라서 衣·食·住를 비롯한 실제 生活 각 방면의 검토는 기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척정신을 가지고 임해야 할 이 분야의 사회사적인 연구는 앞으로 큰 성취가 기대된다.
이를 구체적인 항목으로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중세사의 기본정리 작업
·唐代의 정치와 법제 및 禮制 연구
·당대의 유교 부흥운동과 古文運動의 고찰
·당대의 서적출판 및 衣·食·住 등 民衆生活史 연구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7세기 이후의 한국사를 중국 중심적 세계질서와의 관련 속에서
중세사회로 파악할 때,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용한 문화가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각 부문별 검토가 필요하다. 이때 유의해야 할 사실은 서양의 중세사회가 지방분권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의 중세사회에서는 서양사의 관점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 서양과 동아시아 중세사회의 차이점이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유교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중세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정치적 성격을 고대사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전제왕권체제론도 있지만, 우리
나라 중세사회의 통치체제가 중앙집권적인 특징을 지닌 점을
고려할 때 신라에서 中代社會의 성립은 한국사의 차원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 중세사회의 토지제도가 갖는 특징과 관련한 사항이다. 三國에서 南北國으로의 전환은 왕조의 양적 변화일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질적 변동을 수반하였다. 신라와 발해의
성립은 한반도에서 항상적 전쟁 상태의 종식을 의미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장 기본적인 노예공급원인 전쟁포로의 소멸은 사회·경제구조의 재편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라의 중대 왕권은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귀족세력과의 길항관계 속에서 일련의 토지제도를 시행하였다. 토지제도를 이해하는 방향에는 고대사회 연속설과 중세사회 이행설의 입장이 있지만, 신라 중대에 실시된 토지분급제가 고려시대의 전시과와 조선시대 과전법의 선구적 형태라는 데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한국 중세사회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 상응하는 이념체계, 곧 불교와 유교에 관련한 사항이다. 고대사회에서 통치이념적 기능을 담당하던 샤마니즘에 대체하기 위해 수용된 불교는 신라 중대사회에서 국가불교로서 교리의 발전이 요구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교리상의 차이로 종파의 분립
현상이 나타났다. 이같은 종파의 분립은 불교가 이미 보편 종교로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유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신라가 수용한 유교는 漢唐儒學이 기본이었을 것이므로 자연히 국가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교와 유학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각 상대적 우위에 있으면서 지배이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위에서 신라 중대사회의 성립을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성립으로 파악하려는 본 연구에서 취급할 주제와 이해의 방향을 위에서 간략히 제시하였다. 이밖에도 良賤制에 입각한 신분제의 확립 및 송·명과 고려·조선간에 이루어진 조공외교의 실상 등을 밝힘으로써 동아시아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한국 중세사회의
위상과 특징이 보다 분명하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구체적인 항목으로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중세형성기의 통치제도의 문제
·중세형성기의 토지제도의 문제
·중세형성기의 이념체계의 문제
·중세형성기의 신분제와 대외관계
·7세기 동아시아 변환기에 나타난 國際戰에 대한 검토
·한국 중세사회의 기점에 관한 문제
(3) 중세적 유교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유교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한국 중세문학의 미적 형상화 문제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다루기로 한다.
① 패러다임 형성기에 있어서의 한국 시가문학의 품격론
② 형성기의 중세적 패러다임과 문학에 나타난 자연인식과 미의식의 상관성
③ 형성기의 중세적 패러다임으로 본 문학에 있어서의 典故 用事의 미학-서구의 패러디 문학과 대비
④ 형성기에 있어서의 均과 和를 추구하는 中庸的 패러다임과
국문학의 서술구조적 특징
⑤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전통적 문예 미학
⑥ 禮樂論을 중심으로 한 중세의 미학적 패러다임 이를 토대로
수시로 소논문을 발표하여 그간의 연구성과들을 정리 보완하고, 한국문학의 양식적 특성과 미의식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연구논문을 마무리할 것이다. 한국문학에 대해 서구에서는 아직도 중국과 일본에 위치하고 있는 漸移 지대의 문학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한국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해외에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인재의 부재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 우선 우리 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문학과의 공통점과 변별점을 분명히 하면서 그 특징을
부각시키는 작업에 후학들의 뒷받침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들을 통한, 해외에 소개되어 있는 한국문학의 현황에 대한 검토작업도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유교문화권인 중국·일본·대만 등의 학자·학생들과의 연구 교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대학원생의 참여방법으로는 문헌
수집 및 분석, 논문 작성 등이 있다.
4. 과제의 평가 방법 및 지표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유교문화권의 중심인 중국의 중세사회의 다양한 국면을 연구하고 교육을 통해 인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표를 세우고 이를
통해 평가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미 앞에서 중심적인
주제를 논의한 바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지표를 세우고 과제를
평가하기로 한다.
제1-2차년도 : 중국 중세사에 관련한 자료의 수집과 기본사료의 정리 작업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구도를 정한다.
제3-4차년도 : 유교문화의 中核에 해당되는 시기인 唐代의 정치와 법제 및 禮制 연구를 통해 중국 중세사회의 특질 및 유교적
패러다임의 원형을 확인한다.
제5차년도 : 당대의 유교 부흥운동과 古文運動의 고찰을 통해
이 시기 한국 의 문화적 상황을 대비적으로 파악한다.
제6-7차년도 : 唐代의 서적출판 및 衣·食·住 등 民衆生活史를 파악하여 이러한 풍속이 같은 시기의 한국에 어떠한 양상으로 교섭하였는가를 파악한다.
이러한 지표와 지표에 따르는 평가는 동양사, 한국사 그리고 한국문학의 학제간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학제간 연구방법론을 통해 교육과 연구를 한 결과물을 논문과
출판물로 간행하기로 한다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이 주제에서는 중국, 한국의 두 축에서 지표를 제시하고 그 평가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중국 중세의 경우 : 우선 3단계로 평가하기로 한다.
(가) 장기지속적 연구로 사료의 정리 및 기초작업에 따른 독회를
바탕으로, 3차년도부터 사료의 정리·주석 작업에 관한 성과를
발표하고, 6차년도 이후 그 결과를 책자로 출판한다.
(나) 하드웨어적 연구 중심으로 1차 연도에는 자료 수집을 주로
하고, 2차 연도 이후에는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다) 소프트웨어 연구 중심으로 3차 연도까지 자료를 수집하고,
4차 연도 이후에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학원 수업과 대학원생의 발표 논문을 통해서 시행하기로
한다.
한국 중세의 경우 : 학문의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중기적인
교육·연구 과제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지도교수의 연구·교육 구상에 따른 대학원생의 철저한 학습이 필수적이다.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은 사료 해석학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본 연구의 진행과정에서는 과거 대학원생이 단편적으로
연구업적을 제출하는 방법을 지양하고, 비교적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문제제기와 문제의식의 지속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연구 과제와 관련된 원전 사료의 순차적인 강독을 실시함으로써 석사와 박사과정의
학생이 각각의 단계마다 연구주제를 발굴하고 그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추적이 가능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특히 이를 차년도별로 계획을 정하여 {삼국사기}·{삼국유사}·{구당서}·{신당서}·당의 율령관계자료·{일본서기}·일본의 율령관계자료를 강독하고 이를 토대로 학제간으로 논문을
검토하고 발표한 뒤 평가하기로 한다. 요컨대 이러한 계획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루어졌느냐가 평가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3) 중세적 유교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이 주제는 앞의 연구성과와 학제간의 공통 발표를 전제로 소주제를 정하여 평가와 그 지표를 확인하기로 한다.
우선 미학 사상의 기초와 원리를 기반으로, 문예 각 분야의 미학
이론을 탐구하고, 중국 미학과의 관련 양상 및 일본 미학의 전통과 비교한다. 그리고 국문시가의 미의식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논한다. 특히 조선조 단가와 가사작품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국문시가와 한시문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이다.
그런 다음 시조와 가사를 중심으로 한시와 대비적으로 연구 검토하되 서구 패러디 문학과 대비하여 탐구하기로 한다. 이를 기반으로 악장문학의 미학과 그 서정성·교훈성의 진수를 규명하는 한편, 중세적 패러다임을 원용하여 국문소설에서의 中庸的
서술구조, 국문시가에서의 中庸的 표현미학 등도 다루어 중세미학의 지표를 확인하고 그 성과를 점검하기로 한다.
제1차년도 : 소주제에 관련한 문헌 자료 수집과 기존 논의의 검토를 통해서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고, 각 소주제에 관련된 이론적 접근과 방법론의 모색, 관련지식의 배양 정도가 얼마나 충실하게 시행되었는가를 평가한다.
제2차년도 : 교수·대학원생 간의 협동 연구가 소주제에 맞추어
그 기초작업이 논문의 준비작업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측정한다.
제3차년도 : 각 소주제별 구체적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구성한다.
제4-6차년도: 논문을 완성하여 학회지에 발표한다.
제7차년도 : 앞의 결과물을 종합하여 출판하기로 한다.
그리고 연구성과는 소논문 발표, 논문 발표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검증을 받고, 인터넷이나 통신 등에 연구과정과 성과물을 게재함으로써 대중적인 관심을 유도한다. 한편, 각 학교에 관련된
전공들과의 교류를 통해 연구대상을 보편화시키고 연구성과물은 문학사에 첨가시키도록 한다.
5. 과제의 기대효과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唐代를 전후한 시기 中國의 歷史像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함으로써 당시 儒敎文化圈의 중심에 있었던 中國 내부의 역사적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최근 학계의 동향에
따라 실제 사회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적인 文化의 機制에 주목하여, 이 시기 儒敎의 사회적 動態를 밝힘으로써 唐代에 두드러지는 儒敎와 文學의 밀접한 관계에 착목하고, 이를 통해 儒敎文化의 실제적 의미에 보다 근접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唐代는 漢代의 '帝國儒敎'로부터 宋 이후 新儒學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상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처럼 변화의 구체적인 계기와
양태를 밝히려는 역사적 접근 방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 현실과 사상의 상호관계, 나아가 그 文化的 推移를 밝히는 과정에서 學際間의 새로운 방법론 모색 과정으로서도 크게 유용할 것이다.
唐代는 儒敎가 주변 동아시아 지역으로 크게 확산되어 가는 시점이므로, 이와 같은 연구는 당시 儒敎를 받아들인 주변 지역의
연구와 병행됨으로써 더 큰 성과를 얻을 수가 있다. 즉 韓半島를
비롯한 儒敎文化圈에 속하는 여타 지역에서 실제로 어떻게 儒敎와 이에 관련된 문화들이 수용되고 또 변용되는지 따로 고찰하고, 이러한 연구들이 전체적으로 종합됨으로써 儒敎文化圈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解明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는데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생각한다.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내에서의 한국 중세사회의 형성과 구조라는 본 연구의 과제가 계획한 바대로의 목적을 달성할 경우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논의가 분분하던 한국 중세사회의 형성문제에 대한 하나의 준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한국 중세사회론은 서양 중세의 지방분권론에 입각하여 접근함으로써 사실의
해석에서 정곡을 놓칠 염려가 없지 않았다. 역시 한국 중세사회는 중앙집권체제로 파악할 때 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사회구조적 동질성이 확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왕의 사실 이해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가능하다.
둘째,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구조에 대한 규명은 다른 학문의
사적 접근방법에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인문학으로서의 문학과 철학은 물론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사회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적 관점이 필수적인데, 그 사회의 구조에 대한 전제적 이해는 해당 학문에서의 주제가 갖는 사적 전개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시켜 줄 수 있을 듯하다.
셋째, 한·중·일의 비교 연구를 통한 동아시아 중세사회의 相似性과 相異性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중앙집권적 중세사회론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동아시아세계 속에서 한국과 중국사의 동질성과 일본사의 이질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불교와 유교를 매개로 하는 동일 문화권이면서도, 역사의 전개과정에서는 한국, 중국과 자못 다른 바가 없지 않았다. 향후 동아시아의 지역공동체의 형성을 전망할 때, 이같은 역사적 사실은 공동체 형성의 전제를 설정하는데 일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3) 중세적 유교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본 주제의 연구를 통해 우선 기대되는 것은 중세적 패러다임의
문학적 형상물로 출현한 국문학의 여러 장르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와 심도 있는 연구로 고전한국문학의 변모·발전 양상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유가적 이념이 내포되어 있는 만큼 사상사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해석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기존의 문학사에서 소략하게 거론되거나 거론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일종의 책임감마저 느껴지는 작업인 만큼 획일적이었던 기존의 연구방법 등을 탈피하여 미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이를 통해 유교적 전통을 내포한 근대 이전의
문학을 이해하고 서구적 미의식에 함몰되어 있는 현재의 문학활동에 고유한 우리의, 우리만의 문학을 자리매김하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미적 감각이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이어진다면, 더 이상 서구문학 사조의
흐름에 휩쓸리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서구를 비롯한 세계의 문학
속에 '한국문학'이라는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본 주제와 병행하여 해외의 여러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한국학 관련 과목에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의 계발 및 지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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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제의 중요성
중세적 패러다임의 근간을 이루면서 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인 유교적
가치관 혹은 세계관은 패퇴하여 과연 쓸모없게 되었는가. 미국식 개인주의의 패러다임이 현대화인 양 혹은 미래의 유일한 패러다임인 양 혼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의 소비주의적 퇴폐적 개인주의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중세적 패러다임의 핵인 유교적
가치관의 발전적 계승과 재창출이 21세기의 한국에 절실히 요청되는
바이다.
미래 발전 지향적 패러다임의 올바른 구축을 위해서는 민족문화의 뿌리로서 민족적 패러다임의 원형적 위치에 놓인 유교적 패러다임의 바른 이해와 역사적 굴절상의 확인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율적 발전을
이룩하는 터전이 될 것이다.
유교문화권에서 중세적 패러다임의 형성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형성한 16세기 이전까지 한국과 중국에서의 역사적 배경을 규명하고, 그 현실이 어떻게 중세적 이념과 세계관 및 가치관의 총합이라
할 당시대적 패러다임으로 구축되어 가는가를 해명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여 그러한 역사적 현실이 문학작품의 미적 형상화로 표출된 양상을 학제간의 연계적 연구에 의해서 탐구해 내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1)唐代를 전후한 시기의 중국의 역사적
현실을 검토함으로써, 유교문화권에서의 패러다임의 보편성을 확인하고 (2)이를 토대로 한국 중세사회의 형성과 구조를 중국의 경우와
대비적으로 검토하여, 한국의 중세 사회의 문화적 동질성과 특질 그리고 패러다임의 지평을 드러낸다. 이와 병행하여 (3)한국 중세 문학의
미적 형상화 문제를 다룸으로써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문학적 양상을 드러내기로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의 내용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3) 중세적 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1)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중심에 있는 중국의 사회와 구조를 포착하여 문화의 담론을 추출하고 이것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문화적 보편으로 되는 과정과, 이를 근거로 한국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한 전제로서 설정할 필요가 있다.
'儒敎'의 발상지로서 中國은 당연히 '유교문화권' 안에서 '중심'에 있다. 물론 주체성을 생명으로 하는 인문학에서 '우리'의 문제가 마땅히
위주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교문화권의 일반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하여,접근의 실상을 위해 방법적으로 중국을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를 포함한 유교문화권의 '패러다임'에 순차적으로 접근해 갈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안에서 유교는 다기로운 전개양상을 보이고 있다. 先秦시대의 '원시유교', 秦·漢 統一帝國의 성립 뒤 만들어진 '帝國儒敎' 그리고 '사대부'라는 특이한 지배층의 형성과 함께 나타나는 '新儒學'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유교란 명칭으로 개괄될
수 있는 공통적 속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특정 시대에 조응하는 그
사상의 구체적 변화상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중국의 유교를 동태적으로 파악하는 데 매우 긴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당대를 전후한 시기 '중세' 유교의 존재형태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魏晉南北朝라는 분열기 동안 사회적 의미가 점차 축소되어 간 듯한 '帝國儒敎'는 隋·唐 統一帝國의 출현과
함께 다시 그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五經正義}로 대표되는
經學의 국가적 정리사업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조건은 이미 그 이전 秦·漢帝國과 달라져 있었던 만큼, 기존의 유학은 현실적으로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唐後期에 古文運動과 더불어 등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결국 宋代로 이어져 '新儒學'으로 전개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당대의 상황은 기존에 秦·漢과 宋代 사이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간주되고, 그 전후에 존재하는 典型的 시기에 비하여 홀시되는
경향도 있었다. 즉 '帝國儒敎'와 '新儒學'만큼 당대의 유교는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면 당대를 전후한 시기에 그 사회적 생명력이 소진해 가는 듯했던 유교가 새롭게 부활하였다는 사실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당대의 역사적 조건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2)는 중세형성기에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에 대한 것으로 중세 유교문화 형성의 한국적 특질을 고찰한다는 데 연구의
중요성이 있다. 이 문제는 현재적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으로 연구의
중요성이 배가되는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규정한 양극구조의 냉전체제가 붕괴된 지금의 세계질서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다극적 구조인 지역공동체의 출현이다. 지역공동체는 지리적 근접성과 동일한 경제권을 형성
요인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문화적 동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세계도 지리적 근접성을 바탕으로 전근대사회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과 중국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의 경험과 그로 인한 한국의 분단체제화 및 중국의
사회주의화는 동아시아 경제권의 이질화를 유발함으로써 지역공동체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삼국이 향후 세계사의 조류에
맞게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철저한 반성 위에서 한국의 통일 실현과 중국의 시장경제로의 진입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할 때, 동아시아세계가 동일한 문화권 내에서 국제질서를 운영했던 근대 이전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오늘의 입장에서 한국 중세 사회의 형성과 구조를 재음미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3)은 중세형성에서의 패러다임이 문학에 어떻게 수용되고 이후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는가에 대한 고찰로 중세적 체제가 흔들리기 이전인 16세기까지의 문학에 대한 文藝美學的 접근이다. 이는 중세 한국문학의 본질과 전개양상을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내용이다.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한국문학은 유교문화권에 포용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유가사상과 유가문학론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고려 말에 처음 수입된 주자성리학은 조선의 건국 이념으로
자리하여 국가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유가문학론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학은 찬란한 꽃을 피워나갔다. 主題意識과 形像意識으로 되어있는 문학 역시 유가적 이념과 그에
기반한 미의식이 기본 바탕으로 되어 있다. 이 시기의 한국문학에서
주제의식에 관련된 분야는 광범하고 밀도 있게 연구되었을 뿐 아니라
업적도 상당한 편이다. 그런데 주제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미적 형상화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중세의 문예미학이라는 주제는, 한국인의 미의식이 한국문학 가운데
한시문과 국문시가에 여하히 나타나 있으며, 또 이들 문학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문학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핵심이 되는 문제이다.
중세적 패러다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미적 가치를 지닌 국문시가와
한시문은 그 동안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연구·번역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대량이 아직 연구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 있어서는 조선 중기를 전후해 만개했던 한시문의
가치를 서구적 관점에서만 평가한 나머지 그 자체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貶下해 버리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였다.
그 당시의 문학작품은 유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철학과 문학 역사적 관점이 混融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작품의 뛰어난 가치만큼이나 많은 작품활동이 이루어져서 현존하는 것만도 매우
방대한 분량이다. 특히 유가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 작품들의 미의식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속에서도 독특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학의 수입은 중국에서 이루어졌지만, 중세적
패러다임은 중세의 한국문학에서 온전히 드러난다고 하는 말은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창출된 국문시가 및 漢詩文이 가진 미의식의 변모양상을 검증하고, 이것이 중국이나 일본 등과 어떤 변별성을 지니는가를 규명할
필요는 절실하다. 과제의 성격상 국문시가와 한시문을 대등한 위치에
놓고 이를 연계시켜 연구에 임하고자 한다. 국문시가와 漢詩文의 미의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적 미의식을 추출할 수 있으며 근대 미학의 관점으로만 보아왔던 한국문학을 통시적으로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한국문학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재확인함으로써 훌륭한 문화유산의 계승과 새로운 가치발견에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된다.
2. 과제와 관련한 국내외 학문동향
학제간 통합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앞서 제시한 소주제로 나누어서 확인하고자 한다.
(1)의 내용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중세 문제에서 특히 唐代의 역사와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唐'이란 술어는 國名을
넘어 중국 문화 내지 동아시아 문화의 대표격으로 지칭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이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그간 중국이나 대만은 물론 일본과 미국에도 唐代史
연구를 위한 전문적인 학회와 학회지가 따로 독립되어 있음은 그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연구의 활황은 곧 다양한 학설·논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른바 '唐宋變革'을 둘러싼 일본학계의 시대구분논쟁은 주지의 사실로서, 그 결과 당대의 '古代'像과 '中世'像을 규명한 숱한 논문들이 나와 있다. 중국학계의 경우 이 시기를 '봉건사회'로 본다는 점에서 대개
일치하지만, 지주의 성격 변화와 관련하여 또다른 형태의 시대구분 논란이 있다. 즉 前期 봉건사회와 後期 봉건사회의 分期 문제가 그것인데, 후술하듯이 당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그 중요한 시점마다 이러한
논쟁에 휘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구분
논쟁들은 기본적으로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이론적 도식들을 전제하고 있어, 여기에 얽매이게 되면 당대사의 구체적인 실상과 오히려 멀어질 위험성도 없지 않다.
사실 근래의 국내외 학계는 기존의 이런 연구 경향에 대한 비판 위에서, 개별 사상에 대한 실증을 중시하는 추세이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전세계적인 보수화 경향과 맞물려 있는 듯한 이러한 연구태도
역시 문제가 없지 않으나, 이것이 당대 역사상의 이해에 그 토대를 확고히 해주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魏晉隋唐史學會'와 '宋遼金元史學會'가 생겨,
여기에 소속된 다수의 중국 중세사 연구자들이 이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연구 수준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고, 연구 주제도 개인적 차원에 머무를 뿐 학계 일반의 공통된 관심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특히
당대나 宋代의 역사가 우리 나라의 역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우리의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에 {譯註唐律疏議} 3권이 간행되어 여태껏 부족했던
사료의 견실한 정리·주석 작업의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형성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한다.
(2)의 내용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한국 중세 사회의 문제 가운데 동아시아의 7세기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일정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자국 중심 역사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학계는 세계제국으로서의 당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고지에서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이해하는 극단적인 중국 중심적 애국사관에 매몰되어 있다. 한편 일본학계에서는 대화정권이 白村江戰 패배의 충격을
계기로 당의 율령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고대전제국가가 비로소 확립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통치제도의 성격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한편 한국학계에서의 논의 방향은 당연히 中·日學界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특히 7세기 전쟁과 그 이후의 체제 재편에 대한 연구동향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그 하나는 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전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종래에는
일제 식민사학의 滿鮮史觀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민족주의사학의 남북국시대론을 계승하여 南北國의 성립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이 제기되었다. 신라삼국통일론의 강조는 발해의 역사로 하여금 한국사에서 위치할 수 있는 논리적 공간을 약화시키는 점과 최근
渤海史에 대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자국 중심적 역사해석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는 점을 아울러 고려할 때, 이 전쟁의 전개과정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기점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성립 시기에 관한 견해는 상당히 다양하다. 첫째, 삼국시대부터 중세사회로 파악하려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주체사관에 입각한 북한학계의 공식적 견해인데, 고조선과 진국을 고대노예소유자사회로 파악함으로써 그 이후의 삼국시대를 중세로 이해하고 있다. 둘째, 羅末麗初의 轉換期論에 입각하여 고려시대부터 중세사회로 파악하려는 입장이 있다. 이 견해는 지금 한국학계의 주류적인 것으로서
친족집단의 변화와 선종 불교의 대두 및 고려시대에서 차지하는 유학의 비중 등에 주목하였다. 셋째, 고려의 무신정권 이후를 중세사회로
시대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이 구분은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국가에
의해 인간노동력 자체가 수취되는 단계에서 지주-전호제에 의해 토지생산물을 수취하는 단계로의 전환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신분제의 확립여부 등 몇 가지 지표들이 한국의 중세문화의 형성기와 그
이후 전개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3)의 내용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중세 문학은
미의식을 바탕으로 했을 때 문학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 학계는 문학작품에서의 미적 형상화 문제를 그 동안 논의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를 논의하는 경우도 미적 범주론이나 미적 유형론 같은 관념론에 머물러 그 독특한 미적 가치의 실체를 밝히는 구체적 연구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근래에 와서 미의식에 입각한 문학연구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지만, 의욕에 비해서 그 동안 연구업적이 미미한 탓으로 내실있는 논문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계에 한국문학의 미의식을 연구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한국문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좋은 계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하고, 이같은 학계의 인식과 본 연구과제가 우연찮게 합치된 것은 여러모로 다행한 일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지의 경우 그들 문학의 미의식적 접근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역시 관념론에 머물고 있거나, 지나친 실용론에 편중된 경향을 보이는 수준이고,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업적은 없다고 여겨진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문화혁명 이후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적 미의식으로 중국문학을 해석·이해하여 왔다. 그들은 중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모두 부정하고 사회주의적 미의식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 오다가 전통과 단절된 문화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면서 중국의 옛 모습을 한국에서나마 찾으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는 일찍부터 서구와의 교류를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와 문학을 세계에 알리면서 적절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문화적 선점을 모색하고 있으며, 일정 부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문학에
대한 연구소개나 번역작업, 소개할 수 있는 인재양성의 소홀 등으로
심도 있는 연구는 그만두더라도 아직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개론 수준의 이해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한국문학을 체계화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한국문학의 미의식'에 관한 연구작업은 매우
시급하다.
이 시기의 시가문학은 물론 서사문학·산문문학과의 연계를 모색하여 한국문학의 미적 형상화의 전체적인 상에 대한 탐구를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근대 이후 현대 한국문학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튼튼한 기반을 갖는 한국문학이 될 것이다.
3. 과제와 관련한 세부 내용
세부 내용은 앞서 이미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주제에 따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서술한다.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이 내용은 중국 중세사의 구체적 양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이 때 당대를 전후한 시기 곧 魏晉南北朝로부터 宋代까지를 시야에 넣는 통시적 접근과 함께, 당시의 주변 동아시아세계에 대한 공시적 검토를 아울러 도모할 것이다.
사료의 정리 작업은 역사 연구의 기본 토대를 다지는 일일뿐만 아니라, 이 바탕 위에서 비로소 수준 높은 성과도 기대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이러한 기초 작업에 소홀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니, 이번 기회에 비교적 장기적인 계획 아래 중국 중세사의 기본적인 사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존 역사상을 제공하고 있는 正史 기록들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철저한 사료 검토 작업은 비단 정사에 그쳐서는 안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筆記史料들이다. 이 책들은 당시 사회상을 직접 반영하고 있는 유용한 사료이나, 활자화되어 학계에 널리
보급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들을
상호 비교함과 동시에 당시 政書類 서적들과 대조하면서, 그 정리·주석을 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밖에 시문 등 종래 역사학계에서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당시 문학 작품들도 적지 않으니, 이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개인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특정 문헌이나 주제별로 讀會와 같은 지속적인 공동 작업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학만이 아니라 문학, 철학 등 유관 학문들간의 학제간 연구가 될 때 더욱 유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제는 앞으로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포괄적이고도 장기적인
계획 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역사의 전개과정을 표면적으로나마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다. 따라서 중세사의 구체적인 양상에 접근하기
위해, 무엇보다 이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술한
바 시대구분 논쟁에서 과도기에 위치한 당대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궁정 내부의 정쟁들까지 학계의 큰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당시 민중의 정치적 움직임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본 주제의 중심이 되는 唐代의 경우를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당대가
'律令體制'라고도 하듯이, 이 시기 법제의 정비는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그 이전 시기의 율령을 발전·체계화시킨 唐律과 唐令은 이후 전근대 중국에서는 물론 동아시아 각지에서 그 기준과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치를 비롯하여 土地·稅役, 身分, 村落, 喪葬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制度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므로 당대의 社會相을 파악하기 위해 이러한 율령의 정확한 파악이 선결 과제인 셈이다.
이와 함께 여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禮制의 문제이다. 전근대 중국에서 禮가 갖는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데, 실상 기존의 당대사 연구에서 이것은 율령만큼 주목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율령과
함께 편찬된 {大唐開元禮}는 국가적 의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고, 당시 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헌이다. 그러므로 종래 학계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유교문화권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더욱 그러하다.
魏晉南北朝 이후 중국에서는 불교·도교가 융성하고, 이러한 현상은
당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당시 관료의 선발 과목에서 明經科가 수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지배이념으로서 실제로 가장 큰 기능을 한 사상은 역시 유교였다. 단지 상대적으로 그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었을 뿐인 것이다. 더욱이 중국사 전체의 흐름에서
생각할 때, 전술한 것처럼 이 시기는 유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해
간다는 점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유교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 사회적 조건에 대한 구명이 필요하고, 이것은 앞으로 다양한 측면에서의 역사적 조망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교의 새로운 움직임은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文體의 개혁과 함께 그 내용의 혁신을 도모한 古文運動의 흐름 속에서, 이후 신유학적인 사유구조의 기본틀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문학이 크게 발전한 당대의 士人들에게 경학과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니, 이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고 분명히 한 것이 바로 古文運動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문학적 소양이 경학적 교양과 함께 士人의 필수적인 요소로 되었고, 이 점에서 당대 문학에 대한 연구는 당시 유교의 이해에도 극히 긴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것은 唐初 이래 다수 등장하는 類書들이다. 따라서 당대 지식과 지식인의 존재형태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가지 책들이 어떻게 분류되고 또 읽혀졌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해명을 필요로 한다. '圖書의 사회사'가 문제시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당대의 구체적인 역사상을 구축하는 데, 민중의 실생활에 대한 이해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문제이다. 사실 이와 같은 주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종래 학계에서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유관 연구들도 많지
않다. 따라서 衣·食·住를 비롯한 실제 生活 각 방면의 검토는 기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척정신을 가지고 임해야 할 이
분야의 사회사적인 연구는 앞으로 큰 성취가 기대된다.
이를 구체적인 항목으로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중세사의 기본정리 작업
·唐代의 정치와 법제 및 禮制 연구
·당대의 유교 부흥운동과 古文運動의 고찰
·당대의 서적출판 및 衣·食·住 등 民衆生活史 연구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7세기 이후의 한국사를 중국 중심적 세계질서와의 관련 속에서 중세사회로 파악할 때,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용한 문화가 한국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각 부문별 검토가 필요하다. 이때 유의해야 할 사실은 서양의 중세사회가 지방분권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의 중세사회에서는 서양사의 관점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 서양과 동아시아 중세사회의 차이점이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유교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중세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정치적 성격을 고대사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전제왕권체제론도 있지만, 우리 나라 중세사회의 통치체제가 중앙집권적인 특징을 지닌 점을 고려할 때 신라에서
中代社會의 성립은 한국사의 차원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 중세사회의 토지제도가 갖는 특징과 관련한 사항이다.
三國에서 南北國으로의 전환은 왕조의 양적 변화일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질적 변동을 수반하였다. 신라와 발해의 성립은 한반도에서 항상적 전쟁 상태의 종식을 의미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장 기본적인 노예공급원인 전쟁포로의 소멸은 사회·경제구조의 재편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라의 중대 왕권은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귀족세력과의 길항관계 속에서 일련의 토지제도를 시행하였다. 토지제도를 이해하는 방향에는 고대사회 연속설과 중세사회 이행설의 입장이 있지만, 신라 중대에 실시된 토지분급제가 고려시대의 전시과와 조선시대 과전법의 선구적 형태라는 데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한국 중세사회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 상응하는
이념체계, 곧 불교와 유교에 관련한 사항이다. 고대사회에서 통치이념적 기능을 담당하던 샤마니즘에 대체하기 위해 수용된 불교는 신라 중대사회에서 국가불교로서 교리의 발전이 요구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교리상의 차이로 종파의 분립 현상이 나타났다. 이같은 종파의 분립은
불교가 이미 보편 종교로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유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신라가 수용한 유교는 漢唐儒學이 기본이었을 것이므로 자연히 국가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교와 유학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각 상대적 우위에 있으면서 지배이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위에서 신라 중대사회의 성립을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성립으로 파악하려는 본 연구에서 취급할 주제와 이해의 방향을 위에서 간략히 제시하였다. 이밖에도 良賤制에 입각한 신분제의 확립 및 송·명과 고려·조선간에 이루어진 조공외교의 실상 등을 밝힘으로써 동아시아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한국 중세사회의 위상과 특징이 보다 분명하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구체적인 항목으로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중세형성기의 통치제도의 문제
·중세형성기의 토지제도의 문제
·중세형성기의 이념체계의 문제
·중세형성기의 신분제와 대외관계
·7세기 동아시아 변환기에 나타난 國際戰에 대한 검토
·한국 중세사회의 기점에 관한 문제
(3) 중세적 유교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유교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한국 중세문학의 미적 형상화 문제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다루기로 한다.
① 패러다임 형성기에 있어서의 한국 시가문학의 품격론
② 형성기의 중세적 패러다임과 문학에 나타난 자연인식과 미의식의
상관성
③ 형성기의 중세적 패러다임으로 본 문학에 있어서의 典故 用事의 미학-서구의 패러디 문학과 대비
④ 형성기에 있어서의 均과 和를 추구하는 中庸的 패러다임과 국문학의 서술구조적 특징
⑤ 중세적 패러다임 형성기의 전통적 문예 미학
⑥ 禮樂論을 중심으로 한 중세의 미학적 패러다임 이를 토대로 수시로
소논문을 발표하여 그간의 연구성과들을 정리 보완하고, 한국문학의
양식적 특성과 미의식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연구논문을 마무리할
것이다. 한국문학에 대해 서구에서는 아직도 중국과 일본에 위치하고
있는 漸移 지대의 문학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한국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해외에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인재의 부재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 우선 우리 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문학과의 공통점과 변별점을 분명히 하면서 그 특징을 부각시키는 작업에 후학들의 뒷받침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들을 통한, 해외에 소개되어 있는 한국문학의 현황에 대한 검토작업도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유교문화권인 중국·일본·대만
등의 학자·학생들과의 연구 교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대학원생의
참여방법으로는 문헌 수집 및 분석, 논문 작성 등이 있다.
4. 과제의 평가 방법 및 지표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유교문화권의 중심인 중국의 중세사회의 다양한 국면을 연구하고 교육을 통해 인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표를 세우고 이를 통해 평가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미 앞에서 중심적인 주제를 논의한
바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지표를 세우고 과제를 평가하기로 한다.
제1-2차년도 : 중국 중세사에 관련한 자료의 수집과 기본사료의 정리
작업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구도를 정한다.
제3-4차년도 : 유교문화의 中核에 해당되는 시기인 唐代의 정치와 법제 및 禮制 연구를 통해 중국 중세사회의 특질 및 유교적 패러다임의
원형을 확인한다.
제5차년도 : 당대의 유교 부흥운동과 古文運動의 고찰을 통해 이 시기
한국 의 문화적 상황을 대비적으로 파악한다.
제6-7차년도 : 唐代의 서적출판 및 衣·食·住 등 民衆生活史를 파악하여 이러한 풍속이 같은 시기의 한국에 어떠한 양상으로 교섭하였는가를 파악한다.
이러한 지표와 지표에 따르는 평가는 동양사, 한국사 그리고 한국문학의 학제간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학제간 연구방법론을 통해 교육과 연구를 한 결과물을 논문과 출판물로 간행하기로
한다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이 주제에서는 중국, 한국의 두 축에서 지표를 제시하고 그 평가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중국 중세의 경우 : 우선 3단계로 평가하기로 한다.
(가) 장기지속적 연구로 사료의 정리 및 기초작업에 따른 독회를 바탕으로, 3차년도부터 사료의 정리·주석 작업에 관한 성과를 발표하고,
6차년도 이후 그 결과를 책자로 출판한다.
(나) 하드웨어적 연구 중심으로 1차 연도에는 자료 수집을 주로 하고,
2차 연도 이후에는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다) 소프트웨어 연구 중심으로 3차 연도까지 자료를 수집하고, 4차
연도 이후에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학원
수업과 대학원생의 발표 논문을 통해서 시행하기로 한다.
한국 중세의 경우 : 학문의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중기적인 교육·연구 과제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지도교수의 연구·교육 구상에 따른 대학원생의 철저한 학습이 필수적이다.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은 사료 해석학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본 연구의 진행과정에서는 과거 대학원생이 단편적으로 연구업적을 제출하는 방법을 지양하고, 비교적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문제제기와 문제의식의 지속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연구 과제와 관련된 원전 사료의 순차적인 강독을 실시함으로써 석사와 박사과정의 학생이 각각의 단계마다 연구주제를 발굴하고 그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추적이 가능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특히 이를 차년도별로 계획을 정하여 {삼국사기}·{삼국유사}·{구당서}·{신당서}·당의 율령관계자료·{일본서기}·일본의 율령관계자료를 강독하고 이를 토대로 학제간으로 논문을 검토하고 발표한
뒤 평가하기로 한다. 요컨대 이러한 계획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루어졌느냐가 평가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3) 중세적 유교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이 주제는 앞의 연구성과와 학제간의 공통 발표를 전제로 소주제를 정하여 평가와 그 지표를 확인하기로 한다.
우선 미학 사상의 기초와 원리를 기반으로, 문예 각 분야의 미학 이론을 탐구하고, 중국 미학과의 관련 양상 및 일본 미학의 전통과 비교한다. 그리고 국문시가의 미의식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논한다. 특히 조선조 단가와 가사작품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국문시가와 한시문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이다.
그런 다음 시조와 가사를 중심으로 한시와 대비적으로 연구 검토하되
서구 패러디 문학과 대비하여 탐구하기로 한다. 이를 기반으로 악장문학의 미학과 그 서정성·교훈성의 진수를 규명하는 한편, 중세적 패러다임을 원용하여 국문소설에서의 中庸的 서술구조, 국문시가에서의
中庸的 표현미학 등도 다루어 중세미학의 지표를 확인하고 그 성과를
점검하기로 한다.
제1차년도 : 소주제에 관련한 문헌 자료 수집과 기존 논의의 검토를
통해서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고, 각 소주제에 관련된 이론적 접근과
방법론의 모색, 관련지식의 배양 정도가 얼마나 충실하게 시행되었는가를 평가한다.
제2차년도 : 교수·대학원생 간의 협동 연구가 소주제에 맞추어 그 기초작업이 논문의 준비작업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측정한다.
제3차년도 : 각 소주제별 구체적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구성한다.
제4-6차년도: 논문을 완성하여 학회지에 발표한다.
제7차년도 : 앞의 결과물을 종합하여 출판하기로 한다.
그리고 연구성과는 소논문 발표, 논문 발표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검증을 받고, 인터넷이나 통신 등에 연구과정과 성과물을 게재함으로써
대중적인 관심을 유도한다. 한편, 각 학교에 관련된 전공들과의 교류를 통해 연구대상을 보편화시키고 연구성과물은 문학사에 첨가시키도록 한다.
5. 과제의 기대효과
(1) 유교문화권에서의 중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唐代를 전후한 시기 中國의 歷史像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함으로써
당시 儒敎文化圈의 중심에 있었던 中國 내부의 역사적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최근 학계의 동향에 따라 실제 사회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적인 文化의 機制에 주목하여, 이 시기 儒敎의 사회적 動態를 밝힘으로써 唐代에 두드러지는 儒敎와 文學의 밀접한 관계에 착목하고, 이를 통해 儒敎文化의 실제적 의미에 보다 근접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唐代는 漢代의 '帝國儒敎'로부터 宋 이후 新儒學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상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처럼 변화의 구체적인 계기와 양태를 밝히려는 역사적 접근 방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 현실과 사상의 상호관계, 나아가 그 文化的 推移를 밝히는 과정에서 學際間의 새로운 방법론 모색 과정으로서도 크게 유용할 것이다.
唐代는 儒敎가 주변 동아시아 지역으로 크게 확산되어 가는 시점이므로, 이와 같은 연구는 당시 儒敎를 받아들인 주변 지역의 연구와 병행됨으로써 더 큰 성과를 얻을 수가 있다. 즉 韓半島를 비롯한 儒敎文化圈에 속하는 여타 지역에서 실제로 어떻게 儒敎와 이에 관련된 문화들이 수용되고 또 변용되는지 따로 고찰하고, 이러한 연구들이 전체적으로 종합됨으로써 儒敎文化圈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解明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는데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생각한다.
(2) 유교문화권에서의 한국사회의 형성과 구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내에서의 한국 중세사회의 형성과 구조라는 본
연구의 과제가 계획한 바대로의 목적을 달성할 경우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논의가 분분하던 한국 중세사회의 형성문제에 대한 하나의 준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한국 중세사회론은 서양 중세의 지방분권론에 입각하여 접근함으로써 사실의 해석에서 정곡을 놓칠 염려가 없지 않았다. 역시 한국 중세사회는 중앙집권체제로 파악할
때 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사회구조적 동질성이 확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왕의 사실 이해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가능하다.
둘째, 한국사에서 중세사회의 구조에 대한 규명은 다른 학문의 사적
접근방법에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인문학으로서의 문학과 철학은
물론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사회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적 관점이 필수적인데, 그 사회의 구조에 대한 전제적 이해는 해당
학문에서의 주제가 갖는 사적 전개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시켜 줄 수
있을 듯하다.
셋째, 한·중·일의 비교 연구를 통한 동아시아 중세사회의 相似性과
相異性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중앙집권적 중세사회론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동아시아세계 속에서 한국과 중국사의 동질성과 일본사의 이질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불교와 유교를 매개로 하는 동일 문화권이면서도, 역사의 전개과정에서는
한국, 중국과 자못 다른 바가 없지 않았다. 향후 동아시아의 지역공동체의 형성을 전망할 때, 이같은 역사적 사실은 공동체 형성의 전제를
설정하는데 일정한 기준이 될 수 있다.
(3) 중세적 유교패러다임의 형성과 文藝美學
본 주제의 연구를 통해 우선 기대되는 것은 중세적 패러다임의 문학적
형상물로 출현한 국문학의 여러 장르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와 심도 있는 연구로 고전한국문학의 변모·발전 양상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유가적 이념이 내포되어 있는 만큼 사상사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해석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기존의 문학사에서 소략하게 거론되거나 거론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일종의 책임감마저 느껴지는 작업인 만큼 획일적이었던 기존의
연구방법 등을 탈피하여 미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이를
통해 유교적 전통을 내포한 근대 이전의 문학을 이해하고 서구적 미의식에 함몰되어 있는 현재의 문학활동에 고유한 우리의, 우리만의 문학을 자리매김하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미적 감각이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이어진다면, 더 이상 서구문학 사조의 흐름에 휩쓸리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서구를 비롯한 세계의 문학 속에 '한국문학'이라는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본 주제와 병행하여 해외의 여러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한국학
관련 과목에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의 계발
및 지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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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제의 중요성
19세기의 동아시아는 서구문화의 충격과 함께 이전과는 전혀
색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중화중심의 세계관은 서구문화의 충격으로 여지없이 격파되고 기존에 지탱하고 있었던 동아시아라는 소우주의 圈域의 담론을 넘어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면서 사회체제의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특히 중국과 한국은
유교문화권 내부의 해체와 새로운 전환을 기획해 가던 시기였다. 물론 이러한 전환의 기획은 내·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그 기층에는 서구 자본주의의 편입에 대한 각국의 민족적 자각과 대응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대응양상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늦게 근대적 전환의 길로 나서기도 하였지만 모두 근대를 향한 일보였던 셈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하에서 사회·경제적으로는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어 암중모색을 하기도 하였고 문학은 양식적으로 혹은 그 내용상에서 근대적 전환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어쨌거나 중국과 조선은 기존에 지니고 있었던 중세사회 내부적 한계와 모순 속에서도 타의든 자의든 간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중국은 개항과 함께 급격한 사회와 문화의 변혁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중국은 서구 열강의 주된 관심 대상이었던 만큼, 이들의 정치적 위협과 경제적 수탈 역시 막대하였다. 이 속에서 뿌리깊은 전통의 힘과 짐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중국과 조선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대응은 근대적 전환이라는
세계사적 조류 속에서 가장 전형적인 실례를 보여 주며, 보편적
世界史의 像을 수립하는 데 기여하는 바 있다. 통합적인 시각과
학제간의 연구를 전제로 하지만, 우선 논의의 편의상 3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1) 19세기 전후 유교문화권의 변혁운동과 근대적 모색
(2) 19세기 한국문학의 근대적 전환과 그 양상
(3) 유교문화에서 바라본 한국의 근·현대사
(1) 소주제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실제로 19세기를 전후한 중국은 太平天國, 洋務運動을 위시한 끊임없는 개혁과 혁명을 통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 갔던 바, 지금의 中國과 中華民國의 분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거쳐 역시
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당시 중국의 이러한 상황은 퍽
시사적이다. 따라서 중국이 근대적인 전환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특히 오늘의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반드시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2)의 소주제와 관련한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조선의 경우도 19세기 초반 이래로 서구와 일본의 개항요구에 대응하는 한편, 그
내부에서는 모순이 극대화되면서 변혁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사유방식이나 문학에서 근대적 전환을 추구하는 새로운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성향은
잠복하였다가 근대계몽기에 활화산과 같이 분출하게 된다.
흔히 우리는 19세기=암흑시대라는 등식으로 부정적인 시대상을 각인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일제 치하에 형성된 식민주의사관의 잔재이다. 일제 관학자들은 식민지화의 원인을 전적으로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에다 전가하고자 그와 같은 시대상을 조작·유포하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19세기는 '실학시대'에서 '개화시대'로 넘어가는 일대 전환기로서, 그 외견상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근대를 향한 암중 모색이 치열하게 이루어진 역동적인 시기였다. 그러므로 이는 문학의 근대 지향성을 고찰하자면 반드시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이후 우리는 근대화에 매달려 왔지만 앞으로 21세기는 근대의 완성과 아울러 그 폐해 극복이 더욱 문제시되는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논의가 자못 무성한 것도 그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의 극복은
추상적인 논의나 담론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근대화와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변동을 가장 심층적으로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는 문학 예술에 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극복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
과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증대할 것이다. 더욱 많은 연구자들이 동참하여 19세기와 그 문학의 변모 양상을 총체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본다.
(3)의 소주제와 관련한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19세기를 지나서도 중세적 패러다임은 그대로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이후 현재까지 유교적 토대는 정치·사회·문화면에서 강인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 근대로 전환하는 데 중세적 패러다임은 어떠한 형태로든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 다른 유교권에 비하여 한국이 衛正斥邪운동이 오랜 기간 강렬히 전개되었고, 그것이 한국인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거니와, 이는 한국에서 유교, 그 중에서도 주자학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유림 등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계층이 전환기에 유교문화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는가도 중요하지만, 농민운동의 지도자
등이 받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농민전쟁 등 농민운동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던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최제우의 東學思想에도 유교문화의 영향이 많이 있어, 전환기에 유교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전봉준 같은 농민운동의 지도자도 유교적 소양을 지니고 있었던 유랑지식인으로, 훈장을 한 경력이 있고, 그가 제시한 요구조건 또는 폐정개혁안을 보아도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유교문화는 대한제국시기의 근대화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하다.
이 시기 근대화의 논리는 舊本新參이었는데, 여기서 本이란 주로 유교문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또한 조선에서 국호를 韓으로 바꾸어 대한제국이 된 것도 따지고 들면 주자학적 정통론에서 나온 기자조선 - 마한정통론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大院君집권시기에서부터 大韓帝國시기에 이르기까지 근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교 또는 주자학이나 위정척사사상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는 한국근대사를 연구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교문화는 독립운동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10년대 일제의 强占下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박은식, 신채호, 이상룡 등은 모두 당대의 석학이자
유림계의 거두로 유학에 조예가 깊었다. 왜 개화파 또는 신식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開明 儒學者가 올곧게 강직한 태도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가, 1910년대의 어려운 상황에서 민족정신 또는 민족의식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전환기의 유교 또는 유학을 제외하면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김구도 청년기에 위정척사사상을 가진 華西계통의 학자로부터 지도를 받아 큰 영향을 입었지만, 상해임시정부를 이끌어간 주요 리더들
또한 이동녕이건 이시영이건 유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유교문화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나 습속이 많이 남아 있었던 1950년대 시기의 문화, 사회, 정치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새 천년의 시작인 21세기에도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세계환경에 주체적으로 적응하는데도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한다.
2. 과제와 관련한 국내외 학문동향
이 과제에 대한 동향을 구체적으로 포착하기 위하여 논의의 편의상 다음과 같은 3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위에 제시한 3가지 소주제를 준용하여 국내·외의 동향을 정리한다.
(1)의 국·내외 동향은 다음과 같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의 편입과정에서 일어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국가의 수탈에 맞선 것과, 중세사회질서로부터 탈주를 시도하면서 근대적 전환을 모색한 것인데, 논의의 편의상 중국의 경우를 제시하고 그 다음
19세기 조선의 대응양상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중국의 근대사회에서 정치이념으로서의 유학은 公羊學으로 나타나고, 그 현실적 적용으로 戊戌變法 運動이 전개되었다. 국내에서는 淸末 公羊學의 유교적 특성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으나, 淸末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지어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戊戌變法運動이나 그 추진자인 康有爲, 梁啓超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변법운동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全般的으로 고찰한 바도 있다. 중국의
경우 戊戌變法과 이들 인물들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다루어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구미에서도 일정한 업적을 내고 있다.
이 외에 국내외에서 장개석에 대한 연구 등 근대 변혁기에 주요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게 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상의 연구들은 각 인물이나 주제들을 개별적으로 연구한 것에 불과하고, 유교문화권 속에서 중세 패러다임의 변화와 연관지어 논의된 바는 없다. 여기에서 이상의 인물이나 제도
등에 대해 유교문화의 변화라는 시점에서 새롭게 평가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무렵 전통사회 내에서 유교적 경제이념인 本末思想이 붕괴되고 새로운 工商皆本論이 출현하였는데 그 과정을 주로 자본주의 맹아와 관련지어 논의하고 있는 것이 학계의 현실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자본주의 맹아라는 문제가 하나의 이슈가 되어 맹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다. 이들 연구의 대부분은 淸末에서 자본주의의 존재 여부를
실증한다거나, 자본주의 출현시기를 比定한다거나,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논의하는 것이었다. 유교문화권 속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 적합성, 자본주의의 발전 한계로서의 전통적 유교사상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취급하여 왜 유교문화권에서 근대사회(이 경우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이 곤란하였는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맹아의 문제에 대한 연구사적 정리나 그 배경으로서의 생산력 발달 문제는 요즈음에 비로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청의 대외무역이 중국사회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전통적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어떤 작용을 하였는지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대외무역의 실상을 연구한 데 불과할 뿐,
대외무역에 의해 중국사회가 어떻게 영향받고 변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다. 특히 대외무역과 아울러 중국에 유입된 서양사조가 중국지식인의 세계관이나 유교이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어떤 작용을 가하였는지 論究되어야 할 것이다.
양무운동은 태평천국이라는 미증유의 민중반란에 즈음한 정책당국자들이 체제 유지와 반란 진압을 위해 시작한 공업화 추진운동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연구가 적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도 양무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어 이
부분의 연구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요청되고 있는 형편이다.
청의 지배계층을 이루고 있던 유교적 지식인 紳士層이 근대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신사층은 신해혁명의 주요 담당세력의 하나인 紳商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민국 이후 향촌사회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土豪劣紳으로도 표현된다. 종래 신사에 대해서는 청의 신사층의 형성과정이나 정치·사회·경제적 역할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러한 紳士階層이 근대 이후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였는지, 어떤 작용과 기능을 담당하였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으나 그 변화상의 전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집중적 분석이 요청된다 하겠다.
최근 중국에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충분치는 않다. 辛亥革命을 전후한 시기의 紳士들의 정치적, 사회적 역할과 작용에 대해서 보다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즉 그들이 종래 지녀왔던 유교적 세계관이 변화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변모·진화되었는가? 그들은 현실을 자신의 세계관에 맞게 어떻게
변화시키려 하였던가라는 문제가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민국 이후 향촌에서 부정적 역할을 수행한 土豪劣紳의 사회적 실체나 그들의 존재기반·사회경제적 역할 등에 대해서도
광범하고도 집중적인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역시 본 과제의 일부를 이루는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유교적 지식인을 대체한 새로운 근대적 지식인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교육제도에 대한 연구가 그 기초를 이룰 것이다. 국내에서는 양무운동시기 교육제도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지식인의 한 유형으로서 중국의 근·현대 역사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친 계층인 학생층에 대한 연구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 학생계층은 전통적 유교지식인의 테두리를 벗어나 서구적 세계관을 갖춘 신지식인이라 하겠다. 그들의 형성과정과 세계관, 역사에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중국 쪽의 변혁운동에 관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바탕 위에서 19세기의 조선의 변혁운동과 그 공과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一國史的인 담론을 넘어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의 변혁운동의 동인과 그 양상에 대한 비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거니와, 이러한 방법론과 분석을 통해 19세기의 조선의 문화 경제, 그리고 사회체제의 전환과정과 근대적
지향에 대한 부분을 적출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혁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이라는 비교적 큰 틀 속에서 변혁운동과 그 史的인 맥락을 고찰한 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 자체는 매우
유의미한 과제이자 방법론적인 시각이 아닌가 한다.
(2)의 국·내외 학문 동향은 다음과 같다. 이는 19세기와 근대계몽기에 국문학과 실학파 문학은 어떠한 양상으로 대응 내지 변화를 모색하였고 그러한 것이 근대 한국문학에 어떠한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시도이다.
한국문학사에서 19세기는 18세기의 실학파 문학에서 20세기
초 근대계몽기의 국문학으로 이어지는 과도기로서, 이 시기의
국문학은 영·정조시대 실학의 사상적 문예적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한편 서세동점의 새로운 시대적 격변에 직면하여
근대적인 전환을 모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 19세기는 이른바 세도정치 아래 민란과 외세의 침략으로 얼룩진 암흑시대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말미암아, 이 시기의 한문학 역시
매력적인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하 식민지시기에 시작된 문학사 정리 작업에서도 19세기는 현대와 至近한 시기였던 까닭에 도리어 소홀시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국문학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풍부한 성과를 산출해
온 실학파 한문학 연구는 물론,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근대계몽기 국문학 연구에 비해서조차 빈약한 성과를 제출하는 데에 그쳐 있는 실정이다.
19세기 국문학사를 편의상 전기(순조 연간 1801∼1834), 중기(헌종·철종 연간 1835∼1863), 후기(고종 재위기 1864∼1899)로 나누어 본다면, 이 시기 문학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체로 전기에 편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정조시대
실학의 한 대표자인 다산 정약용도 실은 그 학문적 집대성이 순조 연간에 이루어졌으므로 19세기 전기의 대표적 문인 학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약용의 문학과 사상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작가로서 서유구·남공철·김조순·홍석주·김매순 등 순조대의 저명 문인 학자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고, 반면 중기와 후기의 작가들 및 茶山學의 계승과
변모에 대한 후계자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진한 실정이다. 주로 중기에 활동한 작가라 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의 경우를 제하면, 박규수·강위·김윤식 등 몇몇 작가에 대한 연구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한편 이 시기 중인층의 여항 문학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층 사대부 문학과의 관련 양상이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이 시기 한문학사의 전체상이 온전히 파악되지 못한 한계도 조만간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학
양식별로 볼 때 시론이나 산문론 등 문학 사상과 한시 분야를 다룬 연구가 많은 반면, 산문에 속하는 다양한 양식들은 상대적으로 소홀시 되어 있는 점도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 근대 계몽문학의 양식적 전환이라든가 국문문학과 한문문학의 근대적 모색에 대해서는 그 연구가 매우 일천한 형편이다.
(3)의 국·내외 학문 동향은 다음과 같다. 衛正斥邪에 관해서는
그간 여러 논문이 나왔다. 그러나 위정척사사상에 대해서 주자학적 정통론의 입장을 가지고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을
과연 민족주의로 파악할 수 있느냐를 논의하지 않고 곧장 민족주의로 규정하고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東道西器論 혹은 舊本新參의 논리에 대하여는 기존의 연구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대한제국기의 근대화의 내용과 이념을 가지고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계에서도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것에서 핵심적인 논점의 하나는 이 시기 근대화 추진 논리와
유교사상이 어떠한 관련을 갖느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다. 그리고 의병운동과 유림, 유교문화와의 연구도 근래에 와서 상당히 괄목할만한 수준에 와 있다.
신채호·박은식·이상룡에 대한 연구, 그것도 유교문화와 연관을 지으면서 한 연구는 한영우·신용하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김구, 이동녕 이회영 형제들, 조소앙 등의 경우 유교문화 또는 유교적 소양이 그들의 독립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승만과 유교문화와의 관계를 포함하여 1950년대 한국사회에서 유교문화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 전환기 또는 근대적 변화에 미친 유교는 어떠한 성격의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다. 여기에서 유교를 하나의 틀로 제시하면서 위정척사와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연구시각이자 방법론이 아닌가 한다.
3. 과제와 관련한 세부 내용
앞서 소주제를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소주제에 따라 그 세부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둔다.
(1) 19세기 전후 유교문화권의 변혁운동과 근대적 모색
19세기 중국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유교 정치이념에 의한 황제의 전제지배가 확립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소프트웨어로서 관료제도, 관료선발제도(科擧制), 爲民을 위한 對民政策, 對民政策의 실행기구와 운용(중앙과 지방) 등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本末思想에 의거 重農抑商 정책이
시행되어 민간 부분의 상공업의 발전이 억제되었으며 반면 국가 專賣·獨占에 의한 경제 정책의 운용(鹽鐵茶酒 등 주요 생산물의 국가 전매, 독점)으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유교적 지식(권위)과 경제적 財富를 지닌 地主階層이 정치적 권력도 장악(관료화)하여 지배계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그때그때 豪族(秦漢時代), 貴族(魏晋南北朝, 隋唐),
士大夫(宋元), 紳士(明淸) 등의 명칭으로 나타나지만, 유교적 지식에 근거한 권위를 보유하고 토지를 기반으로 한 재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하고 유교적 관료의 등용을 지향하였으므로 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주로
담당한 사회 지배계층이 유교를 토대로 한 문화를 전개시키고
있었다. 중세 말 이러한 정치·경제·사회 구조에 일정한 변화가 출현하면서 중국은 近代社會로 전환되어 간다. 그러한 이행시기에 있어서 주요한 변화의 양상과 동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구체화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적인 면에서: 우선 정치이념의 변화양상에 주목한다. 중국
자체 내의 유교적 정치이념이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여 일정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으니, 陽明學이나 公羊學 등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특히 公羊學에서는 대내적 지배체제의 위기와 서세동점에 의한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서 유교에 근거한 개혁사상을 제기하고 있다. 康有爲, 梁啓超 등의 戊戌變法運動이 공양학에 근거한 개혁운동으로서 여기서는 전통 儒學만이 아니라
서양의 정치사상을 수용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근대의
정치이념에서는 서양에서 전래된 정치사상이 큰 변수로서 작용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孫文은 서구정치사상에 기초하여 중국을 정치적으로 개혁(황제 지배의 부정)하려 한 개혁가·혁명가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孫文도 유교적 정치이념에서 완전히 탈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점은
그를 계승하였다고 표방한 蔣介石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그의 통치의 정당성, 합리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유교적 생활을 전면에 내세우는 신생활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불완전한 근대국가라 할 수 있는 중화민국 남경국민정부가
유교적 통치이념을 이용하여 어떻게 정권을 유지하였는가를 살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세력의 침략 이후 중세적 지배구조로서의 관료제나 관료선발 방식이 변화된 면에서: 이러한 것을 고찰하는 것도 중대한 연구과제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특히 1905년의 科擧制 폐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교적 학습을 통해 관료로 입신하려는 무수한 지식인에게 유교적 학습의 불필요성을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유교적 교양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근대적
학교에서는 주로 서양학문을 교육하고 있었고, 그러한 학교졸업생을 관료로 선발하려는 방침이었기 때문이었다. 유교적 爲民思想에 근거하여 災害나 춘궁기에 식량을 빈민에게 제공하려한 社倉이나 義倉제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어떻게 기구적으로
정비되고 운용되었는가를 살피는 것도 본 연구과제와 관련된
문제이다. 국가의 機構나 운용만이 아니라 지방사회에서 紳士나 사회지배층이 향촌에서 어떤 동기에 의해 義倉·社倉을 어떻게 설립·운용하였는가도 중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그것이
명청시기를 거쳐 근대사회에서도 계속 발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유교적 이상론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요소가 있는지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 중세사회 말기에 내부적으로 자본주의의 萌芽가 싹텄는데 이는 내적으로 농촌에서 상품작물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도시(市鎭)에서 수공업이 발전한 결과였다. 외부적으로는 대외무역의 발전은 중세 중국의 경제에 자극을 주어
자본주의의 맹아를 더욱 촉진시켰다. 이러한 경제상의 변화는
국가의 조세정책이나 경제정책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현실적인
경제 변화를 인정하고 이에 기반하여 경제정책을 책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상인자본이나 상인집단을 형성하여 새로운 사회 세력을 양성하였다. 즉 이들 중에 일부는 수공업 등 산업에 투자하여 산업자본으로 전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라서 일부 지식인은 전통적 本末思想을 벗어나 수공업이나 상업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王夫之, 黃宗羲, 顧炎武 같은 明末 遺老의 사상은
그러한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된다. 그들은 明末淸初의 경제적 변화를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변화를 앞서 선도한 儒學者로 평가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인·수공업주는 봉건적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 官職이나 紳士의 지위를 구매하거나 자제를
과거시험에 응시하도록 하여 봉건적 세력으로 편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서 중국 중세사회의 한계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의 돌파는 외부로부터 이루어졌으니 그것은 대외무역과 외국자본의 진출이었다. 대외무역은 중국의 경제규모를
확대시키고, 중국의 수공업과 농업(상품경제)의 발전을 자극하였다. 수출하기 위해서 차를 재배하고 양잠을 하며 생사를 자았던 것이다. 한편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 들어온 외국자본은 기본적으로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였지만 아울러 중국자본주의 경제를 부양시키는 적극적 역할도 담당하였다.
이상과 같은 경제적 변화가 중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초래하였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근대초기 양무파들은 유교적 경제정책 대신에 민간인을 참여시키는 공업화를 추진하기도 하였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그런 점에서 洋務運動의 功過, 役割, 技能 등을 살피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로부터의 자본주의화'는 여러 가지 모순으로 인해 일정한 한계와 실패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 차원에서도 자본을 투자하여 새로운 경제적 주체로 나서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봉건적 세력과 외국 세력의 방해와 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정기간 중국의 자본주의화는 퇴행과 왜곡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겠다.
사회적인 면에서 : 중국의 경우 지배층을 이루고 있던 송대 이래의 士大夫, 명청시대의 紳士層이 근대사회의 사회변화를 거치면서 신분상의 변동은 없었으며, 紳士를 대신하여 나타난 근대시대의 사회적 지배층은 어떤 사회계층이었을까라는 문제도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명청시대 상품경제, 화폐경제의 발전은 신사의 경제적 지위를 종전의 地主 중심으로부터 점차 상인, 고리대업자로 바꾸어 가게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상업이나 고리대업, 또는 수공업 등으로 돈을 번 사회계층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紳士의 지위나 관료의 직함을 사는 일이 빈번하였다. 따라서 신사나 관료 중에서 상인이나 고리대업자의
비율은 점차 높아졌다. 근대사회에서 이들을 紳商으로 지칭할
정도로 그들의 집단이 형성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교적 교양이나 인격적 존경에 근거한다기보다 財富에 근거한 신분상승
현상은 여러 문제를 파생시켰다. 특히 이들의 일부가 국가권력과 결합하여 향촌사회의 민중을 수탈할 때 민중으로부터 土豪劣紳이라는 비난의 소리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토호열신은 軍閥과 결합하여 민중에 대한 수탈을 자행하고 중국사회의 근대화나 민주화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로 기능함으로써 부정적 역할을 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는 한편 근대사회에서는 전통적 지식인이 새로운 지식인으로 대체되었다.
신식교육을 받은 학생층이나 지식인층은 자신의 출세나 가문의
영달을 위하기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여 나갔다. 5·4운동 이래의 학생운동이나 지식인 운동이 그러하였다. 이러한 계층의 분화도 유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연구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 19세기 조선의 경우 지속적인 변혁운동이 있어
왔다. 홍경래 농민전쟁을 필두로 갑오농민 전쟁에 이르기까지
밑으로부터의 근대적 모색은 이어졌다. 이러한 변혁운동은 중국의 경우와 어떻게 연계되며 어떤 부분이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가를 규명하되, 일국적 시각을 넘어 중세 유교문화의 전환이라는 큰 맥락과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살필 것이다.
본 연구의 수행을 위한 중요 내용과 지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문헌섭렵과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정밀하게 분석 및 정리한다.
·17세기를 전후한 명청시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유교적 이념의 갈등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외부로부터의 충격-- 대외무역의 발달과 사회체제의 변동,
유교적 세계관의 동요에 대해 검토한다.
·민중반란(태평천국)과 이에 대응한 양무운동의 성격을 규명한다.
·공양학의 형성과 무술변법 운동의 전개, 지식인의 개혁운동에 대해 탐구한다.
·5·4운동과 신지식인의 등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土豪劣紳과 새로운 사회세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2) 19세기 한국문학의 근대적 전환과 그 양상
우선 19세기의 사회변동과 국문학을 관련지어 이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19세기 사회변동과 국문학의 문제: 19세기는 홍경래의 난(평안도 농민전쟁)이후 1862년 삼남 민란(농민항쟁)을 거쳐 동학난(동학농민전쟁)에 이르는 민란(민중변혁운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제1, 2차 아편전쟁(중영전쟁)과 병인양요·신미양요 이후의 일본과 서양 제국의 침투 등 외세의 침략이 이어진 시대였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이 시기 국문학이 어떻게 시대적 제문제를 형상화하고 그 극복의 전망을 구체화해 갔는지를 심도있게 연구한다. {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 등 기본 사료들을 철저히 검토한 위에서 문학사의 복잡다단한 변모 양상을
세밀하게 추적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에 나타난 근대지향성의 문제: 19세기 한문학이 전대
실학파 문학의 사상적 문예적 진보성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갔는지를 주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개별 연구의 집적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19세기의 전기·중기·후기별로 주요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들을 엄선하여 연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 작가, 작품에 관한 연구를 통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근대 지향적 특질들을 추출하고자 한다.
문학사상과 예술론의 전개: 시론과 산문론, 문학 본질론 등 문학사상 분야에서 나타난 변모양상을 특히 회화론와 음악론 등 인접 예술분야에서 일어난 변화와 긴밀하게 관련지어 해명하고자
한다. 김정희·신위·박규수 등과 같이 저명한 문인 학자이자
동시에 서화가이기도 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실학파의 계승자와 후계자들에 대한 문제: 19세기 중반 이후 茶山學을 계승한 주요 인물(다산의 강진 유배시기의 18명의 제자와 아들·외손) 등의 구체적인 면모와 그들이 이룩한 학문 내지
경학, 나아가 문학적 성취를 꼼꼼하게 고찰하는 것은 19세기 실학의 근대적 경로를 탐색하는 작업이 된다. 나아가 茶山이 이룩한 실학적 업적이 그 뒤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곧 실학이 어떻게 근대적인 전환을 이룩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아닌가 한다.
근대 계몽문학의 문제: 사실 한국에서 중세 이후의 서사문학은
이미 내부적으로 근대문학을 향한 변화의 계기를 내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징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양식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근대 계몽기의 양식사의 전환과 근대적 창안에 대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양식사의 변천을 고찰하는 敍事學은 역으로 중세적 질서의 근대적 전환과 새로운 모색의 징후를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대계몽기의 시가와 서사양식에 대한 미시적 탐색도 필요하다.
계몽의 시대정신은 민중적 언어와 민중적 문학 형식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였고 중세적 지식인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근대적
지평에서 의미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다. 근대 초기 '단편서사물'은 이러한 의미에서 중세 서사문학이 근대문학으로 조정되기 위한 회로의 구실을 하였다.
따지고 들면 그 회로의 형성은 중세의 서사양식 내부에서 튼튼한 자양분을 공급받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단편서사물'은 다양한 양식 실험을 통해 중세 서사형식과 근대의식의 접점과 근대
문학형식의 독자적 발전의 길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중세 서사양식에 대한 발본적 검토는 유의미하고 근대양식의 성립의
해명에도 역할을 할 것이다.
본 연구의 수행을 위한 중요 내용과 지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문헌섭렵과 자료 분석, 현지 답사를 통한 자료 수집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고 번역한 뒤 번역서와 자료집을 발간한다.
·19세기 國文學史上 주요 작가와 작품에 대해 검토한다.
·문학과 예술론이나 양식사의 실상에 대해 검토한다.
·근대변혁의 대응양상으로 보이는 실학의 후계자를 검토한다.
·근대 계몽기의 국문 문학의 양식적 전환과 근대성을 검토한다.
(3) 유교문화에서 바라본 한국의 근·현대사
여기서는 유교적 패러다임에 비추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해 보려고 한다. 대원군 집권시기 이래 근대,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사는 근래에 들어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아직은 초기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한국사회의 변화 또는 전환을 전통과 근대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해서 틀을 짜고 그것에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한국사 연구가 실증적인 면에 기울어져 약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문화 또는 유학과 한국사회의 근대적 변용을 조직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충분한 의의가 있다. 이 과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원군 집정기를 전후한 시기의 연구: 이 경우 천주교 박해나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 위정척사사상 또는 서민의 반서양사상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하는 문제가 이제부터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1890년대 초반기에서 갑신개혁에 이르는 시기에 위정척사사상과 개화사상, 서민들의 근대화에 대한 감정 등도 사건사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시기 정신사 또는 의식 상황과의 관련하여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갑오개혁에 대한 저항이나 아관파천에 대해서도 전통사상이 미친 부분에 대한 탐구가 깊이 있게
구명될 필요가 있다.
농민전쟁의 경우도 이념형적인 연구와 함께 농민들의 사고에
들어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 특히 전봉준 등 유교적 소양이 있는
지도자들의 의식이 이 시기에 어떠한 역사적 역할을 하였나, 근대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던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대한제국기의 정치이념은 독립협회 활동과도 관련이 되지만 이
시기 입헌군주제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가, 그것이 종래의 동양적 군주관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그들이 추진한 국가는 근대적 국민국가라고 볼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여 연구가 되어야
한다. 을사강제조약 이후 활발히 전개된 계몽운동의 경우 개신유학적 사고와의 관련성이 과거 박은식 所論의 비판 수준을 넘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의병투쟁의 연구: 이 경우에도 의병들의 사고와 근대적 국가상,
인간상의 관계에 중점을 둔 연구가 필요하다. 1910년대 독립운동에서 근대적 사고와 전통적 사고가 어떠한 접합과 균열을 갖게 되는가가 사회의 큰 변화라는 맥락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50년대의 유교적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 이 시기도 유교적 패러다임의 磁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근대화
과정을 걷고 있고 중세적 가치나 문화적 유형들이 많이 파편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근대와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이에 대한 것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본 연구의 수행을 위한 중요 내용과 지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료의 광범한 수집·정리 및 분석한다.
·대원군 집정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한 변혁운동과 사회상에
대해 검토한다.
·의병투쟁을 통해 드러난 의병들의 근대적 국가상과 인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문학과 예술론이나 양식사에 대해 검토한다.
·근대변혁의 대응양상으로 보이는 실학의 후계자에 대해 검토한다.
·1950년대의 한국정치사에서의 유교적 패러다임의 자장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가치에 대해 탐구한다.
4. 본 과제의 평가 방법 및 지표
앞서 소주제를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평가 방법 및
지표를 제시해 둔다.
(1) 19세기 전후 유교문화권의 변혁운동과 근대적 모색
역사·철학 및 문학 연구자들과의 학제간 공동연구를 통하여
연구자간의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토대가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간 혹은 대학원생간의 학제간 정기적인 모임을 열어 발표 토론하며, 이를 토대로 협동 연구를 진행한다. 이에 근거하여 연차적인 교육, 연구 목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차년도 : 명청시기 내부적 변화(사회경제적 변화) -- 상업적
농업의 발달과 도시 수공업의 전개, 유교적 패러다임과 자본제
간의 갈등과 모순에 대해 탐구한다.
제2차년도 : 외부로부터의 충격-- 대외무역의 발달과 중국사회의 변화, 외국사조의 유입과 중국 지식인의 서양문물 입수, 그리고 유교적 세계관의 동요에 대해서 탐구한다.
제3차년도 : 체제 정비 기도(1) -- 민중반란(태평천국)의 유교비판과 이에 대응한 양무운동의 성격에 대하여 발표 토론하고 논문으로 정리한다.
제4차년도 : 체제 정비 기도(2) -- 공양학의 형성과 무술변법운동의 전개,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중국의 주체적 대응과 유교적
세계관의 역할에 대해 발표 토론하고 논문으로 정리한다.
제5차년도 : 공화제로의 변모 -- 손문을 중심으로 한 신해혁명의 전개. 紳商의 역할과 황제지배의 부정. 유교문화의 유산과 공화제로의 이행에 대하여 발표 토론하고 논문으로 정리한다.
제6차년도 : 5·4운동과 신지식인의 등장 -- 전제지배체제 및
봉건적 사회 극복의 일환인 유교비판, 3·1운동의 대비적 고찰을 통해 유교문화의 전환에 대해 발표 토론하고 논문으로 정리한다.
제7차년도 : 土豪劣紳과 새로운 세력 -- 향촌사회의 지배세력
土豪劣紳과 군벌의 결합, 민족·민주를 위한 지식인과 학생층의 세계관과 혁명운동(장개석의 신생활운동과 유교) 등에 대해
발표 토론하고 논문으로 정리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학원과정에서 강의하거나 개별 연구를 진행한다. 당해 연도의 주제를 연구·분석·정리하여 국내외 학술잡지에 완성된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동양사, 한국근대사 및 문학 전공의 대학원 석·박사 과정학생의
학위논문을 지도하여 발표하도록 한다.
(2) 19세기 국문학의 근대적 전환과 그 양상
협동 연구와 공동 발표회를 통하여 연구자 간의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발표 토론하며, 이를 토대로 협동
연구를 추진한다. 이를 기반으로 연차적인 교육 연구 목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1-2차년도 : 문헌섭렵과 자료 분석, 해석 및 결과를 정리. 그리고 19세기 국문학의 주요 작가와 작품, 그리고 18세기의 문학과 대비한 19세기 문학의 새로운 동향을 탐색하여 논문으로 정리한다.
제3-4차년도 : 학제간 공동 토론회와 협동 연구를 진행하여 논문으로 정리하되, 근대변혁의 대응양상으로 보이는 실학의 계승 양상과 계승자에 대한 것을 주로 검토한다.
제5-6차년도 : 소논문 발표와 종합토론을 개최하되, 그간 연구되지 않았던 19세기 국문학의 주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것을 주로 검토한다.
제7차년도 : 소주제와 관련한 최종 목표 점검 및 성과를 발표하되, 문학과 예술론이나 근대계몽시기의 양식의 변모와 양식사에서의 근대 이월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연구 및 교육의 성취도를 단계별로 점검하여, 연차별 논문발표 계획을 달성하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지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학제간의 연구와 교육프로그램의 마련이 필요하다.
(3) 유교문화에서 바라본 한국의 근·현대사
이 주제 또한 자료수집 및 정리한 자료의 공유와 토론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문학·역사·철학의 연구자와 대학원생 상호간이
공감대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연차적인 교육 연구 목표와 함께 논문 발표 계획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제1-2차년도 : 문헌섭렵과 자료 분석, 현지 답사를 완료하고, 대원군 집정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한 변혁운동과 사회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제3-4차년도 : 공동 토론회와 협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의병투쟁을 통해 드러난 의병들의 근대적 국가상과 인간상의 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제5-6차년도 : 1950년대의 한국정치사에서 유교적 패러다임의
자장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가치를 탐구하여 논문으로 정리한다.
제7차년도 : 최종목표를 점검하고 다음 과제를 준비한다.
위에 제시된 지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시된 주제들에 대하여 인력을 얼마나 투하할 수 있느냐가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성균관대의 경우 근·현대 역사 및 문학에 관련된 연구자들이 박사만도 20명에 가까운 인력이 최근에 배출되었고,
현재 논문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석·박사 과정이
20-30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인력의 적절한 배치가 중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논문쓰는 작업과 병행하여 우선적으로
자료의 정리 또는 배합이 필요하다. 전통과 근대, 또는 전환기에
유교사상이나 유교문화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자료가 배열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부분에 상당한 규모의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들에 대한 훈련과 함께 새로운 틀의 모색, 학제간 토론과 협동과정의 대학원 교육이 실시되면 연구지표를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5. 과제의 기대효과
앞서 소주제를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과제의 기대효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둔다.
(1) 19세기 전후 유교문화권의 변혁운동과 근대적 모색
유교문화권 내에서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국과
한국은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밟았으므로, 양국의 역사전개상의 공통성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중국과 한국의 차별성과 각각의 특수성도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동아시아 세계의 동질성과 차별성을 역사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록 양국이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하였을지라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 각기 서로 다른 역사가 전개될 수 있다고 하는 인식을 갖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주체적
노력을 고양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통사회에서 정치·사회·경제이념 등 모든 사람들의 인식과
실천을 지배하였던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근대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변모하였는가를 살핌으로써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 연구에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대하여 중국인과 한국인이 대응한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변화와 도전에 대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식과
실천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 19세기 국문학의 근대적 전환과 그 양상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19세기 국문학 연구를 촉진하고, 사회사와 문학예술사의 접점에서 근대적 변모과정을 심층적으로
규명함으로써, 21세기 새 천년을 맞이하는 우리 나라 문학예술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한 전망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근대의 완성과 아울러 그 폐해 극복이 더욱 문제시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근대성에 관한 논의가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하리라 본다. 아울러 동시대의 구비문학과의 교섭양상에 관한 연구를 병행한다면, 근대 문학예술사 및 사회사 이해에도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근대 사회사상사와 연계하여 문학예술사 측면에서 실학과 개화사상의 관련양상을 규명하는 과제, 산문론과 시론 등에
있어서 고전 문학이론과 현대 문학이론의 연계성에 관한 연구,
한시와 민요·가사 및 현대 자유시 등을 포괄하는 근·현대 詩歌史와 사회변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성과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즉 각종 문학사나 중등학교의 교과서 등에 그 연구 성과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3) 유교문화에서 바라본 한국의 근·현대사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그 자체가 무척 일천하기 때문에 우선 급한 부분의 주제를 실증적으로 규명해내는 데 모든 힘을 경주한 바 있다. 이제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중국사 등 인근 국가와의 상호관계 및 그 지역에서의 현상과의 비교 등이 요망된다.
특히 전환과 갈등이라는 주제는 문화사적·문명사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국문학 등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인근 학문과의 교류도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학제간 연구 및 큰 틀에서의 기본 역량의 훈련은 한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지평을 확대해줄
것이다. 아울러 기층적 사회문화 변동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도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대중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각종 문학사,
중등학교 교과서, 백과사전류 등의 관련 내용에 연구 성과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데도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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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skku.ac.kr/~bkasia/text/main5_3.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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